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a House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238)
아포칼립스에 집을 숨김-238화(238/466)
99. 네 자루의 도끼 (4)
위이이잉–
드론의 비행음이 들린다.
아까의 것과는 다르다.
보다 빠르고 치명적인 속도감이 느껴진다.
“뭐지? 이건?”
“블레이드형 자폭 드론.”
말이 끝나기 무섭게,
철렁!
그물망 한쪽이 강하게 출렁였다.
그 튀어나온 끝부분엔 칼날을 닮은 팔뚝만한 드론이 갓 잡힌 물고기처럼 요동치고 있었다.
탕!
총격과 동시에 드론이 폭발했다.
후폭풍과 함께 먼지와 흙가루가 건물 안을 가득 채웠다.
“젠장.”
하태훈이 먼지 섞인 침을 뱉었다.
“QBX-22. 자폭 드론 공중 항모가 결국 움직이기 시작했어.”
“몇 발이랬지?”
“32개의 자폭 드론을 탑재할 수 있어.”
“좋은 소식은 아니군.”
“이 그물망으로 버티는 것도 한계가 있겠는걸?”
하태훈이 너덜너덜해진 상태로 커다란 구멍이 뚫린 골프장 그물을 응시했다.
“바이토우를 잡아 오지. 놈을 방패로 삼아 다시 교섭을 해보자고.”
아래에 너부러진 바이토우를 끌고 올라왔다.
가장 먼저 한 일은 포박이다.
인간병기인 이 친구가 정신을 차리면 무슨 짓을 할 지 모르니까.
밧줄로 손과 다리를 묶은 채 기둥에 결박했다.
“중국군 공용주파수로 말해. 바이토우를 잡고 있다고.”
하태훈이 고개를 끄덕이며 무전기에 대고 중국어로 떠들었다.
그러나 아무런 답이 없다.
하태훈이 계속해서 바이토우를 포로로 잡고 있으며 교환을 요구한다면 공격을 중지할 것을 요구했지만 그들은 끝까지 하태훈의 말을 무시했다.
그 행동의 의미하는 바는 하나다.
하태훈이 굳은 얼굴로 말했다.
“우리를 그냥 보내주고 싶진 않은 모양이야.”
“······뭐, 많이 죽이긴 했지.”
천영재가 다섯을 더 죽였다.
이곳에 전개된 병력 중 25%가 소멸했다는 이야기다.
당나라 군대도 아니고 한국에서 동고동락을 하며 3년 이상을 함께 보낸 전우를 잃었으니 그 복수심 또한 얕진 않겠지.
위이이이잉—
또 하나의 블레이드 드론이 골프장 그물망을 뚫어버릴 기세로 날아왔다.
탕!
센서를 노렸다.
하지만.
펑!
내 의도와 무관하게 블레이드 드론은 작지만 날카로운 폭발을 일으키며 우리의 반사역장이라 할 수 있는 골프장 그물을 헤집어 놓았다.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중얼거렸다.
“······이런 걸 30개나 더 버텨야 한다는 이야긴가.”
쉽지 않다.
결코 쉬운 게 아니다.
바이토우 따위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진정한 의미의 위험이다.
“아까처럼 요격은 안 될까?”
“전에 그 정찰 드론과 달리 크기도 소음도 작고 무엇보다 속도가 빨라. 개활지라면 모를까 시야가 차단된 곳에서는 어려움이 있겠지.”
한 가지는 명확하다.
이대로는 죽음뿐이다.
“장소를 옮기자.”
이 방법도 위험하기는 매한가지.
복수심에 찬 드론 조종사가 우리를 발견하기라도 한다면 기어코 우리를 육편으로 만들 것이다.
운 좋게 요격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저쪽엔 30개가 넘는 자폭 드론이 있다.
그 모든 걸 요격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과제다.
“여기가 더 안전할 거 같은데.”
심지어 하태훈은 이미 전투의 피로가 극에 달하고 있다는 걸 역력하게 드러내고 있다.
그가 몸을 웅크리며 말했다.
“······난 여기 남겠어.”
짐작한 대로 사람 자체가 약하다.
“그럼 나 혼자 움직여보지.”
안타깝지만 그를 도울 순 없다.
나조차 살릴 수 없는 마당에 그의 생명까지 걱정한다는 건 지나친 사치겠지.
그렇게 무거운 마음을 안고 발걸음을 옮기려는 찰나였다.
