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a House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250)
아포칼립스에 집을 숨김-250화(250/466)
103. 투쟁 (6)
강한민과 나혜인을 필두로 어웨이큰이라는 존재가 세상에 알려지고 곧 그들을 이은 새로운 어웨이큰이 차례로 등장할 시점 초반의 일이었다.
여전히 우리 올드스쿨 헌터는 헌터 계의 중핵을 맡고 있었고 몬스터 전선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였다.
비록 모든 지표가 우리가 구시대의 유물이 되어 떠내려갈 것이라는 걸 암시하고 있었지만 우리들은 나름의 살 궁리를 했다.
거기엔 보다 효율적인 전술, 엑소슈트 같은 미래적 장비의 개발, 중국식의 최첨단 드론 투입 같은 누구나 생각할 수 있지만 비용과 시간이 많이 드는 평범한 의견이 다수를 이루었지만 강화 약물이나 유전자 조작 기술 같은 과격한 주장도 나오곤 했다.
상기 열거한 예처럼 올드스쿨 헌터 자체를 강화하는 방식이 우리의 자구책의 대다수를 이룬 건 사실이지만 뒤편으로는 조금은 섬뜩한 방법론도 제시됐다.
어웨이큰 전체를 뮤테이션화 된 존재로 간주하고 그들을 우리가 죽여야 할 적의 범주 안에 포함하자는 의견이었다.
지금 보면 철저히 중국적인 주장이지만 실제 이 움직임이 가장 먼저 나온 곳은 미국이었다.
간략하게 배경을 설명하자면 몬스터로 떼돈을 벌던 거대기업이 어웨이큰의 등장으로 쫄딱 망하게 생겼으니 정치인에게 로비를 했고 정치인이 군과 헌터 조직부 쪽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흔해 빠진 이야기다.
우리도 어웨이큰 상대로 한 전술을 개발했었다.
나는 직접적으로 뛰어들진 않았지만 장기영을 주축으로 제법 본격적으로 진행된 것으로 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예산이 끊기고 어웨이큰 체제로 들어서면서 모두 실직자가 됐지만 말이다.
그래도 거기에서 도출된 몇 가지 유익한 가르침은 여전히 내 머릿속 한 곳에 자리 잡고 있다.
감지 능력 어웨이큰이 인간을 인식하는 방식, 투시 능력자가 사물을 투시하는 방식과 그 한계, 제한적인 독심술을 가진 어웨이큰으로부터 속내를 들키지 않는 방법, 그리고 5레벨 이상 어웨이큰에 대한 이론적인 대처법.
지금 날 향해 다가오는 자들이 어떤 등급의 어웨이큰인지는 알 수 없다.
드러난 건 저레벨 어웨이큰이지만 그들 중에 5레벨 이상의 어웨이큰이 있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큰 차이는 없을 것이다.
내가 정한 전장은 폐기물과 돌로 엄폐된, 백병전이 수시로 일어나게 될 좁은 미로니까.
“저 안에 있어! 혼자야!”
확실히 전과는 분위기가 다르다.
조용하고 은밀하게 나라는 사냥감을 사냥하고 돌아가려는 전과 다르게 이번에는 확실하게 다수를 끌고 나라는 존재 자체를 죽이러 왔다.
“아악!”
벽 너머에서 아련한 비명이 울려 퍼진다.
함정에 빠진 모양이다.
최소한 발목은 나갔을 것이고 죽거나 죽음에 이르는 병을 앓게 될 것이다.
함정 안엔 녹슨 쇳조각이나 더러운 유리 조각을 야수의 이빨처럼 박아뒀으니까.
운동화 깔창 정도는 가볍게 뚫고 들어가 발바닥에 구멍을 냈겠지.
“아아아아악! 씨발! 너무 아파! 너무 아파!”
고통에 찬 절규는 계속해서 들려왔는데 나는 거기에서 상대방의 나이가 어리다는 것을 재확인했다.
어리다고 해서 사람이 선하거나 순수한 건 아니다.
내가 생각하기에 인간의 순수함이라는 건 나면서 주어지는 것이 아닌 교육과 보살핌의 결과다.
무지와 미경험은 의외로 자주 순수함과 혼동되곤 한다.
“······.”
조용히 한 자리에 머문 채 곧 내 앞에 나타날 적을 기다렸다.
대 어웨이큰 전술에서 가장 위협적인 건 강한민 같은 초월적인 스펙을 가진 어웨이큰이겠지만 현실적으로 가장 성가신 건 감지능력자다.
우리는 감지 능력자의 감지 능력을 역이용하는 방안에 많은 연구를 했는데 도출되는 결론은 대동소이했다.
