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a House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251)
아포칼립스에 집을 숨김-251화(251/466)
104. 안개 너머 (1)
상대방의 의도와 정체를 확인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포로를 잡는 것이다.
하지만 포로는 보통 이쪽이 우월한 전력을 가지고 원하는 시간에 적을 공격했을 때 얻는 것이다.
일 대 다수의 절망적인 상황에서 포로를 확보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거나 희망하는 건 정신병자의 망상과도 같다.
지난 밤에 적의 숫자가 몇 명인지 알 수 없고 증원이 있을지도 모르기에 죽일 수 있는 적은 모두 죽였다.
간신히 숨이 붙어 있는 소년이 하나 있었는데 상처와 상태를 보니 심문을 할 상태가 아닌지라 총알 한 발로 자비를 베풀었다.
병사들과 주변을 경계한 후 날이 밝자 시체를 정리했다.
병사가 4명이나 왔기에 시체 정리는 수월하게 이루어졌다.
수류탄 파편을 직격당해 얼굴 절반이 일그러진 시체 이외에는 다들 얼굴도 멀쩡하고 크게 끔찍한 훼손은 없었기에 시체 정리 작업에 대한 거부감은 상대적으로 적었다.
그런데 시체들을 한 곳에 가지런히 놓아두고 보니 몇 가지 미심쩍은 부분이 드러났다.
군복 같은, 소속을 확인할 수 있는 옷이나 표식을 가지지 않았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다들 어린애네요.”
병사들의 눈엔 나를 습격한 적들의 연령이 적은 것만 보였던 모양이다.
“대체. 어디 애들이지?”
“시설을 나온 애들인가?”
나는 다르게 본다.
핏기가 빠져간 채 싸늘하게 식어가는 얼굴들이긴 하지만 나는 그 얼굴에 남은 선명한 증거들의 잔재를 확인할 수 있다.
우선 영양 상태다.
과체중은 없지만 그렇다고 절대적인 영양이 부족하진 않다.
낯빛이 파랗게 질려간다고 피부 아래 축적된 지방이 항문으로 새는 분변마냥 빠져나가진 않으니까.
두 번째는 위생 상태다.
다들 말끔하다.
더럽고 지저분하고 위생을 확보할 만 한 수단이 없는 곳에서 산 얼굴들이 아니다.
시체가 입고 있던 의복의 냄새를 맡았을 때 미약한 세제의 향마저 느낄 수 있었다.
가장 문제가 되는 건 무기다.
내가 죽인 여덟은 저마다의 무장을 하고 있었다.
진압 방패를 든 놈부터 시작해서 권총, 샷건, 소총, 심지어 반자동 저격총까지 든 녀석도 있었다.
야간투시경 같은 고급 장비나 액세서리는 없었지만 그들의 무기는 잘 정비되어 있었고 상태도 깔끔했다. 탄환도 반짝이는 신품으로 탄창 전체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즉, 군대 수준의 관리상태다.
“······.”
한 가지 섬뜩한 가정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맨헌터.
제328 초소를 주기적으로 덮친다는 정체도 없고 실체도 밝혀지지 않은 괴물의 진정한 정체는 내가 죽인 소년 어웨이큰 병이 아닌 더 거대한, 개인이 맞설 수 없는 레비아탄이 아닐까 하는.
그러니까 이 초소는 훈련장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저 레벨 어웨이큰 병사들이 실전 경험을 쌓는.
나와 나의 전임자는 한국의 미래를 책임질 어웨이큰 병사를 위한 경험치고.
병사들이 막바지 시체 정리를 하는 동안 전화를 걸었다.
“저기. 궁금한 게 있습니다만.”
“네. 뭡니까?”
“제 전임자들 말입니다.”
“전임자요? 아, 전 아는 게 없어요. 인수인계 받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요.”
“별 건 아니고요. 그 사람들 연령대가 어떻게 됐죠?”
“연령대요?”
“초소에 일기장이 남겨져 있던데 보니 저하고 비슷한 연령대 같아서요. 그래서 궁금해서 물어본 겁니다.”
“박규씨하고는 다를 거예요.”
“그래요?”
“네. 다들 40대를 넘어가는 걸로 알고 있어요.”
40대라.
이 섬에서는 필요 없는 세대겠지.
