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a House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300)
아포칼립스에 집을 숨김-300화(300/466)
119. 도구 (7)
모르는 타입과는 교전을 지양하라.
헌터의 금과옥조다.
관측된 적이 없는 신형 몬스터와 싸우는 영광은 오직 가장 경험이 많고 노련한 헌터 팀에게만 주어진다.
현역 시절 신형 몬스터의 상대와 처리는 늘 우리의 몫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세월이 흘러 나도 과거의 날카로운 감을 잃었고 내 옆을 지키던 뛰어난 동료들도 어디론가 사라졌다.
디펜더를 폄하하고자 하는 게 아니다.
그는 대 몬스터보다 대인 전에 적합한 인재다.
가장 큰 문제는 저 여포 타입이 전투형이라는 거다.
전투 타입은 말 그대로 전투에 특화된 타입이다.
하수인은 부리지 않지만 대신 본신의 압도적인 전투 능력으로 그들의 적 – 특히 인간 상대로 통렬한 피해를 주려 한다.
어쩌면 내가 제주에서 상대했던 신종도 전투 타입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문제는 침투형도 아닌 전투형이 어떻게 그들에게 적대적인 지구라는 환경 속에서 소멸하지 않고 버티냐는 건데 애당초 지금 상황 자체가 내 상식을 아득히 벗어났다.
당장 내 앞엔, 이미 죽은 내 은사가 좀비가 되어 해괴한 물건을 만들고 있고 사이코패스인 디펜더가 날 위해 목숨을 걸고 옆을 지켜주고 있을뿐더러, 인류의 적인 몬스터가 인간의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
가장 기괴한 사실은 내가 미쳐버린 은사의 고집에 어울려 줬다는 것이겠지.
과거의 나라면, 장기영이 기억하던 프로페서에겐 1%의 여지도 없는 일이었다.
이 한여름 밤의 꿈 같은 현실 속에서는 뭐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겠지.
그러므로 저 전투형이 왜 광신도의 말을 듣는지는 지금은 무시하기로 하자.
쿵!
몬스터가 다가온다.
여포라는 인물을 차용한 이름과 다르게 녀석은 인간을 조금도 닮지 않았다.
원반을 닮은 몸체를 열여섯 개에 달하는 3개 혹은 4개의 관절을 가진 긴 다리로 지탱하며 보행한다.
왜 저 허버트 조지 웰스의 화성인 같은 놈이 여포인지는 지금은 사라진 중국인에게 물어봐야 할 문제겠지.
뭐, 그들은 이름 붙이는 걸 좋아했다.
이미 미국에서 발견되어 이름까지 붙여진 기존 몬스터에게도 그들식의 이름을 붙일 정도니.
그중 하나가 관우 타입이라는 건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난다.
중요한 건 내가 저 타입에 대해 아는 게 생김새와 역할군 뿐이라는 것이겠지.
녀석이 어떤 식으로 인간을 공격하고 인간을 해치는지는 알지 못한다.
이제 곧 알게 되겠지. 놈이 뭔가를 사출했다.
그것은 회백색의 원반.
어떤 원리인지 모르겠지만 스스로 부양하고 있다.
“스켈톤.”
“보고 있다.”
단지 내 주민에게 정보를 들을 걸 그랬나.
아니, 그건 어려웠겠지.
당시로는 이런 상황이 올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자초한 위험이다.
우우우우웅—
몬스터가 또 하나의 원반을 사출했다.
둘, 셋, 그리고 다섯.
방사형으로 퍼진 열여섯 개의 다리 아래에 차례차례 공중에 자리 잡는다.
느낌이 좋지 않다.
“위협사!”
교본에 따라 내 행동을 팀원에게 알리며 인티미데이팅을 가했다.
탕!
아슬아슬하게 스칠 정도로.
내 물음은 내가 잘 아는 답으로 보답받았다.
쿵!
충격파.
그리고.
쉬익-
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탄환의 서늘한 감각.
팅!
탄환은 장기영 쪽의 고물을 맞고 튕겨 나왔다.
그 고철 중 금속판이 심벌즈를 연상케하는 여음을 창고 안에 흩뿌리는 가운데 원반들이 움직였다.
