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a House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241)
아포칼립스에 집을 숨김-241화(241/466)
101. 이륙
Defender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악몽이라······ 그럼 어쩔 수가 없겠네. 얼굴 한번 보고 싶었는데 동생 몸도 그렇고 이쪽도 사정이 여의치가 않아서 말이야.
Defender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제주도에 가면 연락 줘. 살아 있는 건 확인해야지.
Defender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나 다정이야. 스켈톤. 마음고생 그렇게 심한 줄 몰랐네. 우리가 없어서 마음이 약해진 거야? 우리가 옆에 있었으면 안 그랬겠지······? 농담이고 거기서도 잘 지내. 가끔 연락도 하고! 자주 해도 좋아!
디펜더 남매에게 제주도에 간다는 사실을 알렸다.
가슴 아프긴 하지만 해야만 하는 일이다.
계속 되풀이 되는 악몽은 적절한 이유였다.
그것은 중국에 간 헌터 사이에선 유명한 전설이다.
보르헤스의 단편집에서 모티브를 얻었다는 그 도시 전설의 내용은 아래와 같이 요약된다.
1. 같은 내용의 악몽이 반복되면 반드시 그 악몽은 현실로 재현된다.
2. 그 악몽이 예지몽은 될 수가 없다.
3. 그 수없이 반복된 악몽의 상황이 너무나 익숙한 나머지 악몽을 꾼 당사자는 자신에게 벌어진 일이 또 다른 악몽이라고 생각하며 체념하기 때문이다.
당시의 스켈톤은 도시 전설 같은 헛소문 같은 걸 일체 믿지도 않고 알고 싶지도 않은 사람이라 그 소문을 알지 못했다.
내게 그 도시 전설을 이야기를 해준 사람은 내 팀원으로 아침을 먹으러 식당에 나오면 찡그린 표정으로 식탁에 앉아 날 기다리던 친구였다.
“······팀장. 또 그 꿈을 꿨어.”
그녀의 악몽은 자신이 쏜 총알에 자신이 죽는 내용을 가지고 있었다.
장소도 시간도 몬스터의 종류도 시시각각 바뀌지만 자신의 총알이 반사역장에 반사되어 자신의 미간에 박히는 내용만은 소름 끼치도록 일치했다고 한다.
그때 나는 악몽은 악몽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그러나 그 악몽은 현실로 실현됐다.
김다람이 부상을 입어 대타로 나온 그녀가 김다람의 포지션에서 쏜 탄환이 빗나갔고 그녀는 자신이 꾼 악몽과 똑같은 최후를 맞이했다.
복무 부적합 신청이 수리되어 한국으로 귀환하기 일주일 전의 일이었다.
그녀와 비슷한 악몽을 꾸고 있다.
장소는 나의 안락한 방공호.
나는 침대에 바로 누워 정자세로 수면을 취하고 있다.
문이 열린다.
왜 열린 지는 나도 모른다.
까닭 모를 원인으로 문이 열리고 총기를 든 괴한들이 들어 온다.
침대 맡에 늘 놔두는 총기를 들고 항전해보지만 끝 없이 밀려오는 검은 괴한들이 방공호 전체를 채우고 그 속에서 나는 익사한다.
때로는 총을 맞아 죽기도 하고 때로는 개머리판에 맞아 정신을 잃은 채 구타당해 사망에 이르기도 한다.
고문을 당하는 버전도 있었는데 꿈의 내용이 워낙 흐릿해 어떤 고문을 받았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수많은 파생이 있지만 악몽의 큰 틀은 하나다.
야밤에 내가 자고 있을 때 괴한들이 내 방공호를 덮치고 나를 죽인다는 것이다.
이 악몽이 시작된 건 김필성이 내 방공호로 들어온 뒤였다.
비록 김필성은 죽였지만 그가 남긴 불안은 시시각각 날 괴롭혔고 김다람과 연락이 재개된 이후부터는 더욱 기세를 올려 숙면을 지향하는 나로 하여금 몇 번이고 총기를 들고 침대에서 일어나게 만들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의학 DVD에 의하면 마음의 병을 치유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마음의 병을 초래한 원인을 제거하는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 원인을 제거하는 게 그리 쉬운 세상이 아니다.
