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a House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253)
아포칼립스에 집을 숨김-253화(253/466)
104. 안개 너머 (3)
우리 게시판에 접속하는 건 실로 오랜만이다.
이전에도 가끔씩 들어오긴 했지만 게시판을 열람하거나 인기글을 찾아보는 일은 하지 않았다.
발렌타인이나 유니콘을 찾는 등 “업무적”으로 썼을 뿐이다.
간만에 돌아온 게시판의 모습은 예전과 크게 달라진 바가 없었다.
늘 보던 그 친구들이 늘 쓰던 글을 쓰고 있다.
한때는 이러한 익숙함에 질렸지만 다른 세계에 있다 돌아오니 뭐랄까, 고향에 돌아온 기분이다.
마음 같아서는 침대에 누워서 태블릿에 화면을 연동해 느긋하게 스크롤을 내려가며 하나하나 음미하며 읽고 싶지만 지금 내게 주어진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유니콘에게 메세지를 보내야 한다.
그녀의 도움을 지속적으로 구하는 건 꼴사나운 짓이지만 지금처럼 확실한 증거가 있다면 그녀로서도 큰 부담 없이 움직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렇게 생각한다고 내가 가진 마음의 빚이 지워지는 게 아니다.
다른 방법이 있다면 다른 방법을 썼을 것이다.
타닥타닥
SKELTON : 정말 미안한데 박승수 증거 잡았어. 자료 첨부할 테니 이걸로 움직여줄 수 있겠어?
메시지는 이미 완성해 놓았다.
자료가 전부 정리되면 메시지와 함께 박승수의 음성 기록을 전송할 것이다.
“후우.”
얕은 한숨을 내쉬며 휴대폰의 전송 상태를 확인하고 있을 때였다.
게시판에 눈에 띄는 단어가 유난하게 자주 반복되고 있다.
익명1392 : 오늘이지? 동탄맘이 뭔가 보여준다던 게?
roka_GG : 라이브에서 큰 거 기대하라는데.
Rkkara : 또 그놈의 캠 액션 아니야? 이제는 물리는데
익명424 : 믿어보자고 우리의 동탄맘 아니냐고?
Dies_irae69 : 동탄맘은 훌륭한 싸움꾼이지. 나는 그를 높이 평가하고 있다.
익명458 : 세상에 동탄맘이 페일넷 새끼들보다 오래 살아 남을 줄이야.
…
…
키워드는 “라이브”와 “동탄맘”이다.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이는 두 단어가 내가 오랫동안 잊고 있던 게시판의 축제를 되살려 놓았다.
“······.”
아니, 내가 정녕으로 잊고 있던 건 그것만이 아니다.
이 멸망해가는 세상 속에서 국경과 인종을 넘어 생존이라는 화두를 이야기하는 살아 남은 자들의 회합.
그것이 우리 게시판의 본질이다.
화면 상단에 조그맣게 떠오른 라이브! 아포칼립스 ! 창을 살펴보았다.
[ 라이브까지 앞으로 1시간! ]그걸 보 순간 나는 내가 잠시 떠났던 우리 게시판이 돌아온 탕아를 향해 두 팔을 활짝 벌려 맞이하는 듯한 모습을 연상했다.
VIVA_BOT014 : 네? 라이브! 아포칼립스!에 참가하고 싶으시다고요?
VIVA_BOT014 : 저기 규정 읽어는 보셨어요? 최소한 라이브 시작 전 12시간 전에 신청을 하고 심사를 받아야 하잖아요?
여전히 우리의 비바봇은 까칠하다.
하지만 내 목소리를 세상으로 퍼뜨려 줄 사람이다.
그 까칠함에서마저 그리움을 느끼며 키보드를 두드렸다.
타닥타닥
익명144 : 저, 스켈톤입니다.
VIVA_BOT014 : 스켈톤? 설마 그 이상한 스켈톤?
익명144 : 이상한 놈은 아니고요. 진짜 스켈톤입니다.
VIVA_BOT014 : 계정 정보도 다르고 GPS 위치도 전혀 다른데요?
익명144 : (스켈톤) 상황을 설명할 시간은 없지만 지금 제주도에 있고 전투를 앞두고 있습니다.
VIVA_BOT014 : 전투요?
익명144 : 네.
데이터를 전송하느라 숯처럼 뜨거워진 휴대폰을 들어 카메라에 내 모습을 비췄다.
VIVA_BOT014 : 어?
