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a House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314)
아포칼립스에 집을 숨김-314화(314/466)
127. 별자리
전쟁이 시작된 지도 4년이 지났다.
수많은 에피소드 속에서 어느덧 어엿한 집단을 이루었다.
겨울을 앞둔 시점에서 한 번쯤 우리 영역의 전력을 재평가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시도라 본다.
현재 우리 영역엔 열 명의 사람이 있다.
이중 직접 전투를 수행할 수 있는 전투원은 나, 천영재, 하태훈, 방재혁, 디펜더 다섯 명이다.
여기서 직접 전투라는 말은 대 몬스터 전투를 포함한 적극적이고 공세적인 전투를 포함하는 개념이다.
레베카 모녀도 전투원에 편입할 순 있겠지만 나는 어디까지나 그들은 경계 및 방어 요원으로만 사용할 생각이다.
홍다정은 특별한 케이스다.
전문적인 드론 파일럿인 그녀는 직접 전투원에 넣기에는 개인 전투력이 너무나도 빈약하지만 드론을 이용한 각종 임무에서는 평범한 전투원 여럿 이상의 가치를 가진다.
나머지 발렌타인과 방재혁의 모친은 비전투 요원이다.
발렌타인은 제한적인 전투가 가능하지만 나는 부득이한 경우 이외에 그를 전투에 투입할 생각이 없다.
그는 귀중한 자원이다.
제2의 페일넷이라는 당면한 목표를 이뤄줄 유일한 사람이니까.
방재혁 모친은 전투력은 전무하지만 사람이 부지런하고 손재주가 좋아 다방면에서 특히 생활적인 측면에서 귀중한 자원이다.
게다가 그녀를 잃는다는 건 유능한 전투원인 방재혁의 멘탈에도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일인지라 전투 상황엔 발렌타인과 함께 가장 깊숙한 곳으로 피난하게 할 예정이다.
이렇게 10명에 달하는 적지 않은 사람이 모인 우리 영역의 자원은 까놓고 말해서 풍족한 편이다.
탄약, 식량, 연료, 의약품, 차량, 기타 소모품.
기존에 내가 가진 분량도 풍부하지만 일행이 합류하면서 가지고 온 양도 상당한 분량이다.
특별히 모자란 건 없다.
물론 의약품 같은 경우에는 순식간에 동날 수도 있다.
부상자가 많이 발생하는 전투 한두 번만 치러도 바닥이 날 것이다.
탄약은 그보다 오래 버티겠지만 마찬가지로 잦은 전투를 벌인다면 의약품처럼 금방 사라지고 말겠지.
우리 집단의 가장 위협적인 적은 물론 인간이다.
언제나 나는 인간을 최대의 위협으로 보았고 그 생각은 집단을 이룬 현재 시점에도 변하지 않는다.
오히려 집단을 이뤘기 때문에 개인 생존주의를 택했을 때보다 인간을 상대하게 될 위험성이 더 높아졌다.
이러한 조직의 안정성이 내가 제2의 페일넷이니 제주 인트라넷 침공이니 하는 부차적인 목표를 꿈꿀 수 있게 만드는 배경 역할을 한다.
개인적으로 우리 집단의 가장 큰 장점은 주변에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그 말은 주변에 위협적인 세력이 없다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인간과 인간의 교류가 서로에게 큰 이익을 주는 건 맞지만 지금처럼 모든 것이 부족하고 불투명한 상황 속에서 인근에 다른 집단이 있다는 것은 거슬리는 일이다.
언제든 적으로 돌변할 수 있는 건 물론이고 한정된 자원을 가지고 눈치를 봐야 하고 불필요한 동선을 낭비하는 등 갖가지 악영향만을 가지고 있다.
물론 그 외부 집단을 충분히 믿을 수 있을 정도의 신뢰가 있다면 다른 이야기겠지만 그 신뢰는 어떻게 만들어야 할까?
제로베이스에서 만드는 건 극히 어려운 일이다.
혈연, 학연, 지연.
전통적인 연줄 정도는 있어야 이야기를 해볼 건더기라도 있다.
범위를 지역으로 확장하자면 1개의 집단이 확인된다.
동쪽, 까마득하게 보이는 산정에 노인들로 이루어진 집단이 있다.
