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a House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323)
아포칼립스에 집을 숨김-323화(323/466)
323화 129. 목소리 (3)
널리 알려진 타입은 대처하기 편하다.
널리 알려졌다는 말은 패턴과 특징이 전부 다 알려졌다는 말의 또 다른 표현이니까.
하지만 그 편하다는 말이 결코 쉽다는 말과 같은 의미로 쓰일 순 없다.
널리 알려지고도 여전히 까다로운 놈이 얼마나 많던가.
당장 권투만 해도 챔피언은 0.1초 단위로 버릇과 습관, 기술의 모든 동작을 프레임 단위로 분석 당한다고 한다.
프레토리안은 그런 유형이다.
철저하게 분석 당했지만 그럼에도 쉽지 않은 놈.
중국에 있을 땐 녀석을 보자마자 포병대나 항공대에 맡겼다.
전설적인 로마근위대에서 그 이름을 따온 데서 알 수 있듯이 놈은 공방일체의 완벽한 살육기계다.
일전에 우리가 상대했던 애니힐레이터 타입이 파멸적인 화력으로 중거리 범위 내의 인간 집단을 통째로 소멸시킨다면 놈은 몬스터 답지 않게 고속으로 기동하며 인간의 로켓을 모사한 투사체를 뿌려 일대의 인간 병력을 소멸한다.
대형 트레일러만한 크기에 시속 약 35km로 호버크래프트처럼 호버링 하는 녀석에게 근접전을 건다는 건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지만 그렇다고 놈이 근접전이 약한 것도 아니다.
놈에겐 팔다리는 없지만 선박의 홋줄처럼 두텁고 단단한 채찍 같은 촉수 조직을 휘둘러 감히 녀석에게 접근 하는 인간을 글자 그대로 두 동강을 낸다.
놈을 죽이는 가장 현명한 방법은 비싼 무기를 동원하는 것이다.
항공기든 헬기든 뭐든 좋다.
유도 기능이 붙은 음속에 가까운 투사체를 가진 무기를 반사역장 밖에서 쏴서 처리하면 된다.
그게 안 되면 포격으로.
뭐, 프레토리안 타입이라고 해도 킬존에서 다른 놈과 기어나올 때 일제포격을 맞는다면 흔한 몬스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겠지만 말이다.
문제는 녀석이 킬존에서 벗어나 자유자재로 돌아다닐 때다.
“저거, 처리할 수 있겠나?”
김병철도 프레토리안 타입을 아는 눈치였다.
다른 몬스터와 다르게 유독 긴장하는 걸 보니.
고개를 가로저었다.
“네크로맨서 타입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저건 침투형이 아닌 전투형입니다. 저만의 힘으로는 불가능합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지?”
“사전에 계획을 짜봤습니다. 하지만 그전에 더 호프 아래의 사람들을 피난시키는 게 좋겠죠.”
“일단 이야기는 해보지. 그 사람들이 내 말을 들을지 의문이니까.”
김병철에게 대 프레토리안전 작전 계획은 전하고 동료들에게 갔다.
모두가 날 기다리고 있었다.
그 안에는 평소의 불화나 어색함은 없었다.
몬스터의 몇 안 되는 순기능이라고 할까.
인류의 적은 인류를 때로는 뭉치게 한다.
“스켈톤. 어떻게 되는 거야?”
홍다정이 묻는다.
“일단, 싸워야겠지. 하지만 저 중형종은 어지간한 헌터팀으로는 상대가 안 돼. 이번 전투는 철저히 군인들의 장비를 가지고만 수행할 거야.”
이건 사냥이 아니다.
전투다.
누구도 반론을 제기하지 않았지만 천영재가 잠시 잊고 있던 이름을 끄집어냈다.
“그나저나 우소장은 어떻게 된 거야? 여기 오는 거야? 마는 거야?”
우민희라.
그래.
그 녀석도 있었지.
아마 오지 않을까, 싶었는데 글쎄다.
소식도 없고 징조도 없다.
녀석의 성격 상 분명 여기 왔을 거 같은데.
