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a House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222)
아포칼립스에 집을 숨김-222화(222/466)
95. 징조 (4)
“다, 당신은?”
그의 물음에 답하는 대신 교신기로 디펜더에게 물었다.
“나 말고 다른 손님이 있었나?”
“아니, 없어. 왜? 누가 있어?”
“불청객이 있네.”
“잠깐 기다려. 일단 차에서 내보내.”
총기를 겨누고 의사 가족에게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내려.”
“병원 관계자도 아닌 당신이 무슨 권리로 내게······.”
“내려.”
의사 일가족이 차에서 내렸다.
삭막한 분위기 속에서 의사가 갑자기 내게 고개를 조아렸다.
“저, 제발. 부탁인데. 눈감아 주시면 안 될까요? 이 차를 타고 여기를 떠나야 합니다. 안 그러면 우리는 다 죽어요.”
발소리가 들렸다.
디펜더다.
“뭔가 이상한데?”
그가 병원 쪽에서 나왔다.
“사람이 없어.”
디펜더가 나와 의사를 발견했다.
그가 의사에게 물었다.
“여기 있던 의사와 간호사들 다 어디 갔지?”
“전부 춘천으로 갔습니다.”
“춘천?”
“네. 조만간 몬스터가 여기를 덮친다는 이야기가 있어서.”
의사의 말에 딱히 거짓은 없어 보였다.
실제로 몬스터가 오고 있는 건 사실이기도 하고.
문제는 여기 다른 의사가 없다는 이야기는 다정이가 치료를 받지 못한다는 걸 의미한다.
“······치료를 한 번 받긴 받아야 하는데.”
디펜더가 난감해하는 것도 이해가 안 가는 것도 아니다.
항암치료라는 건 할 때 확실히 해둬야 한다.
어중간하게 미완의 상태로 끝을 내면 반드시 문제가 생긴다.
디펜더에게 말했다.
“그냥 춘천으로 가는 게 어때? 거기서 치료를 다시 받는 거지.”
“······그것도 방법이긴 한데.”
디펜더가 쓴웃음을 머금었다.
“좀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내가 군단파에 들어간 이후 큰 전과를 세우진 못했어. 춘천의 1급 병원 놔두고 여기까지 온 것도 내가 칠칠치 못했기 때문이지······.”
디펜더가 차 앞에 쪼그려 앉았다.
그가 쓴웃음을 머금은 채 말을 이었다.
“다시 춘천에 간다고 해서 병상을 얻을 수 있을 거 같지 않아.”
그를 가만히 바라보다 불쑥 물었다.
“항암치료라는 거, 이번 1번이 마지막은 아니지?”
왠지 그럴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디펜더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거의 다 잡긴 했지만 의사 말로는 3개월은 경과를 보는 게 좋다고 하더라고.”
“그렇군.”
의사 가족에게 다가갔다.
그들에게 키를 내밀었다.
“스켈톤?!”
디펜더가 소스라치게 놀랐지만 내 행동은 흔들리지 않는다.
“뭐 하는 짓이야?”
디펜더가 벌떡 일어나 내 앞에 섰다.
그를 향해 씨익 웃으며 한마디 했다.
“그러니까 전공이 필요하다 이거지?”
“전공?”
“그래. 다정이가 최고의 치료를 받으려면.”
김병철 같은 정치군인 놀음에 어울릴 생각은 없다.
하지만 그것이 내 친구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나는 망설이지 않을 것이다.
*
“선배. 아직 서울에 있었네? 난 또 그 중앙에 변기 있는 그 방공호로 돌아간 줄 알았는데.”
예상대로 김다람은 날 보자마자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녀가 내 표정을 살피며 묻는다.
“무슨 바람이 분 거야?”
그녀도 난감할 것이다.
대규모 몬스터 공세를 경험한 적은 있겠지만 지휘관의 입장에서 싸운 적은 그리 많지 않을 테니 말이다.
나 같은 경험 있는 사람이 옆에 있다면 당연히 반가울 수밖에.
“이 많은 사람 죽게 내버려 두는 것도 마음이 편치 않고, 게다가 치료를 해줬으면 하는 사람이 있어.”
“치료? 누굴?”
