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a House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227)
아포칼립스에 집을 숨김-227화(227/466)
“전에도 말한 적이 있지만 그쪽 방공호에 더부살이 하겠다는 건 아니야. 이웃사촌을 하자는 거지. 옆집이 아니라도 좋아. 문제가 생겼을 때 긴밀하게 연락을 하고 서로 전투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정도의 거리를 유지하자고.”
천영재의 생각이 이전부터 확고하다는 건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다.
그는 전쟁 이후부터 늘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과 함께 더불어 살아왔고 그러한 집단 속의 삶에 익숙했다.
그러므로 몇 마디 말로 그의 고집을 꺾는 건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서 여기가 아니면 안 되는 이유를 물어보았다.
“지하철에서 쭉 살면 되는 거 아니냐? 굳이 이런 아무것도 없는 시골에 오는 것보다. 안 그래? 거기는 사람도 많고 자원도 훨씬 많은데.”
이에 천영재는 쾌활하게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어차피 전쟁통이 될 거야. 인천 피난민들. 순순히 군단파 시키는대로 따라온 것처럼 행동하는데 그 친구들은 이미 예전에 피난소 별로 철저히 파벌이 갈린 사람이야. 지금에야 군복 입은 놈들이 밥도 주고 물자도 주니 따르는 시늉을 하지만 조금이라도 수틀리면 본색을 드러낼 걸?”
“그래?”
“무엇보다 군단파 녀석들. 막상 뚜껑 열고 보니 아무것도 없더라고. 개털이지. 당장 자기 패거리들 먹여 살리는 것도 힘에 부친데 인천의 버림받은 인간까지 떠안았으니 얼마나 가겠어?”
3개월.
천영재가 예상한 군단파의 보급 체계가 붕괴되는 시점이다.
“곧 각자도생하겠지. 이 나라 스타일이잖아. 각자도생. 멍청하게 나라 말 기다리는 놈은 늘 제일 먼저 죽었고 나라 말 개 무시하고 제 살 길 찾는 놈들이 늘 최후까지 살아남았지.”
천영재는 자신이 타고 온 소형 LPG차 본네트 위에 큰 대짜로 뻗으며 자신의 앞 머리카락을 입으로 후후 불었다.
그가 게슴츠레 뜬 눈으로 날 힐끗보며 입을 열었다.
“그 각자도생 패거리가 여기까지 밀려오면 박 선배도 안심할 순 없잖아? 안 그래?”
“······잠깐 피해 있으려고.”
“그럴 거면 이 방공호 좀 빌려주면 안 될까?”
“그건 내 목에 칼이 들어와도 안 되지.”
“도망 다니는 게 능사는 아니야.”
천영재가 본네트 위에서 몸을 일으키더니 입에 뭔가를 물었다.
담배로 보인다.
곧 불을 붙이자 담배라는 사실이 확연히 드러났다.
“알다시피 개판이 난 건 수도권만은 아니야. 이미 지방은 예전에 작살이 났고 침식지대와 피난민이 구분 없이 뒤섞여 살고 있지. 그런 상황에서 광신도는 끝도 없이 늘어나고 있고.”
“······.”
“내가 볼 때 김병철 그 새끼도 곧 서울을 포기하겠지.”
“그렇겠지.”
“내 말은 영원히 도망 다닐 수 없다는 거야.”
천영재가 내게 직접 만 담배 하나를 내밀었다.
나는 가볍게 담배를 거절했다.
천영재는 내민 담배를 다시 품속에 넣었다.
그가 직접 만든 꼬질꼬질한 담배 재질을 눈여겨 보며 불쑥 말했다.
“내년쯤 되면 거의 다 죽지 않을까?”
사실 이것이 나의 진정한 속내다.
시간은 이 세상의 대부분의 문제를 해결한다.
지금 혼란스러운 세상도, 천영재가 걱정하는 각자도생하는 무리도 시간이라는 절대적인 가치가 지나가면 대부분 빛을 잃는다.
같은 사람을 잡아 먹기 위해 황야를 돌아다니는 자도, 황무지 구석에서 끈질기게 삶을 이어나가는 자도 그 운명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대부분 죽을 것이다.
