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a House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275)
아포칼립스에 집을 숨김-275화(275/466)
112. 믿음 (4)
내 이름 옆, 플라스틱 부품 사이에 끼워 넣은 쪽지가 있다.
읽어보았다.
– 매직으로 칠한 빨간색 버튼 있을 거야. 그거 눌러!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로봇 청소기는 잠시 대기한 후 몸체를 돌려 어둠이 진 거리를 향해 나아갔다.
달그락- 달그락-
추측에 불과하지만 이 로봇청소기는 드론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글자 그대로 가전에 불과한 로봇 청소기에 좌표만을 입력하여 우리에게 보낸, 일종의 메신저라고 할까.
드론이 역추적 당할 위협을 인지한 선택이다.
정숙하게 거리를 나아가는 청소기를 따라갔다.
청소기의 속도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보는 것과 다를 바가 없어 상당히 느렸지만 문제 될 일은 없었다.
“저기. 그리고 저기. 사람이 있어.”
은은한 안광을 발한 천영재가 쥐죽은 듯 고요한 원룸 거리에서 사람이 숨은 곳을 가리켰다.
일부는 내가 기척을 확인한 곳도 있지만 대부분은 내가 눈치채지 못한 곳이다.
곳곳에 사람들이 숨어 있는 주거 지역이다 보니 아까처럼 지역 전체를 우회하는 건 불가능하다.
최대한 엄폐물에 몸을 붙인 채 사람이 있는 창가로부터 차폐되는 경로를 선택했다.
덕분에 우리의 전진 속도는 청소기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청소기는 우리를 도처에 널린 원룸 빌딩과 크게 다를 바 없는 한 건물로 인도했다.
[ 로얄 임페리얼 클라스 베스트빌 ]“캬.”
건물 이름을 보고 천영재가 얕은 탄성을 내뱉었다.
“뭐 새삼스럽게.”
“하긴. 이 나라가 그렇지.”
청소기가 향한 곳은 건물의 뒤편이었다.
폐기물 자재가 널린 잔해를 따라가니 개집 하나가 있었다.
청소기는 개집 안으로 들어갔다.
“아무리 세상이 망해도 로봇 청소기가 개집 안으로 들어가냐.”
천영재의 감상을 들으며 개집을 들여다보았다.
겉만 개집이지 완벽하게 개조된 상태다.
청소기가 오르기 쉽게 조잡하게나마 경사로를 만들었고 청소기를 위한 충전기는 물론이고 우천에 대비하기 위해 기본적인 방수 쪽도 신경 썼다.
청소기 옆엔 소형 드론 한 대가 거치대 안에 놓여 있었는데 청소기의 운용이 불가능할 경우에 선택할 최후의 수단으로 보였다.
그 드론 옆에 “지하”라는 매직으로 휘갈겨 쓴 메모가 붙어 있었다.
“제대로 찾아온 모양이군.”
주변을 살펴보았다.
천영재가 지적했던 사람이 숨은 건물이 최소 다섯 채가 반경 150m 안에 있다.
심지어 그중 둘 이상은 80m 안이다.
다들 도로 쪽에 입주해서 원룸 뒤편인 이쪽에서는 우리를 관측할 수 있는 사람이 없겠지만 소리는 들리겠지.
천영재가 망을 보는 가운데 지하실로 내려갔다.
지하실 너머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역시 디펜더 다운 태도다.
내 신분이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진 결코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려는 강한 의지가 느껴진다.
오랫동안 기다렸을 것이다.
문을 두드리며 말했다.
“나다.”
안에서는 답이 없다.
한마디 덧붙였다.
“스켈톤이다.”
그제야 문 너머에서 안도의 한숨이 들려왔다.
“스켈톤.”
“스켈톤! 와 줬구나!”
디펜더도 디펜더 동생도 무사하다.
문쪽을 보았다.
과연 문 일부가 단단하게 뒤틀린 상태.
자물쇠를 총으로 부순다고 열리는 수준이 아니다.