누군가가 말하길 내 방공호를 떠나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당장 방공호를 나간들 안전한 장소를 찾을 수 있을까?
답은 결국 안전과 치안이 보장된 장소 – 제주도밖에 없다.
“왜 굳이 제주도로 떠나려고 해? 여기 정도면 철옹성을 만들고도 남겠는데.”
언젠가 천영재가 내게 물었을 때 나는 쓴웃음을 머금으며 답했다.
“정신병.”
천영재가 고개를 끄덕였다.
“박선배도 그런 거에 걸리는구먼.”
“이 생활을 한 지 이제 4년을 바라보고 있으니까.”
3년 정도면 한 사람이 망가지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이러한 정신병에 걸리지 않기 위해 비바! 아포칼립스! 등 수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결국 끝없이 계속되는 정신 테스트라는 주사위 굴림을 성공해내지 못한 것이다.
unicorn18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날이 잡혔어. 곧 비행기가 뜰 거야. 수화물 무게는 10kg 이하로 해달라고 하네.
유니콘에게 메시지가 왔다.
그에게 답신을 보냈다.
SKELTON : 무기와 탄약은?
여러 가지 의미가 깃든 물음이다.
곧 유니콘이 답장했다.
unicorn18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필요 없을 거야.
탄약과 총을 뺀다면 수화물 5kg 분은 벌겠군.
동시에 제주도의 치안 또한 확인받았다.
나를 제주도로 데려다줄 비행기는 내일 새벽에 미군기지 활주로에 착륙한다고 한다.
요청 사항은 조명탄이나 기타 발광 소재로 활주로를 명확하게 표시해줄 것.
손이 가긴 하지만 천영재와 하태훈의 손을 빌리기로 했다.
그런데 유니콘 녀석. 자꾸 내 결심을 흔드는 발언을 한다.
unicorn18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전에도 말한 거 같은데. 제주도 생활. 여러모로 힘들 거야. 게시판 보면 자유분방하게 사는 거 같은데 제주도에서는 그런 게 안 되거든? 전체가 하나의 커다란 병영이라고 생각하면 돼. 뭐, 그런 게 좋으면 와도 되겠지만 그렇지 않고 거기가 더 편하다면 차라리 거기 있는 게 나을지도 몰라.
unicorn18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제주도에서도 본토로 돌아가고 싶은 사람들 꽤 많거든.
유니콘 녀석.
왜 자꾸 이런 말을 하는 거지?
아무리 거기 환경이 지랄 맞다고 해도 언제 죽을 지 모르는 여기보다는 사정이 낫지 않나.
그건 그렇고 이 녀석 할 일이 없나.
게시물 올리는 것도 그렇고 메시지 바로 답신하는 것도 그렇고 24시간 동안 게시판에 붙어 있는 느낌이다.
설마, 내가 생각했던 그 인물이 아닌 건가.
강한민이나 나혜인이 24시간 동안 방 안에 처박혀서 인터넷에서 똥글이나 싸는 건 상상이 가지 않는 대목인데.
그건 그렇고 이 녀석이 이렇게까지 말하니 나도 조금은 조심스러워진다.
SKELTON : 혹시 갔다가 마음에 안 들면 돌아올 수 있냐?
만일에 대비해 유니콘에게 물어보았다.
유니콘은 3초만에 답했다.
unicorn18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네가 불러 준 주소로는 안 될 걸? 비행기를 띄워야 하니. 네가 이번에 비행기 탈 수 있는 것도 네가 가지고 있다는 중국인 데이터 덕분이니까.
unicorn18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우리 쪽 과학자가 자료 컨펌하고 오케이 사인 주긴 했는데 네 데이터, 만약에 엉터리면 안 오는 게 좋아.
SKELTON : (스켈톤 식은땀) 왜?
unicorn18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너 같으면 비싼 항공유까지 써가며 데리고 온 놈이 사기꾼이면 그냥 내버려 두겠어?
SKELTON : 으음. 대답하기 곤란한 문제군.
unicorn18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총살까진 아니겠지만 인간 대접 못 받고 사는 거 각오해야 해. 뭐, 뮤테이션 농장 같은 곳에 떨어지겠지.
