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a House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312)
아포칼립스에 집을 숨김-312화(312/466)
126. 망령 (1)
새로운 동료가 합류하는 그 짧은 시간 동안에 계절의 변화를 느꼈다.
더위가 한풀 꺾이고 하늘이 유난히 파랗고 높아보인다.
대지를 훑는 바람은 이제 서늘함마저 품고 있으며 곡식과 풀들은 갈색으로 영글거나 시들어간다.
곧 겨울이 온다.
약속된 죽음의 겨울이.
아직까지는 네크로폴리스를 끌어다 쓸 방법이 없기에 우선은 내가 친하게 지내는 게시판 유저 상대로 다가올 한파에 대해 경고했다.
CrunchRoll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알고 있어. 이번 겨울에 또 한바탕 해야 한다는 거.
CrunchRoll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이미 산 하나를 깎아내서 민둥산으로 만들었지. 온통 검은 연기가 도시를 덮고 있어. 숯을 만드는 중이거든.
킹의 반응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우리 게시판을 사용하는 이상 월드! 아포칼립스! 한 번 정도는 기웃거려 봤을 것이고 거기서 주로 논의되는 주제가 방한대책이라는 걸 감안해보면 무의미한 경고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사람이라는 건 관성과 타성의 동물이다.
자기가 익숙하지 않은 것이나 낯선 것은 아예 관심을 두지 않는 경향이 높고 하루하루의 생활 자체가 버거운 사람은 게시판에 접속해서 제대로 된 정보를 얻을 여유가 부족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메시지는 요긴한 안내 수단이다.
SKELTON : (스켈톤 안부) 잘 살고 있냐?
나의 인터넷 친구 아이엠지저스에게 간만에 안부를 물었다.
최소 오버 10레벨 어웨이큰인 그 친구를 걱정한다는 건 전쟁 전 서민이 연예인 걱정하는 것만큼이나 부질없는 짓이지만 어웨이큰도 일단 사람이다.
추우면 얼어 죽는다.
곧 답장이 왔다.
IamJesus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삐- 삐삐삐삐- 삐—– 삐——-
잘 살아 있는 모양이다.
거긴 유쾌한 친구들도 많으니 지루할 틈도 없겠지.
그나저나 최근 걱정이 되는 친구가 하나 있다.
다름 아닌 엠구다.
새로운 완장 딱지를 달고 거드럭거리던 친구가 갑자기 사라졌다
그가 사라진지 무려 3일.
우리 게시판 기준에서는 한 명의 유저가 영원히 돌아올 수 없는 여행길을 떠났다고 추정하고도 남을 시간이다.
물론 엠구가 질긴 놈인 건 맞다.
한 달 동안 자취를 감췄다가 돌아온 전적도 있고.
과거엔 군단파나 군인들이 주는 구호품을 먹고 살았다는데 지금은 대체 뭘 먹고 사는지도 모르겠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일전에 군단파 요청으로 엠구를 직접 만났을 때 그 친구의 건강 상태는 아주 좋았다는 것이다.
적어도 영양 상태는 흠잡을 곳이 없었다.
비타민이나 필수 영양소의 결핍으로 인한 안색이나 안구의 변화도 보이지 않았고 기울어진 집에서 살아감에 따라 필연적으로 찾아올 정신병의 징후도 적어도 그 당시엔 두드러지진 않았던 것 같다.
그 엠구에게도 메시지를 보냈다.
SKELTON : 엠구. 살아 있냐? 겨울 준비는 잘 알고 있지?
mmmmmmmmm™님으로부터 온 특별 메시지 : (경쾌한 행진곡 풍의 BGM) 캡틴 엠나인 스피킹!
SKELTON : ?
뭐야. 이 새끼.
살아 있잖아.
그런데 방금 뭐지?
메시지가 다른 것보다 반짝이고 못 보던 문구가 있었던 거 같은데.
“음?”
특별······?
특별 메시지라고······?
mmmmmmmmm™님으로부터 온 특별 메시지 : 스켈톤 이 새끼. 냄새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 맡네.
한 걸음 떨어져서보면 아무것도 아니다.
진짜 아무것도 아니다.
평소 메시지에 “특별”이라는 두 글자가 들어간 것에 불과하다.
