Hiding a House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204)
아포칼립스에 집을 숨김-204화(204/466)
91. 고장 (2)
여자의 움직임이 묘하다.
군인임에도 발걸음에 자신감이 없고 굳은 표정 아랜 선명한 두려움이 엿보인다.
수시로 뒤를 돌아보는 태도도 나의 의심을 사기에 충분했다.
미끼일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돌발적인 대치 상황에서 죽어도 되는 사람을 던져서 상대방에 관한 정보를 얻는 건 중국에서 심심찮게 본 광경이니까.
그다지 특출나지 않은 외모도 내 생각에 일말의 개연성을 실어다 주었다.
여성을 무시하자.
또 다른 드론이라고 가정하자.
이미 드론 한 대는 상공 위에 머물러 있다.
아마 이 공장 위에서 빠져나가는 사람이 있나 없나 관찰하고 있겠지.
상대방이 여성 하나만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잠자코 3층 창가에 머문 채 여성이 오기를 기다렸다.
그녀가 공장에 들어서자 웅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언어는 확실치 않지만 중국어보다는 한국어에 가까웠다.
내 생각은 그 여자가 가까이 올수록 확실해졌다.
“없어요. 아무도 없어요. 진짜요.”
겁에 질린 어눌하면서도 흐느끼는 듯한 목소리가 계단을 타고 널찍한 공장의 공터를 떨치고 올라왔다.
삐걱-
여성이 계단을 오르는 소리가 들려온다.
유일한 출입구인 문 앞에 조용히 의자와 무게가 나가는 것들을 세웠다.
차곡차곡 소리 없이.
그런 다음 다시 관측 지점에 가서 거울의 반사된 면을 통해 적이 숨어 있는 장소를 관측을 지속했다.
삐걱-
여자가 3층에 올라왔다.
3층에 사무실은 응접실 겸 사장실 하나다.
곧 그녀가 문을 두드렸다.
“문이, 문이 닫혀 있어요.”
또 그녀가 말했다.
“안, 열려요. 뭔가 막혀 있어요. 네? 그럴 리가 없다고요? 진짜 안 열리는데요? 와서 보시라고요. 제가 어떻게 하냐고요. 내 힘으로 안 되는데.”
여성의 목소리가 점점 높아지고 억울해졌고 급기야 울음마저 터뜨리려 한다.
누군가의 강요를 받고 있다.
그게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곧 알게 되겠지.
“아니오. 보세요. 여는 소리 들리죠? 진짜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요.”
여성의 찢어지는 음성을 들으며 거울을 노려본다.
뭔가 반짝였다.
“······후우.”
가볍게 숨을 마신 후 호흡을 멈추며 총기의 조정간을 단발로 교체했다.
곧 무언가가 창가에 나타났다.
사람이다.
남자인지 여자인지는 모르겠지만 표적이 나타났다.
표적의 위치를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하며 엄폐를 풀고 총을 시뮬레이션 한 그 자리에 정확히 겨누었다.
찰나의 순간 창가에 비친 누군가의 몸이 경직하는 게 느껴진다.
동시에 내 총이 불을 뿜었다.
탕! 탕! 탕! 탕! 탕!
두 발이 적중했다.
초탄이 어깨를 꿰뚫었고 두 번째 탄환이 아마도 목이나 그에 준하는 치명적인 부위를 뚫고 지나갔다.
이어지는 총격이 몇 차례 있었지만 무의미한 공격이다.
내가 만든 바리케이드를 들어내고 문을 열어젖혔다.
“꺄아아아아악!”
문을 억지로 열려던 여성의 얼굴이 드러났다.
30대 후반. 아니 어쩌면 그보다 어릴 지도 모르겠다.
고생을 많이 한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 많은 시간이 얼굴에 새겨지는 법이니.
나보다 나이가 많은 건 확실하리라.
그렇게 생각하며 총을 겨누었다.
“손들어.”
여성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바닥에 총을 쏴서 그녀의 정신이 번쩍 들도록 했다.
그제야 그녀는 현실을 파악하고 목숨을 구걸했다.
“사, 살려주세요!”
중국군복을 입고 있지만 중국인도 아니고 군인도 아니다.
