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a House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291)
아포칼립스에 집을 숨김-291화(291/466)
118. 이야기 (1)
한국엔 여러 개의 연례행사가 있다.
태풍도 그중 하나다.
낌새는 며칠 전부터 느껴졌다.
높게 낀 구름이 빈틈없이 하늘을 채웠고 적은 비가 내렸다 그쳤다 하면서 이따금 돌풍이 산야를 거칠게 내달렸다.
태풍이 올 때 으레 볼 수 있는 전조 현상이었다.
결정적으로 우민희가 게시판에서 강한 태풍이 다가온다는 정보를 알려주었다.
기상청이 망해서 슈퍼컴퓨터를 이용한 예측은 불가능하지만 기상 위성으로 본 여태까지의 규모와 이동 방향을 보면 그 악명 높은 “매미” 급 강도에 수도권을 향해 반시계방향으로 이동 중이라고.
비상이 걸렸다.
자연재해의 무시무시함을 이미 몇 번이나 몸으로 겪은 나는 전원을 빠짐없이 – 다정이마저 – 소집한 후 작업을 지시했다.
간만에 굴삭기가 차고에서 나와 땅을 파헤쳤고 소형 불도저가 수북하게 쌓인 흙더미를 외벽 밖으로 분주하게 내보냈다.
워낙에 성대한 작업이라 외부에 지나가는 사람이 있다면 반드시 포착될 수밖에 없을 정도의 대공사지만 그렇다고 공사를 하지 않을 순 없다.
태풍 당일엔 가장 안전한 내 방공호 안에 모두가 머물게 했다.
항상 바깥에서 자는 천영재조차도 내 방공호 안에 침낭을 놓을 정도로 사태는 엄중했다.
태풍이 상륙하자 카페인 캡슐을 씹고 철야에 들어갔다.
어디에 빗물이 고이고 그 고인 빗물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빗물의 흐름이 우리가 미리 파놓은 배수로를 향하는 걸 부릅뜬 눈으로 감시했고 혹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갈 때면 삽을 동원해 흙더미로 물길을 막고 원하는 방향으로 유도하려 했다.
굴삭기도 아낌없이 동원했다.
“젠장. 지랄 맞게 쏟아지네.”
일기예보는 정확했다.
하늘에 구멍이 뚫린 것처럼 비가 퍼부었다.
작년의 폭우를 연상케 할 정도로.
하지만 작년과 다르게 믿음직한 동료들이 있기에 쉽게 넘어갈 수 있을 것 같다.
새벽 2시경 빗줄기가 한풀 꺾이는 걸 보고 동료들의 권유에 따라 먼저 방공호 안에 쉬기로 했다.
다른 사람의 잠을 방해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침낭 사이를 걸으며 2층으로 내려갔다.
프라이버시를 극히 중요시 여기는 나는 미리 발전기가 있는 2층에 나만의 피난처를 만들어두었다.
그 준비물은 물병에 담긴 한 잔의 물, 몸을 닦아낼 여러 장의 마른 수건과 옷가지. 그리고 노트북이다.
몸을 닦아내고 뽀송뽀송한 새 속옷을 입고 기분 좋게 침낭에 들어가 노트북을 켰다.
“······.”
타닥타닥
무과금뉴비 : 한국인이 304명 있으면 뭐다?
제목을 치고 “한국 인삼공사”라는 내용을 적으려는 참이었다.
최근 내가 생각하기에 내 개그 감각은 물이 올랐다.
정확히 말하자면 2년 전, 우리 게시판에서 누군가 적은 글을 그대로 카피한 것이지만.
비장의 일발 드립을 업로드하고 반응을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누군가 해치를 두드렸다.
“스켈톤. 아직 안 자는 거 맞지?”
디펜더 동생의 목소리다.
해치를 열고 나와 보니 환한 빛이 눈을 부시게 했다.
다들 깨어 있었고 환한 빛을 내는 전구 주변에 모여 둘러 앉아 있었다.
왜인지는 알 것 같다.
