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a House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239)
아포칼립스에 집을 숨김-239화(239/466)
100. 악귀야차 (1)
unicorn18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검토하는데 시간이 좀 걸릴 거야. 느긋하게 기다리고 있어. 비행기 띄우는 것도 수고가 드는 일이니까.
자료를 보낸다고 해서 바로 제주도로 가는 건 아니다.
나도 즉시 제주도로 갈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지만 디스크 전체를 넘기는 우는 범하지 않았다.
유니콘이 내게 그런 요구를 한 적도 없지만 말이다.
이 디스크야 말로 나의 생명선이다.
그 안에 무슨 내용이 담겨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아무튼, 제주도의 결정에 시간이 걸리므로 우리는 의문의 중국인 과학자가 남긴 자료를 분석할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자료의 해석과 분석을 요구한 건 천영재였다.
“할 일도 없는데 자료나 뜯어 봐. 대체 이게 뭐길래 그 새끼들이 기를 쓰고 찾으려고 했는지 궁금하지 않아?”
그에겐 그럴 자격이 있다.
목숨을 걸고 승산이 낮은 전장에서 솔선해서 싸웠으니.
당장 이사 갈 건 아닌지라 하태훈은 레베카 모녀가 만든 오두막에 머물게 했다.
전투가 일단락됐다고 하지만 중국인들은 복수심과 집념이 강하다.
혹시 모를 추적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경계를 게을리 할 수 없다.
천영재가 보초를 자진해서 맡는 동안 나와 하태훈은 번역 프로그램과 인터넷 사전 등을 이용하여 수천 개의 파일로 이루어진 자료 하나하나를 탐사하기 시작했다.
“······.”
정직하게 말해서 무슨 말인지 모르겠고 계속 본다고 해서 그 의미를 알 것 같지 않다.
원시인에게 책을 던져주고 알아서 해석하라는 것과 크게 다를 바가 없는 상황이다.
하태훈도 나와 상황이 크게 다르진 않았지만 그는 나보다 중국어를 잘하고 대학물 – 4년제 – 도 먹었다.
집에 돈이 많다는 건 실패를 하더라도 다른 기회를 보장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니.
흙수저인 디펜더가 이른바 “노가다”를 전전하여 갖가지 잡일을 하며 생계를 꾸린 것과 크게 대조되는 장면이다.
아무튼 하태훈은 여러 개의 파일을 살핀 후 조심스럽게 그가 생각한 가설을 제시했다.
“이거 아무래도 신생아와 어웨이큰과 관련된 거 같은데.”
“신생아? 어웨이큰?”
나는 어리둥절한 반응을 보였다.
신생아와 어웨이큰.
두 개념을 만년필과 마우스만큼이나 관계없는 개념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가 아무런 이해를 못한다는 반응을 보이자 하태훈이 머리를 긁적이며 자신의 의견을 보충했다.
“그러니까······ 뭐라고 해야 하나. 중국에도 어웨이큰 적성을 가진 아이들이 많이 태어났다는 걸 알 수 있는 데이터지.”
“그야 당연하겠지. 한국보다 수십 배는 더 많이 태어나지 않았을까? 인구 빨도 인구 빨이지만 한국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많은 침식이 이루어졌으니.”
“너는 뭐 찾은 거 없냐?”
“뭔 DNA 분석이니 염색체니 머리 아픈 것만 잔뜩 있어. 해석 불가.”
“계속 파보자고. 중국 애들이 이 자료를 기를 쓰고 찾는 건 나름의 이유가 있다는 이야기니까.”
그렇게 다시 분석(?)에 들어갔지만 나는 여전히 내가 뭘 분석하는지도 모른 채 숫자와 알파벳, 간자체로 이루어진 이미지 파일을 멍하니 흘려보내야 했다.
“잠깐만.”
결국 내가 먼저 타임을 요청했다.
“인터넷에 물어보는 게 좋을 거 같은데.”
“인터넷? 그 뭐, 위성 인터넷 말이지? 멜론 마스크가 만들었다는······ 스타체인 네트워크였나.”
“그 이름은 오랜만에 듣네. 그런 이름이었던 거 같아. 지금은 다 비바! 아포칼립스!라는 이름을 쓰지만.”
“아. 그게 그거였나.”
“알아?”
“나도 잠깐 페일넷 했으니까.”
인터넷엔 허당도 많고 관종도 많지만 아주 적은 비율로 현인도 존재한다.
우리 한국어 게시판만 해도 선비, 동탄맘 같은 질 떨어지는 유저 몇 명을 제외하면 나름 배우고 사회적 지위가 있는 화이트칼라의 향기를 진하게 풍기는 남성들의 모임이었다.
이제는 열 명 중 세 명 정도가 남은 게 중론이긴 하지만 그 안에도 능력자가 포함될 확률이 있다.
굳이 한국어 게시판이 아니더라도 유저도 많고 우리만큼이나 또 엘리트도 많은 영어 게시판이라면 기대 이상의 답변을 들을지도 모른다.
