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a House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283)
아포칼립스에 집을 숨김-283화(283/466)
115. 행복 (2)
피난소 체제는 처음부터 정부가 인간이라는 자원, 특히 새로 출현하는 어웨이큰을 보다 빠르게 선별하고 차출하기 위한 착취의 도구의 일환으로 기획됐다.
한국인 특유의 단합성, 정부 말에 순종하고 잘 따르는 충직한 국민성을 악용한 그 수법은 제주에 충분한 어린 어웨이큰을 모을 정도로 성공적이었다.
그 피난소 체제는 인천 정부가 책임을 유기하고 달아나면서 완벽하게 붕괴했다.
김병철 체제 하의 군인집단은 처음엔 피난소의 자치를 중시하는 척했지만 실제로는 피난소 체제를 대단히 견제했고 실제로 피난소 체제를 해체하기 위해 갖가지 수작을 부렸다.
하지만 반복된 학습으로 더 이상, 상층부가 자기의 삶을 책임져주지 않는다는 걸 깨달은 피난소 주민들은 김병철을 꺼렸고 실제로 서울에 온 다수의 피난민들이 다시 피난소 체제로 돌아와 그들이 지도자로 선출한 피난소장을 중심으로 인천이나 서울 근교로 흩어졌다.
제73 피난소도 그런 곳 중 하나다.
그런데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피난소 체제에 변화가 생긴 모양이다.
“음? 저건?”
운전대를 잡은 하태훈이 피난소 캠프 앞에 펄럭이는 깃발을 보았다.
하나는 73이라는 프린팅 된 숫자가 적힌 낡은 깃발이다.
디자인과 재질을 보면 정부가 건재하던 시절에 만든 것으로 보인다.
그 73 깃발 옆에는 어딘가 조잡한, 손으로 그린 우스꽝스러운 펭귄이 그려진 깃발이 함께 휘날리고 있다.
“박펭귄네 깃발 아냐?”
목책을 두른 피난 캠프 곳곳에 우뚝 선 감시탑 위의 병사들이 우리를 노려본다.
하태훈이 무전기에 대고 말했다.
“아까 그쪽에 방문을 요청한 차량이다. 차량 넘버 확인 바란다.”
잠시 후 아마 대형 공장에서 떼왔을 육중한 철문이 열렸다.
문이 채 열리기도 전에 천영재가 먼저 뛰어내려 열린 문틈을 향해 뛰어갔다.
그 모습을 보며 하태훈이 말했다.
“확실히 평소와는 다르군.”
“그래.”
확실히 다르다.
평소의 천영재였다면 하태훈이 눈치채기도 전에 매복을 알아채고 그 사실을 알렸을 것이다.
감지 능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을 정도로 천영재는 지금 심적으로 흐트러져 있다.
그 정도로 중요한 사안이겠지.
천영재가 총기를 들고 접근한 사내들과 이야기 하는 동안 우리는 천천히 캠프 안으로 진입했다.
지정한 곳에 차량을 주차하자 천영재가 다시 우리 쪽으로 걸어왔다.
“여기, 박펭귄 아래에 들어간 모양인데?”
천영재의 말에 따르면 갈수록 악화일로를 겪는 현실 속에서 피난소 간에도 흡수와 합병 같은 이합집산이 일어나기 시작한 모양이다.
4개의 강력한 피난소가 그 중심에 있는데 제73 피난소가 택한 건 박펭귄이라 알려진 리더를 둔 제13 피난소였다.
이미 박펭귄은 5개의 피난소를 더 자신의 파벌로 끌어들였다고.
최소 2만 명 이상이 지금 박펭귄의 이름 아래 있다.
“······어쩌면 우리는 한 나라의 건국기를 보고 있는 걸지도.”
하태훈의 말에 어느 정도는 동의한다.
왜 반만 동의하냐면 비관적인 멸망주의자 중에서도 특히 비관적인 나는 이들이 왕국을 이루기도 전에 거의 다 죽을 것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전쟁, 뮤테이션, 자연재해. 갖가지 재앙이 우리를 덮쳤지만 아직 본격적인 재앙은 시작되지도 않았다.