건너편에서 침묵이 느껴진다.
이윽고 비바봇이 이어서 말했다.
VIVA_BOT014 : 진짜 스켈톤님? 카메라 수명이 다한 건지 기종이 안 좋은 건지 좀 어둡긴 한데 진짜 스켈톤님 맞죠?
익명144 : 네. 그리고.
쿵! 쿠쿠쿵!
산 너머에서 천둥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직후 기다렸다는 듯 빗방울이 쏟아치는 탄환처럼 초소의 옥상과 유리창을 두들겼다.
쏟아지는 폭우 속에서 발밑에 암운처럼 드리운 안개는 세를 불린다.
때가 왔음을 느끼며 카메라를 응시하며 똑똑히 말했다.
“어쩌면 이것이 제 마지막 싸움이 될 수도 있습니다.”
비바봇은 까칠한 여자지만 사리에 밝고 진짜 중요한 게 무엇인지 아는 여자다.
VIVA_BOT014 : 무슨 일인가요? 간략하게만 말해주세요.
그녀에게 제주도에 있었던 일을 짧고 정확하게 보고했다.
감수성은 바닥이지만 사실만을 짧게 보고 하도록 단련한 문장은 이런 상황에서 요긴하게 작용했다.
VIVA_BOT014 : 제주도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고요?
비바봇은 충격을 받은 반응이다.
VIVA_BOT014 : 제주도는 미국에서도 낙원으로 알려진 땅인데. 그 사람들이 자료를 많이 보냈거든요. 우리들이 얼마나 잘 살고 잘 위기에 대처하는지. 오죽하면 상류층 일부가 제주도로 가려고 시도하는 일도 있었어요. 그런데 세상에 이런 일이 뒤에서 벌어지고 있었을 줄이야.
익명144 : 지금 자료를 전송하겠습니다.
VIVA_BOT014 : 그 제주도 고위층이라는 사람이 보낸 녹음파일 말이죠?
익명144 : 네.
VIVA_BOT014 : 그걸 방송 중에 송출하는 건 좀 아닌 거 같은데요. 스켈톤님에겐 미안한 소리지만 라이브의 취지와도 맞지 않고. 공개를 하더라도 나중에 다른 형식으로 내는 게 맞는 거 같아요.
VIVA_BOT014 : 그런데······.
VIVA_BOT014 : 이런 고발이 사람들에게 흥미를 심어다 줄까요? 저야 스켈톤님 과거를 아니까 이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아는데 다른 사람들은 솔직하게 동탄맘이나 폭스게임한테 더 열광하잖아요?
익명144 : 그런가요?
VIVA_BOT014 :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세요.
“으음.”
솔직히 납득이 안 가는 말이긴 하다.
이 박규가 동탄맘과 폭스게임 따위보다 화제성에서 밀린다니.
VIVA_BOT014 : 심지어 mmmmmmmmm한테도 밀리잖아요.
“······.”
그 정돈가.
내 평가가.
그렇다면 좋다.
타닥타닥
평소보다 좀 더 강한 힘을 담아 키보드를 두드렸다.
익명144 : 그럼 제가 화제를 만들어드리죠.
VIVA_BOT014 : ?
익명144 : 이 스켈톤이 마지막에 어떻게 싸우는지 보여드리겠습니다.
VIVA_BOT014 : 건투를 빈다는 말이 맞겠지만, 저도 라이브 관계자니 하나만 묻죠. 언제 시작하나요?
익명144 : 사인을 드리겠습니다.
대화는 그대로 두었다.
어차피 라이브! 아포칼립스! 신청 전용 대화방이라 닫는 게 의미는 없겠지만.
중요한 건 대비다.
판초 우의를 뒤집어 쓰고 옥상으로 올라갔다.
딱히 보이는 건 없다.
밤의 어둠과 자욱한 안개, 쏟아지는 빗줄기가 안 그래도 어지러운 시계를 그야말로 암흑 천지로 만들었다.
저격수가 있을 수도 있기에 한 자리에 오래 머무르지 않았고 항상 엄폐물을 이용했다.
초소 아래로 내려가며 비를 털어내고 일전에 확보한 전리품을 점검했다.
지난 습격에서 많은 노획품을 얻었다.
강화 진압 방패, 마체테, 권총 4자루, 국산 소총 세 정, 샷건 한 정 등등.
끼익끼익–
그 전리품을 이용해 간단한 부비트랩을 만들었다.