뭐, 아무래도 좋은 일이겠지.
어려운 싸움이 목전에 있다.
어쩌면 내 목숨을 걸어야 할 수도 있는.
*
“표적 무. 접근 중.”
군장비를 통해 프레토리안 타입을 관측했다.
소멸의 징후는 없다.
균열을 나온 후 대부분의 몬스터는 24시간 전후로 소멸되기 마련인데 이 녀석은 그런 것도 없다.
아마 침식된 지역에 머물면서 소멸을 피하고 있었겠지.
가장 간편한 하나의 선택지가 꺾였지만 처음부터 그건 기대하지도 않았다.
다음 수가 있다.
바로 빌딩을 이용한 낙석 공격이다.
사실 이것이 프레토리안 타입을 상대로 우리가 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멍텅구리 전차 두 대가 있다고 하지만 멍텅구리 전차도 결국 소형종 상대로나 유효하지 인간을 흉내 낸 중형종 이상 상대로는 바퀴 달린 대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중형종의 공격을 받는 순간 종이처럼 찢긴다는 소리다.
김병철이 살아남으려면 전차는 필요하다.
그러므로 빌딩 파괴를 이용한 낙석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
한 가지 위안할 수 있는 점은 우리는 놈이 어디로 오는 지 알고 있다는 것이다.
놈은 망자의 목소리를 좇는다.
그 목소리는 더 호프의 지하에서 울려 퍼지고 있다.
목적지를 알면 경로를 계산하는 것도 어렵지 않다.
놈이 있는 동북 방면에서 이쪽으로 오는 루트는 크게 3개.
그중 두 지점을 바리케이드로 막는다.
시속 35km라는 몬스터치고는 빠른 기동력을 가진 녀석은 진로를 방해받기보다는 속도를 유지한 채 돌아가는 걸 선호한다.
“신호하면 그대로 폭파해주세요.”
하늘 위엔 드론이 떠 있다.
몬스터의 대 드론 파장을 피하기 위해 고고도에 뜬 녀석은 멀리서 내려다 본 폐허 서울의 풍경을 우리에게 제공한다.
“표적 무 북동에서 접근 중!”
시시각각 다가오는 녀석의 위치를 본다.
작전은 간단하다.
녀석이 낙석 포인트에 도착하면 버튼을 누른다.
그게 전부다.
그런데.
“음?”
김병철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럴 수밖에 없다.
프레토리안 타입이 경로를 이탈했다.
정확히는 우리가 장애물로 상정했던 건물 하나를 그대로 통과했다.
공사용으로 만든 얇고 높은 축벽을 그대로 뚫고 빌딩 사이의 휑한 기둥 사이로 우리를 향해 직진한 것이다.
“이, 이제 어떻게 하지?”
김병철이 다급하게 물었다.
“모두를 대피시키세요.”
즉시 아래로 뛰어 내려갔다.
“어디로 가려고!”
“유인을 하려 합니다.”
“몬스터를 유인?”
군인은 최악의 케이스를 상정하고 그에 대처하는 수를 준비해야 한다는 말이 있지만 나는 그 말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최악의 케이스라는 것 자체가 일이 잘 풀리지 않았다는 소리다.
피해가 따른다는 소리다.
하지만 아무 준비도 없이 당하는 것보다는 낫겠지.
그렇겠지.
“스켈톤님?”
“잠깐 나와보시죠. 제가 이 차를 운전하겠습니다.”
내가 향한 곳은 더 호프의 지하, 용이 있던 정부의 비밀 창고다.
“어, 어쩌시게요?”
“몬스터를 유인하려 합니다.”
그대로 차를 몰았다.
부우우우웅—
트레일러는 힘찬 엔진음을 내며 앞으로 질주했다.
툭- 투둑-
후방에 연결한 전력 케이블이 끊기는 소리가 들린다.
하지만 전파는 유지되겠지.
운전석 옆에 설치한 패널을 보았다.
– 비상 전력으로 전환합니다.
“여기는 박규. 프레토리안의 위치는?”