쿠구구궁!
현재 진행형으로 휘몰아치는 폭우와 천둥, 언제 비상사태가 터져 바깥으로 나갈지 모르는 상황 속에서 모두 잠을 자는 대신 깨어 있는 걸 택한 것이다.
“모처럼 한자리에 모였으니 재밌는 썰이나 풀어보자고. 어차피 오늘 밤은 잠 다 잔 거 같으니. 언제 물이 새어 들어올 지 누가 알겠어?”
천영재가 분위기를 띄웠다.
단 1시간이라도 효율적인 수면을 취하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비효율적인 방법이지만 태풍이란 게 내 예상대로 반드시 흘러가리라는 법은 없기에 자리에 합류했다.
사람들의 시선이 날 향했다.
리더의 책임이라고 할까.
첫 타자는 나로 정한 모양이다.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마음속으로 한 사내를 그렸다.
“존내논이라는 위대한 남자가 있었지.”
“좆내논?”
천영재가 헛소리를 하기에 손가락 하나를 펼쳐 보였다.
경고의 의미다.
“······다들 알겠지만 존내논은 페일넷의 창시자다. 학원 출신 헌터였지만 타고난 사업수완과 돈 냄새를 맡는 능력으로 큰돈을 끌어모았지. 그 돈으로 그는 페일넷을 만들었다. 그리고 전설이 되었지. 나는 그를 매우 존경하고 그 같은 사람이 되고자 노력하고 있다.”
나는 길게 풀어서 이야기를 하는 재주도 없고 그러한 종류의 교육을 받은 적도 없다.
중요한 건 핵심이다.
짧은 내용이지만 존내논이라는 영웅적인 삶을 살다 간 남자의 생애를 잘 요약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 생각이 반드시 타인의 생각과 같을 수는 없다.
“?”
“엥?”
“뭐야.”
주변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심지어 나의 전 인터넷 친구 디펜더는 그냥은 참고 넘어갈 수 없는 모욕적인 말마저 해댔다.
“걔 사기꾼이잖아. 비바! 아포칼립스!를 발판 삼아 제 배만 불린 놈 아니야?”
즉시 반박을 하려고 하자 천영재가 말했다.
“다음.”
다음 주제로 넘어가자는 건가.
뭐, 아무래도 좋은 일이다.
존내논 정도의 거인은 오직 역사 단위에서 평가할 수 있으니까.
그나저나 침묵이 길어지고 있다.
다들 할 말이 없는 걸까.
그렇다면 여기서 존내논을 위한 변명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존내논의 미담을 고르고 있자니 누군가 손을 들었다.
하태훈이다.
“음?”
의아한 마음이 들었다.
썩 재밌게 말하는 재주는 없는 양반인데 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
그래도 여기는 그의 차례니 잠자코 지켜 보기로 했다.
“박펭귄 다들 알지?”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거대 피난소 우두머리 다운 유명세라고 할까.
적어도 이들 사이에선 박펭귄이 존내논보다 한 단계 위의 인물로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였다.
“그 사람, 솔직히 별 볼 일 없었잖아? 초기 피난소장 경력 보면 대기업 사장 출신, 어디 고등법원장이니, 대학 총장이니 그런 사람이 대부분 아니었어?”
피난소 이야기인가.
이쪽은 내가 잘 모르는 영역이다.
게시판에 피난소 썰이 돌긴 했지만 지엽적이고 단편적이고 지극히 사적인 불평과 불만이 대부분이었다.
가끔 이야기의 형태를 띤 썰이 나돌긴 했지만 그리 큰 감명을 준 건 없었다.
어쩌면 나라는 사람이 영원히 피난소 같은 곳에서 살 일이 없기에 덜 흥미를 가졌는지도 모르겠다.
다만 박펭귄은 내가 잘 아는 사람이다.
개인에 대해 잘 안다기보다는 그가 최근에 얻고 있는 유명세와 강력한 힘을 잘 이해한다고 보는 게 옳겠지.
