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a House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229)
아포칼립스에 집을 숨김-229화(229/466)
98. 영묘 (2)
딱히 제주도에 흥미가 있는 건 아니다.
거기가 사람 살기 좋지 않다는 환경이라는 건 그 동안 들은 정보만으로 충분히 알 수 있다.
하지만 요즘처럼 불확실한 세상에서는 카드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날 위한 자리라는 말이 내 구미를 당기게 한 것도 사실이다.
무엇보다 나에겐 시간이 많다.
그런 나에게 몰두할 사안이 있다는 건 그 자체로 세상을 살아갈 의지를 줄 수도 있는 일이겠지.
그러므로 이 박규가 존내논이 묻힌 영묘에 대한 탐사 계획을 세운 건 지극히 당연한 흐름이었다.
*
존내논의 영묘는 김병철이 아직 수복하지 못한 서울 동남부 쪽에 자리 잡고 있다.
그곳의 위험성은 m9를 통해 충분히 들었고 또 내가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해보기도 했다.
일전의 몬스터 분출 당시 군단파는 중형종 몬스터 대부분을 격멸하는데 성공했지만 몬스터를 처치한다는 건 다른 의미로 몬스터가 가진 이계의 물질 – 뮤테이션 입자를 포함한 – 을 퍼뜨리는 것을 의미한다.
몬스터가 많이 소멸한 지역에 많은 침식이 나타나는 건 우연이 아니라는 소리.
아마 인간이 장악하지 못한 서울 지역은 전보다 더 많은 침식을 일으켰을 것이다.
그 이야기는 더 많은 적대적인 몬스터와 뮤테이션이 많다는 이야기와 일맥상통한다.
군단파와 척을 진 광신도가 도처에 존재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군단파는 그들이 장악한 모든 영역에서 신도를 탄압했고 다수를 학살했다고 전한다.
문제는 신도 숫자가 워낙에 많고 알려지지 않은 곳에 소굴을 많이 만들고 있는지라 김병철의 탄압에도 일망타진되기는커녕 음지로 숨어 더 귀찮은 반란분자로 거듭났다는 것이다.
한국도 중국처럼 몬스터와 광신도 양자를 전부 상대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이런 끔찍한 회색 지대 중심에 존내논의 영묘가 자리 잡고 있다.
그것만으로 충분히 난이도 최상이라 할 수 있는 임문데 한술 더 떠서 존내논의 영묘는 그 자체로 방사능으로 뒤덮인 죽음의 장소다.
영묘의 현 상태에 관해서는 존내논의 후계자인 발렌타인의 입을 빌리도록 하자.
Ballantine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일전 몬스터 침공 이후로 거기에 간 적이 없습니다. 갈 엄두도 못 내죠. 실은 군단파가 온 이후에 서버 쪽에 접근한 적이 있는데 도중에 발길을 돌리고 말았습니다. 그전에도 을씨년스러운 곳이었는데 이제는 뭐라고 해야 하나, 사람이 가서는 안 된다는 느낌이 물씬 들더군요. 함께 한 군인과 헌터들도 나름 경력 있는 사람들이었는데 다들 중간부터 겁을 집어 먹더군요.
Ballantine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이것과 별개로 현재 서버실 상태는 극도로 좋지 않습니다. 원자력 전지는 이미 존내논님께서 서거하시기 전부터 과부하된 상태였는데 그쪽 전공이 아니라 잘 모르지만 지금쯤은 거의 멜트다운 상태라고 해도 무방하지 않을까요? 방호복을 입더라도 1분 이상 버틸 수 없을 겁니다. 어쩌면 가까이 가기 전부터 이미 죽을 수도 있겠죠.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사실상 불가능한 임무라는 것이다.
하지만 발렌타인은 페일넷에 정체불명의 유저로부터 대량의 데이터가 올라왔다는 사실이 있었다는 걸 말해주었다.
Ballantine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스켈톤님이 찾아오시기 전의 일이었죠. 서울 쪽에서 대량의 데이터가 갑자기 업로드가 됐어요. 암호화가 된 파일이긴 한데 암호화 수준은 그리 높지 않았죠. 약간의 노력만 들일 수 있는 그 정도 보안수준으로 보였습니다. 문제는 데이터의 양인데 저는 트래픽과 서버 용량이 걱정되어 그 유저를 차단하자고 했었죠. 그랬더니 존내논님께서 고개를 가로저으며 놔두자고 하시더군요. 얼마나 절박하면 이런 곳에 기록을 남기시냐면서. 오히려 그러한 데이터 엑소더스 자체가 우리 페일넷이 해야 할 사명이 아니냐고 반문하시더군요.
