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a House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296)
아포칼립스에 집을 숨김-296화(296/466)
119. 도구 (3)
모든 사람이 진실을 말하는 건 아니다.
특히 그곳이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전장이라면 진실은 더욱 모호해진다.
왜냐하면 화자가 진실이라고 믿고 말하는 것조차 진실이 아닐 가능성이 높으니까.
“진짜야. 몬스터야. 놈들이 몬스터를 데리고 왔다니까?”
몬스터를 봤다고 주장하는 사내의 동공은 확장되어 있었고 간헐적으로 몸을 격하게 떨어댔다.
각성제를 복용한 것처럼 보인다.
그 의도는 순수하겠지만 사내의 발언은 신빙성을 잃는다.
이런 경우 교차 검증을 한다.
생존자가 한 명이라면 모르겠지만 여럿이 있다면 두루 확인해야 한다.
다만 이러한 교차 검증이 반드시 정답을 주는 건 아니다.
“광신도가 몬스터를 끌고 왔어. 나도 봤어.”
“끌고 왔다기보다는 데리고 온 거지. 마치 명령을 내리는 것 같았어.”
“데리고 온 건 맞아. 놈들을 보자마자 숨긴 했지만.”
전장에서는 광기가 쉽게 전염되는 법이니.
다만 증언자의 다수는 각성제를 복용하지 않았고 진술에 일관성이 있는 것도 눈여겨 봐야 할 점이다.
“권찬영이라고 합니다.”
현재 단지를 이끄는 건 권찬영이라는 이름의 젊은 의사였다.
누렇게 변색 된 의사 가운 곳곳엔 아직도 선명한 붉은 핏자국이 묻어 있었다.
건강 상태도 정신 상태도 여기서 만난 사람 중 가장 뛰어나다.
그라면 진실을 확인해줄 것이다라는 기대를 하며 질문을 던졌다.
“정말로 광신도가 몬스터를 움직였나요?”
권찬영은 생각에 잠겼다.
“같이 온 건 맞아요. 그건 확실해요. 하지만 광신도가 명령을 내린다거나 그런 건 본 적이 없었죠. 하지만 돌아갈 땐 함께 였죠. 보란듯이 우리 단지를 초토화하고 신도와 함께 돌아갔죠.”
믿기 어려운 이야기다.
하지만 이토록 다양한 사람의 입에서 같은 진술이 나온다면 최소한 받아들일 준비는 해야 한다.
여전히 우리 인류는 몬스터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그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아는 게 틀렸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디펜더가 권찬영에게 약간의 선물을 내밀었다.
술과 담배, 그리고 탄약이다.
선물을 대가로 디펜더는 자신이 접촉하기로 한 내부 조력자에 관해 물었다.
선물 덕분인지 권찬영은 황망한 와중에도 제대로 답변을 하려고 노력했다.
“이수칠씨는 용감하게 싸우다 갔습니다. 몬스터 옆에서 몬스터를 조종하는 신도를 죽이려고 하다가 반사역장에 그만 유명을 달리 하셨죠. 그 신도도 어웨이큰이었거든요.”
뒤이어 권찬영은 광신도에 관해서도 이야기했다.
“······놈들은 아이들을 요구합니다. 특히 어웨이큰 적격이 있는 애들을 기를 쓰고 데려가려 하죠. 놈들이 그 아이들을 가지고 무슨 짓을 하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적어도 그들이 데려간 아이들 중에 돌아온 아이가 단 하나도 없다는 건 여기 있는 모두가 아는 사실입니다.”
풍수지리는 믿지 않지만 터라는 게 있긴 한가 보다.
부두 주변에 자리 잡은 광신도가 그 주변에 연구소를 차렸던 우민희와 비슷한 짓을 하고 있는 걸 보면 말이다.
광신도는 주변 공동체에 사절을 보내 아이들을 요구했고 아이가 없으면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젊은 여자를 요구했다.
단지는 오래 전부터 광신도의 요구에 시달렸고 여러 아이를 넘겨줬지만 광신도는 만족을 몰랐다.
하나를 주면 둘을 요구하고 둘을 주면 전체를 요구했다.
“모두가 반대했죠. 그들과 싸워봐야 우리 주변의 이웃만 좋아할 거라고. 입도 줄일 겸, 그냥 아이들을 넘겨주자는 의견이 대세였죠.”