국가가 해체된 현시점에서 만 명 이상의 인력을 동원하고 쓸 수 있다는 건 그 자체로 무소불위의 권력이니까.
그런데 그 박펭귄, 정확히는 박진구라는 이름을 가진 두 아들의 아버지는 전쟁 전후만 해도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건 확실하다.
내 벽 한 곳에 장식된 “아람 철문 센터 사장 박진구” 명함이 그 사실을 확실하게 증언해준다.
“그 사람은 원래 광진구 쪽에 있었어. 알다시피 거기도 핵이 하나 떨어졌지. 말 안 듣고 바깥에 있었던 사람은 다 죽었고 방공호 안에 있던 사람들이 살았는데 다들 알겠지만 첫 피난소는 방공호 단위 별로 만들어졌잖아?”
하태훈이 모두의 동의를 구하려는 듯 주변을 돌아보았다.
다들 고개를 끄덕이지만 나만은 아무런 반응 없이 하태훈을 멀뚱멀뚱 보기만 했다.
“······그렇게 피난소 체재가 만들어진 이후 뭐, 늘상 있는 일이 벌어졌지.”
무시인가.
하태훈이 나보다 2기수 선배라고 하지만 이 프로페서가 어디 가서 무시당할 사람은 아닌데.
“잠깐.”
손을 들었다.
하태훈이 날 보았다.
“첫 피난 캠프가 그렇게 만들어졌다고?”
모두가 날 쳐다봤다.
우호적인 반응은 아니었다.
임기응변에 능한 나답게 빠르게 상황을 무마했다.
“아, 그랬었지. 그래. 하선배. 계속해.”
잠깐 어색한 침묵이 흐른 후 하태훈의 이야기가 시작됐다.
“유명한 이야기지. 아는 사람도 있을 거야.”
훗날 박펭귄이라 알려지게 된 박진구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었다.
젊은 날에 적당한 뻘짓으로 젊음을 소비했고 마음이 맞는 여자와 만나 결혼을 했고 아이를 가졌다.
짧았지만 충분히 더럽고 치사했던 직장 생활을 끝내고 부친의 가게를 물려받아 사업을 하던 그는 아무 준비도 없이 전쟁을 맞이 했고 피난소에 들어갔다.
피난소엔 잡다한 사람들이 모여 있다.
살면서 단 한 번도 마주치지 않을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판사, 의사, 교수 같은 전쟁 전부터 대접받던 사람들은 당연한 것처럼 피난소 안에서도 존경을 받았지만 그 존경심은 피난소의 열악한 환경과 부족함 안에서 빠르게 상쇄됐다.
곧 힘 있고 타인을 함부로 대하고 한없이 이기적일 수 있는 인간들이 목소리를 높였고 배급 등에서 우선권을 가졌다.
평범한 사람들은 불만을 가졌지만 힘 있고 목소리가 큰 사람들의 해코지, 두려움, 현실적인 힘의 한계 등 다양한 원인으로 인내해야만 했다.
나라 전체가 전쟁통으로 마비가 된 상황에서 제대로 된 신고 체제가 작동할 리 없었고 정부에 불만을 이야기한 평범한 시민이 정부에 신고를 했다는 이유로 악명 높은 깡패에게 공개적으로 구타를 당했다.
정원식이라는 인간이 광진구 제23 피난소의 골칫덩어리였다.
그는 이른바 격투기 선수로 미국에서 열리는 프로 경기에서 승리를 거둔 전적이 있을 정도의 강자였다.
정원식은 처음에는 다른 피난민처럼 얌전했지만 곧 본색을 드러내 자신의 무력, 특히 주먹 실력을 믿고 사람들에게 위협을 가하고 행패를 부렸다.
정원식이 늘 하는 말이 있었다.
“꼬우면 맞짱 까든가. 나 이기면 걍 고개 숙일게. 고개 숙이고 시키는 대로 할게.”
10대 소년들의 모임장에서나 할 법한 이야기를 30살이 넘는 사내가 해댔지만 나름의 근거는 있었다.