데이터는 존재한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중국인 과학자는 페일넷에 한국과 중국 전부가 원하는 데이터를 업로드했다.
그런데 데이터가 존재한다고 해서 현재 내가 가진 기술과 전력만으로 존내논의 영묘에 이르러 그 데이터를 빼낼 방법은 없다.
방호복을 입는다고 해서 서버 전체를 옮기거나 그 안의 내용을 쏙 빼낼 방법이 발견되는 건 아니니까.
디스크 하나에 옮겨 놨다면 모르겠지만 서버 전체에 분산되어 있을 방대한 데이터를 내가 어떻게 한다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므로 다른 방법이 필요하다.
팀장 시절, 나는 물리적으로 어떤 대상이 공략이 불가능할 때 돌아가는 방법을 선호했다.
무식하게 아주 희박한 확률을 믿고 반복적이고 소모적인 임무를 하는 것보다 허탕으로 결론이 나더라도 샛길을 찾는 쪽이 전투력의 보존이나 사건 자체의 해결에 도움이 된다는 걸 경험으로 체득했다.
물론 여기서 가장 중요한 건 그 돌아가는 방법이다.
어떤 식으로 우회하느냐.
나는 존내논의 영묘 그 자체보다 존내논의 서버에 대량의 데이터를 올린 중국인 과학자에 대해 주목했다.
그 중국인의 소재는 누구도 언급하지 않았지만 아마도 죽었을 가능성이 높다.
중국인들은 그들을 배신한 같은 민족을 결코 살려두는 법이 없으니까.
하지만 이 사건의 가장 큰 열쇠를 진 건 그 중국인이다.
유니콘에게 그 중국인에 관해 잠깐 물어보았다.
unicorn18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미국에서 교수하다가 중국으로 넘어간 전형적인 중화 산업 스파이. 그런데 막상 중국에 가니 자기 조상이 태어난 나라가 마음에 안 들었나 봐. 전쟁 전에 한국으로 망명해서 숨어지내다가 연구 데이터를 한국에 올린 거지. 그것 말고는 알려진 바가 없어.
유니콘은 아마도 이 사건의 담당은 아닐 것이다.
아마 상부나 동료로부터 이번 사안을 전달받고 내게 말해본 것에 불과한 것으로 보인다.
자세한 정황은 역시 내 인맥에 기대는 수밖에 없다.
Ballantine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그 업로드한 사람 말인가요? 개인적으로 오간 기록요?
존내논 정도 되는 사람이 자기 서버에 대량의 파일이 업로드된 걸 알고 있었다면 아마 개인적으로 접촉을 시도하지 않았을까?
내가 아는 존내논은 나만큼이나 호기심이 많은 인물이다.
어쩌면 그는 발렌타인이 알지 못한 때 그 대량의 데이터 파일을 뜯어봤을지도 모른다.
그 데이터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고 해도 존내논이라면 그 데이터가 심상치 않은 것이라는 것 정도는 가볍게 알아차렸을 것이고 어떻게든 자신의 왕국에 침입한 중국인에게 가벼운 질문을 남겼을 것이다.
SKELTON : (스켈톤 엄격·진지) 이거 우리끼리 하는 이야기인데 대단히 중요한 사안입니다! 군단파는 물론이고 중국놈들마저도 눈독을 들이고 있죠.
발렌타인에게 이번 사건의 중요성을 환기시켰다.
실제로 내가 현재 “우회로”에서 믿을 수 있는 빽은 이 친구 말고는 없다.
그가 얼마나 개고생을 하냐에 따라 해결책이 보일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뭐? 잠실 쪽으로 가자고?”
내 여행을 보조할 보조 전투요원의 확보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거긴 군단파 국회파가 치고받던 시절부터 개 같은 곳이었는데. 뭐, 지금은 사람이야 없겠지. 하지만 거긴 마가 꼈어. 이상할 정도로 방사능이 많이 검출되기도 하고.”
싫다는 천영재를 설득해서 만약에 존내논의 영묘에 간다면 동행하기로 약속받았다.
어쩔 수가 없다.
내 영역에 사는 일종의 세금이다.
물론 맨입으로 천영재를 부려먹는 건 안다.
