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a House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278)
아포칼립스에 집을 숨김-278화(278/466)
112. 믿음 (7)
“어떻게 그렇게 멀리서 잘 쏠 수 있냐고?”
학교 시절 1km 저격 과목이 있었다.
다른 과목만큼은 탑을 차지했지만 저격만큼은 내 장기는 아니었다.
안타깝게도 이 부분만큼은 이상훈에게 탑을 내주었는데 그 사실이 못내 아쉬웠던지 훗날 팀원이 된 김다람에게 저격의 비결을 물어보았다.
“단지 감만으로 보고 쏘는 건 아니야. 학교에서 배웠다시피 지구는 끊임없이 자전하고 자기장도 그에 상응하며 만물에 작용할뿐더러 그것들의 영향을 받는 바람 또한 수시로 변하니까.”
“바람을 어떻게 측정하지?”
내가 물은 건 사격지점에서 부는 바람이 아니다.
그런 건 스포터가 알아서 측정해주고 아니면 나 혼자서 대충 감을 잡고 계산에 넣을 수도 있다.
문제는 바람이란 게 한 방향으로 불지 않으며 인간의 머리로는 계산할 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요인이 바람길에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당장 내쪽에서 서풍이 불어도 표적에 동풍이 불 수도 있다.
그건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이다.
이른바 최장거리 저격 기록을 세우는 사람들은 그러한 바람이나 기타 변수의 영향을 받지 않기 위해 무거운 탄종을 쓴다.
시중에서 통용되는 저격총의 탄환이 5.56mm가 아닌 7.62mm 언저리라는 것도 자연이라는 거대한 고객을 상대로 한 타협의 결과물이다.
주로 5.56mm를 쓰고 다른 탄종은 샷건 말고는 쓸 필요가 없던 내겐 그다지 중요한 문제는 아니지만 문제는 그러한 평균적인 소총으로 장거리 사격을 해야 하는 순간이 반드시 한 번 정도는 올 수 있기 때문이다.
“힌트야 사방에 널려 있잖아?”
내 물음에 김다람은 지금은 잃어버린, 싹싹하면서도 믿음이 가는 미소를 머금으며 대답했다.
“표적이 옷을 입고 있으면 그 옷이 흔들리는 방향을 봐. 나무가 있다면 그걸 참고해도 되고. 대상만 보지 말고 대상 주변의 사물을 두루 관찰하라고. 그럼 거기서 어떤 바람이 부는지 알 수 있어.”
당시 그녀가 자신의 답변대로 인생을 살았다면 지금보다는 좀 더 나와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지 않았을까.
관계는 허물어지고 남은 건 지식이라는 차가운 뼈대 뿐이다.
그 지식의 위태로운 철골 끝자락에 서서 심호흡을 하고 호흡을 멈춘 채 대상을 노려본다.
남자.
소년. 십 대 중반. 삐쩍 마른 단신.
틱이 있는지 눈을 간헐적으로 깜빡이지만 몸을 들썩거리진 않는다.
그게 내가 저 소년에 대해 가진 모든 생각이다.
총구를 소년의 관자놀이에서 살짝 못 미친 곳을 겨냥했다.
“거기. 숨은 거 다 알아!”
차에서 내린 광신도가 확성기를 들고 디펜더 쪽을 향해 소리쳤다.
“어차피 죽기는 매한가지다. 우리에게서 벗어날 수 없어. 너도 교단의 추적자 – 호법의 소문 정도는 들어봤겠지? 못 들을 수가 없어. 너희 군인 중에 우리 교도가 섞여 있고 그 교도들이 우리의 정보를 너희들에게 퍼뜨리니까. 너희들이 하던 그 애잔한 라디오 방송처럼 말이지.”
광신도들의 무장을 보았다.
총기를 든 사내도 일부 있지만 대부분은 무기가 없다.
정확히는 총기가 없다.
상당수의 광신도가 조잡한 창, 정글도, 조선낫 같은 냉병기로 무장했다.
그들이 어웨이큰이라는 확신을 더하며 최적의 기회를 노렸다.
“지금 투항하면 종사의 이름을 걸고 덜 고통스러운 죽음을 선사하마. 한끼 나마 괜찮은 식사와 술, 필요하다면 마약과 여자도 제공하겠다. 고문도 없을 것이고 처형 시에도 특별히 고통을 못 느끼는 약을 제공하겠다고 약속한다.”
확성기로 떠드는 자가 한 걸음 앞으로 걸어갔다.
탕!
망설임 없는 격발.