실제로 피난소 안에서 그를 상대로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 피난소장은 고등법원장을 하던 사람인데 그는 정원식이라는 괴물이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는 걸 명확히 인지했지만 현직에 있었던 대로 그는 진정한 문제에 대해서는 모른 척했다.
피난소장마저도 자신을 두려워한다는 걸 알자 정원식은 더 대담해졌고 더 포악해졌다.
그는 부모와 가족을 잃은 어린 여자에게 손을 댔다.
이튿날 그 여자가 목을 맨 시체로 발견됐지만 모두 쉬쉬할 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 정원식이 박진구와 마주친 건 우연한 계기였다.
공놀이를 하던 박진구의 아들이 찬 공이 지나가던 정원식 쪽으로 날아갔다.
공은 정원식에게 닿지도 않았지만 그는 그 아이를 불렀고 따귀를 때렸다.
이가 두 개나 날아갈 정도로 무자비한 타격이었다.
정원식은 그것도 모자라 인사불성이 된 아이 위에 올라타 목을 조르며 웃으며 물었다.
“니 애비 어디에 있냐? 빨리 기어 나오라고 해.”
이웃에게 이야기를 들은 박진구가 현장에 나타났을 때 그의 아들은 거의 맞아 죽기 일보 직전이었다.
박진구는 그 모습을 보자마자 피가 거꾸로 솟는 분노를 느꼈지만 그는 인내했다.
“이게 니 새끼야?”
정원식은 박진구의 뺨을 그의 아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툭툭 치며 시비를 걸었다.
박진구는 고개를 숙인 채 용서를 구했다.
“정말 죄송합니다. 자식 교육을 잘못해서 정말로 죄송합니다.”
정원식은 의외라는 반응을 보였다.
보통 자식이 이 정도 꼴로 두들겨 맞으면 보통 부모라는 작자들은 앞뒤 안 가리고 덤벼들기 마련이고 그런 인간들을 개 패듯이 패는 것이 그의 즐거움 중 하나였는데 박진구는 그의 도발에 걸려들지 않았다.
정원식은 그때 약간 좋지 않은 예감을 느꼈지만 애써 무시하고 늘 하던 대로 자기보다 약한 사람을 깔아뭉개는 행각을 습관처럼 행했다.
“전쟁 전엔 뭐했어? 꼰대.”
“철물점을 했습니다.”
“씨- 발. 좆버러지 같은 일 했네. 걍 꺼져 새끼야. 못 배워 처먹은 애새끼 데리고.”
박진구는 아무 말 없이 정신을 잃은 아이를 데리고 갔다.
사람들은 수군거렸고 정원식은 눈을 희번뜩 뜨며 사람들을 돌아보며 소리쳤다.
“불만 있는 새끼? 나와 봐. 걍 뜨자고. 왜캐 겁이 처 많아. 남자 새끼가 불알 찼으면 말이야. 어? 화끈하게 붙을 줄 알아야지.”
정원식이 고함을 지르는 동안 박진구는 조용히 자신과 평소 친하게 지내는 사람들을 찾아갔다.
함께 공공근로를 하던 평범한 가장들이었다.
배급으로 나온 담배 한 갑씩을 그들에게 나눠주며 박진구가 말했다.
“정원식. 걔 죽이려고 하는데.”
그 말을 이웃들은 놀랐다.
그들과 마찬가지로 평범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박진구가 너무나 담담하게 살인을 입에 담았기 때문이다.
“아람이 아빠.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어떻게 죽이려고? 정원식이가 얼마나 쎈대.”
이에 박진구는 슬그머니 바닥에 놓여 있던 쇠파이프 하나를 들었다.
“아무리 싸움을 잘해도 뒤통수에 이거 한 대 맞으면 사람은 병신이 됩니다.”
박진구가 파이프를 들며 각오한 얼굴로 낮게 읊조렸다.
“선빵은 제가 때리죠.”