해서 도저히 해석이 불가능한, 수식과 화학식으로 가득 찬 연구 데이터 이미지 파일 하나를 영어 게시판에 우선적으로 올렸다.
SKELTON : 이거 우연히 손에 넣은 중국 연구 자료인데 해석 가능한 사람 있냐?
멜론 마스크의 생존이 밝혀진 후 활성화된 번역 기능은 멜론 마스크가 왜 IT업계에서 탑을 찍었는지 여실히 드러낸다.
내가 쓰고도 내가 놀랄 지경이다.
빅데이터와 A.I, GPT를 조합한 번역의 신뢰도를 보면 균열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10년 안으로 언어의 벽이 해소되지 않았을까?
Alpine88 : 흐으으으음. 흥미롭군.
xx_dagnite_xx : 저 화학식은 생체 데이턴가.
DOMUS : 내가 중국 놈들 씨를 말린 핵미사일 여러 개를 발사했지. 온타리오 사일로에서.
중국 연구자료라는 말이 어그로를 끌었는지 댓글 여러 개가 달렸다.
추천이 찍히거나 조회 수가 크게 늘어난 건 아니지만 일단 댓글만 보면 나름대로 자료를 해석해보려는 친구들이 생긴 건 사실이다.
한국어 게시판에도 자료를 올릴까 하다가 관뒀다.
굳이 그럴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이제 한국어 게시판에 나보다 똑똑한 놈 없잖아?
지금까지 돌아가는 꼬락서니 보니 과학자 같은 건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 같고.
그렇게 집단지성이라는 보험을 들고 하태훈과 함께 이해할 수 없는 텍스트 해석 작업을 계속해서 실시했다.
오후 무렵 교신기가 울렸다.
“멀리 차 한 대가 지나가는데.”
나와 하태훈은 거의 동시에 일어서서 총기를 들었다.
뒤이어 천영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별 건 아니고. 지나가는 사람 같은데? 피난민으로 보여.”
나와 하태훈은 서로를 마주 보며 피식 웃었다.
생각이 통했다.
중국군에 대한 걱정도 걱정이지만 둘 다 이 도대체가 알아먹을 수 없는 자료 보기가 싫었던 것이다.
잠깐 휴식 시간을 가지고 다시 자료를 분석했다.
오후 경에 영어 게시판에 다시 접속해보았다.
미국 시간으로 새벽이겠지만 멸망기에서 낮과 밤은 크게 다르지 않다.
오히려 밤 쪽이 낮보다 더 엄한 일이 일어날 확률이 높다.
내가 누군가의 방공호를 턴다고 가정하면 나도 낮보다는 밤을 택할 테니까.
아까 달린 댓글 말고 새로운 댓글이 달려 있었다.
xx_gnite_xx : 자료의 극히 일부라 결론을 내리는 건 성급하지만 제시된 자료로만 검토했을 때 이 자료가 이야기하는 건 유전에 관한 데이터다.
xx_gnite_xx : 다시 풀어서 설명하자면, 어웨이큰이라고 불리는 균열에 영향받은 사람들이 형식적으로 유전자 상에 아무런 이상현상을 보이지 않지만 실제로는 그 후손에 치명적인 유전적 결함을 야기한다는 사실을 데이터가 제시하는 것으로 보인다.
xx_gnite_xx : 어디까지나 내 가설이지만 말이야. 간만에 자료 해석을 했더니 피곤하네. 침대로 가야겠다. 추가 자료 있으면 올려봐. 일어나서 확인해볼 테니.
“호오.”
솔직히 별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런데 제법 그럴듯한 말을 하고 있다.
이 친구의 아이디를 눈여겨보며 다른 창에 띄운 연구 자료를 눈으로 훑었다.
연속되는 자료를 올려볼까, 아니면 내가 보기에 중요해 보이는 자료를 올려볼까.
하나씩이니 괜찮지 않을까.
뭐, 이 친구가 거짓말을 할 가능성도 있다.
인터넷 좆문가가 어디서 주워들은 말로 사람 현혹하는 거야 하루 이틀 있는 일이 아니니까.
미국인이라고 해서 그런 인간들이 없으리라는 법은 없다.
비록 자료 해석은 전문가지만 인터넷 전문가답게 나는 그럴듯한 의견을 제시한 영어 게시판 유저의 게시글을 검색해보았다.
xx_gnite_xx : 금발 남편 죽일까? 12게이지 있는데.
xx_gnite_xx : 양귀비 여기까지 키웠는데 여기서 어떻게 해야 행복해지는 약 만들 수 있냐?
xx_gnite_xx : 옆 쉘터에 사는 금발 빵빵 강간하고 싶다.
xx_gnite_xx : 갱스터 스타일 비트박스
xx_gnite_xx : 감자칩 갓 기름에 튀겨 올린 바삭한 감자칩이 먹고 싶다
xx_gnite_xx : 건너편 쉘터 할망구 드디어 죽었다 하하
xx_gnite_xx : (사진첨부) 이거 매독 증상이냐?
xx_gnite_xx : 옆 쉘터에 사는 금발 생각하며 자위행위 했다
…
…
“······.”
