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a House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289)
아포칼립스에 집을 숨김-289화(289/466)
117. 옆집 이슈 (1)
오늘도 게시판엔 인간쓰레기들이 득실거린다.
총 3명을 차단하고 게시물을 삭제했다.
-삭제내역-
KIM_DONG_HUNG : 꽃미남 산책 중!
MORUS : 초보도 쉽게 하는 인간 박제 제3편
익명1941 : 손톱 모음.jpg
대단히 안타까운 일이지만 내가 가진 차단 권한으로 차단할 수 있는 최대 시간은 24시간에 불과하다.
원래는 일주일 이상이 최장 차단 기간인데 멜론 마스크가 제동을 걸었다고.
그런데 커뮤니티라는 게 오래가려면 결국 유입이 있어야 한다.
이 부분에 관해서는 최근 방재혁의 모친과 마찰을 빚는 다정이의 입을 빌리도록 하자.
“결국 같은 곳에 같은 사람만 있으면 썩기 마련이야. 자기도 모르게 파벌이 생기고 걔들끼리만 노는 과정에서 소외된 애들이 흑화되거나 떠나거든. 사람이 많은 곳이야 그런 문제가 드물어. 1자 수조 안에서 금붕어 한 마리가 싼 똥과 3자 수조 안에서 금붕어 한 마리가 싼 똥이 수조 전체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해보면 알 수 있지.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결국 유입이 있어야 하는데, 문제는 그 유입도 괜찮은 유입이 와야 된단 소리지. 병신이 떠난 자리에 병신이 오면 결과는 같아.”
다정이와 방재혁 모친이 갈등을 빚는 이유는 방재혁 모친의 일방적인 접근 때문이다.
방재혁 모친은 종일 자기 방공호 안에 처박혀 잘 나오지도 않는 다정이를 반가우면서도 안타깝게 여기고 나름 친해지려고 하는데 다정이는 그 시도 자체를 불쾌하게 여기고 싸늘한 벽을 세우기 때문이다.
아직은 몇 번의 가벼운 마찰만을 빚었을 뿐이지만 글쎄다. 이런 작은 갈등이 나중에 무슨 문제로 발전할 지.
방재혁에게 일러 될 수 있으면 다정이 쪽과 접촉하지 말라고 일러두긴 했는데 방재혁 모친도 제법 고집이 있어 보인다.
좀 더 지켜보다 내가 직접 나서는 방향으로 처리하는 게 좋겠지.
아무튼, 다시 게시판으로 돌아가자면 내가 최근 신입을 좋지 않게 보는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괜찮은 신입도 있다.
익명1936 : 우리 집 근방에 10여명 규모의 피난민이 정착했어. 땅을 파서 터를 닦고 나무와 돌을 모으는 걸 보면 여기에 정착지를 만들 생각인데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뉴비 – 익명1936도 그중 하나다.
이 친구에게 가장 끌리는 매력은 풋풋함이다.
그는 우리에게 너무나도 익숙한 것들을 반복해서 질문하고 우리가 전쟁 초기에 보였던 고뇌 같은 걸 전쟁이 지난 지 4년을 바라보는 현시점에 토로한다.
마치 전쟁 직후 우리의 모습을 보는 것 같은 신선함이 느껴진다고 할까.
아마 전쟁 이후에도 안락하고 편안한 지역에서 안정된 삶을 누렸겠지.
가장 가능성 높은 건 전 군단파 고위층 정도일 것인데 그가 올린 글을 보면 그는 가족과 친척, 믿을 수 있는 친구 가족과 합쳐 10여명 정도의 무리를 이루었고 상당히 풍족한 무장과 물자, 식량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에게 호감을 가진 건 나만이 아닌지 최근 글을 잘 올리지 않는 유저들이 그의 글에 자주 출몰하는 게 보였다.
익명458 : 옆집 이슈는 키스톤이 선밴데. 키스톤~ 살아 있냐?
ROKA_hun : 케바케겠지. 하지만 우리라면 야밤에 기습을 해서 전부 쓸어버릴 거야.
Rkkara : 공 들고 가서 족구나 한판 하자고 해
Dies_Irae69 : 그건 네 공동체의 크기에 달렸지. 흡수를 할 수 있는 여력이 있으면 흡수를 하되, 할 수 없다면 처리하는 게 나아.
Berkut_break : 인간의 공존이라는 게 그리 쉬운 건 아니지. 특히 지금 같은 시대에는.
