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a House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232)
아포칼립스에 집을 숨김-232화(232/466)
98. 영묘 (5)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있다.
나쁜 소식부터 말하자면 중국인이다.
최소 40명 규모의 잘 무장된 병력이 신형 지휘 차량, 정찰과 전투 드론, 각종 경계 장비의 지원을 받고 진을 치고 있다.
아무리 우리가 인류의 최정예라 불리던 헌터라지만 단 세 명이서 저 병력을 상대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당나라 군대라면 모를까, 저쪽도 몇 남지 않은 중국군 중에서 추리고 추린 병력일 테니까.
당연한 일이지만 천영재도 하태훈도 중국인과 정면 승부는 단칼에 거절했다.
나라도 거절했을 것이다.
그래도 좋은 소식은 있다.
중국인들의 위치가 존내논의 영묘로부터 2km 이상 떨어진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아마 방사능일 것이다.
이미 내가 마지막에 다녀갔을 때 방호복만으로 버티기 어려운 방사능으로 뒤덮였던 존내논의 영묘는 원자력 전지가 붕괴하면서 더 끔찍하고 파멸적인 방사능으로 물들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목적 달성을 위해서라면 수단도 방법도 가리지 않는 중국인들이 멀찌감치 캠프를 세울 일도 없었겠지.
이런 상태에서 나는 과감한 의견을 제시할 수 있었다.
“뭐? 드론만을 내보내자고?”
“장난감끼리 전쟁이라도 하겠다는 거야?”
천영재의 의견은 내 아이디어와 완벽하게 부합한다.
“좋은 표현이야. 그래. 어차피 사람이 들어갈 수 없고 드론이라는 장난감만이 드나들 수 있는 영역이야. 그런 곳이라면 굳이 인간 대 인간이 승부를 벌이지 않더라도 장난감끼리 승부를 낼 수도 있겠지.”
게다가 나에겐 중국인들이 가지지 못한 정보도 있다.
바로 존내논이 문제의 데이터를 백업한 디스크를 서랍의 비밀 공간 안에 보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중국인들은 페일넷 서버 전체를 노리겠지만 우리가 노리는 건 보다 심플하고 회수도 용이하다.
게다가 나에겐 존내논의 제자도 있다.
방공호로 돌아가면 발렌타인에게 영묘의 구조도를 부탁할 생각이다.
물론 중국인이 만만찮은 상대라는 건 확실하다.
비록 지난 전쟁에서는 한미연합군에 의해 전략적 목표를 단 하나도 달성하지 못하고 죄다 서해 바다에 가라앉을 정도로 처참하게 깨졌지만 그들의 드론이 대단히 뛰어나다는 건 콧대높은 미군들도 인정하는 바다.
애당초 어웨이큰이라는 막강한 대몬스터 자원을 포기한 중국인들은 드론이라는 인간의 기술에 올인할 수밖에 없었고 그것이 자연스럽게 드론 기술의 발달로 이어진 것이겠지만 말이다.
중국제 드론을 주로 다루는 하태훈이 이 사실을 지적한 건 자연스러운 순서다.
“내가 가지고 있는 건 민수용 드론과 소수의 군용 드론이 전부야. 중국 새끼들 상태 보니 1급 부대 같은데 헌터까지 섞인 거 보니 드론도 최신형을 쓰겠지.”
그가 고고도에서 찍은 영상 중엔 그 최신형 드론 중 하나의 모습이 똑똑히 찍혀 있었다.
그것은 사람과 비슷한 크기에 사람처럼 두 발로 기동하는 인형 드론이었다.
하태훈이 그 드론을 확대하며 우울한 목소리로 설명을 시작했다.
“QBX-37. 미국 드론 기업에서 고스란히 자료를 빼내서 카피해서 만든 물건이지. 순수하게 투자자의 자금으로 개발하던 미국 회사와 달리 카피한 기술에 더해 나랏돈까지 처먹여서 오히려 미국제보다 낫다는 이야기까지 들리는 놈이야.”
“터미네이터가 따로 없네.”
천영재가 한마디를 보탰다.
나도 비슷한 생각이다.
일전에 본 국산 전투 로봇은 무한궤도로 움직였는데 중국인들은 두 발로 걸어 다니는 로봇을 쓰는 거 보니 확실히 기술 격차가 나긴 난다.
“여기선 잘 안 보이지만 저거, 손 같은 거 보이지? 머니퓰레이터라 부르는 건데 손가락이 3개밖에 없지만 인간이 할 수 있는 작업은 다 할 수 있다고 봐도 무방해. 게다가 그것만이 아니야.”