총성과 울림과 동시에.
쿵!
충격파가 터져 나온다.
확성기를 든 사내 뒤편에 서 있는 사내가 충격파를 일으킨 것이다.
탄환은 눈에 보이지 않는 차원의 균열 속으로 파고들었고 그 탄환은 마치 블랙홀의 출구인 웜홀마냥 튀어나와 그대로 내 옆머리를 스치고 지났다.
“기습이다!”
광신도가 소리쳤다.
“어웨이큰이다.”
조용히 말했다.
그리고 재차 총기를 격발했다.
탕! 탕! 탕!
시간차를 둔 단발 사격.
전부 위협사격.
인티미데이팅조차 아니다.
적어도 이 부분에서 인간이 몬스터보다 약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드러난다.
몬스터는 자신이 총기를 맞게 될, 밀접한 상황에서만 반사역장을 펼치지만 인간들은 몬스터와 다르게 총성만 울려도 반사역장을 펼치니까.
쿵!
최초의 어웨이큰 이후 2명이 더 자신이 어웨이큰이라는 걸 드러냈다.
그런데 단지 드러냈을 뿐이다.
“위협사 실시.”
하태훈과 천영재에게 명령했다.
두 헌터가 각자의 총기로 위협사를 가하기 시작했다.
인티미데이팅 축에도 못 드는 눈먼 탄환이 밤하늘을 갈랐지만 광신도들은 총성이 울릴 때마다 조건반사적으로 충격파를 일으켰다.
“드론.”
뒤편에 조종기를 들고 다소곳하게 앉은 다정이를 향해 손짓했다.
다정이는 고개를 끄덕이고 지면 속에 숨겨 놓은 비장의 무기를 가동했다.
위이이이잉—
로봇 청소기다.
어째서인지 그녀는 로봇 청소기를 챙겼는데 다 용도가 있었던 모양이다.
청소기 위엔 수류탄 다발을 묶은 폭약이 적재되어 있다.
“일반 드론과 다르게 원시적으로 좌표를 찍어서 이동하는 타입이야. 단순한 만큼 손이 덜 가고 좌표 설정 이외에 무선을 이쪽에서 끊으면 해킹 위협도 감청 위험도 없지.”
상대방이 어웨이큰 집단이라고 해서 위축될 건 없다.
결국 사람 대 사람의 싸움이다.
유리한 전장에 몰아넣었다는 점에서 승기의 절반 이상은 우리에게 넘어 왔다.
물론 그들 중에 강한민이나 나혜인급 괴물이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지겠지만 그건 늘 존재하는 불가항력적인 요소다.
우리 머리 위로 드론 하나가 날아갔다.
박격포를 단 드론이다.
좌표를 찍어 로봇 청소기를 적에게 보내면서 동시에 드론으로 위협을 가한다.
적들의 시선은 사방을 향했다.
느슨하게 디펜더가 숨은 지점을 노려보던 그들은 이제 차 주변에서 둥글게 진형을 짜고 서 있다.
광신도가 진형을 갖추는 가운데 차분하게 바라본다.
그들의 안내인이 그들에게서 떨어지는 순간을.
“누구냐?! 감히 누가 우리에게 이빨을 들이대냐? 김병철이 부하냐? 김병철이 무슨 꼴이 됐는지 알고서도 이런 짓을 하냔 말이다.”
확성기를 든 광신도는 총성이 울린 이쪽을 향해 소리쳐본다.
아무도 대답하지 않는다.
단지 박격포를 단 드론만이 요란하게 움직이며 그들의 머리 위로 날아갈 뿐.
탕! 타타탕!
총기를 든 광신도가 드론을 향해 총격을 가했다.
한 사내가 그들을 제지하며 하늘을 올려다 봤다.
쿵!
충격파.
동시에 무형의, 그러나 확연하게 인지되는 전류 같은 무언가가 허공을 갈랐다.
픽!
신나게 날아가던 드론이 추락하기 시작한다.
산타(散打).
대 드론 파장을 쏘아 보내는 몬스터의 권능 중 하나로 드론 개발에 모든 국력을 쏟아 붓던 중국에게 사형을 언도한 상징적인 권능이다.
당연한 일이지만 중국에서 최초로 발견됐고 중국이 권능을 명명했다.
“디펜더.”
교신기에 대고 말했다.
“뒤로 뛸 수 있나?”
“오케이.”
숨어 있던 디펜더가 경사를 등지고 키만큼 길게 자란 수수밭을 향해 전력으로 질주하기 시작했다.
“도망쳐요!”
