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a House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269)
아포칼립스에 집을 숨김-269화(269/466)
111. 차가운 관 (1)
Defender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미안한데 지금은 상황이 여의치가 않아. 여기서 빠져나오는 것도 일이지만 나가서도 문제거든. 대규모 몬스터 분출이 일어날 거야. 너도 당분간 북쪽 주변엔 얼씬거리지 마라.
Defender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아, 그리고 내 동생도 안전해. 광신도가 송전탑에 사보타주를 가해 전기가 아주 귀하거든. 길게 접속할 수가 없어. 가게 되면 연락할게.
전쟁이 일어난 지도 이제 4년이 지났다.
전쟁 이전부터 예상했던 사회의 전면전인 붕괴가 이제 가시화됐다.
군단파 장악지역엔 광신도의 산발적인 테러와 사보타주가 빈번하게 일어나고 서울엔 군단파와 광신도, 갈 곳 없는 피난민까지 뒤섞여 헬 파티가 벌어졌다.
덕분에 피난민의 숫자가 부쩍 늘었다.
특히 최근 화제가 되는 건 대규모 이주 집단이다.
서울에 있던 피난민들이 피난소별로 무리를 지어 보다 안전하고 자원이 풍부한 지역으로 떠나는 것이다.
대부분은 군단파 장악 지역인 원주나 춘천 쪽으로 향했지만 일부는 세종이라는 불확실한 도시를 찾아 떠났다.
그러한 이주 집단 하나가 내 영역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주민을 발견한 건 발렌타인이었다.
오늘도 어김없이 제주 인트라넷에 구멍을 뚫던 중 잠시 머리를 식히기 위해 그리고 연초 한 대를 태우기 위해 언덕 위를 산책하던 그가 우연히 먼 도로를 빽빽하게 채우며 다가오는 사람들을 보았다.
“빨리빨리. 위장막으로 태양광 패널 덮어!”
비상이 걸렸다.
드론은 보이지 않지만 저 정도 대규모 집단이라면 정찰 드론 하나둘 정도는 있을 것이고 조심해서 나쁠 건 하나도 없기에 드론 정찰에 대비해 상공에서 눈에 띌 만한 것들을 가리고 숨겼다.
이주단은 내 영역을 지나 남쪽으로 향했다.
치지직-
“세종 들리나? 그쪽 접선자의 말을 믿고 피난소 전체를 데리고 그쪽으로 가는 중이다. 노파심에서 묻겠는데 우리를 수용할 공간은 충분하겠지? 멀고 험한 길인데 거기까지 가서 실망하긴 싫다.”
치지직-!
“수용할 여력은 있다. 하지만 여기서 자기 밥벌이는 다 자기가 해야 해. 서울 인천에 있던 것마냥 꽁으로 놀고 먹을 생각하면 좆될 수가 있어.”
들리는 무전을 청취한 결과 이주단은 세종시로 가는 것으로 보였다.
공용주파수가 아님에도 무전을 들을 수 있었던 건 하태훈 공이 컸다.
“인천에서도 이걸로 재미 많이 봤지. 딱히 어려운 건 아니야. 무전 보내는 놈들이 기본 주파수로 보내니.”
하태훈이 수염이 거뭇하게 난 턱 언저리를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그나저나 세종이라. 확실히 유명해진 모양이네. 작년만 해도 이전 후보지로는 아예 리스트에 오르지도 않았을 곳인데 말이야.”
“유능한 지배자가 있는 곳이니까.”
“그 킹이라는 녀석이?”
하태훈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자리가 좋은 거 아니야? 파주에서도 멀고, 다른 균열에서도 멀고, 게다가 전쟁 초반 빼고는 별 타격 없는 곳이잖아? 각 지역에서도 몰려오기도 편하고.”
“그런 것도 있지만 킹의 리더쉽이 있기에 깡패 두목들이 복종하는 거지. 그가 없으면 당장 도시는 갈기갈기 찢겨 먼지도 안 남겠지.”
하태훈은 회의적인 반응이다.
굳이 하태훈에게 내 생각을 강요할 마음은 없기에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하태훈의 반응은 전쟁 전에 흔히 보던 이른바 “대중”의 반응을 연상케 하는 구석이 있었다.