그 친구가 원하는 대로 새로운 인물을 받아들이는데 동의했다.
치지지직-
천영재를 비롯한 18기 친구들은 인터넷보다는 무선 전파 쪽에 강세를 보이고 또 잘 다룬다.
최근 천영재는 헌터 거리에 살던 인맥을 찾아낸 모양이다.
“하태훈 선배라고 기억하지?”
“그 선배 호칭 거부하는 사람 말이냐?”
“그래. 그 양반 아직도 인천에 있다네.”
“인천에?”
“아무도 없는 헌터 거리로 돌아와 자급자족 생활을 하고 있는 모양이야. 괜찮다면 여기로 오라고 말은 해놨어.”
“그 양반, 특기가 뭐지?”
늘 죽음의 곡예를 펼쳐야 하는 올드스쿨 헌터에게 특기를 묻는다는 게 조금은 어폐가 있는 일이지만 실제로 우리 올드스쿨 헌터는 나름 저마다의 장기가 있다.
내 애증의 후배인 김다람만 해도 저격과 아크로바틱에 상당히 능했고 천영재도 근접전에 강세를 보인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결국 올드스쿨 헌터라고 해도 다 개성적인 개인이라는 이야기다.
“하태훈 선배는 드론을 잘 만져.”
“드론?”
드론 하니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
지금쯤 수술을 받고 있을 다정이다.
“조종을 잘한다는 이야기냐?”
“조종은 글쎄. 그냥 잘 만지고 잘 다룬다고 하나. 상태가 불량한 것도 그 양반 손에 들어가면 새것처럼 변해. 중국에 있을 때 중국 놈들한테 FM식으로 배웠다고 하더라고.”
“흐음.”
드론 정비라.
꽤 괜찮은 능력이다.
개인 대 집단은 물론이고 집단 대 집단 전투에서 드론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으니까.
천영재 말마따나 유능한 올드스쿨 헌터 출신으로 공동체를 만든다면 꽤나 선호도가 높은 자원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래서. 그 양반은 여기 온다냐?”
“글쎄. 꼬드기고 있는데 그 양반은 인천에 미련이 남은 모양인지 안 가겠다고 버티고 있네.”
“인천 출신?”
“아니. 인천에 여자친구가 있었어. 결혼을 약속한.”
천영재가 쓴웃음을 머금으며 직접 만든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죽었나?”
“응. 그 양반하고 싸워서 나온 그 날에 깡패들에게 걸렸어. 뭐, 꼴이 안 좋게 됐지.”
“그 깡패들은?”
“전부 죽였지. 나하고 지금은 죽은 정호욱이란 친구랑 같이 가서 싸그리 죽였어. 그런데 걔들 죽인다고 죽은 사람이 돌아오진 않잖아?”
“그래서 인천에 남은 건가.”
“꽤 오래전의 일이라 잊을 법도 한데, 그 양반 멘탈이 약해서 말이야. 뭐, 강하게 권유하면 넘어올 거야.”
천영재가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실 쪽에 간다면 하선배 도움이 되겠지. 이제 광신도도 있을지도 모르는 구역에 맨몸으로 우리 둘이서 가는 것보다 정찰 드론 여럿 있는 쪽이 훨씬 낫지 않겠어?”
“······뭐, 그것도 나쁘지 않겠지.”
하태훈이라.
확실히 도움이 되는 인물일 것이다.
천영재와 이야기를 마무리 짓고 방공호에 돌아오니 발렌타인으로부터 메시지가 도착해 있었다.
Ballantine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찾았습니다!
*
우리의 존내논이 아직 살아 있었을 때의 이야기다.
방사능으로 과거의 우람했던 근육도 건강도 잃고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그는 그럼에도 맑은 두 눈과 활발하게 약동하는 심장을 가지고 자신이 만들어 낸 이상의 왕국 – 페일넷을 경영하는데 여념이 없었다.
갈 곳도 없고 목소리를 낼 곳도 없이 방치 된 수백만 명에 달하는 수도권 시민들의 포럼을 만들어낸 그에게 하루라는 시간은 끝없는 놀라움과 자기긍정으로 가득 찬 기적의 시간이었다.
아직 자신의 본진인 비바! 아포칼립스! 한국어 게시판에 이 사실을 숨기고 있지만 언젠가 화려하게 자신이 얼마나 위대한 사람인지 커밍아웃하려는 존내논에게 어느 날 기묘한 사건이 스스로 찾아왔다.