무슨 수를 쓰건 그들의 눈에서 벗어날 길이 없으니 오히려 그들의 능력을 역이용하자는 것이다.
상대방의 위치를 안다고 해서 반드시 그 싸움을 이기는 건 아니다.
결국 싸움에서 이기는 건 보다 잘 훈련되고 잘 준비된 자다.
그 사실을 어린 친구들에게 알려주겠다.
저벅-
초소 주변까지 적들이 접근했다.
잠자코 그들이 오기를 기다렸다.
“안에 있어!”
초소 1층엔 창이 없다.
사방이 콘크리트벽으로 막혀 있으며 그 콘크리트의 두께로 꽤나 두껍다.
소총 따위로 백날 쏴봐야 뚫리지 않는다는 소리다.
끼이이익–
놈들이 문을 열었다.
그 시점에서 나는 초소 주변에 접근한 적이 최소한 8인 이상이라는 걸 파악했다.
현격한 차이.
하지만 나는 그 숫자를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내가 할 일은 간명하다.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놈을 하나씩 죽이는 것.
“저기, 벽 너머에 있다!”
쾅!
놈들이 문을 박찼다.
하지만 문은 잠궈놓았다.
일부러 한 일이다.
어렵게 들어오게 해야 함정이라는 걸 인지 못하니까.
뭐, 아주 의심 많은 친구까지 속일 순 없겠지만 그렇다고 그 친구가 뭘 할 수 있을까.
지하에 밀폐된 방공호와 다르게 연기를 흘려 넣는 전략은 방공호에 비하면 효율이 떨어질뿐더러 내 옆엔 이미 언제라도 쓸 수 있게 준비된 군용 방독면이 비치되어 있다.
탕! 탕! 탕!
총기로 자물쇠를 쏘는 소리가 들린다.
끼익 하는 힘없이 문이 열리는 소리가 벽 너머로 들려왔다.
“저기. 저기. 저기 있어.”
속삭임이 들려온다.
과연 누가 먼저일 것인가.
스윽-
천천히 미끄러지는 듯한 발소리가 문에서부터 복도 안으로 이어졌다.
한 명, 아니 두 명이다.
나름 최대한 숨을 죽여보지만 이 밀폐된 공간, 이 짧은 거리에서는 큰 의미는 없다.
아주 방심한다면 모를까, 바짝 날을 세우고 있다면 훈련을 받지 않은 사람도 충분히 눈치챌 수 있는 기척이다.
지금 나는 두 눈을 감은 채 등받이가 없는 스톨 의자에 앉아 있다.
코스프레 같은 건 취미가 아니지만 투시 능력자가 있을 경우를 대비한 나름의 의사표시다.
나 힘 없고 싸울 기력 없다는.
굳이 비유를 하자면 현재 레드 아카이브 게시판에서 상종가를 달리는 “켈톤이”가 글마다 다는 이모티콘 댓글 같은 것이다.
목숨을 건 전장에서 아드레날린의 분출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몇 되지 않고 그 아드레날린은 평소보다 성급한 판단을 내리는데 기여한다.
참고로 나는 다른 사람보다 아드레날린이 적게 분비되는 모양이다.
저벅-
바로 앞까지 왔다.
눈을 뜨고 총기를 겨누었다.
하지만 그들은 멈추지 않았다.
이유를 곧 알게 되었다.
방패다.
아마 장갑차의 문짝을 개조해서 만들었을.
무게가 상당하기에 방패를 든 사람의 체구도 대단히 컸다.
아직 그의 몸이 벽 너머로 드러난 건 아니지만 방패의 위치만 봐도 알 수 있다.
최소 190cm가 넘는 거구의 사내가 아닐까.
방패를 보자마자 그대로 엎드렸다.
“죽여!”
발 구르는 소리와 함께 커다란 인영이 방패로 몸을 가린 채 모습을 드러냈다.
동시에 약간의 시간 차를 두고 권총을 든 또 한 명의 사내가 있는 것 또한 발견했다.
방패를 든 사내는 자신의 건장한 체구를 완벽하게 가리기 위해 방패를 밀착한 상태로 밀고 들어 왔지만,
탕!
좀 더 긴 방패를 들고 왔어야 했다.
“아아악!”
질주하며 흔들리는 방패가 드러낸 찰나의 틈을 향해 총탄을 사내의 왼쪽 발 복숭아뼈에 박아 넣었다.
사내의 의지와 무관하게 관절이 꺾이며 몸이 무너지기 시작하는 걸 보며 그대로 스프링처럼 튀어나와 선두 사내의 방패를 발로 차버렸다.
안 그래도 육중한 체구에 중장비까지 갖춘 사내는 뒤따라 오던 사내와 그대로 부딪쳤다.
