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a House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221)
아포칼립스에 집을 숨김-221화(221/466)
95. 징조 (3)
“어디 가냐? 리허설 끝났냐?”
밝은 표정으로 보아 디펜더는 아직 전방에서 일어나는 일을 모르는 것처럼 보였다.
“아직 끝나진 않았지만 할 일이 있어서 말이야. 집으로 가야겠어.”
“여기까지 왔는데 내 동생 한 번 보고 가야지?”
“동생, 여기에 있냐?”
“응. 병원에 있어.”
“몸 많이 안 좋냐?”
“안 좋다기 보다는 좀 성가신 병에 걸렸지.”
“무슨 병이길래?”
“종양. 암까지는 아니고. 암이 되기 직전 정도?”
“저런.”
역시 그런 사정이 있어서 군단파에 의탁한 건가.
디펜더 같은 녀석이 그리 쉽게 남 밑에 들어갈 성격은 아닌 것 같았는데 이제야 이해가 간다.
“큰 건 아니고. 종철이 덕분에 조기에 발견해서 빠르게 치료할 수 있었어. 이제 사실 다 치료가 끝난 것 같기도 하고.”
“개똥도 쓸 때가 있구만.”
“그 녀석. 사람이 좀 이상해서 그렇지 알아둬서 나쁠 건 하나도 없는 놈이야.”
그 디펜더가 재차 나에게 권유했다.
“다정이가 너 보고 싶다는데 어때? 지금 갈까?”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잠시 고민 끝에 디펜더에게 사실을 이야기했다.
“뭐? 몬스터······? 대형 무리가 이곳에 온다고?”
아니나 다를까 금시초문이라는 얼굴.
“말 나온 김에 함께 도망가자. 네 방공호 청소 도와주지.”
내 제의에 디펜더가 망설임을 드러냈다.
“그게 말이지.”
그가 한숨을 내쉬며 하늘을 응시했다.
“아직 치료 한 번이 더 남았어.”
“그 치료가 언제 있지?”
“이틀 뒤.”
“현충일?”
“응.”
“안 받으면 안 되는 거지?”
“어. 그래도 항암치료거든. 여기 아니면 받을 수가 없어. 이왕 치료 받는 거 확실하게 해결해야지.”
어떻게 해야 하나.
가장 편한 방법은 모든 걸 무시하고 내 영역으로 냅다 달리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그럴 수가 없다는 건 누구보다 나 자신이 잘 알고 있다.
내 사람이 위험에 처했는데 나 혼자 살자고 믿음과 신의를 저버리진 않겠다.
“······그럼 이렇게 하자.”
디펜더에게 계획을 이야기했다.
“그건 좀 부담이 될 수도 있겠네. 군단파와 완전 척 지는 건 물론이고.”
“하지만 대규모 몬스터 무리가 도시를 덮치면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은 손에 꼽을 거야.”
숨 쉬는 것처럼 대량 살상 공격을 가하는 중형종 몬스터가 도시를 장악하는 순간 대부분의 인간은 죽는다.
도시가 점령당할 때 탈출하면 된다고 물을 사람도 있겠지만 무질서 상태에 놓인 도시를 빠져나가는 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차량으로 가려 하면 최소한 수십 명이 차에 달라붙을 것이고 도보를 이용한다고 해도 언제 기회주의적 약탈자로 변신한 동료 인간에게 살해당할지 모를 일이니까.
최선의 방법은 아직 위협이 본격화되지 않은 시점에 한발 빠르게 달아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불가능해진 지금은 반 박자 빠른 탈출 말고는 답이 없다.
“차 한 대를 구해줘. 상태는 관계없어. 서울에서 100km 이상 거리를 2시간 안에 벌릴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해.”
“······어쩔 수 없겠네.”
디펜더는 100% 내 계획에 동의하는 건 아니지만 그 또한 중국에 있었던 헌터다.
몬스터에 점령당한 도시를 몇 번이고 보았을 것이다.
