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a House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213)
아포칼립스에 집을 숨김-213화(213/466)
93. 제주에서 온 남자 (6)
침식지대에서 미쳐버리는 사람들의 형태는 대동소이하다.
말이 없어지고 기력이 없어지고 그 자리에 굳은 채 식물처럼 한 곳을 흐릿한 눈으로 보다가 어느 날 갑자기 모습을 감춘다.
침식의 광기에 미쳐 사라진 사람들이 어디로 가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어떤 사람들은 그들이 마치 코끼리처럼 죽을 자리를 찾아 아무도 없는 곳을 향해 떠난다고 말하고 어떤 사람은 그들을 타락시킨 더 깊은 침식지대를 향해 떠난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내가 직접 확인한 바에 의하면 침식에 버티지 못한 사람들은 글자 그대로 소멸한다.
한때 일부 종말론자들이 주장했던 “휴거” 마냥 인간이 알지 못하는 원리에 의해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사라지는 것이다.
이는 나와 나의 팀이 중국에서 보았던 수많은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고립된 고층 건물에 있던, 침식에 패배한 사람이 소멸한 사건이다.
김다람이 오열하는 중국인 남성의 말을 듣고 그가 경험한 아내의 기묘한 실종을 내게 이야기 해주었다.
“어제까지 집 안에 있었대. 엘레베이터는 고장이 났고 비상계단을 바리케이트로 쌓아 무너진 천장의 사다리를 타고 가는 것 말고는 위아래로 갈 방법이 없는 곳이었어. 그 사다리는 필요한 경우에만 설치해. 그런데 그 사다리가 없는 23층 높이에 있던 사람이 없어졌다고 하더라고. 떨어지진 않았나 주변을 살폈지만 그런 것도 없었다고.”
사슬에 묶은 사람이 연기처럼 사라진 것처럼 극적이진 않지만 그 이야기는 침식의 광기에 미친 사람들이 소멸한다고 생각하기에 충분한 개연성을 가지고 있다.
그 침식의 사도인 몬스터부터가 시체를 남기지 않는 족속이라는 걸 감안해보면 밀어 볼 만한 주장일 것이다.
홍종범은 처음 내가 우민희의 방에서 보았던 것과 같은 디자인의 감옥 같은 방에 있었다.
나를 열렬히 추종했던 소년은 빛바랜 누런 러닝셔츠에 사각팬티만을 입은 채 후덥지근하고 밀폐한 방의 책상 앞에 앉은 채 텅 빈 눈으로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종범아.”
그의 이름을 불렀다.
대답하지 않았다.
두 번은 부르지 않았다.
사실 한 번을 부른 것도 나하고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일이다.
처음 그 모습을 본 순간 나는 홍종범이 이계의 광기에 마음을 빼앗긴 걸 알아차렸으니까.
“언제부터 저랬지?”
함께 한 여자아이에게 물었다.
“아마 오늘 아침부터 저랬어요. 어제저녁은 아닐 거예요. 신이 나서 떠들고 다니며 자랑하고 돌아다녔거든요.”
그 홍종범의 목엔 직접 만든 조잡한 목걸이가 걸려 있었다.
군번줄과 같은 소재의 줄에 탄환 하나가 구멍이 뚫린 채 걸려 있었다.
그 탄환엔 “PROFESSOR”라는 내가 직접 적은 글씨가 적혀 있다.
“······.”
뒤돌아섰다.
아이들이 놀란 얼굴로 바라보았다.
“그, 그냥 가시는 거예요?”
고개를 끄덕였다.
더는 방법이 없다.
침식에 패배한 자들은 돌릴 방법도 치료하는 방법도 없다.
중국 최고 권력자의 아들조차 치료하지 못하는 마당에 누가 침식의 광기에 물든 자를 치료할 수 있을까?
복도로 나가자 정호경이 이쪽으로 다가오는 게 보인다.
그는 나와 눈인사를 한 후 홍종범의 방으로 들어갔다.