대화는 불가능하지만 그들이 산을 내려올 일도 없기에 크게 신경 쓰이는 집단은 아니다.
영역의 방어력을 놓고 보면 개인 생존주의를 택했을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졌다.
외벽을 중심으로 영역 전체가 요새화가 됐다.
북쪽의 가파른 능선 쪽에서 보완 장치를 한 지라 우리 영역이 느닷없는 기습을 받을 일은 없다.
다만, 전쟁의 여왕이라 할 수 있는 포격에는 장사가 없다.
누군가 좌표를 찍고 때리면 맞아야 한다.
대부분의 방공호는 포격을 견디겠지만 레베카의 오두막이나 하태훈의 집, 기타 화장실이나 샤워실 같은 부가 시설은 피해를 면할 수 없다.
포격이 격렬하다면 어쩌면 내 방공호 조차 기능이 마비될 수도 있고.
그나마 다행인 점은 현재 시점에서 방공호 하나 잡자고 대규모 포격을 벌일 수 있는 세력이 남지 않았다는 점이다.
박철주 회장마냥 군단파의 심심풀이 대상으로 포격을 얻어맞을 일은 없다는 것이다.
이런 내 영역에도 약점은 있다.
집단을 구성하는 사람들의 유대다.
크게 구분하자면 인천 헌터, 디펜더 남매, 레베카 모녀 등 3개의 파벌이 있다.
이들은 나라는 구심점을 통해 집단의 형태를 이루고 있지만 반대로 풀어서 말하자면 내가 없다면 서로에게 아무런 관심도 흥미도 없는 타인들이다.
내가 불의의 사고를 당해 죽거나 사라진다면 우리 집단은 높은 확률로 뿔뿔이 흩어질 것이다.
디펜더도 레베카도 갈 곳이 있다.
그들은 이 주변에 전에 살던 거점이 있다.
집단의 갈등이 극에 달한다면 그들은 자신들에게 편한 장소를 찾아 움직일 것이다.
명백히 이질적인 이들을 하나로 단결시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내가 억지로 자리를 마련한다고 해서 그들이 과연 친해질까?
술 한잔한다고 다음날 모두 친구가 될 정도로 러프한 사회가 아니다.
신뢰라는 건 시간과 사건에 의해 켜켜이 쌓이는 것이다.
억지로 무리하게 친하게 만들진 않겠다.
갈등이 있다면 갈등이 있는 채로 놔두겠다.
해결은 각자의 몫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 갈등이 극단에 치우치지 않게 조정하는 것 정도다.
다행스럽게도 우리의 영역이 넓고 개인 생활 공간도 분리되어 있어 이질적인 집단이 자주 부딪히는 일은 없다.
여기서 인원이 더 늘어난다면 글쎄다.
더 받을 수 있을까?
필요한 인원은 의사 정도다.
발렌타인급의 엔지니어를 구할 수 있다면 무리를 해서라도 자리를 마련해야겠지.
하지만 앞선 사건에서 알 수 있듯이 합류자는 예고도 없이 예상할 수 없는 범위에서 찾아온다.
내가 잘 아는, 나와 같은 과거 한 조각을 공유하는 사람이 내게 목숨을 맡긴다면 그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당장 떠오르는 인물만 하더라도 김다람 가족과 현재는 행방이 묘연한 내 일주일 제자 송유진 정도?
어쩌면 우리 비바! 아포칼립스!의 인연을 받아들일지도 모르겠다.
그러한 집단의 확장이 집단의 붕괴로 이어지는 경우는 타인의 사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집단이 포화 상태에 이른 경우엔 거절을 해야 한다.
과거, 프로페서라 불리던 시절의 나라면 아무런 어려움이 없는 일이다.
하지만 지금은 글쎄다.
자신이 없다.
내가 약해진 것인지 아니면 내가 변한 것인지.
단순히 약해졌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상실의 시대다.
사람과 물질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아는 모든 것들. 인명과 재산, 가치와 기억마저 흐릿해지는 시대다.
이런 곳에서 인간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누구보다 인간적이어야 한다.
“스켈톤. 혼자서 무슨 생각 하는 중이야?”
슬슬 땅거미가 지는 시기.
스우가 여전히 자신의 몸보다는 커 보이는 총기를 매고 언덕 위 초소로 올라왔다.