권찬영은 바닥에 힘없이 주저 앉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개소리였어요. 싸우는 게 옳았어요.”
그러자 뒤에서 우리를 지켜보던 왜소한 장년 사내가 새된 목소리로 말했다.
“싸운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잖아. 싸운 게 이 결과잖아!”
권찬영의 발언이 마음에 안 드는 모양이다.
권찬영은 들은 체도 하지 않았지만 사내는 계속해서 자신을 변호하는 듯한 어조로 쉬지 않고 말했다.
“그나마 안 싸웠으니까 지금까지 버틴 거야. 지금까지 살아서 불평이나 늘어놓을 수 있다고! 뭐가 똥인지 된장인지도 모르면서 뭘 안다고 씨부려!”
디펜더를 바라보았다.
더 이상 여기서는 얻을 게 없다.
디펜더는 한숨을 내쉬며 주변을 돌아보았다.
“차량을 맡기기 좋은 상황은 아니네.”
“그러면?”
“직전까지 가서 세워두고 오는 게 그나마 나을 거 같아.”
“그게 좋겠지?”
보아하니 부족한 기름을 여기서 얻을 것 같지도 않다.
그래도 여기까지 오는 동안 여러 세력을 확인했으니 그중 하나와 물물교환을 하면 되겠지.
슬슬 여기를 떠날 때가 왔다.
작별인사를 맡은 건 디펜더였다.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저희도 도움을 드리고 싶은데 아시다시피 이쪽도 사정이 워낙 안 좋아서요.”
“아닙니다. 조심해서 가세요.”
디펜더가 먼저 차로 향했다.
주변을 보았다.
병풍처럼 늘어선 고층 아파트, 그 아래 펼쳐진 폐허가 된 지상 공원.
전쟁 전엔 얼마나 많은 사람이 여기 살았을까.
아마 행복한 삶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조금만 시간이 지난다면 이 드넓은 단지에 사람은 찾아볼 수 없겠지.
얕은 한숨을 내쉬고 디펜더의 뒤를 따랐다.
권찬영이 피로 물든, 수술용 고무장갑을 낀 자신의 손을 바라보며 쓸쓸히 중얼거렸다.
“······페일넷만 있었다면.”
딱히 이 집단에 대한 동정은 없다.
멸망기의 흔한 모습이다.
멸망이라는 운명을 선고받은 인류가 소멸하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하지만 권찬영이 내뱉은 3음절로 이루어진 단어가 내 심금을 울렸다.
“페일넷?”
권찬영에게 말을 걸었다.
갑작스러운 질문에 권찬영은 피로한 와중에도 약간의 놀라움을 드러내며 날 응시했다.
그를 바라보며 준비한 질문을 던졌다.
“혹시, 그 페일넷이란 거. 혹시 존내논님이 만든?”
“존내논?”
“존내논님 모르세요?”
“아, 그러고 보니 페일넷이 망하기 전에 그런 닉네임을 쓴 관리자가 있었죠. 뭔 자기 닉네임을 그렇게 크게 표시하는지.”
“아······!!”
역시.
사람들은 페일넷과 존내논을 그리워 하는군.
확실히 하기 위해 질문을 던졌다.
“페일넷이 있었다면 뭔가 달라졌을까요?”
이에 권찬영은 확신을 담은 얼굴로 나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페일넷이라는 게 엉성하고 난잡하긴 해도 멀리 떨어진 사람들을 묶어주는 매개체 역할은 할 수 있었잖아요?”
권찬영이 쓴웃음을 머금으며 이제는 아무것도 잡히지 않는 낡은 휴대폰 화면을 응시했다.
“······이제는 아무것도 없죠. 아무것도.”
“······.”
그를 뒤로 하고 차량에 올라탔다.
디펜더가 물었다.
“무슨 이야기 한 거야?”
“그냥. 시시콜콜한 인터넷 이야기.”
시시콜콜한 것만은 아니다.
중요한 이야기다.
어쩌면 지금 내가 찾아가려는 은사 만큼이나.
*
부산한 건물의 배치, 전쟁 당시 파괴되어 방치된 잔해, 곳곳에 선 요란한 천막, 그리고 끝없이 넘실거리는 서해 바다.
오랜만에 찾은 부두는 내가 헌터 거리에 잠시 머물렀을 때, 또 엠구와 백승현의 현피를 막으러 갔을 때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서글픈 일이다.
분명 내가 아는 풍경이건만, 그 안에 내가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건.