누군가 어떤 일을 이루면 그 사람을 칭찬하거나 배울 점을 찾는 대신 그 성공을 그 사람의 능력이 아닌, 운이나 부모, 지인 같은 다른 요인으로 돌리려고 하는 습성이다.
“자기가 성공한 적이 없기에 남의 성공도 못 믿는 것이겠지.”
이 말은 어제 발렌타인이 기록 저장고에서 우연히 찾았다는 존내논이 육성으로 남긴 음성 일기, 오디오 다이어리의 일부다.
“이거 말입니까? 네. 구형님. 아니, 존내논님은 몸이 안 좋아지면서 녹음기 하나 갖다 놓고 생각나는 게 있을 때마다 틈틈이 음성을 기록하셨죠.”
“아, 아니 이런 귀중한 자료를 저에게 주겠다는 겁니까?”
“좋아하실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까지 좋아해 주시라고는 생각도 못했네요. 이럴 줄 알았으면 빨리 찾아서 넘겨줄 걸 그랬습니다.”
“아닙니다. 지금도 충분해요! 최고의 선물입니다!”
발렌타인의 뒷이야기에 의하면 원래 존내논은 오디어 다이어리가 아닌, 동영상으로 기록한 비디오 다이어리를 남기려고 했었단다.
용량 문제로 무산되긴 했지만 발렌타인의 말에 의하면 존내논은 못내 자신의 모습을 남기지 못해 아쉬워했다고.
아무튼 최근 나의 낙은 몸이 젖은 솜처럼 흠뻑 젖을 만큼 노동을 하고 샤워를 한 후 나의 우상, 존내논이 남긴 심오한 정신세계를 들으며 자는 것이다.
“내가 어릴 때만 해도 인터넷은 전 세계 지구촌 사람들이 하나가 될 수 있는 매개체가 될 것이라고 기대를 받았다. 하지만 결국 돌아온 건 무분별한 정보의 범람이지. 특히, 불평등의 가시화는 기존 사회를 지탱하던 권위라는 환상을 깨부수고 사회 자체를 무너뜨리는 기반이 되었다.”
“누군가 나에게 묻더군. 이미 인터넷에서 상처를 받은 당신이 왜 이런 짓을 하냐고. 왜 그 인터넷을 못 버리냐고. 나는 오히려 그에게 물었다. 네임드 한 번이라도 해보신 적 있으셨어요?”
“오늘 저녁은 누텔라를 잔뜩 바른 크래커. 맛은 느껴지지 않지만 바삭하는 식감은 예전대로~ 음~ 야미~”
존내논의 음성을 들으며 잠을 청한 이후 컨디션이 좋아지고 수면 효과도 훨씬 증진됐다.
“선배 좋은 일 있어?”
“박규. 뭔가 신이 난 거 같은데. 만나는 여자라도 생긴 건가?”
주변에서도 내 긍정적인 변화를 눈치채고 있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생각한다.
특히 지금처럼 인생의 낙이나 목표가 존재하기 어려운 시대일수록 하루하루의 즐거움은 중요하다.
무엇보다 나는 존내논이란 거인의 고뇌와 일상 속에서 하나의 거대하고 위대한 발걸음이 완성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 잡다한 일상에서 드러난 그의 평범함은 오히려 그의 위대함을 돋보이게 했다.
일상 이외에도 존내논은 여러 기록을 남겼는데 그중 흥미로운 건 우리가 잘 알지 못하고 알 방법이 없었던 상류층의 생존주의 서비스였다.
“우리나라에 돈 많은 사람들 참 많지. 서울에 건물에 얼마나 많아. 아파트 말고 건물 말이야. 건물. 상가 여럿 들어선 것들. 그런 것도 다 주인이 있을 거 아냐?”
일전에 내가 찾아갔던 VIP를 위한 호화 방공호처럼 사회 이면엔 돈 많은 사람을 위한 포스트 아포칼립스 서비스가 의외로 많이, 그리고 활발하게 영업을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실제로 부자들이 서민보다 정보 접근성이 훨씬 높다는 점을 감안해보면 그들이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보다 방공호 같은 재난 방지 대책에 더 힘 썼을 거라는 건 명약관화하다.