민간인이다.
머리에 총을 겨누고 담담하게 물었다.
“방금 한 명을 죽였다. 나머지는 몇 명이나 있지? 묻는 말에 대답해라. 10초의 시간을 주겠다.”
개머리판을 들어 때릴 수도 있다는 위협적인 포즈를 취했다.
상하관계를 확실하게 하고 내가 상대방에게 위해를 가할 수 있다는 걸 고지하는 건 전장의 심문에서 필수적인 절차다.
그런데.
“뭐라고요?!”
여성이 예상외의 반응을 보인다.
“죽었다고요?! 네?! 죽었다고요?! 그 개자식이?!”
환희다.
어찌 된 영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여성은 마음속 깊은 곳으로부터 기뻐하고 있었다.
“그 개새끼! 씨발놈! 천벌 받을 새끼!”
자기도 주체할 수 없는 환희에 취한 채 중얼거리는 그녀의 모습은 정상인에서 약간 틀어진 모양새였다.
“오세요! 이쪽이에요!”
그 여자가 나를 저격수가 있던 곳으로 안내했다.
“아주 개자식이죠. 우리를 중국군한테 팔았어요!”
횡설수설하는 여자의 말에서 나는 이 공단에 남은 민간인이 여성을 포함한 여럿이고 저격수가 그들을 억압상태에 몰아넣었다는 정보를 얻었다.
“끄르르르······.”
내가 도착했을 때 그 사내는 아직 죽지 않은 상태였다.
성대 쪽을 뚫고 총탄이 관통했고 기관지 쪽에도 탄환이 박혔다.
상처는 치명적이었지만 끔찍하게도 남성은 아직 생명줄을 붙들고 있었다.
하지만 곧 죽겠지.
내가 나타나자 그 사내는 이미 벌겋게 충혈된 눈동자를 굴려 날 바라보며 뭔가를 말하려고 했다.
그러나 구멍이 난 성대에선 피가 가래처럼 끓어오를 뿐이었다.
주변을 보았다.
간호하는 여자가 둘, 엉거주춤하게 서서 이쪽을 지켜보는 여자가 셋이다.
여성들은 중국 군복을 입은 여성과 다르게 다들 20대였다.
연령대는 20대 초반에서 중후반까지 다양했는데 모두 화장을 진하게 했고 실용적이라기보다는 노출이 있는 하늘거리는 옷들을 입고 있었다.
그 전체적인 분위기는, 이런 세상에 어울리는 단어는 아니지만 퇴폐적이었다.
곳곳에 걸려 있는 중국제 물건과 중국어 푯말, 중국군의 장비, 그리고 아까 여성에게 들은 증언 등을 취합해 이 수상한 공장의 정체를 어렵지 않게 파악했다.
죽어가는 사내를 보며 중국 군복을 입은 여자에게 물었다.
“뭐 하는 장소죠?”
여성이 대답을 우물거리자 지켜보던 젊은 여성이 팔짱을 낀 채 퉁명스럽게 말했다.
“보면 몰라? 알면서 왜 물어?”
아마 이 친구들은 매춘부일 것이다.
중국군 상대로 장사를 하는.
두 번의 혹독한 겨울과 그다지 생산적으로 보이지 않는 이 집단의 생존을 설명할 수 있는 건 그것 말고는 없다.
내가 죽인 남자는 아마도 포주였을 것이다.
“우리는 깡패들에게 잡혀 왔어요.”
중국 군복을 입은 여성의 이름은 김미영이었다.
김미영은 여전히 두려움과 흥분이 가시지 않은 얼굴로 양해를 구하더니 긴 담뱃대 비슷한 걸 꺼내 무언가를 넣고 불을 붙였다.
그제야 나는 공장 뒤편을 보았다.
덧없이 아름다운 붉은 꽃이 지천으로 피었다.
그 꽃들을 보며 물었다.
“여러 명입니까?”
“다섯 명이 있었어요.”
담뱃대의 끝자락에 붉은 불빛이 어른거렸다.
고약한 냄새가 나는 연기를 풍기며 김미영이 허공을 노려보며 피식 웃었다.
