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a House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248)
아포칼립스에 집을 숨김-248화(248/466)
103. 투쟁 (4)
소리를 내는 함정은 두 가지 기능이 있다.
하나는 누구나 아는 상대방의 접근을 알리는 기능이다.
하지만 나는 또 다른 기능에 주목한다.
바로 소리를 낸 당사자가 그 소리에 놀라 공포감을 느끼고 위축되는 것이다.
일부는 자신이 발각됐다는 걸 알고 그동안의 은밀함을 벗어던지고 적극적으로 행동하지만 또 일부는 그 자리에 죽은 듯이 머물며 이쪽의 동정을 살피려 든다.
저 안개 너머에 있는 미지의 적은 후자의 태도를 취한 것으로 보인다.
옥상에 엎드려 총기를 겨눈 채 소리가 나는 방향을 주시하며 작은 그림자 하나만이라도 찾기를 원했다.
때는 땅거미가 지는 밤이었다.
하늘 위에 자리 잡은 셀 수 없는 별들이 하나둘 빛의 장막을 뚫고 모습을 드러내는 시간으로 내 경험에 의하면 꽤 강한 바람이 산등성이를 타고 산정에서 초소 쪽을 향해 불어오곤 했다.
그 바람이 지긋지긋한 안개를 약간이나마 밀어내는 건 사실이지만 점점 짙어질 어둠과 상쇄되어 그리 극적인 효과를 주진 못하겠다.
결국은 시각 말고 다른 감각을 동원할 수밖에 없다.
직관적인 건 청각이다.
촉각도 의미가 있다.
상대방이 근거리일 경우 미약한 진동을 통해 상대방의 존재를 느낄 수 있으니까.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미리 생각하는 것이다.
적이 어디서 올 것인가, 어떤 지점에서 어떤 식으로 공격을 해올 것인가 같은 일종의 시나리오를 생각해둔다면 급작스러운 상황이 발생했을 때 개인적으로는 좀 더 빠르게 반응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반사신경 자체가 빨라지는 건 불가능하겠지만 최소한 판단의 시간 자체를 비약적으로 줄이는 건 확실하니까.
경우의 수는 세 가지다.
뮤테이션이냐, 사람이냐. 아니면 몬스터냐.
갖가지 수를 실시간으로 머릿속에 업데이트하며 안개 속을 노려 본다.
“······.”
몬스터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몬스터는 생물과 무생물의 경계에 있는 무언가로 인간이나 짐승처럼 사고를 하는 게 아닌 미리 입력된 알고리즘에 의해 움직이는 존재라 소리가 울렸다고 전진을 멈춘다는 따위의 세련된 행동을 구사하지 못한다.
그렇다는 이야기는 총기 사용에 제약이 없다는 뜻이다.
단발로 설정한 총기 조정간을 3점사, 아니 연사로 바꿨다.
인간 상대로는 3점사가 효율적이지만 뮤테이션 상대로는 연사를 통한 펀치력이 필요하니까.
스르릉-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도끼 하나를 뽑아 도끼를 쥔 채 총신을 지탱했다.
그리고 죽은 듯이 숨소리를 낮추고 주변 경계에 모든 신경을 기울인다.
발소리도 숨소리도 없다.
산정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안개들이 끝없이 밀려나가면서 다시 공간을 채우는 몽환적인 광경만이 되풀이되는 전장.
“······.”
이런 싸움에서 승부는 한 번에 결정 난다.
이 상태로 밤을 새우더라도 움직이진 않겠다.
해가 뜨기까지는 꽤 많은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이 안개가 언제 걷힐지는 나로서는 짐작할 수 없다.
그렇게 숨을 죽인 채 안개 너머를 부릅뜬 눈으로 노려보고 있을 때였다.
저벅-
발소리가 났다.
틀림없다.
적어도 인간 사이즈의 뭔가가 지면을 내딛는 소리다.
거리는 멀어봐야 30m 전방.
성급히 방아쇠를 당기는 대신 청각에 모든 신경을 집중했다.
슈욱-
바람 소리가 난다.
그런데, 이 소리.
“?!”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옆으로 피했다.
슈욱-
서늘한 뭔가가 내 옆을 스치고 지나가더니 태양광 발전기의 패널 하나에 부딪치며 요란한 파공음을 냈다.
시커먼 어둠 속에서 비산하는 수많은 파편 속에서 나는 패널을 뚫고 들어간 거무스레한 물체를 정확하게 포착했다.
“······.”
창.
창이다.
