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a House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295)
아포칼립스에 집을 숨김-295화(295/466)
119. 도구 (2)
지극히 개인적인 여정이다.
고로 혼자서 가려고 마음먹었다.
만에 하나 동료들을 데리고 나간 사이 영역이 공격받아 무너지기라도 한다면 그건 순수하게 내 책임이 될 테니까.
그깟 사나운 꿈자리 하나로 모두를 위험에 처하게 할 순 없다는 이야기다.
“이번에 내가 따라갈게.”
혼자 가겠다고 다짐한 여정이건만 디펜더가 강하게 동행을 요구했다.
“거긴 내가 잘 알아. 최근에 거기에 정찰간 적도 있거든. 김다람 팀장 밑에 있을 때 말이야.”
워낙에 입장이 강경하기에 동행을 허락했다.
디펜더는 인천으로 가기 전에 과거 자신이 살던 은신처에 들렀다 갈 것을 제안했다.
“탈 걸 숨겨놨어.”
뭔가 했더니 고철에 가까운 SUV다.
차체가 왼쪽으로 기울어 굴러가는 것조차 신기해 보이는 녀석이지만 디펜더는 이 차량을 강력하게 추천했다.
“거기에 가려면 피난소 놈들에게 차량을 맡기는 게 좋아. 걸어서 들어가야 하거든.”
과거 부두 주변은 시 전체가 피난소로 변한 인천에서도 가장 선호도가 높은 곳이었다.
“급지”라고 하던가.
동네와 아파트로 서열 나누던 시절의 근성을 버리지 못한 사람들은 피난소 안에서도 등급을 매겨서 부족한 우월감을 채우려 들었다.
하지만 이제 그 부둣가는 살아 있는 시체가 우글거리는 타락의 땅으로 전락했다.
“모든 도로가 다 막혔다고 보면 돼. 그 좀비 소굴에 광신도들도 숨어 살고 있거든.”
디펜더가 간신히 굴러가는 차량을 끌고 가려는 이유는 피난소를 믿지 못해서다.
“네 트럭 같은 상태 좋은 거 끌고 갔다가는 어딘가에 숨겨두고 모르쇠 할 거야. 그러고도 남을 놈들이지.”
현재 인천권역이라 불리는 광대한 지역은 셀 수도 없이 많은 세력이 저마다의 영역을 구축하고 저마다의 영유권을 주장하는 춘추전국 시대와 같은 형국이라고 한다.
박펭귄 같은 연합 세력도 있지만 그가 지배하는 영역은 일부분에 불과하고 대부분의 지역엔 그 지역을 꽉 잡은 터줏대감이 지배하고 있다고.
최근 유행하는 형태의 조직은 “단지”라고 한다.
“예전엔 지하철 단위로 조직을 꾸렸지만 요즘은 중대형 아파트 단지 주변으로 거점을 꾸려. 거기가 방어하기도 좋고 단지 내 인프라를 활용할 수도 있으니까. 그래서 단지라고 부르는 거지.”
디펜더는 부두와 가장 가까운 단지와 아는 사이라고.
차량은 그럭저럭 굴러갔다.
디펜더의 말에 의하면 겉보기엔 상태가 별로지만 속을 뜯어보면 그리 나쁘지 않은 차라고.
차가 기울고 외관이 거적때기 같지만 운행하는데 큰 무리는 없단다.
왼쪽으로 살짝 기운, 마치 유원지의 목마처럼 출렁이는 조수석에 앉은 채 생각에 잠겼다.
“······.”
언제부터 나와 장기영 사이의 연락이 끊긴 것일까.
결정적인 계기를 제공한 건 장기영의 다사다난한 말년이다.
어웨이큰이라는 막을 수 없는 물줄기에 대항하여 안간힘을 쓰던 그는 갖가지 무리수를 남발했다.
언론 플레이, 로비, 익명의 투서, 고소와 고발.
그가 개인적으로 착복한 돈은 없지만 그가 자신의 망상을 위해 수많은 회계 부정과 리베이트, 불법적인 특혜를 준 건 사실이다.
갖가지 행정 처분과 송사가 불굴의 헌터라고 주장하던 사내의 몸에 상처를 냈고 언론이 피 냄새를 맡고 상처를 물어뜯었다. 더 이상 떨어질 데가 없어질 무렵엔 유튜버들의 장난감처럼 굴려졌다.
장기영의 사정을 알면서도 나는 그에게 일체의 연락을 하지 않았다.
그가 좋고 싫고의 문제가 아니다.
나도 한계였다.
