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a House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212)
아포칼립스에 집을 숨김-212화(212/466)
93. 제주에서 온 남자 (5)
끼익-
문이 열렸다.
총기는 들지 않았다.
손에 쥔 건 도끼 두 자루.
뒤에서 다수의 발소리가 들려왔고 이윽고 등 뒤를 좇는 수많은 시선이 느껴졌다.
작고 폐쇄된 시설에서는 소문이 빠르게 퍼지는 법이다.
재미가 결핍된 이 콘크리트 시설 안에서는 비밀이라는 게 없겠지.
마치 한겨울 텅 빈 방 안에의 중얼거림이 구석진 곳까지 또렷하게 퍼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관중은 뒤편 창살 너머에만 있는 건 아니다.
15층 높이의 육각으로 둘러싼 벽 위에 단정한 제복을 입은 아이들이 낙하의 공포도 잊은 채 나란히 서서 이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서둘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끼를 쥐고 발걸음을 옮겼다.
“그만!!!!!!”
확성기 소리가 들려왔다.
정호경이다.
왜애애애앵—-
그는 사이렌까지 울려가며 나를 막으려 들었다.
느릿한 전진은 빠른 걸음으로, 빠른 걸음은 구보로 바뀌었다.
몬스터가 날 의식했다.
마치 죽은 것처럼 꼼짝도 하지 않던 그것은 나를 향해 둥그스름한 몸을 돌려 머리로 보이는 돌출부를 나에게 향했다.
곧 그것이 몸을 일으켰다.
마치 거대한 솥뚜껑을 일으켜 세운 것처럼 꽉찬 회백색 덩어리가 내 시선 전체를 가로 막는다.
과거의 헌터들은 이 모습만을 보고 공포에 질려 총격을 가했고 그들이 쏜 탄환을 맞고 절명했다.
반사 역장이라는 존재는 그 뒤로도 수십 명의 인명을 빼앗은 끝에 알려졌다.
그 전 시대의 헌터들을 나는 부정할 생각이 없다.
그들이 남긴 경험과 기록이 있었기에 우리는 좀 더 잘 준비된 상태에서 몬스터와 맞설 수 있었다.
“돌아가라고!!!!”
그 점에서 나는 과거를 부정하는 정호경과는 다르다.
“······.”
전력으로 질주하며 시야를 가린 역광을 받아 검정으로 보이는 거체를 노려본다.
놈이 당장이라도 몸을 떨궈 나를 압사시킬 것 같은 위협을 가하지만 내 다리는 멈추지 않는다.
번쩍 들린 몬스터의 육중한 몸이 낙하를 시작했다.
마치 무거운 책으로 벌레를 때려잡는 것처럼 그것이 내려앉는다.
“꺄아아아아악!!!”
비명이 들려온다.
뒤에서도 위에서도.
시커먼 어둠이 날 덮어가는 걸 느끼며 측면으로 꺾음과 동시에 몸을 날렸다.
쿵!
지축이 흔들릴 정도의 충격과 함께 몬스터의 몸체가 지면을 강타했다.
자욱한 흙먼지가 피어오르는 가운데 몬스터가 다시 몸을 일으키려 든다.
하지만.
쩍!
나는 이미 놈의 몸 위에 올라탔다.
놈의 기울기가 직각을 향해 나아가는 동안 내 도끼는 쉬지 않았다.
쩍!
쩍!
빠각!
사냥이라기보다는 벌목에 가까운 작업.
기울기가 점차 커지며 내 몸이 중력에 의해 미끄러질 즈음 변화가 일어났다.
몬스터의 움직임이 정지했다.
동시에 도끼로 찍어 낸 살점의 일부가 빛으로 화하는 게 보인다.
두 자루의 도끼를 가볍게 돌려 하네스에 장착된 도끼집에 수납한 후 무너지는 몬스터의 몸통을 타고 지면에 안착했다.
쿵!
재차 몬스터의 몸이 지면에 내려앉았고 녀석의 몸은 곧 빛의 입자로 환원되기 시작했다.
몸을 돌려 뒤를 보았다.
고요한 정적이 날 맞이했고 곧 때 묻지 않은 환호가 날 반겼다.
“우와아아아!!”
“봤어?!”
“와아아아아!!!”
육각형의 벽면을 울리는 열띤 메아리 속에서 나는 아이들 곁에 서 있는 벽 위의 남자를 가만히 올려다보았다.
“······.”
그 남자, 정호경은 말없이 날 내려보다 확성기를 든 채 몸을 돌려 시야의 사각으로 사라졌다.
“박선생님!”
