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a House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277)
아포칼립스에 집을 숨김-277화(277/466)
112. 믿음 (6)
팀장으로 활동하면서 계획은 최대한 간단하게 짜려 했다.
막 학교에서 졸업한 친구들은 계획은 화려하고 복잡한 것이 좋지 않냐는 환상을 가지는데 정말로 어리석은 이야기다.
뭐, 복잡하고 신기묘묘한 계획을 짜는 건 멋진 일이긴 하다.
하지만 모든 계획이라는 건 일이 시작되는 순간 입안자의 손을 떠나며 상황이라는 거대한 공이 어디로 어떻게 어떤 속도로 굴러가는지는 그 누구도 예단할 수 없다.
고로 계획이라는 건 최대한 간단하고 이해하기 쉬운 선에서 짜야 한다.
인간의 머리에서 짜낸 계획이라는 그물은 현실이라는 거대한 공 앞에서 너무 쉽게 찢기는 물건이니까.
하지만 나도 가끔은 약간의 복잡한 계획을 짜곤 한다.
아무 때나 하는 일이 아니다.
반드시 수행해야 하는 임무가 있을 때 그리고 전력이 현저히 부족할 때.
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실패를 예견한 작전을 짠 적은 없다.
“놈들이 너를 바로 죽일 수도 있다. 그런데 어쩌겠냐. 그게 네 운인데.”
농담이라는 것은 과거의 프로페서가 갖지 못했던 요소다.
“하지만 나는 확신한다. 놈들은 널 그냥은 죽이지 않을 거다. 게시판에서 보지 않았나? 그 광신도 패거리들이 의외로 SNS적인 활동에 집착하는 거? 그러니까······.”
잠시 단어를 고르고 있자니 디펜더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인증 말이냐.”
“그래. 바로 그거다. 놈들은 너를 잡아 인증을 하려 들겠지.”
모든 계획의 중심엔 확고한 목적이 있어야 한다.
모처럼 인증이라는 말에 즐거움을 내비친 내 인터넷 친구를 향해 진지하게 말했다.
“네가 아는 얼굴이 보이면 그놈을 지목해.”
광신도가 막강한 어웨이큰을 여럿 보유하고 있다지만 그들은 신도 아니고 신의 사도도 아니다.
단지 정신이 이상한 어웨이큰과 곧 미쳐버려 죽을 인간의 집합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이 우리를 추적할 수 있는 건 인지 능력자가 있기 때문이다.
해결법은 단순하다.
그 인지 능력자를 죽이면 된다.
디펜더의 냄새를 맡고 찾아올 그 사냥개만을 죽인다면 우리는 광신도로부터 안전하게 탈출할 수 있다.
두 가지를 준비했다.
하나는 미끼다.
인지 당한 당사자, 디펜더가 미끼를 맡게 될 것이다.
동료를 미끼로 두는 것은 지양하고 싶지만 상황이 여의치가 않다.
미끼가 있으면 낚시꾼도 있는 법.
나머지는 600m 떨어진 능선에 잠복한다.
더 거리를 벌릴 수도 있겠지만 내 저격 능력은 김다람 만큼 뛰어나지 않다.
감지능력자의 감지 범위 밖에서 내가 집중해서 죽일 수 있는 최대한의 거리를 지정했다.
천영재와 하태훈은 화력 보조를 맡기로 했고 다정이는 드론 조종을 통해 우리를 지원하기로 했다.
“뭐? 네가 그때 그 드론 조종사라고?”
“응.”
하태훈은 다정이의 미모를 보고 흠칫 놀랐는데 그녀가 그날 중국인을 골탕 먹인 드론 조종사라는데 더 큰 놀라움을 드러냈다.
다정이에겐 3개의 드론이 있다.
전부 정찰 드론이지만 다정이는 그중 가장 크고 출력이 높은 드론에 박격포탄을 매달았다.
“자, 그럼.”
짧은 작별의 시간이다.
디펜더가 날 바라보았다.
그의 눈엔 약간의 두려움이 느껴졌지만 그 두려움을 걷어낼 정도의 신뢰 또한 느껴졌다.
“너만 믿는다.”
“너무 믿지 마라. 죽을 수도 있어.”
“그때는 내 동생을 부탁하지.”
디펜더가 하태훈과 함께 드론 조정 중인 다정이를 힐끗 돌아보았다.
“······알고는 있겠지만 나도 저 녀석도 그리 바람직한 삶을 산 건 아니야.”
“존내논.”
“응?”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갑자기 무슨······.”
나도 모른다.
왜 갑자기 내가 기습적으로 존내논의 이름을 거론했는지.
하지만 그 이름이 우리의 비장미를 어느 정도 걷어낸 건 사실이다.
굳이 비장할 필요는 없다.
그건 끝난 이야기에나 어울리는 장식이다.
마지막으로 디펜더 앞에 있는 모터사이클을 점검했다.
우리 계획의 첫 단계는 디펜더가 모터사이클을 타고 도주하려고 했으나 모터사이클이 고장 나 그대로 자리에 머문다는 설정에서 비롯된다.
“쌩쌩하군.”