사지가 부러진 채 균열 너머에서 한 달이라는 시간 동안 반송장 상태로 시간을 보낸다는 건 강철의 의지를 가진 사람조차 쉽지 않은 일이다.
아울러 나의 오랜 열등감, 내 힘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 그 둘이 합쳐진 인생에 대한 회의가 나 자신을 돌보는 것조차 어렵게 만들었다.
다만, 장기영에게 먼저 연락이 온 적이 있다.
그때 나는 전화가 온 걸 알면서도 받지 않았다.
훗날 내가 그를 찾아갔을 때 그는 여러 가지 의미로 내가 알던 장기영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그때 나는 어떤 의미로 이 사람은 이야기적으로 완결이 났다고 내 마음대로 결정지었다.
그러나 이야기는 아직 완결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그게 지금 내가 이 도시에 있는 이유다.
“그거 알아? 죽은 사람은 말을 못한다는 거? 귀신 관련된 드라마나 이야기 보면 꼭 귀신들이 갑자기 나타나 산 사람을 그저 뚫어지게만 쳐다보잖아?”
홍다정은 괴담을 좋아했다.
차량에 연결된 무전기를 통해 그녀는 내가 꾸었던 악몽을 흥미로운 어조로 이야기했다.
“꿈에 나타난 귀신도 마찬가지야. 그들의 혼령은 저승에 묶여 있거든. 말을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는 거지.”
“흠······.”
“왜. 스켈톤? 뭔가 불만이 있는 듯한 반응인데.”
“중국에 있을 때 죽은 내 부하 하나가 내 꿈에 나타나서 한 말이 기억나서.”
“뭐라고 했길래?”
“내 다리 내놔.”
“아.”
귀신 같은 걸 믿는 성격은 아니다.
귀신이 있고 그 귀신이 산 사람에게 해코지할 능력이 있다면 이 세상엔 귀신에게 죽어야 할 사람이 너무나 많겠지.
하지만 모두가 알다시피, 죄를 짓고도 행복하게 천수를 누리는 사람은 얼마나 많던가.
지옥 같은 게 있다면 좋겠지만, 아직 지옥이 있다는 게 증명된 적은 없다.
“장기영 말인데.”
운전대를 잡은 디펜더가 입을 열었다.
잠자코 그를 쳐다보고 있자니 그가 이리저리 핸들을 꺾으면서 말을 이었다.
“인터넷 방송에 나온 거 봤어.”
“그래?”
나는 보지 않았다.
그가 그런 저질스러운 방송에 나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내 스승이 바닥까지 떨어져 남들의 놀림감이 되는 걸 보고 싶지 않았다.
“딱히 장기영을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우리 교장이었던 사람이 인간쓰레기 같은 놈들에게 놀림당하는 걸 보니 뭐라고 해야 되나. 죽이고 싶더라고.”
영상을 찍은 이른바 크리에이터들은 그 당시가 전쟁 전이라는 사실에 감사해야 할 것이다.
뭐, 지금은 대부분 죽어서 뼈도 못 남겼겠지만 말이야.
“장기영 교장도 사람이 좀 이상했지. 노망이 들었다고 해야 하나. 사리판단이 안 되더라고. 이 사람이 날 놀리려고 이러는 건지 아닌지 의도도 이해 못해서 횡설수설하는데······.”
“그 이야기는 그쯤 하자.”
듣고 싶지 않다.
바닥에 내던져진 내 스승의 비참한 이야기는.
그의 비참함은 내가 직접 좁은 임대 아파트에서 본 것만으로 차고 넘친다.
“그만할게. 그런데 로봇을 만들겠다잖아? 그건 내가 그 렉카새끼 죽이고 싶다는 마음 품고 있을 때도 의아하게 들리더라고.”
“로봇?”
뭔 또 엉뚱한 짓을 벌리려고 한 거지?
로봇이란 게 몬스터 상대로 안 통한다는 거 중국에서 보고 배우지 않았었나.
학교, 더 가드라 불리는 대한민국 유일의 헌터 양성소의 수장이던 그는 정부 인사만큼이나 많은 실전 데이터를 넘겨 받았다.
“로봇이라기보다는 그 뭐냐. 사람이 입는 로봇 옷 같은 거 있잖아? 파워드 슈트라고 한?”
“그런 거 였나.”
있었지.
미국에서 만들던.
하지만 전자 장비를 교란하는 몬스터의 새로운 권능 앞에 그 잘난 파워드 슈트는 장착자의 관절 역방향으로 사정없이 꺾이며 탑승자를 마디마디 부러뜨린 수수깡처럼 만들었다.
“그건 아마 어렵겠지.”
도로 옆에 버려진 아파트 한 동이 보인다.
