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a House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309)
아포칼립스에 집을 숨김-309화(309/466)
124. 연극 (3)
언젠가 헌터가 강하냐, 군인이 강하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아마 중국에서 활동하고 있을 때였다.
학교에서 혹독한 교육을 받고 국가적인 지원과 지지를 받고 전지에 임한 우리 학교 출신들은 대체로 헌터가 군인보다 강한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개인 대 개인으로 붙는다면 맞는 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집단 대 집단이 붙는다면?
경험 많은 병사와 유능한 지휘관이 있는 군인 집단 상대로 싸운다면?
나는 아니라고 할 것이다.
애당초 우리는 몬스터라는 현대에 나타난 괴물을 처리하기 위해 맞춤형으로 설계된, 일종의 적응 유닛이다.
반면 군인은 역사 이전 암흑의 시대부터 같은 인간을 죽이고 제압하기 위해 탄생했다.
결정적으로 군인의 우월함을 알게 되는 사건이 있었다.
북경 북부에서 활동하고 있을 때 통신 착오, 어쩌면 의도적으로 중국군에 의해 공격을 받은 적이 있다.
사상자는 발생하지 않았지만 포병과 전차를 이용한 전방위 압박, 고개를 들 수 없을 정도의 엄호 사격과 알고도 당할 수밖에 없는 전진과 포위.
군인들이 오로지 인간을 상대하기 만들어진 집단이라는 걸 속수무책인 상황 속에서 뼈저리게 느꼈다.
최후 항전 단계에서 몇 명을 길동무로 끌고 갈 수도 있었겠지만 지휘관이 공격을 중단했기에 상황은 느닷없이 종료되었고 당시 느꼈던 군인 집단에 대한 인상은 거의 10년에 가까운 세월이 지난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 속에 남아 있다.
그 이후, 신입으로 온 후배들에게 누누이 가르쳤다.
군인들을 얕잡아보지 말라고.
그들이 마음이 변해 총구를 우리에게 돌린다면 시체로 나뒹구는 것은 필경 우리일 것이라고.
모든 것이 스러지는 시대라고 하지만 우리는 그 직전의 세상에서 미국의 군대가 세상에서 가장 강한 군대라는 걸 알고 있다.
이제 그 미군을 상대해야 한다.
어쩌면 대단히 화가 날지도 모르는.
*
뭐, 솔직하게 말하자면 지금 우리 영역으로 다가오는 미군을 죽이는 것은 어렵지 않다.
우리에겐 재블린이라는 장비가 있다.
조준을 하고 버튼을 누르는 것만으로 우리는 장갑차와 그 안의 인원을 말끔하게 처리할 수 있다.
그런데 그 안엔 레베카와 스우가 타고 있다.
이야기는 레베카와 스우를 비롯한 미군이 내리고 그들이 이 거대한 연극의 거짓을 발견하고 실망하는 부분에서 시작될 것이다.
내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방안도 고려해봤지만 그랬다간 실의에 빠진 그들이 다시 장갑차에 타고 기수를 돌려 대구로 돌아가는 걸 지켜볼 수밖에 없다.
결국은 얼굴과 얼굴을 마주 보고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소리다.
학교에서 교육받았기에 영어는 어느 정도는 알아들을 수 있지만 말하는 건 익숙하지 않다.
통역 문제는 휴대폰에 깔린 앱과 레베카 모녀를 이용하면 될 일이다.
다행스럽게도 이번 여정엔 스우도 함께 온다.
COOKIEMONSTER18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스우) 나도 같이 가!
레베카보다 한국어를 잘하는 스우가 있다면 의사소통엔 큰 어려움은 없을 것이다.
미군 상대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건 내 영역의 동료들을 설득하는 일이다.
“······예전에 내 영역 옆에 살던 친구가 있어. 그 친구들을 여기에 불러올 생각이다.”
집단의 리더라는 자리와 프로페서라는 과거가 내 말에 권위를 실어주는 건 명백한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최대한 동료들의 양해를 구할 생각이다.
내가 레베카 모녀를 알게 된 과정, 일련의 연극을 통해 레베카 모녀를 여기로 오게 한 사정, 그리고 레베카와 함께 하는 미군과 적대할 수 있는 가능성에 관해 말했다.
물론 나의 다중 분신술에 관한 건 입도 빵긋하지 않았다.
게다가 회의에 참석하는 건 언제나 디펜더 혼자고 그는 사이코패스답게 포커페이스를 잘 유지하기에 연극의 이면에 숨겨진 진상이 드러날 일은 없다.
