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a House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245)
아포칼립스에 집을 숨김-245화(245/466)
103. 투쟁 (1)
제328 초소는 한라산 해발 1,200m 지점, 동북쪽을 조망할 수 있는 능선 위에 지어졌는데 완만한 경사를 가진 구릉에 있는듯한 모양새다.
초소는 정팔각형 형태로 군 초소라기보다는 전망대와 비슷한 생김새를 가졌는데 사방팔방에 뚫린 유리창의 크기 또한 전망대처럼 널찍널찍했다.
초소 내 주요 장비로는 옥상에 설치된 탐조등과 초소 내에 비치된 야간용 적외선 감시장비가 있는데 탐조등은 전력 수급이 제대로 되지 않아 오래 전부터 봉인됐고 야간 감시장비도 배터리 문제로 전원이 제대로 켜지지 않았다.
초소는 원래 4인 근무를 상정하고 지어졌다.
그러므로 4명이 쓰고도 남을 1개의 널찍한 내무실과 인버터를 쓰는 조리실, 그리고 위생시설이 있다.
물은 전적으로 빗물에 의존해야 했기에 샤워시설 대신 물을 받는 욕조와 빗물을 세정하는 세정 캡슐이 구비되어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야간에 욕조를 데우는 장치가 있어 한 겨울에도 어느 정도 미지근한 물로 씻는 게 가능했다.
가장 중요한 전력 부문은 전선이 연결되어 있긴 하지만 전력 상태가 불안정해 대부분은 옥상에 설치 된 태양열 전지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통신 장비로는 고리타분한 다이얼식 유선 전화기와 컴퓨터가 있었고 보조 장비로 휴대폰이 있었다.
주된 통신 수단은 어째서인지 전쟁 전 PC방 스티커가 붙어 있는 컴퓨터였는데 주된 업무 보고와 요청 사항은 설치된 업무 프로그램에 의해 이루어지게 되어 있었다.
신호가 약하긴 하지만 전파가 닿기에 가능한 일이다. 보조 통신 수단으로는 휴대폰과 유선 전화기가 있었는데 매뉴얼에 의하면 유선 전화기가 더 신뢰도가 높다고.
초소의 사정이 전체적으로 열악하다 보니 감시카메라 같은 지긋지긋한 장비는 찾아볼 수 없었다.
초소 밖엔 여러 개의 무덤이 있었다.
대부분 묘비가 없었고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현무암질 돌을 올려놓은 게 전부였다.
무덤 앞에 놓인 돌 하나엔 말라붙은 꽃송이가 바스락거리며 흔들리고 있었다.
이것이 내가 당분간 생활하게 될 제328 초소의 대략적인 개요다.
사람이 살만한 환경은 못되지만 그럼에도 이 초소가 제주도 어느 곳보다 매력적인 이유는 여기에 멜론 마스크의 위성 장비 장치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심해서 써야겠지.
컴퓨터 자체에 내가 모르는 백도어, 혹은 감청 프로그램이 깔려 있을지도 모르니까.
그것이 내가 비바! 아포칼립스! 라는 탈출구를 발견하고도 주저하는 이유다.
“······.”
게다가 이 주변의 공기.
좋다고 할 수 없다.
당장 초소 안에도 은은한 피비린내가 감돈다.
건너편 창가에 대충 지워진 핏자국이 보인다.
핏자국의 형태로 보아 전임자 하나가 저 자리에 주저앉아 입안에 총구를 넣고 방아쇠를 당긴 것으로 보인다.
삐빅-
보고용 컴퓨터를 통해 업무 일지를 뒤적거려 보았다.
전임자는 네 명이었고 한 달 전만 해도 살아서 여기에 머물고 있었다.
그들은 정확히 2주 동안 여기서 복무했다.
그 이후의 기록은 없다.
업무 인수인계, 초소 상하번 은 물론 공격을 받았다는 기록조차 없는 것으로 보아 불시의 습격에 쓸려나간 게 아닐까?
최근에 만들어진 무덤이 없는 것으로 보아 아마 모두 전사를 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니까 3명이 죽고 나머지 한 명이 여기서 자살한 것이다.
“······.”
극도로 위험한 장소인 건 확실하다.
현재 내가 가진 무기는 한 정의 k2 소총과 120발의 탄환, 그리고 나의 분신과 같은 두 자루의 도끼뿐이다.
