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a House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217)
아포칼립스에 집을 숨김-217화(217/466)
94. 인플루언서 (3)
A.I 이미지 생성 툴은 잘만 다루면 실사와 거의 구분되지 않으면서도 대단히 아름다운 여성을 만들어내는 재주가 있었다.
그런데 이건 내 재주라기보다는 욕망의 결과다.
A.I 이미지 생성 툴은 미남미녀는 잘 만들어내지만 평범한 사람이나 못 생긴 사람은 잘 만들지 못한다.
A.I 툴의 힘이라는 게 빅데이터라는 무수한 정보를 학습하면서 나오는 것인데 사람들은 대체로 잘 생기거나 예쁜 사람을 만들고 싶어하지 평범하거나 못 생긴 사람을 굳이 만들려 하지 않으니까.
그러니까 그냥 남자나 여자 하나를 생성해도 A.I 툴은 사회적 기준에서 객관적인 미남 미녀상을 디폴트로 출력한다.
문제는 이러한 디폴트 미남미녀엔 A.I 특유의 냄새가 난다는 것이다.
A.I도 만능은 아닌지라 제대로 극복하지 못한 영역도 있다.
손가락을 가끔 6개로 표현한다거나 면 요리를 젓가락이 아닌 손으로 퍼먹는다거나.
내 계획은 이 A.I 이미지 생성 툴로 이 박규와 로맨스를 자아낼 여성 인물을 이상의 여인으로 꾸미는 것이다.
이를 위해 나는 본심을 갖추고 내가 직접 작성한 A.I 이미지를 관중들에게 하나씩 공개하며 그들의 취향을 떠보고 있다.
SKELTON : (스켈톤 설문) A.I로 이쁜이들 그려봤다.
SKELTON : (스켈톤 투표) A.I 여자 12종 세트
SKELTON : (스켈톤 A.I) 내가 그린 이쁜이들 어때?
SKELTON : (스켈톤 아트) 핑까 좀
SKELTON : (스켈톤 초이스) 여기서 누가 제일 낳냐?
…
…
처음에는 우호적인 댓글이 몇 달린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데이터 수집이 진행될수록 매몰찬 댓글들이 달리기 시작했다.
ㅇㅇ : 여기가 씨발 니 여름방학 그림 일기장이냐?
ㅇㅇ : 다 늙은 놈이 장난감 하나 발견했다고 너무 신났네
dongtanmom : 냠냠…. 이래서 A.I 툴 같은 거 올리지 말자고 했는데… 저지능 저학력 저소득 자폐아 손에 들어가니 신이 나서 아주 도배를 해대네. 냠냠….
익명458 : 어이 스켈톤 그만 좀 올려! 도배는 아니잖아!
unicorn18 : 우웩
mmmmmmmmm : 폭스게임한테 A.I 장난감 막으라고 쪽지 보내야겠네 하….
…
…
“······.”
짖을 테면 짖어라.
나는 휘둘리지 않는다.
본질은 예쁜 여자다.
일단 여캐만 기깔나게 뽑으면 된다.
네임드 답지 않게 도배질을 좀 하긴 했지만 데이터만 얻으면 그만이다.
게시판 유저들이 가장 선호하는 얼굴상을 알아내 그 태그로 내 로맨스 스토리를 완성하면 된다는 이야기.
이제 이걸 베이스로 나의 완벽한 모험담에 양념을 끼얹기만 하면 된다.
아울러 나는 과감한 시도도 하려 한다.
바로 “베드신”이다.
그렇게 그리스신화의 피그말리온처럼 이상의 여인을 깎는데 영혼을 바치고 있을 때였다.
나의 강력한 경쟁자 돌싱맨이 다음 이야기를 올렸다.
작업 중에 경쟁자의 게시물을 본다는 건 현명하지 않은 일이지만 어째서인지 내 궁금증은 나로 하여금 잠시 A.I 이미지를 깎는 일을 멈추고 돌싱맨의 신규 게시물을 클릭하게 만들었다.
*
지난 편에서 돌싱맨은 자신의 유년기를 회상하며 이야기를 마무리 지었다.
다시 그는 과거를 회상한다.
“묘한 관계였지. 보기만 하면 싸우고 다투는데 정작 옆에 없으면 빈 자리가 느껴지고 토요일에 하교할 때 서운한 맘이 들기고 하고 일요일 내내 그녀를 생각하지만 다시 월요일이 되면 원래대로 돌아가 또 지긋지긋한 다툼을 이어나가고······. 이제는 그 감정이 뭔지 아는 나이가 됐어.