“오늘은 네가 경계?”
“아니, 엄마가 서는 날이야.”
“그런데 왜 스우가?”
“엄마 지금 발렌타인 방공호에 있어.”
“또?”
“진짜. 미스터 발렌타인. 우리 싫어하는 거 뻔히 보이는데. 엄마가 좀 뻔뻔해야지.”
“미스터 발렌타인을 방해하면 안 되는데?”
“미안.”
“아니 스우가 미안해할 건 없고.”
꽤나 오래 생각에 잠겼던 모양이다.
사실 한 번 정도는 해야 할 작업이었다.
집단의 장단점과 문제점을 파악하는 정도는.
과거라면 집단을 형성하자마자 전력 파악부터 했을 것이다.
뭐, 불필요한 인력도 용서 없이 쳐냈겠지만 말이다.
어쩌면 과거의 냉혹함이 집단의 평가를 미뤘는지도 모르겠다.
“여긴 어때?”
낮의 열기를 머금었지만 가을의 시원함을 머금은 바람이 둘 사이를 스치고 지나가는 걸 느끼며 스우에게 물었다.
“나쁘진 않아.”
스우가 먼 곳의 희미한 불빛을 보며 대답했다.
“흠······. 그 정도인가?”
“아니, 나쁜 뜻으로 한 게 아니라. 괜찮아. 정말로 괜찮아. 하지만.”
“다른 사람들 때문이지?”
스우를 바라보며 물었다.
한결 어른스러워진 스우는 날 빤히 보다가 미소를 머금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이내 시선을 피하며 다시금 먼 곳의 불빛을 응시했다.
아마 그 불빛은 까마득한 거리에서 살아가고 있을 피난민 캠프일 것이다.
조만간 없어질.
“······거기도 그랬어. 사람이 제일 힘들었어. 정말로.”
“어딜 가나 그래.”
“그런 거야?”
“응. 안 그런 곳도 있겠지만.”
내가 거쳐 온 삶을 돌이켜본다.
“분명 그런 곳은 다른 생각을 하기 어려울 정도로 힘들거나 위험하겠지. 아니면 그 힘들게 하는 사람과 접할 시간 자체가 짧거나.”
“세상에 편한 곳은 없다는 거네?”
그럴 수도 있다.
실제로 대부분의 삶에서 인간관계라는 건 영원히 풀리지 않는 실타래다.
알렉산더처럼 단칼에 끊어낼 수도 있겠지만 그 왕처럼 안 좋은 결말을 맞이할 수도 있다.
그런데 말이다.
굳이 그 단단히 얽힌 실타래를 풀 필요가 있을까?
“그렇지.”
“그렇구나.”
스우가 고개를 숙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레베카보다 훨씬 어른스러운 만큼 레베카만큼 여기 사람들이 싫다는 티를 내진 않았지만 스우는 우리 영역의 주민들이 상당히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다.
하긴, 지금까지 얼굴도 모르고 본 적도 없고 인종도 국가도 언어도 살아온 모든 여건이 다른 사람들인데.
하루아침에 친해진다는 게 아무리 순수하고 어린 마음의 소유자라고 해도 쉽진 않은 일이겠지.
“하지만 낙담할 필요는 없어.”
스우가 고개를 든다.
그녀가 바라보던 희미한 불빛을 응시했다.
그 불빛은 잠깐 동안 명멸하다 이내 사라졌다.
등화관제라도 하려는 걸까.
습격자를 끌어들이고 싶지 않다면 해야 할 일이겠지.
그 사라진 불빛 위엔 그 불빛보다는 덜 눈에 띄지만 더 장대하고 장엄한 수많은 별빛이 하늘을 수놓고 있다.
별들은 저마다의 주장을 한다.
“다 자기 자리가 있는 거야.”
사람이 별이 될 수는 없겠지만 이 드넓은 지구라는 도화지 위에서 우리 각각의 사람들은 하나의 별이라고 주장해도 그리 틀린 비유는 아니겠지.
과학자의 말에 의하면 탄생과 죽음은 별에게도 똑같이 해당되는 운명이니까.
단지 시기와 형태, 아름다움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
“저렇게 많은 별들도 다 자신의 자리에서 빛나잖아?”