초소를 습격한 미지의 적이 정체가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4명이나 되는 무장한 군인을 가볍게 쓸어버린 걸 보면 평범한 적은 아니리라.
비바! 아포칼립스!도 중요하지만 당장의 안전의 확보가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물론 중요한 일은 빼놓지 않는다.
타닥타닥
익명144 : ???
감청 테스트 용으로 무지를 가장해 글 하나를 작성해보았다.
이런 식으로 서서히 강도를 올려 나가며 감청 수준을 테스트할 생각이다.
이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낫겠지.
적어도 강한민이나 나혜인 같은 감청 기관을 자극할 수 있는 치명적인 단어는 쓰지 않겠다.
철컥-
떡밥을 던진 후 총기를 들고 주변을 순찰했다.
안개가 자욱하다.
식생대 자체는 식물과 나무가 살 수 있는 높이지만 주변에 보이는 건 낮게 자란 풀과 관목이 전부였다.
초소라고 하지만 시계가 불량해서 산 아래의 영역은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순찰 거리를 넓혔다.
주로 보는 건 바닥이다.
발자국의 형태로 뮤테이션의 크기나 종류를 추측할 수 있다.
꽤 먼 거리를 돌았지만 특별한 성과는 없었다.
무난하고 평화롭기까지 한 둘레길 여정이다.
그러나 뭔가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오싹한 감각을 느꼈다.
“······.”
흔들릴 필요는 없다.
내 악몽 속의 존재는 언제나 인간이었다.
상대방이 몬스터나 뮤테이션이라면 오히려 바라는 바다.
느긋하게 걸으며 안개 속에서 나를 노려보는 무언가가 나타나기를 기다렸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주변 정리를 한 후 컴퓨터 앞에 앉았다.
타닥타닥
익명144 : 여기는 뭐 하는 곳이지? 다들 사람이야?
이번에는 제대로 완성된 문장을 쳐보았다.
문장을 친 후 한동안 멍하니 있었다.
기다리는 건 유선 전화기다.
감청 쪽에서 뭔가 발견했다면 내게 전화를 걸 것이다.
30분 정도 기다렸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청소를 시작했다.
말이 청소지 실제로는 감청이나 숨겨진 카메라를 찾는 작업이다.
감시 카메라는 발견되지 않았다.
그 사실은 내게 전에 없던 용기를 주었다.
컴퓨터를 살펴보았다.
뒤쪽에 랜 케이블 소켓이 있다.
메인 소켓에 확장 소켓이 꽂혀 있는 구조로 전부 확장 소켓은 3개의 케이블을 꽂을 수 있었다.
두 개의 랜 케이블이 꽂혀 있다.
하나는 위성 장비의 것이고 다른 하나는 천장 너머 지붕에 설치된 상부 통신 안테나의 것이다.
“······.”
내 은사 장기영의 거나하게 취한 얼굴이 눈앞을 스치고 지나갔다.
“내 소싯적에 스타 좀 했는데.”
아마 PC방 앞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13기생 수료식을 마치고 회식을 한 후 돌아오는 길에 그가 갑자기 아무도 묻지 않은 자신의 무용담을 이야기했었다.
“······질 것 같으면 랜선을 건드렸지.”
장기영이 그 일화로 우리에게 뭘 알려주려고 한 지는 아직도 이해할 수 없지만 적어도 그의 술주정이 내게 영감을 준 건 사실이다.
푹!
랜선을 뽑았다.
반응을 보자.
따르릉-
곧 전화가 걸려왔다.
기계식답게 대단히 시끄러운 벨소리.
태연하게 전화를 받았다.
“네. 382 초소입니다. 통신보안.”
“네? 328초소 아닌가요?”
“아, 잠깐 헷갈렸습니다. 고산증이 온 건지 어지럽네요.”
“여기 초소 통제센턴데요. 갑자기 인터넷 연결이 종료된 것 같은데 확인 좀 해주시겠어요? 통신 감도는 이상 없는 거 같은데.”
“여기 지금 바람이 세게 붑니다. 안개도 엄청 꼈고요.”
“지금 컴퓨터 인터넷 연결 상태 확인해주시겠어요?”
“확인해보겠습니다. 그런데 제가 컴퓨터를 잘 안해서요. 살면서 인터넷 같은 거 거의 안 하고 살았어요.”