그 사람이 사라진 영역에서 나만의 방공호를 확장하는 건 이 박규가 방공호를 처음 건설할 때 그린 주요한 그림 중 하나다.
그런데.
“안 죽으면?”
천영재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했다.
아주 새로운 관점은 아니다.
나도 어렴풋이 알고 있고 인지하고 있는 또 하나의 가능성이다.
인간은 우리가 상상하는 이상으로 질기다는.
그 노인 집단만 해도 그렇다.
누가 그 고립된 산악지대에 수십 명이 넘는 팔팔한 노인들이 살아 있다고 상상이나 했겠는가.
“내년 돼서도 인간들 돌아다니면? 그때도 도망 다닐 거야?”
천영재가 계속해서 묻는다.
“······그건.”
뻔뻔한 성격이고 거짓말도 곧잘 하지만 이 천영재의 반문엔 대답할 마땅한 답이 없다.
누구보다 내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생명력이라는 게 얼마나 끈질기고 지독한 지 내 눈으로 보았다.
그것은 전쟁이 시작된 이래 내가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하고 경험한 사실과 맞닿아 있다.
“내가 잠시 신세 지던 피난소 이야기를 해볼게. 거기 피난소 캡틴은 박펭귄이야.”
“뭐?!”
“박씨 더하기 펭귄.”
“펭귄?!”
나는 순간 그 박씨라는 인물이 펭귄과 유사한 생김새를 가진 게 아닐까 하는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전혀 아니었다.
“전쟁 전에 철물점 하던 아저씬데 전임자들이 다 뒤져서 피난소장을 맡았지. 딱히 뛰어난 구석도 없고 잘난 것도 없는 그냥 동네 아저씨야. 하지만 지난 한파 때 그 사람이 그 피난소 전체를 살렸지. 작년 한파 때 어떤 피난소에서 사람들이 펭귄처럼 뭉쳐서 빙글빙글 돌아다녔다는 이야기 들은 적 있지?”
확실히 그런 이야기가 있었다.
정확히는 인천 정부에서 제공한 피난소를 과감하게 버리고 지하철로 피신, 선제적으로 한파에 대처해서 피난소 전체를 살려낸 이야기다.
“거기엔 박펭귄의 기지도 기지지만 피난소 사람들 수준 자체가 높았어. 모두 살아남으려고 했지. 펭귄 코스프레를 하면서까지 살 의지가 있었다고. 그래서 살아남았지.”
“······.”
“그 인간들이 그렇게 쉽게 죽을 것 같진 않아. 몬스터가 이 나라 전체를 침식하더라도 일부는 살아서 돌아다니겠지. 그러니까 사람들이 전부 죽을 때까지 피해 있다는 게 대단히 안일한 발상이라는 거지.”
천영재의 말이 마음에 안 드는 건 사실이다.
솔직하게 당장이라도 주먹을 휘둘러 주둥아리를 닫게 하고 싶다.
하지만 이 친구의 말은 사실과 닿아 있다.
1, 2년 정도 피해 다닌다고 해서 전쟁 후 3년 넘게 살아남은 인간들이 전부 죽어 없어질 것 같지 않다.
“······그래서. 내 영역 주변에 터를 잡겠다는 거냐?”
천영재에게 조금은 불쾌감을 담아 물었다.
천영재가 눈을 깜빡였다.
“여차하면 서로 도와야지. 박 선배는 혼자 무장한 병력 몇 명이나 상대할 수 있어?”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
“일방적으로 공격당하는 상황이라면?”
“두 명조차 위협적일 수도 있겠지.”
“그러니까.”
천영재가 자신의 차로 걸어갔다.
시동을 걸자,
탈탈탈탈-
검은 매연과 함께 덜덜거리는 소리가 내 영역 전체를 울린다.
“어디 보자.”
천영재는 차 위에 훌쩍 올라 주변을 살폈다.
“저기가 좋겠네.”
천영재가 택한 곳은 버려진 마을이었다.
“······저런 곳에?”
“어. 나 같은 사람은 엄폐물이 많은 쪽이 좋거든.”
“너도 어웨이큰이었지?”
“별 시답잖지 않지만.”
내키진 않지만 천영재의 말도 일리가 있다.