소년이 소리쳤다.
“도망친다고요!”
광신도는 소년의 말에 따르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소년을 귀찮아 하는 모양새다.
“조용히 해!”
이미 날이 설 대로 선 상황이다.
언제 총알이 날아올지 모르고 또 다른 드론이 올 줄 모르는.
“저쪽요!”
소년이 자꾸 소리치는 것도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다.
제 한 몸 건사하기 어려운 집단에서 뭐라도 포상을 얻기 위한 몸부림이다.
그 몸부림이 광신도 사이에 작은 균열을 일으켰다.
일부가 디펜더 쪽이 있는 곳을 향해 다가갔고 일부는 차에 남았다.
그 간극 사이에 소년이 있다.
“위협사. 3초 후에.”
셋. 둘. 하나.
탕! 타타타탕!
하태훈과 천영재가 일제히 위협사를 가한다.
그때마다,
쿵! 쿵! 쿵!
충격파가 사방에서 터져 나오며 파동을 일으키지만 그 각 파동이 미치는 최대 거리 너머엔 보호받지 못하는 공백이 있다.
덩그러니 홀로 남겨진 채 디펜더의 위치를 소리치는 소년을 노려보며 방아쇠를 당겼다.
탕!
위협사도 인티미데이팅도 아니다.
탄환은 정확하게 소년의 심장에 적중했다.
심장에 탄환이 꽂힌 소년은 고목처럼 쓰러졌고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디펜더에게 말했다.
“목표. 무력화.”
동시에 다정이에게 손짓했다.
이미 차량 아래까지 접근한 로봇 청소기가 명령을 기다리고 있다.
그녀가 버튼을 누르자,
콰쾅!!!
강렬한 폭발과 함께 차들이 날아간다.
잇따른 충격에 광신도들은 등대에서 보았던 충격파의 합창을 내지르며 둥글게 뭉쳐 질서정연하게 후퇴하기 시작했다.
그걸 본 순간 어렴풋이 인지했다.
이 어웨이큰 집단도 그리 허당은 아니라는 걸.
전술적인 불리함을 인지하자마자 깨끗하게 대상을 단념하고 물러설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제대로 된 체계가 잡혀 있는 조직만이 할 수 있는 기예다.
광신도가 떠나는 걸 보며 교신기에 대고 말했다.
“상황 종료. 홍정호를 회수하고 영역으로 복귀해라.”
다정이가 날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스켈톤은 어쩌고?”
저 멀리 덩그러니 풀숲 사이에 놓인 모터사이클 쪽을 가리켰다.
“저건 챙겨 가야지.”
우리 사이에 긴 말은 필요 없다.
부아아아아아앙—-
버기카가 출렁이며 험지를 향해 경쾌하게 질주한다.
광신도들은 살아 남은 차량에 나눠 타고 영역을 철수하기 시작했다.
현장에 남은 건 차갑게 식어가는 시체 한 구와 그 시체 옆을 지키는 어린 소녀 하나다.
소녀는 죽어버린 소년을 물끄러미 쳐다볼 뿐 어떠한 감정도 드러내지 않았다.
그 공허한 얼굴은 소녀가 더 이상 쏟아낼 감정의 잔량이 없다는 걸 암시하는 듯했다.
잠시 망설였다.
“······.”
유혹에 잠깐 빠져들었다.
나는 살아남기를 원하는 멸망주의자다.
그러나 불필요한 사람까지 죽일 정도로 차가운 심장을 가지진 않았다.
저 디펜더마저도 자신의 행동에 위화감을 느끼는데 내가 이런 생각을 해서는 안 되겠지.
우두커니 서 있는 소녀가 문득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북쪽을 보고 있었다.
몬스터가 오고 있다.
소녀가 차량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광신도 중 어느 누구도 소녀를 챙겨주지 않았지만 그녀는 알아서 자신의 자리를 찾아 차에 올라탔다.
풀숲에 몸을 숨긴 채 차량이 떠나기를 기다렸다.
차량이 출발했다.
광신도의 믿음대로라면 그들의 차량이 향해야 할 곳은 도시 북쪽으로부터 몰려오는 몬스터 무리 쪽이어야 할 것이다.
차량은 동남쪽을 향했다.
몬스터를 마치 부처처럼 그들이 닮길 원하는 이상으로 떠들면서도 그들 또한 몬스터에게서 달아났다.
이율배반적인 행렬 속에 날 바라보는 시선이 있었다.