바로 몬스터. 인류의 천적이다.
방재혁의 텐트는 천막과 나무, 기타 잡다한 플라스틱으로 이루어진 정착촌 한 가운데에 있었다.
연로한 여성이 천막 앞에서 뭔가를 깎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어떤 풀의 줄기로 보인다.
아마 고구마 줄기가 아닐까.
하태훈과 천영재가 그녀에게 인사했다.
“인사해. 박규. 재혁이 어머니셔.”
방재혁의 모친은 선하다기보다는 고집이 느껴지는 무뚝뚝한 인상이었지만 사람을 재단하려는 듯한 이른바 “스캔”도 없었고 입에 발린 호들갑도 없었다.
“잘 부탁드립니다.”
조용하고 심지가 굳은 사람처럼 보인다.
인사를 나눈지 얼마 지나지 않아 방재혁이 텐트 안에서 나왔다.
왼쪽 무릎에 강철과 플라스틱으로 만든 보행 보조기를 장착한 채 살짝 절뚝거리는 걸음으로 나온 그는 날 보자 목례를 했다.
자리를 떠나 간단하게 인사를 나누었다.
“여기 생활은 나쁘지 않아. 그래도 동료들이 있는 곳이 마음이 편하겠지. 솔직하게 하루가 다르게 나빠지는 게 요즘 세상이니.”
군단파의 몰락은 즉각적인 악영향을 수도권 일대에 흩뿌렸다.
무장 탈영병, 소규모 탈주자는 물론이고 중대 단위로 부대를 이탈한 탈영병 집단이 닥치는 대로 피난민 캠프를 약탈했고 피난민 캠프 자체를 지배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피난민도 더 이상 만만치 않기에 어설픈 탈영병 집단은 역으로 붙잡아 교수대에 매달았지만 일부 피난민 캠프가 포악한 병사들의 손에 떨어지기도 했다는 모양이다.
탈영병만큼이나 광신도도 점점 기승을 부려서 곳곳에서 그들의 오염된 사상을 사람들에게 은밀하게 전파하고 있다고.
“아무튼 박규 선배와 함께 하게 돼서 다행이군. 나 같은 절름발이는 안 받을까 싶어서 노심초사했거든?”
“와서 고양이 한 마리 잡아줘야겠다.”
“고양이?”
“어. 아주 교활한 놈이야.”
“어떤 타입인지 알 것 같네.”
당일치기로 떠날 생각인지라 이야기는 최소한으로 끝내고 피난소에서 공동으로 사용하는 리어카를 빌려 방재혁의 짐을 트럭에 실었다.
“음.”
딱히 남의 짐에 토를 달 생각은 없지만 방재혁의 짐엔 이상할 정도로 신발이 많았다.
그것도 알록달록한 운동화가 말이다.
방재혁이 내 시선을 눈치채고 실실 웃으며 다가왔다.
“나이사 에어 쿠킹이야. 전쟁 나기 직전 마지막 해외 통관으로 들여온 거지.”
“그래?”
“이건 조르단13 갓게임 레트로 2019. 요건 살로만 xt18.”
“?”
나는 신발에 별 관심이 없지만 소중하게 관리된 신발을 보는 방재혁의 눈빛과 표정을 보면 그가 얼마나 자신의 신발을 소중히 하는지 쉽게 알 수 있었다.
그런데 그게 뭐 어쨌단 말인가.
“알겠으니까 운동화 자랑 그만하고 집어 넣어.”
“마음에 드는 거 있으면 말해. 특별히 선물로 주지.”
“그래? 그럼 나중에 둘러보자고.”
사실 지금 운동화가 문제가 아니다.
신발 따위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중요한 문제가 이미 우리가 여기 도착하기 전부터 해결을 기다리고 있다.
“천영재, 여자친구 봤다는 모양인데.”