문고리 잠금쇠가 박살이 나 잠금 기능을 상실한 문짝에 철사를 매달아 샷건의 방아쇠와 연결했다.
급하게 만든 거라 철사를 당긴다고 해서 샷건으로 침입자를 죽일 가능성은 현저히 낮지만 상대방이 문을 열었다는 걸 알리기 위해 만들었다.
옥상에서 격전을 벌인다고 쳤을 때 아래에서 누군가 빗줄기를 뚫고 내부로부터 올라오면 상당히 곤란한 상황에 처하게 될 테니까.
샷건 이외에 탐조등 쪽에 약간의 기믹을 첨가했다.
철사와 스프링으로 만든 단순한 물건이지만 여차할 땐 나만의 마법이 될 수도 있겠지.
쿠쿠쿠쿵!!
천둥이 머리 위에서 친다.
초소 전체가 흔들리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의 굉음이다.
상당히 거슬리는 기후지만 장점은 있다.
천둥과 함께 번쩍거리는 번개가 찰나 동안 어두운 시계를 훤히 밝혀준다.
여전히 적은 보이지 않는다.
최후의 식사를 했다.
합성 초코바 두 개와 물 약간.
전투 전에 식사를 든든히 한다는 건 그다지 현명한 일이 아니다.
위장에 음식물이 가득 차 있을 때 복부에 총격을 받으면 즉사다.
늘 상비해 다니는 카페인 캡슐을 물 없이 삼켰다.
쿠쿠쿵!
시간이 느릿하게 흘러간다.
박승수가 뭘 꾸미는지는 알 수 없다.
대규모 병력이라도 동원하겠다는 건가.
그에게 그런 권한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국위원에서 위원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국회의원마냥 여기저기 오리발을 내밀며 언성을 높이는 사람들과는 다르다.
위원이라는 건 줄임말로 위원 앞엔 항상 자신이 맡는 파트 명이 붙는다.
김다람만 해도 정식명칭은 “구형 헌터 감독” 위원이다.
구형 헌터, 올드스쿨 헌터를 관리하고 감독하는 것이 그녀의 역할이었다.
국위원이 역할이나 위상이 그때와는 많이 달라지긴 했지만 큰 틀에서 변하진 않았을 것이다.
지금까지 상황과 이야기를 고려해봤을 때 박승수의 역할은 김다람과 비슷한 “저레벨 어웨이큰 감독” 위원 같은 게 아닐까?
저레벨 어웨이큰의 능력이 대단히 까다롭긴 하지만 그들의 전투력이 그다지 강하지 않다는 건 지난 전투에서 드러났다.
가장 뛰어난 몇 명을 죽이니 나머지는 도살장의 양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존재였다.
뭐, 자세한 건 놈들이 모습을 드러내 봐야 알 수 있겠지.
다가올 전투를 기다리며 최후의 준비를 한 후 컴퓨터 앞에 앉았다.
모니터 속의 화면은 잿빛의 도시를 비추고 있었다.
상해다.
아니나 다를까, 화면 구석엔 멜론 마스크의 실시간 반응을 볼 수 있는 작은 창이 떠올라 있다.
멜론 마스크가 말했다.
“동탄맘! 지금 대체 뭘 준비하는 거야? 설마 늘 보여주던 파쿠르 액션은 아니겠지? 전과 같은 내용이라면 바로 컷이야! 무슨 말인지 알겠지?”
실시간 번역기능으로 번역되는 문장 아래 수많은 유저들의 채팅이 실시간으로 올라오고 있다.
화면은 함교에서 내려다 본 초대형 선박의 드넓은 갑판을 비추고 있었는데 화면 중심엔 카운트다운을 의미하는 것 같은 숫자가 떠올라 있다.
그 숫자는 04:21으로 실시간으로 1초씩 줄어들며 0으로 수렴하고 있었다.
뭘 하려는 걸까.
작게 줄여놓은 스피커에서 낮게 울려 퍼지는 뱃고동 소리가 들려왔다.
채팅창을 보았다.
gordonfreiman : 이번에 또 뭐냐? 거기서 더 보여줄 게 있냐? 동탄맘.
mmmmmmmmm : 다음 라이브는 m9의 더 호프 보수작전입니다!
X’Ds_Grrrrr : 뭘 하려는 거지? 또 전과 같은 걸 하려는 건 아니겠지?
익명666 : 동탄맘은 위대한 쇼맨이지. 나는 그를 믿어.
mmmmmmmmm : 다음 라이브는 m9의 더 호프 보수작전입니다!