“이거, 빠루로는 안 되겠는걸?”
빠루라 불리는 쇠지렛대도 용접기도 모두 챙겨왔다.
가급적이면 빠루만으로 열 수 있었으면 했지만 디펜더의 철저한 성격을 감안하면 역시 용접기를 동원해야겠지.
계단 위에 배낭을 푼 다음 용접기를 꺼냈다.
“무선도 도청 당하는 모양이지?”
휴대용 용접기를 세팅하며 굳게 닫힌 문 너머로 말을 걸었다.
“어. 내가 도청하는 거 옆에서 봤는데 전자전만큼은 전쟁 전 수준을 유지하고 있더라고.”
디펜더가 대답했고,
“드론도 비슷해. 띄우는 순간, 바로 점검 들어가.”
디펜더 동생이 이어서 말했다.
“어떻게 된 거지? 보니까 군인들끼리 죽이고 있던데.”
간략한 상황을 물었다.
“표두원 중장일 거야. 그 인간이 김병철 대장 죽이겠다고 공공연하게 말하고 있었거든. 어쩌면 광신도와 짠 것도 그 인간일지도 모르지.”
“광신도와 군인 뿐인가?”
파괴됐다고 하나 도시에 남은 번영의 잔재를 보니 좀비와 뮤테이션은 가능성이 희박하다.
내가 묻고 싶은 건.
“몬스터는?”
“모르겠어. 파동은 여러 번 느꼈어. 그게 몬스터의 것인지 광신도의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콘센트가 있다고 했지?”
“거기. 모로 세워 놓은 도로 표지판 치워 봐.”
휴대용 용접기 콘센트를 꽂아보았다.
정확하게 불이 들어온다.
“남은 전력은?”
“짱짱하게 남았을 거야. 여기 갇힌 후엔 거의 전기를 안 썼으니.”
“그렇군.”
조건은 갖춰졌다.
용접기로 문을 열기만 하면 된다.
그대로 절단을 시작했다.
파지지직-
휴대용이라고 하나 출력전류 150A에 달하는 고성능 용접기다.
그런데.
텅!
갑자기 용접기가 꺼졌다.
정확히는 용접기 부분과 연결된 인버터의 전력이 나갔다.
즉시 검전기로 용접기의 상태를 확인했다.
용접기의 문제는 아니다.
디펜더가 보장하던 건물 내 잔여 전력이 얼마 남지 않았던 모양이다.
디펜더도 그 사실을 알고 입을 열었다.
“발전기를 다시 돌려야 할 거 같은데.”
하지만 그게 여의치가 않다.
이 원룸촌 일대에는 철저한 적막만이 흐른다.
자그만 소리도 크게 들릴 정도의 고요함이 숨어 있는 사람들의 공포와 뒤섞여 한 여름밤인데도 오한을 느끼게 할 정도의 스산함으로 다가왔다.
여기서 용접을 시작하면 사방팔방으로 들릴 것이다.
대로변을 장악한 군인들의 귀에도 들어간다는 이야기다.
문제는 현재 도시를 둘러싼 전투의 형태가 소탕전이라는 것이다.
큰 소리가 나면 무조건 처형 부대가 온다.
“다른 충전기는 없나?”
“이게 마지막이야.”
“발전기를 돌리는 건 위험해.”
“그래? 주변에 사람이 없을 텐데.”
“아니, 의외로 많아. 천영재가 함께 왔어.”
“그거 영재 목소리였나.”
디펜더 남매의 생존을 확인했지만 산 넘어 산이다.
과할 정도의 완벽을 요구하는 디펜더의 성격이 계획에 차질을 불러왔다.
“다른 출구는 없나?”
“환풍구가 있긴 해.”
“거기로 나오면 안 돼?”
“고양이라면 모를까 사람은 드나들기 어려운 너비야.”
문이 갑자기 흔들렸다.
끼익– 끼익—
금속과 금속이 맞물리며 끔찍한 소음을 낸다.
디펜더가 안에서 열려고 시도하는 모양이다.