“처음엔 착한 청년 행세를 했죠.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사람이 변하더니 짐승 같은 짓을 했죠. 일행 중에 다른 남자도 있었는데 그 사람들을 먼저 죽이면서 본색을 드러냈죠.”
친족이나 혈연, 깊은 친분 없이 우연히 모인 집단은 언제나 분열 가능성이 있다.
그 분열이 단순히 조직이 찢어지는 형태에서 그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대부분은 폭력과 협박, 살인으로 얼룩졌고 패배한 집단은 승리한 집단에게 예속된다.
이 세상에선 흔한 이야기다.
유일하게 특기할 점은 그들이 중국군과 인연을 맺었다는 것이고 그 말을 듣는 다른 여성들의 표정이 싸늘하다는 것이다.
“저 가증스러운 년.”
한 여성은 아예 입밖으로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기까지 했다.
김미영은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그 사람들이 여자들을 중국인에게 팔았어요. 주변에 순찰을 오는 중국군에게 매춘을 권유했죠.”
“중국군이 이 주변에서 순찰을 옵니까?”
“네. 자주 와요. 자주 오고 우리에게 물건을 주죠.”
그녀가 자신이 입은 군복 자락을 들었다 놨다.
“나머지는 어디 있습니까? 다섯이라고 들었는데.”
“다 죽었어요.”
여성이 쓴웃음을 머금으며 공장 쪽을 돌아보았다.
“한 명은 지난 겨울에, 두 명은 자기들끼리 싸우다 죽고 한 명은 중국인에게 시비를 걸다가 목이 잘렸죠.”
“목이 잘려요?”
“모르겠어요. 군복도 안 입은 사람인데 커다란 칼? 뭐라고 하더라. 언월도? 그걸로 단칼에 그 새끼 목을 잘라버리더라고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중국에서 가장 강하다는 헌터 집단을 떠올렸다.
중국은 국제 헌터 규격에 반발하여 심사를 받지 않고 자체적인 판단 기준을 만들었다.
그 등급은 색깔로 구분되는데 열거하자면 백 – 녹 – 청 – 황 – 홍. 총 다섯 개의 등급을 가지고 있다.
이중 최고 등급인 홍(紅)급은 세계 헌터 규격의 S급에 해당되는 강자로서 한 달에 수천 명 단위로 쏟아져나오는 중국 헌터 중에서 겨우 다섯 명만이 달성한 등급이다.
중국인들은 이 다섯 명의 헌터를 오룡문(五龍門)이라고 경의를 담아 불렀다.
그중 하나가 청룡언월도를 닮은 독특하면서도 효율적이지 못한 냉병기를 쓴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래서 남은 건 제가 죽인 그 사람 뿐입니까?”
어쩌면 골드의 짝을 죽이고 무리를 쫓아낸 것이 그 친구일지도 모르겠다.
“네. 그 사람이 중국어를 제일 잘했고 중국군 비위를 제일 잘 맞췄어요. 싸움도 제일 잘하고 총질도 제일 잘하긴 했지만.”
김미영이 날 빤히 보았다.
그 표정을 본 순간 나는 귀찮은 일에 휘말려들 것 같은 강한 예감을 느꼈다.
“우리를 구해주세요.”
*
위이이이잉—
공단에서 얻은 새로운 부품이라는 젊은 장기를 이식한 나의 심장은 그간 원치 않은 휴식을 만회하려는 듯이 이전보다 더욱 힘찬 소리를 내며 내 영역에 빛과 생명력을 전파했다.
빠르게 차오르는 축전지의 전력을 보며 빙그레 웃으며 1층으로 올라왔다.
어두웠던 방공호가 빛으로 가득 차 있고 에어컨과 난방장치가 동시에 작동하며 그동안 꿉꿉했던 방공호 안의 습기를 용서 없이 몰아내고 있었다.
작전은 성공이다.
하지만 그 작전이 완벽했냐는 질문엔 글쎄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여자들은 공장에 남았다.
“여기 나가서 어디로 가라고요?”
“뭐 타고? 차 있어?”
“가다가 중국애들이 쫓아오면? 그러다 죽으면 누가 책임을 져?”