아파트 중층 부근에서 빛이 반짝거렸다.
거울을 이용한 신호다.
무슨 의미인지는 알 수 없지만 저 아파트에 사는 누군가가 도로 주변에 있는 누군가와 의사소통을 하는 건 확실하다.
디펜더가 속도를 늦췄다.
“돌아갈까?”
“기름은?”
“음. 돌아서 가면 왕복할 때 좀 못 미칠 수도 있겠어.”
“그럼 네가 안다는 단지에서 교환을 시도해보자. 합성유 한 통 정도는 있지 않겠어?”
“좋아.”
차량이 경로를 수정하는 가운데 디펜더가 다시 아까 그 화제를 꺼냈다.
“아까, 그 로봇 말인데.”
“말도 안 되는 소리지.”
단번에 잘라 말했다.
“허무맹랑한 소리긴 하지. 그런데 장기영 교장. 그 사람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그럴듯하게 늘어놓는 재주가 있잖아?”
“흠.”
인정한다.
내 은사는 “말빨” 하나만은 강한 남자였다.
“로봇은 분명 말이 안 되는데 로봇을 만든 배경은 그럴듯해서 기억에 남거든?”
“뭐라고 했길래?”
“몬스터가 분명 무서운 적인 건 맞지만 몬스터 개체 하나하나는 인간이 만든 기계마냥 엄격한 한계가 있다고.”
“흐음.”
“반사역장을 예로 들면 그건 일정 강도 미만의 모든 투사체를 역방향으로 정확하게 돌려주지만 그 강도 이상의 투사체가 오면 역장이 파괴되잖아?”
“포격처럼?”
“응. 그런 한계가 몬스터마다 있다는 게 장기영 교장의 주장이었어.”
“썩 새로운 주장은 아니네.”
“그렇지. 그런데 장기영 교장은 한 가지를 더 보탰어.”
“뭘?”
디펜더에게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몬스터의 개개의 권능 한계는 의외로 낮을 수도 있다는.”
“무슨 소리지?”
나도 모르게 언성을 높였다.
내 반응에 디펜더는 살짝 놀란 표정을 지으면서도 침착하게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주적인 인간을 상대하기 적당한 수준의 권능을 가진 게 아닐까 하는 게 장기영 교장의 생각이었어. 그래서 그 로봇 같은 걸 만든다고 말했지.”
“그래?”
코웃음을 치며 되물었다.
“응. 몬스터의 권능이 인간이라는 개체를 상대하기 위해 최적화된 레벨에서 조정되는 것이라면 녀석들의 데이터를 뛰어넘는 힘을 가진 인간을 만들면 그만 아니냐고.”
글쎄다.
나는 내 스승의 생각에 동의하지 못한다.
몬스터는 강하다.
너무나도 강하다.
장기영은 몬스터가 뿜어내는 파동의 힘을 정면에서 맞아본 적이 없다.
파동의 충격으로 실신을 해본 적도 없다.
그 파동이 어떤 기적을 일으키는지 직접 본 적도 없을 것이다.
그런 그가 몬스터의 한계를 운운한다는 게 뭐랄까, 내가 장기영에게 가진 냉소의 원인.
그래, 그의 무지를 다시 떠올리게 한다.
착잡한 생각 속에서 우리는 폐허가 된 도시로 진입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도시에 진입하기 전, 디펜더는 마스크와 선글라스, 그리고 낡은 야구 모자를 푹 눌러 썼다.
*
도시 곳곳에 파편화된 조직이 난립한다고 해서 반드시 그 조직들이 존망을 건 전투를 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도시 안엔 나름의 질서와 약조가 생겼다.
정복이라는 단어는 분명 매력적이지만 그 안에 내포된 전투라는 행위는 결코 매력적이지도 않고 실리를 주지도 않는다.
지금처럼 탄환 하나하나가 대체하기 어려운 자원이 된 시점에서 무분별한 전투 행위는 제3 세력에게 어부지리를 안겨주겠다는 선언에 다름 아니니까.
“부두 단지로 가려 한다.”
폐허 도시의 길목을 막고 나타난 무장 세력 앞에서 디펜더는 침착하게 용건을 말했다.
가스마스크를 쓴 사내가 돌아서서 무전기로 누군가에게 연락을 하고는 가라는 시늉을 하며 길을 열어 주었다.
“의외로 매너가 있는데?”
멀어지는 그들을 보며 말했다.
“상부상조 하는 거지.”
확실히 디펜더는 사이코패스 기질이 있다.
언제 뒤에서 배신의 총격을 가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도 땀 한 방울 흘리지 않는 걸 보면 말이다.