옆 동네에 정착민이라.
나도 초반에 경험한 일이다.
썩 좋은 경험은 아니었다.
게시판 유저 말마따나 공 들고 족구 한판 해서 풀기엔 지나치게 많은 문제가 있었고 결국 몰살이라는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했다.
당시엔 그게 최선이었다고 생각한다.
집단을 갖춘 지금 시점에서는 다시 생각해봐야 할 문제겠지만 말이다.
“옆집 이슈”의 대명사 키스톤이 그 화제에 합류한 건 참새가 방앗간을 들르는 것만큼 당연한 일이었다.
그는 익명1936의 글을 보자마자 새 글을 팠다.
keystone : 옆 동네 이웃이 왔을 때 대응법.txt
글을 클릭해보았다.
1. 죽인다.
2. 죽인다.
3. 죽인다.
타협도 시도해봤고 인내해보려고도 노력해봤다.
이렇게 생각해.
네가 사는 동네 주변이 햄스터 사육장 하나라고.
한 마리 살기에 딱 적당한 사육장이지.
거기에 한 마리, 두 마리, 또는 여러 마리가 나타난 거야.
당장 그 새끼들이 무슨 짓을 할지 생각해.
네 방공호나 은신처를 못 찾는다고 해도 네가 써야 할 물부터 해서 네가 일군 텃밭, 나무, 낙엽, 동물, 물고기부터 해서 네가 얻을 수 있는 걸 모조리 쓸어갈 거야.
안 참으면 죽을 수도 있겠지.
그런데 참아도 죽어.
키스톤의 말은 일리가 있다.
멸망기에서 외부인은 항상 잠재적인 적이니까. 못해도, 경쟁자니까.
하지만 그의 말이 반드시 옳은 건 아니다.
모든 집단이 전투력과 언제든 사람을 죽일 각오가 되어 있는 건 아니다.
전투에 안 맞는 생존자 집단도 얼마든지 있다.
당장 폭스게임만 해도 전투력 제로라고 해도 뻔뻔하게 이 멸망기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모든 건 유동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게시판 새내기 익명1936도 키스톤과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익명1936 : 굳이 죽일 필요가 있을까요?
그의 질문은 우리가 그를 좋아하는 이유임과 동시에 그에게 답답함을 느끼는 이중적인 모습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장치라 할 것이다.
익명1936 : 가까운 곳이라고 하지만 1.5km 정도예요. 우리는 대부분 집에만 있고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외출을 하죠. 우리의 근거지는 잘 위장된 외벽이 있어 바깥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데 그 외벽 안에서 간단한 농사를 지어요. 주변에 장마당이 열리거나 떠돌이 상인이 떴다는 무전이 뜨면 외출을 하긴 하는데 주로 밤에 나가고요.
익명1936이 그런 결론에 이른 가장 결정적인 요인은 내가 생각한 것처럼 전투에 관한 자신감 부족이다.
익명1936 : 우리는 전부 친인척으로 이루어진 집단이에요. 한 명이라도 잃으면 모두 슬퍼하겠죠. 그쪽이 우리를 못살게 굴거나 위협이 된다면 모를까, 굳이 우리가 먼저 그들을 공격할 필요는 없을 거 같아요. 이건 이야기 안 했지만 주변에 성가신 뮤테이션도 돌아다니거든요. 트럭만 한 멧돼지 한 마리가요.
그는 전투 그 자체도 걱정하지만 전투로 인해 입을 수 있는 피해 자체를 극도로 꺼리고 있었다.
다만 익명1936의 의사형성 과정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건, 이제는 화폐만큼이나 무가치해진 과거의 잣대일 것이다.
익명1936 : 우리도 알아요. 지금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세상 전체가 카르네아데스의 판자처럼 내가 살기 위해 다른 사람을 죽여야 하는 세상이라는 거 잘 알고 있어요. 하지만 제가 볼 때 우리가 처한 상황은 바다 위에 떠 오른 단 하나의 판자 같진 않네요.
익명1936 : keystone님 말씀도 고맙지만 저는 분명 다른 방법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여전히 과거의 가치를 간직하고 있다.
우리가 잃어버렸거나 거의 잃어가려는.
이에 키스톤은 아래와 같이 대답했다.
keystone : 너희들이 주변에 있는 거, 걔들이 모른다며?
keystone : 그게 얼마나 큰 축복인지 아나?
그 글을 보자마자 귀한 댓글을 달았다.
타닥타닥
SKELTON : 흠······.