“아, 좆같은 놈이긴 해도 중국새끼들 행패 부리는 거 잘 컷 해줬는데.”
“서쪽? 그 커다란 개들 있는데를?”
“그냥 아저씨가 대신 해주면 안 돼요?”
그 여자들은 공장을 떠나려 들지 않았다.
원인을 제공한 건 여러가지 있겠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그 젊은 여성들은 김미영을 좋아하지 않았다.
“아줌마가 그랬잖아! 바깥에 나가봐야 좋을 일 없다고.”
“당신이 시작한 거 아니야? 중국애들한테 몸 팔면 목숨이나 건지고 산다고 말한 건 당신이잖아.”
“중국군 부대로 찾아간 것도 저 아줌씨지.”
“왜? 포주 노릇하다 식모살이 하니 못 견디겠어?”
“저 남자는 어디서 데리고 온 거야? 새 기둥서방?”
김미영의 평판은 죽어가는 남자보다 오히려 나빠 보였다.
끝없이 쏟아지는 날선 비판 속에서 김미영은 담뱃대에 불을 피웠다.
“지 몸 하나 간수 못하면서.”
한 여성이 경멸에 가득 찬 시선으로 노려보며 침을 뱉으며 돌아섰고 다른 여자들도 그녀의 뒤를 따랐다.
“······.”
하얀 연기를 피워올리며 공간에 정지해버린 그녀를 남겨두고 돌아섰다.
떠나가는 여성들을 따라가 그중 하나의 어깨를 붙잡았다.
“뭐요? 네? 뭐? 한 번 대 달라고?”
흥분이 남은 여성이 거칠게 반응했다.
허공을 향해 총을 쐈다.
“전부 저 방으로 들어가.”
총성은 대부분의 입을 닥치게 만드는 힘이 있다.
여성들이 차례로 방에 들어가는 걸 보고 문을 잠그고 여성들에게 물었다.
“중국군. 언제 오지? 사실대로 말해라. 말하지 않으면 불을 지를 것이고 너희들이 말한 시간과 다른 시간에 나타날 때도 불을 지를 것이다.”
불을 지를 생각도 이들을 해치고 싶은 생각도 없지만 내 안전이 우선이다.
여자들을 제압한 후 공장을 다시 수색했다.
적이 없다는 걸 알기에 속도는 자연스레 빨라졌고 곧 내가 원하는 부품을 찾을 수 있었다.
떠나기 전에 붉은 화원을 지나갔다.
붉은 화원 한 가운데에 사람이 있다.
김미영이다.
그녀는 몽롱한 눈으로 붉은 꽃이 흐드러지게 핀 화원 한 가운데 우두커니 서 있었다.
그녀를 무시하고 감금한 여자들을 풀어주었다.
잠금쇠를 풀어도 그녀들은 방 밖으로 나오려 들지 않았다.
무시하고 남자가 누워 있던 방으로 향했다.
남자는 두 눈을 부릅뜬 채 죽어 있었다.
그의 시신을 무심한 눈으로 보다가 시선을 옮겼다.
드론 조종 장치가 보인다.
눈에 익은 장치다.
중국군이 사용하던 통합 드론 조종 장치다.
군용 장비답게 재밍에 강하고 신뢰도가 높다.
불량률도 꽤 높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이 친구가 지금까지 쭉 사용할 정도면 불량품은 아니라는 이야기겠지.
부품에 더해 조종 장치를 챙기고 그가 가지고 있던 총과 탄약도 함께 챙겼다.
조종 장치의 HUD 화면엔 여전히 드론이 내가 있던 공장 상공에 떠오른 것으로 표시되어 있었다.
완벽한 드론 한 세트를 획득했다.
옥상으로 올라가 중국 주둔지 쪽을 망원경으로 관측했다.
뭔가, 규모가 커졌다.
전보다 막사의 수가 늘었고 해안가엔 부두 비슷한 무언가가 만들어졌다.
해상엔 시커먼 물체가 떠올라 있었다.
핵잠수함이다.
한국에 몇 번이고 죽음의 비를 뿌렸던.
어째서인지 핵잠수함의 측면엔 거대한 무언가가 발톱으로 할퀸 듯한 자국과 찌그러짐이 남아 있었다.