“아니, 그럴 필요 없어.”
다정이다.
그 목소리는 평소와 다르다.
낮고 가라앉았고 말 자체에 무게가 있다.
그녀가 말했다.
“도착했어.”
“뭐가?”
“하늘을 봐.”
우우우웅—
먼 하늘에서 웅웅거리는 소리가 난다.
웅크리고 있던 하태훈이 고개를 들었다.
“이 소리는? 프로펠러기?”
위험한 상황이지만 그와 함께 창가로 가 하늘을 보았다.
“어?”
흩뿌린 듯한 별들로 가득 찬 밤하늘 아래 꽤 높은 고도에서 뭔가 날고 있다.
거의 준전투기 수준의 커다란 비행체가.
“저건?!”
하태훈이 언성을 높였다.
“KUF-FX. 황조롱이?!”
“무인기?”
“어. 국산 무인기야. 저건 군부대급에서나 운용 가능한 건데······.”
하태훈의 중얼거림을 뚫고 다정이의 활기찬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내가 말했잖아! 비장의 무기를 출발시켰다고!”
어두컴컴한 하늘 위에 검은 점이 사신처럼 움직였다.
그것에서 밝은 불빛이 번득였다.
고도 5km에서 번득인 불빛은 지면으로 내려꽂히더니 이윽고 도시 상공 위에서 작은 불꽃을 만들어냈다.
“벌레 다운.”
중국군의 최신예 무인 드론 항모가 일격에 파괴되는 순간이었다.
무인기가 기수를 틀었다.
“자, 어떻게 할까? 남아 있는 애들 전부 죽일까?”
“아니, 고고도에서 머물러. 맨패드가 있을지도 모르니.”
“오케이. 아 그리고 블러드 블루 그쪽으로 향하고 있어.”
“슈퍼 스켈톤 호겠지.”
“블러드 블루.”
“······합류 지점을 정하겠다. 하선배!”
*
철컥-
흔들리는 차량의 짐칸.
천영재는 탄창을 장전하며 후방을 향해 총기를 겨누며 사방을 은은하게 빛나는 눈으로 주시하고 있다.
“동쪽에 좀비 셋. 무시해도 좋아.”
하늘 위엔 시커먼 점이 허공을 배회하며 우리를 지켜주고 있다.
“대단하네. 홍정호. 양아치마냥 이거저거 다 줍는다는 건 알고 있지만 저런 것까지 줍다니.”
천영재가 하늘을 보며 중얼거리자 운전석에 있는 하태훈이 그 말을 받았다.
“군단파에 있다며? 군단파 장비겠지. 안 쓰는 거 고친 게 아닐까?”
“그렇다고 해도. 사적으로 굴려도 되나? 황조롱이는 최소 비행장에서 뜨는 물건인데.”
“군단파 군기도 예전같지 않겠지. 당장 서울도 못 지키고 있는데.”
하태훈이 속도를 늦췄다.
“랑데뷰 지점이다.”
백미러로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진다.
고개를 끄덕이고 차량에 실린 방사능 차폐복을 걸쳤다.
천영재가 거들어줘서 쉽게 입을 수 있었다.
방사능 계측기를 든 채 짐칸에서 내렸다.
저쪽에 인간을 닮은 드론이 우두커니 서 있다.
슈퍼 스켈톤 호다.
그 드론의 오른쪽 머니퓰레이터엔 디스크가 들려 있다.
우리를 이곳으로 데리고 온, 또 나를 제주도로 데려가 줄.
드론의 또 다른 손엔 두 자루의 도끼가 들려 있다.
“······.”
그 도끼들은 나의 우상, 존내논의 유품이다.
삐비비비빅-
드론으로 가까이 갈수록 방사능 측정기가 요동친다.
강렬한 방사능 지대에 머물러 있었으니 당연한 결과겠지.
“어. 내려놓을게. 그게 좋겠지?”
다정이가 말했다.
“부탁할게.”
드론이 도끼와 디스크를 내려놓았다.
디스크는 납처리된 상자 안에 담겨 있다.
존내논의 세심한 일 처리를 볼 수 있는 장면.
삐비비비빅—
드론을 향해 다가가자 방사능 수치가 급격하게 올라 위험 상태를 가리킨다.
집게로 디스크를 집어 이쪽으로 당겨왔다.
디스크를 따로 빼놓고 도끼 쪽을 바라보았다.