그가 택한 곳도 내 영역에서는 거리가 꽤 있으니 넘어가기로 했다.
무엇보다 사람들이 그리 쉽게 죽지 않을 거라는 이 친구의 말에도 공감을 느끼기도 했고.
문득 디에스이라에가 떠올랐다.
“······.”
그는 여전히 집단을 이루고 잘 살고 있겠지.
하지만 집단을 이룬다고 해서 다 비슷한 집단 생존주의라고 볼 수 있을까?
디에스이라에의 집단은 그 자체로 하나로 뭉친 끈끈한 조직인 반면 나와 천영재는 그냥 가까운 곳에 독립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교집합에 지나지 않는다.
전투 같은 상황에서야 도움은 주겠지만 최대한 서로에게 간섭을 하지 않는 주의라고 할까.
집단 생존주의라고 해도 아주 같다고는 볼 수 없다는 이야기다.
천영재의 차를 타고 함께 마을로 갔다.
“선배는 뭐 하려고?”
“······그래도 내가 여기 오래 살았으니 훈수 정도는 할 수 있겠지.”
천영재와 함께 마을에 들어섰다.
이미 마을은 꽤 오래전부터 철저히 버려진 상태.
잔해와 쓰레기, 폐허로 가득 찬 거리를 부서지기 직전의 차량을 타고 천천히 거슬러 올라갔다.
천영재는 여러 집을 기웃거리다가 한 장소를 정했다.
폐허와 폐허 사이에 있는 평범한 집이었다.
“여기가 좋겠네.”
“괜찮겠냐?”
“적당히 치우고 쓸고 하면 살만한 견적 정도는 나오겠지. 보라고. 아궁이도 있고 온돌도 있어.”
천영재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쓰레기를 치우고 잔해를 정리했다.
딱히 할 일도 없겠다 옆에서 그가 하는 일을 구경했다.
좀비를 상대할 때도 느낀 반데 이 친구, 뭔가 엉성한데 대단히 효율적이다.
대충 일하는 거 같은데 정리되는 속도가 비범하다.
“박 선배. 보지만 말고 할 일 없으면 좀 돕지?”
“프로페서나 되는 귀하신 몸인데.”
“나도 천재 헌터라 불린 몸이야.”
천영재를 도와 그가 새 집을 정리하는 걸 도와주었다.
새삼스레 나는 사람마다 요구하는 삶의 기준이 다르다는 걸 이번 기회에 확실히 깨달았다.
내가 원하는 사람다운 삶의 최소한은 에어컨과 뜨거운 물이 나오는 샤워 시설, 냉장고와 시원한 물, 언제라도 쓸 수 있는 수도 같은 전쟁 전 기준으로 누릴 수 있는 문명의 이기인 반면, 천영재가 원하는 삶의 최소한은 그저 몸을 뉠 정도의 공간, 비바람을 맞지 않을 지붕, 얼어죽지 않을 정도의 난방 정도다.
에어컨이고 수도 같은 문명의 이기는 천영재에겐 있으면 좋지만 반드시 필요한 건 아니었다.
“어이쿠. 이 정도면 아방궁이지.”
제대로 치우지도 못해 쓰레기장과 다를 바 없는 구들장에 돗자리 하나 깔고 편안하게 눕는 그를 보고 나는 나도 모르게 쓴웃음을 머금고 말았다.
“······.”
뭐, 그만큼 이 박규가 까탈스럽다는 거겠지.
까탈스러운 게 나쁜 건 아니다.
사람답게 산다는 건 우리가 인간성을 잃지 않게 만드는 제1의 요건이다.
엉성하게나마 거처가 정해지자 천영재는 차 안에서 뭔가를 꺼냈다.
고기다.
“무슨 고기냐? 이건?”
“뮤테이션 고기. 군단파 기지에서 쏙 빼 왔지.”
“먹어도 되는 거냐?”
“다들 처먹고 있는데. 뮤테이션이 지랄 맞은 현상이긴 한데 최소한 식량 증산에는 도움이 된다는 게 최근의 연구 결과야. 도살하는 놈들은 사람을 죽이는 거 같아서 괴롭다고 하는데 내가 죽이는 거 아니잖아?”
치이이이익-
돌로 적당히 만든 불판 위에 고기를 구웠다.
