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a House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322)
아포칼립스에 집을 숨김-322화(322/466)
322화 129. 목소리 (2)
네크로맨서 타입이 근접전에 취약한 건 사실이다.
녀석은 내가 근접전에서 가장 많이 사냥한, 프로페서의 주요 사냥감이다.
그러나 녀석이 만만한 몬스터냐고 묻는다면 아니라고 할 것이다.
나의 사냥은 대부분 녀석이 준비되지 않았을 때, 이쪽에서 선공권을 잡을 수 있을 때 이루어졌다.
네크로맨서의 진가는 수비가 아닌, 공격 상황에서 드러난다.
대규모 전투, 특히 시가지 전에서 수천 마리가 넘는 좀비를 끌고 다니며 휘몰아치는 놈은 어지간한 중형종 이상으로 위협적인 표적이다.
지금도 잘 준비된 네크로맨서가 망자의 목동처럼 수천 구의 좀비를 이끌고 우리를 향해 전진하고 있다.
우우우우우—
도로 위에 수천 마리의 좀비가 비틀거리며 우리를 향해 다가온다.
시간이 멈춰버린 듯한 과거의 복장, 어디서 본 듯한 얼굴들.
한때 우리와 같은 도시의 공기를 마시며 일상을 영위하던 사람들이다.
이제 몬스터의 꼭두각시가 된 그들은 외모와 복장, 주민등록증상 주소지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마음으로 우리들, 살아 있는 자를 덮친다.
“좀비가 온다!”
타타타탕!
주변에 도열한 병사의 총기들이 불을 뿜는다.
지휘관들은 병사들에게 총알을 아껴 조준 사격을 하라고 명하고 있지만 눈앞에서 셀 수 없는 좀비가 다가오는데 한 마리, 한 마리 머리를 맞춰 조준 사격을 가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타타타타탕!!
지휘관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모든 병사들은 30발, 혹은 25발이 든 탄창을 순식간에 비워버린다.
그 청구서는 그들의 우두머리인 김병철, 나아가 그들 자신에게 내밀어지겠지만 당장의 목숨보다는 싼 가격이 아닐까?
달려오는 좀비들이 픽픽 쓰러지지만 좀비는 두려움이 없다.
전우의 시체를 밟고서라는 노래처럼 이미 시체가 된 놈들은 쓰러진 좀비의 시체를 밟고 파도처럼 우리의 전열을 강타한다.
화르르륵–
이에 맞서 인간은 모든 수단을 사용한다.
불은 전통적으로 좀비에 대항하는 효과적인 무기였다.
특히 좀비가 어느 곳보다 위협적이었던 인도 전역에서 인도의 빈민층들은 불로서 좀비를 불태웠고 마지막엔 그들 자신도 불태우는 것으로 빈곤한 생애를 마감했다.
당연한 일이지만 이 불의 장벽을 뚫고 오는 놈들은 여전히 존재한다.
철컥-
진압용 강화 플라스틱 방패와 징을 박은 철퇴로 무장한 병사들이 중세의 군인처럼 열과 오를 갖추어 전열에 나섰다.
대좀비병이라 불리는 특화병이다.
이들은 선두에서 서서 화망을 뚫고 기어코 접근하는 좀비들을 막는 역할을 한다.
우어어어어!!!
좀비들이 방패의 벽에 파도처럼 부딪혔다.
퍽!
깡!
방패들이 하나가 된 것처럼 좀비를 밀치고 철퇴와 각종 둔기들이 좀비의 머리통을 부순다.
“제1파는 끝난 거 같네. 하지만 또 온다.”
인근 빌딩 위에 있는 천영재가 육안으로 관찰한 현황을 교신기를 통해 이야기해줬다.
대 몬스터전에서 드론은 어지간하면 사용하지 않는다.
중국에서 호되게 당한 경험을 공유한 모양인지 대부분의 몬스터는 하늘을 날파리처럼 날아다니는 드론에 대해 민감한 반응을 보이기 때문이다.