열린 문 너머로 정호경의 애절한 말소리가 들려왔다.
“종범아. 종범아! 정신 차려! 너 그거밖에 안 되는 놈이야?! 여기서 경력을 쌓고 제주로 가서 학자가 되겠다며! 제일 키도 크고 덩치도 큰 네가 이렇게 무너지면 다른 애들은 어떻게 하라고! 일어나! 종범아!”
어째서인지 복도 너머로 서서히 멀어지는 정호경의 목소리엔 자극적이면서도 신파적인 감정이 강하게 묻어 나왔다.
“이런 일. 자주 일어나냐?”
어깨를 나란히 하며 걷고 있는 말쑥한 옷을 입은 아이에게 물었다.
출신이 달라서일까, 그 아이는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네. 분출 시즌엔 자주 있는 일이에요.”
*
두 가지 이벤트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
하나는 곧 있을 등대의 불을 밝히는 이벤트고 다른 하나는 내가 이곳을 떠나는 이벤트다.
달그락- 달그락-
오늘 식당엔 말소리를 찾기가 어렵다.
식기를 움직이고 음식을 씹고 맛보는 소리만 들릴 뿐이다.
특식이 나왔다.
그 특식은 내가 헬기를 타고 지게차를 통해 하역한 품목과 일치했다.
“자, 배불리 먹어라. 모자란 게 있으면 말하고!”
정호경은 직접 국자를 들고 아이들에게 듬뿍 모처럼의 정찬을 아낌없이 퍼주었다.
“중요한 건 기합이다! 균열에 지면 안 돼! 강한민과 나혜인이 이끄는 원정대가 거의 균열을 닫았어! 앞으로 조금만 버티면 돼! 균열이 닫히면 그들이 이제 서울로 올 거야! 그때까지면 버티면 돼! 정신 줄 꽉 잡고 엄마 아빠를 생각해! 엄마 아빠 없으면 형제자매, 그것도 없으면 내일 먹을 특식을 생각하라고!”
특유의 감정 과잉과 오버액션을 드러내며 정호경은 아이들의 전의를 고양시키려 들었다.
듣는 아이들의 표정이 시큰둥한 걸 보니 별 효과는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적어도 그가 이 등대와 자신의 운명을 동일시 한 건 확실해 보인다.
“······.”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이고 친해질 생각도 없지만 그의 장점을 깎아내릴 생각은 없다.
식사가 끝난 후 정호경은 등대의 인원을 벽 위로 집합시켰다.
그동안 코빼기도 안 보이던 1개 소대분의 병사들이 외벽으로 향해 아래를 경계했다.
나도 외벽으로 가서 아래를 보았는데 낯익은 놈이 있다.
캐터필러 한 무리가 좀비 떼와 섞여 오르지 못할 벽을 오르려고 안간힘을 쓰는 게 보인다.
“저건 뭔가요?”
짐짓 모른 척하고 물었다.
“글쎄요. 올해 봄부터 갑자기 나타난 놈입니다. 몬스터 같긴 한데 딱히 유해하지 않아서 그냥 지켜보고 있어요.”
개성 등대가 유배지라고 하는데 장비는 그렇지 않았다.
정오에서 오후로 넘어갈 무렵 병사들은 육각형의 대지에서 꽤 큰 대형 정찰 드론을 날렸다.
웅웅웅웅—
헬기만큼은 아니지만 상당한 풍압을 뿜어낸 대형 드론은 곧장 하늘 위로 날아가 동남쪽으로 향했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정호경이 나를 불렀다.
“여기가 특등석입니다.”
벌집형의 구조물 중앙엔 작은 감시탑이 세워져 있었다.
자재나 디자인으로 보아 북한이 아닌 한국 측에서 세운 것으로 보이는데 정호경 말마따나 감시탑 위에 서니 주변 벌집형 벽면이 조망하는 것처럼 한눈에 들어왔다.