발단은 대량의 데이터가 페일넷에 업로드 되고 있다는 시스템적 경고였다.
John_nenon : (존내논) 7월 22일. 서울 외곽 아마도 은평구로 추정되는 곳에서 대량의 트래픽이 발생. 현재 은평구는 사람이 살지 않는 “소개된” 지역. 누군가가 그곳의 통신망을 복구하고 단독으로 지역 통신망 전체를 가용해 페일넷의 더미 게시판에 대량의 데이터를 업로드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발렌타인의 말에 의하면 존내논은 죽기 전까지 일기를 남겼다고 한다.
어째서인지 일기장에서마저 트레이드마크와 같은 말머리를 고수했는데 나는 그점에서 존내논의 초지일관성에 강한 감동과 충격을 받았다.
후루룩-
직접 딴 옥수수 수염차를 마시면서 나는 어느 때보다 내 가슴이 빠르게 뛰는 걸 느끼며 나의 롤모델이 남긴 기록에 관해 접근해갔다.
John_nenon : (존내논) 7월 23일. 업로드는 계속되고 있다. 불판 게시판에 악성 유저 “싱싱이”가 자꾸 역사와 관련된 게시물을 인기 조작하여 불판에 올리려고 한다. 왜 아스퍼거들은 그토록 역사에 집착하는 걸까? 한 눈에도 지능이 낮아 보이는 놈인데 그러한 저지능 아스퍼거도 승인욕구가 있어서? 스켈톤 같은 사람도 승인욕구가 있으니 당연한 일인가?
“?”
존내논이 내 닉네임을 언급했다.
나는 꽤 오랜 시간을 들여 왜 존내논이 내 닉네임을 언급했는지 분석해야 했다.
심도 깊고 조심스러운 고찰 결과 존내논의 언급엔 별다른 악의가 없다는 결론을 내고 다음으로 넘어갔다.
그런데 나의 롤 모델, 뻘글이 많은 건 여전하다.
John_nenon : (존내논) 7월 24일. 복숭아 통조림을 먹었다. 맛이 거의 느껴지지 않지만 복숭아 통조림의 끈적한 단맛만큼은 예전의 느낌이 난다!
John_nenon : (존내논) 7월 25일. 세컨 계정으로 전성기 시절의 육체미를 올려 좋은 반응을 얻다.
John_nenon : (존내논) 7월 26일. 오타쿠 놈들 용서 안 한다.
여러 개의 뻘글이 지나간 후 나는 비로소 존 내논과 문제의 중국인과의 잃어버린 에피소드를 찾을 수 있었다.
그것은 일기장 모음이 아닌, 아마 비망록으로 보이는 이름 없는 폴더 안에 무질서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조심스럽게 존내논이 당시에 남긴 기록을 열람했다.
John_nenon : (존내논) 자신을 왕서방이라 부르는 익명의 유저와 접촉에 성공했다. 그 친구는 1개 지역망을 통째로 이용해 우리 페일넷 서버에 대량의 자료를 올리는 사람이다. 그의 정체는 놀랍게도 중국 본토인이다.
John_nenon : (존내논) 그가 내게 남긴 말은 나로서는 이해하기가 어려운 내용이다. 세상 전체가 바뀔 수도 있다니. 일개 인터넷 사이트 운영자에겐 너무 무게가 무거운 내용이 아닐까? 하지만 그 왕서방이 올린 자료의 일부분을 열람 결과, 나는 그 사람이 거짓말을 한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
John_nenon : (존내논) 왕서방의 자료를 별도의 디스크에 백업해 두었다. 언젠가 이 자료를 찾는 사람이 나타날 때 어려움 없이 전달하기 위해. 안의 내용은 살피지 않았다. 아니, 살펴서는 안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John_nenon : (존내논) 그 자료는 내 서랍장 첫칸 아래 납으로 만든 상자 안에 있다. 행여라도 누군가 그 데이터를 찾고 있고 내가 살아 있지 않은 상태라면 이 기록을 참고해 원하는 사람에게 넘겨주길 바란다.
“······.”
자료는 존재한다.
그리고 그 자료를 한 번에 수집할 수 있는 방법 또한 존내논은 남겨 두었다.
사건은 원점으로 돌아왔다.
존내논의 영묘.
그곳에 가야 한다.
납으로 굳게 닫힌 방사능의 영역만 극복할 수 있다면 금단의 기록을 손에 넣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닌 것처럼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