귀인의 행차시다.
날 싫어하는 키스톤은 그 글이 달리자마자 삭제했지만 말이다.
아무튼, 키스톤의 용렬함은 둘째치고 키스톤의 지적은 정확하다.
뒤이어 키스톤은 새 글에서 자신의 몸 사진을 공개했다.
keystone : 친절함의 대가.jpg
삐쩍 말랐지만 나름 탄탄한 근육이 붙은 구릿빛으로 탄 상체엔 꽤 깊은 흉터가 새겨져 있었다.
낫이나 비슷한 냉병기로 당한 흉터로 보인다.
너비는 얕지만 꽤 깊어 보인다.
경우에 따라 죽음에 이를 수도 있는 상처다.
특히 파상풍이 도졌다면 죽음에서 헤어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keystone : 딱 보니 내가 말해도 처 귀담아듣지도 않을 타입으로 보이니 더는 말 안 하겠다만은 잘 새겨들어.
keystone : 모든 걸 지킬 순 없다.
keystone : 모든 걸 가질 수도 없어.
keystone : 어쭙잖은 도덕성도 사치품인 거 알지?
keystone : 그 자체가 탐욕이야.
키스톤은 그 말을 끝으로 물러갔지만 그들의 대담은 이야깃거리 몇 없는 게시판에서 꽤 오랫동안 화제가 되었다.
“스켈톤은 어떻게 생각해?”
디펜더 남매가 내 방공호에 찾아와서 물은 것도 그 화제였다.
어째 다정이가 평소보다 예쁜 옷을 입고 옅은 화장을 한 것 같은 기분이 들지만 여기서는 질문에 집중하자.
“흠······.”
어려운 문제다.
키스톤의 말이 대체로 맞지만 익명1936의 말도 나름의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익명1936 집단이 우리와 다르게 전투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의 집단이라면 섣부른 공격 중에 모든 걸 잃을 수도 있겠지.
전부 죽일 수 있다면 깔끔하겠지만 그게 안 된다면 다른 방법을 모색하는 게 낫지 않을까?
“너희들은 어떻게 생각해?”
역으로 물어보았다.
뭐, 대답이야 예상하고 있다.
“전부 죽여야지.”
디펜더가 말했고,
“키스톤 말이 맞아.”
디펜더 동생이 호응했다.
역시나.
디펜더 남매 다운 확고불변한 결론이다.
쓴웃음을 머금은 채 잠자코 있자니 다정이가 땅이 푹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그나저나 나 요즘 진짜 짜증이 나.”
무슨 말을 하려는 지 알고 있다.
“그 방재혁 엄마라는 사람. 왜 이렇게 자꾸 나한테 친한 척을 하려 드는 거지? 여기 있는 여자 나뿐이라서 친해지고 싶은 마음은 알겠는데 난 조금도 친해질 생각이 없는 걸.”
그녀가 날 빤히 쳐다보더니 태블릿에 뭔가를 두들기고 그 내용을 내게 보여주었다.
– 나 사람 싫어하는 거 알잖아?
하긴 그런 성격이었지.
사람을 가린다기보다는 인간 자체를 썩 좋아하지 않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게다가 성격이 빈말로도 좋다고 할 수 없는 축이고.
내 동료긴 하지만 디펜더 남매의 성격은 좋지 않고 도덕성의 기준 또한 다른 동료에 비하면 현저히 낮다.
만나는 순서가 인천 헌터들과 반대였고 인터넷이라는 인연이 없었다면 어쩌면 내 손에 전부 죽었을 수도 있었겠지.
“······방재혁 선배는 잘 몰라. 영재랑은 알지만 그 사람은 딱히 말 나눠 본 적이 없지. 좀 성격이 띠껍잖아?”
디펜더는 기둥 쪽에 팔짱을 낀 채 차갑게 서 있었다.
다정이만큼은 아니지만 그도 우리 집단 사이에서 일어나는 작은 알력에 경계를 하는 눈치다.
그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내가 방재혁에게 가서 잘 이야기해볼게. 아니면 직접 방재혁 어머님과 함께 이야기할 수도 있는 일이고. 결국은 안 부딪치게 해달라. 이거 아냐?”
다정이가 방긋 웃었다.
“역시 스켈톤!”
그녀가 디펜더 쪽을 힐끗 쳐다봤다.
디펜더는 기둥에서 등을 떼고 출구를 향해 늘 그렇듯 소리없이 미끄러지듯 걸어갔다.