검은 칠을 칠하고 엉성하게 굽은 흔적이 있지만 저 형태와 또 패널을 박살내고 튕겨 오르는 저 날카로운 끝은 원시의 인간이 사용하던 창의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사람.
사람이다.
그 판단을 내리는 순간 내 귀가 다시 죽음의 소리를 포착했다.
슈욱-
전과 같은 바람 소리.
방향은.
챙캉!
정확히 내 몸통이다.
어둠과 하나가 된 듯 구분하기 어려운 투창이 시야에 들어서는 순간 도끼로 투창을 쳐냈다.
저벅-
발소리가 들려온다.
20m 전방.
당하지 않겠다.
어둠 속을 향해 제압사격을 가했다.
타타타타타탕!
총격을 가한 직후 옥상에서 초소로 뛰쳐 내려갔다.
그리고 즉시 비상 전력을 가동해 옥상의 탐조등을 비롯한 모든 전등을 가동했다.
텅!
육중한 스프링이 튕기는 듯한 소리를 내며 초소 주변의 죽은 듯이 잠들어 있던 전등이 일제히 어둠을 쫓는 불빛을 방출했다.
그 수많은, 시야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빛 속에서 나는 검은 그림자들이 빛 너머 뿌연 안개 속으로 사라지는 걸 보았다.
내 예상이 맞았다.
이 초소를 공격하고 사람을 죽이던 정체불명의 맨헌터의 정체는 우리와 같은 인간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저레벨 어웨이큰이겠지.
즉시 이 사실을 상부에 보고했다.
“네. 그렇습니다. 방금 전한대로 습격을 받았습니다. 정체는 사람이었습니다. 증거물도 있어요. 검게 칠한, 짧은 투창을 쓰더군요. 어둠과 안개 속에서 정확하게 저를 노리고 창을 던졌습니다. 대단히 숙달되고 정교한 공격이더군요.”
내가 아니었다면 죽었겠지.
다만 그 말은 하지 않았다.
나는 정도라는 걸 아는 사람이니까.
그러니까 레드 아카이브 게시판식으로 이야기하자면 “비틱”을 하지 않았다는 소리다.
*
SKELTON : 뉴, 뉴비예요…>< (귀여운 소녀가 우물쭈물 하는 이모티콘) (8)
기념비적인, 진정한 의미에서 이 스켈톤의 레드 아카이브 게시판 데뷔글을 클릭했다.
평범한 내 게시물의 열람이지만 한바탕 죽음의 위기를 겪어서 그런지 이 게시물에 달린 댓글들이 나를 위한 포상처럼 느껴졌다.
DEPA : (여우귀가 달린 소녀가 안녕! 이라고 말하며 손을 흔드는 이모티콘)
동그라미 : 뉴비 ㅎㅇ
sleeping : (귀여운 소녀가 인사하는 이모티콘)
붓코쟝 : 아까 이상한 글 올리던 놈 아니냐? 아무튼 뉴비는 언제든 환영이야~
O.R.O.N.A : 야한 냄새 나네….
13등급 : 새끼… 기합!
껌붙은이끼 : (귀여운 소녀가 잠자는 이모티콘)
유니콘콘 : ㅎㅇ
냉혹했던 무플과 달리 따뜻한 댓글이 한가득.
마치 추운 곳에 있다가 좋아하는 사람이 끓여 준 따뜻한 스튜를 먹는 기분이다.
호로록-
늘 상비하는 카페인 캡슐을 입안에 넣고 물과 함께 목구멍으로 흘려보냈다.
아마 오늘 밤은 새워야겠지.
언제 또 그 정체불명의 괴한이 공격해올 지는 알 수 없으니.
한 가지 확실한 건 그 투창.
평범하지 않은 실력이다.
뭐랄까, 같은 냉병기를 쓰는 사람만이 느끼는 동질감이라고 하나.
공격 한 번 한 번에 공격자의 긍지 같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내 창이 빗나가지 않을 거라는 믿음, 내 창으로 죽일 수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그러한 믿음들 말이다.
자부심을 가질 만 하다.
미리 초소 주변에 경보장치를 만들어두지 않았다면 나는 그 살인자가 접근하는 걸 아주 가까이 와서야 알아차렸을 것이고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불리한 지형에서 싸움을 강요받았을 것이다.
그러한 전투에서 이길 가능성은 현저히 낮다.
이 박규도 이 초소를 거쳐 간 수많은 실종자 중 한 명이 될 수도 있었다는 이야기다.
잠깐의 휴식을 취하고 다시 옥상으로 올라가려 할 때였다.
갑자기 화면에 작게 반짝이는 창이 보인다.