“더 호프 2km 전방! 대로를 향해 전진 중입니다!”
“알겠다.”
핸들을 급격하게 꺾으며 도로에 진입, 차체가 안정되길 기다려 액셀을 힘껏 밟았다.
부우우우웅웅—-
대형 차량의 엔진 울림은 사람을 안정시키는 힘이 있다.
뭐랄까, 한낱 인간이지만 뭐라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이 솟는다.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풍경 너머로 군인들이 바리케이드를 황급히 치우는 장면이 지나간다.
이제부터는 적대 영역이다.
좀비와 몬스터, 뮤테이션의 땅이다.
핸들을 서쪽으로 꺾었다.
익숙하지 않은 영역.
전속력으로 전진한다.
좀비와 잔해 기타 잡스러운 것을 육중한 차체로 짓이기면서.
“여기는 박규. 몬스터의 위치는?”
그리고 기다린다.
내가 바라는 이상의 답을.
잠깐의 침묵 후, 회신이 왔다.
“표적 무! 진로 변경! 서쪽! 서쪽으로 향합니다!”
두 눈을 감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나의 노고는 보상받았다.
틀림없다.
데드맨워킹.
그가 발견한 망자의 목소리 따위가 아니다.
균열 너머에서 온 인류의 적, 몬스터의 속삭임이다.
그 기묘한 파장이 그에게 기적처럼 보이는 힘을 준 것이다.
확신한다.
데드맨워킹이 그 목소리를 발견한 건 맞겠지만 그가 그 목소리에 대해 아는 건 나와 별반 차이가 없다는 걸.
“표적 을! 진로를 북쪽으로 재변경!”
시속 35km가 인간 기준으로는 매우 빠르고 따라잡기 어려운 속도인 건 맞다.
그것도 트레일러 두 개를 겹친 크기의 괴물이 그런 속도로 움직인다면 인력으로 제지할 수단은 전무하다고 봐야겠지.
인간의 도구에게 그 속도는 한없이 느려터진, 뒤에서 클랙션이 빗발쳐도 할 말 없는 속도다.
가볍게 유랑하는 기분으로 놈을 다시 우리가 만든 덫으로 유인했다.
한 번 경로를 이탈한 몬스터는 놀라울 정도로 고분고분하게 내가 원하는 대로 움직였다.
“······.”
그것이 나에게 어떤 감정으로 다가왔는지는 나조차 설명할 수 없다.
내가 이해할 수 있는 건 방금 우리 인류는 그토록 바라마지 않았던 거대한 기점 위에 서 있다는 것 정도?
달 위에 선 암스트롱에 비할 바는 아니겠지만 우리 인류는 하나의 능선을 넘었다.
그건 확실하다.
“표적 무! 타격 포인트에 도달!”
“폭파!”
군인들의 우렁찬 교신 너머로 폐허가 된 빌딩에서 강렬한 폭발이 일어났다.
그 직후 시속 35km로 움직이는 몬스터가 죽음의 비가 내리는 영역에 도달했고 파멸의 비가 놈을 덮쳤다.
쿠궁! 쿠구궁!
병사들의 환호성이 들려온다.
“······.”
하지만 나는 트럭을 세운 채 무너진 잔해를 노려본다.
입자가 보이지 않는다.
그 말은 녀석이 아직 죽지 않았다는 소리다.
“폭약 남는 거 있습니까?”
빠르게 처리해야 한다.
두 번 없다.
모든 몬스터는 자가수복 능력이 있다.
입자화에 이를 정도의 상처를 주지 않는 한 언젠가는 깨어나 다시 움직인다는 소리다.
그것도 대단히 이른 시간 안에.
“빨리요!”
폭약이 가득 담긴 가방을 받고 폐허로 달려갔다.
주변에 도사린 좀비들의 울음소리가 들렸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내가 노려보는 건 무너져가는 빌딩의 그늘, 그 너머에 웅크리고 있을 인류의 적이다.
있다.
쿵! 쿵! 쿵!
