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a House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282)
아포칼립스에 집을 숨김-282화(282/466)
115. 행복 (1)
치지직—
무선 전파가 먼 곳에 있는 동료의 목소리를 실어 날랐다.
“그래. 살아 있어. 이 정도로 죽을 일은 없지. 아, 물론 어머니도 잘 계시지.”
15기 방재혁은 약간 빠른 말투로 자신의 건재를 알렸다.
“여기? 인천이야. 어머니를 모시고 먼 곳을 갈 수 없으니. 뭐? 여기 어떠냐고? 그냥 사는 거지. 갈 곳이 있는 곳도 아니고. 뭐? 프로페서의 방공호? 아니, 그 주변에 정착촌을 만들고 있다고? 몇 명이나 있는데? 장비는? 주변에 군벌이나 약탈지 캠프 같은 건 있어?”
짧은 대화 속에서 방재혁이 빠른 말씨와 다르게 상당히 신중한 성격의 소유자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가 생각하는 조건을 모두 만족시켰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방재혁은 내 영역에 합류할 의사를 내비쳤다.
“당연히, 어머니와 함께지. 게다가 짐도 좀 있어. 버려도 되긴 하는데 버리기엔 좀 아까운 물건이라고 할까. 거기 규모가 좀 되니 그럭저럭 쓸만하지 않을까?”
방재혁은 차량을 요구했다.
그 대목에서 나는 천영재에게 다시 한번 방재혁 개인에 관한 이야기를 물었다.
“방재혁의 어머니? 괜찮은 분이셔. 점잖으시지.”
“요리를 잘하시는 분이다.”
하태훈이 옆에서 거들었다.
“없는 재료로 맛있는 것들을 연성해주시는 분이야.”
요리라.
괜찮은 능력이다.
요리라는 건 단지 미각의 만족만이 아니라 식재료의 폭을 늘려주는 효과도 있다.
당장 내 영역 주변에 천지로 널린 잡풀 중에서 나는 어느 것이 먹을 수 있는 풀인지 아닌 것인지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
과거 게시판에 식용 잡초 특징 연재도 있긴 했는데 한 번 따라서 잡초 캤다가 배탈 난 기억이 있어 두 번 다시 잡초를 먹는 일은 없었다.
“좋아. 방재혁 어머님도 함께 모시고 오라고 해.”
솔직하게 내 마음의 화살표는 반대를 가리키고 있다.
아무리 포장해도 나이가 많고 전투를 할 수 없는 인원은 짐이 될 뿐이니.
하지만 방재혁은 괜찮은 사수고 인천 출신 헌터들과도 친하다.
사람을 받아들이더라도 기존 멤버와 충돌을 일으키지 않는 사람을 받아들이는 쪽이 좋다.
슬슬 불침번을 세울 정도의 전투원이 있었으면 하는 게 내 소망이기도 하고.
게다가 디펜더가 내게 뭔가를 보여주고 싶은 모양이다.
“같이 나가야 돼. 이건.”
디펜더는 살인으로 게시판에 이름을 떨쳤지만 실제로 내가 옆에서 지켜본 바에 의하면 그는 살인만큼이나 스케빈징이라 불리는 폐허 수집에 재능이 있다.
다정이 말에 의하면 쓰레기통 속에서 100달러 지폐를 찾는 능력이 있다고.
나와 디펜더가 수집 활동을 하러 외부로 자주 나간다면, 우리의 공백만큼 영역을 지켜다 줄 수비수가 있어야 한다.
그 사람이 필요한 시기에 방재혁과 연락이 됐다.
망설일 필요가 없다.
방재혁과 그 모친을 데리고 오기만 하면 되는 일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여행 준비를 하려 할 때였다.
“영재.”
방재혁이 말했다.
“어. 뭐야? 방선배. 또 무릎이 쑤셔?”
“나, 문희 봤다.”
문희?
여자 이름인가.
별 생각 없이 대화를 듣던 중 나는 천영재의 얼굴에 일어난 변화를 목격했다.
“문희?”
아주 잠깐이지만 저 쾌활한 가면을 쓴, 속을 알기 어려운 사내의 얼굴에 선명한 변화가 나타났다.
순수한 놀라움, 기쁨, 그리고 아쉬움이다.
세 가지 감정은 찰나의 간격을 두고 차례대로 천영재의 얼굴 위에 떠올랐다.
“계양 쪽에서 있더라고. 거기서 장마당 섰을 때 어머니랑 간 적이 있는데 걔가 지나가는 걸 봤지. 잘못 보진 않았을 거야. 발목 문신, 걔랑 똑같더라고.”
여기에 대해 천영재는 별다른 답을 하지 않았다.
교신이 끝난 후 천영재를 향해 물었다.
“따라갈 거지?”
잠깐 망설이던 그는 날 똑바로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
뮤테이션의 위험도는 몬스터에 비해 작게 포장되는 경향이 있다.
실제로 몬스터가 끼치는 해악에 비하면 뮤테이션의 해악은 장난 수준이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규모에서의 이야기다.