“랜 케이블 꽂고 빼는 것 정도는 할 줄 아실 거 아니에요?”
“랜 케이블이 뭐죠?”
“아, 잠깐만요. 나중에 통화해요.”
이름 모를 여성이 짜증을 내비치며 전화를 끊었다.
역시 뭔가 설치했군.
하지만 지금 이 상태로는 내 기록이 거기에 전송될 일은 없겠지.
거기다가 랜선이 뽑히더라도 나에겐 또 다른 랜선이 있다.
바로 비바! 아포칼립스!다.
즉시 메시지를 보냈다.
익명144 : (리얼 스켈톤) 저 스켈톤입니다! 지금 즉시 도움이 필요합니다! 보는 대로 답신 주세요!
발렌타인에게 문자를 보냈다.
컴맹이라 다를 바 없는 나에게 컴퓨터적인 조언을 해줄 수 있는 건 발렌타인뿐이다.
잠시 후.
Ballantine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엥? 스켈톤님?
발렌타인에게 답장이 왔다.
가슴이 벅차는 게 느껴진다.
Ballantine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진짜 스켈톤님이세요?
익명144 : (트루 스켈톤) 네! 진짜 스켈톤입니다!
Ballantine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왜 갑자기 닉변을······?
익명144 : 아, 그게 지금 제가 다른 곳에 있어요. 다른 기계로 접속을 했죠. 위기상황이라고 할까요.
차마 제주도에 있다는 말은 할 수 없었다.
예전만 한 위상은 잃었지만 여전히 제주도는 남겨진 사람들의 마음속에 낙원의 파편 정도는 남겨두었으니까.
익명144 : (스켈톤 상황설명) 제 컴퓨터에 감시 프로그램이 깔려 있어요. 지금은 랜선을 뽑아서 괜찮은데 이것 때문에 자유로운 인터넷을 할 수 없어요. 말실수 하면 바로 저에게 불이익을 주거든요.
Ballantine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지금 세상에도 그런 곳이 있다니······. 혹시 군단파로 가신 건가요?
익명144 : 상황 설명은 나중에 하고.. 어떻게 해결 가능한가요? 최악의 경우 컴퓨터를 때려부셔야 하는 수도 있어요.
Ballantine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음, 그럼 원격조작으로 해볼까요?
발렌타인이 내게 파일을 보내왔다.
즉시 수신해서 파일을 설치했다.
Ballantine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자, 그럼 살펴볼게요. 마우스나 키보드 건드리지 말아주세요.
모니터의 마우스 커서가 제 멋대로 움직이며 컴퓨터 안 여기저기를 뜯어보기 시작했다.
“······.”
여기서부터는 발렌타인의 시간이다.
그가 성공하길 바라며 총기를 들고 팔방으로 난 창문을 노려 보았다.
여전히 안개가 짙게 깔린 풍경.
하늘은 어느새 꽤나 어두운 색으로 물들었다.
산은 밤이 빠르게 찾아온다.
곧 사방은 어둠으로 잠기고 말겠지.
주변에 위협이 없다는 걸 확인하고 다시 모니터를 확인했다.
Ballantine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스켈톤님. 문제의 원인을 제거했어요.
익명144 : 정말요?
Ballantine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기초적인 키보드 핵이 깔려 있더군요. 키보드에 입력된 내용을 무단으로 전송하는 프로그램이죠. 암호화도 제대로 되지 않고 보안도 엉망이라 쉽게 뚫을 수 있었어요. 대충 손질을 해서 바탕화면에 ON/OFF 기능을 추가했어요. 로그 창에 아무 기록도 안 남으면 수상하니까 뻘짓을 하실 때만 ON을 누르시면 됩니다.
발렌타인의 메시지를 보며 나는 나도 모르게 마음이 채워지는 것이 느껴졌다.
“······.”
이것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정인가.
그에게 도움을 준 건 사실이지만 이렇게까지 큰 도움을 받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Ballantine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그나저나 요즘 어떠세요? 여기는 슬슬 지옥입니다. 서울 망하기 전보다 더 심한 거 같네요. 시간이 나면 이쪽 좀 도와줄 수 있을까요?
익명144 : 당연하죠. 그런데 지금은 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아시다시피 반쯤 억류된 상태라······.
