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a House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206)
아포칼립스에 집을 숨김-206화(206/466)
92. 데뷔 (2)
그 유저는 블라인더에서 유명인이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건 구석에 있는 “완전 익명” 게시판이었다.
그 게시판은 다른 게시판과 다르게 모든 사항이 블라인드 처리된다.
이해를 돕기 위해 현재 게시판 상태를 보면 아래와 같다.
아무개 : 노가다 못해먹겠다
아무개 : 뮤테이션 소 잡는 거 봤는데 정말 못 할 짓임
아무개 : 전방에 몬스터 엄청 나타난다던데 우리 안전한 거 맞냐?
아무개 : 우리는 옆 동네에 몬스터가 사는데?
아무개 : 일상게 비틱 아줌마 또 저 지랄이네
아무개 : 22222 아 그 아줌마 진짜 꼴 보기 싫어
아무개 : 대체 왜 하필이면 그 사이트를 베낀 거지? 그냥 페일넷처럼 만들면 안 됐나
…
…
거기서 나는 내가 김다람으로 추정한 유저가 “비틱 아줌마”라고 불리는 걸 알게 됐다.
단순히 사람이 이상한 걸 떠나 허구한 날 눈에 뻔히 보이는 자랑질을 하며 사람들의 염장을 지르다 보니 유저들이 붙여준 별명으로 보인다.
내 후배지만 추악하기 이를 데가 없군.
하긴 평생을 남과 비교하고 비교우위에서 행복을 느끼던 김다람다운 행실이다.
평소에 그런 파렴치한 짓을 하고 다니니 내 인터넷 기록 같은 건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겠지.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김다람(추정)이 그 게시판에서 거들먹거릴 수 있는 이유가 따로 있다.
바로, 직업이다.
내가 비바! 아포칼립스!에 가입하던 시기만 해도 우리 올드스쿨 헌터는 퇴물 취급을 받았지만 지금은 또 이야기가 달라졌다.
어웨이큰이 제주도로 떨어져 나간 지금 몬스터와 싸울 수 있는 건 우리 올드스쿨 헌터뿐.
헌터라는 이름은 예전과 같은, 아니 어쩌면 전보다 더 큰 위상을 가질 지도 모른다.
그런 헌터라는 타이틀을 떡하니 달고 글을 쓰니 뭐, 사람들의 반응을 얻는 것이겠지.
“헌터”가 아닌 “무직”이 아무리 맞는 말을 적어봐야 사람들은 클릭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
대한민국에서는 간판이 중요하다.
그 사실은 전쟁이 시작되고 3년하고도 6개월이 지난 지금 시점에도 변치 않는다.
그 간판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바로 여기에 이 박규의 성공적인 블라인더 데뷔가 달려 있다.
*
혼자 산다면 모를까, 집단에서 산다면 인맥만큼 중요한 것도 없을 것이다.
나는 군단파에서 힘 꽤나 쓰는 사람들과 나름의 인연이 있다.
그 인맥 중엔 현재 대한민국 서열 1위인 김병철 대장도 포함되어 있다.
그 사람에게 한마디만 하면 볼 것도 없다.
게임 오버다.
어쩌면 헌터가 아닌 “S급 헌터”라는 간판을 가질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그 김병철과 어떻게 연결을 할 것인가.
무전기로 연락하는 방법이 있긴 하다.
그는 나의 개인식별번호를 알고 있기도 하고.
그런데 내가 아는 건 비바! 아포칼립스! 닉네임뿐, 김병철의 개인식별번호는 알지 못한다.
김병철이 아니라더라도 다른 인맥도 있다.
바로 “비틱 아줌마” 김다람이다.
그녀와 사이가 나빠지기 전까지 내가 그녀에게 도움을 청하고 도움을 받는 건 아주 익숙한 일이다.
김병철과 다르게 김다람은 무전기로 다이렉트로 연락할 수도 있다.
그런데, 자존심의 문제라고 할까.
비틱 아줌마한테 도움을 받고 싶진 않다.
그녀와는 선을 긋고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는 마음이 어느새 내 마음속 깊이 뿌리를 내렸다.
뭐, 다른 방법이 없으면 김다람에게 헬프를 칠 수도 있겠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최후의 방법으로 남겨두도록 하자.