이거, 영 느낌이 좋지 않은데.
그런데 글들을 보니 환경이 그다지 좋아 보이진 않는다.
과학자건 연구자건 미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세상이라면 저런 글을 쓰며 평소의 광기를 발산할 수도 있는 거지.
무엇보다 이 친구의 갱스타일 비트박스.
차마 봐줄 수가 없을 정도로 끔찍했다.
하지만 희망의 끈을 놓진 말자.
이 친구가 미쳐버린 과학자일 가능성도 여전히 남아 있으니까.
그렇게 새롭게 올릴 자료를 뒤적거리던 중이었다.
“어. 이거.”
밥먹자는 말 말고는 한마디도 하지 않던 하태훈이 불쑥 입을 열었다.
“뭐라도 찾았어?”
“문서 기록. 전부 다 문장이야.”
“오. 그래?”
우리 같은 무식한 놈들에겐 이과적인 데이터나 수치보다는 문장 쪽이 그나마 친숙하다.
“뭐라고 적혀 있어?”
“어. 잠깐만.”
하태훈이 모니터에 얼굴을 갖다 대더니 이내 얼굴을 찡그리며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하 씨발. 좆같네 진짜.”
“왜?”
“광동어로 적혔어.”
“광동어?”
“홍콩 쪽에서 쓰는 건데 문어체도 아니고 죄다 구어체네.”
“그럼 말 안 통해?”
“어. 말 안 통해. 쓰는 단어부터 다른데. 나 이건 못 읽겠어.”
“그럼 잠깐만.”
하태훈에게 파일을 전송받아 그걸 그대로 비바! 아포칼립스!에 업로드했다.
물론 비밀글로 말이다.
(자물쇠표시) SKELTON : 스켈톤의 히든 파일
내 글은 인터넷 상에 이런 식으로 표현되지만 비밀글은 다른 유저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
비바봇이 관리자로 부임하면서 추가된 기능이다.
다들 자기 일기장 보여주기에 급급한 관종들만 모인 이 바닥에서 아무 쓸모 없는 기능이라는 비판을 받긴 했지만 이러한 비밀글은 친구 등록을 한 일부 유저를 초대하는 방식으로 열람하게 할 수 있다.
물론 여기서는 보여줄 사람이 없다.
내가 여기에 글을 올린 건 순전히 번역 기능을 사용하기 위해서다.
-번역할 언어를 선택하십시오.
비바! 아포칼립스!는 다양한 언어를 지원한다.
심지어 이제는 화자조차 없는 마야어까지 지원할 정도니 홍콩 사람이 쓴다는 광동어라면 당연히 지원하겠지.
아니나 다를까 광동어가 보인다.
즉시 광동어로 해석을 요청했다.
잠깐 회전하는 톱니바퀴가 나오더니 곧 문서의 언어가 한국어로 바뀌기 시작한다.
“오오.”
옆에서 보던 하태훈이 탄성을 내뱉었다.
“이거 마마고 상위호환 같은데? 마마고보다 훨씬 기능이 좋은 거 같아.”
“멜론 마스크가 만든 거니까.”
“오. 그래?”
“참고로 나, 멜론 마스크와 개인적으로 메시지도 주고받은 적이 있어.”
“진짜냐?!”
빙그레 웃으며 그에게 나와 멜론 마스크가 주고 받았던 역사적인 기록을 보여주었다.
“와······. 멜론 마스크. 이 새끼 진짜 우주에 갔었네. 헛소문인 줄 알았는데. 그게 진짜일 줄이야.”
은은한 미소를 머금으며 커피를 한 모금 머금었다.
후루룩-
비바! 아포칼립스! 가입하길 잘했다.
내 인생 몇 안 되는 최고의 선택이다.
하태훈 같은 금수저가 문명 파괴의 어둠 속에서 원시인처럼 살고 있을 때 이 박규는 전쟁 전과 크게 다를 바 없는 문화생활과 지구적인 규모의 네트워킹을 만끽한 걸 보면 말이다.
비바리언의 자부심을 품은 채 시선을 번역된 문장으로 옮겼다.
후루룩-
하태훈이 커피를 마시며 나와 함께 같은 문서를 보았다.
그런데 이 양반.
나보다 속독이다.
“어?!”
내가 첫 문장을 해석하기도 전에 하태훈이 먼저 어리둥절한 소리를 입에서 냈다.
“이거······.”
뒤늦게 나도 그의 속독 속도를 따라잡았다.
“······.”
이건 연구 기록이 아니다.
연구에 대한 평가나 산출물도 아니다.
우리가 보고 있는 건, “왕서방”이라 알려진 한 과학자가 남긴 메시지다.
[ 나를 악귀야차라 불러라. ]허먼 멜빌의 모비딕을 연상케 하는 도입부로 시작된 익명의 과학자의 문서는 우리가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그러나 어렴풋이 알고 있던 진실을 담담하게 서술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