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a House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280)
아포칼립스에 집을 숨김-280화(280/466)
114. 낭인 (1)
gijayangban : 원주 참상 12.jpg
오랫동안 은거했던 기자 양반이 오랜만에 등장했다.
gijayangban : 원주 참상 13.jpg
gijayangban : 원주 참상 14.jpg
gijayangban : 원주 참상 15.jpg
…
…
그간의 공백을 메우려는지 기자 양반은 전성기를 방불케 할 정도로 왕성한 활동을 했다.
사진들을 보았다.
왜곡이나 거짓이 아니다.
조잡한 AI 이미지도 아니다.
우리가 있었던 원주라는 지옥에서 촬영한 것이다.
그 대목에서 나는 강한 의문을 품었다.
서울 북부, 이제 거의 침식되려는 영역에 남겨진 그녀가 무슨 수로 원주의 사진을 입수했을까?
정부가 제주로 모두 떠남에 따라 그녀가 본토에 가진 정보 자산은 전멸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가 직접 보았던 우민희의 집단은 강력한 소규모 집단에 불과하다.
자기 집단을 지킬 정도의 무력은 있겠지만 먼 곳에 방대한 정찰 자산을 뿌릴 정도는 아니다.
점점 증대되는 의문 속에서 사진 속에 찍힌 그림자를 우연히 보았다.
누가 보면 남자의 그림자로 착각할 수 있을 것이다.
다부지면서도 날렵한 몸과 훤칠한 큰 키만 놓고 보면 말이다.
하지만 이 그림자는 내가 아주 잘 아는 사람의 것이다.
“김다람······?”
설마, 아니겠지.
아무리 내 후배가 얼굴 두꺼운 인간이라고 해도 자기가 그토록 싫어하는 우민희 밑에 들어가진 않을 거다.
뭐, 우민희 본인은 김다람을 크게 의식하지 않는 분위기였지만.
그보다 우리에겐 신경 써야 할 일이 많다.
바로 영역의 보강이다.
“좋아. 이쪽으로. 좀 더.”
두 명이 더 늘어났을 뿐인데 내 영역은 활기를 더한다.
디펜더도 다정이도 평소의 음침한, 발렌타인 말마따나 싸~ 한 이미지를 억지로 벗고 집단에 어울리려 한다.
하태훈은 다정이가 처음이지만 천영재는 이미 아는 사이인 것으로 보였다.
“······아무도 기폭 버튼을 안 누르고 해서 네가 눌렀다고?”
“응. 딸깍하고 눌렀지. 잘했다고 생각해. 걔들이 평소 하는 짓 생각하면.”
“그래도 한 번에 삼 백이면. 대단하긴 하네.”
“히로시마에 원자탄 떨군 사람도 천수를 누리다 갔다는데.”
둘은 딱히 막힘없이 대화했다.
현재 내 영역에는 공사가 한창 중이다.
두 명이 더 늘어서 생활 설비를 갖춰야 한다.
특히 예전부터 보강하려고 마음 먹었던 하수 및 상수 설비를 디펜더의 지휘 아래 절찬리에 공사 중이다.
더 중요한 건 수비 쪽이다.
이쪽은 건설보다는 기계의 영역으로 하태훈과 다정이, 가끔 발렌타인도 합세해서 경계 및 감시 체계를 구축 중이다.
나도 이쪽에 힘을 싣고 있다.
어쩔 수 없다.
군단파가 군벌로 갈라진 이상 내 영역에 불똥이 튀리라는 건 불 보듯 뻔한 사실이니까.
그런 점에서 디펜더 남매는 좋은 정보원이다.
“학원 헌터? 아 있지. 좀 이상한 친구들이었지.”
디펜더는 꽤 오랫동안 김다람 밑에 있었다.
그래서 그는 그 집단의 생리에 대해 잘 안다.
“······학교 출신인 우리보다 더 서열을 세우고 더 명예를 추구하는 듯한? 그런 놈들이었어. 시대착오적이라고 해야 하나. 머리가 꽃밭으로 가득 찬 놈들이 한가득하였지.”
그래서 나를 노리나 보다.
대가리 꽃밭이 아닌 이상 괜히 집에서 잠자는 이 박규를 두들길 생각을 하진 않았을 테니 말이다.
그렇게 때리고 싶은 놈이 있으면 제주도에 헤엄이라도 쳐서 어웨이큰 때려잡는 게 그들이 추구하는 명예에 부합하는 행동이 아닐까?