“상부상조?”
“나중에 자기 애들이 다른 세력 영역 지나쳐 갈 일이 있을 때 대비해서 말이야. 다수도 아니고 고물차 한 대 정도 지나가는 거야 별 위험도 안 되잖아?”
폐허는 많이 와봤지만 사람이 많이 사는 폐허는 여간하면 접근하지 않았다.
곳곳에 선 고층 건물의 창문 하나마다 위험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대로를 중심으로 양옆으로 펼쳐진 낮은 빌딩의 창가엔 잊을만 하면 총기를 든 사람이 창가에 선 채 이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디펜더는 이 구역에 와 본 경험이 있었다.
“······허준이라는 놈을 잡으려고 이곳에 왔었지. 광신도 중에서도 꽤나 지위가 높은 놈으로 인천에 숨어들어 불법 포교와 테러를 자행했거든. 김병철이 직접 김다람에게 척살 명령을 내렸고 그래서 우리가 동원됐어.”
“그 광신도는 어떻게 됐지?”
디펜더는 얕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못 잡았어.”
“본명이 허준이야?”
“아니. 본명은 아무도 몰라. 다만 병을 고치는 능력이 있다고 선전하며 사람들을 꼬드겨서 허준이라는 별명을 얻었지.”
“병을 고치는 어웨이큰이라.”
그러고보니 허종철이라는 친구도 있었지.
당시엔 비호감이지만 지금 시점에서는 꽤나 가치가 있는 친구다.
“허종철하고 연락 아직도 안 됐냐?”
“김병철 밑으로 갔다는 이야기는 들리더라고.”
“김병철? 그 사람 살아는 있냐?”
“글쎄.”
도로 너머에 차량 한 무더기가 길을 막고 있다.
또 다른 바리케이드, 또 다른 세력이다.
“어이. 어디로 가는 길이야?”
곳곳에 피어싱을 하고 마스크를 쓴, 범상치 않아 보이는 여성이 건들거리며 다가와 허스키한 목소리로 묻는다.
“부두 단지.”
“아. 부두 단지?”
여성이 코웃음을 쳤다.
“손님이야?”
디펜더가 고개를 끄덕였다.
“거기, 최근 썩 좋지 않은데.”
여성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머금으며 길을 열어주었다.
두 번째 통과.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우리는 8개가 넘는 각기 다른 세력권을 일일이 통과해야 했다.
검문과 통과 자체는 원만하게 이루어졌지만 검문 하던 이들이 그 피어싱으로 가득 찬 여성처럼 부두 단지에 일관적으로 냉소적인 반응을 보인 건 좋지 않은 예감으로 다가왔다.
아홉 번 째의 검문을 끝내자 멀리 오후의 태양을 받아 반짝이는 먼 바다와 우뚝 선 아파트 단지가 눈에 들어왔다.
“저 아파트였나.”
기억에 있는 아파트다.
연구소에서 하룻밤을 묵을 때 창문으로 보이던 아파트다.
무슨 카이저 어쩌구저쩌구 하는 휘황찬란한 이름을 가졌던 걸로 기억한다.
덜컹거리는 차량은 검은 매연을 뿜으며 단지 안으로 들어갔다.
단지내 상황이 좋지 않다는 건 단지에 들어가기 전부터 알 수 있었다.
곳곳에 전투의 흔적이 있고 아직 치우지 못한 시체가 잔해 아래서 썩어가고 있었다.
죽음의 냄새가 가득한 단지 안에서 총기를 든 사람들이 나타났다.
디펜더가 얼굴을 가리고 있던 것들을 제거하며 차에서 내렸다.
사람들이 총기를 내렸다.
그들은 디펜더를 알고 있었다.
디펜더가 굳은 얼굴로 주변을 돌아보며 물었다.
“이수칠 파트장은?”
총기를 든 사내 하나가 힘없이 답했다.
“죽었다. 12시간 전에.”
그가 손가락으로 구석을 가리켰다.
거기엔 폐비닐을 덮은 채 발을 내놓은 시신들이 줄지어 누워 있었다.
디펜더는 아무런 감정도 드러내지 않고 다음 질문을 던졌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총기를 든 사내가 힘없이 주저앉으며 고소를 머금었다.
“······광신도가 몬스터를 데리고 왔어.”
“캡슐?”
내가 물었다.
왜냐하면 그 사내가 한 말이 내 상식을 정면으로 부정하기 때문이다.
사내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캡슐 같은 게 아니야. 시발······. 진짜 몬스터를 끌고 왔다고! 살아서 움직이는 몬스터 그 자체를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