한 마리의 몬스터와 한 마리의 뮤테이션이 있다고 가정할 때 직접적으로 인간의 생존에 위협을 가하는 쪽은 뮤테이션이다.
이 세계에 속한 존재도 아니고 또 생물과 무생물의 경계에 있는 몬스터는 땅을 점유할 뿐, 먹을 걸 구하지도 바라지도 않는다.
하지만 뮤테이션과 인간은 먹이 활동을 필요로 한다.
대부분의 뮤테이션은 인간을 먹이로 인식하고 적극적으로 인간을 대상으로 한 먹이 활동을 벌인다.
인간도 총기가 있고 집단의 힘을 빌리면 역으로 뮤테이션을 사냥해 포식할 수 있겠지만 그럴 여건이 조성되지 않은 환경에서 인간은 뮤테이션의 손 쉬운 사냥감에 불과하다.
뮤테이션의 가장 무서운 점은 크고 강한 육체만이 아니다.
인간의 턱밑까지 추격한 지능이 놈들의 가장 큰 무기다.
지능은 경험을 수반한다.
수많은 살인의 경험을 쌓은 뮤테이션은 경험 많은 병사만큼이나 치명적이다.
“왜 저 녀석이 선배를 따라온 걸까?”
내 영역에 모습을 드러낸 “블랙”도 그런 놈 중 하나다.
과거 나와 교감을 쌓았던 “골드”처럼 놈도 거의 인간과 다를 바 없는 지능을 가졌다.
그렇기에 놈은 최대한 빠르게 제거돼야 한다.
문제는 녀석이 상당히 까다로운 뮤테이션이라는 것이다.
“저 새끼 삼신수(三神獸) 급이야.”
과거 서울 권역엔 네임드 뮤테이션이 있었다.
우리가 만난 계기였던 레드라든지, 살인 부엉이 부부라든지 그러한 것들.
혹독한 한파 속에서 대부분 얼어 죽었지만 놈들은 인천 정부가 대대적인 포상금을 걸 정도로 정부 단위의 골칫덩어리였다.
“칠흉물, 다섯 불가사의, 삼신수, 그리고 일존이 있었지.”
“일존은 뭐지?”
“그것조차 오리무중이야. 외곽 전초기지에 뭔 못 보던 짐승이 나타났다는 무전을 끝으로 전초기지 몇 개가 통째로 날아갔거든. 허접한 곳도 아니고 완전 무장한 병력 1개 소대가 지키는 곳이 한순간에 무너졌으니.”
운전을 맡은 건 하태훈이다.
이번 여정엔 인천 출신 헌터들만은 동반했다.
그들이 일대를 가장 잘 알고 또 어떤 의미로는 그들의 문제니까.
“잠깐만.”
하태훈이 차를 세우더니 갑자기 전속력으로 뒤로 후진했다.
매복이 있다.
아직 제대로 부패하지 않은 시체가 도로 위에 깔렸고 그 진물이 흘러나오는 시체 너머로 미세하게 스파이크를 박은 철판이 보인다.
타이어를 찢어버리는 계열의 함정이다.
우리가 전속력으로 후진하자 숲속에서 번쩍거리는 빛이 일더니 곧 총성이 울려 퍼졌다.
탕! 탕! 탕!
총성이 들리기도 전에 몸을 숙였다.
경유 트럭으로 치면 엔진부가 있던 부분에 강판을 덧붙였다.
어지간한 총기로는 관통되지 않는다.
다만 전면 유리창 쪽은 외곽에 장갑판을 덧댄 것 말고는 보호수단이 없다.
재수 없으면 눈먼 총알을 맞고 죽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여기도 장갑판을 깔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은 이유는 방어력보다 정찰력을 더 중시했기 때문이다.
창이 탁 트여야 미리 먼저 보고 대응할 여지가 생기니.
“개새끼들!”
천영재가 급정거와 급제동을 반복하는 짐칸에서도 본체에 거머리처럼 달라붙어 응사를 해댄다.
탕! 타타타탕!
팅!
탄환 하나가 하부 본체에 박혔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전기차의 장점이라고 할까.
안전지역까지 빠져 나온 후 잠시 휴대폰을 켜서 저장된 지도를 확인해 다른 경로를 탐색했다.
새 경로를 탐지하는 동안 아까 한 이야기를 마저 했다.
“그 일존이라는 놈. 어웨이큰이 아닌가 하는 소문도 있었지.”
“뮤테이션이 어웨이큰?”
“황당무계한 이야기지만 짐승 한 마리가 정규 군인이 지키는 방어거점을 연거푸 쓸어버린다는 게 그것말고는 설명되지 않거든?”
“으음. 글쎄. 그건 내가 본 사례 중에 없는데. 아무튼, 삼신수는?”
“고양이, 아니, 표범 한 마리가 포함되어 있었어. 아마 개인이 무단으로 사육한 것인지 목줄을 달고 다닌 흔적이 있는데 진짜 가죽을 뒤집어쓴 인간 같은 놈이었지.”