“괜찮은 장비가 있는 곳을 알아. 시간 나면 함께 회수하러 가자고.”
디펜더가 먼저 떠났다.
다정이 쪽을 보았다.
어련히 같이 가겠거니 생각했는데 그녀는 자리에 남아 말똥말똥한 눈으로 부담스러운 시선을 보내온다.
유독 그녀가 한 화장이 어둠과 합쳐져 평소보다 더 강한 매력으로 승화되고 있었다.
아무튼 졸지에 방공호 안엔 나와 다정이 둘만 남았다.
“스켈톤네 방공호는 언제 봐도 대단하네.”
분위기가 채 어색해지기도 전에 다정이가 내 방공호를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뭔가 변한 거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내 방공호를 채운 갖가지 사연을 가진 물건들을 돌아보던 그녀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만나는 여자는 생겼어?”
“만나는 여자?”
“응. 스켈톤 인기 많잖아?”
“······.”
인기는 많지.
트웰브스퀘어. 지구적인 영웅 아닌가.
그런데 여자는 글쎄.
잘 모르겠다.
“스켈톤 같은 남자가 솔로로 남는 건 국가적인 손실이라고 생각해요.”
홍다정이 평소와 다른 그윽한 눈으로 날 응시한다.
눈이 마주치자 그녀가 샐쭉하게 웃는다.
“안 외로워?”
이제야 그녀가 원하는 게 뭔지 알겠다.
남녀로서의 접근이다.
직접적으로 말을 꺼낸 건 아니지만 그 방향성이 가리키는 방향은 명확하다.
뭐, 자랑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예상한 일이다.
내 마음 깊은 곳에 숨겨진 욕망 속에서는 은연 중에 기대한 일이기도 하다.
하룻밤의 쾌락을 위해 아름다운 여자를 마다할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다만, 아직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수도승이거나 관운장 같은 고고한 성품을 가진 사람이라서가 아니다.
여기서 다정이와 관계를 맺을 수도 있겠지만 그 뒤에 있을 일들이 아직 나에게는 정확하게 계산되지 않는다.
하나의 사건이 많은 것들을 한순간에 변하게 하는 걸 나는 보았다.
특히 익명848이라는 지금은 두 번 다시 글을 올리지 않는 유저의 일은 내게 많은 것을 시사했다.
“······그리 외롭진 않아.”
날 향해 몸을 기울인 채 뚫어지게 쳐다보는 홍다정을 향해 담담하게 말했다.
“아직 할 일이 많은 걸.”
“그래?”
홍다정은 눈치가 빠르다.
짧은 대화 속에서 내 말에 감춰진 거절을 빠르게 읽어냈다.
“역시 스켈톤. 우리 게시판의 귀감이야.”
그녀가 새침하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가 떠나게 내버려 두었다.
발소리 발소리마다 각자의 미련이 느껴졌지만 여기서는 이게 옳은 선택이리라.
“저기. 스켈톤.”
다정이가 입구 앞에서 말했다.
“전부터 느꼈는데. 혹시 좋아하는 여자 있어?”
“······그건.”
“아, 지금은 안 들을래.”
다정이가 귀를 막은 채 종종걸음으로 계단을 올라간다.
끼익 하고 육중한 철문이 열리는 소리 너머로 다정이의 낮은 목소리가 희미하지만 확실하게 내 가슴을 울렸다.
“나는 오소리과니까.”
가벼운 발걸음 소리와 함께 방공호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녀가 사라지자 마자 약속한 것처럼 익숙한 정적이 찾아온다.
내 방공호의 오랜 동거인인 어둠을 응시하며 생각에 잠긴다.
글쎄.
특별히 좋아하는 여자는 없다.
떠오르는 얼굴 몇 개가 있지만 그 정도가 전부.
중요한 건.
“······.”
내가 아직 그녀에게 특별한 감정을 못 느낀다는 것이겠지.
익명848의 일화를 떠올린 건 그러니까 과정이 아닌, 결과의 일부라는 이야기다.
모든 것은 바뀌겠지만 그 변화가 그리 빠르게 올 것 같진 않다.
게다가 더 빠른, 가시적인 변화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른 새벽, 방재혁과 함께 골프장 쪽 능선을 바라보았다.
방재혁이 고글에 낀 이슬을 닦아내며 골프장 쪽을 가리켰다.
“저기야. 저기.”
피난민 무리가 내 영역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골프장 일대에 캠프를 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