하태훈은 중국인 캠프 곳곳을 누비는 여러 형태의 드론을 차례대로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QBX-22. 일종의 자폭드론 항모야. 30km 안 모든 지형에 대해 자폰드론 항공 지원이 가능하지. 수납된 자폭드론은 이스라엘 제품을 그대로 카피한 블레이드 타입. 16기까지 들어가.”
“QBX-34. 염가형 지역장악 드론이야. 보다시피 말뚝처럼 자리를 잡고 아군식별 부호가 없는 것들에게 총격을 가하지. 싸고 숫자가 많아.”
“QBX-8. 고고도 정찰 드론이야. 미군 정찰 드론을 그대로 카피해서 만들었지. 미군 것마냥 야간 센서는 없지만 주간 성능은 대동소이해. 카피캣이니까.”
하태훈은 한숨을 내쉬며 본인의 염세적인 태도를 유감없이 드러냈다.
“그에 비하면 우리가 가진 건 잡동사니뿐이지. 장난감 전쟁을 한다고 해도 말이야. 스펙이 어느 정도 맞든가 해야지. 그 뭐라고 하나. 모터카? 애들 하는 모터카 경주도 엔진이 더 좋은 놈이 짱을 먹잖아?”
왜 하태훈이 저평가를 받았는지 이유 하나를 더 발견했다.
사람이 너무 부정적이다.
전투를 하다 보면 좀 불리하고 좀 어이없는, 이른바 억까를 당하기도 하길 마련인데 상황이 안 좋다고 해서 너무 비관론을 늘어놓는 건 보기에도 안 좋고 사기형성에도 좋지 않다.
아마 그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중국인들이 아주 나쁜 평가를 먹였겠지.
그래서 아마 전선에 있다 한국으로 쫓겨났을 것이고.
나보다 윗 기수인데도 어렵게 사는 건 다 이유가 있다.
“저 장난감들만 어떻게 피해내면 된다는 이야기 아니야?”
한숨을 삑삑 내쉬는 하태훈을 보며 한마디 했다.
하태훈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날 올려다보지만, 나는 빙그레 웃으며 그에게 말했다.
“하선배. 우리는 말이지. 전투를 하려는 게 아니야.”
그러니까 하태훈이 말한 무시무시한 슈퍼 장난감들과 전면전을 벌이겠다는 소리가 아니다.
“우리는 그냥 우리가 잘 아는 지하실에 가서 물건 하나만 슬쩍하면 된다고.”
하태훈은 여전히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지만 이번 일은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다.
“일단, 내 방공호로 가보자고.”
나의 낙원을 본다면 이 비관적인 남자의 생각도 어느 정도 바뀔 지 모르겠지.
*
하태훈도 자기 소유의 재산이 꽤 있었다.
자유로운 영혼인 천영재와 다르게 그는 물자를 부지런히 모았고 잘 은닉했다.
그는 작은 트럭을 한 대 보유하고 있었는데 천영재의 차량 상태가 썩 좋지 않았기에 우리는 천영재의 차량을 버리고 하태훈의 차량을 이용해야 했다.
하태훈의 소유물은 다채로웠는데 가장 눈에 띄는 건 직접 수거하거나 벼룩시장에서 산 갖가지 드론과 영상 장비다.
총은 3정이 있었는데 그중 하나는 산탄총이었고 비축 탄환은 200발 정도였다.
그외 눈에 띄는 물건이 있다면 리얼돌이었다.
“뭐야? 이거?”
천영재가 가발을 씌운, 악몽에 나올 것 같은 찌그러진 실리콘 덩어리를 보며 너스레를 떨었다.
“마누라다.”
하태훈은 낯빛 하나 변하지 않고 치욕스러운 자신의 물건을 당당하게 트럭에 실었다.
여행은 그럭저럭 순조로웠다.
경로로 삼은 도로 끝에서 격렬한 총성이 들리기에 서울 외곽 쪽을 순회했다.
길 자체는 안전했지만 서울 쪽은 마치 전쟁 전마냥 밝은 불빛에 휩싸여 있었다.
탕! 탕! 타타타타탕!
도시는 전쟁 중이다.
간헐적인 총성이 끊이지 않았고 간간이 포성이 고요한 밤공기를 거칠게 흔들었다.
“서울로 간 피난소 사람들이 다시 인천으로 간다는 소문이 돌던데. 그럴 법 하네.”
하태훈이 전쟁 중인 도시를 보며 중얼거렸다.
트럭은 어둠을 가르고 내 영역으로 이동했다.