모종의 합의를 끝낸 후 나는 도시에 잠적하기로 했다.
*
전쟁 전이나 전쟁 후나 지하철은 중요한 시설이다.
지하철은 대단히 뛰어난 대규모 방공호다.
입구가 많아 인간 상대로 수비하기에는 좋지 않지만 좀비 같은 지능이 낮은 적 상대로는 여간한 입구를 바리케이드로 틀어막는 방법으로 킬존과 유사한 방어지대를 구축할 수 있다.
내가 잠적하기로 정한 개봉역 역사는 이미 한 무리의 피난민에 의해 점거된 상태였다.
< 제3 피난소 >
전쟁 전에 굴러다니던 정치 현수막을 찢어 정치인과 그들의 유치한 문구를 싹 지우고 만든 깃발이 입구에 휘날리고 있었다.
그 깃발 아래 총기를 든 사람들이 저마다 살벌한 얼굴로 이쪽을 노려보고 있었다.
“누구지? 못 보던 얼굴인데.”
제3 피난소라는 문구는 확실히 장식적인 문구는 아닌 모양이다.
문지기를 맡는 볼이 움푹 들어간 젊은 남성은 그들 피난소의 인물 대부분을 기억하는 것처럼 보인다.
“갈 곳이 없어 그런데 이틀 정도 지낼 수는 없을까?”
“우리는 같은 피난소 출신만 받아.”
얼굴 전체를 덮는 가스마스크를 쓴 여성이 싸늘하게 말했다.
그녀의 손에 들린 무기는 판사킬러였고 등에도 여분의 판사킬러를 메고 있었다.
“야박하구만. 나도 인천 출신이긴 한데.”
“몇 피난소?”
남자가 물었다.
“······헌터 거리.”
거짓말은 아니다.
하루 만에 도망 나오긴 했지만 거기에 집을 얻은 건 명백한 사실이니까.
“헌터?”
사내가 물었다.
고개를 끄덕였다.
현재 내 옷깃의 황금양털은 제거된 상태다.
그걸로 날 알아보는 사람을 만나는 것도 곤란한 일이지만 귀중품을 노리고 사람을 죽이는 잠재적 범죄자가 전쟁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아진 게 지금이라는 세상이니까.
“헌터라면 광신도는 아니겠네?”
사내가 냉소를 머금으며 물었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바닥에 굴러다니는 깡통 하나를 줍더니 손바닥 위에 올려놓았다.
“그러면 이 깡통을 한 번······.”
탕!
모두가 반응하기도 전에 깡통 중앙에 바람구멍을 냈다.
8m 거리 내에서 1초 안에 깡통 중앙에 바람구멍 하나 못 낸다는 건 헌터 실격이다.
순간 사람들의 경직이 느껴졌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사내가 곧 미소 지었다.
“진짜배기긴 한 모양이네.”
“들어가도 되나?”
“아직 안 끝났어. 면접이 남았거든.”
“면접?”
“어. 안에 헌터 한 분이 더 계셔.”
총기를 든 사람들이 내 옆과 뒤에 섰다.
안내를 맡은 건 가스마스크를 쓴 작은 체구의 여자였다.
마스크의 둔탁한 마찰음 덕에 목소리의 원형이 일그러졌지만 나이는 그리 많은 것 같지가 않다.
그들은 나를 끝없이 이어지는 어두운 계단에서 탁 트인 대합실로 안내했다.
곳곳에 텐트와 비닐, 골판지 상자로 이루어진 벽과 함께 조금은 견디기 어려운 생활감으로 뭉친 악취가 코끝으로 파고들었다.
그들은 옛 직원실로 날 안내했다.
그 직원실엔 한 사내가 의자에 앉아 등을 돌린 채 목을 젖히고 반쯤 누운 상태로 졸고 있었다.
“아그리파.”
여자가 그 사내를 부르자 그가 고개를 젖힌 상태 그대로 손짓했다.