바로 이거다.
“아, 깜빡했네.”
방재혁의 회피하는 듯한 시선 속에서 나는 이 친구가 그 주제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을 거라는 강한 예감을 받았다.
“중요한 거 아니야?”
“중요하긴 한데······.”
방재혁이 쓴웃음을 머금으며 운동화 박스 두어 개를 리어카에 실었다.
“그게 일이 얄궂게 됐어.”
방재혁이 저 뒤에서 발랄하게 짐을 옮기는 천영재를 힐끗 보고는 내게 속삭였다.
“그 여자, 약쟁이들과 어울렸어.”
“······.”
“자기는 그런 거 절대 안 한다고 하는데 어쩌겠어. 당장 자기가 사는 곳이 중독자들이 우글거리는 곳인데.”
툭-
나이사로 시작되는 장문의 이름을 가진 운동화 박스가 균형을 잃고 어수룩하게 쌓인 짐 더미로 굴러떨어졌다.
“그리고 이건 우리끼리 하는 이야긴데 아무리 좋게 포장해도 좋게 헤어진 건 아니거든.”
“그런 취지의 이야기를 듣긴 했다. 어떻게 갈라진 거지?”
“여자가 환멸을 느꼈어.”
“그래?”
“그 여자가 볼 때 영재가 남자답고 성격도 시원시원해서 매력을 느끼고 사귀었는데 막상 사귀고 보니 지나치게 자신에게 의존적이고 칭얼거리는 거야. 자기가 엄마도 아닌데 말이야. 그래서 정나미가 떨어졌나봐.”
방재혁이 한숨을 내쉬며 리어카를 끌었다.
끼익-
리어카 바퀴가 낡아빠진 마찰음을 내며 굴러가는 가운데 방재혁의 목소리가 섞여서 들려왔다.
“솔직하게 걔라도 안 팔면 데리러 오지 않을 거 같아서 이야기를 꺼낸 거야.”
“······.”
“만나서 좋을 건 단 하나도 없어. 게다가.”
잠시 굴러가던 바퀴가 멈췄다.
방재혁은 북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현실적으로도 만나기 어려워.”
“왜?”
“갑자기 북쪽 일대가 침식되고 몬스터가 나타났어. 들리는 말로는 뭔 거인 같은 게 나타나 퍽하고 엎어지더니 거기가 그대로 침식됐다고 하는데 그건 듣도 보도 못한 현상이고 아무튼 느닷없이 광범위한 지역이 침식되고 몬스터가 나타났어.”
“종류는?”
“소형종일 거야.”
“스파이더? 아니면.”
“네크로맨서 타입.”
“하수인은?”
“매우 많음.”
“그건 문제가 되겠네.”
“더 큰 문제는 갑자기 침식된 영역 속에 마약 중독자들이 사는 마을이 포함되어 있다는 거지.”
“그 여자가 거기에 산다는 건가?”
방재혁이 진한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
한마디로 정리하면 지랄 맞은 결과다.
구하러 가는 것도 지랄 맞고, 구한다고 해서 좋은 결과가 예상되지 않는다.
나는 마약을 몬스터만큼이나 위험한 것으로 분류한다.
몬스터가 인간의 영역 그 자체를 파괴한다면 마약은 인간의 영혼 그 자체를 파괴한다.
견딜 수 없는 고통이나 수술을 위해 의사의 감독 하에 필요량을 투여하는 건 마약이 본래 가진 순기능이지만 중독자들에겐 의사의 정량 같은 건 아무래도 좋은 것이다.
그들은 기분이 좋아질 만큼, 그리고 과다 복용으로 죽지 않을 만큼 약을 투약한다.
뭐, 자신만 파괴한다면 선의의 마약 중독자라고 주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대부분의 중독자는 자신은 물론이고 소중한 사람마저 파멸에 끌어들인다.
파멸의 형태는 제각각이겠지만 그 어느 사례도 예정된 비극이라는 큰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방재혁이 걱정하는 건 아마도 크게 변해버렸을, 천영재의 옛 연인의 현재일 것이다.