“그 친구 중에 날 죽이겠다는 놈들, 좀 있지?”
“어. 있어.”
“여기에 얼마나 올까?”
대략적인 적의 숫자를 파악하는 건 중요한 일이다.
그런데 디펜더는 내가 상상한 것과는 전혀 다른 반응을 보였다.
“여기에? 왜?”
그가 반문했다.
이해가 안 가기는 매한가지인지라 가만히 보고 있자니 디펜더가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타깃이 바뀌었어.”
“타깃이? 누구로?”
“김다람 팀장.”
아주 잠깐 내 후배의 얼굴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볼 때마다 점점 안 좋은 의미로 변하는 내가 아끼던 후배의 모습이.
하지만 그 변화가 강한 설득력으로 다가온 것도 사실이다.
“······원주가 파괴되는 과정속에서 자기 파벌만 데리고 혼자 달아났지. 주로 학교 헌터야. 그것도 자기한테 충성하는 녀석들만. 나머지는 버렸지. 학원 헌터, 학교 헌터 안 가리고.”
좀 더 자세히 보충하자면 원주가 파괴되던 날, 한 무리의 어웨이큰이 헌터 본부로 향했다.
디펜더는 무전으로만 상황을 접해 자세한 상황을 알진 못했지만 헌터 사이의 무전을 통해 그 어웨이큰이 광신도 집단에서 무력담당을 맡은 호법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 호법들이 헌터들을 공격했다.
거기까지는 예상할 수 있는 범위다.
군단파도 바보는 아닌지라 호법의 존재를 알고 있었고 광신도의 기습에 대처하는 훈련과 매뉴얼 정도는 짜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실제 모습을 드러낸 호법은 너무나도 강했다.
“특히. 흰옷을 입은 어려 보이는 여자. 그 여자가 너무 강했다는 모양이야. 5레벨 따위는 진즉에 초월해 알파급에 근접할 정도로 강했다고.”
“······어려 보이는 여자?”
“어. 그렇다고들 하더라고. 왜?”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계속해.”
“그 어웨이큰을 본 순간 김다람은 사라졌어. 나 같은 일개 팀원도 아닌 군단파 헌터를 통솔해야 할 김다람이 가족을 데리고 튄 거지.”
그 이후부터는 통신 방해가 너무나 심해서 무슨 일이 일어난 지는 알 수 없다고 한다.
“한 가지 확실한 건 버려진 헌터가 모두 김다람에게 이를 갈고 있다는 거지. 그래도.”
디펜더가 삽으로 잘 갠 시멘트를 외발 수레에 한 움큼 퍼담고는 뒤로 스트레칭을 하며 덧붙였다.
“여전히 프로페서 이름에 목을 매는 놈은 있어. 그런 거지. 프로페서를 죽이면 자기의 비루하고 별 볼 일 없던 인생이 보장받을 거라고 생각하는 놈들이.”
학원 헌터에 대해 내가 아는 건 널리 알려진 단편적인 상식뿐이다.
학원 헌터는 필요에 의해 만들어졌는데 그들의 아버지는 그들이 증오해 마지 않는 학교 헌터다.
중국에 파견 나간 학교 헌터가 전해준 데이터를 보고 정부는 몬스터라는 위협의 심각성을 깨닫고 헌터의 대량 증원을 결심했다.
그것이 바로 양산형 헌터, 즉 학원 헌터다.
장기영 같은 엘리트 헌터 주의자는 극렬하게 반발했지만 사실 그의 발언권이라는 건 아무 의미도 없는 것이었다.
전국 도처에 학원이라 불리게 될 헌터 양성소가 들어섰고 헌터에 흥미를 가진 사람들이 앞다투어 입소했다.
학원 헌터의 성적은 시원찮았다.
갓 중학교를 졸업한 나이부터 죽음에 대한 무덤덤함을 세뇌처럼 교육받은 학교 헌터조차 실제 몬스터를 보면 전투 부적격자가 속출하는 마당에 제딴엔 나름 다이나믹했겠지만 결국 평범하게 살아 온 학원 헌터들은 몬스터 앞에서 겁 먹은 방관자에 불과했다.
일부 두각을 드러낸 사람도 있지만 중요한 건 비율이다.
학원 헌터 중 제대로 몬스터와 싸울 수 있는 전사의 비율은 10%에 미치지 못한다.
우리의 존내논이 학원 출신 헌터, 그것도 전투를 경험하지 않은 C등급 헌터라는 건 존내논을 연구하는 사람이라면 다 아는 상식이다.
