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a House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215)
아포칼립스에 집을 숨김-215화(215/466)
94. 인플루언서 (1)
전쟁 전엔 수많은 인터넷 사이트가 범람했다.
성향도 목적도 주연령층도 달랐지만 한 가지 공유하는 운명이 있었다.
사이트에 접속하는 인원의 숫자다.
상가 거리를 생각해보자.
제아무리 매력적인 가게가 있고 거리를 예쁘게 꾸몄다고 해도 사람 하나 다니지 않는 썰렁한 상가가 오래갈 리 없다.
반면 사람이 많은 거리는 거리가 좀 지저분하고 불친절한 가게가 있더라도 번성한다.
사람이 없는 거리처럼 사람이 없는 사이트도 오래가지 못한다.
사람이 모이는 걸 전제로 한 사이트에서 사람이 없어진다는 건 삼겹살집에 고기가 다 떨어진 것과 다를 바 없다.
물론 우리 비바! 아포칼립스! 같은 경우엔 다른 사이트와는 조금 맥락을 달리했다.
그것은 우리 집단이 특수성에서 기인한다.
우리는 어디까지 잘 준비된, 미래를 대비하는 깨어 있는 소수의 연합체다.
실제로 전쟁이 일어나고 세상이 멸망기에 접어들어도 우리 비바! 아포칼립스!는 멸망해가는 세상의 마지막 커뮤니티로 충분히 그 기능을 수행했다.
그러나 우리가 소수 엘리트 사이트라고 하더라도 그 사이트가 필요로 하는 최소한의 인원은 필요하다.
한국어 게시판의 유저도 1/3 토막이 났지만 미국 쪽도 비슷한 숫자로 유저가 줄어든 모양이다.
멜론 마스크의 말에 의하면 전성기 미국의 비바! 아포칼립스! 유저의 숫자는 무려 80만 명이었다.
이 숫자는 멸망주의자 전체라기보다는 멜론 마스크가 똥을 싸도 박수를 쳐주는 멜론 마스크 강성 지지자를 포함한 것으로 보는 게 옳다.
실제 멸망주의자의 숫자는 20만 명 아래로 추산했다.
한편 미국은 한국보다 전쟁의 피해가 적었고 주 단위로 방위군을 위주로 군사력이 유지되고 있기에 그 유저의 숫자는 전쟁 이후에도 크게 줄어들지 않았다.
그러나 멸망이 진행되면서 북미 유저 숫자는 빠르게 줄어들었다.
전쟁이 시작된 지 1년이 지날 무렵까지는 70만 유저를 유지했지만 1년하고 2개월이 지난 시즌엔 절반으로 급락했다.
주 정부와 연방 정부가 반목을 하면서 미연방자체가 흔들리기 시작한 시점이다.
방공호 없이 살던 주택에서 그대로 살며 위성 인터넷을 쓰던 사람들은 폭도와 약탈자의 물결을 버텨내지 못하고 휩쓸렸다.
2년이 지난 무렵엔 겨우 20만이 남았다.
멜론 마스크가 150만 액티브 유저 중 진지한 멸망주의자라고 평가한 숫자다.
그러나 그 멸망주의자들도 3년이라는 세월은 좀처럼 버티지 못했다.
전쟁이 일어난지 3년하고도 6개월이 지난 현재, 북미의 액티브 유저는 이제 10만 아래로 떨어졌다.
10만이라는 숫자가 지니는 상징성을 생각해보면 게시판 전체의 위기라도 무방할만 한 재앙이다.
엎친데 덮친 격이라고 또 하나의 문제가 비바! 아포칼립스!를 강타했다.
강력한 라이벌이 북미 대륙에서 고개를 들고 일어난 것이다.
그 사이트의 이름은 죽은 자의 도시를 의미하는 그리스어에서 따온 “네크로폴리스”였다.
비바! 아포칼립스!와 다르게 평범한 전파 수신장치만으로도 접속할 수 있는 사이트로 사이트 자체의 속도도 느리고 사진 이상의 컨텐츠를 사용할 수 없는 등 제한이 많지만 사용하기 쉽고 편하다는 범용성으로 아주 빠르게 비바! 아포칼립스!를 제치고 북미 최대의 사이트로 부상하고 있다고 한다.
그 모습은 마치 페일넷의 대두를 연상케했다.
아무튼 유저의 격감과 강력한 경쟁자의 대두는 우리 세계의 창조자 멜론 마스크의 신경을 긁기에 충분했다.