누군가 대화를 걸었다.
열어보았다.
유니콘콘 : 안녕~
모르는 유저가 채팅을 걸어왔다.
그런데 이 닉네임. 눈에 익는데.
반신반의하며 대화에 응했다.
SKELTON : (스켈톤) ㅎㅇ~
유니콘콘 : 나, 유니콘!
SKELTON : 닉변했네?
유니콘콘 : 어, 응. 그리 자랑스러운 이름은 아니니까.
SKELTON : 나, 방금 공격 당했어.
유니콘콘 : 들었어. 듣고 하는 이야기야.
SKELTON : 그래?
유니콘콘 : 어, 나 올라오는 보고는 다 볼 수 있거든. 그런 권한이 있어서.
SKELTON : 그렇군.
유니콘콘 : 사람이라던데. 확실해?
SKELTON : 경험 많고 기술에 정통한 살인자였다. 투창을 다루더군. 다른 무기도 가지고 있겠지만. 적어도 날 죽이려고 쓴 무기는 두 자루 투창이었다.
유니콘콘 : 다친 데는 없지? 없는 걸로 아는데
SKELTON : 그런 건 없지. 하지만 상대방은 어웨이큰이더군. 저레벨 어웨이큰이었어. 어둠 속에서 투시나 인지가 가능한 그런 능력의 소유자로 보여. 그래서 정확하게 어둠 속에 있는 날 노리고 창을 던져왔지.
유니콘콘 : 그, 그렇구나······
SKELTON : 창에 자신이 있는지 오늘은 창만을 들고 왔지만 글쎄. 다른 무기를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지. 이를테면 총기라든가.
이건 평범하지 않다.
아무리 초소의 유리가 방탄유리라고 해도 작정한 다수의 총격에서 버틸 수 있을까?
유리창이 있는 2층 거점을 잃으면 나는 외부로 통신할 수단을 잃는다.
그러니까 상대방이 방탄유리를 파괴하는 순간 나는 어디에도 연락을 취하지 못한 채 1층에서 농성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물었다.
SKELTON : 아직, 아는 사람하고는 연락 안 된 모양이지?
유니콘콘 : 어, 좀 늦네······. 미안.
유니콘콘 : 정말로 미안. 힘이 못 돼서.
SKELTON : 미안할 거 없어. 여기로 오겠다고 한 건 나니까.
타인의 도움만을 바라는 건 심리상태를 유지하는데 그다지 좋은 전략은 아니다.
어설픈 희망을 가진 사람보다 아예 아무런 요행도 바라지 않는 사람의 마음이 더 건전할 때도 있다.
유니콘이 집 밖으로 나오지 않겠다면 버티는 수밖에.
다행스럽게도 그날 밤 더 이상의 공격은 없었다.
해가 뜨자 주변을 순찰해보았다.
역시 깡통과 철사를 건드린 흔적이 있다.
발자국 또한 남아 있다.
깡통 경보장치 너머로는 발자국을 지웠는지 보이지 않지만 적어도 그 주변에 남겨진 발자국을 통해 적의 숫자를 짐작했다.
아마도 네 명.
그중 두 명은 여성이거나 덩치가 작은 소년일 것이다.
270mm짜리 각기 다른 바닥 면을 지닌 운동화 둘, 225mm, 230mm가 각 하나씩 있었다.
실제로 공격을 해온 건 투창을 던진 놈 하나지만 셋이나 더 데리고 왔다는 건 아마도 내 시체를 포함해 초소에 있는 모든 물자를 가져가려고 한 게 아닐까?
그나저나 함정에 빠진 흔적은 없는데 전방 20m 거리까지 접근해 온 발자국의 궤적으로 보아 함정의 위치를 알고 피했다기보다는 단순히 운이 좋아 함정이 없는 영역만을 골라 밟은 것으로 보인다.
이 부분은 보강이 필요하다.
함정 주변에 통행을 불편하게 만드는 둔덕을 쌓거나 아니면 장애물 같은 걸 만들어야겠지.
물론 상부에 지원 요청을 하는 건 잊지 않았다.
“지원군이 필요합니다. 혼자서는 오래 못 버텨요. 당장 오늘 밤도 기약이 없습니다.”
다만 지원군이 그리 빠르게 올 것 같진 않다.
“죄송합니다. 제가 아무 권한이 없고 상부의 결정만을 전하는 위치라서요. 이쪽에서도 최대한 이 사태를 엄중히 보고 대처하고 있으니 정말로 송구하지만 조금만 더 버텨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말이 길어진다는 건 해주지 않겠다는 이야기다.