“그건 나중에 이야기하지. 어차피, 이 상황이 종료가 되야 치료고 나발이고 가능할 거잖아?”
“그건 그렇지.”
김다람과 함께 지도를 응시했다.
대규모 몬스터 공세라는 상황은 그 자체로 암울하기 짝이 없는 일이지만 지형만 놓고 보면 아주 절망적인 상황까진 아니다.
우리가 지켜야 할 지역이 서울 전체라면 쉽지 않겠지만 지금 우리가 장악한 곳은 서울 일부분이고 또 그 상당 부분이 한강이라는 자연방벽에 의해 보호받고 있다.
몬스터는 물을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
아마 다리로 몰려올 것이다.
가장 가까이 있는 다리는 양화대교와 서강대교.
몬스터가 다리로 몰려온다면 좁은 병목 지점을 간이 킬존으로 쓸 수 있을 것이다.
“몬스터가 강을 넘지 못하게만 한다면 생각보다 쉬운 싸움이 될 수도 있겠어.”
김다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몬스터를 강에서 막을 수 있다면 선배 말대로 쉬운 싸움이 될 수 있을지도.”
“행사는 언제 하지?”
“곧.”
김다람이 커피를 마시며 내 눈치를 살폈다.
“선배도 참석할 거야?”
“······참관만 하지.”
대규모 몬스터 무리가 강 건너에 속속 집결하고 있지만 국회의사당 안은 그런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시끌벅적했다.
자리의 주인공은 역시 현 대한민국 최고 권력자 중 하나인 김병철이다.
대장 계급이 두드러지는 군모를 쓴 그는 동료 장군들과 함께 낮은 목소리로 모종의 이야기를 교환하고 있었다.
뒤이어 시간이 됐다.
장군들이 자기 자리로 돌아가고 김병철도 자신의 좌석으로 돌아갔다.
의사당 및 관람석에 앉은 수백 명의 사람이 보는 가운데 중국인들이 나타났다.
일부는 중국 군복을 입고 있었는데 일부는 자유분방한 사복 차림을 하고 있기도 했다.
그중엔 전에 대화를 나눈 경험이 있던 여자 헌터도 포함되어 있었다.
“지금부터 중국 정부의 항복 조인식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사회자의 설명대로 중국 대표가 테이블 한 쪽에 앉았고 반대 쪽에 한국인 대표가 앉았다.
당연한 일이지만 그 한국인 대표 중엔 김병철이 포함되어 있었다.
“지금, 김병철 대장께서 중국 정부가 제시한 조건을 검토 중입니다.”
사회자는 김병철 일거수일투족을 설명했다.
“방금, 김병철 대장께서 마음에 안 드는 조항을 발견한 것 같습니다.”
김병철이 서류 한쪽을 들고 중국인에게 뭐라고 떠들었다.
“김병철 대장께서 불합리한 조항에 대해 중국 대표들에게 수정을 요구하셨습니다!”
이에 의사당엔 갈채 소리가 울려 퍼졌다.
나라 중대사를 허투루 처리하지 않고 꼼꼼하게 두루 살피어 처리하려는 김병철에 대한 감사와 응원의 표시였다.
“······.”
딱히 할 말은 없다.
어차피 중요한 건 이다음의 일이다.
왜애애애애애앵—–
아니나 다를까, 쇼의 종료를 알리는 신호음이 시끄럽게 울려 퍼졌다.
군인들이 의사당으로 앞다투어 몰려 왔다.
그들이 김병철에게 뭐라고 보고했다.
김병철은 난감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확실히 김병철은 여기에 모인 사람의 안전보다 자신의 쇼를 완성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상황이 지금보다 만만했다면 행사를 강요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상황은 그리 녹록치 않다.
콰쾅! 쾅!
야포의 포성이 들려오자 장내의 분위기는 한순간에 얼어붙었다.
전투가 시작됐다.
*
“다수의 몬스터 강안에 속속 집결 중. 화상 자료를 연결하겠습니다.”
“중형종 다수 확인.”
“기갑연대 서울에 배치 중. 명령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의사당은 하나의 작전 회의실로 변했다.
항복 조인식에 참관하러 온 장군과 장교들은 다들 단상 아래 서서 분주하게 의견을 교환했고 쉴새 없이 전령들이 의사당을 오가며 실시간으로 들려오는 소식을 교환했다.