존내논이 상류층을 위한 은밀한 생존주의 시장이 있다는 걸 알게 된 건 그가 강연으로 돈을 많이 번 것도 있겠지만 그 상류층 고객들이 존내논 개인에게 자문을 구해왔기 때문이란다.
멸망이라는 주제에서 존내논만큼 대중적으로 유명한 사람이 없었으니.
당시 상황을 존내논은 아래와 같이 회상했다.
“컨설팅으로 떼 돈을 벌었지. 뭐, 다들 알겠지만. 처음엔 강연으로 돈을 벌었지만 나중에는 부자들 컨설팅으로 돈을 만졌어. 진짜 신사임당 속에서 수영을 해도 될 정도로 어마어마한 돈이었지. 뭐, 그래 봐야 그 사람들에겐 한 달 백화점에서 쇼핑 안 한 거에 불과하지만 말이야.”
사실 우리의 존내논이 그리 양심이 뛰어나고 도덕 수준이 고결한 사람은 아니다.
까놓고 말해서 그에게 유명세를 준 건 프랑스인 유저 무단 불펌질이 아니었나.
그런데 그 존내논이 보기에도 이른바 상류층 재난대비 시장에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파렴치한 사기꾼이 많았다고 한다.
점점 흥미를 더해가는 존내논의 회고록에서 그는 가장 창의적이고 끔찍한 사기꾼으로 한 명을 지목했다.
“넬슨 용범이라는 새끼가 있었지. 이름 보면 알겠지만 검머외야. 검은 머리 외국인이지. 뭐, 자기 말로는 미국에 유명한 대학 나왔다고 하더라고. 전공도 분자화학? 아무렴. 그 개자식이 진짜 터무니없는 사기를 치고 다니더라고.”
나는 넬슨 용범이 누구인지 알지 못한다.
들은 적도 없고 본 적도 없다.
그런데 이 친구.
천하의 존내논이 기겁할 정도로 큰 사기판을 벌였다.
“냉동인간이라니.”
존내논은 냉동인간이라는 표현을 썼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장기간 동면 기술이다.
근미래 항성 간 우주여행을 위해 연구되고 있던 기술로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사람을 동면관에 넣어 생체 활동을 극단적으로 줄여 수십 년의 항해에도 큰 노화나 변화 없이 긴 시간을 버틸 수 있게 만드는 꿈의 기술이다.
내가 알기로 이 기술은 아직 실현되지 않았다.
평화시라면 모를까 균열이 열리면서 전지구적 과학 역량이 균열을 해명하고 해결하는데 집중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넬슨 용범이라는 자는 이 미실현 기술을 마치 실재하는 것처럼 속여서 상류층을 상대로 판매를 시도했다.
우리가 볼 때 부자들은 전부 다 같은 부자로 보이지만 “부자” 안에서도 경계가 뚜렷이 나뉜다고 한다.
VIP 방공호 사업자가 영업을 벌였던 부자는 백억 대 정도의 부자인 반면, 넬슨 용범이 영업을 펼쳤던 부자는 이른바, VVIP로 자기 재산이 얼마인지 한 달에 얼마나 들어오는지조차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영업 방식은 VIP 방공호 사업자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일체의 광고 활동을 하지 않고 오로지 VVIP간의 소개로만 고객을 확보하는 폐쇄적인 영업 활동을 벌였다.
“넬슨 용범. 그 새끼의 가장 큰 재산은 미국 시민권과 졸업장이었지. 젊고 번듯하게 생긴 외모도 신뢰감을 줬던 거 같아. 이름만 들어도 다 아는 명문대 출신 미국인이 미국에서도 가장 부유한 사람들이 선택한다는 아무도 모르는 서비스를 제공한답시고 떠들어 댄 것이지.”
존내논에게 넬슨 용범의 정보를 제공한 것도 VVIP였다.
그 VVIP가 생각하기에 아무리 봐도 동면 기술이 엉터리인 거 같아 또 다른 “생존 전문가”인 존내논에게 자문을 구한 것이다.