”좋아했었던 거야. 짝꿍의 감정도 크게 다르진 않았어. 항상 틱틱 거렸지만 단 한 번도 자리를 바꿔 달라거나 진짜 싫은 내색을 한 적이 없거든. 그건 걔가 다른 남자애가 장난을 쳤을 때 내게 보여줬어. 그런 표정도 지을 수 있는 아이라는 걸.”
흘러가는 세월은 모든 걸 갈라놓고 흐릿하게 만들었다.
홍안의 소년은 이혼을 경험한 중년으로 변했다.
그는 왜 자신이 과거 이야기를 했는지 우리에게 설명했다.
“공감대라는 게 생각보다 크더라고.”
이야기는 다시 독특한 방공호로 돌아간다.
같은 방공호에 사는 비슷한 나이대의 여성을 발견한 돌싱맨은 그 여성에게 강한 흥미를 갖는다.
그는 유일하게 만나는 외부인인 관리인에게 그 이야기를 했다.
“여기 저랑 비슷한 나이대의 여성분도 사는 거 같던데.”
다른 입주자에 대한 이야기는 금지사항이지만 방공호가 운영된 지 2년이 훌쩍 지났다.
평범한 집단 방공호라면 관리자가 몇 번이나 입주자들을 배신하고도 남을 시간이다.
처음에 확고했던 생각도 바뀔 수 있다는 이야기다.
돌싱맨이 말을 건 관리인은 늘 가스마스크를 쓴 여성임에도 충분한 강함이 느껴지는 뭐랄까, 차돌처럼 단단함이 온 몸에서 느껴지는 사람이었다.
실제로 그녀는 자신의 동생과 함께 방공호를 발견한 사람 – 그것이 스케빈저인지 약탈자인지는 작중에 설명되지 않는다 – 을 아주 빠르게 살해해서 구덩이에 파묻었고 방공호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뮤테이션을 퇴치하기도 했다.
돌싱맨이 그녀에게 말을 걸었을 때 돌싱맨은 그녀에게서 인간의 분변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돌싱맨은 그 이유를 어렴풋이 추측했다.
“관리인이 모시는 노모가 처음부터 치매 증상을 보였지. 전쟁이 끝나고 2년이 지난 시점에선 그 증상이 악화 될 수도 있었겠지.”
돌싱맨은 자신의 궁금증을 관리인에게 물었다.
가스마스크를 쓴 얼굴이 똑바로 돌싱맨을 쳐다보았다.
그녀가 물었다.
“타 입주자님에 대한 관심 표명 금지는 입주자님께서 입주하실 때 동의하고 또 원했던 사항 아닌가요?”
날 선 물음에 돌싱맨은 어색한 미소를 머금으며 답했다.
“아, 그게 혼자 살다 보니 워낙, 심심하고 게다가 그 분이 저랑 비슷한 또래 같아서. 아, 혹시 부부가 같이 들어오기라도 한 건가요?”
돌싱맨은 미리 준비했던 뇌물을 관리인에게 건넸다.
1kg 골드바였다.
전쟁 이후에 귀금속 같은 건 쓰레기로 전락한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인간이라는 동물은 야만의 시대부터 황금과 보석에 원초적으로 끌렸다.
게다가 여전히 세상 곳곳엔 이러한 것들이 높은 가치를 가지고 거래가 된다.
관리인은 말없이 골드바를 바라보다 그것을 받아 들였다.
“여성분 혼자 사세요. 독신이고요. 다른 건 말씀드릴 수가 없네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돌싱맨은 자신이 좋아하는 뮤지컬인 “싱 잉 인더 레인”이라는 노랫말로 유명한 극중 주인공처럼 비스듬히 옆으로 점프해서 양발로 박수를 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고 한다.
그때부터 돌싱맨의 모든 관심은 식당에 향했다.
그는 늘 아슬아슬한 시간까지 식당에 머물렀고 비슷한 시간에 식당에 나타났다.
그의 의도는 자신의 존재를 미지의 여성에게 알리는 것이다.
여기 동년배의 외로운 남자가 있다.
하지만 그 메시지를 알리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우리 게시판은 글을 쓰고 완료 버튼을 누르는 것만으로 글이 올라가지만 사실 인간의 소통이란 게 원래 이렇게 간단하게 이루어지는 건 아니다.
인터넷과 달리 현실에는 수많은 제약과 한계가 있고 돌싱맨의 방공호는 다른 곳보다 더 심한 제약이 걸려 있다.