현재 전황은 소강 상태다.
몬스터의 대군은 강 건너에 잠복한 채 별다른 움직임을 보여주지 않고 있고 일부만이 다리에 몰려들어 스스로 포격을 벌곤 했다.
이대로 시간을 끌 수 있다면 참 좋겠지만 나는 알고 있다.
몬스터라는 족속들이 그리 만만한 친구들이 아니라는 걸.
놈들에겐 어떠한 지성도 사고의 흔적도 찾아볼 수 없지만 아주 가끔 몬스터는 인간의 허를 찌르는 기발한 방법을 사용하곤 한다.
“선배.”
김다람이 내게 다가와 캔커피 하나를 내밀었다.
제조일자를 보니 전쟁 전에 만든 것.
사양 않고 받아 들었다.
“확실히 다리를 틀어막으니 몬스터의 움직임이 무뎌졌어.”
“전에도 이 정도 공세가 있었냐?”
“아니. 산발적인 공세는 있었지만 이 정도로 본격적인 공세는 본 적이 없어.”
그녀는 커피를 마시며 창밖으로 보이는 한강변을 피로감이 묻은 눈으로 지그시 바라보았다.
“······이대로 시간을 끌 수 있다면야 큰 지출 없이 몬스터의 침공을 막아낼 수 있겠지.”
“그랬으면 좋겠군.”
전황이 소강 상태에 놓이자 김병철의 조급증이 다시 불붙었다.
“몬스터가 강을 못 건너온다니. 그럼 행사 계속 진행해도 되는 거 아니야? 어이. 김팀장. 어떻게 생각해?”
그는 김다람을 불러 몇 번이고 현재 상황이 안전하다는 걸 확인받으려 했다.
그때마다 김다람은 위험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를 들어 행사 재개에 반대했지만 그것도 잠시.
분위기는 점점 김병철을 향해 흘러가고 있었다.
특히 김병철의 작전 장교라는 사람들이 행사 재개를 강하게 주장했다.
“몬스터가 물을 두려워한다면 녀석들이 여기에 올 방법은 거의 없어.”
“한강의 모든 다리를 모니터중입니다. 일부 파괴된 교량도 있지만 특정 교량에서 대규모 몬스터의 이동이 발견되면 즉시 포격으로 제압할 수 있습니다.”
“특작부대 한강에 전개 완료. 파괴가 필요한 교량이 있다면 즉시 파괴할 장비를 갖추고 있습니다.”
내가 강을 주목한 것처럼 사람들도 이제 강만을 주목한다.
강만 틀어막으면 이곳을 지킬 수 있다.
합리적인 의견이지만 몬스터는 합리성과는 전혀 거리가 먼 존재다.
김병철을 비롯한 군인들이 중국인과 더불어 행사를 재개하려고 할 때였다.
전령 하나가 헐레벌떡 의사당 안으로 들어왔다.
“서울 동남부에서 대규모 몬스터 무리 발견! 다수의 몬스터가 육로를 통해 이쪽으로 전진하고 있습니다!”
우려했던 일이 일어났다.
서울을 향해 남하한 일부 몬스터가 아예 멀찌 감치 서울을 우회, 육로를 통해 군단파의 장악 지대를 향해 전진하고 있다.
제아무리 김병철이 고집이 강한 사람이라고 해도 이런 상황에서까지 행사 재개를 고집하지는 않았다.
“어떻게 해야 하나?”
그는 몬스터를 상대한 경험이 있다.
아마 킬존 등에서 화력으로 대규모 몬스터를 섬멸했을 것이다.
하지만 몬스터를 상대로 한 야전 경험은 거의 없을 것이다.
“선배.”
김다람이 내게 다가왔다.
“이젠 어떻게 해야 하지?”
“어차피 사람을 뒤로 물리진 않을 거 아니냐?”
“그, 그건 그렇지.”
“그럼 방법은 하나뿐이지.”
포격뿐이다.
놈들이 몰려오기 전에 최대한 많은 수를 포격으로 줄인다.
드론 여러 대가 하늘 위로 떠올랐다.
국회 의사당 너머에 수십 문의 포대가 일제히 동쪽을 향해 방열했다.