예전처럼 드론이 값싼 인간의 대체재로 쓰이는 시절에야 가볍게 던질 수 있는 물건이겠지만 더 이상 드론이 생산되지 않는 시절엔 쉽게 낭비할 수 없는 귀중한 자산이다.
“목동의 위치는?”
목동은 흔히 이런 상황에서 네크로맨서 타입을 일컫는 별칭이다.
“저 배때기에 커다란 구멍이 난 은행 빌딩. 건너편. 그쪽에선 안 보일 거야.”
“400m 정도인가.”
“아마.”
“밀집도는?”
“빽빽해. 안 가는 게 좋아. 한 번 더 참아야 할 거 같아.”
대규모 시가지전에서 네크로맨서 타입이 성가신 가장 큰 이유는 녀석은 인간으로 하여금 정직한 소모 값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 소모 값은 전쟁 전 기준으로도 결코 만만한 게 아니었지만 전쟁 이후 모든 것이 궁핍해진 시절엔 하나의 군벌을 거덜 낼 정도의 비용을 요구한다.
“이거. 끝이 없겠는데.”
김병철의 부하가 생색을 내는 걸 탓해서는 안 된다.
그들에게도 생존이 달린 문제다.
탄환이 없는 군대만큼 무의미한 게 있을까.
사실 이 전장에서 전투에 깊은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은 나와 김병철 둘 뿐이다.
나머지는 이 전투의 의미 같은 걸 이해하지 못한다.
어차피 몬스터라는 건 피하면 그만이라는 건 이제는 그다지 놀랄 것도 없는 상식이니까.
여기 있는 대부분의 병사, 저 기울어진 아파트 아래에 모인 피난민은 왜 후퇴하지 않고 자리를 고수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반응을 보였다.
뭐, 그들의 생각이 맞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 같은 경우에는 네크로폴리스라는 미지의 전파를 반드시 끌어당겨야 하고 김병철도 은닉 자산 주위에 소형종이 둥지를 만드는 걸 원치 않을 것이다.
자리를 잡은 몬스터보다 움직이는 몬스터 쪽이 사냥하기 훨씬 수월하다는 것, 그리고 은닉 자산에 마지막 정치적 운명을 건 김병철에겐 은닉 자산을 중심으로 새로운 정착지를 건설하려는 야심 찬 계획도 있었을 것이다.
이 양자의 이해 합치로 전투에 이르렀지만 나는 김병철이 빠르게 무너지는 걸 원치 않는 사람이다.
“튼튼한 로프 하나 받을 수 있을까요?”
약간의 위험은 감수해야 한다.
“네? 로프요? 뭘 어쩌시게요?”
날선 장교의 물음에 구멍이 난 빌딩을 가리켰다.
“아무래도 직접 제거하는 쪽이 낫겠네요.”
“좀비 처리를 부탁하신 거 아닙니까?”
“그랬는데 이러다간 끝이 없을 거 같아서.”
할 수 있는 건 해야겠지.
탕! 탕!
타타타탕!
천영재와 디펜더, 소수의 정예병의 지원을 받아 우회로로 빌딩에 도착, 가파른 층계를 올랐다.
시야가 가려지긴 매한가지지만 내재적으로 감지 능력을 가진 몬스터는 우리의 위치를 파악, 파동을 일으키며 수천 마리의 좀비를 우리를 향해 휘몰아친다.
계단을 따라 수십 마리의 좀비가 일제히 올랐다.
쾅!
미리 준비한 폭약으로 유일한 진입로인 계단을 끊어버렸다.
“너무 무모한 작전 아니야?”
천영재가 웃음기를 띤 얼굴로 묻는다.
“김병철의 총알이 다 떨어지면 모든 상황이 무모해지겠지.”
“뭐, 그렇겠지. 굳이 그 양반 신경 써줄 건 없지만 말이야.”
“엄호를 부탁한다.”
근거는 둘.
하나는 네크로맨서는 근접전에 취약, 나에게 무조건 죽는다는 것.