그렇게 미지의 여성에게 어떻게든 자신의 존재를 어필하려는 노력이 시작된 지 3개월이 지날 무렵이었다.
돌싱맨은 황급하게 복도로 사라지는 여성이 테이블에 책 한 권을 남기고 갔다는 걸 발견했다.
그 책의 제목은 스탕달의 “적과 흑”이었다.
돌싱맨은 자기도 모르게 방공호의 규율을 깨고 책을 집어 들었다.
개인 방공호 안에서 돌싱맨은 그 책의 페이지를 넘기고 또 넘겼다.
전쟁 전엔 가장 부족한 것이 시간이었지만 멸망기에서 시간이란 건 죽여야 할 무언가다.
익숙하지 않은 과거의 묘사와 시대상, 생소한 이름과 개념에 맞닥뜨리며 돌싱맨은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가까스로 덮었다.
“솔직히 재미는 없었어. 쓴 한약을 삼키는 느낌이 들 정도로 고역이었지. 하지만 꾹 참고 읽었지. 언제가 그녀와 마주할 때 그 책의 내용 정도는 읊어야 할 거 아니야?”
그 집단 방공호에서 외출이라는 개념 또한 철저하게 타임 테이블로 운용됐다.
총기를 든 가스마스크를 쓴 여인과 남성이 지켜보는 가운데 돌싱맨은 허락된, 꾸며지지 않은 정원을 거닐며 신선한 공기와 막히지 않은 개방감을 충전했다.
문득 꽃 하나가 눈에 띄었다.
돈 버는 것 말고는 아무런 흥미도 취미도 없었던 그에게 꽃이라는 건 꽃다발 같은 싸구려에 기한이 있는 선물에 들어가는 소모품이었다.
돌싱맨은 손수 두 손으로 그 꽃을 정성스레 따 그 꽃을 딴 두 손으로 감싼 채 방공호로 돌아갔다.
다음 날 아침 그는 어제 자신이 가지고 간 책을 가지고 가 테이블 위에 올려 놓았다.
그 책 옆엔 어제 직접 딴 아직 마르지 않은 꽃을 놓아 두었다.
하루가 지났다.
돌싱맨은 나이를 먹어버린 후 오랜만에 맛보는 감정의 격류를 경험했다.
불안과 초조, 설레임과 두근거림 그러한 것들이 뒤섞인 흥분 속에서 돌싱맨은 식당으로 갔다.
“고교를 졸업하고 그렇게 순수하고 웃은 적은 아마 그때가 처음이었던 것 같아.”
책이 사라졌다.
꽃과 함께.
그리고 또 다른 책이 원래 있던 책 위에 놓여 있었다.
그렇게 고독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삶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장소에서 기묘한 교제가 시작됐다.
일체의 만남도 대화도 마주침도 없었다.
그저 투박한 철제 테이블 위에 책이 놓였고 그 책이 사라졌고 다시 그 책이 꽃과 함께 나타났고 그것들이 사라지기를 반복했을 뿐이다.
20대의 혈기를 예전에 잃어버린 돌싱맨은 과거와 같은 조바심을 느끼진 않았다.
이미 한 번 씁쓸한 실패를 맛본 경험이 그에게 신중함을 주었는지도 모르겠다.
계절이 변하면서 심각한 문제가 생겼다.
날이 추워지면서 꽃들이 자취를 감췄다.
아직 얼굴을 모르는 그녀의 책은 떨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지만 꽃이라는 건 자연의 변덕에 의해 생과 사가 결정되는 것이다.
수많은 사람을 앗아갔던 한파의 전조 속에서 꽃들은 시들었고 땅 위에 떨어졌다.
돌싱맨은 관리자와 면담을 요청했다.
“정말 죄송합니다만. 한 가지 청을 드리려고 합니다.”
그가 요청한 건 다른 입주자, 책과 꽃을 교환하던 여성과의 만남이었다.
이제는 직접 만나서 이야기할 때가 왔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관리인은 정색했다.
가스마스크를 쓰고 있어 표정은 보이지 않았지만 돌싱맨은 그녀가 정색을 하고 있다고 굳게 확신했다.
“규칙은 클라이언트께서 정하신 겁니다. 그 규율은 어떤 식으로도 깨질 수 없어요. 만약에 그쪽이 만나길 원하지 않는 사람이 저를 통해 그쪽을 만나자고 한다면 어떨까요? 그쪽은 계약서를 들어 저에게 항의를 하지 않을까요?”
돌싱맨은 더 이상 따지지 않았다.
명분도 논리도 전부 관리인이 우월하다.
