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a House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224)
아포칼립스에 집을 숨김-224화(224/466)
95. 징조 (6)
모든 사람이 말한다.
자신의 집만큼 좋은 곳은 없다고.
m9도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인간이 기대하는 평범한 경사를 아득히 넘어선 m9의 집을 그 이외의 사람이 탐험한다는 건 대단한 각오를 필요로 하는 일이었다.
“뭐하냐? 스켈톤? 안 들어오고?”
복도 입구에서 멈춰버린 날 향해 m9가 돌아봤다.
“아, 아니. 괜찮아. 곰곰이 생각해보니 차는 아까 마셨어.”
사실과 다르다.
나는 오늘 차를 마신 적이 없다.
단지 저 위험할 정도로 뒤틀린 경사진 곳으로 더는 들어가서는 안 된다는 위험 감각이 내면에서 맹렬한 경고를 날렸을 뿐이다.
“······.”
m9의 집은 컴퓨터 안에서 보는 것과는 또 다른 형태의 4차원적 마굴이었다.
어디를 밟고 어디를 잡고 움직여야 하는지 도무지가 와닿지 않을 뿐더러 조금이라도 실수하면 그대로 추락해 사망하는 죽음의 함정으로 가득 차 있다.
그곳은 고소공포증을 훈련으로 극복한 나조차 위험으로 가득 찬 곳이었다.
부스럭-
한 번 발을 잘못 들여 돌멩이가 천길 아래를 떨어지는 걸 본 이후로 나는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어이. 스켈톤. 뭐하냐? 안 오고. 차 한 잔 해야지”
m9는 내가 주저하는 걸 귀신같이 알아차리고 저 앞에서 씨익 웃으며 내가 들어오는 걸 기다린다.
그런다고 이 몸이 갈 필요는 없겠지.
m9의 아파트는 어디까지나 관측 거점으로 들린 것이지 m9의 생태사를 밝히기 위해 온 게 아니다.
“어이. 스켈톤. 왜 더 안 들어오냐? 설마 벌써부터 나의 더 호프에 압도당한 거냐?”
“······.”
“하긴, 우리 집에 와서 웃는 얼굴로 나간 녀석은 아무도 없지. 조금만 기다려봐. 차를 내올 테니까.”
m9가 신이 나서 안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바깥에서 굉음이 들려왔다.
무거운 건물이 무너지는 듯한 소리다.
이 주변에서는 흔하게 들리는 소리 같지만 더 이상 m9의 페이스에 휘말리고 싶지 않기에 즉시 더 호프를 빠져 나와 옥상으로 다시 나왔다.
“후우.”
그나마 바깥이 낫다.
스파이더 타입의 미로보다 더 뒤틀린 m9의 집과 다르게 바깥에서는 최소한 어디가 아래고 어디가 위인지는 구분할 수 있으니 말이다.
잠자코 난간에 기대 시간을 보내고 있자니 m9가 김이 모락 모락나는 차를 내왔다.
“설마하니 네 녀석과 이런 식으로 만날 줄은 몰랐네.”
m9와 나란히 난간에 걸터 앉은 채 아래로 펼쳐진 풍경을 보았다.
잿빛에 아무 것도 없는 폐허만이 펼쳐진 거리지만 m9의 얼굴엔 별다른 근심은 찾아볼 수 없었다.
“여기 처음 올 때만 해도 말이야.”
m9가 넌지시 운을 뗐다.
“선망의 대상이었지. 이 주변 일대는.”
그 순간 나는 이 친구의 손에 카메라가 켜진 휴대폰이 들려 있다는 걸 발견했다.
넌지시 그를 보며 물었다.
“뭐냐? 촬영하는 거냐?”
“곧 라이브! 아포칼립스! 잖아?”
“라이브 아포칼립스라······.”
“아무튼, 간만에 손님이 왔으니 소재로 써먹을 게 있으면 다 써먹어 줘야지.”
m9가 씨익 웃으며 날 보았다.
“요즘은 어떠냐?”
“뭐가?”
“살 맛 나냐?”