나머지 하나는 네크로맨서 타입이 죽으면 놈이 불러 모은 좀비가 몇 마리이건 통제를 잃는다는 것.
먼지와 잔해, 깨진 유리로 가득 찬 버려진 빌딩의 플로어를 달려 빌딩 너머에 있던 몬스터를 두 눈에 담았다.
쿵!
회백색의 괴물을 포착했다.
로프를 부서진 콘크리트 사이로 훤히 드러난 철골에 감고 그대로 뛰어내렸다.
쉬익—
바람이 날 스친다.
한때 이러한 바람과 빠르게 흘러가는 풍경, 온 몸에 느껴지는 낙하감은 내게 졸음을 안겨다 주었지만 이제는 아니다.
언제보다 뚜렷한 정신으로 나는 급속도로 가까워지는 몬스터를 노려보며 두 자루의 도끼를 꺼낸다.
스르릉-
언제나 한결 같은 나의 벗들.
언젠가 이 녀석들도 녹슬고 부러지고 쓸 수 없게 되겠지만 그전에 더 많은 몬스터를 벌목해야겠지.
쩍!
도끼는 회백색의 표면을 파고든다.
고통은 모르기에 비명도 없고 조건반사도 없는 몬스터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자신에게 피해를 입힌 인간을 찾아 나서지만.
쩍! 쩍!
이미 시작된 벌목은 멈추지 않는다.
우어어어어—
위협적인 건 사방에서 몰려드는 좀비들.
그러나 대책은 있다.
탕! 탕! 타타탕!
빌딩 위에 자리 잡은 천영재와 디펜더, 소수의 병사들이 아까 전선의 장교가 말한 것처럼 “신중한 조준 사격”으로 좀비의 머리통을 터뜨리고 있다.
방해받지 않는 상황에서 도끼는 더욱 기세를 타고 빠르게 움직인다.
그리고.
“······.”
무참하게 꺾인 채 주저앉은 몬스터의 몸이 입자화되며 산란하기 시작한다.
덧없이 아름다운 황금색의 입자들이 흩어지는 걸 보면서 한 생각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이 입자는 무엇일까.
무슨 의미일까.
또 흩어진 이것들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
과거의 추측대로 지면에 포자 형태로 퍼져 침식을 가속하는데 쓰이는 걸까? 아니면, 우리가 알지 못하는 다른 역할을 수행하는데 쓰이는 걸까?
무엇보다 저 입자엔 의지라는 게 깃들어 있는 걸까?
멀리서 들려오는 가열 찬 총성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내면의 질문을 종결시켰다.
교신기에 대고 말했다.
“목동 격파.”
대답이 없다.
내 정확한 뜻을 전하기 위해 한마디 덧붙였다.
“탄을 아껴라. 이상.”
이것으로 한 시름은 놓겠지.
다음으로 접근하는 놈은 비교적 쉬운 사냥감인 댄서 타입이니까.
내가 아니라 군인들에게 말이다.
*
잠깐의 휴식기 중에 더 호프의 지하 주차장으로 향했다.
제법 재밌는 상황이 벌어졌다.
군인과 피난민들이 인산인해를 이룬 채 창고 안의 물건을 멋대로 빼가기 시작한 것이다.
하긴, 몬스터 무리가 집단으로 다가오는 상황 속에서 더 이상 우민희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는 것이겠지.
그 행렬 중엔 내가 잘 아는 얼굴도 있었다.
“어이~ 스켈톤~!”
엠구다.
그 옆엔 헝겊과 두건으로 얼굴을 가린 남녀가 고개를 숙인 채 서 있다.
피식 웃었다.
아마 지창수와 지영희겠지.
내게 독심술 능력은 없지만 그럼에도 그들의 마음을 읽어본다면 아마 엠구 목을 조르고 싶지 않을까?
어떻게든 정체를 숨기고 싶은데 바로 옆에서 저 지랄을 해대니 말이다.
뭐,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다.
가볍게 손을 흔들며 주차장 안으로 들어갔다.
병사들이 날 보고 경례를 한다.