“내가 봤을 땐 멀쩡했어. 확실히 멀쩡하긴 했어. 삐쩍 마르지도 않았고 볼이 쑥 들어간 것도 아니니. 그런데 뭐라고 해야 하나. 멀리서 봐서 그런가. 완전히 멀쩡하진 않았던 거 같아. 뭐라고 설명해야 할 지 모르겠는데 그런 게 좀 있어.”
내가 아는 사람이 전혀 다른 사람이 돼 있다는 건 긍정적으로나 부정적으로나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법이니.
물론 그 문희라는 여자가 마약을 하지 않았을 가능성 또한 충분히 존재한다.
인간의 의지라는 건 종종 우리의 단견을 가볍게 뛰어넘을 정도의 고결함을 보여주니까.
“무슨 이야기 중이야?”
천영재가 다가온다.
표정이 좋지 않다.
아마 대화의 중간 부분부터 우리의 대화를 엿들었던 모양이다.
전부는 아니더라도 일부는 들은 게 확실하다.
방재혁은 잠시 머뭇거리며 내 얼굴을 살폈다.
잠시 생각한 후 방재혁에게 말했다.
“사실대로 이야기해.”
방재혁이 머뭇거린다.
머뭇거릴 문제가 아니다.
이건 동료라는 관계에 있어 가장 기본적인, 신뢰의 문제다.
확실하게 말했다.
“천영재가 들어야 하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피난소에 온 이래 웃음기가 떠나지 않던 천영재의 얼굴이 빠르게 메말라 가는 게 보인다.
좋은 이야기는 아니다.
오히려 심리에 나쁜 영향을 미칠 수도 있는 이야기다.
어쩌면 이 일을 계기로 우리를 떠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조차도 신뢰가 박살나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한다.
“무슨 일이야?”
평소와 다르게 착잡하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천영재가 물었다.
방재혁은 난감해하는 눈치다.
실제로 무거운 주제고 우울한 이야기니까.
그 방재혁 옆에 섰다.
한마디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렇게 함으로써 방재혁에게 힘을 실어 주고 싶었다.
내 뜻이 전해졌는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방재혁은 왼쪽 무릎에 부착한 보행보조기의 나사를 풀었다 조였다 하며 나에게 했던 이야기를 조금 더 길고 상세한 버젼으로 재구술했다.
“······문희는 산성 위에 있어. 윤성재랑 같이.”
그 달라진 버젼에서 추가된 가장 큰 차이점은 천영재의 옛 연인의 남자가 내가 들은 것보다 크고 중요한 비중으로 다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윤성재랑 아직 안 헤어진 거지?”
당장이라도 터질 것 같은 감정을 추스르며 천영재가 억누른 어조로 물었다.
“아마도. 계속 같이 다녔어. 내가 마지막 장터에서 본 날도 같이 다녔지.”
천영재가 양팔을 축 늘어뜨렸다.
그는 서 있을 기력도 없는지 리어카에 등을 기댄 채 쪼그리고 앉았다.
방재혁이 담배 한 대를 권하자 그는 저항 없이 입을 내밀어 담배를 물었다.
전쟁 전의, 필터 달린 담배가 아닌 조잡한 연초를 종이에 싼 담배는 탁한 냄새와 매캐한 연기를 하늘 높이 피워 올렸다.
방재혁이 내게 눈치를 줬다.
내버려 두자는 뜻이다.
천영재와 어느 정도 거리를 벌린 후 방재혁이 말했다.
“참. 난 모르겠어. 굳이 그걸 말했어야 했는지. 사람 감정이라는 것도 유통기한이 있잖아. 영재로 말하자면 이제 유통기한도 거의 끝나가는 시점인데.”
“깡통에 든 감정일 수도 있겠지.”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포장재가 깡통인지 비닐인지는 알 수 없는 거 아니겠어?”