현재 서울 동남부에 살아 있는 사람은 없고 배치된 군인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는 드론만이 우리의 눈이다.
군단파가 가진 드론은 군용 드론답게 한 눈에도 튼튼해 보였고 신뢰성이 느껴졌다.
“모든 몬스터를 포격으로 죽일 필요는 없어. 애니힐레이터 같은 대규모 피해를 유발하는 중형종부터 우선적으로 처리하는 게 좋을 거야.”
김다람과 함께 모니터를 보며 몬스터가 우리 눈앞에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곧 적지 않은 몬스터가 도로를 따라 서쪽으로 이동하는 게 눈에 들어왔다.
“······역시 몬스터는 우리를 노리고 있네.”
김다람이 불쾌감을 담아 중얼거렸다.
“진짜 저것들, 생각을 하는 거 아니야?”
몬스터에겐 뇌와 비슷한 기관이 없고 따라서 그것들은 인간처럼 생각하지 않는다는 게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실제로 그것들의 행동을 보면 동물이라기보다는 식물에 가까운 지나칠 정도로 단순한 움직임만을 보여준다.
하지만 일부 헌터는 몬스터도 인간처럼 생각을 한다고 믿는다.
특히 지금 같은 몬스터에게 허를 찔리는 상황에서 몬스터가 스스로 생각한다는 주장은 더 힘을 얻는다.
하지만 나는 몬스터에겐 이성이 없다고 믿는다.
대부분에겐 말이다.
하지만 극소수 생각을 하는 놈이 있을 것이다.
내 눈에서 놓쳐버렸던 그 녀석.
내가 장군형이라 명명한 그놈은 분명 사고 능력이 있으며 그 사고를 바탕으로 다른 몬스터를 움직이는 능력이 있다.
어디까지나 가설에 불과한 이야기겠지만 말이다.
“드론 집단 적 몬스터 무리를 포착.”
“포격 실시!”
의사당 입구에 방열한 포대가 일제히 불을 뿜었다.
굉음을 내며 하늘로 날아간 포탄은 꽤 긴 시간을 지나 드론의 중계 화면에 그대로 드러났다.
콰쾅! 쾅!
포탄의 비가 몬스터의 행렬을 강타했다.
몬스터는 조건반사적으로 반사역장을 펼쳐보지만 반사할 대상도 없고 그 자체로 무자비한 파괴의 소용돌이 속에서 힘없이 차례로 스러져갔다.
“와아아아!”
“역시! 포병은 전장의 여왕이야!”
의사당 안에서는 군인들의 환호성이 들려왔다.
하지만 그 환호성은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펑! 펑!
우리에게 전장의 화면을 제공하던 드론이 속속들어 터져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몬스터 중 일부가 전자기계를 파괴하는 권능을 사용한 모양.
몬스터에게 그러한 권능이 있다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이렇게 빠르게 대응할 것이라고는 나조차 생각하지 못한 일이다.
“큰일 났어. 드론이 침묵했어. 이제는······.”
김다람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내 후배는 강한 헌터지만 강한 지휘관은 아니다.
그녀는 자기 일은 곧잘 수행하지만 집단을 책임지고 판단하는 일엔 약점을 드러낸다.
시간이 흐른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세월의 경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김다람은 김다람이다.
“김다람.”
그녀를 불렀다.
“선배.”
그녀가 구원을 바라는 눈으로 날 바라본다.
“드론이 안 되면 사람을 보내는 수밖에.”
“사람을?”
김다람이 소스라치게 놀랐다.
“동작구 너머부터는 사람이 안 살아. 몬스터와 뮤테이션, 좀비 말고는. 그런 곳에 사람을 보낸다고 해도 관측은커녕 신종 몬스터에게 즉시 살해당할 거야.”
“아니, 사람이 사는 곳이 단 한 군데 있어.”
“어, 어디?”
빙그레 웃으며 지도 위에 사선을 그어 보였다.
“?”
서울 동남부는 인간의 손을 벗어났지만 그럼에도 꿋꿋이 억척스러운 인간이 삶을 이어나가는 곳이 있다.
“기울어진 아파트 알고 있지?”
“더 호프?!”
고개를 끄덕였다.
“거기서 내가 관측을 맡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