홍종범이 아이들과 함께 창살을 열고 뛰쳐 나왔다.
“그냥 뭐. 할 말이 없네요. 이렇게 강했어요?”
“······시체나 치우자.”
목초지 한 곳에 뒤집힌 채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 젖소의 사체를 응시했다.
“수레하고 호스 좀 가지고 와라.”
“잠깐만요.”
홍종범이 마치 불타는 것처럼 빛의 입자로 변하며 흩어지는 몬스터의 시체를 향해 걸어갔다.
“?”
그만이 아니다.
다른 소년과 소녀들도 홍종범의 뒤를 따라 몬스터 앞으로 가더니 나란히 고개를 숙이고 합장을 하거나 묵념을 했다.
“뭐 하는 거냐?”
홍종범이 답했다.
“기도요.”
“몬스터에게 기도를 하는 거냐?”
우리 종범이.
설마 광신도는 아니겠지?
“아니오.”
다행이다.
“그럼 누구한테 기도를 하는 거냐?”
“친구요.”
홍종범은 쓸쓸한 미소를 머금었다.
“친구?”
“네. 여기 있는 아이가 사라지면······.”
그는 자신 옆에서 열심히 기도하는 이제 중학교 저학년으로밖에 안 되어 보이는 사내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슬픈 눈으로 흩어지는 빛의 입자를 응시했다.
“······사라진 곳에 몬스터가 나타나요.”
*
정호경과 나의 대립은 어쩌면 처음부터 예견된 일일지도 몰랐다.
그는 내 콜사인을 듣고도 짐짓 모른 척했지만 실제로는 신경쇠약에 걸릴 정도로 내 이름을 강하게 의식했다.
그래서 나에게 부당한 대접을 하고 어떻게든 나라는 사람을 별 것 아닌 사람으로 만들려고 노력했다.
그 사실을 내게 알려준 건 자취를 감추고 있던 등대의 또 다른 어른들이었다.
“역시 올드스쿨 헌터가 진짜 헌터지. 오랜만에 보니 전율이 돋는군.”
“정위원. 자기 입으로 8레벨 어웨이큰이라고 떠들고 다니는데 그 사람이 파동을 일으킨 거 본 사람 단 한 명도 없어.”
“그 인간. 당신이 오기도 전부터 비 맞은 중마냥 프로페서 프로페서 중얼거리며 서성거리더라고. 당신에게 밑 보이는 게 죽기보다 싫었겠지.”
기지 경비, 의료, 급양 등 잡다한 일을 떠맡은 그들은 전부 제주도에서 왔고 나보다 훨씬 더 정호경을 혐오했다.
그렇게 싫어하는 인간을 왜 따라왔냐고 물었다.
“정호경 밑에 있으면 당연히 출세할 거 같아서 따라온 거지.”
“정호경은 항상 승승장구했거든. 겨우 스물두 살에 서기관급 대우로 공직에 올랐어. 4급이야. 4급. 별정직 이딴 것도 아니고. 좆빠지게 공부해야 하는 행정고시가 5급이라고.”
“사람이 항상 운이 있을 수가 없는데 우리도 따지고 보면 지나치게 과투자를 한 거지.”
“당신이 고쳐준 건 좀 그래. 불편한 상태 그대로 있어야 정호경이 포기하고 제주도로 갈 건데 말이야.”
등대에 남겨진 이 어른들의 소망은 오직 그들이 있던 제주도로 돌아가는 것이다.
어른들을 뒤로 하고 정호경의 방으로 향했다.
여전히 그의 방은 비좁고 후덥지근하고 체취로 가득 차 있었다.
정호경은 아예 민소매 런닝셔츠만을 걸친 채 땀을 뻘뻘 흘린 채 작은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박규씨.”
그가 내게 뭔가를 내밀었다.
보고서다.
“이게 지금까지 제가 여기서 행했던 개성 등대의 활동이력입니다. 이걸 보면 우리가 어떻게 몬스터를 유인했는지도 알 수 있겠죠.”
마지막 자존심인가.
그는 목초지에 있던 일을 단 한마디도 꺼내지 않았다.
대신 그는 내게 한 가지 요구를 해왔다.
“곧 우소장 쪽에서 헬기가 올 겁니다.”
“그래요?”
“그걸 타고 여기를 떠나주시길 바랍니다. 이건 부탁이 아닌, 개성 등대 책임자로서의 명령입니다.”
“한 가지 물읍시다.”
가만히 정호경의 눈을 응시했다.
시선이 마주치자 그의 몸이 가볍게 떠는 게 보였다.