별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런가?”
스우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좀 더 부연해서 설명했다.
“자기 자리를 찾는 것.”
“자신의 자리?”
“그게 우선일 것 같아. 자신의 자리를 찾지 못하는 별들은 떨어지기 마련이지.”
“메테오?”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굳이 억지로 하나로 엮일 필요는 없어. 각자의 자리를 찾고 그 자리에서 빛나기만 하면 충분해.”
“흐음.”
여전히 알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는 스우를 지켜보며 하늘 한 구석이 수놓은 커다란 삼각형을 올려다보았다.
“그렇게 각자의 별이 자신의 자리를 잡으면.”
손가락으로 그 별들을 가리켰다.
스우의 시선이 내 손가락 끝을 좇았다.
“섬머 트라이앵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별자리가 되는 거지.”
우리 개개인이 별이 될 순 없다.
하지만 우리 집단이 별자리처럼 저마다의 영역을 존중하고 빛나기를 바란다.
“스켈톤.”
나란히 앉은 채 별을 응시하던 스우가 입을 열었다.
“응.”
“별빛이라는 거. 수억 년 전에 죽은 별들의 잔광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
빙그레 웃었다.
“그래서 더 멋진 게 아닐까?”
스우는 알 수 없다는 얼굴로 날 물끄러미 쳐다보다 이내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경계 설래. 돌아가 스켈톤.”
“응.”
스우를 남겨두고 언덕을 내려갔다.
당장이라도 쏟아질 것 같은 별빛 아래 보초를 서는 스우의 모습은 꽤나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좋은 의미로 말이다.
우리의 별자리가 완성되기를 기원하며 층계를 내려갔다.
*
지창수 부녀의 근황이 알려진 건 엠구의 라이브가 느닷없는 형태로 끝맺은 지 일주일이 지난 뒤였다.
mmmmmmmmm™ : 옆집에 들어온 신규 입주민.jpg
사진 속엔 한 눈에도 위태로운 경사진 복도를 밧줄 하나에 의지해 간신히 기어오르는 여성과 중년 사내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안구에 핏발이 설 정도로 눈을 부릅뜨고, 이가 부서질 정도로 이를 악문 채 악다구니처럼 밧줄을 타고 오르는 그들의 모습을 본 순간, 나도 모르게 이마를 가볍게 치며 실소를 터뜨렸다.
하지만 이 뒤에 숨겨진 이야기는 결코 가볍지 않다.
34명이 정부의 보물 창고에 들어갔다.
1분 후, 7명만이 창고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부상자의 신음이 열린 틈새 너머로 새어 나왔지만 그들이 부상자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은 고통을 끝내주는 게 전부였다.
탕! 탕! 탕! 탕!
정확히 4번의 총성이 울렸다고 엠구는 회상한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지하주차장 앞을 오싹하게 울리던 신음은 사라졌을지언정 엠구 그리고 어떤 의미로 그와 하나가 된 더 호프의 이야기는 이제 시작이라는 것을.
엠구도 다가올 미래를 알고 있었다.
mmmmmmmmm™ : 뒷북이긴 하지만 세미 언박싱 영상 공개할게.
엠구는 소형 드론을 창고에 투입, 철로로 연결된 방대한 영역에 숨겨진 막대한 비보를 우리에게 여과 없이 공개했다.
그 사진에 찍힌 물자와 장비의 수량은 상상을 초월했다.
예상한 그대로다.
수십만 명의 목숨을 지탱할 수 있는 규모다.
mmmmmmmmm™ : 우리는 포기했어. 그러니 아무나 와. 와서 가져가. 막지 않을 거야.
사람들이 더 호프에 모일 것이다.
갈 곳 없는, 희망을 잃은 사람들이 희망을 찾아 기울어진 아파트를 향해 모여들 것이다.
적어도 나는 그 행렬에 포함되지 않으리라 보았다.
나에겐 적지 않은 물자가 있고 안전한 피난처도 있으니까.
하지만 엠구가 공개한 한 장의 사진이 내 마음을 움직였다.
“저건 쓸 수 있겠는데요?”
센트리건과 살인 드론, 기타 인간을 공장처럼 도살하는 살인 장비로 가득 찬 살상영역 너머로 한 대의 차량이 우리의 눈길을 사로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