우리의 존내논은 그 자문을 받자마자 영어, 불어 게시판에 가서 동면이라는 단어를 검색했다고 한다.
게시판에서 동면에 관한 검색 결과가 없자 존내논은 직접 번역기의 힘을 빌려 게시물을 올렸다고 한다.
“그게 가장 어려운 일이었지. 번역기가 지랄 같더라고.”
지금처럼 멜론 마스크가 개발한 최신 번역기가 제공되기 전, 시중의 웹 번역기를 이용해야 했기에 번역질은 조악했지만 그럭저럭 외국 유저들에게 원하는 질문을 던지는 데까진 성공한 모양이다.
외국 유저들의 반응은 존내논의 생각과 대동소이했다.
“백 년은 더 기다리라는 말이 많더군. 어떤 유저는 단지 체온을 낮게 유지하는 것만으로는 의미가 없고 대사율을 획기적으로 낮추면서도 혈구를 파괴하지 않는 신약의 개발이 병행되어야만 동면이 가능할 것이라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지.”
그 대목에서 존내논은 3번 이상 육두문자를 내뱉었다.
“넬슨 용범 그 개새끼 때문에 큰 건 하나 놓쳤지. 그 노인네 방공호 용역만 땄어도 지금보다 좀 더 크고 안전한 건물에서 페일넷을 돌릴 수 있었을 텐데 말이야! 원자력 전지도 더 좋은 거로 샀을 거고! 내 몸이 이렇게 될 일도 없었겠지!”
존내논의 충고에도 불구하고 그가 영업 중인 VVIP는 넬슨 용범과 계약을 맺었다고 한다.
당연한 일이지만 그 이후 그 VVIP의 소식을 들은 적은 없었다.
“그 양반. 오벨리스크를 10개나 계약했는데. 자기, 마누라, 아들 부부, 딸 부부, 손주와 집안 관리인 내외까지 해서 말이야.”
10개가 넘는 위성 장비를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VVIP는 끝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적어도 존내논이 죽기 전까지 그들이 모습을 드러낸 적은 없었다.
“게시판에서 쫓겨난 후에도 매일 내 닉네임을 검색했지. 날 찾는 놈이 없더라고. 그럼 접속 안 한 거지.”
다 지난 날이지만 존내논이 꽤 오랜 분량을 할애해서 이 이야기를 한 건 호기심 때문이다.
“그 양반. 어떻게 됐는지 궁금해. 아마 죽었겠지만 그래도 사람 마음이 확인해보고 싶잖아? 어디에 동면 시설이 있는지는 알아. 비서한테 술 한잔 사주고 귀띔으로 들었거든. 아······ 건강이여! 내 몸이 조금만 더 건강했어도 거기 한 번 가보는 건데······.”
이어서 존내논은 그 은밀한 동면 시설의 주소를 또렷한 발음으로 파일에 기록했다.
그 위치는 안성시 인근 산악지대다.
그리 멀지 않다.
문제는 그 일대는 내가 잘 알지 못하는 영역이라는 것이다.
사람은 살지 않는 것으로 안다.
대도시 이주 정책에 따라 여간한 소도시의 주민은 모두 대도시 쪽으로 이주했다.
버려진 도시엔 늘 그렇듯 좀비와 뮤테이션, 그리고 몬스터가 있다.
어쩌면 숨어서 살아가는 기회주의적 약탈자가 있을지도 모르겠지.
그렇다면 우리 게시판의 순기능을 간만에 이용해보자.
SKELTON : (스켈톤 질문) 안성 쪽에 잘 아는 친구 있냐?
간만에 질문을 던졌다.
뻘글엔 댓글이 잘 달리진 않지만 그래도 질문글엔 그럭저럭 댓글이 달리는 편이다.
아니나 다를까 댓글 알람이 왔다.
“음?”
그런데 좀 껄끄러운 친구가 댓글을 달았다.
Dies_irae69 : 거기라면 잘 알지. 우리의 새 영역이니까.
Dies_irae69 : 놀러 오려고? 알고 싶은 게 있으면 뭐든 물어 봐.
디에스이라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