그러니까 선택받은 일부 “어른”에 해당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모두가 마다하는 궂은일을 하지도 않는 사람들 말이다.
“······.”
2차 대전 때 일본군이 신병으로 하여금 살아 있는 중국군 포로를 총검으로 찔러 죽이게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비슷한 일이, 보다 악의적인 형태로 이 땅에 전개되고 있다.
쓸모없는 늙은이들이 미래를 위한 젊은이의 훈련 교보재로 소모되는 건 뭐, 이미 수백 만이나 죽게 내버려 둔 제주도 인간들이라면 아무렇지 않은 일이겠지.
박승수가 도착한 건 내가 나름의 결론을 정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공격을 당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는 내 얼굴과 그리고 몸을 살폈다.
스캔이 끝난 직후 아주 잠깐 그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부상 하나 없다는 데에 실망이라도 느낀 것일까.
뒤이어 박승수는 열을 지어 누운 시체들을 확인했다.
“?!”
그의 눈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이, 이걸.”
그가 날 돌아보았다.
“혼자 다 처리하신 겁니까······?”
“네.”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 전투에 숙달되진 않았더군요. 전투원 몇 명을 해치우니 나머지는 민간인과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그, 그렇군요.”
시체 확인이 시작됐다.
잠자코 뒤를 따르며 표정을 살피려고 했지만 그는 언제나 내게 등을 지고 있었기에 정확한 표정을 확인할 순 없었다.
다만 그가 시체 하나에 유독 오래 머물러 얼굴을 살핀 건 확실하게 눈에 담았다.
그 시체는 내게 투창을 던진, 습격자 무리의 리더다.
한숨인지 탄식인지 모를 진한 날숨을 내쉰 후 박승수가 비로소 날 향해 돌아섰다.
그의 표정은 중립적이었다.
“탈주한 아이들입니다.”
탈주라는 말에 의구심이 들었지만 아무 말 하지 않고 그의 말을 경청했다.
“시설에 적응하지 못하고 안전구역을 나와 이런 산속에 은신처를 차리고 사람들과 농민들을 습격하며 먹고 사는 아이들이지요.”
“그런가요?”
“네. 지금이야 학생들을 전부 벽 내부에 수용하고 있지만 수용 시설이 부족할 땐 학생들을 외부의 교육 시설에서 훈련을 시켰거든요.”
박승수가 담배를 입에 물며 붙을 붙였다.
“그때 탈출한 아이들이 이런 곳에 있었나 봅니다.”
그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그런 것치고는 총기 상태도 그렇고 때깔도 좋아 보이던데요?”
박승수의 입에 물린 담배가 순간 격하게 위아래로 요동쳤다.
“네?”
그가 날 돌아보았다.
상당히 날이 선 눈빛.
개의치 않고 계속해서 말했다.
“위생 상태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옷도 세제를 푼 물에 세탁한 지 오래되지도 않았고 얼굴도 말끔하더군요.”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겁니까?”
박승수의 언성이 묘하게 높아진다.
담담한 시선으로 그의 날선 눈빛을 받으며 똑똑히 물었다.
“어디 훈련병입니까?”
“뭐?”
“훈련병 아닙니까?”
짧고 힘 있는 어조로 묻는다.
그리고 상대방의 반응을 본다.
박승수의 얼굴은 충격에서 격앙, 진정, 그리고 모색이라는 상투적인 패턴을 답습했다.
“······훈련병이라니요. 가당치도 않습니다. 너무 상상력이 뛰어나신 거 아닌가요? 상황이 심각한 건 충분히 이해하겠습니다만.”
박승수는 감정 컨트롤에 능한 것으로 보인다.
정곡을 찔려도 이내 만회할 정도의 뻔뻔함 또한 갖고 있다.
아무래도 좋은 일이다.
이 인간이 무슨 작당을 꾸미건, 또는 꾸몄건.
중요한 건 오직 나의 목숨이다.
“당장 여기서 내려가고 싶습니다만.”
요구사항을 말했다.
박승수는 내 시선을 살짝 회피, 내 발치를 보며 쓴웃음을 머금으며 답했다.
“아, 그게. 제가 결정할 사안이 아니라서요.”
“그럼 누구한테 부탁해야 하나요?”
“그쪽 관할은 제주 방위청 관할이긴 한데 제가 말해놓을게요. 최대한 빠르게 여기서 내려갈 수 있도록.”