마지막 방법은 “인맥”이 아닌 “자력”으로 타이틀을 취득하는 것이다.
다만 그 방법은 정상적인 방법은 아니다.
소위 말하는 어둠의 방식이다.
ㅇㅇ : 블라인더 계정 판매
ㅇㅇ : 블라인더 계정 팔아여~
ㅇㅇ : 직장 있는 블라인더 계정 판다.
ㅇㅇ : 곧 페일넷 망하니 블라인더 이사가자! 직장 있는 블라인더 계정 절찬 판매
ㅇㅇ : 전문직 포함 블라인더 계정 판매(네고 가능)
…
…
페일넷의 어두운 모처엔 블라인더 계정을 파는 게시판이 존재한다.
과거에 비바! 아포칼립스! 계정과 장비도 거래한 곳이니 블라인더 계정 정도를 파는 건 무리도 아니겠지.
이 어둠의 게시판에서는 약간의 물질적인 대가를 제공하는 것으로 원하는 계정을 구입할 수 있다고 한다.
김병철과 김다람의 손을 빌리지 않는 “깔끔한” 방법이다.
가장 큰 단점은 번거로움이다.
계정 거래를 하기 위해서는 인천이나 서울 혹은 내가 가보지 못한 춘천이나 원주 같은 군단파 장악지대로 가야 한다는 소리다.
이 3가지 선택지 중에 내가 고른 건 김병철이다.
SKELTON : 저, 기억하시죠?
armeegruppe_B.
김병철로 추정되는 비바! 아포칼립스! 계정에 메세지를 보냈다.
인터넷에서는 초면이지만 그는 나의 K-워키토키 개인식별번호를 잘 알고 그걸 토대로 내가 인터넷을 하지 않냐고 되묻기까지 했다.
김병철은 날 알아볼 것이다.
어쩌면 반가워할 지도 모르지.
그럴 만 한 공을 세웠으니까.
총기 손질을 하며 답장이 오기를 기다렸다.
곧 메시지가 도착했다.
armeegruppe_B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누구?
“음?”
나 아는 거 아니었나.
의아함을 느끼며 답장을 보냈다.
SKELTON : 저 박규입니다. 전에 국회의사당 쪽에서 김다람과 함께 활동하던.
armeegruppe_B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엥
armeegruppe_B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누구? 혹시 아까 게임에서 친추한 사람?
“뭐지?”
타닥타닥
SKELTON : 김병철 장군님 아니십니까?
armeegruppe_B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딸인데여.
딸이었나.
armeegruppe_B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그러고 보니 인기글에 있는 이상한 분이시네?
SKELTON : (스켈톤 당혹)
armeegruppe_B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예림이 식은땀) 아빠 아시는 거 같은데 무슨 일이에요? 오면 말씀 전해 드릴 게여.
SKELTON : 아니. 괜찮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암초를 만났다.
갑자기 김병철 대장 딸이 나오다니.
게임 이야기가 나온 거 보면 폭스게임이 만든 더 사가 때문인가.
하긴, 블라인더는 페일넷, 비바! 아포칼립스!와 독립된 사이트니 “더 사가”를 플레이할 순 없겠지.
이렇게 된 이상 김병철을 통해 직업을 바꾸는 방법은 포기하는 게 좋겠다.
먼저 연락이 온다면 모를까, 다시 부탁하는 것도 모양새가 썩 좋지 않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김다람에게 도움을 청하고 싶진 않다.
이건 내 자존심의 문제다.
아무리 이 스켈톤이 바닥에 떨어져도 “비틱 아줌마”와 손을 잡는 건 아니지 않을까?
“···후우.”
인기글이나 보자.
아까 김병철 딸이 인기글 운운했는데 그게 나와 관련이 된 것 같다.
냉수를 마시며 인기글 탭으로 들어가자 바로 눈에 띄는 글 하나가 보인다.
mmmmmmmmm : (충격) 이 새끼 여기서 뭐하냐?
“?”
클릭해보았다.
그러자 m9가 화면을 컴퓨터로 찍은 스크린샷 화면이 내 눈앞을 덮어나갔다.
스크린샷의 중앙에서 아주 익숙한 이름을 볼 수 있었다.
무직 / 스** : (스켈톤) 모두 안녕?
무직 / 스** : (스켈톤) 비바! 아포칼립스! 유일 완장 스켈톤 – 블라인더에 드디어 상륙!