“······.”
빈말로도 좋은 도끼는 아니다.
마트에서 파는 캠핑용 도끼를 사서 스티커를 떼고 존내논이라는 문자를 음각했을 뿐이다.
한마디로 싸구려다.
그러나 나는 저 싸구려를 강렬히 원한다.
하지만 아직은 이 도끼를 손에 쥘 순 없겠지.
그 도끼는 내 우상이 감당해야 했던 짐을 고스란히 머금고 있을 테니까.
“회수 완료.”
무거운 마음을 안고 도끼를 뒤로 한 채 뒤로 돌아섰다.
“드론도 폐기해야 할 것 같아. 중국 놈들이 주워서 쓸 수 있으니까.”
총기를 들었다.
순간 드론이 움직였다.
다정이의 짓이다.
그녀는 한 손에 쥔 도끼 하나를 다른 손에 올리고는 두 팔을 움직여 마치 도끼를 엑스 자로 교차하려는 듯한 포즈를 취했다.
“존내논을 위하여.”
“······존내논을 위하여.”
영웅의 도끼를 든 드론을 향해 총을 겨누었다.
탕!
이건 드론을 파괴하려는 총성이 아니다.
일세를 풍미한 영웅을 향한 예포다.
*
불가능해 보였던 작전은 아무런 피해 없이 끝났다.
뭐, 돌아오는 길에 총탄 세례를 받긴 했지만.
한 가지 변화가 느껴진다.
날 바라보는 내 동료들의 시선이다.
“야. 역시 시발. S급은 아무나 받는 게 아니네.”
“내가 말했잖아. 박선배야 말로 우리의 정신적 지주라고. 시발. 바이토우 새끼. 뭐? 중국 최강자? 알고 보니 좆도 아닌 놈이더구만.”
그들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
“그가 방심했기 때문에 이길 수 있었다.”
진담이다.
날 포로로 잡겠다고 떠든 순간부터 그의 오만과 방심이 엿보였다.
도끼 투척에 즉시 대응한 것으로 보아 그 수도 계산을 한 것 같은데 예상할 수 없는 궤도로, 3개나 되는 투사체가 날아오자 대응을 못했을 뿐이다.
바이토우, 그는 강하다.
다음에 만나면 아마도 패배하는 건 나겠지.
같은 수가 두 번 다시 통할 일은 없겠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그 친구는 죽이지 않았다.
그 덕분에 시간을 벌 수 있었고 또.
“왜 살려준 거야?”
천영재가 불만 어린 눈으로 날 노려보았다.
“······그 친구. 헌터잖아?”
변덕이다.
나와 비슷한 위치에 있는 헌터에게 보내는 일종의 경의라고 할까.
어쩌면 동류 의식일지도 모르겠다.
지금 그 친구는 하태훈의 리얼돌과 등을 맞댄 채 묶여 있다.
발치에 날붙이를 놔뒀으니 알아서 살아 나오겠지.
그래도 청룡도는 압수다.
청룡도는 트럭 안에 드론과 감시 장비와 함께 짐짝처럼 실려 있다.
내가 청룡도를 쓰겠다는 건 아니고 내 방공호의 데코레이션용으로 쓸 생각이다.
뭐, 곧 제주로 떠나겠지만 그래도 조금이라도 내 아름다운 방공호를 꾸미고 싶은 것이 방공호를 직접 낳은 방공호 어머니의 솔직한 심경이다.
“슬슬 돌아갈게.”
다정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수고 많았다. 스켈톤. 그리고 선후배들.”
디펜더의 목소리 또한 들려왔다.
감사해야 할 건 우리다.
“고맙다.”
이에 디펜더와 다정이가 동시에 말했다.
“우리야말로.”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의지와 관계없이 입꼬리가 올라갔다.
총성으로 얼룩졌던 건조한 심장에 촉촉한 기운이 내려앉는 듯한 기분.
나는 이 감정을 충족감이라 부른다.
“······.”
상상도 못했다.
전장에서 이러한 감정을 느낄 수 있으리라고는.
“다음에 이야기 해.”
다정이의 말을 끝으로 교신은 끊어졌다.
우리들은 말없이 우리의 영역으로 천천히 돌아갔다.
해가 떠오르고 있다.
*
“이게 그 중국인 과학자가 남긴 데이터의 백업 본이라 이거지?”