심장처럼 약동하는 충격파를 발하면서 자신의 몸을 덮은 잔해를 밀어내는 역겨운 회백색의 몬스터가.
프레토리안 타입.
놈과 나는 50m 거리에 있다.
총기를 쓰진 않겠다.
그 전에.
쉬리릭—
녀석이 죽음의 채찍을 휘두르니까.
텅!
인간 허벅지 굵기의 촉수 채찍은 내가 등지고 선 기둥을 휘어버리게 할 정도로 강렬한 타격을 가했다.
등을 맞대지 않았음에도 내장이 울리는 듯한 일격이다.
이런 걸 맞는다면 두 동강이 나겠지.
위협은 채찍만이 아니다.
파지지직—
기묘한 기류가 느껴진다.
이 기류는.
“······.”
기폭.
대부분의 화약 병기를 폭발시키는 몬스터의 권능이다.
판단이 서는 순간 조건반사적으로 폭약 가방을 하늘 높이 던졌다.
그리고.
콰쾅!
무자비한 폭발이 지근거리에서 터졌고 폭압과 굉음이 빛과 번득임이 내 의식을 앗아갔다.
부스스스–
정신을 차렸을 때는 바닥에 처박혀 있었다.
몸이 움직여지지 않는다.
주르륵-
핏물이 이마를 타고 흐른다.
숨을 쉬어보았다.
내쉬어진다.
폐를 다치진 않았다.
팔다리는?
아니 그전에 확인할 것이 있었지.
언제 빼 들었는지도 모를 도끼가 손에 쥐여진 걸 보면서 몬스터의 흔적을 찾았다.
두 눈을 감고 고통이 느껴지는 한숨을 내쉬었다.
보인다.
빛의 입자가.
저 무너진 잔해 너머에서 덧없이 아름다운 빛의 입자가 산란하고 있다.
처치한 것이다.
또 하나의 인류의 적을.
“······.”
하지만 나의 끝도 멀지 않았으리라.
저벅저벅-
좀비들이 온다.
날개를 잃고 떨어진 새의 깃털을 탐하기 위해서.
“······.”
문득 예전에 들었던 이야기 한 토막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좀비에게 죽임당하는 건 상상 이상으로 고통스럽고 또 길다고.
하긴, 65kg의 치악력으로 서서히 깨물려 죽는 건 퍽이나 고통스러운 일이겠지.
“박 선배! 어디에 있어?!”
“박규! 대답하라! 응답하라!”
사람들이 날 찾지만 좀비는 이미 목전에 있다.
그들이 도착하기 전에 나는 죽겠지.
다행스럽게도 내 손엔 여전히 날카로운 도끼가 있다.
경동맥을 끊기만 하면 고통 없이 저세상으로 가겠지.
하지만 나는 스스로 목숨을 끊을 생각이 없다.
최후까지 투쟁하겠다.
내 죽음을 직시하겠다.
그것이 아무리 처절하고 끔찍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내 최후를 내 눈으로 끝까지 보고 갈 것이다.
그것이 우리 헌터 된 자들이 감내할 숙명이다.
저벅- 저벅-
좀비들이 다가온다.
부러진 이와 뒤틀린 손, 창백한 회백색 눈동자를 음산하게 번득이며.
움직여지지 않는 몸을 억지로 움직여보지만 역시나 말을 듣지 않는다.
좀비들이 눈을 번득인다.
놈들이 앞다투어 나를 향해 달려온다.
놈들을 노려보며 내 죽음을 기다린다.
“와라.”
여전히 내 손엔 도끼에 들려있다.
“우어어어어!!”
좀비들이 시야를 덮어가는 가운데.
쿵!
충격파의 파동이 느껴진다.
다음 순간, 눈앞이 번쩍였다.
폭발.
시야가 암전된 가운데 강풍이 휘몰아친다.
파편과 먼지, 매캐한 공기가 주변을 뒤덮는다.
기침을 하며 시력에 모든 신경을 집중했다.
시야가 천천히 돌아오는 가운데 고막을 찢는 듯한 불쾌한 소리가 저 너머에서 울려 퍼졌다.