이에 다른 사내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살인은 안 돼. 잡혀 가. 경찰 새끼들 있잖아? 도움 좆도 안 되지만.”
“맞아. 아람이 아빠도 알잖아? 지들이 볼 때 위험해 보이는 놈은 뭔 짓을 하건 눈감아 주지만 적당히 만만한 새끼는 조금만 나쁜 짓 해도 잡아가는 거?”
이에 박진구는 빙그레 웃으며 답했다.
“그럼 우리가 위험해 보이면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박진구가 앞장 섰다.
“새벽 2시에 봅시다.”
당시만 해도 많은 사람이 죽긴 했지만 살인이라는 건 드문 일이었다.
디펜더의 게시글이 인기글에 오르는 건 물론이고 나처럼 순수하고 맑은 영혼에 큰 충격을 줄 수 있었던 시기였다.
박진구에겐 그러한 결의가 있었다.
그날 새벽, 화투패를 들고 화투에 전념하던 정원식의 뒤에 박진구가 나타났다.
그의 손엔 쇠파이프가 들려 있었다.
함께 화투를 치던 사람들이 외마디 고함을 지를 때 박진구는 일말의 주저 없이 쇠파이프를 풀스윙으로 휘둘렀다.
깡!
정원식이 엎어졌다.
순간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깨달은 그는 운동으로 단련된 팔다리를 움직여 일어나려 했지만 몸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순수한 살의는 어설픈 악의를 가볍게 뛰어넘는다.
박진구는 계속해서 파이프를 휘둘렀다.
퍽!
또 하나의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억!”
정원식의 고함을 덮어버리려는 듯 박진구가 소리쳤다.
“다 나와!”
정원식이 버둥거리며 일어나지 못하자 비로소 동료들이 뛰쳐 나와 린치를 가했다.
팔과 다리가 분질러졌고 온 몸의 뼈와 힘줄이 무두질을 당했다.
“사, 살려두세혀······.”
인사불성이 된 정원식이 목숨을 애걸하는 가운데 박진구는 함께 화투를 치던 사내와 여성을 노려보며 담담하게 말했다.
“정원식은 오늘 술 먹고 계단에서 넘어진 겁니다. 무슨 말인지 이해하시겠죠?”
정원식은 그로부터 3일 뒤에 죽었다.
아무도 잡혀가지 않았고 아무도 기소되지 않았다.
하지만 사람들은 다 알고 있었다.
폭군 정원식이라는 문제를 해결한 게 누구인지.
누가 이 피난소를 위해 일해 줄 진정한 일꾼인지 모두가 알게 된 것이다.
박펭귄으로 알려지게 될 사내의 첫걸음이었다.
“······그게 박펭귄이었군. 딴 사람 이야긴줄 알았는데.”
“템플릿 같은 이야기지. 어디 피난소에나 있는. 그래도 좆같은 놈이 좆되는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흥겨워.”
“박펭귄씨. 평범해 보이지만 진짜 강단이 있어요. 그때 펭귄처럼 단체로 빙글빙글 돌 때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싶었는데 실제로 효과가 있더라고요. 덕분에 아이들도 다 살렸고요.”
하태훈의 이야기는 괜찮은 반응을 이끌어 냈다.
나의 존내논 전설담과는 전혀 다른 반응.
“흠······.”
다른 이야기를 해야 하나.
존내논의 멋짐을 모두에게 이해시키려면 무슨 이야기가 좋을까.
진지하게 고민을 하고 있자니 또 누군가 손을 들었다.
약간의 짜증을 담아 새로운 이야기꾼의 얼굴을 응시했다.
방재혁이다.
이 친구, 별 재미는 없는 걸로 기억하는데.
다리가 아프니 무릎에 총알을 맞은 썰이라도 풀려는 걸까.
갖가지 추측 속에서 방재혁이 빙그레 웃었다.
“다들, 비바리움이라고 알아?”
비바리움.
한정된 공간 안에 생태환경을 구축한 걸 의미한다.
“충청도에 커다란 생태관이 있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