틀림없다.
내가 블라인더에 적은 글이다.
그 글을 m9가 직접 캡쳐해서 스크린샷으로 저장한 모양이다.
그런데 대체 왜 이런 걸 찍어 올린 거지?
등줄기에 식은땀이 흐르는 걸 느끼며 댓글을 보았다.
ㅇㅇ : ㅋ
익명458 : 아니, 뭐 하는 거야. 저 새끼는!
익명1423 : 댓글 하나도 안 달린 게 킬포인트네.
keystone : 애잔하다 정말
Defender : 뭐야.
Berkut_break : 그야말로 비바! 아포칼립스!의 수치군
gijayangban : ?
…
…
“민희?!”
아니, 지금은 우민희가 문제가 아니지.
m9놈이 나를 조리돌림하고 있다!
내가 블라인더에서 새 출발 하려는 걸 스크린샷으로 찍어서 그걸 우리 게시판에 고나리질 한 것이다.
즉시 m9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SKELTON : 야.
mmmmmmmmm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캡틴 엠나인 스피킹!
SKELTON : 너 이 새끼 대체 무슨 짓을 하는 거냐?
mmmmmmmmm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뭐긴 뭐야. 니 놈 하는 짓거리가 웃기니까 찍어 본 거지.
SKELTON : 좋은 말 할 때 글 내려 ^^
mmmmmmmmm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뉘예뉘에~ 알겠쯉니다~ ㅋ
당연한 일이지만 m9는 그 글을 내리지 않았고 이 박규는 원치 않는 형태로 게시판에 큰 웃음을 주었다.
“······.”
이야기는 이렇게 일단락 될 수도 있었다.
어떻게 보면 교훈적인 이야기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박규는 그리 물렁한 사람도, 교훈을 주는 사람도 아니다.
*
ㅇㅇ : 블라인더 계정 삽니다.
페일넷.
어둠의 게시판에 구매글을 올렸다.
곧 판매자가 내게 접촉을 해왔다.
ㅇㅇ : 탄환, 주류, 의약품, 담배 등등 의복은 상태가 좋은 것에 한해서 매입하긴 하는데 추천하지 않음.
판매자는 자신이 원하는 걸 이야기했다.
ㅇㅇ : 탄환 5.56mm.
ㅇㅇ : 나토탄 ㅇㅋ
ㅇㅇ : 몇 발?
ㅇㅇ : 탄창 하나
이 바닥의 대화는 단문으로 이루어진다.
굳이 존대를 할 필요도 없고 중요한 건 서로의 이해가 합치되는 것 뿐이니까.
몇 명의 판매자를 상대로 거래를 시도했고 곧 거래가 성사됐다.
ㅇㅇ : 15발?
ㅇㅇ : 10발.
ㅇㅇ : 콜.
ㅇㅇ : 가산디지털밸리 드림팩토리 318호.
가산?
서울인가.
딱히 먼 길은 아니다.
군단파의 집권으로 치안이 좋아진 현재 상황도 나의 외유에 힘을 실어다 주는 중요한 근거 중 하나다.
이참에 군단파가 얼마나 잘하는지 눈으로 봐두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출발하기 전에 우민희에게 연락을 취해보았다.
지지지직–
노이즈가 심하다.
중간에 방해전파라도 있는 걸까.
노이즈에도 불구하고 전파는 나와 나의 후배를 다시 한번 연결해주었다.
“어, 선배?”
우민희다.
목소리를 들어보니 여전하다.
그럭저럭 잘 버티고 있다는 이야기겠지.
하긴 내 후배다.
우리 학교 출신이다.
가슴이 벅차는 걸 숨기며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어, 그래. 민희. 인터넷에서 너 봐서 연락을 해봤어.”
“아, 그거. 선배는 왜 자꾸 이상한 짓만 하지? 인터넷 중독까진 이해하는데 혹시 인터넷에서 욕 먹는 거 즐기는 거 아니야?”
“그건 아니고. 별일은 없지?”
“어, 오늘은 없을 거 같네. 그나저나 연락된 김에 선배.”
“응.”
“물자지원 좀 가능해? 나름 챙긴다고 챙겼는데 슬슬 부족해지네. 제주도 쪽에서 보급을 해주겠다고 큰 소리를 쳤는데 보급은 개뿔. 연락도 안 닿아.”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거라면 도와주지.”