그런데 뭐지? 이 겨레의 들녘을 빼앗긴듯한 기분은?
벌써부터 패배감이 손가락 말초신경까지 차오르는 걸 느끼며 어렵사리 키보드를 두 번 두드렸다.
SKELTON : ?
mmmmmmmmm™님으로부터 온 특별 메시지 : 우리 아파트에 전입 희망 세대가 왔어.
SKELTON : 호에엣~!!!
mmmmmmmmm™님으로부터 온 특별 메시지 : 스켈톤 이 새끼 요즘 약이라도 먹나. 말투가 그게 뭐냐. 갑자기. 징그럽네 진짜 시발.
“······.”
이런.
레드 아카이브 게시판에서의 나와 우리 게시판에서의 나를 제대로 분리하지 못했군.
무려 4인이라는 다중인격마저 소화 가능한 이 스켈톤이 단순한 기믹조차 실수한다는 건 그만큼 “특별”이라는 글자가 내게 준 충격이 크다는 것이겠지.
이건 비바봇에게 엄중히 문의해야 할 문제다.
그런데 그 문의는 좀 더 뒤로 미뤄야 할 것 같다.
더 큰 문제가 생겼다.
mmmmmmmmm™님으로부터 온 특별 메시지 : 보라고 (엠나인 의기양양)
mmmmmmmmm™님으로부터 온 특별 메시지 : (사진)
엠구가 내게 사진을 보냈다.
그 사진 속엔 엠구가 말한 3년 만의 전입 희망 세대의 모습이 찍혀 있었다.
그런데 그 전입 희망 세대라는 것들.
내가 아는 사람이다.
“······.”
지창수와 지영희.
나에게도 몇 번이나 기웃거린 재벌가의 망령이 뜬금없이 무너져가는 아파트에 모습을 드러냈다.
*
mmmmmmmmm™ : 대한민국 최후의 명품단지 “더 호프”의 새로운 입주민을 소개합니다!
연예인 걱정하는 것만큼이나 부질 없는 일.
바로 엠구를 걱정하는 일이다.
바퀴벌레 이상의 생존력을 자랑하던 이 친구는 3일간의 공백이 무색하게 무시무시한 화제성을 가지고 돌아와 죽어가는 게시판에 온기를 불어넣고 있다.
단일 언어 게시판 화제 거리가 없어 반강제로 월드 뉴스나 봐야 했던 우리 게시판 친구들은 당연하지만 뜨거운 반응을 보였다.
익명458 : 뭐야? 진짜네?
Rkkara : 저긴 왜 갔대? 스케빈저도 고개 절레절레 흔들고 떠난 곳 아니야?
익명1702 : 와.
Berkut_break : 무너져가는 희망에 사람이 찾아오다니. 좋은 징조일까? 나쁜 징조일까?
tntn_Orthopedics : 여자 예쁘네.
SKELTON : 오우
익명1844 : ㄹㅇ 미인이네.
roxanneGIRL : 이것은 합성처럼 보인다.
Dr.emiless : 흐으으으으음.
gijayangban : ?
…
…
우리와는 조금도 관련이 없을 것 같던 재벌가의 망령이 우리의 영역을 침범했다.
순혈 멸망주의자인 나로서는 좀처럼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
어느 정도 배가 아픈 것도 사실이지만 정말로 중요한 문제는 새 입주민의 의도다.
얼마 전 내 영역을 찾아온 지영희는 정부가 서울에 숨겨 둔 비밀스러운 시설과 물자를 찾아 떠난다며 강압적으로 날 데리고 가려 했었다.
내가 집단을 이루었기 망정이지 혼자였다면 유혈사태는 피할 수 없었겠지.
그 인간들이 왜 하필 엠구를 찾아간 걸까?
합리적인 추론을 하려는 찰나 게시판엔 또 다른 소요 사태가 일어났다.
MELON_MASK : 오! 엠구! 드디어 입주민을 찾았구나! 축하한다!
MELON_MASK : 라그랑주 포인트에서 애정을 담아 멜론 마스크가
멜론 마스크.
우리 세계의 창조자가 엠구의 글에 댓글을 달았다.
“······.”
처음 알았다.
이 박규도 흥분으로 눈앞이 흐려질 수 있다는 걸.
“이건 아니지.”