“······.”
설마.
아니겠지.
바다엔 뮤테이션이 없다.
아니, 없다고 단정할 수도 없겠지만.
떠나기 전에 다시 화원을 찾았다.
김미영을 데리고 갈 생각이다.
그녀는 여기서 더 이상 환영받지 못하는 사람으로 보이니까.
그녀의 인생을 책임져줄 건 아니겠지만 인천이나 서울 쪽에 데려다주면 그럭저럭 두 번째 삶이라는 기회를 줄 순 있겠지.
김미영은 여전히 몽롱한 얼굴로 화원 한 가운데에 유령처럼 서 있었다.
“저기.”
김미영을 불렀다.
그러나 김미영은 나의 부름에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같이 갑시다. 서울에 모셔다드릴게요.”
전쟁으로 삶의 뒤틀리긴 했지만 내 유년기 기준으로 그녀도 교복을 입고 미래를 꿈꾸던 소녀였을 것이다.
그러니까 내 누나뻘이라는 이야기다.
“바깥 사정 잘 모르시는 거 같은데, 군단파가 정권을 잡아서 안정된 상태입니다. 식량과 주거는 물론이고 직업까지 제공한다고 하니 편하진 않더라도 그럭저럭 먹고 살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그녀가 날 매섭게 돌아보았다.
“······나 데리고 살면 안 돼?”
“네?”
“혼자는 싫어. 다른 곳에 갈 용기도 없고. 그러니 같이 데리고 살아주면 안 돼?”
“제가 할 수 있는 건 안전 지역에 데려다주는 게 전부입니다.”
“그러지 말고 그쪽도 혼자 아니야? 응? 해달라는 거 다 해줄 수 있어. 응?”
“안 됩니다.”
나에게 달려드는 걸 강하게 밀치며 딱 잘라 말했다.
“왜?”
그녀가 물었다.
악에 받친 그 얼굴을 보는 순간 나는 더 이상 대화를 이어나가는 게 불필요하다고 판단했다.
무시하고 돌아섰다.
시야를 어지럽히던 붉은 꽃 한 송이가 느닷없이 시야에 들어왔다.
별 생각 없이 꽃을 꺾으며 모터사이클을 향해 걸어갔다.
뒤에서 맥없는 처량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위이이이잉—
드론을 회수하고 모터사이클에 시동을 걸었다.
중국군은 오지 않았고 올 기미도 없다.
전리품을 박스에 가지런히 정리하고 내 영역을 향해 출발했다.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 아래 펼쳐진 공단을 마지막으로 돌아보았다.
문득 생각이 들었다.
고장 난 건 나의 발전기만은 아니다.
사람의 마음도 종종 고장을 일으킨다.
남겨진 사람만의 이야기는 아니리라.
어쩌면 우리의 마음 한 구석도 예전에 고장 나 있었는지 모른다.
*
라는 내용을 페일넷에 적었다.
우리 게시판에 적을 수도 있었지만 중국인이 내 글을 볼 수도 있기에 익명성이 보다 강한 페일넷에 시험적으로 적었다.
어쩌면 폭스게임에 대한 반감과 그를 떠받드는 게시판의 분위기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일지도 모른다.
네임드 닉네임을 적지 않아서 그런지 반응이 저조했다.
조회수 9개. 댓글은 하나도 없음.
무엇보다 전체적인 조회수 자체가 적다.
아무리 사람이 많이 죽었다고 하지만 평균 조회수 100개 이상이 찍히던 게시판의 조회수가 10 언저리로 떨어질 수 있는 걸까?
다섯 번 정도 같은 글을 “썰 게시판”에 올린 끝에 비로소 댓글 하나를 받았다.
익명의 한 유저가 내게 제안을 했다.
ㅇㅇ : 어이, 그 글 여기 말고 블라인더에 올리는 건 어때?
ㅇㅇ(스켈톤아님) : 블라인더?
ㅇㅇ : 이번에 장군님이 새로 만든 익명 사이트야.
ㅇㅇ(스켈톤아님) : 거기 사람 많냐?
ㅇㅇ : ㅇㅇ
ㅇㅇ : 떠오르는 태양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