동료들은 반응은 무덤덤했다.
딱히 놀란 것도 아니고 반감을 드러내지도 않는다.
“박규의 옛 친구가 온다면야 환영해야겠지.”
“우리 같은 놈도 거둬줬는데 전쟁 직후부터 함께 한 이웃이라면 이쪽에서 거부할 명분은 없지.”
오히려 나를 곤란하게 한 건 질문이었다.
“박 선배. 대체 미군은 어떻게 속인 거야? 또 그놈의 인터넷이야?”
“내 옛 지인과 연락이 닿아서 말이야.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지.”
“영어로?”
“아니 한국어로. 걔들 한국말 잘해.”
“그래?”
“아무튼, 쉽진 않겠지만 잘 부탁한다.”
적당히 이야기를 마무리하고 다음 페이스로 넘어갔다.
레베카에겐 섬뜩한 일이겠지만 다음으로 우리가 논의한 건 장갑차를 맞이하는 방식이다.
내가 대로에서 서서 장갑차를 기다린다.
디펜더가 내 옆에 서기로 했다.
나머지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재블린을 든 방재혁을 필두로 나머지 모든 전투원이 매복을 한 채 대기를 하고 다정이는 드론을 통한 정찰과 전투 지원을 맡기로 했다.
만약 일이 틀어질 경우, 1분 이내에 미군을 전부 처치하는 것이 우리의 계획이다.
당연하게도 그 살상 계획 대상 안엔 스우와 레베카도 포함되어 있다.
그건 어쩔 수가 없는 일이다.
미군 같은 훈련된 군인 상대로 피해 없이 이기는 방법은 한 번에 휘몰아쳐서 통렬한 타격을 가하는 것뿐이니까.
우리의 목숨이 달린 상황에서 손대중 같은 걸 한다는 건 대단히 오만한 발상이고 그 오만은 어쩌면 이 자리에 함께 한 내 동료의 목숨을 짓밟을지도 모른다.
레베카도, 스우도 귀중한 이웃이지만 둘을 위해서 모두를 포기한다는 건 나를 믿고 따라온 이 사람들에게 너무나도 미안한 이야기다.
물론 어느 쪽도 죽게 하지 않겠다.
그것이 내가 할 일이다.
*
치지지직—
공용 주파수가 익숙하지 않은 언어를 토해낸 건 늦은 아침경이었다.
철컥- 철컥-
동료들은 저마다의 무기를 들고 방공호 중앙 공터로 집결했다.
말없이 그들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이번만큼은 내가 빚을 지는 일이다.
그들에게 감사해야 한다.
접선 장소는 예전에 선정한 최적의 매복 위치다.
방공호 언덕 정상에서 재블린이 감제할 수 있고 도로 양 측면에 완벽한 매복이 가능한 곳.
“스켈톤. 스켈톤.”
K-워키토키가 레베카의 목소리를 토해내는 가운데 동료들에게 손짓으로 전투 배치를 명했다.
하태훈과 천영재가 우거진 수풀로 향했고 나와 디펜더가 대로변에 나란히 섰다.
디펜더를 힐끗 쳐다보았다.
“같이 안 있어도 될 것 같은데.”
“하나보다는 둘이 있는 쪽이 나아. 미군도 바보가 아닌 이상 매복을 고려하고 있을 테니까.”
맞는 말이다.
대로변에 단 한 명이 길을 막아선다면 누구든지 매복을 의심할 것이다.
거기서 한 명이 더 늘어난다고 해서 뭐가 다르겠냐마는 인간의 심리라는 건 오묘하고 단순하다.
두 명이 있는 건 한 명이 있는 것과는 상당한 차이로 다가온다.
“나 때문에 죽으면 다정이한테 뭐라고 말하냐?”
농담조로 말해보았다.
“어차피 우리들은 다 내려놓았어.”
“뭘?”
“사람을 죽일 때 우리도 죽을 수 있다는 각오를 했다는 말이지.”
디펜더가 실소를 머금으며 바닥에 놓인 돌멩이를 발로 차서 도로 저편 수풀로 날려 보냈다.
“그게 공정한 거 아니겠어?”
“그럴듯하네.”
언제든 죽을 수 있다.
아직까지는 내 영역의 동료들이 다치거나 상처를 입은 적이 없지만 그것이 영원하지 않으리라는 건 잘 알고 있다.
언젠가는 누군가 죽을 것이고 누군가 다칠 것이다.