“좋아. 다음에 필요한 게 있으면 연락할게. 선배.”
우민희가 급하게 연락을 끊었다.
연락이 끊기기 전에 총성 같은 게 들렸던 것 같다.
전투라도 벌어진 걸까.
나름 안정이 됐다고 해도 균열지대다.
거기다 우민희는 군단파에겐 적대세력.
언제 무슨 일이 터지더라도 이상하지 않다.
아무튼, 우민희가 무사하다는 것만으로 블라인더와 m9에게 받은 수모가 어느 정도 중화되는 느낌이다.
우민희와 교신을 끝낸 직후 서울로 출발했다.
여행 자체는 상쾌했다.
약탈자도, 매복자도 없고 군단파 장악지대에 들어가자 드론을 비롯한 군단파의 정찰 자원이 날 반겼다.
“정지. 정지. 누구냐?”
드론이 날 따라와 스피커로 신원을 물었다.
“민간인입니다. 서울에는 지인을 만나려 합니다.”
“목적지와 체류기간.”
“가산 쪽으로 갈 생각이고 체류하지 않고 바로 떠날 생각입니다.”
가산 쪽으로 가자 수많은 군인과 사람들이 보였다.
듣기로는 피난민 수송은 기차로 한다고 들었는데 과연 철로 쪽에 플랫폼이 설치되어 있고 여러 대의 지게차와 지게꾼이 분주하게 오가며 물자를 나르고 있었다.
확실히 다르다.
인천 – 서울 정부와는.
김병철에 대한 좋은 평가가 괜히 나오는 건 아닌 것 같다.
실로 오랜만에 보는 활기찬 거리를 지나 접속 장소로 향했다.
접선 장소는 소위 아파트형 공장이라 불리는 곳이었다.
다른 건물과 다르게 전쟁이 할퀴고 간 상처가 뚜렷했지만 그렇기에 불법 계정 매매꾼들이 똬리를 틀 수 있었겠지.
약속한 장소에 가서 문을 두드렸다.
문이 열리고 왜소한 체구의 사내 하나, 얼굴에 화상 자국이 있는 키 큰 사내 하나가 나타났다.
서로 간단하게 탐색을 하고 거래에 들어갔다.
“여기. 탄창입니다. 10발. 확인해보시죠.”
키 큰 사내가 탄환 숫자를 확인하고는 왜소한 체구의 사내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네. 그럼 지금 계정을 만들어드릴게요.”
그가 컴퓨터 앞에 앉았다.
그가 사용하는 컴퓨터는 컴퓨터라기보다는 고철덩어리에 가까웠다.
아마 직접 부품을 주워 제작한 것으로 보인다.
그가 내게 화면을 보여주었다.
“직업은 어떤 것으로 하실 건가요?”
직업이라.
이미 정해둔 게 있다.
“헌터.”
두 사내가 동시에 놀란 눈으로 날 돌아보았다.
“헌터요?”
키 큰 사내가 머리를 긁적이며 중얼거렸다.
“전문직은 쪼까 위험할낀데.”
그는 동남쪽 방언을 사용했다.
“이 친구 말 그대롭니다. 선생님. 전문직은 숫자가 적어요. 금방 뽀록이 난다는 이야기죠. 적당히 가오 상하지 않고 사람도 많이 다니는 직장으로 하시죠.”
“어디요?”
“창수푸드나 삼건토건 같은 곳. 경리단도 나쁘지 않겠네요. 어디어디 집단농장이나 공장 보다는 낫지 않겠어요?”
“······흐음.”
내키진 않지만 이 친구들의 말도 일리가 있다.
안 그래도 좁아진 세상, 몇 없는 직업을 대면 쉽게 들통이 나겠지.
하지만 겨우 평범한 직장 코스프레 하자고 여기까지 온 건 아니다.
순간 벽에 걸린 하얀 가운이 내 눈길을 사로 잡았다.
뭔가 머릿속에서 번득였다.
“의사.”
의사가 좋겠다.
“의사로 합시다.”
“의대 나오셨어요?”
“아니오.”
두 사내가 어이없다는 얼굴로 날 보았다.
“그냥 헌터를 하시는 게······.”
“의사로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