Zebusika : 아니, 동탄맘은 매너리즘에 빠졌어.
Rupert_Gauser : 느낌이 좋지 않아.
Al_nasru_Alipasha : 저 잿빛을 보니 내 고향이 생각나는군. 보는 것만으로 기분이 나빠져.
mmmmmmmmm : 다음 라이브는 m9의 더 호프 보수작전입니다!
…
…
…
…
딱히 기대하는 반응은 없다.
그나저나 m9놈 정말로 질기군.
심지어 안하던 도배질까지 전세계 모든 이가 보는 채팅창에서 해대고 있다.
분당 수백개의 글이 올라오는데 저 정도 빈도로 같은 메시지를 보낸다는 건 매크로라도 쓴 건가?
아니, 손크로 같은 느낌인데.
아니나 다를까 멜론 마스크가 경고했다.
“엠나인. 새로운 쇼를 보여주고 싶어 흥분한 건 알겠지만 이건 동탄맘의 쇼야. 그러니 조용히 해!”
멜론 마스크는 카메라를 돌려 자신 옆에서 풀을 우걱우걱 씹는 살인 뮤테이션을 보여주었다.
나는 그것을 경고의 의미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에 그 흉측한 나무늘보의 발톱을 보여준 걸 보면 말이다.
“이제 시작한다.”
갑판 말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화면 속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람들은 어리둥절하고 있다.
그럴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동탄맘은 자신의 얼굴은 물론이고 목소리마저 공개하지 않았으니.
하지만 나는 그 목소리의 주인공을 안다.
백승현이다.
백승현이 말하고 있다.
부우우우우우우–
우렁찬 뱃고동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백승현의 손이 카메라 앞을 마치 호령을 하는 것처럼 힘차게 앞으로 내리처졌다.
그러자,
텅! 텅! 텅! 텅! 텅!
갑판 위에 불이 밝혀진다.
동시에 스피커 너머로 느낄 수 있는 강렬한 잠력이 응축된 엔진음이 들려온다.
빛과 엔진음 속에서 동탄맘이 말했다.
“희망호가 출발할 때가 왔다.”
배가 서서히 움직인다.
틀림없다.
아주 조금씩이지만 잿빛의 항구가 멀어지고 있다.
수십만 명의 희망을 싣고 갔지만 절망만을 가져다준 희망호가 드디어 절망에서 벗어나 다시금 푸른 바다에 안겨 들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안타깝게도 나는 이 역사의 한 순간을 볼 수가 없다.
탕! 탕! 탕!
총성이 울렸고,
푹! 푹! 푹!
탄환이 방탄유리판에 박히며 탄착점 주위에 자글자글한 균열을 만들어내는 걸 보았으니.
전투가 시작되려 한다.
나는 즉시 이 사실을 비바봇에게 이야기했다.
익명144 : 지금 시작할 거 같네요.
VIVA_BOT014 : 휴대폰과 와이파이 연동 확인. 배터리는 충분하시죠?
익명144 : 네.
VIVA_BOT014 : 정말 미안한데 오늘 동탄맘이 엄청난 걸 들고 와서요. 끝난 이후에야 시작할 수 있을 거 같은데 괜찮겠어요?
익명144 : 네. 좋습니다.
백승현도 그만의 사투를 이어나가고 있다.
한때 내 아랫급으로 보긴 했지만 이제는 다르게 본다.
그 또한 나와 같은 멸망기를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가 만들어내는 이야기가 나만큼이나 훌륭한 컨텐츠라는 것도 인정한다.
지금은 그의 시간이다.
하지만 나의 시간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
익명144 : 그럼 부탁합니다.
VIVA_BOT014 : 저기. 스켈톤님.
대답할 시간은 없다.
그대로 총기를 들고 자리를 떠났다.
자리는 탐조등 옆, 100cm 높이로 쌓은 엄폐물 뒤다.
쿠구궁!
천둥과 번개가 친다.
그 찰나의 번득임 속에서 나는 보았다.
저 능선 위에 악마처럼 서 있는 여러 대의 장갑차량을.
휴대폰을 확인했다.
< 라이브! 아포칼립스! : off-air >
그 화면을 보며 나답지 않게 혼잣말을 했다.
“백선배. 좀 빨리 끝내 달라고······.”
쿠구궁!
천둥이 친다.
장갑차 아래로 간격을 벌리고 접근해오는 인영들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