“살 맛이라······.”
내가 강조하는 생의 의지의 또 다른 표현인가.
글쎄다.
딱히 삶을 이어나가는 부분에서 맛이라는 걸 느낀 적은 없다.
하루하루의 충족과 만족, 소소한 즐거움 정도가 내가 하루를 살아가는데 필요한 자양분이 아닐까.
“딱히 재밌는 건 없지. 이제.”
m9의 차를 음미하며 솔직하게 말했다.
m9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예전처럼 인터넷이 재밌지가 않지. 사람도 줄어들었고 할 이야기도 많이 줄었으니. 멜론 마스크 녀석이 새로운 걸 만들려고 시도를 하는데 그때만 신기할 뿐이고 항상 비슷한 느낌에서 애매하게 끝나더라고. 그래.”
m9가 고개를 들었다.
“모든 게 어정쩡하지.”
어정쩡하다.
어쩌면 이 저물어가는 시대에 버려진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시원하게 죽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화려하게 끝을 내는 것도 아니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세상과 함께 시들고 죽어가는 걸 기다리는 지금 같은 세상에선 어쩔 수 없는 자연스러운 흐름이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적어도 m9는 그러한 흐름에서 벗어나려 발버둥치고 있었다.
“포격으로 몬스터 때려잡는다며?”
그가 휴대폰으로 서울 시내 곳곳을 촬영하며 내게 물었다.
“어. 그걸 위해 왔지.”
“그럼 시작해보자고. 좋은 그림을 최대한 많이 만들어보자 이거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직 포격을 요청할 정도로 몬스터가 많은 건 아니다.
놈들은 하남시 일대에서부터 서서히 무리를 지어 서진한다.
하지만 천천히 하나씩 처리해주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GPS와 연결된 특수 고글을 쓰고 강변 쪽을 노려보았다.
붉은 색 고글이 GPS와 연동되더니 즉시 좌표를 따 내 앞에 표시했다.
무전기에 대고 그 좌표를 송신했다.
“좌표 확인. 포격 시작.”
무전기에 무미건조한 포병대의 목소리가 들린다 싶더니 이윽고 허공에서 귀신이 잡아 끄는 듯한 낙하음과 함께 완벽하게 통제된 포탄이 정확하게 내가 포격을 요청한 지점에 파멸적인 포격을 가했다.
콰콰콰쾅!!
굉음과 함께 건물 여러 채가 무너지며 흙먼지가 자욱하게 피어오르는 걸 보며 m9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대단하구만.”
대한민국 포병대의 기율과 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우리 올드스쿨 헌터가 근거리의 스페셜리스트라면 대한민국 포병대는 중장거리 전투의 여왕이다.
공군도 여차할 땐 소방수 역할을 하긴 하지만 포병대만큼 안정적으로 확실하게 원하는 시점에 화력을 지원해주는 건 오직 포병대뿐이다.
“이런 식으로 포격 지원을 해서 서울로 몰려가는 녀석들의 숫자를 줄여놓을 생각이야.”
오늘 우리가 처리해야 할 건 오로지 중형종이다.
여유가 충분하다면야 한강을 우회해 서울로 향하는 몬스터 전체에게 포격을 먹이고 싶지만 과거처럼 도시 전체를 막을 정도의 강력한 전력을 갖춘 건 아니다.
“좌표 확인. 포격 시작.”
전쟁이 시작된 이후 대한민국은 지속적으로 약해졌고 쪼그라들었다.
군대도 예외는 아니다.
할 수 있는 만큼을 기대할 뿐이다.
그렇게 무미건조한 전투가 시작됐다.
기울어진 아파트 위에서 적을 관측, 좌표를 불러주고 포격을 가했다.
군단파의 정예포병은 좌표를 보내는 즉시 맹렬한 포격을 가해 꾸물거리는 중형종을 세상에서 지워버렸다.
비슷한 전개가 여럿 반복되자 m9가 너스레를 떨었다.
“뭐야. 생각보다 쉽잖아? 몬스터 녀석들 별거 아닌데?”