실로 그러하다.
이건 아니다.
이건 아니야.
멜론 마스크와 개인적으로 메시지를 주고 받은 적이 있지만 멜론 마스크가 내 글에 댓글을 달아준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그런데 나도, 이 트웰브스퀘어도 못해낸 위업을 엠구 따위가 해냈다고······?
“······.”
타닥타닥
SKELTON : ?
항의의 의사표시로 물음표를 달았다.
그러나 아무도 내 물음표에 주목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다른 인격을 동원해야 했다.
roxanneGIRL : ? 네임드 유저 스켈톤이 할 말이 있다는데?
Dr.emiless : 스켈톤······? 아, 결코 만만하지 않은 유저지.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어.
gijayangban : ?
우민희 이건 왜 갑자기 달라붙는 거지?
주변이 침식된 곳에서 살던데 그 영향인가?
아무튼 내 엄중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엠구와 멜론 마스크는 내 머리의 피가 끓어오르게 하는 친목 행위를 계속했다.
mmmmmmmmm™ : 캡틴 엠나인 스피킹! 오우 멜론! 축하해줘서 고마워! 이거 잘 번역될런가 모르겠네 ㅎㅎ.
MELON_MASK : 엠나인! 어떻게 된 거야? 자세한 사정을 풀어서 설명해 줘! 모두가 궁금해 하잖아?
SKELTON : (스켈톤)
mmmmmmmmm™ : 오케이~ 내용이 길어질 거 같으니 새 글을 팔게!
뒤이어 엠구가 글을 올렸다.
그 내용은 소설과 영화, 애니메이션 등 끊임없는 변주로 우리에게 다가왔던 “타잔”의 이야기 구조를 연상케 했다.
몬스터와 좀비, 뮤테이션이 득실거리는 폐허 서울에 미모의 여성이 포함된 탐사대가 몬스터의 공격을 받아 위기를 겪던 중 폐허 서울, 그곳에서도 가장 위험한 더 호프의 유일한 입주민 엠구가 평소의 가락을 발휘하여 여성과 그 일행을 구조하여 자신의 아지트로 그들을 데리고 왔다는 것이다.
엠구는 다급한 와중에도 틈틈이 찍어 댄 사진으로 자신의 이야기가 허위가 아니라는 걸 증명했다.
그 사진 속엔 일전에 내가 사냥하고 명명한 미트볼 – 캐터필러 타입은 물론이고 네크로맨서나 스파이더 같은 보급형 같은 소형종, 수많은 좀비, 그리고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새로운 타입의 몬스터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 엠구의 이야기는 사진의 긴박함, 전형적인 이야기 구조가 주는 익숙한 재미, 앞으로의 기대, 새로운 몬스터에 대한 호기심 등 솔직하게 흥미진진한 내용을 담고 있었지만 까다로운 독자인 나에겐 태클을 걸만한 포인트가 많았다.
가장 거슬리는 건 엠구가 사용하는 일인칭이다.
“나”, “저”, 하다못해 “본인”도 아닌 “필자”다.
[ 사진9 – 몬스터의 무리의 속도를 하이델베르그 방정식으로 1.3초만에 초전도체 두뇌로 계산. 최적의 각도와 경로로 위기에 빠진 일행을 안전지대로 피신시키는 필자의 모습 ] [ 사진13 – 막간의 휴식 중 공중부양을 하며 소모한 기력을 보충하는 필자 ] [ 사진22 – 위험천만한 모험을 끝내고 더 호프의 기울어진 옥상에서 커피믹스를 마시며 석양을 바라보는 필자 ]엠구가 쓴 글의 내용 일부를 발췌한 것이다.
“······.”
상당히 마음에 들지 않는다.
더 마음에 들지 않는 건 엠구와 멜론 마스크의 관계겠지.
MELON_MASK : 엠나인! 너라는 녀석은 정말로······!
SKELTON : (스켈톤)
MELON_MASK : “미라클”이네.
mmmmmmmmm™ : 감사!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모니터를 보고 있자니 화면에 경고창이 떠올랐다.
VIVA_BOT014 : 스켈톤님······.
SKELTON : 캡틴 스켈톤 스피킹!
VIVA_BOT014 : 좀 하지 마세요······.
하지 말라고?
