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a House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276)
아포칼립스에 집을 숨김-276화(276/466)
112. 믿음 (5)
우리가 디펜더라는 유저를 처음 알게 된 건 유명한 인증 사건에서부터다.
디펜더는 자신의 영역에 침입하는 사람을 죽였고 그들의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올렸다.
멸망 초입기답게 살해당한 사람들은 신분증을 들고 있었고 디펜더는 시체 옆에 자신이 죽인 사람의 신분증을 마치 상표라도 붙인 것처럼 나란히 전시했었다.
당시 그가 우리에게 주었던 충격의 크기는 실로 대단했다.
멸망기를 살면서도 우리는 여전히 전쟁 전의, 평화로웠던 시절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우리 멸망주의자 일부는 전쟁이 큰 피해를 안겨다 준 건 맞지만 중국이 궤멸한 이상 한국은 예전과 비슷한 형태로 재건하리라고 조심스럽게 예측한 사람도 적지 않았다.
모든 것은 쇠한다.
디펜더가 우리에게 안겨다 준 충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들은 그보다 심한 것들을 숱하게 보았고 또 일상에서 주변에서 심심찮게 찾아본다.
몸도 마음도 멸망기의 삶에 접어들면서 디펜더라는 네임드유저는 과거의 유명세를 잃었고 그저 그런 평범한 유저 중 하나로 전락했다.
하지만 그건 우리의 변화다.
우리에게 충격을 주었던 디펜더는 변한 게 없다.
그는 여전히 다른 곳에서 예전 방식대로 사람을 죽였고 또 죽였다.
“······자원한 건 아니야.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을 뿐이지.”
군단파는 원주와 춘천 일대에서 주로 북한인으로 구성된 광신도 무리를 조직적으로 학살했다.
아무 예고도 없이 격리 구역에 불을 지르고 생화학탄을 퍼부었고 살고자 뛰쳐나오는 사람들에게 총격을 가했다.
디펜더는 그 학살에 참여했다.
이미 수많은 사람을 죽인 그에게 광신도 몇 명을 더 죽이고 덜 죽이고는 아무래도 좋은 일이었다.
하지만.
“갑자기 숨이 막히더라고. 그래서 마스크를 벗었지.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질식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어.”
그는 학살에 회의를 느꼈다고 한다.
그가 왜 회의를 느꼈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았지만 내 나름대로 상상해본다.
지금까지 그의 살인은 자신의 영역을 지키기 위한 살인이다.
육식동물이 다른 생명을 뺏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살생의 업을 나면서부터 가지고 있었던 것처럼.
하지만 군단파의 학살은 성격이 다르다.
다분히 정치적이고 집단적인 것이다.
살기 위한 몸부림의 또 다른 형태에 지나지 않았던 살인과 같은 격에 놓일 수 없다.
그래서 그는 메스꺼움을 느꼈고 자신의 익명성을 보장해 줄 가스마스크를 벗은 게 아닐까?
순전히 내 생각이다.
적어도 그가 가진 회의가 자신이 저지른 죄악을 마주 볼 정도는 되길 바란다.
실제로 그 죄의 대가가 우리 앞에 성큼 다가왔다.
“스켈톤.”
디펜더가 날 보며 미약하게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시선을 받으며 대답했다.
“걱정하지 마라.”
그를 지키겠다고 약속했다.
적어도 그의 부채를 함께 갚겠다고 약속했다.
“가방을 메라.”
“가방을?”
다정이를 바라보며 물었다.
“걸을 수 있지?”
“물론!”
뛸 필요가 없다면 짐은 온존하는 게 좋다.
저 디펜더가 중요하다고 생각해 추리고 추린 짐이다.
멸망기엔 대체로 사람보다 물자가 소중한 법이다.
디펜더 남매의 경우는 물자보다 소중한 사람이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물자의 중요성은 퇴색하지 않는다.
디펜더가 다시 짐을 챙기는 동안 하태훈에게 물었다.
“광신도는?”
“군인들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어. 그런데 싸우진 않네?”
“그래?”
“아, 군인들이 물러가고 있어. 아, 이제 알겠네. 광신도와 짰군. 손을 잡았어. 그것 말고는 설명되지 않아.”
하늘 위에서 우리를 지켜보는 하태훈이 정확한 상황을 말해주었다.
하지만 그의 눈도 오래 가지 않았다.
타타타타타탕!!!
군단파의 대공 차량이 불을 뿜었다.