아쉬움을 안고 돌싱맨은 개인 방공호로 돌아갔다.
대신 그는 거울 앞에 서서 자신의 얼굴을 보았다.
많이 늙었다.
자기가 봐도 확실히 나이가 든 게 보인다.
머리 숱이 확연히 줄었고 얼굴색 자체가 어두워졌다.
젊은 여자들에게 동안 소리를 듣고 또 그러한 여자들이 자신의 나이를 듣고 놀라는 장면이 꿈에서 본 것처럼 익숙했던 시절도 있었지만 이제는 아니다.
세월이, 그리고 멸망이라는 고독과 우울한 시간이 그의 얼굴이라는 시침을 나이에 맞게 돌려 놓았다.
하지만 돌싱맨은 웃었다.
이제는 더 이상 억지로 젊게 보이지 않아도 된다.
비슷한 또래다.
아마 같은 교실에서 혹은 또 다른 교실에서 같은 칠판을 보고 같은 교과목을 공부했을 것이다.
무엇보다 같은 곳에 있고 수많은 책과 꽃을 교환했다.
그는 자신과 책과 꽃을 교환했던 여성의 방공호 문 앞에 선다.
그 문은 그의 개인 방공호의 문처럼 강철로 이루어져 있다.
문 앞에서 돌싱맨은 고민했다.
이대로 문을 두드릴 것인가.
아니면 그대로 몸을 돌려 자신의 방공호로 돌아갈 것인가.
1초가 영원처럼 느껴지는 적막 속에서 돌싱맨은 들었다.
문 너머에서 들려오는 웃음소리를.
명백한 남자의 웃음소리였다.
웃음만 남자 같을 것이라는 실낱같은 희망은 곧 들려온 희미한 여성의 웃음소리에 의해 산산이 부서졌다.
그 순간, 돌싱맨은 별 다른 감정을 느끼지 않았다고 한다.
꽤 오래 전부터 감각이 느껴지지 않는 새끼손가락처럼 그의 감정 또한 둔해지고 외부의 자극에 반응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 이후에도 테이블에 간간이 책이 올려지긴 했었지. 하지만 나는 더 이상 그 책에 손을 대지 않아. 실망을 했다기보다는 다른 이유야. 재미가 없거든. 옛날 소설이 적힌 시대와 사람도 다르고 감성도 다르니 당연한 이야기지. 그전에는 억지로 읽은 거였고. 전에도 말했지만 솔직히 고역이야. 고역.”
깔끔한 포기와 함께 돌싱맨의 삶은 초심을 찾았다.
그의 삶은 다시 혼자만의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조용한, 서서히 부식해가는 삶으로 돌아갔다.
식당 테이블 위에 간간이 올려진 책은 끔찍한 한파가 끝날 무렵 더 이상 올라오지 않았다.
봄이 오면서 돌싱맨은 새로운 사랑에 빠졌다.
아주 우연히 관리인의 민얼굴을 본 것이다.
가스마스크를 벗은 그 얼굴은 아름답다고 표현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젊고 건강했고 매력이 있었다.
무엇보다 그녀는 VIP 방공호의 제약에 얽매이지 않아도 되는 인물이다.
돌싱맨은 지금 그녀에게 맹렬하게 대쉬하고 있다.
“모두 응원해 줘. 그걸 위해 남는 시간을 써서 이런 걸 만들어 봤으니까!”
마지막에 그는 활짝 웃는 자신의 얼굴 사진을 올려 놓았다.
머리가 새고 피부가 어두워지고 머리카락이 군데군데 빠지고 병색이 완연한 그 얼굴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 얼굴을 본 순간 나는 디펜더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디펜더에게 아는 의료인이 하나 있다.
디펜더는 곧 내가 요구한 답을 알려줬다.
Defender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스켈톤. 네 짐작대로야.
Defender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자세한 건 수치를 재봐야겠지만 적어도 지금 모습만으로 비소중독일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는 게 의사의 소견이야.
너무나도 뻔한 시나리오다.
선량한 관리인의 의무를 지고 방공호를 관리하던 관리인들이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마음이 변하고 그들에게 의지하던 사람에게 이빨을 드러내는 건.
비소를 택한 건 그나마 온건한 방법일지도 모르겠지만 더 이상 게시판 친구들이 죽는 건 보고 싶지 않다.
설령 그것이 나와 인플루언서 자격을 두고 다투는 경쟁자라고 해도 내 마음은 변하지 않는다.
해서 내 경쟁자 – 그다지 강하다고 볼 수 없는 -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Dolsingman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뭐? 날 도와주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