“그게 언젭니까?”
냉담하게 묻자 박승수가 비로소 고개를 들어 시선을 마주쳤다.
날 노려보며 그가 똑똑히 말했다.
“그리 오래는 안 걸릴 겁니다.”
“언제요?”
“일주일 안.”
“좋습니다.”
감정을 내비치지 않고 천천히 돌아섰다.
“······하지만 다음에도 비슷한 습격이 온다면, 포로를 잡을 겁니다.”
점점 시야 밖으로 밀려나는 박승수의 얼굴을 곁눈질로 보았다.
그의 얼굴은 무서우리만치 경직되어 있었다.
박승수의 차량이 시체를 싣고 떠났다.
나를 도와주러 온 군인들도 슬슬 여기를 떠나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죄송합니다. 저희도 박규님을 데리고 가고 싶은데 소속이 달라서요. 규정대로 교대를 기다리는 게 맞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들은 입고 있는 옷이 내가 아는 군인들과 달랐다.
국위원 마크가 달린 것으로 보아 국위원 직속 경호 부대가 아닐까.
“대단히 죄송한데.”
양해를 구하고 가장 필요한 것을 요구했다.
바로 무기다.
더 강한 무기만이 나의 생명을 담보한다.
무기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총처럼 상대방을 직접 죽이는 무기, 수류탄처럼 특정 상황에서 대단히 유리한 상황을 만들어주는 무기, 혹은 연막탄이나 섬광탄처럼 일시적으로 상대방의 전투능력을 저하할 수 있는 무기.
내가 그들에게 요구한 건 더 많은 탄환이었다.
90발의 탄환을 더 확보했다.
수류탄도 6개를 확보했고 덤으로 야전 대검 두 자루도 얻을 수 있었다.
병사들이 자리를 떠나자마자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컴퓨터 앞에 앉은 것이다.
SKELTON : 어제는 고마웠어. 덕분에 구원대가 왔어. 뭐, 한발 늦었지만 말이야.
유니콘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SKELTON : 아무튼, 그렇게 죽였는데도 아직 상황이 끝난 것 같진 않네.
SKELTON : 박승수, 그 친구. 나를 확실하게 죽일 생각인 모양이야.
유니콘콘 : 왜?
뒤늦게 유니콘이 답했다.
나는 내가 경험하고 보았고 생각한 일을 그녀에게 이야기해주었다.
유니콘콘 :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유니콘은 내 말을 믿지 않았다.
아니, 믿으려 들지 않았다.
SKELTON : 이미 말도 안 되는 일은 충분히 일어났어. 있을 법한 일이지.
유니콘콘 : ······.
SKELTON : 다음 공격은 진짜 막기 어렵겠지. 이번만 해도 여덟 명이 왔어. 어쩌면 5레벨 이상 어웨이큰을 동원할지도 모르겠지.
유니콘콘 : 그럼 너 죽어.
SKELTON : 정말 미안한데 나를 도와주지 않겠나?
유니콘콘 : 도와줬잖아.
SKELTON : 여기서 나가지 않으면 의미가 없어. 제328 초소는 생선을 올려놓는 도마고 나는 도마 위의 생선이야. 그 생선이 사나워서 생선을 토막 치고 먹으려는 들개들을 역으로 물어뜯었지만 다음은 다르겠지.
유니콘콘 : 나, 정말 미안한데. 이 이상은 무리야. 더 이상 밖에 나가고 싶지 않아.
유니콘콘 : 미안.
이제는 나혜인의 얼굴도 목소리도 흐릿하지만 어째서인지 나는 그녀가 나를 향해 고개를 숙인 듯한 환각을 보았다.
툭! 투툭!
창가에 빗방울이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온다.
한바탕 비가 내릴 모양이다.
가급적이면 나는 타인의 사정과 생각에 관해서 간섭하지 않으려 한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듣고 싶다.
아니 들어줘야만 한다.
“······.”
SKELTON : 무슨 일이 있었던 게냐?
이제는 현실로 나아갈 때다.
나도, 나혜인도 유년기의 치기를 벗고 정면으로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볼 때가 왔다.
불과 3년 전, 아니 1년 전만 하더라도 상상도 못할 일이었겠지.