탁자 위에 디스크가 올려져 있다.
디스크는 고속 USB 단자를 통해 접속할 수 있었다.
방사능이 디스크를 망가뜨린 건 아닌지 걱정했지만 다행스럽게도 데이터는 살아 있었다.
데이터의 용량은 5기가 바이트.
데이터는 하나의 압축 파일로 묶여 있었고 간단한 암호화 처리가 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 암호는 데이터에 붙인 라벨지에 적혀 있었다.
그 암호는.
[ John_nenon ]친숙한 이름을 보자마자 피식 웃었다.
“아까부터 궁금한 건데 존내논이라는 사람. 대체 누구야? 전에 들은 거 같긴 한데 딱히 중요한 사람 같진 않았거든.”
천영재가 묻는다.
하태훈도 궁금한 눈치.
그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빛이 된 남자를 – 이제는 양팔마저 잃은 – 생각했다.
“나의 롤모델이다.”
롤모델의 닉네임을 암호창에 입력했다.
압축이 풀리고 하나의 연구 자료가 우리 앞에 펼쳐졌다.
열어보았다.
“으음.”
한 눈에도 복잡한 기록.
동료들을 돌아보며 물어보았다.
“볼 사람?”
둘 다 고개를 가로젓는다.
데이터를 확인하는 건 나중에 해도 늦지 않겠지.
“난 좀 씻을게.”
“나도.”
“씻고 밥이나 먹고 잠이나 자자고.”
“보초는 누가 서고?”
“오면 죽어야지. 약탈자 새끼들도 운수 좋은 날 정도는 있어야 할 거 아니야? 오늘 너무 힘 썼어.”
둘이 샤워실로 향하는 동안 나는 비바! 아포칼립스!에 접속했다.
오랜만에 보는 게시판 풍경.
언제나 정겨운 풍경이지만 나는 알고 있다.
이제는 이 게시판만으로 나는 완벽한 위안을 얻을 수 없다는 걸.
언제부터인가 내 마음속에 김다람의 부하가 나를 죽일 수 있다는 병적인 불안감이 역병처럼 자리 잡았다.
제주도에 내 자리가 있다는 유니콘의 말도 솔깃하지만 정확한 심경을 말하자면 지쳤다고 할까.
언제 죽을지 모르는 이 불안감으로부터 조금은 해방되고 싶다.
자다가도 셀 수 없을 정도로 깨는 이 매일 얇은 유리판을 밟는 것 같은 생활에서 벗어나고 싶다.
아무리 제주도가 마경으로 변했다고 하지만 적어도 지나가는 사람이 내 집에 침입해 내게 총질을 하진 않겠지.
3년하고도 7개월. 그러한 불안정함 속에서 살았다.
“······.”
가장 큰 원인은 그렇다.
우리나라 사람들.
너무 질긴 거 아닌가?
아무리 민초(民草)에 비유된다고 하지만 한국인의 생존력은 도를 넘었다.
차라리 민트초코에 비유됐다면 내가 원하는 세상이 펼쳐졌겠지······.
타닥타닥
유니콘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SKELTON : 자료 확보했다.
조금은 기다릴 거라 생각했다.
아니었다.
unicorn18님으로부터온 메시지 : 뭐?! 진짜?! 진짜 그걸 손에 넣은 거야?
새벽 시간인데도 접속해 있다니.
임무는 안 하나.
전에도 비슷하게 빠르게 응답한 느낌인데.
아무튼, 빠른 응답은 좋은 일이다.
SKELTON : 자료의 일부라도 보내줄까?
unicorn18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으, 응. 부탁할게.
자료의 일부를 보냈다.
unicorn18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아무래도 진짠 거 같네······.
SKELTON : 약속은?
unicorn18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당연히 지켜야지. 안 그래도 너 같은 아니, 아니다. 내가 생각하는 사람이 아닐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그걸 손에 넣을 정도면 대단한 사람이겠지.
unicorn18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의회와 협의해보고 비행기를 보내든가 할게.
SKELTON : (존내논) 알겠다.
unicorn18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
SKELTON : (존내논) ······.
unicorn18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아, 그런데 말이야. 솔직히 말하자면······.
SKELTON : 무슨 일이지?
unicorn18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제주도. 네가 생각하는 만큼 좋은 곳이 아닐 수도 있어.
unicorn18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알아두라고.
“······.”
불안한 예감이 드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