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a House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219)
아포칼립스에 집을 숨김-219화(219/466)
95. 징조 (1)
6월의 첫날.
세 가지 징조가 동시에 나타났다.
하나는 K-워키토키에서 일어났다.
개인식별번호 : REDMASK
우민희에게 연락이 왔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는지 통신을 연결했음에도 들리는 건 노이즈 뿐이었다.
20초 정도 유지된 교신에서 나는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잡음만을 들었고 교신은 종료됐다.
인터넷을 통해 그녀에게 연락을 취했지만 그녀는 아무 대답도 해주지 않았다.
두 번째 징조는 인터넷에서 일어났다.
VIVA_BOT014 : 한국어 게시판에서 추가 인플루언서 모집은 없을 예정이에요.
비바봇이 폭탄선언을 했다.
우리 게시판에 그녀의 마음에 드는, 그러니까 세계인의 가슴을 울릴만 한 컨텐츠가 올라오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내 야심작은 모종의 이유로 업로드가 지연되고 있었는데 그 짧은 시간 안에 내 모든 고생이 허사가 된 것이다.
세 번째 징조는 서울에서 일어났다.
개인적으로는 이쪽이 세 가지 징조 중에 가장 전통적인 형태의 징조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캡틴 m9가 사는 K-피사의 사탑인 더 호프에 2km 밖에서도 뚜렷이 구분할 수 있는 커다란 금이 생겼다.
그 금은 건물의 뿌리에서부터 옥상 가까운 곳까지 마치 번개 역으로 치는 형상으로 건물의 측면을 관통했다.
그걸 본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드디어 저 지긋지긋한 아파트가 무너지는 게 아닌가 하고.
이에 더 호프 거주자 m9는 격렬히 반박했다.
mmmmmmmmm : 병신들아 ㅋㅋ 여기가 무너지면 이 나라도 함께 무너지는 거다. 니들은 무사할 거 같냐? ㅋ
나는 m9를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그 발언만큼은 나름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의 말대로 더 호프가 무너지는 순간, 대한민국의 미래도 완전히 끝나지 않을까?
멘탈 관리를 위해서라도 되도록이면 중립적으로 세상을 보려는 내가 이렇게 부정적인 이야기를 늘어놓는 이유는 봄이 끝나가서다.
어떤 사람은 6월까지 봄이라고 하는데 6월부터가 여름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봄이 되면 변화가 있을 거라고 내가 강한민 혹은 나혜인으로 추정하는 유저가 말했다.
비슷한 희망을 나는 등대에서도 들은 적이 있다.
그 봄이 끝나간다.
아니 어쩌면 이미 끝났을지도 모른다.
징조로는 분류하지 않았지만 불운을 상징하는 일 한 가지가 더 있었다.
dongtanmom : 선박에 대해 잘 아는 사람 있냐? 엔진도 멀쩡하고 구동계도 정상적으로 돌아가는 거 같은데 배가 앞으로 나가지 않아. 어디가 잘못된 지 설명해줄 사람 없냐?
동탄맘이 컨셉을 버렸다.
그가 우리에게 보내는 메시지는 세상에 만연한 실패와 불운의 또 다른 동어반복이다.
개인적으로도 불행이 생겼다.
재배 중인 벼 일부가 하얀색으로 변했다.
농사 서적을 뒤져보니 하얀 마름병이란다.
원인은 오염된 물을 공급했을 때 일어난다고 하는데 나는 농수로에서 유입되는 물 어디가 오염이 되고 문제가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세균에 관한 지식도, 그것을 측정하는 방법도 장비도 없는 내가 어떤 물의 수질을 평가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냄새와 물의 투명도 정도니까.
이렇게 도처에서 좋지 않은 일만이 터져 나오고 있을 때 화룡점정과 같은 이벤트가 찾아왔다.
치지직-
무전기가 울렸다.
우민희인가 싶어 허겁지겁 연락을 받는 순간 나는 내게 연락을 한 사람이 내가 잠시 잊고 지내려던 내 후배라는 걸 알아보았다.
개인식별번호 : DARAM2
김다람이다.
그녀와 연락하는 건 블라인더 사건 이후 처음 있는 일.
“어. 다람아. 무슨 일이냐?”
언제나처럼 아무 일 없다는 것처럼 교신을 받았다.
“선배.”
김다람이 낮은 목소리로 날 불렀다.
“응.”
조용히 꿀꺽 침을 삼켰다.
이 녀석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
비틱 아줌마에 대한 규탄을 하려는 건가.
그 건에 관해서는 죽기 직전까지 오리발을 내밀 수밖에 없겠지.