혼자만의 세계에 갇혀 살던 독불장군 박규가 먼저 나혜인에게 대담하게 화해의 손을 내밀 것이라고는.
그런데 세상일이라는 게 혼자 마음 먹어서는 이루어지지 않을 일도 많다.
소통도 그러하다.
유니콘콘 : 오늘은 그만할게.
나는 준비가 됐지만 아직 그녀는 준비되지 않았다.
“······.”
하지만 기다릴 것이다.
나 또한 그러한 내가 만든 미로 속에 갇혀 있었으니.
단지 너무 늦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자욱한 비가 초소 창을 가렸다.
*
상황이 아무리 지랄맞다고 해도 타조마냥 고개를 땅바닥에 처박고 죽음을 기다리라는 법은 없다.
여전히 나는 인터넷을 통해 나의 새로운 영역에서 적극적인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
딸깍
SKELTON : (귀여운 소녀가 뽁찡이라고 하며 머리를 들이대는 이모티콘)
“······.”
딸깍
SKELTON : (뿔달린 귀여운 소녀가 얼굴에 음영을 드리우며 경악하는 이모티콘)
댓글천사 혹은 이모티콘 천사라 불리며 레드 아카이브 게시판에서 나름의 입지를 구축한 이 박규가 그리 쉽게 활동을 끊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양자함폭 : 켈톤이. 이 새끼 왜 나한테만 댓글 안 달아줘?
실제로 열렬한 나의 팬(?)도 있고.
그런데 뭔가 싸한 느낌이 최근 들고 있다.
키타쨩(배양중) : 스켈톤 저 새끼 댓글만 처 다는데 겜은 하기나 하나?
센세츄르 : 스켈톤 저 새끼 매크로마냥 이모티콘 다는 거 꼴보기 싫어 죽겠네
ㅇㅇ : 완장. 스켈톤 저지랄하는 거 규정 위반 하는 거 아님? 진짜 몰라서 묻는 거임
핑프맨 : 나도 그 생각했는데. 스켈톤 겜안분 아니냐?
…
…
스켈톤이라고 검색하면 나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이 주르륵 나온다.
처음엔 소수였지만 점점 늘어나는 느낌.
안티의 숫자는 곧 인기와 비례한다고 하니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
아무튼 안티들이 나를 공격하는 공통적인 논거는 이 박규가 “겜안분”이라는 것이다.
겜안분은 “게임을 하지 않고 분탕을 치는 사람”의 줄임말로 어떤 게임 게시판에 게임 이야기를 하러 온 게 아닌, 단지 사람이 많고 활기차게 돌아가니 똥글을 싸러 들어오는 일련의 분탕종자를 뜻한다.
“······.”
조금은 부정하기 어렵다.
컴퓨터에 레드 아카이브가 깔려 있긴 하지만 컴퓨터와 모바일 게임을 컴퓨터로 돌릴 수 있게 해주는 에뮬 프로그램 성능이 지랄 맞아 너무 버벅거리고 게다가 나는 애당초 게임을 안 좋아할뿐더러 모바일 게임 같은 건 눈길조차 주지 않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나는 아직 레드 아카이브 튜토리얼조차 진행하지 않았다.
양자함폭 : 켈톤이. 나도 이모티콘 귀여운 거 달아줘~ 응~?
뭐, 그래도 큰 걱정을 할 필요가 없겠지.
내가 댓글을 안 달아주니 감정이 상해서 공격할 뿐이다.
놈들이 그렇게 나온다면 내게도 방법이 있다.
이 게시판은 언제든지 닉네임을 바꿀 수 있는 사실상 익명 게시판이긴 한데, 그렇다고 마냥 분탕을 칠 수 있는 공간은 아니다.
아이디 같은 고유정보를 얻을 순 없지만 특정 유저에게 “메모”를 달면 그 유저가 닉네임을 바꾸더라도 내가 그 친구가 누군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
타닥타닥
키타쨩(배양중) – 겜 안한다고 욕함
센세츄르 – 댓글 자기한테 안 달아준다고 샘냄
ㅇㅇ – 완장 찾으며 댓글 가지고 공격함
핑프맨 – 겜안분2
메모를 달았다.
이 친구들한텐 절대 이모티콘을 달아주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나름의 유저 고르기를 하고 있을 때였다.
유니콘콘 : 스켈톤······.
유니콘이 대화를 걸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