우우우웅–
원반들이 날아온다.
단체로 줄지어서.
“드론?!”
디펜더의 말에 동의한다.
저건 드론이다.
드론 말고는 떠오르지 않는다.
“뒤로 물러나!”
“어, 응!”
“위협사!”
원반에게 인티미데이팅을 가했다.
탕!
반응이 없다.
하지만 그 찰나의 순간 원반들은 무시무시한 속도로 거리를 좁힌다.
앞다투어 날 향해 날아드는 원반을 보는 순간 익숙한 졸음이 눈꺼풀을 잡아끈다.
드디어, 나도 그곳으로 가는 건가.
내 친구와 동료, 내가 죽게 내버려 둔 사람들이 기다리는 곳으로.
“······.”
아니, 아직은 아니다.
아직은.
나에겐 할 일이 있다.
해야만 하는 일이 있다.
꿀꺽!
다가오는 원반들을 보았다.
우우우우웅–
타타타타탕!
속사.
원반이 차례차례 떨어지는 가운데 그중 하나가 날 정면으로 덮쳤다.
도끼를 휘둘러 원반을 쳐냈다.
쩍!
호흡을 멈추고 내가 도끼로 찍은 놈을 노려보았다.
“······.”
폭발하지 않는다.
그리고 내 도끼가 먹힌다.
도끼에 찍힌 원반은 아마도 나를 죽일 목적으로 사용했을 여러 개의 날카로운 주둥이를 발작적으로 놀리며 금빛의 입자로 산란하기 시작했다.
“······.”
이게 끝은 아니겠지.
아니, 시작도 안 했을 것이다.
저것이 “전투형”이라면.
아니나 다를까.
웅웅웅웅—-
열여섯 개의 다리를 가진 몬스터는 자신의 몸체 아래 열 개가 넘는 원반을 이미 토해낸 뒤였다.
“디펜더.”
디펜더에게 말했다.
“응.”
“인티미데이팅 가능해?”
“그, 그게.”
자신이 없어 보인다.
역시 그는 몬스터 상대로는 유능한 인재는 아니다.
“그럼 원반을 요격해줄 순 있겠어?”
“그건 가능해.”
“조심해. 몬스터 쪽으로 쏘지 않게 해. 재수가 없으면 의도치도 않은 반사역장에 몸에 구멍이 날 수도 있으니까.”
“무슨 일을 하려고?”
“생각이 있다.”
부두 창고의 구조는 대동소이하다.
옥상에서 승부를 볼 것이다.
극도로 위험한 방법이라 천하의 장기영조차 금지한 전술이 있다.
하지만 그것 말고는 답이 없어 보인다.
디펜더에게 뒤를 맡기고 옥상을 향해 뛰었다.
“박규!”
시커먼 인영이 날 가로막는다.
장기영이다.
가장 중요한 순간에 그가 날 가로막은 것이다.
용도를 알 수 없는 잡동사니를 신주단지처럼 안아든 채.
“받아! 완성했어! 자네에게 날개를 달아줄 비장의 무기를 완성했다고!”
그를 지나치려 했다.
그가 나를 재차 가로막는다.
“어서 써봐. 써보라고. 저기 몬스터가 있지? 안성맞춤이네! 자! 나의 신무기 이카루스를 써보라고!”
“······교관님.”
농담할 시간은 없다.
이미 죽어버린 그의 파편과 어울려 줄 생각도 없다.
한때는 그런 생각이 있었지만 목숨이 경각에 달린 지금은 잠시 뒤로 미뤄둔 내 이기심이 더 큰 목소리로 내 안에서 떠들고 있다.
“박규. 써보라고.”
“그만 좀 하세요!”
나도 모르게 고함을 질렀다.
창고 전체가 쩌렁쩌렁 울릴 정도로.
그러나 고함의 여음은.
타타타탕! 탕! 탕!
긴박한 총성에 의해 묻혔다.
탕!
나도 그 총성의 행렬에 한 발 보탰다.
두 번째 원반을 모두 떨궜다.
내 스승을 보았다.