차라리 그게 나을 지도 모른다.
누군가 미치거나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방향으로 변해버리는 것보다는 말이다.
그런 상황이 우리를 파멸로 몰아넣는다면 나는 불가피하게 내가 혐오하던 남자, 디에스이라에를 떠올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장갑차. 발견. 느릿하게 오는데?”
교신기 너머로 다정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교신기를 통해 모두에게 말했다.
“잘해보자.”
이제부터 시작이다.
도로에 선 채 무전기를 들고 레베카와의 교신을 시도했다.
“여기는 스켈톤. 접선 지점에 미리 마중을 나와 있겠다.”
“어. 응.”
레베카의 대답.
하지만 잠시 후, 다정이는 레베카의 답변과는 사뭇 다른 상황을 이야기한다.
“장갑차가 멈췄어.”
시야에 보이지 않는다.
도로는 폐허가 된 마을을 향해 휘어져 들어가고 그 너머는 살짝 경사가 진 만곡부에 의해 가려진다.
거리로 치면 최소 5km 이상.
총알도 재블린도 닿지 않는 거리다.
왜 갑자기 장갑차가 멈췄을까.
심상치 않은 예감 속에서 다정이가 후속 정보를 말해줬다.
“드론 사출. 음. 정찰형이야.”
살짝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여간해서는 작전 중에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편이지만 이번 작전은 나의 개인적인 인연을 위한 것이다.
나라에서 시키는 부정할 필요가 없는 명령이 아닌 부탁이다.
내 부탁을 들어준 사람들이 위험해질 수도 있다는 생각에 나답지 않은 몸짓을 하고 만 것이다.
소형 드론이 고도 1km 이상 올라가면 인간의 눈으로는 거의 식별하기 어렵다.
아주 가끔 반짝이는 녀석이 있는데 미군이 쓰는 드론이라면 광반사 코팅 정도는 기본이겠지.
문제는 그 드론의 목적이다.
나는 미군이 왜 그 드론을 보냈는지 알고 있다.
나를 의심한다.
나만이 아니다.
그들은 함께 데리고 온 레베카마저도 의심하고 있다.
그들을 원망하려는 게 아니다.
훈련받은 군인이라면 그리고 그 지휘관이라면 나처럼 임무의 성공과 부하의 안위를 최우선적인 가치로 둘 것이다.
잠재적인 적이지만 신중하다고 칭찬해야 될 대목이다.
“응? 스켈톤?”
잠시 후, 무전기는 선고와도 같은 레베카의 목소리를 노이즈와 함께 토해냈다.
“비행기. 없는데? 어떻게 된 거야?”
“있었는데 말이야. 떠났어.”
“그래?”
레베카의 목소리가 멀어졌고 곧 현란한 영어가 멀리서 들려오는 메아리처럼 희미하게 들려오다 느닷없이 끊겼다.
“······.”
세상은 게임이 아니다.
날 위해 일방적으로 당해주고 죽어주는 건 게임 속에서나 존재한다.
거의 모든 국면에서 우리는 만만치 않은 것들을 만난다.
“스켈톤. 그 수송기 말이야. 거기서 뭘 한 거야?”
레베카에게 행동을 지시하는 자가 있다.
그는 필경 경험이 많을 것이고 모든 걸 의심할 것이다.
언어와 인종이 다르다는 건 서슴지 않고 방아쇠를 당기는 요인이 될 수 있다.
“글쎄. 나도 멀리서 숨어서 봐서. 드론도 띄우더라고. 덕분에 사진 한 장 못 남겼지.”
“그래?”
또 잠깐의 침묵.
그리고.
“그 사진 말인데. 스켈톤 쪽에서 찍은 거 같은데? 여기서 사진이 여러 개가 있는데 그중 한 사진의 각도가 나오는 지점이 거기밖에 없어.”
비수와 같은 지적.
인터넷과는 다르다.
인터넷과는.
“그래? 그때 나는 방공호 안에만 있어서 말이야.”
“그렇구나. 어? 캡틴?”
레베카의 목소리가 바뀌었다.
빠른 템포의, 알아듣기 어려운 영어회화가 무전기에서 흘러나왔다.
약간의 언쟁과 의견 불일치.
그리고.
“거기.”
낯선 목소리.
“당신. 헌터라고 했지?”
한국어다.
짧은 말이지만 명확하게 익숙하다는 게 느껴지는 발성.
“······그렇다.”