두 적이 무력화되는 동안 총구를 겨누고 있다 두 발의 총알을 각기 다른 곳에 박아 넣었다.
탕! 탕!
두 명을 사살했다.
총성이 가지고 온 적막이 천천히 내려앉은 후 문 너머에서 이제 갓 변성기를 벗어난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종한아. 종한아.”
죽은 자는 말이 없다.
앳된 목소리는 다음 이름을 불렀다.
“빡구. 빡구!”
거구의 친구는 이름으로 부르고 빈약한 체구의 친구는 멸칭 같은 별명으로 부른다.
전형적인 앳된 또래 집단에서 보이는 특성이다.
“너, 이 새끼.”
친구들의 이름을 부르던 소년이 나를 불렀다.
“죽여버린다. 씨발놈아. 너 무슨 짓 한 지 너도 모르지? 그냥은 안 죽여.”
“······.”
“개새끼야. 응? 산 채로 껍질을 벗기고 살을 잘근잘근 조금씩 떼어낼 거야. 죽지도 살지도 못하게 한 달 넘게 살려둘 거야. 못할 거 같지? 이미 많이 했어. 씹새야. 응?”
소년이 주절주절 해악의 고지를 하는 동안 나는 벽 너머에 쓰러진 시체에서 방패를 회수했다.
문 쪽으로 통하는 복도에 상체를 들이밀기 전엔 거울을 이용해 상대방이 사용할 수 있는 사선을 확인해야 했지만 문 너머에서 총기를 겨눈 적이 없다는 걸 확인한 이후에는 편안하게 작업했다.
녀석이 말하는 동안 위치를 가늠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손톱을 뽑고 눈알을 뽑고 혀도 뽑을 거야······.”
방패를 회수한 후엔 권총을 회수했다.
주절거림이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아 두 구의 시체도 내쪽으로 당겨놓았다.
덩치 큰 놈을 당겨와 양반다리 자세로 앉게 하고 그 위에 작은 놈을 겹쳤다.
일종의 시체 바리케이드다.
중국에서 썼던 기록이 새록새록 떠오르는 걸 느끼며 여전히 주절거림을 그치지 않는 소년을 향해 한마디 했다.
“뽑기 잘 하냐?”
“뭐?!”
“뽑기 잘하면 내 가챠 좀 돌려주라.”
드디어 주절거림이 멎었다.
대신 부산한 발소리가 들려 온다.
그 소리의 패턴은 그러나, 내가 가장 바라던 상황과 닮아 있었다.
집단 돌격.
한꺼번에 달려들어 끝을 보자는 생각이다.
사기적인 능력만을 믿고 쉬운 사냥을 하던 애송이가 할 만한 발상이다.
가지고 있던 비장의 무기를 뽑았다.
수류탄이다.
두 손에 들고 동시에 안전핀을 뽑은 후 수류탄이 숙성되기를 기다렸다가 시체 바리케이드 너머 벽면에 바깥을 향해 튕기도록 던졌다.
놈들이 모습을 드러낸 건 그 직후.
타타타타타탕!
총기를 갈겼다.
연사.
순식간에 탄창 안의 탄환이 바닥났다.
“지금이야! 덮쳐!”
“아니야. 뭔가 떨어졌는데?”
“뭐가?”
그 와중에도 한 녀석이 벽면 너머로 모습을 드러냈지만 그게 전부였다.
쾅! 콰쾅!
두 개의 수류탄이 폭발했다.
무자비한 폭압과 그 폭압이 날려 보낸 파편의 폭풍 속에서 평범한 자는 살아남지 못한다.
폭음의 진동이 채 멎기도 전에 신속하게 재장전을 하고 흙먼지로 가득 찬 복도 안으로 뛰어들었다.
“끄르르르······.”
여전히 살아서 꿈틀거리는 놈이 자욱한 흙먼지 속에서 보이지만 무시하고 그대로 돌진했다.
활짝 열린 문이 보인다.
그대로 밖으로 뛰쳐나가 바깥을 주시한다.
흙먼지만큼은 아니지만 진한 안개 너머에 3명이 흐릿하게 서 있다.
탕! 탕! 탕!
세 명, 아니 두 명이 쓰러졌다.
한 녀석이 감각적으로 몸을 피해 치명타를 면했다.
쓰러진 채 피를 흘리는 소년에게 다가갔다.
처음 보는 얼굴이지만 나는 그 소년이 전에 나를 죽이려 들었던 살인자라는 걸 어렵지 않게 알아보았다.
은은하게 빛나는 눈동자도 눈동자지만 그 빛나는 눈동자 안에 담긴 망가져 버린 영혼은 인간의 지위를 스스로 벗어던진 자가 가질 수 있는 뒤틀림을 품고 있었으니까.