“······.”
좀비면서도, 좀비 주제에 내 스승의 모습을 한 파편은 어리둥절하고 충격을 받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눈을 질끈 감고 그를 지나쳤다.
“이거 보라고······.”
장기영이 장치의 스위치로 추정되는 레버를 당겼다.
푸쉬쉬-
장비는 바람 빠진 풍금 같은 우스꽝스러운 소리를 내며 힘없이 바닥에 떨어졌다.
그를 무시하고 앞으로 걸어갔다.
옥상.
바다 내음이 나는 바람이 내 머리칼과 볼을 스친다.
경사가 꽤 급한 넓은 맞배지붕 위를 달려 몬스터를 시야에 담았다.
웅웅웅우웅—
점입가경.
이런 상황에 쓰는 말일 것이다.
몬스터는 이제 셀 수도 없는 원반을 전개한다.
대충 잡아 30개.
“저기! 저기! 이교도가 있다!”
아직 광신도는 날 발견하지 못했지만 몬스터는 다르다.
놈들은 자체적으로 어웨이큰이 가진 대부분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
감지 능력도 그중 하나다.
원반이 비행한다.
그 대부분이 날 향한다는 건 그만큼 몬스터가 내가 위험한 타겟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겠지.
조정간을 단발로 바꾸고,
탕! 탕! 탕! 탕! 탕!
속사를 가한다.
한 발에 하나씩.
원반은 속절없이 떨어졌다.
그럼에도 다섯 기가 남아 나를 덮쳐보지만,
스르릉-
달빛을 머금은 도끼날이 녀석들을 차례차례 응징한다.
“스켈톤!”
창고 아래서 디펜더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엄호 좀 부탁해!”
“엄호?”
“몬스터 말고 사람!”
철컥-
빈 탄창을 버리고 새 탄창으로 교체하며 내 발밑에 열여섯 개의 다리로 버티고 선 몬스터를 노려본다.
반사역장을 사용하는 본격적인 몬스터가 등장한 이래 수많은 선배 헌터가 그것들을 죽이기 위한 갖가지 방법을 시험했다.
인류 문명 도약기, 인류 발전을 위해 기꺼이 죽음을 감수했던 선구자처럼 그들은 이제는 멍청한 짓이라고 놀림 받는 극한의 방법조차 시도하고 또 시도했다.
내가 사용하려는 전술도 그중 하나다.
죽은 자의 왈츠(Dead man’s waltz).
몬스터가 반사역장을 펼치는데 드는 에너지는 탄환 100발을 막건, 1발을 막건 비용이 동일하며, 몬스터가 가용할 수 있는 에너지는 한계가 있다는 단순한 발상에서 비롯된 전술이다.
방식은 이름에서 따온 왈츠와 비슷하다.
탕!
위협사.
탕!
약간의 간격을 두고 위협사.
탕!
또다시 간격을 둔 위협사.
쉭- 쉭- 쉭-
위협사를 가할 때마다 역장에서 토해낸 탄환이 내 머리를 아슬아슬하게 스친다.
이 세 박자의 인티미데이팅을 두 번을 반복한다.
탕! 탕! 탕!
그리고.
타타타탕!
본체에 총격.
탄환은 정확하게 녀석의 몸통에 박혔다.
여섯 번의 인티미데이팅 후 한 번의 정타로 원거리에서 몬스터를 사냥하는 것.
이것이 죽은 자의 왈츠다.
하지만 이걸로는 부족하겠지.
보통은 강력한 펀치력을 가진 대물 저격총을 가진 사수가 마지막 유효타를 노린다.
하지만 이 여섯 번이라는 숫자가 반드시 검증된 건 아니다.
가끔은 여섯 번의 왈츠를 추고도 몬스터는 반사역장을 펼치곤 한다.
전술 이름에 죽은 자라는 말이 들어간 이유다.
게다가.
탕! 탕! 탕!
몬스터도 학습한다.
세 번의 인티미데이팅을 가했지만 몬스터가 반응한 건 첫 번째뿐.
진정한 죽음의 무곡을 추기 위해서는 이쪽도 목숨을 걸어야 한다.