별거 아닌 대화지만 나는 이 짧은 대화 속에서 천영재와 하태훈이 얼마나 전투에 단련됐는지 다시 한번 깨달았다.
조금만 수틀렸으면 죽었을 수도 있는 상황을 겪고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태연하게 대화하는 무던함에서 말이다.
“이번에 나타난 검은 놈도 비슷한 과야. 아마 사람이 적은 곳에서 살아서 소문이 덜 난 모양인데. 교활한 것만 놓고 보면 그 표범보다 두 수는 위인 거 같아.”
하태훈의 말대로 내 영역에 나타난 검은 놈은 보통내기가 아니다.
고양이과 특유의 뛰어난 감각으로 우리의 위치를 파악하고 또 그 위치를 염두에 둔 채 자신의 위치를 정한다.
녀석은 놈과 우리 사이에 장애물이 없을 경우 최소한 1km 이상 떨어진 곳에서야 모습을 드러낸다.
그 이하 거리에서 모습을 드러낼 일이 있다면 장애물과 장애물 사이를 아주 빠르게 이동하는데 그 이동 중에 녀석이 엇박자로 시간차를 두는 대목에서 나는 이 괴물이 상상 이상으로 많은 대인 전투 경험을 쌓았을 것이라 확신했다.
놈은 총기를 피하지만 총기를 가진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총기가 무서운 무기인 건 맞지만 그것이 만능이 아니라는 걸 머리로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낭인과 같은 사내를 무자비하게 죽이는 대목에서 알 수 있듯이 그 뮤테이션은 공존할 수 없는 놈이다.
반드시 죽여야 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냥 놔둔 건 확실하게 처리하기 위해서다.
섣부른 총질은 최악의 수다.
저런 교활한 짐승은 두 번의 기회를 용납하지 않으며 또 집요하게 복수의 기회를 노린다.
짐승은 인간처럼 용서나 화해라는 보편적 가치를 알지 못하기에 그 원한의 해결법은 하나의 죽음 외엔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생각한 블랙의 처리 법은 오로지 장거리 저격이다.
그러니까 녀석이 안전하다고 여기는 거리, 1km 밖에서 단 한 발의 총알을 급소에 맞춰야 한다.
방재혁이 얼마나 해줄지 관건이지만 평판은 대체로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걔 살아 있었네.”
침묵 속에서 하태훈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덜컹!
차가 격하게 흔들렸다.
끊어진 도로와 도로 사이를 가기 위해 포장되지 않은 길로 들어섰기 때문이다.
차체가 안정된 후 하태훈을 응시했다.
베이스캡을 쓴 그는 노곤한 눈으로 전방을 주시하며 계속해서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영재 여친 말이야.”
“갈라진 모양이지?”
“어.”
“누가 찬 거야? 여자가 찼겠지?”
“잘 아네.”
“왜 차인 거지?”
“영재 저 새끼. 똑 부러지고 제 밥그릇 알아서 챙기는 놈이긴 한데 어째 여자 앞에서는 어린애마냥 어리광을 부리더라고. 밖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여자한테 칭얼거리는 거로 해결한 거지.”
“호오.”
몰랐다.
내 편이긴 하지만 여전히 의뭉스러운 점이 남은 저 친구에게 그런 일면이 있다는 걸.
하긴 사람한테 하나의 모습만 있다면 그 사람의 삶이란 아마도 썩 재밌는 모습은 아니지 않을까?
재밌다기보다는 삶 자체가 의무의 연속처럼 느껴질지도 모른다.
“어떤 여자야?”
내 물음에 하태훈은 1초도 망설이지 않고 즉답했다.
“정호 동생과는 딴판이야.”
다정이는 귀여운 외모에도 불구하고 별 인기가 없다.
나한테야 살갑게 대하지만 다른 사람한테는 늘 거리를 세우려 들고 또, 지금까지 살아온 사람들에게만 보이는 – 발렌타인의 입을 빌리자면 – 싸한 기운을 휘감고 있기 때문이다.
어제 내 영역을 찾아온 낭인을 죽인 것도 어쩌면 검은 놈이 아니라 다정이일지도 모른다는 추측이 제기되기도 했다.
적어도 그 사내를 쫓아갔던 드론에 벽돌이 하나 매달려 있었고 그 드론이 돌아올 때 벽돌이 사라진 건 틀림없는 사실이다.
“환한 여자였어.”
천영재의 전 연인은 정말로 밝은 여자였던 모양이다.
저 냉담한 하태훈이 단지 연상하는 것만으로 희미한 미소를 머금는 걸 보면 말이다.
“언제나 주위를 환하게 밝히는 그런 여자였지.”
멀리 초록의 정글 너머로 황토색이 드문드문 드러난 정착지가 보인다.
오늘의 목적지 73 피난소의 캠프다.
“이야! 빙글 돌아갔는데도 벌써 도착했네!”
천영재의 기분이 유난히 좋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