모터사이클의 상태는 여전히 아무 문제 없다.
백승현을 생각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디펜더와 눈을 마주쳤다.
우리는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사이에 긴말은 필요 없다.
다만.
“어이. 저거. 몬스터 아니야?”
야간감시장비로 어둠 너머를 지켜보던 천영재가 내게 장비를 내밀었다.
우리로부터 8km 떨어진 도시 북부로 향하는 진입로 상에 달빛을 받은 회백색의 괴물들이 떼를 지어 느릿하게 도시를 향해 전진하고 있었다.
군인들은 합당한 이유로 철수했다.
몬스터가 온다.
“······.”
등대가 꺼진 이상 몬스터 무리는 이제 어디에도 나타날 수 있다.
그러나 사람 마음은 그렇지 않다.
적어도 이쪽엔 오지 않았으면 한다.
다행스럽게도 몬스터보다 사람이 먼저 왔다.
불빛이 번쩍이고 있다.
광신도들이다.
주먹을 쥔 손을 번쩍 들어 모두에게 신호를 보냈다.
*
탕!
600m 표적은 나에겐 꽤 먼 거리고 또 우리 헌터에겐 낯선 거리다.
우리는 전쟁 내내 대부분 100m 이내에서 교전했다.
게다가 나는 지정 사수도 아니었다.
난 항상 가장 선두에서 싸웠다.
천영재나 하태훈에게 맡길 수도 있지만, 이건 내 일이다.
그들의 전공이라면 모를까, 나와 관계된 일에 부담을 주는 임무를 줘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미리 사격을 해두었다.
탕!
탄착점을 확인한다.
광신도가 들어도 관계없다.
어차피 총성은 사방에서 들려오는 일종의 백색소음이니까.
“좋아.”
디펜더가 탄착점을 확인해주었다.
“정확해. 하지만 아주 약간 오른쪽 아래에 떨어진 느낌?”
“알겠다.”
내 옆에는 다정이가 드론 조종기로 드론을 테스트하고 있었다.
그녀가 작은 쿼터 드론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아까 내가 물었던 질문에 대답했다.
“만류교? 응. 그렇게 부르는 사람도 많았어. 아닌 척 하지만 알음알음 그 종교 믿으며 친한 사람에게 퍼뜨리는 사람도 있었고.”
다정이가 오랫동안 병원에 있었다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자신이 무슨 병을 앓았는지, 혹은 앓고 있는지는 말하려 하지 않지만 그녀는 자신이 병원에서 보았던, 인간 사회의 역병을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의외로 믿는 사람이 많았어. 왜. 몬스터. 무섭잖아? 죽여도 죽여도 끝없이 나오고 중국, 인도, 러시아, 그 크고 강한 나라. 끝을 냈잖아? 그것도 다 핵 가진 나라들을.”
히로시마에 원폭이 투하된 후 인간이 과대망상에 빠졌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인간이 자연을 더럽히고 오염시킬 수 있지만 인간은 여전히 지구라는 행성에 빌붙은 기생체 중 하나다.
인간이 아니더라도 지구 환경을 변화시킨 생물은 얼마든지 있다.
당장 우리가 매일 마시고 조금이라도 부족하면 죽음에 이르는 산소만 하더라도 우리 선배들의 업적 아니던가.
이미 인간 만능설은 21세기 들어 서서히 회의론이 일고 있었지만 몬스터의 등장은 오만한 인간의 콧대를 글자 그대로 분쇄해버렸다.
하나의 믿음이 무너지면 다른 믿음이 성한다.
방구석에서 부모님 타박을 받으며 무협소설을 읽으며 배를 긁던 중국인 청년의 망상은 이제 전지구적인 새로운 믿음으로 승화했다.
“광신도다.”
차량이 디펜더 쪽으로 접근한다.
사륜구동 SUV 4대.
전체를 하얗게 칠한 다음 가운데 쪽에 마치 차가 일도 양단된 것마냥 선명한 붉은 색의 줄을 그어 놓았다.
검은 연꽃, 잎이 없는 보리수, 펄럭이는 황색 깃발에 큰 붓으로 쓴 한자 萬(만), 다리가 없는 돼지 등 중국에 있었을 때 보았던 갖가지 상징 중 하나다.
그 잡다한 상징들은 사이비 종교나 각 분파의 상징으로 아는데 그중 하나가 북한을 넘어 이 땅에 퍼진 모양이다.
정확한 명칭이나 세력은 알지 못한다.
어차피 우리에게 광신도는 광신도다.
“이 정도 거리면 감지 능력 바깥이겠지?”
옆에서 보조를 맡은 천영재에게 물었다.
“내 기준에는. 하지만 나보다 뛰어난 놈도 있는 걸로 알아. 하지만 아무리 넓어봐야 500m는 넘지 못할 거야. 일종의 한계지.”
나는 그 한계를 몬스터의 필요에 의한 한계로 생각한다.
어웨이큰의 능력 대부분이 몬스터에게 전래됐다면 그 원 주인 입장에서 사용하기 가장 적절한 능력으로 조정되었을 터이니.
사실 400m도 넓은 범위다.