원판이 돼지고기라서 그런지 꽤나 먹을만 했다.
기름도 풍부하고.
김치 같은 호사는 없지만 대신 감자와 양파, 대파를 구워 고기에 곁들여 먹었다.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술은 마시지 않았다.
아무리 여기가 우리의 영역이라고 해도 술 같은 의식을 저하하는 약물은 함부로 사용할 수 없으니까.
적당히 배를 채우면서 천영재의 생각을 들을 수 있었다.
이 친구, 가볍게만 봤는데 보기와 다르게 속이 깊다.
“지금은 나 혼자 여기 입주했지만 슬슬 사람들을 모으려고 해.”
“······.”
“예전에 헌터 거리에 있던 선후배들. 내 동기들. 그리고 좋은 사람들. 괜찮은 사람들끼리 마을을 만드는 거지.”
천영재가 버려진 마을을 돌아보았다.
“진짜 헌터 마을을 만들겠다는 이야기야.”
“헌터 마을이라. 어감이 묘하군.”
“기본적인 전투력이 있고 비슷한 공감대가 있는 사람들이니 괜찮지 않을까? 이왕 뭉치는 거 학연이라도 있는 쪽이 좋잖아?”
“······그만큼 공격도 강하게 받겠지.”
“어차피 못 버티면 죽어. 그게 혼자든 여럿이든. 결과적으로 오래 살아남은 사람들 보면 다 집단을 이룬 사람들이잖아?”
“나처럼 누구의 도움 없이 혼자서 살아갈 수 있는 사람도 있지.”
“뭐, 선배야 강하니까. 하지만 말이야.”
천영재가 씨익 웃었다.
“선배도 지키고 싶은 사람 한둘 정도는 있을 거 아니야?”
“나는 철저한 혼자다.”
“지금은 아니라더라도 나중에, 서울이 거덜나고 선배가 아는 사람이 도움을 청할 때 말이야.”
“나는 누구도 돕지 않고 또 도움을 구하지도 않는다.”
“무턱대고 선배가 좋아하는 그놈의 방공호 안에 들이는 것보다 차라리 잘 준비된 이런 마을 안에 거처를 마련해주는 게 더 낫지 않겠어?”
“······.”
아주 잠깐 레베카 모녀의 얼굴이 눈앞을 스치고 지나갔다.
잘 살고 있을까.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하지만.
그들이 걱정되는 건 엄연한 사실이다.
“일단, 내가 여기에 있으니 동쪽으로부터 오는 공격은 안심해도 될 것 같아.”
천영재가 아주 은은하게 빛나는 눈으로 동쪽을 지그시 노려보았다.
익살스럽고 가벼운 친구지만 헌터답게 진심을 드러내자 평범한 인간의 영혼 정도는 가볍게 베어버리고 남을 정도의 날카로움이 느껴진다.
나도 그렇지만 이 친구도 수많은 사람을 죽인 살인자다.
“······그래. 잘 부탁한다.”
그렇게 이웃이 생겼다.
처음에는 나쁘게만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유해진 건지 아니면 내가 느끼는 이 세상의 부담이 커진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결국 우리의 목표는 하나다.
이 멸망기에서 하루라도 더 오래 살아남는 것.
그것이 집단인들 개인인들 뭐가 크게 다를까.
혼자가 아닌 영역에서 눈을 붙였다.
오전의 피로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평소보다는 좀 더 깊은 잠이 든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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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icorn18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스켈톤. 보면 답신 줘.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인물에게서 메시지가 온 건 내 영역에 새로운 주거자가 나타난 지 하루가 지난 다음의 일이었다.
유니콘18이라니.
현재 시점에서 내가 가장 묻고 싶은 게 많은 인물 아닌가.
제주도.
제주도는 어떻게 된 건가.
설마 그 제주도에 대한 이야기를 내게 해주려는 것인가.
실로 오랜만에 가슴이 두근거리는 걸 느끼며 답장을 보냈다.
SKELTON : (스켈톤) 무슨 일이냐? 유니콘18.
잠시 후 유니콘18에게 답장이 왔다.
그런데 그 내용.
unicorn18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너, 폭스게임하고 친하지?
기대와는 조금 어긋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