“그만.”
디펜더에게 말했다.
“다른 방법을 찾아보자.”
“······그래.”
말은 그렇게 했지만 딱히 뾰족한 방법은 없다.
천영재와 함께 둘이서 몸통으로 부딪쳐보는 게 좋으려나.
소음을 내더라도 한 번에 큰 소리라면 어떻게든 우연의 일치로 묻어버릴 수도 있으니까.
고민이 깊어지던 중 총성이 울렸다.
탕! 타타타탕!
가까운 곳에서 나는 소리다.
계단을 올라 천영재 쪽을 보았다.
이미 천영재는 은은하게 빛나는 눈으로 총성이 울리는 곳을 노려보고 있었다.
“잘 안 보여. 분간이 안 돼. 하지만 최소 여러 명이야.”
계속해서 총성이 울렸다.
평범한 총성은 아니다.
응사하는 총성도 섞여 있다.
그 응사하는 총성은 그러나.
콰아앙!
무자비한 포성에 힘없이 묻혀버린다.
“전차다.”
천영재가 말했다.
“알고 있다.”
어떤 전차인지도 안다.
K-4B 특수사양 전차.
4라는 넘버를 달고 있지만 실제로는 구닥다리 M48 패튼 전차의 포탑과 포신을 저관통, 저화력용, 전면장갑 강화 수준으로 강화한 이른바 “멍텅구리 전차”다.
반사역장에 의해 반사되는 물체는 정직하게 역방향으로 반사된다는 지극히 단순한 원리로 만들어졌는데 구닥다리 전차라고 하지만 몬스터 상대로 꽤 쏠쏠한 전과를 올렸다.
괴물들이 득실한 현대 전차전에서는 움직이는 관짝에 지나지 않지만 대전차 화력이 없는 알보병 상대로는 전차가 전쟁을 지배하던 시절만큼의 압도적인 힘의 차이를 보여줄 수 있다.
쾅-! 콰콰쾅!
“고폭탄이군.”
멍텅구리 전차는 관통탄만을 쓴다.
이쪽이 반사되는 포탄을 덜 위험하게 방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규정에도 없는 고폭탄을 쓰는 이유는 하나다.
처음부터 시가전, 그것도 사람을 죽이기 위해서 전차를 데리고 왔다는 것이다.
건물에 농성하는 병력을 방실째로 파괴하기 위해서 말이다.
탕! 타타타타!
총격이 점점 강해진다.
그리고 총격이 들려오는 소리 또한 점점 가까워진다.
천영재가 날 향해 고개를 돌렸다.
“박선배. 이건······.”
“그래.”
소탕전이 시작됐다.
바로 이곳, 원룸촌을 향한.
이런 걸 보면 모든 일은 양면적이다.
디펜더의 과한 조치 덕분에 구출이 지연됐지만 역으로 우리가 늦게 도착했다면 그 과한 조치가 디펜더 남매를 살렸을지도 모른다.
쿵! 쿵!
곳곳에서 군인들이 문짝을 걷어차는 소리가 들리는 걸 보면 더욱 그렇다.
“어떻게 하지? 일단 철수할까?”
천영재가 묻는다.
아주 가끔, 이 친구의 눈빛이 도전적으로 변할 때가 있다.
지금이 그 순간이다.
가벼운 척을 하지만 명백한 실력파인 천영재는 결정적인 순간마다 이런 눈으로 날 바라본다.
마치 나의 리더 자격을 확인해보려는 양.
그런데 천영재는 모르겠지만 이 박규, 그런 도전은 수천 번도 넘게 받았다.
프로페서.
올드스쿨 헌터의 정점으로 산다는 건 늘 그런 것이다.
항상 어리고 영리하며 재능 있는 친구들의 질투와 감시를 동시에 받는다.
“······아니.”
담담하게 답해주었다.
“그러면?”
“총성과 포성에 맞춰 발전기를 가동한다.”
천영재에게 수신호를 보냈다.
경계를 서라는 뜻이다.