탕!
타점을 바꾼다.
몬스터의 좌하.
역장이 펼쳐진다.
쉬익-
머리 옆을 아슬아슬하게 스치는 탄환의 서늘함을 느끼며 다시 방아쇠를 당겼다.
탕!
몬스터의 우상부.
쉬익-
탕!
몬스터의 정면으로부터 아주 약간 비껴 난 부분.
쉬익-
통증이 느껴진다.
주르륵-
피가 흐른다.
본의 아니게 스켈핑을 한 모양.
고통을 무시하고 연이어 세 번의 다른 타점을 속사로 노린다.
탕! 탕! 탕!
세 번의 인티미데이팅, 세 번의 반사역장.
조정간을 즉시 연사로 돌리고,
타타타타타탕!
통렬한 타격을 가한다.
몬스터가 휘청거린다.
“스켈톤!”
아래에서 디펜더의 외침이 들려왔다.
“너, 사람 맞냐? 아니, 어떻게 총만으로 저런 걸 때려잡냐고?!”
철컥-
탄창을 갈아 끼우며 반격에 대비했다.
원반이 날아왔다.
총격과 도끼로 몬스터의 피조물을 모조리 떨어뜨리고 다음의 무도를 준비한다.
한 번, 아니 두 번의 유효타면 놈을 죽일 수도 있겠지.
그런데.
타타타타탕!
광신도 쪽에서 총격을 가한다.
기관총이다.
지붕에 일자형으로 탄환이 만든 죽음의 궤적이 그려지는 게 보인다.
“옥상의 놈을 죽여!”
“헌터다! 진짜 헌터야!”
입술을 질끈 깨물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
거의 다 잡았는데.
나 혼자서 끝장낼 수 있었는데.
내 치기 어린 분노는 사방에서 울리는 총성이 지워버렸다.
탕! 탕! 탕!
이제 광신도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그들이 신으로 모시는 몬스터를 지키기 위해 주변에 좀비에 아랑곳하지 않고 사방에서 총기를 들고 쇄도하기 시작한 것이다.
“디펜더!”
아래에 있을 디펜더에게 소리쳤다.
“먼저 달아나라.”
“뭐? 무슨 소리야?”
“내가 막고 있을 테니까 그 틈에 뒷길로 달아나라고.”
“아니, 왜?”
“발렌타인에게 부탁한 일이 있다.”
“발렌타인······?”
“그래. 아주 중요한 일이다. 아주 중요한 일이야.”
타타타타탕!
기관총의 탄환이 다시 지붕을 훑기 시작한다.
그런데.
푹!
발이 부서진 틈새에 빠졌다.
깊다.
바로 빼낼 수 없다.
“······.”
설상가상으로 탄환의 궤적이 날 쫓는다.
피할 수 없다.
죽음이다.
나도 모르게 쓴웃음을 머금으며 운명을 가만히 응시하고 있을 때였다.
쿵!
바로 뒤에서 이 세상의 섭리를 무너뜨리는 파공음이 울려 퍼졌다.
몬스터의 고동이다.
그리고 나는 보았다.
날 반으로 갈라놓을 것처럼 지붕을 뚫으며 다가오던 탄의 세례가 갑자기 아주 희미한 장막에 삼켜지며 마술처럼 사라지는 것을.
“아아아아악!!”
반사역장이다.
누군가가 날 향해 반사역장을 펼쳤다.
뒤를 보았다.
지붕 위에 앙상하게 마른 좀비가 서 있다.
두 손에 금속으로 만든 조잡한 장비를 든 그 좀비는 어둠 속에서도 빛나는 눈을 가지고 있다.
“······교관님.”
“박규.”
장기영이 내게 다가왔다.
“이걸 받아라. 이건 정녕으로 쓸모가 있다.”
“교관님.”
“이 물건 그 자체로는 쓸모가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너라면, 내가 사랑한 유일한 제자인 너라면 내가 여기에 담으려는 뜻을 알 것이다.”
짧은 문답 속에서 우리는 10년도 더 전의 과거로 돌아와 있었다.
높은 천장이 있는 강당 안.