“천영재. 그 친구 사람을 잘 못 믿더라고. 대체 무슨 사정이 있었던 거지?”
방재혁이 천영재에게도 권했던 조잡한 담배를 내게 권했지만 사양했다.
담배를 좋아하지 않는 것도 있겠지만 마약이 모든 문제의 원인이 된 지금 시점에서 담배를 핀다는 건 자기모순적인 행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안 좋게 헤어졌다고 이야기했지?”
“그래.”
“영재가 그 여자를 안 놔줬어. 이별 통보를 했지만 놔주지 않았지. 계속 무릎을 꿇은 채 미동도 하지 않았어. 자기도 알고 있었겠지. 여자 마음이 완전히 떠났고 돌이킬 수 없다는 걸. 하지만 자기는 인정하기 싫었던 게지.”
“······차라리 비트박스라도 하지 그랬어.”
“어떻게 알았어?”
방재혁이 갑자기 눈을 휘둥그레 크게 뜨며 날 보았다.
“뭘?”
“송문희 채간 윤성재가 비트박스 챔피언 출신이라는 거.”
“······그래?”
“아, 그냥 해본 소린가. 아무튼 영재가 송문희를 안 놔줄 거 같으니 윤성재가 개입했지. 영재가 무릎 꿇고 시위한 지 5일째에 덩치들과 합쳐 영재를 때려눕힌 거야.”
“그때 천영재 제대로 밥도 못 먹은 거지?”
“어.”
철저히 중립적으로 보자면 그 이야기 속에서 악역은 천영재다.
인생이라는 긴 이야기의 일부만을 잘라낸 그 단면 속에서 천영재는 송문희라는 여자를 강제로 억압했고 고통을 준 명백한 악당이다.
반면 윤성재는 동화 속의 왕자님과 같은 포지션을 가진 선역이다.
그는 뜻을 함께 하는 다른 사람과 힘을 합쳐 폭군 천영재를 제압하고 그를 쫓아내어 송문희를 구원했다.
그러나 동화와 다르게 인생이라는 이야기는 중단 없이 이어지며 또 변화무쌍하게 흐름을 바꾼다.
“천영재가 무서운 놈인지 아는지라 다들 죽이려고 했지. 하지만 당시만 해도 살인은 처벌 받는 중죄였어. 경찰도 있었고. 그래도 후환이 두려워 최소한 힘줄은 끊으려고 했었지. 그때 필사적으로 말린 게 송문희야. 천영재는 다시는 송문희에게 접근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쓰고 피난소를 떠났지.”
“언제 있었던 일이지? 꽤 오래 전 같은데?”
“무려 서울 피난소 시절의 일이야.”
시간을 보았다.
정오에 가까운 오전.
“어떻게 할 거야?”
방재혁이 묻는다.
“결정은 천영재가 한다.”
천천히 걸어 리어카에 등을 기대고 앉은 천영재에게 다가갔다.
그가 날 올려다보았다.
그에게 물었다.
“구하러 갈 거냐?”
천영재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뒤를 돌아 우리를 보고 있던 방재혁과 하태훈을 불렀다.
천영재가 의아한 얼굴로 날 쳐다보았다.
“뭐 하는 짓이야?”
“왜? 우리 도움이 필요 없나?”
희미한 미소를 머금으며 물었다.
“그, 그건!”
“난 한 번만 묻는다.”
천영재는 잠시 망설이다 이내 쓴웃음을 머금으며 투덜거리듯이 말했다.
“진짜. 이 사람. 못 말린다니까.”
딱히 선의로 행한 건 아니다.
깊이 새겨야 할 사실이다.
내가 선의라는 끝 모를 우물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그렇기에 나는 묻는다.
“다만 한 가지는 확실히 해야겠다.”
“······뭘?”
여전히 감정의 등락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천영재를 보며 담담하게 말했다.
“혹 그 여자가 살아 있다면, 받아들일지 말지는 내가 정하겠다.”
독단이 아니다.
내가 전부를 책임지겠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