천영재는 희미한 미소를 머금으면서도 고개를 까딱거리며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수긍한 건 아니다.
두고 보겠다는 뜻이다.
“······.”
용접기를 들었다.
그리고 기다린다.
타타타탕!
점점 가까워지는 총성이라는 맹수의 발걸음이 다가오는 순간을.
“발전기를 돌려!”
위이이이잉—!!
구령과 함께 건물 안의 간이 발전기가 힘차게 돌아가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 소리는 한때 세상을 움직였던 힘과 연결된다.
파지직!
용접기가 부활했다.
눈이 멀 것 같은 섬광이 시야에 환한 자국을 남기는 걸 느끼며 선글라스를 끼고 절단을 재개했다.
위이이이이잉—
무지막지한 전력소모량에 발전기가 더욱 큰 굉음을 내지르지만,
콰쾅!
전차의 포성이 모든 걸 덮어 버린다.
포성의 여운 속에서 나는 우리와 디펜더를 분단하는 찌그러진 철문을 묵묵히 쪼갠다.
철컹!
충돌부를 해체했다.
문을 흔들어 보았다.
흔들린다.
영원히 움직일 것 같지 않던 문이 드디어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천영재.”
“예이-!”
“밀어붙이자.”
“좋수다.”
천영재와 함께 뒤로 물러선 후 동시에 흔들리는 문을 향해 돌진했다.
쿵!
문이 크게 덜렁거린다.
하지만 아직 열리지 않았다.
다시 시도했다.
쿵!
문이 열렸다.
악취가 은은히 서린 어둠 속에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얼굴들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스켈톤.”
디펜더.
“스켈톤!”
그리고 다정이.
디펜더는 일전에 사진에서 본 것처럼 별 차이가 없지만 다정이의 얼굴이 제법 수척해졌다.
그녀를 보며 조심스레 물었다.
“몸은 괜찮아?”
“응. 괜찮아졌어! 걱정하지 않아도 돼.”
눈물로 촉촉하게 젖어가는 그녀의 시선으로부터 고개를 돌리며 뒤를 돌아보았다.
“짐은 얼마나 있지?”
디펜더가 미리 준비한 백팩을 둘러맸고 다정이는 가벼운 가방 하나를 들었다.
디펜더 가방 위에 삐죽 튀어나온 오벨리스크를 보며 나도 모르게 실소를 머금었다.
역시, 우리 게시판 친구는 게시판 친구구나 하는.
“바로 여기서 이탈한다.”
“좋아. 그렇게 하자.”
그 와중에도 소탕전은 계속된다.
탕! 타타타탕!
병사들이 가까이 오고 있다.
아울러 전차 또한.
중국군이 그들의 도시에서 그랬던 것처럼 군단파의 군벌도 건물 하나, 방실 하나 단위로 도시 전체를 지워버리려 하고 있다.
“이제 보여! 아주 가까이 있어! 이런 빌어먹을.”
천영재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사방이야! 사방에 적이야!”
“사방은 아니겠지.”
정확히는 퇴로가 있다.
우리가 온 남서 방향이다.
하지만 길은 반드시 남서 방향으로 나지 않았고 총알은 멀리 간다.
“하 선배.”
오랜만에 교신기를 켰다.
“어. 박규.”
“VIP 확보. 지금부터 이탈할 테니 드론 지원을 부탁한다.”
“라저.”
탈출의 시간이다.
천영재와 함께 선두에 서서 길을 뚫었다.
창밖으로 빼꼼 내민 얼굴이 보인다.
아까 지나쳤던 생존자 중 하나로 보인다.
디펜더가 총을 겨누려고 한다.
“시늉만.”
굳이 죽일 필요는 없다.
하지만 희망을 가지지도 않았다.
디펜더는 원래 그런 사람이니까.
예상했던 총성은 울리지 않았다.
디펜더를 돌아보았다.
눈이 마주치자 그가 희미한 미소를 머금었다.
“시늉만 하라며?”
변했군.