장비는 조잡하지만 뛰어난 사격 통제 장치의 지휘를 받는 모양인지 탄환은 허공 위에 떠올라 있던 하태훈의 드론을 떨어뜨렸다.
“드론 아웃.”
하태훈이 침통한 어조로 말했다.
“어떻게 할까? 합류할까?”
그에게 말했다.
“아니, 자리를 지켜.”
천영재에게 말했다.
“먼저 남쪽으로 둘러보고 오지.”
“혼자?”
고개를 끄덕였다.
지난 며칠간 천영재의 능력에 많은 의지를 했지만 그건 옆에 천영재가 있어서다.
천영재가 다른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기꺼이 홀로 활동할 수 있어야 한다.
실제로 그게 나의 삶이다.
지금까지 나는 아무런 능력 없이 위험한 곳을 돌아다녔고 전투를 했고 위기에서 벗어났다.
걱정하는 천영재를 바라보며 한마디했다.
“네 눈을 통해 모두를 지켜라.”
천영재는 내 뜻을 알아차리고 희미하게 빛나는 눈으로 어둠 너머를 날카롭게 주시했다.
뒤에서 디펜더와 동생의 시선이 느껴지지만 무시하고 어둠 속으로 걸어갔다.
가는 길이 어렵진 않다.
이미 한 번 와본 지형이고 사람이 숨은 위치도 얼추 기억하고 있다.
덕분에 발걸음은 처음보다 빠르고 행동엔 거침이 없다.
내가 확인해보고자 하는 건 내가 아는 길의 정확한 상태다.
컴퓨터로 치면 최신 업데이트라고 할까.
불과 몇 분 전만 하더라도 병사들이 포위망을 형성하고 있었다.
실제로 그 포위망은 완전히 우리를 에워싸는데 이르렀다.
그러나 멀리서 느껴진 충격파와 더불어 군인들은 포위망을 풀고 구역에서 철수하기 시작했다.
부우우웅—
거리 너머에서 차량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린다.
끼릭끼릭–
차량의 엔진음에 섞여 전차의 캐터필러 소리 또한 섞여 들어온다.
그리 멀리 있지 않다.
기껏해야 500m 정도.
무한하게 늘어선 원룸 건물이 사이에 있어 보이지 않을 뿐이지 개활지라면 벌거벗은 수준으로 훤히 보이는 거리일 것이다.
다행히 차량과 전차의 구동음은 구역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다.
다만.
“어이.”
원룸 건물 3층 창에 한 사내의 그림자가 어슴푸레 속에 어른거린다.
그 실루엣은 그가 총기를 들고 있다는 걸 음울하게 말해주고 있었다.
아울러 그가 창문을 열고 나를 공격할지 말지 치열하게 고민하는 것까지도.
“누구냐? 대체 거기서 뭐해?”
총을 겨누지 않고 대답했다.
“군인은 아니야. 지나가는 사람이다.”
사내는 대답이 없다.
내 목소리를 듣고 놀랐는지 몸을 가볍게 움찔거릴 뿐이었다.
“다시 말하지만 그냥 지나가는 길이다. 군인들은 몬스터가 나타났다고 떠나고 있다. 우리도 여기를 지나갈 생각이다. 그러므로 불필요한 충돌을 하지 않기를 희망한다.”
여기서 저 3층의 주민 이외에 적어도 사선 상에 우리를 위협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교신기에 대고 말했다.
“거리 확보. 이쪽으로.”
“라저.”
지역을 확보한 채 디펜더 일행이 오는 걸 기다리고 있자니 원룸 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당신은 누구야? 군인?”
그는 창문 뒤에 몸을 숨긴 채다.
어둠이 자신의 실루엣을 가려주지 못하다는 걸 모른 채 어설프게 서 있는 꼴이 우습긴 하지만 진지하게 대답해줬다.
“군인은 아니고. 흔하디 흔한 피난민이다.”
“피난민이 대체 왜?”
“친구를 구하러 온 거지.”
“친구라······.”
드르륵-
창이 열렸다.
동시에 내 총기가 꿈틀 움직인 것도 사실이다.
“나도 같이 데려다주면 안 될까?”
군복을 입은, 군인이다.
상의 포켓까지 덮는 무수한, 근본 없는 기장을 보아하니 그야말로 전쟁 전부터 전선에서 근무한 정진정명한 군단파 군인으로 보인다.
그가 검게 변색된 얼굴에 울상을 띄우며 입을 열었다.