물론 그가 C등급 헌터라고 해서 장래에 그가 보여준 위대함은 조금도 퇴색하지 않는다.
아무튼, 그 학원 헌터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도 못한 채 어웨이큰의 등장과 함께 그들이 질시하던 학교 헌터와 같이 시대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큰돈을 만지진 못했을 것이다.
좋은 대접을 받은 것도 아니었을 것이다.
중국 파견 말기에 이미 학교 헌터조차 2류급의 지원을 제공 받았는데 학원 헌터는 그보다 못한 대접을 받았다고 한다.
아마 중국군과 같은 숙소를 쓰거나 같이 행동한 게 아닐까.
그들에게 더욱 잔인한 건 국가가 인정한 헌터 자격을 받았음에도 현실에서는 제대로 된 헌터 취급을 받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학교 헌터는 어웨이큰의 시녀라는 굴욕만 감수한다면 어떻게든 유관부서에서 삶을 이어나갈 수 있었지만 학원 헌터는 그런 것도 없이 헌터로 활동한 시간이 무경력으로 처리됐다.
존내논처럼 인터넷상에서는 은근히 헌터라는 거 드러내며 으스댈 순 있겠지만 실제 헌터를 만나면 고개를 숙여야 하는 불합리한 신세를 감당해야 했던 것이다.
그들이 세상에 대해 가진 분노는 적어도 우리 학교 헌터보다 작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그 일부가 내게 맹렬한 적개심을 가진 것도 조금은 이해할 수 있다.
김필성 같은, 헛된 과거 속에 사는 사람은 의외로 많으니까.
그 남자가 내 영역에 찾아온 건 디펜더 남매가 내 영역에 정착한 지 일주일이 지난 시점이었다.
*
COOKIEMONSTER18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스켈톤. 나야. 레베카. 스우한테 이야기 들었어.
레베카에게 메시지가 왔다.
과거 그녀가 내게 들려주던 총성을 떠올리며 답장을 보냈다.
SKELTON : 그래. 무슨 일이야? 스우 말로는 거기 사정이 좋지 않다고 하던데.
COOKIEMONSTER18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우리나라의 지원이 끊겼어. 더 이상 우리한테 물자를 지원할 수 없대. 비행기를 보낸다는 메시지를 사령관이 받은 게 2달 전인데 아직도 안 왔고 연락도 없어.
SKELTON : 그쪽 사정은? 남은 물자, 식량이나 분위기 같은 거.
COOKIEMONSTER18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식량은 없어. 우리와 계약을 맺은 한국 쪽 업체가 망했어. 몬스터, 뮤테이션도 멀리서 보이고.
SKELTON : 가까운 곳에 균열이 있나?
COOKIEMONSTER18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몰라. 양산? 거기서 왔다는 말은 들었어.
내가 알기로 레베카가 있는 미군기지는 대구 쪽에 자리 잡은 것으로 안다.
상당한 거리가 있는 양산에서 올라온 몬스터가 대구까지 올라왔다는 건 양산으로부터 대구까지 향하는 경로 상 상당 부분이 침식된 것을 의미하리라.
몬스터의 소멸은 침식 지대에서는 진행되지 않으니까.
SKELTON : 그래?
“······.”
레베카 모녀의 상황은 내가 상상하는 이상으로 심각해 보인다.
스우가 괜히 내게 S.O.S를 친 게 아니라는 거다.
그건 그렇고 레베카는 언제나 한결같다.
COOKIEMONSTER18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하지만 스켈톤! 걱정 마! 곧 미국에서 비행기가 올 거야. 여기 비행장. 여전히 비행기가 뜨고 내릴 수 있어. 비행기만 오면 우리는 안전하게 미국으로 갈 수 있어!
여전히 그녀는 지나칠 정도로 긍정적이다.
비행기는 오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레베카는 철썩 같이 그 말을 믿겠지.
똑똑하고 멍청하고의 문제가 아니다.
사람은 객관적인 진실보다 믿고 싶은 것을 믿으려 한다.
여전히 그녀는 그녀가 나고 자란, 거대한 산맥과 대자연의 삼림을 그리워 한다.
SKELTON : 일단 알겠다. 상황이 더 어려워지면 언제든 연락해라. 아, 그리고 혹시 모르니 기지가 진짜 어려워질 경우에 대비하고. 내 영역에 빈 자리가 있다. 전과 달리 사람으로 북적거리지만 오히려 예전보다는 사람 사는 맛도 날 거야. 거기다 여자도 있어. 남탕이 아니라는 이야기지.