수화.
내가 파악한 바로는 상황 보고다.
여자가 답했다.
“헌터라고 주장하는 사람을 데리고 왔어.”
사내가 다시 손만을 움직였다.
내가 파악한 바로는 숫자와 순서.
뭔가 모호하지만 가스마스크를 쓴 여자는 이 친구와 합을 많이 맞췄는지 어렵지 않게 그의 수화를 해석했다.
“기수를 묻는데?”
그녀가 날 보며 물었다.
“13기.”
“13기?”
그제야 그 사내가 입을 열었다.
그런데 이 목소리가 어딘가 귀에 익다.
아니나 다를까 사내가 의자를 돌려 얼굴을 드러내자 나는 한 번에 그의 정체를 파악했다.
“천영재?”
내 후배 천영재다.
헌터 거리에 있었던 촐랑거리던 녀석.
왜 이 친구가 여기에 있는지는 깊게 생각하지 않도록 하자.
기준이고 뭐고 모든 건 무너지는 세상 속에서 인간이라는 존재는 해초처럼 떠밀리고 떠밀릴 뿐이니.
“다 나가.”
천영재가 모두를 내보냈다.
사람들은 그의 판단에 의아해 했지만 천영재가 그들에게 행사하는 영향력은 상당했다.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그의 명을 따랐다.
사람들이 사라지자 천영재가 특유의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머금었다.
“아니, 박 선배. 여기는 무슨 일이야? 설마 드디어 나를 등용하실 마음이 든 거야?”
“뭔 소리야.”
“······두 번은 더 오셔야 합니다. 저 같은 와룡을 데리고 가려면.”
볼이 움푹 들어간 것 빼면 여전히 자기 색깔이 화려한 친구다.
헌터의 장점 중 하나다.
사람이 늘 낙천적으로 있을 수 있다는 건 말이다.
그렇지 않은 인간이 김다람 같은 히스테리성 정신질환을 안게 된다는 걸 우리는 경험으로 잘 알고 있다.
“이틀만 여기서 지내려고 하는데.”
어차피 둘만 있겠다 목소리를 낮추고 천영재에게 현재 일어나고 있는 상황을 이야기했다.
물론 등대를 포함해서.
“전투부적격 어웨이큰을 따로 수용하는 기관을 만든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은 있었지만 그런 식으로 써먹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어.”
천영재는 전장에서 오랫동안 굴러먹었고 국위원 내부 사정도 잘 아는 친구다 보니 빠르게 상황을 이해했다.
“우리도 달아나는 게 좋겠네. 안 그래? 박 선배?”
“하지만 갑자기 피난소 전체가 움직이면 군단파에서 가만있진 않겠지.”
“그것도 그렇구만.”
천영재는 약간 살이 빠진 것 말고는 특별한 변화는 없었다.
그동안 다사다난한 일이 있었을 텐데 원만하게 살아가고 있는 걸 보니 대견도 하고 해서 물어보았다.
“어떻게 여기까지 흘러든 거냐?”
“우민희가 우리를 버리고 갈 때만 해도 다들 헌터 거리에 머물렀어. 그런데 광신도 싸고도는 군벌이 정권을 잡고 그 꼴 보기 싫은 김다람이 대장 노릇 하려 드는데 누가 참겠어? 뿔뿔이 흩어졌지.”
“광신도 문제, 상당히 심각한 모양이네.”
알고는 있다.
그것들이 세상 전반에 어떤 문제를 일으키는지.
중국인 헌터가 순수한 적의를 드러낸 것에 대해 나는 아무런 반감이 없다.
그들은 죽어도 싼, 인류의 종양이다.
“······미친 소리 지껄이며 포교하는 것까진 참겠는데 그 새끼들 아이와 여자를 납치하더라고.”
“그런 짓까지 하는 모양이네.”