할 말은 많지만 말을 아끼겠다.
뭐, 나에겐 이것 말고도 태클 걸 수단이 얼마든지 있다.
“······.”
타닥타닥
roxanneGIRL : 9번 사진을 보면 몬스터와 이쪽 거리가 최소 1,500m는 떨어져 보이는데.
Dr.emiless : 흐으으으으음. 안전거리지. 대충 1km만 넘어가도 몬스터는 인간에게 관심을 주지 않는 편이니.
gijayangban : ?
roxanneGIRL : 호들갑이라는 거네?
Dr.emiless : 12번 사진을 보면 카메라 줌을 최대한 당겼어. 위기가 될 상황이 아닌데 극적인 재미를 위해 사실을 과장한 것이지. 전직 헌터인 내가 볼 때 적어도 사진 속에서 위험한 상황은 안 보여.
Dr.emiless : 아, 마지막 기울어진 아파트 옥상에서 찍은 것 빼고 말이야.
gijayangban : ?
나에겐 2개의 부계정이 더 있다.
엠구의 이야기가 흥미진진한 건 맞지만 내 또 다른 인격 닥터 에미리스의 말대로 엠구가 진정으로 위기를 겪은 적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Dr.emiless : 이제부터 사진 하나하나를 분석해볼까?
gijayangban : ?
그렇게 나의 전문성을 이용해 본격적으로 태클을 걸려고 할 때였다.
[ 메시지를 입력할 수 없습니다. ]“음?”
기껏 공들여 쓴 댓글이 달리지 않는다.
익숙한 이 느낌은 설마······.
차단인가?
불길한 예감은 곧 사실로 드러났다.
VIVA_BOT014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하아···. 제가 이래서요······. 스켈톤님 정체 숨기라고 한 거라고요.
SKELTON : 무슨 일인가요?
VIVA_BOT014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뭐 뻔뻔하게 모른 척 하세요.
SKELTON : ㅇㅅㅇ?
VIVA_BOT014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진짜··· 다중 계정 가지고 뭐 하는 짓이에요? 부끄럽지도 않으세요······?
VIVA_BOT014 : 초등학생도 안 하는 짓을…
SKELTON : (스켈톤 눈치)
VIVA_BOT014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오늘 하루는 쉬세요. 그게 맞겠어요.
“······.”
24시간 차단인가.
다행이군.
덕분에 머리를 식힐 여유를 가지게 됐다.
잠시 머리에 피가 쏠려 중요한 사실을 하나 잊고 있었다.
엠구와 멜론 마스크가 공개 친목질을 하는 것도 중대사지만 애당초 이 문제의 본질 속엔 내가 처음에 경계했던 그 재벌가의 망령이 있다.
엠구가 사는 영역은 김병철이 잠시 국회를 탈환하던 시점에도 위험구역으로 낙인찍혔던 곳이다.
포트 세그놀처럼 대규모 침식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곳곳에 소형종에 의한 몬스터 해방구가 존재하고 캐터필러 타입이라는 인간을 추적해서 살해하는 인간 크기의 몬스터가 득실거린다.
지영희와 지창수.
그들이 아무 이유 없이 엠구의 영역에 나타났을 것 같지 않다.
뜻하지 않은 곳에서 그들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저 여자 어디서 봤다 싶었는데. 그 여자였네.”
디펜더가 지영희를 알고 있었다.
“창수푸드 사장 딸. 김다람 팀장 밑에서 활동할 때 허종철이 사모하던 여자였지. 전에 왔을 땐 거리가 워낙 멀어 긴가민가 했는데 가까이서 찍은 사진을 보니 확실하게 기억이 나.”
“창수푸드? 뭘 해서 먹고 산 거지?”
“뮤테이션 고기를 공급하던 업체였어. 소문에 의하면 열 명이 들어가면 일곱 여덟이 뛰쳐나오고 그중 둘은 미쳐서 나온다던.”
그 말은 사실일 것이다.
경험해봐서 안다.
아무튼 디펜더 덕분에 지영희와 지창수라는 나와 여러 번의 인연이 있던, 그러나 내가 조금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인물의 정보를 알게 됐다.
“전쟁 전보다 전쟁 후에 오히려 더 잘 나가는 사람들.”
지창수와 지영희에 대한 세간의 평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