“아이들이 말하길 이상한 일이 일어난다고 하던데.”
“무슨 일요?”
“아이들이 사라진 곳에 몬스터가 나타난다는.”
그 말을 들은 정호경은 알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씨익 웃었다.
“사람이 몬스터로 변한다는 헛소리를 믿는 건 아니겠지요?”
“당연히 믿지 않죠.”
“······아이들이 사라지는 건 사실입니다.”
정호경이 한숨을 내쉬며 괴로운 표정을 하며 머리를 신경질적으로 긁적였다
“침식지대가 일으키는 정신 이상 현상이 아이들에게도 일어나는 겁니다. 아시다시피 어떤 사람이 침식지대에 오래 노출되면 마치 치매에 걸린 것처럼 사리판단에 문제가 생기고 갑자기 사라지는 일이 비일비재하죠.”
“여기서도 그런 일이 있었던 모양이네요.”
“어른도 버티기 어려운 곳에 아이들이 어떻게 버티겠습니까? 하지만 최선을 다해 관리하는 건 사실입니다.”
정호경이 자리에서 일어나 내게 목례했다.
“아무튼, 목초지 탈환. 감사드립니다.”
처음 내게 했던 90도 인사보다 각도도 덜 숙였고 목만 가볍게 끄덕일 정도였지만 적어도 나는 지난번 감사보다 비할 바 없는 진정성을 느꼈다.
*
<우유 배급은 한 달 뒤부터!>
– 젖소도 몸조리를 해야 해요~
목초지를 찾았다고 바로 우유를 먹을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갈비뼈가 드러날 정도로 삐쩍 말랐으니 젖이 나올 리가 만무하겠지.
하지만 그 한 달의 기다림조차 이 아무것도 없는 버려진 건물의 아이들에겐 더할 나위 없이 즐거운 것이었다.
“한 달 뒤면 드디어 신선한 소젖을 먹을 수 있겠네.”
“우유라잖아. 촌스럽게 소젖이 뭐야. 아직도 주체사상 그딴 거나 믿냐?”
“난 소젖이 좋은걸. 그렇게 남한이 좋으면 남한에 가지그래.”
“보내줘야 가지.”
오늘도 식사로 나온 건 밀가루 떡이 전부였지만 식당의 분위기는 기대에 차 있었다.
가장 큰 변화는 날 대하는 아이들의 태도다.
“그쪽은 대체 뭘 했길래 싸움을 잘합니까?”
“판가리싸움터에 있었습니까?”
“아주 멋져요! 대체 뭐였습니까? 혹시 그 학교에서 가르치던 구식 헌터였습니까? 그······ 올드보이 헌터?”
고작 몬스터 하나 잡았을 뿐인데 마치 어린이 프로에 나오는 히어로 비슷한 취급을 한다.
“현역 시절에 활동을 했었지. 나도 한 가닥 했지만 스켈톤이라 불리는 위대한 남자가 있었지······.”
적당히 상대를 해주고 복도를 나서자 못 보던 아이들이 있었다.
단정한 제복을 입은, 남한의 아이들이었다.
이 어린 친구들은 내게 볼 일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이 귀한 몸은 이미 매니저가 있다.
“어허. 모란동 간나들이 무슨 염치로 우리 박선생님을 뵈러 오셨나? 그 정간나가 너희들의 선생님 아니었냐?”
처음엔 반말을 찍찍 내뱉었지만 어느새 조수에서 이제는 담당 매니저로 격상한 홍종범이 내 옆에서 으스대며 모란동 아이들을 도발했다.
나야 뭐, 아이들을 좋아하진 않지만 팬서비스 하나만은 투철한 사람이기에 직접 여기까지 온 모란동 아이들에게 부드럽게 내일을 기약했다.
“내일, 점심에 시간 나면 목초지로 와라. 할 일이 있으니까.”
“네!”
모란동 아이들은 환하게 웃으며 돌아갔다.
그러자 홍종범이 바로 툴툴거린다.
“박선생님. 이러는 거 어디 있습니까? 선생님 정간나한테 무시당할 때 우리가 옆에서 업어주고 도와주고 다 했는데!”
솔직하게 홍종범은 미형이 아니다.
나이만 어리다 뿐이지 멀대같이 큰 키에 툭 튀어나온 광대뼈, 학구적으로 생긴 외모는 도저히 소년의 것이라고 볼 수 없는 관록을 풍기고 있으니까.
방금 사라진 똘똘하고 귀엽게 생긴 녀석에 비하면 아저씨다.
그래도 홍종범이 이 박규의 제1 추종자라는 건 나도 인정하는 바다.