이 정도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겠지.
아무리 내가 활동 반경이 넓다고 하지만 대구까지는 너무나 먼 거리다.
기껏해야 수도권 일대와 넓게 잡으면 충청도까지가 현실적인 내 활동 영역이다.
그 이상은 무리다.
제주도행처럼 비행기가 있다면 모를까.
그러므로 레베카가 여기로 오겠다고 마음 먹는다면 그녀도 나름의 준비를 해야 한다.
최소한 중간 지점에서는 만나는 성의를 보여야 한다는 이야기다.
COOKIEMONSTER18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스우 공듀) 스켈톤!
COOKIEMONSTER18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대답.
스우가 따로 메시지를 보내왔다.
SKELTON : 스우냐?
COOKIEMONSTER18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울 엄마는 아직도 수송기가 온다고 철썩 같이 믿고 있어.
SKELTON : 그러냐······.
COOKIEMONSTER18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내가 준비할 수 있는 게 있으면 준비해볼게.
SKELTON : 그래?
COOKIEMONSTER18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응. 여간한 건 다 할 수 있어. 1,500야드 떨어진 뮤테이션을 저격총으로 쓰러뜨리니 다들 나를 인정해주더라고.
COOKIEMONSTER18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그러니 준비물만 불러줘.
COOKIEMONSTER18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나 아직 하고 싶은 게 많아.
결국 믿을 건 스우인 모양이다.
뭐랄까, 감회 같은 것이 느껴진다.
그날 밤, 내 영역에 홀로 찾아왔던 그 아이가 이렇게 믿음직스럽게 자랐다니.
무려 3년이 지나고 이제 4년을 나아간다.
아이가 어른이 되기엔 충분할 시간일지도.
특히 하루하루의 삶을 보장할 수 없는 이 멸망기 속에서는 차고 넘치는 시간일지도 모른다.
스우에게 필요한 것들을 정리하고 있을 때 천영재가 교신기로 날 호출했다.
“누군가 오고 있어.”
궂은 비가 쏟아지는 날이었다.
판초우의를 입고 외벽에 서서 천영재가 발견했다는 사람을 보았다.
판초우의를 걸치고 총기를 든 남자였다.
숫자는 단 하나.
발걸음에 힘이 없었지만 비틀거리진 않았다.
그가 지나가는 사람이 아니며 또 내 영역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는 건 어렵지 않게 알아볼 수 있었다.
내 영역 주변의 널린 수많은 선택지 중에서 언덕으로 향하는 완만한 능선을 따라 언덕을 오르고 있다.
내 영역에 한 번 이상은 와봤다는 소리다.
하태훈이 K-워키토키 공용 주파수로 교신을 시도했지만 그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단지 총을 멘 채 한 걸음, 한 걸음, 내 영역으로 통하는 경사를 오를 뿐이었다.
디펜더, 천영재를 각기 다른 장소에 위치시키고 외벽 뒤 엄폐물에 몸을 숨긴 채 사내가 사선에 모습을 드러내길 기다렸다.
곧 그가 우리 영역과 같은 고도에 올라섰다.
“오. 이게 뭐야?”
그가 큰 소리로 말했다.
“언제 만든 거야!”
뒤이어 큰 웃음이 터져 나왔다.
“내가 뭐라고 했어! 살아 있다고! 프로페서는 살아 있다고!”
그가 총을 집어 던졌다.
“거기에 있지?”
그 사내가 판초우의에 부착된 두건을 벗으며 얼굴을 드러냈다.
봉두난발, 피투성이, 거지꼴.
그 사내를 수식하는 단어는 얼마든지 있겠지만 그 수식어들은 하나의 방향을 또렷이 가리키고 있었다.
“프로페서!”
그가 나의 콜사인을 불렀다.
“어떻게 할까?”
천영재가 지시를 재촉한다.
잠시 생각을 하다 하태훈에게 물었다.
“주변에 동료는 없지?”
“어. 한 명이야.”
그렇다면, 죽이는 게 옳겠지.
그때 디펜더의 목소리가 교신기를 통해 울려 퍼졌다.
“어. 저 사람?”
“아는 사람이냐?”
“로이어야.”
“로이어?”
“콜사인 로이어. 헌터야.”
디펜더가 얕은 한숨을 내쉬며 빗물이 실시간으로 핏국물과 검정을 씻겨내리고 있는 얼굴을 보았다.
“학원 헌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