“딱히 원하는 건 없어. 단지 이 도시에서 빠져나가 김병철 대장의 부대의 소재만 찾으면 돼.”
군인은 총을 흔들어 보였다.
“자랑은 아니지만 사람은 많이 죽여봤다. 분명 도움이 될 거야.”
임무 중엔 수많은 상황이 발생한다.
고립된 생존자와의 만남도 그중 하나.
백인백색이라는 말처럼 그들 또한 종잡을 수 없는, 변화무쌍한 요구를 해온다.
내 경험은 검증되지 않은 제삼자를 같은 구성원에 받아들이지 말라는 것이다.
총기를 가진 자는 더더욱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그러나 무턱대고 거절을 하는 것도 현명한 방법은 아니다.
그건 차라리 저 사내를 지금 죽이는 것만도 못한 짓이다.
거절은 앙심을 불러오고 앙심은 종종 충동과 이어지는 법이니.
차가운 지옥도 속에서 대화의 기술은 필요하다.
“우리는 지금 광신도에게 쫓기고 있다.”
“광신도?”
“그래. 내 친구가 광신도 학살에 연루됐지. 하얀 옷을 입은 광신도가 내 친구를 죽이겠다고 떠들고 다니더군.”
충혈된 눈으로 나를 내려다보는 사내를 올려다보며 담담히 물었다.
“그래도 함께 하겠나?”
사내의 얼굴이 떨떠름하게 굳었다.
그는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고 창문을 닫았다.
“뭐야. 찍힌 거야?”
닫힌 창문 너머로 사내가 퉁명스레 물었다.
“찍혔다니.”
“만류교에 쫓긴다며?”
이쪽에서는 사이비교를 만류교라고 말하는 건가.
“만류교에 찍히면 절대 도망갈 수 없다는 거, 몰라?”
“그래?”
이번에는 내쪽에서 궁금증이 일었지만 사내 입장에서는 더 이상 나와는 대화할 필요가 없다.
그가 거칠게 창문을 닫았다.
“시발. 재수가 없으려니. 빨리 지나가! 이 앞에서 잡히지 말고! 멀리 꺼지라고!”
때마침 어둠 너머에서 천영재 일행이 모습을 드러냈다.
천영재에게 다가갔다.
“광신도 쪽에 인지 능력자가 있는 것 같다.”
인지와 감지.
현재까지 알려진 저레벨 어웨이큰의 능력 중 하나다.
인지 능력은 종종 감지 능력과 엮여 많은 오해를 불러 일으킨다.
단어만 놓고 보면 크게 다르지 않기도 하고.
하지만 내막을 알고 보면 실제 성격은 전혀 다르다.
감지가 짧은, 전투 거리 내에서 적의 위치를 파악하는 정찰에 치중된 능력인 반면, 인지는 어떤 한 개인이나 대상의 위치를 파악, 거리가 얼마가 떨어져 있든 간에 그 대상이 있는 곳을 알 수 있는 능력이다.
감지 능력이 전투 중 레이더와 비슷한 역할이라며 인지 능력은 먼 곳에 떨어진 물건을 찾는 통신기와 비슷한 역할을 한다.
학자들은 몬스터들이 인지 능력을 바탕으로 그들의 동족 – 소형, 침투종이 있는 곳으로 나아간다고 설명한다.
“정확하게 인지는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는 거지?”
능력의 대강은 현직에 있을 때 들어서 알고 있다.
하지만 실제 방법론은 알지 못한다.
알고 싶어도 나 같은 주류에서 밀려난, 그것도 저레벨 어웨이큰에게 병적일 정도의 혐오를 받는 내가 얻을 수 있는 정보는 아무것도 없겠지만.
“그건 나도 몰라. 나도 인지 능력은 없으니까. 하지만 가까이 있어야 가능한 것 정도는 알아. 말 그대로 인지잖아? 대상을 인지하려면 적어도 얼굴 정도는 봐야 하지 않을까?”
디펜더를 보았다.
“주변에 인지 능력자 같은 게 있었나? 아니면, 인지를 당할 법한 상황이 있었나?”
디펜더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김다람 대장을 포함해서 어웨이큰은 없었어.”
그의 눈이 번득였다.
“아니, 잠깐.”
디펜더의 눈이 먼 곳을 향했다.
“······살려준 놈이 하나 있어.”
“네가?”
조금은 놀랐다.
저 디펜더가 사람을 살려주다니.
“여동생을 지켜야 한다고 여동생을 살려야 한다고 애원하던 녀석이었지.”
“······.”