제3자의 입장에서 보면 그렇게 보일지도.
하지만 이게 가능한 건 우월한 포병과 관측 장비, 그리고 적진 한 가운데에 우뚝 선 더 호프라는 거점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당장 우리 발밑엔 얼마나 많은 몬스터와 좀비가 있는지 알 방법이 없다.
“좀비? 좀비야 요즘은 숫자가 많이 줄긴 했지만 밤이 되면 여전히 돌아다녀. 그 이상한 몬스터도 마찬가지고.”
더 호프 같은 거점이 없다면 안전한 위치에서 좌표를 불러주는 호사는 불가능하겠지.
m9가 말한 “쉬운 전투”는 밤이 늦도록 계속됐다.
우리는 수많은 좌표를 불렀고 수많은 몬스터를 격멸했다.
예상보다 몬스터의 숫자가 적다는 것도 안정적인 전황을 유지하는데 한몫했다.
내가 우려했던 지성을 가진 대형종의 모습은 발견되지 않았고 몬스터의 무리는 산발적으로 서쪽으로 무리를 보낼 뿐, 그 이상의 집단적인 행동을 취하진 않았다.
한 번은 여유가 생겨 m9에게 장비를 넘겨주고 좌표를 불러주게 한 적도 있었다.
“777번! 강타! 포격 실시!”
우리의 m9는 신이 나서 새로운 장난감을 유감없이 테스트했다.
오후가 되자 심상치 않은 조짐이 동쪽에서 느껴졌다.
한강 변에 머물렀던 안개가 점점 짙어지며 이쪽으로 가까워지고 있다.
그 안개 아래로 적잖은 몬스터의 그림자가 보였다.
김다람에게 서울 서쪽 영역에 관한 소식을 물었다.
“이쪽 상황? 좋지 않아. 멍텅구리 전차로 방어 중이긴 한데 끝이 없어.”
그녀를 돕기 위해 m9와 함께 밤새 좌표를 부르며 서울로 향하는 원군을 차단하는데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였다.
중간에 졸음이 온 나머지 난간에서 미끄러질 뻔한 일 이외에는 특별한 위기상황도 돌발 상황도 없었다.
적을 발견하고 죽이고 포격을 가하고.
과거 중국에서 흔하게 보내던 전장의 하루와 크게 다를 바 없는 하루였다.
하지만 이 세상은 더 이상 녹록지 않다.
그 사실을 알게 된 건 내가 m9와 작별을 하고 다시 서울의 모처로 돌아온 직후였다.
*
“수고했어. 선배.”
나와 m9의 분투 덕분일까?
몬스터 다수 무리의 접근에도 시민의 사상자는 적었고 군대의 손실도 크지 않았다.
그 중심엔 나와 m9가 위협적인 중형종을 장거리에서 제거한 것도 있겠지만 군단파 군인과 헌터들의 활약도 상당한 지분을 차지했을 것이다.
물론 가장 큰 이유는 한강을 우회한 몬스터의 숫자가 예상치보다 훨씬 작았다는 것이겠지만 말이다.
진짜 문제는 그 다음이다.
더 호프로 갈 때 나는 헬기 위에서 곳곳에서 피어오르는 수많은 하얀 연기를 보았다.
당시 이 하얀 연기를 볼 때도 나는 좋지 않은 예깜을 느꼈었다.
중국에서 활동할 때 비슷한 연기들과 냄새들을 본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다시 돌아온 서울의 거리에서 나는 보았다.
하얀 연기를 내뿜으며 타들어 가는 시쳇더미들을.
내 시선은 자연스레 김다람에게 향했다.
“김다람.”
나는 시체에 시선을 옮겼다.
“뭐지? 저건?”
김다람은 시체를 쳐다보지도 않고 대답했다.
“좀비 시체야.”
“좀비가 어디서 저렇게 많이 나서?”
이에 김다람이 한숨을 내쉬며 날 노려보았다.
“좀비라고 생각해.”
노곤한 표정을 지으며 김다람은 날 스쳐 지나가 막사로 돌아갔다.