Ballantine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괜찮아요. 저도 살아 남는 데는 이골이 났으니까요. 다만 터를 옮기고 싶어서요. 염치는 없지만 스켈톤님은 강하시고 믿음이 가니 그 주변에 좀 신세를 지려 합니다.
익명144 : 발렌타인님이라면 언제든지 환영입니다.
엔터키를 누르면서 스스로도 살짝 놀랬다.
이 박규가 내 영역을 공유하겠다는 말을 그렇게 쉽게 하다니.
내가 변한 건가.
아니면 세상이 나를 변하게 한 걸까.
어느 쪽이든 좋다.
지금 나에겐 할 일이 있다.
타닥타닥
익명144 : 나 스켈톤이다.
유니콘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unicorn18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스켈톤? 아니, 그보다 그 닉네임은?!
익명144 : 아는 닉네임이냐?
unicorn18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시범 도입한 위성장비 닉네임이잖아. 144, 244, 344, 444 등. 총 9기를 도입했고 닉네임은 전부 익명 뒤에 44라는 숫자를 붙였어.
unicorn18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잠깐, 그렇다는 이야기는······ 스켈톤. 너 제주에 온 거야?
익명144 : 응.
unicorn18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어디야? 어디에 있어? 1종 구역으로 간 거야? 어, 거기라고 해도 이제는 위성 장비는 사용 금지일 건데. 어떻게 여기에 접속한 거야? 딜이라도 했어?
유니콘의 메시지를 보며 나는 조용히 키보드를 두드렸다.
익명144 : 집 밖으로 안 나간다는 어떤 여성분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 말을 한 직후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유니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3분이라는 긴 시간이 지난 후 그녀가 침묵을 깼다.
unicorn18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unicorn18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unicorn18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동요라도 일으키는 걸까.
착잡한 심정으로 빈칸을 바라보며 그녀에게 말했다.
익명144 : 아무튼, 나 지금 상황이 좋지 않아.
unicorn18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어떻게 안 좋은데?!
익명144 : 한라산자락 전진기지에 혼자 있다.
unicorn18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전진기지?!
unicorn18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왜? 왜 그런 곳으로 간 거야? 너 큰 공 세웠잖아? 중국이 기를 쓰고 찾는다는 데이터를 찾았잖아? 그런데 왜······?
익명144 : 그건 알고 싶지 않아. 알 필요도 없고. 중요한 건 내가 전진기지 중에서도 가장 위험한 곳에 혼자 있다는 사실이지.
unicorn18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가장 위험한 전진기지?
unicorn18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328?
“······.”
추측이 맞았다.
아무래도 내가 있는 곳은 제주에서도 널리 알려진 명당인 모양이다.
그러니까 죽음의 명당 말이다.
unicorn18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거기, 맨헌터가 출몰하는 곳이잖아······.
익명144 : 몬스터냐? 뮤테이션이냐?
unicorn18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여전하네. 너는······.
익명144 : (스켈톤 어리둥절) ?
unicorn18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밝혀진 건 아무것도 없어. 그것이 뮤테이션인지 몬스터인지. 하지만 지난 2년간 거기서 수많은 사람이 사라졌어.
unicorn18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아무튼 거기서 나와. 거기 있으면 죽어! 평균 생존 기간이 한 달이 채 안 된다고!
익명144 : 그럴 거 같아서 너에게 연락했다.
나도 모르게 빙그레 웃었다.
익명144 : 나 좀 도와주라.
unicorn18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그, 그게······. 일단 내가 아는 사람에게 도움을 청해볼게. 그런데 시간이 걸릴 수도 있어.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미안해······. ㅠ
익명144 : 밖에 나가는 게 힘드냐?
unicorn18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
익명144 : 버틸 수 있는 데까지 버텨보겠다.
창밖은 완벽한 어둠에 잠겨 있었다.
그 어둠을 직시하며 키보드를 쳤다.
익명144 : 그러니 너도 최선을 다해라.
조용히 도끼를 매만졌다.
식상한 이야기지만 삶은 투쟁의 연속이다.
그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
이 모든 건 운명으로부터 도망친 자가 감내해야 할 벌이겠지.
악몽이라는 얼룩은 악몽보다 끔찍한 현실에 의해 말끔히 닦여졌다.
“······.”
그러니 지금은 살아남는 데만 전념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