디펜더가 날 보았다.
“그때, 그 녀석에게 인지를 당했을 수도 있어.”
고개를 까딱이며 전진을 명했다.
“가자.”
정확한 사정은 알지 못한다.
인지 능력자라는 것도 저 원룸에 남겨진 군인의 말을 듣고 추정한 것에 불과하니까.
하지만 그 광신도들이 학살자를 찾아내는 걸 그토록 자신하는 건 다 이유가 있어서겠지.
조심해서 나쁠 건 단 하나도 없다.
탕! 탕! 타타타탕!
총성은 여전히 거리 여기저기서 울려 퍼지고 있다.
산발적인 저항을 하는 걸까, 아니면 여전히 군인들 일부가 소탕전을 벌이는 것일까.
단편적인 정보에 의하면 우리 퇴로를 가로막는 건 아무도 없기에 속보로 움직일 수 있었다.
그런데.
“이거.”
천영재가 인상을 구겼다.
“진짠 거 같은데?”
“······뭐가?”
천영재가 발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인지능력.”
희미하게 빛나는 눈을 찡그린 채 허공을 노려보며 천영재가 고개를 끄덕였다.
“똑바로 와. 우리가 어디를 가든 똑바로 우리를 향해서 다가와. 마치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아는 것처럼.”
“숫자는 얼마지?”
“최소 열 명.”
“그런가.”
인지 능력의 가장 무서운 적은 거리다.
일단 인지망에 포착되면 수십 킬로미터 떨어진 곳의 대상도 정확히 인지할 수 있다고 한다.
그 말은 우리가 이대로 우리 영역으로 돌아간들 인지능력자를 앞세운 광신도 패거리라는 불청객을 맞이할 수 있다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스켈톤.”
디펜더가 내 앞에 섰다.
그는 결심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내가 남을게.”
다정이의 눈이 가볍게 흔들렸다.
“오빠.”
“······스켈톤과 함께 가라.”
희생을 자처하는 혈육 앞에서 다정이는 아무런 감정의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단지 아무 말 없이 자신의 혈육 옆에 나란히 서서 심호흡을 할 따름이다.
심호흡을 마친 그녀가 나지막한 어조로 말했다.
“죗값이라면 같이 받아야하지 않을까?”
그녀가 쿡쿡 소리내어 웃었다.
억지 웃음.
다정이가 날 응시했다.
“나도 많이 죽였어.”
알고 있다.
“학살에도 가담했고.”
“······.”
그건 내가 알지 못하는 사실이다.
다정이는 어딘가 처량한 미소를 머금은 채 담담하게 자신의 죄악을 우리 앞에 말해주었다.
“응. 버튼 하나 딸깍했다지만 그 버튼 하나 때문에 3백 명이 넘는 사람이 산채로 건물에 깔려 죽었는걸. 그게 광신도라고 하지만 광신도도 사람 아니겠어?”
그들의 눈을 본 순간 그들의 마음이 내 가슴에 와닿았다.
디펜더 남매.
그들이 여기 남으려는 건 죄책감 때문만은 아니다.
그건 아주 사소한 부분이다.
내가 그들의 얼굴에서 발견한 건 감사함이다.
나에 대한 감사.
내가 지금까지 그들을 돕고 또 여기까지 와준 것에 대한 감사.
그렇기에 그들은 여기에 남으려고 한다.
더 이상 나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스켈톤. 괜찮은 여자 만나고 있어?”
다정이가 억지 미소를 머금은 채 명랑하게 말했다.
“하, 전쟁 전에 우리 알았다면 괜찮은 여자 소개시켜 주는 건데. 나이가 좀 있지만 뭐 어때? 멋진 남자잖아? 우리 스켈톤.”
그 와중에도 적들은 다가온다.
천영재가 얕은 기침 소리를 냈다.
광신도가 오고 있다는 이야기다.
하태훈도 장비를 챙기며 소리를 냈다.
그들은 나에게 결정을 요구한다.
그런데 나는 결정할 게 없다.
“저기.”
왜, 이미 정했는 걸.
“그거 아냐?”
다정이와 디펜더를 눈에 담으며 물었다.
남매가 동시에 날 바라보았다.
“나 게시판에서 완장 단 거.”
“뭐?!”
“진짜?”
희미한 미소를 머금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비밀 완장이지.”
“비밀 완장······!!”
“그리고 봤을지는 모르겠지만 이미 광신도는 한 차례 엿을 먹인 적이 있어.”
“그, 그래?”
“계획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