그 멜론 마스크는 비상사태를 선언하고 비바! 아포칼립스! 살리기(적어도 북미지역에서 만큼은) 캠페인에 들어갔다.
MELON_MASK : 지금 우리 시대의 경쟁은 TV가 발명됐을 때 할리우드 영화제작자의 상황과 비슷해.
MELON_MASK : 그래. 우리가 할리우드고 저들이 TV 쇼프로 제작자지.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인터넷망과 어떠한 전쟁으로도 파괴할 수 없는 전파 체계를 갖추고 있어. 무엇보다 우리의 가장 큰 재산은 바로 너희들. 비바! 아포칼립스!를 구성하는 비바리안! 들이지!
MELON_MASK : 컨텐츠가 필요해. 다들 힘들고 어려운 사정에 있는 건 알고 있지만 이럴수록 더 많은 컨텐츠가 필요해. 인터넷은커녕 PC통신 수준에 불과한 네크로폴리스 따위에 즐거움을 얻는 대다수 불쌍한 유저들에게 빛과 문명을 전파하는 거지.
그 멜론 마스크가 대한민국을 좋아했다는 역사적 사실은 없다.
오히려 그는 전쟁 전, 자신이 인수한 SNS에서 “뻐킹 김치맨!”라는 인종차별적인 비속어를 자신에게 악플을 다는 유저에게 사용한 이력이 있다.
하지만 그 멜론 마스크가 이제 가장 좋아하는 나라는 대한민국이라는 걸 부정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MELON_MASK : 한국의 친구들에게도 큰 기대를 하고 있어! 한국은 동탄맘과 폭스게임의 나라니까! 그 둘만 아니라 더 뛰어난 사람이 있을 거라 믿어!
멜론 마스크는 범피와 함께 엄지를 세워 보이며 긴급 라이브를 종료했다.
“······.”
공교롭게도 미국의 위기를 알리던 라이브 시점은 이 박규가 개성 등대에서 돌아와 게시판에 올린 새로운 “썰 시리즈”를 집필하던 때였다.
정확히는 초안을 작성했으나 뭔가 밋밋한 느낌이 들어 업로드를 보류하던 중이었다.
당시 나는 이대로 올려서는 내가 원하는 반응을 얻지 못할 것이라는 “썰 화자”의 동물적인 직감을 느꼈다.
다른 무언가.
그래, 양념이 필요했다.
여러 양념을 놓고 저울질한 결과, 로맨스라는 전통의 양념을 넣는 쪽이 좀 더 뜨거운 반응을 얻을 수 있겠다 싶어, 현실과는 다르지만 스켈톤과 라이트닝의 로맨스를 넣으려고 기획했다.
그런데 갑자기 이런 초대형 이벤트라니.
다른 놈도 아니고 멜론 마스크가 이런 일을 벌인다는 건 글쎄, 심상치 않은 징조다.
로맨스 기획을 보류하고 상황을 관망했다.
곧 비바봇이 구체적인 멜론 마스크의 지시를 우리에게 공지로 알려 주었다.
그녀의 닉네임을 보는 순간 나는 아주 잠깐 나와 비바봇의 로맨스도 넣는 게 좋지 않을까 고민했지만 바로 내면에서 기각했다.
그만큼 이 박규, 로맨스라는 양념에 진심이었던 것이다.
아무튼 비바봇은 아래와 같은 공지를 게시판에 올렸다.
VIVA_BOT014 : 제1기 비바! 인플루언서를 모집합니다!
“인플루언서······?”
한국말로 풀어 말하자면 영향력을 끼치는 자다.
전쟁 전에 SNS 같은 곳에서 많은 팔로워를 거느리는 사람들이 이러한 명칭으로 불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사실 우리 게시판에도 그 인플루언서는 네임드라는 이름으로 이미 유저들 사이에 암묵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그런데 그걸 굳이 명시화하겠다니.
VIVA_BOT014 : 게시판지기랑 비슷한 것이라고 생각하면 돼요.
또 다른 완장인가.
멜론 마스크 녀석.
무엇이 유저들을 움직이게 만드는지 이제야 감을 잡은 모양이다.
VIVA_BOT014 : 단, 전에 어떤 유저 사례도 있고 해서 전처럼 무소불위의 권력은 주지 않을 거예요. 대신 인플루언서로 지정된 유저들의 모든 글은 “볼드” 처리가 되고 본인이 중요하다고 생각한 컨텐츠는 추천이나 조회수, 댓글 숫자와 관계없이 바로 인기글에 올라갈 수도 있답니다.