자랑은 아니지만 내 오리발은 제법 견고하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각오로 마음을 다지고 있을 때 김다람이 불쑥 물었다.
“황금양털 아직도 가지고 있지?”
“황금양털······?”
전혀 생각지 못한 질문에 나는 말끝을 흐렸다.
“그 배지 말이야. 선배 현역 때 받은 거.”
“그거?”
“설마 팔아치운 건 아니겠지?”
“아니, 그걸 왜 팔아. 가지고 있어. 당연히 가지고 있지.”
애장품까진 아니지만 황금양털이라는 배지는 내가 살아 있었고 내 영역에서 내가 최선을 다했다는 몸부림의 증거다.
죽기 전까지 지니고 갈 물건 중 하나지.
전쟁 초반기에 내가 생각한 박규의 배드엔딩 시나리오 중 하나는 내 생명이 경각에 이르렀을 때 내각 안에 비닐에 싸인 채 보관된 예복을 입고 거기에 황금양털을 부착한 채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다.
내 얼굴이 부패 되어 녹아내리고 방 안이 구더기로 가득 차더라도 언젠가 내 방공호를 찾아온 사람이 내 시체를 보고 이 사람이 프로페서라는 전설적인 헌터라는 걸 알아볼 수 있도록 말이다.
그런데 김다람은 대체 무슨 의도로 황금양털이라는 나도 가끔 기억하는 아이템의 안부를 물은 걸까.
“행사에 참석해야 할 것 같아.”
“행사?”
“곧 현충일인 거 알지? 국회의사당에서 김병철 본부장이 행사를 개최할 거야.”
그래, 이런 일이 있었지.
그 국회의 행사를 위해 간만에 김다람과 손을 잡고 서울의 일부를 청소하기도 했고.
하지만 나는 행사를 좋아하지 않는데.
굳이 나 같은 놈 참석한다고 해서 뭐가 달라질까.
10년 전이라면 모를까 정규 어웨이큰도 아니고 나 같은 올드스쿨 헌터 하나 들러리 세운다고 의사당이 밝아질 것 같진 않은데.
들러리라면 이미 인천에서 많이 데려오지 않았나.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의문은 김다람의 다음 한마디에 가볍게 진압됐다.
“그날 중국과 휴전 협상을 할 거야.”
“뭐? 걔들 망했잖아?”
“당진 쪽에 잔당 있잖아?”
“있긴 하지. 그런데 한 줌 밖에 안 되는 걔들하고 휴전협상을 하겠다고?”
의미가 있는 일인가.
중국의 헌법에 관해서는 잘 알지 못하지만 적어도 공세가 실패해 어쩔 수 없이 적국에 머문 소규모 부대가 그 나라를 대표할 것 같진 않다는 게 내 생각이다.
“보여주기식은 되겠지. 게다가 중국 애들은 우리나라와 달리 헌터라면 여전히 대접해주잖아? 선배라면 당연히 다들 알고 있을 거고 그래서 황금양털을 달고 오라는 거지.”
“그렇군.”
요약하자면 싸구려 들러리가 아니라 고급 들러리라는 이야긴가.
싸구려 보다는 낫겠지만 크게 나쁜 일도 아닐 것이다.
일단 서울에 가면 뭐라도 떨어지는 게 있을 것이고 비틱 아줌마 사건으로 앙금이 남은 김다람과의 소원한 사이도 어느 정도 회복할 가능성도 있으니까.
그런데.
“아, 선배 그리고.”
“응.”
“남편 동료 중에 능력 있는 정신과 선생님 계시거든.”
“응? 뭐? 정신과?”
“상담받으셔야 할 것 같아~.”
“아니, 왜?”
“예약 잡을게~.”
내 후배는 여전히 나에 대한 앙금을 가진 모양이다.
*
헌터에게도 예복은 존재한다.
군인은 아니라고 하나 나라와 민족을 위해 싸운다는 점에서 군인과 크게 다른 존재는 아니니까.
다만 우리 헌터의 예복은 사실상 없는 취급을 받고 있다.
디자인이 뭐랄까, 지랄 맞다.
그 끔찍한 디자인의 원흉은 약방의 감초 마냥 안 끼는 곳이 없던 장기영이었는데 그 인간은 자기가 젊은 시절에 보던 게임 중계에서 영감을 얻었는지 파멸적인 센스로 예복을 만들었다.
금박을 뿌린듯한 색감과 북한 장군마냥 치렁치렁한 장식은 그렇다 치고 과할 정도로 옆으로 뻗은 어깨 뽕은 대체 무슨 생각으로 넣은 걸까?