“나는 조지 맥스웰 육군 대위다. 소속은 포트 세그놀. 구 K2라 불리는 대구에 있는 공군기지에서 왔다.”
이 친군가.
장갑차를 세우고 드론을 띄우고 레베카로 하여금 진위를 확인해보려 한 사람이.
목소리만 들어도 알 수 있다.
대단히 깐깐하고 까탈스러운 친구다.
“레베카 상병이 인터넷에서 보았던 우리 군 수송기를 그쪽에서도 확인했나?”
디펜더의 시선이 느껴진다.
사람 생각하는 게 비슷하다.
그도 이 상황이 심상치 않다고 느꼈을 것이다.
실로 그러하다.
동료의 생사나 안위의 문제가 아니다.
그렇게 공을 들였던 레베카 모녀를 살리기 위한 작업이 눈앞에서 수포로 돌아갈 수 있다.
맥스웰 대위라는 자가 내게 두 가지 선택지를 내밀었다.
거짓 혹은 진실.
늘 인간을 시험에 들게 만드는 빛과 그림자다.
“스켈톤······.”
다정이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녀만이 아니다.
다들 무전기를 가지고 대화를 듣고 있다.
내 대답 여하에 따라 상황이 어떻게 변할 지 모두가 알고 있는 것이다.
“······.”
잠시 생각했다.
그리고 답했다.
“아니.”
“그럼 레베카가 보았던 사진은 뭐였지?”
“전부 다 거짓이다.”
거짓으로 점철된 연극이라는 캔버스 위에 진실이라는 물감을 덧씌운다.
그것이 좋은 화풍일지 아닐지는 받아들이는 사람의 마음에 달렸겠지.
“그래?”
이국의 장교가 말했다.
단선.
무전기 너머는 침묵을 지킨다.
“드론이 돌아가고 있어. 드론 회수!”
다정이의 목소리는 곧 다가올 약속된 파국을 암시한다.
“스켈톤. 장갑차가 턴했어······.”
손실 없는 실패.
최악은 면했지만 다른 의미로 최악에 가까운 결말.
점점 짙어지는 패색 속에서 K-워키토키가 냉담한 목소리를 토해냈다.
“거기. 헌터.”
“······왜?”
“매복한 친구들을 보여주겠나?”
피식 웃으며 동료들에게 손짓했다.
길가 양옆에 매복한 하태훈과 천영재가 터벅터벅 걸어 나왔다.
“솔직하군.”
“어떻게 알았지?”
“너무나도 뻔한 수단이지. 지능이 떨어지는 사람을 꾀어내서 이득을 취하려는 건.”
“당사자가 바로 옆에 있는데 지능이 낮다고 말하는 건 아닌 거 같은데.”
“한 가지 물어봐도 되겠나?”
“우선 레베카에게 사과를 하고 싶군.”
“사담할 기회는 나중에 주지. 질문에 먼저 답하길 바란다.”
침묵했다.
긍정의 침묵이다.
한층 차가워진 바람이 말없이 우리의 머리카락을 두어 차례 스쳐 지나간 후 냉담한, 희미한 이국의 억양이 남은 목소리가 무전기를 통해 울려 퍼졌다.
“왜 이런 짓을 한 거지?”
“레베카와 스우를 살리고 싶어서.”
진실이라는 물감을 써서 망쳐버린 캔버스 위에 또 다른 진실의 물감을 흩뿌린다.
그것으로 내 진심이 전달됐으면 한다.
“······그래?”
더 이상 무전기는 울리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사각 너머, 장갑차의 힘찬 엔진음이 울려 퍼졌다.
“어?”
씁쓸한 침묵은 다정이의 목소리에 의해 깨졌다.
“장갑차가 다시 턴 해! 이쪽으로 오고 있어!”
그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무전기가 가동했다.
“한국 헌터. 그쪽으로 가겠다.”
맥스웰이다.
“그 자리에서 우리를 기다려주길 바란다. 네 명 전부.”
동료들이 날 응시한다.
저마다의 감정을 담고.
쓴웃음을 머금으며 그들을 가만히 마주 보았다.
디펜더가 고개를 끄덕였다.
뒤이어 천영재도, 하태훈도 거의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잊고 있던 감정이 영원히 채워질 것 같지 않던 공허한 가슴 속에 켜켜이 쌓이는 걸 느끼며 그들을 바라보았다.
씨익 웃었다.
허세가 아니다.
“왜 다들 죽상이야? 내가 있잖아?”
우리에겐 한 명이 더 있다.
방재혁이라는 현재 최강의 카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