예전엔 볼 수 없던 풍경.
뭐, 탄환 수천 발 아끼게 했으니 이 정도 답례는 받아야겠지.
내 목적지는 군인들이 지키고 지게차로 물건을 빼내고 있는 창고 안쪽이다.
산산이 조각나 고철 더미가 된 드론과 센트리건의 잔해 너머 깊숙한 곳에 한 대의 대형 트럭이 주차되어 있다.
“네크로폴리스 수신은 순조롭게 진행 중입니다.”
발렌타인이 웃는 얼굴로 날 맞이했다.
그가 내게 휴대폰을 내밀었다.
“이거 보세요.”
전쟁 이후 휴대폰의 무선상태 알려주는 안테나 표시가 차오르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나마 통신망이 유지되던 서울 – 인천 권역을 제외하고 휴대폰은 전화기라기보다는 사진기, 개인기록, 지도, 여가 등을 수행하는 들고 다니는 컴퓨터 정도로 사용됐다.
나도 그랬다.
서울도 인천에도 가지 않은 내 휴대폰의 안테나는 늘 0개였다.
그런데.
“음?”
안테나가 뜬다.
신호가 잡혔다는 이야기다.
“뭐죠? 이건?”
발렌타인에게 미안한 마음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미안한 감정을 잠시 딴 곳으로 치워놔도 될 것 같다.
“망자의 목소리입니다!”
발렌타인은 계기판과 모니터 화면을 번갈아 보며 좀처럼 보기 힘든 들뜬 어조로 말했다.
“드디어 자체적으로 서버를 구현하는 그 마법적인 네트워크가 한국에 상륙한 거죠!”
“아직은 쓸 수 없겠죠?”
“네. 좀 더 파고들어야 합니다. 뭐라고 해야 되나. 전파라고 해야 하나. 아니, 전파와 비슷한 네크로폴리스적인 기운이 충만해져야 비로소 제대로 된 상호 간 통신이 될 거 같아요.”
발렌타인이 충혈된 눈으로 모니터를 바라보며 키보드를 두드렸다.
“······그런데 보면 볼수록 놀랍네요. 제가 보기엔 진짜 평범한 전파인데도 이게 어떻게 서버 역할을 할 수 있는지.”
그는 작업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 일을 즐기고 있었다.
하긴, 그렇지 않았다면 그는 진즉 존내논의 곁을 떠났겠지.
그가 가진 빛바랜 사진엔 열 명에 달하는 사람이 있었지만 남은 건 발렌타인 한 명 뿐이다.
그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어쩌면 그가 인류의 혁신이라 생각하던 그 네트워크는 오롯이 인간의 지성으로 이뤄낸 결과물이 아닐 수도 있다는.
까놓고 말해서 전파만으로 대용량의 서버를 만들어낸다는 게 말이 되는 소리일까.
제 아무리 천재라고 해도 무에서 유를 만들어낼 수 없다.
발렌타인이 굳게 믿는 혁신은 어쩌면 몬스터의 목소리일지도 모른다.
왜, 지금도 놈들이 오고 있는데.
“박 헌터님! 박 헌터님! 비상입니다! 비상입니다!”
교신기에서 군인들이 날 애타게 찾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얼마나 남았나요?”
발렌타인에게 물었다.
“하루. 빠르면 하루입니다.”
고개를 끄덕이며 마지막으로 문제의 차량을 살폈다.
8톤 트레일러급의 육중한 차체에 초대형 방송 장비를 실은 모양새.
전력 케이블이 연결되어 있지만 케이블과 연결된 장비가 대용량 배터리인 것으로 보아 제한적이나 독립적으로 방송을 할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알겠습니다.”
트레일러의 생김새를 머릿속에 넣은 채 전장으로 향했다.
전장엔 모두가 예상했던 최대의 난관이 우리를 향해 느릿하지만 확고한 걸음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프레토리안 타입.
초대형종 크라켄 타입과 함께 인도의 킬존을 끝장 낸 인류의 천적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