“우리 피난소도 몇 명 납치당했어. 나랑 피난소 남자들이 현장을 적발했지. 뭐, 상상에 맡기지. 딱히 입에 담을 만한 내용은 아니니. 일종의 인신공양이지.”
시종일관 가볍게 굴던 천영재지만 광신도의 만행을 이야기할 때만은 그의 얼굴은 무서우리만치 차갑게 굳어 있었다.
“김병철도 그것들의 문제점을 파악한 모양이지만 만류귀종교는 이미 너무 깊게 군단파 안에 박혀 있어. 이미 고위 장교 몇 명이 포섭됐다는 소문까지 돌고 있는 실정이야. 살려면 수술을 해야 하는데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수술을 해야 한다는 소리지.”
“만만치가 않네.”
“탈출은 생각하고 있었는데 박 선배 덕분에 일정을 앞당기게 됐군. 피난소 캡틴에게 이야기를 해보지. 편하게 지내. 선배 방공호만큼은 안락하진 않겠지만 말이야.”
천영재가 빙그레 웃으며 나에게 뭔가 내밀었다.
침낭이다.
“필요하지?”
그 미소를 본 나는 오랜만에 우리 학교의 끈끈한 동질감을 느낄 수 있었다.
피난소로 변한 지하철 역사 안엔 몇몇 한정된 공간을 제외하면 방이라고 부를 만 한 공간이 없다.
사람들은 저마다 덜 춥거나 덥고, 냄새가 그나마 없는 곳에 텐트를 치고 골판지로 벽을 세워 나름의 생활 구역을 구분하고 있었다.
가볍게 오느라 텐트고 뭐고 아무것도 들고 오지 않았지만 천영재에게 받은 침낭이 있는지라 구석진 자리에 침낭을 깔고 잠시 누워 휴식을 취했다.
“······.”
짧지만 많은 일이 있었다.
하지만 깊게 생각하진 않겠다.
낯선 곳에서 하루가 지나갔다.
*
“내일은 역사적인 한중 전쟁 종전 조인식이 있을 예정이에요. 중국 정부는 지난 3년 6개월 동안 양국은 물론 세계에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었다는 걸 통렬하게 반성한다고 하면서 무조건 항복과 더불어 만주 지역에 대한 소유권을 한국 정부에 양도하는 조건을 제시했습니다. 이에 김병철 통합본부장은 명시적인 의사를 드러내진 않았지만 들려오는 이야기를 보면 아마, 우리 민족이 발해 이후 잃어버린 만주 땅을 되찾을 수 있지 않을까요?”
군단파의 라디오 방송은 내가 군단파라는 군벌 집합체에 대한 악감정을 해소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특히 나는 메인 나레이션을 맡은 여성 진행자의 단정하고 기품 있는 목소리에 매력을 느꼈다.
같은 목소리가 내 것이 아닌 다른 사람의 라디오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 방송을 듣는 사람들은 제각각이었다.
일부는 코웃음을 치는 한편 일부는 그래도 중국 놈들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줘서 즐거워하기도 했다.
특히 만주를 얻는다는 소식은 나이 든 사람들에게 크게 어필했다.
내가 궁금한 라디오의 진행을 맡은 사람의 정체다.
호감을 느낀다기보다는 한번 보고 싶었다.
저런 방송을 하는 사람은 어떤 모습일까 하고.
그렇게 잠시 상상의 나래에 잠겨 시간이라는 익숙한 적을 죽이고 있을 때였다.
콰쾅!
폭음이 들려왔다.
가깝다.
지하철 역사 바로 위를 포탄이 때리고 지나간 것으로 보인다.
왜애애애애애앵—
역사 안에서 사이렌이 울려 퍼졌다.
이런 일에 익숙한지 여성들과 아이들은 당황하기는커녕 나보다 더 침착하게 최소한의 짐을 챙기고 역사의 가장 깊숙한 곳으로 향했다.
싸울 수 있는 남성과 여성들은 총을 든 채 지하철로 통하는 입구로 달려갔다.