그 끔찍한 디자인 때문에 우리들 중에 예복을 입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고 이를 지적하는 사람 또한 아무도 없었다.
이러한 이유로 내가 서울행에 선택한 옷은 정성스레 다린 표준 전투복이다.
표준 전투복엔 시가지, 야전, 동계 총 세 가지 패턴이 있는데 이중 가장 인기가 있는 건 군복과 유사한 디지털 패턴을 가진 야전 패턴이다.
나는 시가지 패턴을 선택했다.
밋밋하고 멋이 없지만 군인들과 비슷한 옷을 입고 싶진 않아서다.
그들과 구분되고 싶었다.
그렇게 모처럼 회색 단색 전투복을 꺼내 입고 옷깃에 반짝이는 장신구를 달았다.
황금양털이다.
나쁘지 않다.
빳빳한 새 전투복을 입고 약속 장소에 나갔다.
도로 모퉁이에 지프차 한 대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박규 헌터님이십니까?”
군인들의 반응은 우호적이었다.
그들과 현재 돌아가는 이야기를 하며 서울로 향했다.
“세상 좋죠. 몬스터도 쳐들어오지 않고 만류귀종교도 잠잠하고 서울 복구는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으니까요.”
“그래요?”
“네. 보면 놀라실 겁니다. 정말 많이 바뀌었어요.”
장담하는 장교의 말과 달리 서울의 풍경은 내가 기억하는 폐허에서 크게 변하지는 않았다.
다만 사람이 더 많아졌고 도로가 말끔하게 치워져 전기 차량이 오가고 곳곳에 조잡하게나마 시장이 서 있었다.
사람들의 얼굴은 대부분 활기차 보였지만 그중에서도 명백히 이질적인 사람도 눈에 들어왔다.
넝마와 같은 백의를 입고 맨발로 서성이는 사람들이 거리 구석을 음습하게 배회하고 있었다.
일부는 등에 붉은 페인트로 내가 알아볼 수 없는 문자를 갈겨 적었다.
그 색감은 일전에 돌싱맨의 방공호의 벽에 걸린 것과 오싹할 정도로 닮아 있었다.
장교에게 물었다.
“저 사람들은 누군가요?”
“신도입니다.”
인터넷에서 배웠다.
불교도나 기독교도를 말하는 게 아니다.
군인이 말하는 신도는 몬스터를 숭배하는 만류귀종교의 광신도를 말한다.
군단파는 이미 꽤 오래 전부터 북한에서 넘어 온 광신도 세력을 받아들였다.
그런데 군단파 영역에서 광신도를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내 눈엔 그들이 인간으로 보이지 않는다.
“이쪽입니다. 김다람 팀장께서 일단 검진부터 받으라고 하시더군요.”
군인들은 나를 병원 앞에 떨궈놓았다.
과거에도 병원으로 쓰이던 건물인데 열린 문 안쪽의 복도를 보니 그럭저럭 구색을 갖춘 모양새였다.
“검진요?”
“말씀 못 들으셨습니까? 김다람 팀장님이 건강검진을 하실 거라고 말씀을 드렸다는데.”
그놈의 정신감정인가.
쓴웃음을 머금으며 병원 안으로 들어갔다.
예상과 다르게 병원에서는 전쟁 전에 흔히 하던 건강검진 검사를 실시했다.
혈압을 재고, 피를 뽑고, 체중을 재고, 이를 보여주고.
오줌과 변을 검사하기도 했다.
“내시경 하시겠습니까?”
“내시경도 되나요?”
“네. 무마취입니다.”
“좋습니다.”
그 이후에도 몇 가지 검사를 했다.
어웨이큰 유무를 판단하는 시트지 검사가 건강검진에 포함된 건 꽤나 흥미로운 변화였다.
그리고 마지막에 나를 기다린 건 역시나 정신과 전문의였다.
“인터넷 중독에 관해 들어보신 적이 있습니까?”
그는 다짜고짜 질문을 던졌다.
“요즘 같은 시대에는 참 성립이 어려운 현상입니다만 드물게 하루 10시간 이상씩 인터넷에 빠져 현실을 잊는 사람이 존재한다고 하더군요.”
의사가 나를 매의 눈으로 노려보며 묻는다.
“하루에 몇 시간 하세요?”
“저요?”
“네. 하루에 인터넷 몇 시간을 하시나요.”
“저 인터넷 안 합니다.”
“김다람 팀장님 말씀과는 다른 것 같습니다만.”
“9시간밖에 안 합니다.”