SKELTON : 뮤테이션 농장? 사료 주고 똥 치우는 일인가?
unicorn18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비슷하긴 한데 더 끔찍하지. 거기 뮤테이션들이······.
SKELTON : ?
unicorn18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아무튼 자신 있으면 오고 사기조작질이지면 오지 마.
SKELTON : (스켈톤 정색) 아직 질문에 대한 답변을 못 들었는데?
unicorn18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한 달에 한 번 연락선이 가. 전에는 목포로 보냈는데 이제는 부산으로 보내고 있어. 거기엔 아마 태워줄 거야. 아무리 제주도가 지랄 맞은 곳이라고 해도 오고 싶어 하는 사람이 떠나고 싶은 사람보다 많으니까.
unicorn18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나 폭스게임 신작 일퀘해야 하니까 오늘은 더 이상 연락하지 마.
“부산이라······.”
혹 제주도 생활이 맞지 않다고 해도 우리 동네가 아닌 부산에 내려주겠다는 소린가.
부산에서 내 영역까지 거리는 서울에서 부산보다는 가깝겠지만 수백 킬로미터다.
그것도 아마도 침식이 대단히 많이 진행된, 내가 모르는 영역을 거쳐와야 한다.
그것도 아마도 도보로 말이다.
제주도 놈들이 모터사이클 같은 거 내주면 좋겠지만, 백승현의 모터사이클 같은 양품을 떠나는 놈한테 덜컥 쥐여줄까?
아무튼 가고 싶은 놈 안 잡는다는 말이 심금을 울린다.
그 자리에서 나는 하태훈과 천영재를 모았다.
“진짜, 진짜 미안한데 말이야.”
그들의 어리둥절한 시선을 받으며 나는 나답지 않은 생떼를 썼다.
“내가 제주도에 가더라도 일단 내 방공호는 비워줬으면 해. 안에 있는 탄환, 물자 쓰는 것까진 괜찮은데 가구 배치라든지 안의 장식물 같은 건 그 자리에 놔뒀으면 좋겠어.”
하태훈이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물었다.
“제주도 한 달 살기라도 하러 가는 듯한 뉘앙스네.”
“그럴 가능성이 있어서.”
“선배 까다로워?”
“내가 좀 까다롭지.”
“중국엔 어떻게 있었대?”
“너 때랑 나 때랑 다르지. 안 그래 하선배?”
“나쁘지 않았지.”
한참 시끄럽게 대화를 나눈 후 내 영역의 동료들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천영재와 하태훈이 시선을 교환했다.
곧 천영재가 말했다.
“그렇게 하지. 어차피 난 그 방공호 안 쓸 테니까. 지금 사는 곳에 나 같은 놈에겐 여기보다 더 안전하고 싸우는 것도 더 유리해.”
하태훈도 자폭형 블레이드 드론을 만지작거리며 입을 열었다.
“난 아예 새집을 만들 생각이야.”
“새집?”
“차고의 작업 차량하고 설비 써도 되지?”
“어, 그래. 써도 돼. 뭐, 중간에 들키지 않을 자신만 있다면.”
“나도 내 전용 방공호 하나 지어야겠어.”
“선배 공사 잘해?”
“아버지가 공사를 했지. 어릴 때부터 잘산 건 아니라서 아버지 따라다니면서 이런저런 잡일을 어깨너머로 배웠지. 어머니랑 아버지랑 이혼한답시고 싸워대던 시기기도 했고.”
하태훈이 피식 웃으며 먼 곳을 바라보며 덧붙였다.
“아버지가 돈 잘 버니 언제 그랬냐는 듯이 가정이 화목해지더군.”
“화목한 가정의 조건이지.”
“아무튼, 좀 쓴다?”
“마음대로 해. 부숴 먹지는 말고.”
그렇게 내 방공호를 잠시 비워둔다는 동의를 받긴 했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하태훈도 그렇고 천영재도 그렇고 이 친구들 눈치채고 있는 모양이다.
내 방공호가 결코 안전하지 않다는 걸 말이다.