“이걸 주마.”
가지고 온 소지품 중에서 탄환 한 발을 꺼내 그에게 내밀었다.
5.56mm. 이른바 나토탄이다.
단순한 총알이지만 거기에 사인펜으로 내 콜사인을 적어 넣었다.
< Professor >
이것만으로 이 총알은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프로페서. 현역 시절 내 콜사인이다.”
183cm, 거의 내 키와 비슷한 큰 키를 가진 홍종범은 그 조잡한 선물을 받고 마치 열 살 짜리 아이처럼 환하게 웃었다.
“고맙습니다. 박선생님. 아니, 프로페서!”
홍종범을 보내고 정호경에 제공한 활동기록을 읽었다.
고요한 밤, 스탠드 불빛에 의지하여 나는 이 등대의 기록을 눈으로 음미하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흠.”
상당히 그럴듯하고 실제로 효과도 확실했다.
지난가을부터 현재까지 개성 등대는 무려 1년 간 수도권에 진주할 수 있었던 몬스터의 발목을 잡아두고 있었다.
하지만 이 등대의 운명이 암울한 건 부정할 수 없다.
그 문제는 인간이 영원히 타오르는 불꽃을 손에 쥘 순 없다는 숙명과 맞닿아 있다.
*
“헉!”
식은 땀을 흘리며 침대에서 깼다.
“······.”
인터넷 금단증상이다.
거의 일주일 동안 못 했다.
이제는 김다람의 분노도 아니, 기억도 사라졌을 것이고 슬그머니 돌아와 활동을 해도 괜찮은 시기다.
무엇보다 풀 “썰”이 너무 많다.
블라인더 같은 쓰레기 사이트가 아닌 정통 비바! 아포칼립스!에서 풀 고급지고 격조 높은 주력 컨텐츠 “스켈톤의 썰 시리즈”를 연재할 때가 된 것이다.
“언제 옵니까? 아, 3일 뒤요? 좀 더 빨리 올 순 없습니까? 아니, 이 지역에 오래 있으니 뭔가 정신이 몽롱해지고······ 어우. 지금도 뭔가 아찔하네······.”
K-워키토키로 라이트닝에게 연락, 빨리 나를 여기서 빼내 달라는 시위를 하고 식당에 갔다.
메뉴를 보니 입맛이 싹 사라진다.
조용히 발길을 돌려 내 방에 들어가 봇짐에 숨겨 놓은 미군 전투 식량을 꺼냈다.
< MRE – 09 >
레베카와 스우의 선물.
솔직히 맛있다고는 할 수 없는 물건이지만 설익은 밀가루 떡과는 비교를 불허한다.
조용히 등을 돌린 채 포장을 뜯고 찬합에 내용물을 넣어 안에 든 소고기 비슷한 게 든 스튜를 숟가락으로 퍼먹고 있을 때였다.
똑똑-
누군가 노크를 한다.
“?!”
이거 어떻게 해야 하나.
대답을 해야 할까?
내가 주저하는 건 내가 전투식량을 먹는 건 자유지만 이 전투식량을 혼자 먹는 걸 남에게 보여서는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똑똑-
다시 노크 소리.
뭐라도 말을 하자.
“아-”
그런데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문이 열렸다.
“박규씨?!”
정호경의 목소리다.
“······.”
등을 돌린 채 미동도 하지 않았고 대답도 하지 않았다.
불편한 침묵 속에서 정호경의 코가 킁킁거렸다.
“어, 음······. 다름은 아니고요. 몬스터 경보입니다. 파주에서 몬스터가 분출될 것 같다는 예보가 왔어요. 분출이 시작되면 등대의 불을 밝힐 겁니다.”
“······.”
“보고 싶어 하던 장면이니 알려드리려고요······.”
정호경이 자리를 떠났다.
조용히 문까지 닫는 걸 보면 대한민국 고위직에 올라갈 만한 눈치의 소유자인 건 확실하다.
빠르게 남은 걸 비우고 목초지로 나갔다.
목초지엔 남한 쪽 아이와 북한 쪽 아이들이 각각 거리를 둔 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들에게 다가가 물었다.
“등대를 밝힌다며?”
“네!”
아이들이 답했다.
“아마 내일? 늦어도 모레 오후부터 시작될 거 같네요.”
“그래?”
운이 좋다.
이 개성 등대가 등불을 밝히는 걸 보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으니.
내 호기심을 충족하는 건 물론이거니와 스켈톤의 “썰”이 더욱 큰 생명력을 얻게 된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작은 문제 하나.
내 1호 추종자, 홍종범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