“여기서부터는 내가 운전대를 잡지.”
나는 야간 운전을 할 때 불빛을 켜지 않는다.
차량의 헤드라이트는 대단히 멀리서도 보이고 그러한 헤드라이트가 사라진 지점은 내가 알지 못하는 관측자에게 좋은 정보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덜컹! 덜컹!
오로지 감과 미세한 윤곽에 의지한 채 꽤 거친 경사를 지났다.
김노인의 집이 사라진 건 안타깝지만 동시에 호재다.
김노인의 집이 사라짐으로 인해 좁디좁은 비포장도로에 약간이나마 숨 쉴 틈이 생겼으니 말이다.
경사가 끝나고 야트막한 평지가 펼쳐졌다.
트럭은 정확하게 내 방공호 입구에 주차했다.
“여긴가?”
고개를 끄덕이며 방공호의 입구를 열어젖혔다.
“내가 좀처럼 보여주진 않지만 오늘은 특별히 공개하지.”
내 방공호는 아무에게나 보여주는 곳이 아니다.
같은 학교 출신이라고 해도 예외는 없었다.
하지만 나는 이 정든, 나의 생명과도 같은 방공호를 버리려 한다.
내 방공호가 내 생명을 담보하지 못한다는 미래를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이다.
내 수년 간의 인생 전체가 담긴 방공호가 나와 같은 학교를 졸업하고 같은 인생을 살았던 사내들에게 공개됐다.
“와우.”
“······궁궐이네.”
헌터들은 감탄을 하면서도 날카롭게 내 방공호의 이곳저곳을 주시했다.
“저 중앙에 놓인 변기는 함정인가? 시선을 끌기 위한 페이크?”
“기묘한 엄폐물이군. 아니면 부비트랩?”
다만 여성들과는 조금은 다른 반응을 보인다.
대충 안쪽을 소개한 후 그들이 좋아할 만한 장소를 보여줬다.
바로 나의 차고다.
엄밀히 말하면 내 방공호를 진정으로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재창조의 산실이다.
사람이 모두 죽어 없어진 다음 내 방공호를 확장하고 개변하는 것이 내 방공호가 다른 쟁쟁한 방공호와 겨룰 수 있는 가장 큰 특징이었다.
그런데, 그 인간들. 징하게 안 뒤지더라.
정말이지 인간의 끈질김은 진저리가 난다.
어쩌면 전 지구가 침식된 이후에도 살아서 꿈틀거릴 인간들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아무튼, 내 차고의 효과는 내 방공호보다 수십 배는 더 한 감동을 헌터들에게 주었다.
“박선배. 짐작은 했지만 진짜 장난 아니네.”
“······이거. 아예 요새를 만들어도 될 정돈데?”
천영재야 내 방공호에 몇 번 와본 적이 있어 반응이 덜하지만 하태훈은 확실히 눈동자에 강한 욕망이 꿈틀거리고 있다.
“이야기할 게 있다.”
그들을 다시 내 방공호로 불러 모았다.
“내가 왜 방사능과 중국인으로 우글거리는 곳에서 장난감 전쟁을 벌이려는지 설명할 때가 왔다.”
나는 그들에게 내 진정한 목적을 이야기했다.
바로 존내논의 영묘에 남은 디스크를 회수해서 제주도로 가는 것이다.
제주도의 이미지는 예전처럼 파라다이스마냥 그려지지 않고, 심지어 새 한 마리 없는 디스토피아적인 이미지로 해석되는 게 현재의 주된 이미지지만 적어도 그곳에 가면 나를 죽이려는 인간들을 피할 수 있다.
“······김다람 밑에 학원 출신들이 많다고 하더라고. 그 녀석들. 조직이 사라지면 날 죽이러 오겠지.”
“선배 정도면 전부 다 죽일 수 있지 않겠어?”
“하루는 24시간이고 일주일은 168시간이다. 24시간을 깨어 있을 순 있겠지만 사람은 100시간 이상 잠을 자지 않고 버틸 수 없어.”
“우리가 옆에 있잖아? 좀 더 사람을 불러모으면 해볼 만하지 않을까?”
“······영원히 싸울 수 없는 거 알잖아?”
천영재도 하태훈도 내 말을 깊이 이해했다.
영원히 싸울 순 없다.
당장 내 방공호에 수천 발의 탄환이 있다지만 전투가 벌어지면 탄환이 바닥나는 건 순식간이다.
상처를 입으면 높은 확률로 죽음과 연결된다.
인간 대 인간의 싸움은 늘 그렇다.