이 친구도.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 모든 걸 정당화하던 차가운 심장의 사람도 변할 수 있다는 걸 느꼈다.
내가 알지 못하는 수많은 경험이 그에게 변화를 일으켰겠지.
부정적인 변화는 아닐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길을 재촉했다.
“저기다!”
병사들의 고함이 들려온다.
탕! 타타타탕!
총성도 더욱 가까워 진다.
우리가 믿을 건 하나다.
“경로를 수정해. 동쪽으로. 대로 너머 병사들이 오고 있으니.”
하태훈의 드론이다.
높은 고도에 자리 잡은 드론이 열상장비를 통해 적들의 위치를 우리에게 알려줬다.
하태훈의 지시를 따라 미로 같은 거리를 빠져 나왔다.
하지만.
탕! 탕!
총성은 점점 가까워진다.
우리를 추격하는 게 아니다.
단지 소탕전에 참가하는 병사의 숫자가 늘어났을 뿐이다.
하지만 이대로라면 들키는 건 시간 문제겠지.
설상가상으로 하태훈의 드론도 포착당한 모양이다.
“젠장. 대공 차량 한 대가 여기로 오고 있어.”
“대공차량?”
“m60 기관총 네 자루 묶은 녀석. 어설퍼 보이지만 위치만 특정되면 어지간한 건 갈아버려.”
이대로라면 하태훈의 지원도 받을 수 없다.
“······.”
답은 하나다.
강행돌파다.
“짐, 포기할 수 있나?”
디펜더에게 물었다.
“짐을?”
“대신 동생을 챙겨.”
포위망 한 축을 무너뜨리고 전력으로 질주한다.
일단, 차량이 있는 곳까지만 가면 된다.
놈들이 헬기를 출동하는 경우의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까지 할까?
디펜더가 짐을 내리는 동안 천영재와 계획을 상의했다.
“저쪽이 제일 얇아.”
천영재는 동쪽을 가리켰다.
자동적으로 머릿속에 지도가 그려졌다.
“모퉁이를 돌면 2차선 도로가 나오겠군.”
정예 군인 상대로 전투를 벌이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다.
하지만 정예 헌터 두 명이 기습한다면 1개 분대 정도는 순식간에 섬멸할 수 있겠지.
“박규.”
여분의 탄창을 손 닿기 편한 주머니에 옮기던 중에 하태훈이 연락했다.
“듣고 있다.”
“방금 무전을 들었는데.”
“짧게.”
“몬스터가 출현했다는 모양이야.”
“몬스터?”
말이 끝나기 무섭게 북서쪽에서 익숙한 악몽의 소리가 들려왔다.
쿵!
충격파.
몬스터의 고동이다.
“후퇴! 후퇴!”
동시에 저 너머, 우리가 기습하려던 병사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분주한 여러 개의 발소리가 멀어지는 것 또한 들려온다.
“오래 살고 볼 일이야.”
천영재가 씨익 웃었다.
“몬스터가 생명의 은인이 될 줄은.”
그를 향해 정정했다.
“그 몬스터도 결국 우리를 죽이려 들겠지.”
몬스터와 은인은 성립될 수 없는 개념이다.
몬스터는 그 자체로 인간과 양립할 수 없는 존재니까.
탕! 타타탕!
북서쪽에서 총성이 들려온다.
“빠르게 움직이자. 하선배. 아직 드론 띄워놨지?”
“바, 박규.”
하태훈의 목소리가 미약하게 떨리고 있다.
좋지 않은 예감을 느끼며 그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하태훈의 대답이 울려퍼지기도 전에 우리는 하태훈을 떨게 한 징조를 알 수 있었다.
쿵! 쿵! 쿵!
다수의 충격파.
순간 생각했다.
이것은 몬스터라기보다는 몬스터를 닮은 인간의 것이 아닌가 하는.
“광신도다! 광신도가 그쪽으로 똑바로 가고 있어!”
그 순간 나와 디펜더의 눈이 똑바로 마주쳤다.
의도한 건 아니지만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의 업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