정호경의 얼굴에 강한 자부심이 떠올랐다.
“이제 곧 등대의 불빛을 밝힐 겁니다.”
“기대되는군요.”
정호경이 날 돌아보았다.
“저는 이 등대를 일회성이나 시간 끌기용으로 쓰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잠자코 있었다.
“저는 이 개성 등대를 항구적인, 몬스터를 유도하는 등대의 시범 모델로 만들어 나중에 제주 균열을 닫고 파주 균열을 비롯한 한반도의 균열을 모두 닫은 이후 한반도를 몬스터로부터 수호하는 방파제로 만들려고 합니다.”
“······.”
“상상해보세요! 모든 나라가 멸망한 상황에서 우리 대한민국만이 마지막 나라로 남아 인류의 피난처가 되는 상상을!”
“그거 놀랍군요.”
영혼 없는 칭찬을 건넸다.
글쎄.
보고서에 의하면 이 등대가 효용이 있는 건 맞지만 지속가능성이 있냐는 물음에 대해서는 나는 아니라고 할 것이다.
이 등대는 필연적으로 침식지대에 터 잡는다.
홍종범 같은 손실이 꾸준히 발생할 것이다.
하지만 파동을 일으킬 수 있는 어웨이큰이 그리 흔한 존재인가.
한국 아이로 숫자가 안 나오니 북한 아이, 그리고 눈여겨 보진 않았지만 광신도의 자식으로 추정되는 아이까지 싹싹 긁어모아 이 정도 숫자를 만들었다.
인구가 격감하고 거기다 사람이 끝없이 죽어 나가는 이 멸망기 속에 이 정도 인원을 안정적으로 유지한다는 게 가능하진 않아 보인다.
“뭐?!”
그건 그렇고 문제가 생긴 모양이다.
“이런. 그게 왜 나타나?! 앞에 막는 것도 없는데! 킬존 없으면 그거 안 나타나는 거 아니었어?!”
정호경이 창백한 얼굴로 무전기에 대고 격하게 소리를 지르고 있다.
곧 정호경이 무전기를 내렸다.
“······이거 아무래도 등대의 불빛은 나중에 밝혀야 할 거 같네요.”
“문제라도 있습니까?”
“크라켄 타입이 셋이나 나타났답니다.”
“초대형종 말이죠?”
“네. 진짜 마가 낀 건가. 킬존이나 장벽 같은 게 없으면 초대형종은 나타나지 않는 법인데 균열이 변덕을 부려서 세 기나 토해내네요.”
“초대형종은 역시 이 등대로도 막기가 쉽지 않은 모양이죠?”
크라켄 타입은 태풍이라는 천연재해에 비교될 정도로 선을 넘어선 존재다.
양 눈에서 교차하는 살인광선은 마치 등대의 불빛처럼 아래의 대지를 훑으면서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을 분쇄한다.
이 벌집형 구조물이 잡다한 몬스터를 막는데 탁월한 효과가 있는 건 사실이지만 크라켄 타입의 파괴광선을 막아낼 방법은 없겠지.
그것은 물체를 투과, 생명체만을 소멸해버리니까.
“네. 위험하죠. 뭐, 막을 방법이 있긴 한데 검증되진 않았어요.”
“막을 방법이 있다고요?”
“네.”
고개를 갸우뚱거릴 뻔했다.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새로운 정보가 나타났다.
크라켄 타입의 살인광선을 막다니.
무슨 수로?
“여기에 납으로 된 방이 있어요. 아마 북한의 최고 권력자를 위한 대 크라켄타입 용 쉘터겠죠.”
“납으로 된 방요?”
“네. 크라켄 타입의 파괴광선이 대단히 강력한 건 맞지만 그것도 두께 1,200mm를 넘는 납은 투과하지 못한답니다.”
“납 득이 안 가는군요.”
나름의 개그를 해봤다.
납이라는 걸 득할 수 없는 내 신세 한탄도 겸해서.