이제는 부두가를 가득 채운 사람도, 건방지고 오만한 정부 요원도, 내 후배 우민희도 없다.
디펜더의 정보에 따르면 부두에 남은 건 좀비와 광신도 정도.
그나마 디펜더가 최종적으로 부두에 들렀을 때 몬스터는 발견되지 않았다고 하지만 단지 사람들은 몬스터를 끌고 다니는 광신도를 언급했다.
디펜더와는 여러 번 손발을 맞췄다.
팀까지는 아니지만 짧은 눈빛 교환과 수신호만으로 서로의 의사를 확인할 수 있다.
무엇보다 값진 자산은 신뢰다.
나도 디펜더도 서로를 믿는다.
디펜더가 먼저 정찰을 갔다.
간간이 보여주는 그의 섬뜩한 기질에 실망을 하면서도 그가 솔선수범 하는 모습을 보면 아무래도 좋다는 생각이 든다.
거듭 강조하지만 디펜더는 대단히 우수한 헌터다.
헌터 그 자체의 능력은 범용하지만 대인 전투, 수집, 정찰, 생존 기술 등 나보다 뛰어난 장기가 몇 개나 있다.
어둠은 좀비의 영역이지만 좀비보다 위험한 것들이 있기에 밤이 되길 기다려 활동하기로 정했다.
곧 디펜더가 정찰에서 돌아왔다.
“좀비의 숫자는 내가 있을 때보다 줄어들었어. 반토막 정도가 아니라 거의 전멸을 시킨 수준인데?”
“광신도의 짓이겠지?”
“아마도.”
좀비는 군단파로부터 광신도를 지켜주는 방어막이지만 군단파가 와해된 지금은 귀찮은 유해조수에 지나지 않는다.
만월을 향해 차오르는 달 아래서 우리는 한동안 숨을 죽이고 부두의 동향을 주시했다.
밤이라는 시간의 특성 상 눈으로는 많은 정보를 얻을 순 없지만 소리가 이 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수시로 알려준다.
가장 빈번하게 들리는 소리는 풀벌레 소리다.
좀비의 울음이 아무리 음울하다고 하지만 가을을 바라는 풀벌레들의 합창 앞에서는 한없이 초라해진다.
배경음처럼 깔린 풀벌레 소리 너머로 들려 올 여러 소리를 기다렸다.
“스켈톤.”
나란히 포복을 하고 누운 디펜더가 입을 열었다.
용건이 있는 눈치다.
나름의 각오를 하며 대답했다.
“무슨 일이냐.”
“내 동생 말인데.”
“어.”
“왜? 네 취향이 아니야?”
뭔가 했더니, 그거였나.
“네 동생.”
“응.”
취향이라.
미인에다가 옛 친분도 있고 적어도 내 앞에서는 밝은 여자다.
남자로서는 마다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뭐라고 해야 되나.
다르다고 할까.
나와는 다르다는 본질적인, 거부감에 가까운 감정이 나를 가로 막는다.
“뭐야.”
희미한 미소를 머금으며 디펜더를 바라봤다.
여전히 수려한 얼굴.
그 얼굴은 오로지 나의 답만을 기다리고 있다.
“진짜 날 스서방으로 삼으려고?”
“삼으면 좋지.”
“······제법 강하게 나오네.”
미소를 짓는 나와 다르게 디펜더는 표정이 없다.
그만큼 진지하다는 이야기다.
마찬가지로 얼굴에서 웃음기를 지우며 잠시 생각을 했다.
“그거 아냐?”
“?”
“지금 우리가 찾는 양반 말이야. 장기영 교관.”
“나한테는 교장이지.”
“그 양반이 날 결혼시키려고, 정확히는 아이를 만들게 하려고 얼마나 용을 쓴 줄 알아?”
학교 출신 헌터답게 디펜더는 금세 내 말에 숨겨진 역사적인 배경을 빠르게 이해했다.
“아, 그 뭐냐. 헌터 2세 계획이었나. 우수한 헌터들이 빠르게 아이를 갖게 하기 위한?”
정확히는 우수한 헌터의 번식 계획이 아니라 몬스터와 자주 접촉한, 균열에 오염된 우리 몸이 다음 세대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확인하려는 연구의 일환이겠지.
어느 쪽이든 간에 장기영의 의도는 너무나도 뻔했다.