물론 김다람답게 전에 부탁한 이야기는 잊지 않았다.
“나에게 부탁할 게 있다고 했었지? 부관 남겨놓을 테니 말해 둬. 처리할 수 있는 일이면 처리할게.”
그녀가 사라진 후 시체 쪽을 돌아보았다.
군인 몇 명과 작업자들이 수레로 아직 타지 않은 시체들을 수레로 옮기고 있었다.
나는 이 시체들의 주인이 누구인지 잘 알고 있다.
광신도다.
몬스터의 침공이 시작되자마자 군단파는 광신도를 구금하고 전투가 벌어지는 동안 아마 가스를 통한 대량학살 수단으로 처형을 한 모양이다.
그들의 방식을 탓할 생각은 없다.
광신도는 인류의 적.
그냥 놔두면 몬스터를 도와 우리에게 더욱 큰 피해를 끼치고도 남을 놈들이니까.
하지만 이런 식으로 인간이 인간을 집단으로 멸하는 걸 보는 광경은 늘 내 마음을 어둡게 한다.
중국에서도 그러했다.
무표정한 얼굴의 병사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사람을 죽이고 태우고 버리는 장면을 보다 보면 나도 모르게 졸음이 느껴졌다.
한때 살아서 웃고 떠들었을 사람들이 영원한 잠에 빠져 타인의 손에 끌리고 불 질러지고 분쇄되는 광경이 내게 참을 수 없을 정도의 권태를 불러일으킨 것이다.
이제 당시의 광경이 한국에서 재현되고 있다.
수많은 생각이 뇌리를 뒤덮어오지만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으려 했다.
대신, 나를 이곳에 이끌었던 작은 인연과 동기를 떠올리고 그것을 실천하려 했다.
“오. 스켈톤! 정말로 고마워! 덕분에 다정이 춘천에 있는 병원으로 보낼 수 있게 됐어!”
디펜더의 밝은 얼굴을 보고도 내 마음은 편해지지 않았다.
“다음에 다정이랑 같이 들릴게!”
웃으면서 그를 배웅했지만 날 둘러싼 어둠은 더욱 짙어질 뿐이다.
“······.”
그날 군단판의 라디오 방송에서는 성공적인 서울 방어와 한중 간의 종전 협정에 관한 소식이 흘러 나왔다.
사람들은 김병철의 지도력과 군단파의 강력함을 이야기했지만 내 생각은 전혀 다르다.
인간이 인간을 조직적으로 죽이고 멸한다.
이것은 또 하나의 징조다.
바로 이 세상이 멸망으로 치닫는다는.
하지만 건진 것도 있다.
“뭐? 더 호프가 무너질 것 같다고?”
작전을 끝내고 다시 서울로 돌아가려 할 때였다.
m9에게 장난 삼아 더 호프에 관한 소감을 이야기했다.
붕괴 가능성 90%.
이건 뭐 나만의 의견은 아니다.
멀리서 보는 모든 사람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이번 전투에서 m9의 장점을 봤기에 그에게 넌지시 제안을 해봤다.
“갈 때 없으면 우리 동네로 와라. 기울어진 집은 없지만 빈집 하나 정도는 있으니까.”
내 나름 선심을 써서 의견을 말했지만 m9 녀석은 얄밉게 웃을 뿐이다.
그가 날 보며 퉁명스레 말했다.
“그러고 보니 네 녀석이 존내논보다 훨씬 헌터 같긴 하다.”
갑작스런 칭찬에 의아한 눈으로 보고 있자니 m9는 씨익 웃으며 자신의 건물을 툭툭 건드렸다.
“더 호프가 무너진다고 해도 너무 걱정하지 마라.”
m9가 웃는 얼굴로 자신의 건물을 정성스레 쓰다듬었다.
“내가 있는 곳이 희망이니까.”
순간 나는 새삼스레 우리가 서 있는 건물의 기울기와 무게를 다시 느꼈다.
순간 생각이 들었다.
희망이란 건 확실히 곧다기보다는 기울어진 게 아닐까 하는.
내가 보고 있는 절망의 기울기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