거리가 멀어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벌써부터 파리가 꼬이는 소년의 시체를 우두커니 바라보던 소녀가 뒷창에 몸을 기댄 채 이쪽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것이 내 양심이 만들어낸 환각인지 아니면 후회인지는 시간을 필요로 할 것이다.
*
차량이 우리 영역에 접근할 무렵 동녘에서는 이미 떠오른 해가 버려진, 그러나 여전히 푸르른 대지를 서늘하게 비추고 있었다.
“정말이지. 속이 다 시원하군.”
교신기에서 주로 떠드는 쪽은 천영재다.
“중국과 한국 시절을 통틀어 이렇게 일이 깔끔하게 처리된 적은 거의 없지. 그런데 항상 박 선배와 함께하면 뭐든 잘 처리가 되는 느낌이라니까. 난 말이야. 박 선배가 정호 남겨두겠다는 말을 듣는 순간, 아니, 이 양반. 내 동기를 버리고 간다는 건가? 이렇게 받아들였거든?”
쾌활한 성격과 다르게 그의 마음엔 그늘이 많다.
하태훈이 넌지시 말한 것처럼 그는 상처 입을 사건을 겪었고 남들 눈에 잘 보이지 않는 마음의 벽을 쌓았던 모양이다.
내겐 두 종의 교신기가 있다.
하나는 천영재, 하태훈과 교신할 때 쓰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디펜더가 미군 장비를 베이스로 개조한 우리 전용의 교신기다.
하나의 교신기가 떠드는 동안 조용한 교신기에 대고 말했다.
“김다람은 어떻게 됐냐?”
아무리 밉상이라고 해도 한때 내가 가장 신뢰했던 후배다.
고립됐던 날 가장 먼저 찾아온 녀석이기도 하고.
게다가 난 그 녀석이 결혼할 때 백만 원이나 축의금으로 넣었다.
당연히 궁금할 수밖에.
“김다람?”
김다람이라는 말을 듣자 디펜더는 코웃음을 쳤다.
일말의 존경도 안타까움도 느껴지지 않는 태도.
“그 여자는 말이야. 어디든지 악착같이 살아 있을 여자야. 진짜. 내가 그 여자 보면서 느꼈어. 세상이 망해도 저 여자는 어떻게든 꾸역꾸역 자기 남편이랑 뚱뚱한 자식 데리고 살아갈 거라고.”
“그건 좀 곤란한데.”
“뭐? 김다람 팀장이 죽기를 바라는 거냐?”
“그건 아니고.”
마지막은 내가 되야 한다.
멸망주의자도 아닌 김다람 따위가 억척스럽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최후의 인류라는 영광을 안는 건 불공평한 일이겠지.
“내가 그 여자보다 오래 살아야지.”
“그건 스켈톤다운 발언이군.”
앞서가는 버기차 상판 위에 부착한 시트에 앉은 디펜더가 날 보며 미소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여전히 서글서글한, 수려한 외모.
“너, 여자는 안 만났냐?”
그 물음에 답한 건 디펜더 동생이었다.
“만났지. 당연히. 어휴. 진짜. 나, 완전 개실망했다니까.”
“왜? 무슨 일이야?”
“하······. 난 진짜 우리 오빠, 아니 정호 햄이 천상 상남자라고 생각했거든? 막 매달리는 여자 뺨 때리면서 꺼져! 이년아! 이러는 남자 있잖아?”
“그거 완전 난데?”
“아니, 세상에 별 이쁘지도 않은 여자한테 홀려서 버팔로짓 하더라니까.”
“뭣?!”
“진짜 이건 직접 봐야 해. 나 코스믹 호러가 뭔지 그때 처음 이해 했다니까?”
신나게 떠드는 다정이의 말을 디펜더가 가로 막았다.
“입 닥쳐.”
디펜더 녀석, 궁지에 몰리면 초딩처럼 구는군.
아무튼 짧고 격렬했던 여정은 끝났다.
수많은 난제가 우리 앞에 놓였지만 지금은 생각하지 않겠다.
저기 휑한 벌판 너머로 아담하게 솟은 나의 영역이 보인다.
교신기 주파수를 공용으로 맞춰 모두에게 말했다.
“환영한다.”
차체를 나란히 하고 달리는 버기카에서 다정이와 디펜더가 손을 흔들었다.
그들의 시선에서 나는 강한 신뢰.
그래, 믿음을 느낀다.
광신도가 가지지 못한 순수한 형태의 믿음을.
“잘 부탁한다. 스켈톤.”
“드디어 우리 하나가 됐구나?!”
디펜더 남매가 합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