“아. 9시간 하시는군요. 그것도 좀 과하다고 생각하지 않나요?”
“하루가 아니라 일주일 동안 9시간입니다.”
“하루 한 시간 이상 인터넷을 하는 것부터가 인터넷 중독 현상의 전조라고 보고 있습니다.”
“이런. 하루에 10분씩 줄여야겠군요.”
마음에도 없는 헛소리를 하며 정신과 의사를 상대하고 있을 때였다.
거리에서 총성이 울려 퍼졌다.
총기를 찾아 시선을 돌리자 의사가 차분하게 말했다.
“걱정 마세요. 늘 있는 일이니까요.”
그의 말을 무시하고 창밖을 보았다.
사람이 쓰러져 있었다.
“사람이 죽은 것 같습니다만?”
내 물음에 의사는 혀를 찼다.
“아마 인천 쪽 사람과 영동 쪽 사람이 서로를 죽인 것이겠지요. 하루에도 몇 명이나 죽어 나갑니다. 검시도 안 하고 그대로 화장을 할 정도로요.”
의사가 차트를 펼치며 펜을 들었다.
“자, 그럼 원점으로 돌아와서 인터넷을 하다가 마음에 안 드는 글을 보면 막 화가 나고 가슴이 뛰고 몸이 부들부들해지는 경험을 느낀 적이 있습니까?”
“저는 인터넷과 현실을 철저히 분리하는 편입니다.”
“그럼 질문을 바꾸죠. 인터넷상의 인격, 이를테면 게임 캐릭터 같은 것에 자신을 투영, 과할 정도로 몰입하는 편입니까?”
“제가 생각하기에 저는 감수성이 뛰어난 사람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럼 다시 묻겠습니다. 인터넷상에서 함부로 욕설을 하는 편인가요? 이를테면 비틱이라든지, 아줌마라든지.”
“저는 철저히 서핑만을 합니다. 인터넷은 오로지 정보를 얻기 위한 수단이죠.”
“그렇군요.”
의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끝입니다.”
“어떻습니까?”
“아, 별 문제는 없겠죠.”
의사가 실없이 웃었다.
“요즘 세상에 누가 인터넷을 할까요?”
“블라인더 있지 않습니까?”
“아, 그 역겨운 사이트요?”
의사는 다리 하나가 부러져 억지로 용접한 흔적이 있는 안경을 끼고 있었다.
안경알은 빛 반사 코팅을 한 최근의 것과 다르게 전통적인 방법으로 만든 모양인지 알 자체가 굵었고 빛의 각도에 따라 심하게 번들거렸다.
“한 가지 개인적인 질문을 드려도 되겠습니까?”
지금도 그 안경알이 번쩍였다.
고로 나는 그 너머에 그가 무슨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지 알지 못했지만 곧 바깥에 구름이 꼈는지 빛으로 번들거리던 안경알 너머의 시선이 다시금 내 눈에 들어왔다.
그는 내 옷깃에 붙은 황금양털을 보고 있었다.
“박규님은 헌터라고 들었습니다만.”
그가 시선을 황금양털에 고정한 채 느릿하게 물었다.
“네. 그런 일을 했었죠.”
“과거형을 쓴다는 건 이제는 안 한다는 말씀입니까?”
“은퇴해서요.”
“아, 그렇군요. 그런데 얼마나 죽이셨습니까?”
“네?”
“몬스터요.”
황금양털을 뚫어지게 쳐다보던 의사의 시선이 내 얼굴을 똑바로 응시했다.
그 시선엔 아주 잠깐 차가운 적의가 묻어 나왔다.
“······남들 하는 것만큼 처치한 거 같네요.”
“그렇군요.”
의사가 차트를 덮었다.
“가도 좋습니다. 박규 헌터님.”
진료실을 나오면서 나는 방 전체를 빠르게 눈으로 훑었다.
의심 가는 물건은 없다.
하지만 저 의사는 의심이 간다.
아니, 저 의사만이 아니다.
거리 밖으로 나오자 하얀 옷을 입은 사람들이 내 앞을 지나가고 있었다.
하나 같이 넋을 잃은 눈빛.
일부는 얼굴에 재를 발라 몬스터와 같은 회백색을 머금고 있었다.
“······.”
내가 작년에 서울에 갔을 때 서울은 몬스터만이 존재하던 혹한의 폐허였다.
이제 서울은 사람이 돌아와 예전처럼 사람이 사는 도시로 돌아왔지만 내 눈에 비친 이 도시는 내가 경험했던 혹한의 폐허보다 더욱 싸늘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