“그 양반이 나에게 몇 번이나 짝을 지어주려 했었지.”
“금시초문인데.”
“네가 아는 김다람도 그 후보였다.”
“진짜······?”
천하의 사이코패스 디펜더도 김다람 이야기가 나오니 표정이 변하는군.
어디까지 이야기 해줘야 하나.
“김다람 본인은 입을 꾹 닫고 있지만 다 확인할 방법이 있지. 김다람이 내 첫 팀원으로 찾아오기 전에 장기영에게 먼저 불려갔다는 걸 다른 녀석이 내게 알려줬거든.”
“장기영이 김다람 팀장을 스켈톤, 아니 프로페서에게 보냈다는 이야기야?”
“어디까지나 추측의 영역이지만 가능성은 높지.”
“이건. 진짜. 헌터! 아포칼립스!가 있다면 영구 인기글 수준인데?”
“흠, 그 정돈가?”
사실은 썩 대단한 일은 아니다.
김다람도 나도 서로에 대한 흥미는 단 하나도 없었다.
남녀를 떠나 처음부터 팀장과 부하로 고정된 듯한 그런 관계였다.
사실을 좀 더 이야기하자면 나는 김다람처럼 속물적이고 억척스럽고 고릴라처럼 무서운 여자는 취향이 아니다.
현재 김다람의 추태를 보면 과거에도 나는 통찰력을 가지고 있었던 모양이다.
“김다람만이 아니야. 여기 있던 우민희도 장기영의 짝 지어주기 후보 중 하나였어.”
“그건 좀 믿기 어려운데.”
“우민희는 미수에 그쳤으니. 하지만 중국에서 죽거나 이제는 어디에 있는지 소식조차 알 수 없는 학교 출신 여자 다수가 장기영의 계획으로 내 주변에 의도적으로 배속된 건 사실이지.”
내 팀원 중 여성 비율이 다른 팀보다 월등하게 높은 것이 그 추측을 뒷받침한다.
지원 요원까지 포함하면 적게는 20%, 많게는 60% 넘을 정도였다.
하지만 당시의 프로페서는 오로지 하나의 목적을 위한 도구였다.
바로 몬스터를 죽이기 위한.
“······그런 경력이 있는 내가, 옆에 미모의 여성 하나 있다고 해서 쉽게 넘어 가겠냐?”
디펜더가 피식 웃었다.
“만만치 않네.”
“그래. 만만치 않지.”
“스켈톤은 만만해보이는데.”
“스켈톤은 더 만만하지 않지.”
농담을 주고 받던 우리는 약속이나 한 것처럼 입을 다물었다.
파공음이 달빛이 비추는 부두 저 편에서 공허하게 울려 퍼졌다.
깡!
소리의 형태가 거리로 인해 뭉개져서 확신할 순 없지만 이건 둔기로 인간의 신체, 특히 머리를 강타하는 소리다.
왜 이런 소리를 기억하냐면 성난 중국군이 반란군을 줄지어 세워두고 총알도 아깝다고 비닐봉지를 머리에 씌워 죽이거나 그들이 여의봉이라 부르는 대좀비용 둔기로 반란군의 머리를 부수는 소리를 수도 없이 들었기 때문이다.
“광신도다.”
곧 우리는 달빛 아래 모습을 드러낸 적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종파가 원주에 있던 놈들과는 다른지 평범한 복장을 입고 있지만 모두 선거에 나오는 정치인이 두르는 하얀 휘장 같은 걸 두르고 있다.
그들의 수는 다섯 명. 샷건을 든 광신도 외엔 모두 묵직한 둔기를 들고 있었는데 그들은 산책하듯 거리를 거닐며 비틀거리는 좀비들의 머리를 둔기로 으깨고 있었다.
“하하하하!!”
흩어지는 웃음소리를 통해 우리는 광신도가 그 일을 즐기고 있다는 걸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천천히 걸어 그들을 시야에 넣으며 놈들의 순찰 경로를 확인했다.
부두 창고 앞에서 광신도들이 멈췄다.
“돌아가자.”
좀비들을 도살하던 광신도들이 뒤돌아섰다.
곧 우리는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딸랑- 딸랑-
종소리가 울려 퍼진다.
동시에 덜컹거리는 수레바퀴의 소리 또한 들려온다.
달빛 아래 리어카 한 대가 움직이고 있었다.
그 리어카를 끄는 사람은.
“교관님.”
내 은사 장기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