사람들을 따라가던 중 천영재와 마주쳤다.
“무슨 일이지?”
“확인 중이야.”
우리는 피난소가 개방한 유일한 출구인 1-3번 출구 뒤에 마련된 킬존에 몸을 숨긴 채 바깥에서의 소식을 기다렸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믿어야 할 수단은 라디오다.
그러나.
“만주를 다시 우리 민족이 차치할 수 있다면 북한 수복과 더불어 우리 민족이 제2의 도약을 이룰 수 있는 커다란 계기가 될 거예요. 만주엔 다량의 천연자원은 물론이고 발해만엔 상당한 경제성을 갖춘 천연가스······.”
라디오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한 사내가 라디오를 켜 놓은 사내에게 끄라고 명했다.
실제로 지금 상황에서 라디오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먼 곳에서 포성이 들려왔다.
우리와는 무관한 것으로 보인다.
곧 지하철 밖으로 정찰을 나간 사람들이 돌아왔다.
그들은 내가 전에 보았던 다섯 명의 문지기다.
“군대가 광신도를 잡아들이고 있는 모양이야.”
정찰을 다녀온 사내가 마스크를 벗으며 노곤한 표정으로 계단 위에 걸터앉았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대단히 살벌해. 아무도 밖에 나가지 않는 걸 추천하지.”
사내의 말이 끝나자마자 킬존에 서 있단 누군가가 소리쳤다.
“누가 라디오 좀 켜.”
“헛소리나 하고 있던데?”
“다시 켜 봐.”
사람들은 라디오를 다시 켰다.
그러나 라디오에서는 이 상황을 설명하는 단 한 줄의 설명도 해주지 않았다.
음울한 긴장 속에서 낮이 지나갔다.
그리고 그날 밤.
치지지직-
디펜더의 교신기가 간만에 작동했다.
“스켈톤. 이쪽은 다 준비됐다. 번호가 3130인 구급차를 확보했다. 그 안에 들어가 있어. 동생의 치료가 끝나는 대로 데리고 나올게.”
그 병원은 내가 잘 아는 곳이었다.
김다람이 나에게 인터넷 중독 증세를 치료해보겠답시고 억지로 보낸 그 병원이다.
“그럼 신세지고 간다.”
“벌써 가는 거야? 이틀 새는 거 아니었어?”
“일정이 변해서 말이야.”
“그래. 여기서 나오면 한 번 선배 방공호 찾아갈게.”
천영재가 어웨이큰 특유의 은은하게 빛나는 동공을 드러내며 씨익 웃었다.
“와라. 직접 농사 지은 걸로 밥 한 끼 대접하지.”
거리는 개미 새끼 한 마리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고요했다.
곳곳에 군인들의 차량이 오가는 게 보이지만 의외로 거리에 군인의 숫자는 많지 않았다.
이유야 뻔하겠지.
다 최전선으로 보냈을 것이다.
김병철의 화려한 업적을 위한 방패막이로 말이다.
덕분에 문제의 병원에 어렵지 않게 접근했고 구급차를 발견했다.
구급차의 문을 열고 들어가기 직전 호흡을 멈추고 권총을 꺼냈다.
안에 누군가 있다.
누군가 억지로 시동을 켜려고 시도하고 있다.
“아씨! 왜 안 걸려?!! 이 키가 맞는데!”
디펜더는 아니다.
다정이도 아니다.
내가 모르는 제3자다.
창문을 통해 안을 확인하는 우를 범하는 대신 뒤편으로 들어가 후측 도어가 열리는지 아주 미세하게 확인했다.
걸리는 게 없다.
열린다.
호흡을 가라앉히며 문을 염과 동시에 총을 겨누었다.
얄궂게도 아는 얼굴이 있었다.
나와 상담했던 정신과 의사다.
그만이 아니다.
그의 아내와 어린 아들들 – 쌍둥이 -이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나를 응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