풀어 말하자면 내 글은 진하게 표현되어 다른 잡유저의 글보다 더 잘 눈에 띄고 동시에 내가 인기글을 스스로 올릴 수 있다는 이야기인가?
“호오.”
상당히 매력적이군.
VIVA_BOT014 : 그리고 본인이 쓴 인기글 안에서는 특정 유저가 댓글을 다는 것도 차단할 수 있어요!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물론 인플루언서가 되는 건 쉬운 일은 아니다.
VIVA_BOT014 : 현재 동탄맘, 폭스게임 두 유저는 확정적으로 인플루언서로 지정됐고요. 그들을 이은 세 번째 한국어 게시판 인플루언서를 모집하고 있어요.
“······.”
VIVA_BOT014 : 방법이야······ 다들 아시죠?
컨텐츠다.
한때는 우리 유저를 위한 것이었지만 이제는 우리 게시판 전체의 존망을 위한 것으로 격상했다.
물론,
mmmmmmmmm : 어? 왜 내가 인플루언서가 안 된 거지?
mmmmmmmmm : 아 귀찮게 하네~ 또 뭐, 어? 아파트 경사 한 번 더 보여 줘?
주제를 모르는 놈들은 있기 마련이다.
나는 내 주제를 안다.
나는 적어도 내 비트박스가 사람들에게 호응을 끌지 못한다는 걸 알고 있다.
그 점에서 나는 m9보다 두 발은 앞서 있다.
*
무비! 아포칼립스!라는 게 유행이 된 적도 있지만 결국 그것도 사람을 갈아서 만든 영상물이라는 게 지난 영상에서 드러났다.
동탄맘 시나리오야 워낙 공을 들여 최대한 어색함이 없게끔 멋지게 만들어냈지만 마지막 무비! 아포칼립스!는 비바! 아포칼립스! 직원들이 파업이라도 했는지 주인공인 흑인 남성이 약탈자를 뚫고 가족을 지키기 위해 불타는 집으로 달려가는 장면에서 어째서인지 주인공의 얼굴이 “기가 채드”라고 불리는 가상의 인물로 변해버리는 기괴한 장면이 연출됐다.
블랙 워싱이 아니라 인터넷 밈 워싱이라고 할까.
그 이외에도 폭도와 싸우는 장면에서 주인공의 얼굴이 어디서 본 듯한 영화 주인공으로 변하는 일이 – 심지어 여성으로도 – 높은 빈도로 발생했다.
멜론 마스크는 어처구니 없는 영상에 사과를 했지만 어쩔 수가 없는 일이다.
결국 안정적인 컨텐츠를 만들기 위해서는 사람이 필요하다.
SKELTON : 살아 있습니까?
DragonC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엄밀히 말하자면 과거 인기 웹툰작가 필크럼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그는 인터넷 장비를 뺏기고 제주 정부 쪽이 요구하는 컨텐츠만을 제작한다고 알려졌고 실제로 이전에 내가 보낸 메시지 몇 개를 씹기도 했지만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보내 보았다.
답장이 없다.
“음.”
안타깝긴 하지만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처럼 뛰어난 작가의 그림에 내 이야기를 입히고 싶었다.
하지만 필크럼이 없어도 아무것도 못 하는 건 아니다.
폭스게임이 적절한 도구를 준비했다.
현실에서는 비열하기 짝이 없는 어른이지만 인터넷에서는 널리 알려진 호인답게 “모두가 함께 만들어나가는 게임”을 표방하며 비교적 다루기 편한 작업 툴을 인터넷에 올렸다.
흔히 A.I 이미지 생성툴이라 불리는 것도 그중 하나다.
폭스게임은 수많은 A.I 이미지 생성툴 중에 가장 많은 데이터를 학습하고 신뢰성이 높은 것을 사용했다는데 과연 다른 유저가 만든 이미지를 보니 고래를 끄덕거릴 정도로 그럴싸한 것들이 많았다.
Foxgames : A.I 이미지 생성툴 “Far ice”의 사용법에 관하여.
폭스게임이 직접 정리한 설명서를 보고 A.I 이미지를 하나 만들어보았다.
A.I 이미지는 다른 그림과 다르게 그림의 특징을 의미하는 태그를 넣는 것만으로 그림 한 장이 5분 안에 뚝딱 완성된다.