어느 한쪽이 압도적인 우위를 가지지 않는 이상 비루하고 비참하고 비열한 형태로 끝이 난다.
“그런데 그 제주도로 보내준다는 놈. 믿을 수 있냐?”
하태훈이 눈을 번득이며 날카롭게 물었다.
“제주도로 보내준다는 사기꾼, 요즘은 안 보이지만 헌터 거리에 있을 때만 해도 꽤 돌아다녔어.”
“······믿을 수 있는 인물이다.”
유니콘18.
그의 정체는 강한민 아니면 나혜인이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확신은 없다.
그럼에도 나는 그에게 매달릴 수밖에 없다.
알 수 없는 조바심이 나로 하여금 제주도로 가라고 종용하고 있으니까.
“······내가 제주도로 가게 된다면 이 방공호 관리를 둘에게 맡기지.”
하태훈과 천영재가 서로를 마주 보았다.
“아, 노트북과 인터넷 장비는 빼고.”
하태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불과 몇 시간 전만 해도 중국군을 보고 죽는 소리만 내던 그는 사람이 바뀐 것처럼 호탕하게 웃었다.
“이 정도 방공호의 관리라. 관리에는 당연히 사용도 포함되겠지? 이 정도 보수라면 똥줄이 빠지도록 노력해봐야지.”
“선배가 제주도로 가는 건 아쉽지만 이런 아방궁을 쓸 수 있다면 그리 나쁜 장사는 아닌 거 같네.”
김칫국을 마시는 그들을 향해 한마디했다.
“관리만 맡기는 거야. 아주 넘겨준다는 소리가 아니라는 말씀이지.”
그렇게 말했지만 제주도에 가게 된다면야 남아 있는 놈 마음대로겠지.
내 선배와 후배는 이제 나와 뜻을 함께 한다.
이 박규를 제주도로 보내기 위한 존내논 영묘 탐사 작업에 힘을 보태기로 한 것이다.
내가 여러 권의 생존용 DVD와 블루레이를 가진 것처럼 하태훈도 드론에 관한 여러 서적과 자료를 가지고 있었다.
다만 그의 자료는 나의 것과 다르게 중국어 간자로 쓰이거나 북경 표준어로 말해졌다.
생소한 언어가 방공호 안에서 울려 퍼지는 가운데 하태훈은 자신의 트럭 깊숙한 곳에 있던 상자를 꺼내 우리 앞에 펼쳐 놓았다.
그것은 일전에 항공 드론으로 보았던 중국제 드론과 놀랄 정도로 닮아 있었다.
하태훈은 용접면을 쓰고 그 드론의 파손되고 조립되지 않은 부분을 수리했다.
“······중국 새끼들이 미국 놈들 것 신나게 카피했지.”
그의 손길이 지나가는 곳마다 마법이 일어나는 것처럼 새로운 것들이 자라났다.
“그러니 우리도 중국 새끼들 꺼, 카피해도 무죄겠지?”
하태훈이 용접면을 벗으며 씨익 웃었다.
그 아래엔 마치 인간을 모방한 것 같은 이족보행 드론이 두 다리로 대지를 지탱한 채 단단하게 서 있었다.
그가 리모컨을 조작하자 그 드론은 마치 사람처럼, 역관절로 꺾인 다리를 움직여 내 방공호 안을 걸었다.
그 움직임은 놀랄 정도로 경쾌하고 민첩했다.
위이이잉-
3개의 손가락을 가진 머니퓰레이터가 회전하며 내 책상 위에 올려진 모조 금붕어가 든 어항을 가볍게 들어 올렸다.
“오오.”
“흐음······.”
그 모습을 본 나와 천영재는 저마다의 탄성을 터뜨렸다.
하태훈이 의기양양하게 자신의 작품명을 공개했다.
“KBX-69. 100% 국산 드론이다.”
드론의 성능은 확실했다.
애당초 신품에 가까운 물건이었고 중국용 교재를 참조하여 완벽하게 수리를 했으니까.
내 방공호 안을 정신없이 오가며 무력시위를 벌이는 드론을 보며 하태훈이 귀띔했다.
“······진짜 아껴둔 거야.”
이 드론이야말로 하태훈의 가장 큰 재산이 아니었을까.
물론 철두철미한 네임드 유저답게 나는 이족보행 드론의 활약상을 카메라로 빠짐없이 담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리고.
Ballantine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요청하신 서버실 약도입니다. 책상 위치도 표시했어요.
지도도 도착했다.
멀기만 하던 존내논의 영묘가 이제 성큼 눈앞으로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