구슬땀을 흘리며 오리걸음으로 강당을 도는 학생과 지금보다 젊었던 장기영과 그 앞에 서 있는 어리숙한 나.
그 안에서 장기영은 내 스승이었다.
“네가 어웨이큰이 되려고 노력한 건 잘 안다.”
그래.
그랬었지.
어웨이큰이 되기 전, 평범한 사람일 때도 그의 눈에선 빛이 났다. 빛이 났던 것 같았다.
“그건 잘못된 방법이야.”
“······.”
“내가 돼봐서 알아. 놈들과 같아지면 놈들과 같은 목소리를 들어. 그 목소리는 여러 개지만 그중엔 거역할 수 없는 목소리도 있어. 그리고 저놈.”
장기영이 몬스터를 내려보았다.
“나와 비슷해 보이는군. 하지만 오래가진 않겠지.”
“교관님.”
“······놈들을 움직이는 놈이 있다. 그래. 네가 본 그놈.”
장기영이 자신이 만든 조잡한 장비를 내밀었다.
“네가 장군이라 이름 지은 놈.”
불가피했다.
그걸 거부하는 건.
지금 이 기묘한 공간 안에서 장기영은 전성기의 내 스승이고 나 또한 과거의 무력한 소년이었으니.
“너만이 그 놈을 죽일 수 있다. 강한민도 나혜인도 아니야. 그들은 못해. 그들은 그들과 같아. 그러므로 그들의 목소리를 듣지 않는 프로페서. 아니, 나의 제자. 박규. 너만이 놈을 죽일 수 있다.”
쿵!
환상은 장기영이 일으킨 충격파에 의해 산산이 조각났다.
“가라.”
“······.”
“후배도 챙겨라.”
“네. 교관님.”
나는 장기영의 수제자다.
언제나 그의 말을 잘 따랐다.
조잡한 장비를 안고 사다리로 향했다.
뒤에서 서늘한 소리가 들려 온다.
웅웅웅웅—
원반이 날아오는 소리다.
그러나 그 소리는.
“내 제자에게 손대지 마라!”
장기영의 고함에 묻혔다.
그 이후의 상황은 혼란이라는 한 단어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쉴 새 없는 충격파, 흩어지는 총성, 원반의 습격, 질주, 쓸데없이 크고 걸리적거리던 스승의 장비, 좀비, 좀비, 좀비들, 그리고 만월이 되어 가는 달 아래 지붕 위에 홀연히 서 있는 내 은사 장기영.
“······안녕히 계십시오.”
그에게 정중하게 인사를 한 것만은 그날의 혼란 속에서 뚜렷하게 남은 몇 안 되는 기억이다.
*
“대체 이게 뭐야?”
하태훈이 난감한 얼굴로 장기영의 도구를 응시했다.
“도대체 어디에 쓰려는 건지 알 수가 없네. 원리는 아주 단순해. 원시적이야. 몬스터 장비의 분리 장약 급탄 방식을 조잡하게 모방한 방식이거든.”
도구의 진정한 의도를 파악한 건 아무도 없었다.
모두가 그걸 조잡한 잡동사니라는 쉬운 표현으로 해석했다.
“좀비가 만든 거라며? 세상에. 강시가 있다는 말은 들어봤는데 실제로 그런 좀비가 있을 줄이야.”
제작자가 좀비라는 것에만 주목하는 의견도 있었다.
빙그레 웃으며 돌아섰다.
이제 만월이 된 달 아래엔 기반이 잡힌 내 영역이 그럴싸하게 펼쳐져 있다.
여러 개의 방공호, 외벽, 방재혁 어머님의 텃밭, 곳곳에 설치된 방어시설, 그리고 최근 하태훈이 짓고 있는 태훈 하우스.
“후우.”
흐뭇한 한숨을 내쉬며 만월을 바라보았다.
내 스승은 살아 있을까.
글쎄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겠지.
나는 장기영이 만든 조잡한 도구에 숨겨놓은 진정한 의미를 알고 있다.
나는 그의 도구가 아닌, 그가 가장 사랑했던 제자니까.
내 스승이 살아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