가령 아래와 같은 태그를 넣어보자.
태그 : 헌터, 태그 : 잘생김, 태그 : 도끼, 태그 : 양손
-A.I 이미지를 생성 중입니다.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대기시간은 2분 30초 남짓.
조용히 커피를 마시며 기다리면 A.I 이미지 생성툴은 곧 군복 비슷한 전투복을 입은 핸섬한 서양인 남성이 양손에 도끼를 들고 정면을 주시하는 어디서 본 것 같은 그림을 내게 보여주었다.
“······.”
확실히 폭스게임은 개자식이지만 녀석의 도구는 편리하기 짝이 없군.
사람을 미워해도 도구는 미워하지 말랬다.
내 의도는 이 툴을 이용해 웹툰을 만드는 게 아니다.
아무리 기계가 그림을 만들어준다고 하더라도 기계가 그림을 그려주는 이상 내가 원하는 상상의 이미지 그 자체를 뽑아내 줄 순 없다.
특히 액션 같은 장면은 어떻게 태그만으로 만들어야하는지 상상조차 가지 않는다.
무비! 아포칼립스!는 인력의 부족에도 억지로 지난 번과 같은 퀄리티로 만들려다 실패한 것이다.
그렇다.
타협이 필요하다.
기술과 제한된 인력의 합일점을.
고민 끝에 내가 생각한 건 이른바 “비쥬얼 노벨”이다.
분위기에 어울리는 그림을 매 장마다 넣고 소설보다는 적은 텍스트를 이미지 위에 새겨 사람들이 그림을 보면서 이미지를 연상함과 동시에 이 스켈톤의 매력적이고 신비로운 썰에 빠져드는 효과를 노리는 것이다.
DAJUNG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그거 괜찮겠네. 진행해!
내 방식은 다정이에게도 인정을 받았다.
어차피 완벽한 이미지는 내 머릿속에 있고 그보다 완벽한 이야기도 내 안에 있다.
웹툰이라는 것도 어떻게 보면 이야기의 표현 방식 중 하나일 뿐.
중요한 건 이야기다.
나는 개성 등대에 있었던 이야기를 전하려 한다.
이미 초안은 완성됐고 그걸 다듬어 각 장면에 어울리는 장면은 A.I 이미지 툴로 만들어내기만 하면 된다.
이런 A.I의 이미지가 있다면 굳이 로맨스를 넣을 필요는 없어 보인다.
애당초 존재하지도 않았던 로맨스를 억지로 꾸며내어 집어넣으려고 했던 건 날카로운 “썰 화자”의 감으로 이야기의 완급과 흥미를 주기 위한 일종의 궁여지책이었다.
이미지라는 더 직관적이고 몰입이 가능한 장치가 있는데 굳이 가짜 로맨스를 넣을 필요까진 없겠지.
*
꿀잠을 자고 일어나 아침 일과 – 정찰 및 시설 확인 – 를 마치고 노트북 앞에 앉아서 게시판에 접속했을 때였다.
인기글에 내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유저의 닉네임이 보인다.
Dolsingman : 나의 이야기 – “새로운 사랑”
“돌싱맨······?”
나는 이 친구가 누군지 알지 못하지만 그가 나보다 덜 유명하고 그리고 덜 유명한 주제에 감히 완장 선거에 나왔다는 걸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이 친구. 닉네임과 다르게 명예욕이 강한 모양이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내 자리를 탐내는 걸 보면 말이다.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돌싱맨 따위가?
그런데 조회 수와 추천 수가 심상치 않다.
입가의 미소가 싹 지워지는 걸 느끼며 그의 야심찬 게시물 “새로운 사랑”을 조금은 두려운 마음으로 클릭했다.
“음?”
그림이 보인다.
저녁 놀이 드리운 무성하게 꽃들이 핀 화원에서 한 남녀가 만나는 몽환적인 장면이다.
그 이미지는 일견 아름답지만 A.I 이미지 툴의 특징적인 전형성과 군데군데 보이는 기묘함을 찾아볼 수 있었다.
A.I로 만든 그림이다.
그런데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그림 옆에 글자가 있다.
단어가 아닌 문장.
하나의 글이다.
그 의미를 이해하는 순간 나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이거, 내가 하려던 것과 똑같은 아이디어잖아?
“······.”
상황이 좋지 않다.
이대로 내 썰을 올리면 표절이 되어 버린다.
내가 먼저 생각했는데 베낀 게 된다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