프로페서가 뭔지 몰라도 대한민국에서 제일 잘 나간 헌터 멱 따겠다는 놈이 한둘은 아니겠지.
치지지직—
“여기는 알파 원. 현재 저고도로 접근 중. 주변에 적대세력이나 활주로 장악이 곤란한 경우 기타 이상 발생시 즉시 회신 바란다.”
비행기가 온 건 7월이 들어서기 전의 새벽이었다.
밤새 소나기가 와서 공기는 청량하면서도 선선한 수증기를 머금고 있었다.
하태훈, 천영재와 함께 드럼통에 불을 피워 활주로 경계를 표시했다.
낮은 산등성이 너머에서 웅웅 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 웅웅거림은 일전에 다정이가 운용했던 대형 무인기가 내던 프로펠러음과 유사했다.
“경비행기네. 소형 프로펠러기로 보인다.”
드론만이 아니라 항공기에도 일가견이 있는 하태훈이 중얼거렸다.
곧 어슴푸레 속에서 항공기의 그림자가 나타났다.
저 너머에 펼쳐진 산과 거의 닿을 정도로 낮게 비행해오던 항공기는 우리의 불빛을 발견했다.
“여기는 알파 원. 활주로 발견. 즉시 착륙을 시도한다. 활주로 상에 있다면 즉시 활주로 상에서 벗어나길 바란다.”
어둠 속에서도 비행기는 어렵지 않게 착륙했다.
비행기의 크기는 상상 이상으로 작았다.
왜 수화물을 10kg으로 제한했는지 단박에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당신이 스켈톤입니까?”
조종사는 권총을 쥔 채 우리에게 다가왔다.
그 권총의 안전장치는 풀어진 상태였다.
그 앞에 나서며 디스크를 보여줬다.
“내가 스켈톤입니다.”
“수화물은?”
“저기 있습니다.”
그가 수화물을 살폈다.
“음? 이건.”
조종사가 위성장치를 가리켰다.
“오벨리스크는 반입금지입니다.”
“그런가요?”
“보안 정책을 위배하는 사람이 많아서요.”
“제주도에도 그걸 쓰는 사람이 있던데. 당장 저만해도 그걸로 연락이 닿았습니다.”
내 항의에 조종사는 담배를 입에 물며 쓴웃음을 머금었다.
“······높은 사람이겠죠.”
그 말을 듣는 순간 잊고 있던 강한민과 나혜인의 얼굴이 다시 눈앞을 스치고 지나갔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유니콘18. 그는 진짜 강한민, 혹은 나혜인이란 말인가.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지만 이제는 확인할 수 있다.
한때 김다람의 낙원을, 그리고 내가 이름조차 언급하는 걸 꺼렸던 내 세상을 파괴한 옛 동료들을.
“······.”
비록 악몽에 패배해 내 영역을 떠나긴 하지만 적어도 세상과 마주할 용기를 얻은 건 사실이다.
“그럼.”
날 바라보는 선후배를 바라보며 손을 들었다.
피와 죽음으로 연결된 전우 사이에 많은 말은 필요하지 않다.
“난 말이야. 선배가 한 달도 못 버틸 거 같아.”
“모르지. 그건. 아무튼, 잘 살아라. 공사는 오늘부터 시작할 거다.”
짧은 인사 후 그들은 미련 없이 돌아섰고 그들이 떠나자 잔뜩 경계하던 조종사의 경계심이 상당히 풀어졌다.
그를 향해 말했다.
“갑시다.”
“잠깐만요.”
“?”
“밥도 먹고 오줌도 누고 기름도 채우고 좀 쉬어야죠.”
조종사가 너스레를 떨며 답했다.
조종사의 볼일이 끝난 후 우리는 다시 비행기를 타고 활주로에서 이륙했다.
순식간에 나의 영역이 거짓말처럼 작아졌다.
개미의 왕국처럼 작아진 세상 저 너머에 여러 개의 도시와 회백색의 영역이 보인다.
전쟁이 시작된 후 3년하고도 7개월이 지났다.
나 박규는 새로운 삶에 도전하려 한다.
그리고 다시 마주하려 한다.
강한민과 나혜인.
나의 옛 동기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