그러나 씨알도 먹히지 않는다.
“저희도 긴가민가합니다. 하지만 북한 쪽 전향자의 말로는 정치범을 이용한 실험에서 성공했다고 하는데 북한 쪽 소스는 워낙 믿기 어려운 것들이 많아서요.”
정호경이 쓴웃음을 머금으며 덧붙였다.
“어디까지나 납의 방은 최후의 수단으로 써야겠죠. 아무튼, 등대를 밝히는 건 크라켄 타입의 동향을 보고 시일을 결정하겠습니다. 녀석들은 강하지만 또 그만큼 느리기에 여유가 있거든요.”
홍종범이 자취를 감췄다는 소식이 들린 건 그날 저녁의 일이었다.
내 예상과 다르게 정호경이 보여준 폐쇄회로 화면 안에는 식물처럼 앉아 있던 홍종범이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복도를 향해 질주하는 장면이 찍혀 있었다.
그 이후 기록은 알 수 없다.
정호경이 수색대를 꾸려 찾았음에도 홍종범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
왜애애애애앵-
이른 새벽부터 사이렌이 울렸다.
동시에 구내 방송에서 정호경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박규씨. 상황실로. 박규씨. 상황실로.”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난 건 확실하다고 생각했다.
상황실에 모인 사람들의 얼굴을 보자 내 예감이 어김없이 들어맞았다고 확신했다.
정호경이 파랗게 질린 얼굴로 입을 열었다.
“크라켄 타입이 여기로 오고 있어요!”
태풍이 온다.
이 등대를 향해.
“드론으로 확인결과 1시간 30분 후, 등대 앞에 도착입니다! 소멸 예상 시간도 1시간 30분 이후긴 한데 아시다시피 크라켄 타입은······.”
크라켄 타입은 일종의 거대한 공성병기다.
그 거체에 비해 확연히 짧은 다리로 느릿하게 움직이며 지나가는 경로상에 있는 산 것들을 파괴광선으로 무차별 살상한 후 소멸하는 것이 알려진 놈의 유일한 매커니즘이다.
그 녀석이 어떤 대상을 인식해서 공격하는 지능이 있는 것 같진 않다는 게 내가 현역 시절의 통설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녀석이 위협적인 건 그 녀석의 파괴광선의 범위가 너무 넓고 일단 거리에 들어서면 피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사거리 약 1.2km. 폭 10m에 달하는 살인광선 한 쌍이 대지를 교차하며 아래에 있는 산 것들을 솎아낸다고 가정해보자.
거리 안에 들어간 순간, 그 사람은 신에게 목숨을 구걸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크라켄 타입을 피하는 유일한 방법은 일전에 내가 레베카 모녀를 버기카에 태웠던 것처럼 거리를 벌리는 것 뿐이다.
그러나 등대는 그렇지 않다.
평범한 몬스터 상대로는 무적의 방어력을 자랑하지만 크라켄 타입의 사거리 안에 들어가는 한 등대는 파멸을 피할 수 없다.
막말로 한 번만 광선이 훑고 지나가도 이 안의 인원은 전멸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납 방으로 가야 합니다.”
정호경의 표정이 기묘하다.
그는 온 몸을 떨 정도의 두려움에 잠겨 있으면서도 도저히 못 할 짓을 한다는 이율배반적인 표정을 지으며 나에게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그런데 그 납 방 앞에······.”
그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캡슐이 있습니다.”
“그런가요?”
“네. 그게 숫자가 좀 많아요······. 그런데 그걸 치울 사람이······.”
정호경이 내 눈치를 본다.
“······.”
나보고 치우라는 건가.
분위기를 보니 100% 확실하다.
숨막힐 것 같은 분위기 속에 나를 바라보는 수많은 시선을 느끼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치우면 되는 거 아닙니까?”
내 목소리엔 날이 서 있었다.
그의 태도가 마음에 들고 안 들고의 문제가 아니다.
이해가 가지 않아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