“씨발······.”
신속하게 개머리판으로 소년의 관자놀이를 찍어 혼절시킨 후 방금 노획한 권총으로 확인 사살을 했다.
탕!
다른 곳에 가서도 생사를 확인했다.
남자는 낭심을 강하게 걷어차고 여성은 목을 군홧발로 밟아 목뼈가 부러질 정도로 누른다.
“······.”
둘 다 반응이 없다.
다시 초소로 돌아가 같은 작업을 수행했다.
탕! 탕! 탕!
아직 숨통이 끊어지지 않은 3인의 숨통을 끊고 잠시 의자에 앉아 숨을 돌렸다.
호흡이 가라앉은 후 이 사실을 전화로 보고했다.
“여기는 제328 초소. 방금 한 무리의 인간과 교전과 모두 사살했다. 아니. 잠깐. 불빛이 보인다.”
안개 너머로 진한 불빛이 보인다.
차량이다.
늘 내게 식량을 주러 오는 차량이 오는 경로와 같다.
전화기에 대고 물었다.
“혹시 지원군을 보냈습니까?”
“아, 아니오. 이쪽에 보고된 바는 없습니다.”
총기를 들고 옥상에 올라 엎드린 채 차량의 경로를 유심하게 주시했다.
가능성은 반반이다.
어떤 형태로든 낙관적으로 생각하진 않는다.
전장에서 만날 수 있는 건 나를 죽이려는 자와 그렇지 않은 자 두 부류뿐이니까.
짙은 안개 때문인지 차량은 평소보다 느린 속도로 안개등을 켠 채 내 영역 아래까지 도착했다.
총기를 든 군인들이 내리는 게 보인다.
“정부군입니까?”
우리의 주적이 인간이 아니고 또 민간인이 여기까지 올 일이 없기에 여기서는 암구호를 쓰지 않는다.
병사들이 이쪽을 보았다.
방아쇠 울안에 손가락을 빼지 않고 그들의 행동을 주시했다.
“박규씨입니까?”
병사 하나가 물었다.
“그렇습니다만.”
여전히 내 손가락은 방아쇠울 안에 있다.
“적의 공격을 받았다고 들었습니다.”
“네.”
병사들이 불안한 얼굴로 사방을 경계하는 게 보인다.
“적은 어디에 있나요?”
“잘 처리했습니다. 그보다 어디서 오셨나요?”
여전히 나는 방아쇠 울안에서 손가락을 빼지 않고 있다.
이들이 맨헌터와 다른 부류라는 건 확실하지만 그렇다고 이들이 나를 죽이려는 자라는 범주에서 벗어난 건 아니니까.
상사 계급장을 단 사내가 이쪽을 올려다보았다.
총구를 겨누고 있는 걸 보고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그는 눈을 껌뻑이며 내게 말했다.
“······그게. 구원자께서 보냈습니다.”
“구원자요······?”
그런 사람이 있는 건 안다.
그런데 그 구원자라는 게 별칭이지 대명사가 될 수 있는 건가.
모순어법이라는 예전에 책에서 본 적이 있는 개념을 떠올리며 나는 그가 다음 말을 하길 기다렸다.
“나혜인 구원자께서 보냈습니다.”
직함이었나.
나도 모르게 코웃음을 치며 물었다.
“나혜인요?”
“네. 나혜인 구원자께서 직접 위원에 출석해서 구원을 요청하셨습니다.”
“······.”
쓴웃음을 머금으며 방아쇠울 안에서 손가락을 뺐다.
“적들은 어디에 있습니까?”
상사가 긴장된 얼굴로 물었다.
총기를 어깨에 걸친 채 천천히 계단을 향해 걸어가며 대답했다.
“보여드리죠.”
계단을 내려오는 와중 피냄새와 분변의 악취가 코끝으로 밀고 들어오지만 내 눈에 펼쳐진 건 전혀 다른 환상이다.
푸른 하늘과 한국에서 좀처럼 볼 수 없는 탁 트인 지평선, 철길 비슷한 구조물과 거기에 핀 코스모스들.
“역시 그 녀석이었나.”
99%의 확신은 이제 확고부동한 사실로 변했다.
이제는 잘 기억나지 않는 흐릿한 추억 속의 얼굴을 떠올리며 조용히 속으로 읊조렸다.
“······수고했다.”
그러니까 투쟁을 벌인 건 나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각자의 자리에서 우리는 저마다의 현실에 맞서 싸웠고 나름의 결과를 냈다.
내일이 기대되지만 일단은 이 시체들부터 치워야겠지.
어린 살인자들의 진실이 밝혀진 건 그로부터 약 9시간이 지난 아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