시가전에서는 100m 정도만 되도 충분하리라 본다.
뭐, 무능력자인 내가 왈가왈부할 이야기는 아니지만 말이다.
차들이 멈춰선다.
그들이 디펜더를 육안으로 포착했다.
디펜더는 모터사이클 뒤 사면 아래 숨어 있다.
의도한 행동이다.
우리가 감지나 인지 능력을 모른다는 게 광신도 입장에서는 좀 더 쉬운 사냥감일 테니까.
부우우웅-
차들이 디펜더가 숨은 방향으로 차체를 돌리면서 정차했다.
환한 헤드라이트 불빛이 디펜더가 숨은 곳을 일제히 비췄다.
“악취미적인 풍경이구만.”
측면 경계를 맡은 하태훈이 그 광경을 보고 쓴웃음을 머금었다.
확실히 악취미다.
하지만 그 악취미가 내게 확신을 심어준다.
교신기에 대고 말했다.
“역시, 이 친구들. 널 바로 죽일 생각은 없어 보이는데?”
“동감이야.”
산전수전 겪은 살인자답게 디펜더는 수십 명의 적을 앞에 두고도 별 긴장하지 않은 눈치다.
“자, 그럼.”
가장 중요한 시간이다.
“보이냐?”
인지 능력자를 찾아야 한다.
녀석을 죽이고 디펜더를 빼내 이 지역을 떠나야 한다.
디펜더만 빼낸다면 도주에 어려움은 없을 것이다.
나의 버기카는 비록 값비싼, 이제는 얼마 없는 귀중한 기름을 먹을지언정 험지 주파 능력은 SUV 따위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이 우월하니까.
당장 논두렁만 넘어가도 광신도가 할 수 있는 건 드론을 날려보내는 정도겠지.
악의적으로 헤드라이트를 디펜더가 숨은 곳을 향해 집중한 가운데 차에서 하얀 옷을 입은 사람들이 내렸다.
그 복식은 뭐랄까, 웃음이 나왔다.
중국식과 서구식의 어색한 혼합이라고 할까.
인민복을 수도자의 로브 스타일로 만든 기묘한 디자인이다.
그래도 깔 맞춤 했다는 건 이 친구들이 광신도 중에서도 상당히 잘 조직화됐고 또 그 조직화된 신도 집단 내에서도 상층부라는 걸 의미하겠지.
“저 중에 어웨이큰 다수가 있을지도 몰라.”
천영재에게 말했다.
“그럼 어떻게 하지?”
“좀 떨어져.”
헌터 사이에 긴 말이 필요 없다는 건 늘 느끼지만 편리하다.
천영재가 씨익 웃었다.
“몬스터 잡듯이 저것들을 잡겠다는 소리?”
“그러려고.”
“인티미데이팅이 통할까? 저것들은 사람이잖아?”
“괜찮아.”
“어떻게 괜찮을 수가 있어?”
“50 대 50의 도박에서 내가 죽을 수 있는 패를 집을 녀석은 그리 많지 않아. 그것도 이쪽이 절대적인 우위를 가진 상황에서는 더더욱 안전 패를 쥐겠지.”
천영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군. 그런데 말이야. 광신도니까 오히려 미친 놈들이 많지 않을까?”
그를 바라보며 빙그레 웃었다.
“진짜 미친 놈들이라면 이미 몬스터 옆에 있겠지.”
바로 여기에 광신도의 맹점이 있다.
그들의 창시자(그들의 언어로는 개파종사)는 몬스터가 인간의 적이 아니며 세상의 질서가 준 또 다른 조화라고 생각했고 고로 그는 이미 철저히 침식이 된, 몬스터로 가득 찬 땅에서 그것들과 함께 살아가기로 다짐했다.
대부분의 광신도는 그러한 가르침을 따랐다.
수 억 명에 달하는 버림 받은 중국인들이 침식된 대지에 남았고 그리고 사라졌다.
사라진 중국인 일부가 광신도가 되어 몬스터가 아닌 사람 사는 세상에 나타났을 때 같은 중국인들은 비웃었다.
저 것들에게 종교는 그저 핑계일 뿐이라고.
전설적인 삼황오제가 중원에 터를 정한 이래 중국 내부에서 끝없이 되풀이 된 역성혁명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중국군 내부의 판단이었다.
나도 그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고로 저들은 미치지 않았다.
저들은 오히려 우리보다 생에 집착할 것이다.
“저기.”
교신기에서 디펜더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얀 옷 입은 놈 가운데 혼자 티셔츠 입은 놈 보이지?”
“짧은 머리? 귀에 피어싱하고?”
“어, 그래. 시발······.”
갑자기 디펜더가 욕지거리를 내뱉다.
“무슨 일이지?”
“진짜 있긴 하네. 여동생.”
과연 하얀 옷을 입은 무리 사이에 10대 초반의 작은 소녀가 섞여 있었다.
하지만 그건 우리에게 그다지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천영재에게 말했다.
“시작한다.”
총기를 잡고 이미 영점 조정이 끝난 대지를 노려보았다.
스코프 너머에 사람이 보인다.
내가 죽여야 할 적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