이미 나는 제주도에서 나를 둘러 싼 악의적인 손길을 느꼈다.
공경민이 가장 유력한 범인이지만 나는 그 친구가 아무리 나와 결별했다고 하더라도 이런 짓을 하지 않으리라고 믿고 있다.
어쩌면 내가 모르는, 그리고 나를 질시하는 “운 좋은 저레벨 어웨이큰”들이 나를 여기에 처박아 두고 죽기를 바라는지도 모를 일이겠지.
“······.”
모니터와 키보드의 위치를 옮겼다.
책상 아래 요를 깔고 그 위에 모니터와 책상을 올려 놓아 엎드려 누운 채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엎드려서 컴퓨터를 한다는 게 허리에 좋지 않을뿐더러 불편한 일이긴 하지만 이건 한때 내 동료들과 저레벨 어웨이큰을 상대할 때 어떤 방식으로 대처하냐는 토론에서 얻은 결론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행동이다.
상대방의 위치를 인지가능한 다수의 어웨이큰이 있고 그 어웨이큰 집단이 초소나 방어시설에 고립된 우리를 공격하려들 때 어떤 식으로 대처해야 가장 효과적이냐는 건설적인 토의였는데 한 친구가 꽤나 괜찮은 제안을 내놓았다.
“내 듣기로 저레벨 어웨이큰이라고 해도 무적은 아니야. 감지 능력은 상대방의 대략적인 위치만을 파악할 뿐, 고성능 적외선 감지기처럼 윤곽까지 드러내진 않아. 투시 능력이 적외선 감지기에 대응할만한 능력이지만 투시 능력의 거리 자체는 짧아. 기껏해야 5m 안이지. 문제 되는 건 감지 능력이지.”
그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만약 발제안과 같은 상황에 처한다면, 내 주장은 이래. 휴식과 경계를 같은 장소에서 한다. 그러니까 상대방이 언제 우리가 휴식을 취하는지, 경계를 하는지 알 수 없게 하는 거지. 침실을 따로 두고 거기 자러 가면 나 죽여달라고 광고하는 거나 마찬가지 아니겠어?”
당시엔 어웨이큰의 편린을 드러내지 않았던 그 영민한 사내의 이름은 다름 아닌 내 동기 공경민이었다.
그와는 단교했지만 그의 방식까지 버리진 않겠다.
그렇게 전망대 안에서 생활이 시작됐다.
밥도 식사도 경계도 그리고 여가 생활도 전부 전망대에서 이루어졌다.
야밤에 습격한 괴한들은 그 이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내가 예상한대로 제주 정부는 내게 단 한 명의 지원군도 보내주지 않았다.
언제 이루어질 지 모르는 교대를 기다리면서 나는 이제 하나의 여가생활에 짧은 몰입을 하며 영혼의 구원을 얻는다.
딸깍
SKELTON : (귀여운 소녀가 뽁찡하며 들이받는 이모티콘)
딸깍
SKELTON : (귀여운 소녀가 깜짝 놀라는 이모티콘)
딸깍
SKELTON : (귀여운 소녀가 잘자라고 말해주는 이모티콘)
“······.”
인터넷 스타일을 바꾸었다.
내가 글을 써서 내 생각을 드러내고 나 자신을 과시하는 이기적인 스타일에서 벗어나 눈에 띄는 글마다 상황에 맞는 미소녀 이모티콘을 달아주는 이타적인 스타일이다.
그러니까 나를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내가 가장 드러나는 선문답적인 게시판 스타일이라고 할까.
무협으로 말하자면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기는 이치다.
그 결과는 고무적이었다.
겨드랑이조아 : 스켈톤 이 새끼 게시판에서 사는 놈이야?
B4MEdecede : 스켈톤 귀엽네
유나이티드콘돔 : 스켈톤 저런 씹떡 새끼는 대체 어디서 유입된 거냐?
비수술트젠 : 스켈톤 거칠게 따먹고 싶다
ㅇㅇ : 스켈톤 저 새끼. 처음 올 땐 안 저랬는데? 근데 글삭했네? 왜 그 글 없어? 방가방가 ㅇㅈㄹ 하던거.
tt야리스단tt : 스켈톤 너무 귀엽다
리얼핑프 : 스켈톤은 벙어리야? 왜 이모티콘만 달아?
ㅋㅋㅋㅋㅋ : 스켈톤 올리는 베르텔기아콘 귀엽다
…
…
이 스켈톤이 처음 등장했을 때 싸늘하게 무시했던 어린 친구들은 이제 나를 언급하고 주시하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