끼릭- 끼이이이이—
흐릿한 시선을 거기에 던졌다.
콘크리트에 커다란 구멍이 나 있었다.
그리고 그 구멍 너머로 마르고 키가 큰 여인이 갈고리처럼 날카로운 의수를 까딱거리며 오만하게 서 있었다.
“하하······.”
전장에서 웃는 성격이 아니지만 본의 아니게 웃고 말았다.
끼이이익—
의족으로 바닥을 긁으면서 그 여성이 날 향해 다가왔다.
“역시 선배는 상처 입고 피 흘리고 있을 때가 제일 멋진 거 같아.”
그렇다.
뜻밖의 구원자는 나의 후배 우민희다.
우민희가 손을 내밀었다.
역광에 가렸던 그녀의 얼굴이 서서히 드러났다.
“그치? 엄창아?”
나의 후배는 미소짓고 있었다.
*
치직- 치지지직–
지하가 아닌 하늘 아래서 힘차게 위로 뻗은 방송 장비가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전파를 퍼뜨리고 또 수신한다.
“아아. 아아. 뭐야 이거. 여기 올 때부터 느낌이 이상하다 싶었는데.”
자신을 둘러 싼 수많은 적대적인 군인 앞에서도 우민희는 마치 자신의 안방인 것처럼 태연하고 편안하게 행동하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안중에도 없는 느낌.
바로 앞에 김병철이 서 있는데도 그녀는 눈길 하나 주지 않았다.
“뭐야? 이거?”
늘 그렇듯 그녀는 내키는 대로 한다.
지금 그녀가 흥미를 가진 건 나도, 정부의 은닉자산도 아닌, 그녀의 귀에만 들리는 기묘한 목소리일 것이다.
그녀가 트레일러를 지지대 삼아 우뚝 선 장비를 노려보며 물었다.
“이거 말이냐.”
“응. 엄창아.”
“엄창이 아니라는데 왜 자꾸 엄창이라 부르는 거지?”
“네. 네. 엄창 선배.”
우민희가 야릇한 미소를 머금는다.
“그런데 왜 그렇게 패드립 좋아해요?”
“?”
“닥터 에미리스인가 하는 놈도 선배 분신 아닌가요?”
“무슨 소리지······?”
뭐, 짐승이 아닌 이상 눈치채고도 남겠지.
사실 내가 엄창이라는 건 이미 전부터 90% 이상 들켰다.
단지 이번에 확정이 났을 뿐이지.
그럼에도 끝까지 오리발을 내미는 것이 이 박규의 인간적인 매력이라 생각한다.
“스켈톤님!”
발렌타인이 트레일러에서 뛰쳐 나왔다.
“이제 거의 다 됐습니다! 수신되고 있어요?”
우민희와 마주친 발렌타인은 마치 염기성 물질에 닿은 리트머스 종이마냥 안색을 바꾸었다.
유난히 사람 보는 눈이 있는 그는 한 눈에 알아본 것이다.
이 여자가 얼마나 위험한 인물인지.
차마 말을 못 잇는 발렌타인을 대신하여 우민희가 장비를 올려다보며 나에게 물었다.
“저거 때문에 여기에 온 거지?”
고개를 끄덕였다.
“응.”
휴대폰을 본다.
안테나가 떠 있다.
그 숫자는 하나에서 한 개 반.
인터넷을 켜보았다.
그리고 기다린다.
약속 된 망자의 목소리가 내 휴대폰에 닿는 것을.
[ F.소이어, M.오코너, 그리고 사랑스러웠던 붉은 것을 위하여. ] [ 소란스러운 죽음의 도시에 온 걸 환영한다. ]– 망자라면 엔터 키를 누르라 –
우민희에게 휴대폰을 내밀었다.
“응? 이건?”
“네크로폴리스야.”
“네크로폴리스? 아. 서양 애들이 쓴다는 거?”
그녀가 주위를 돌아보았다.
“이런 거였어?”
“너한텐 어떤 느낌이지?”
그녀의 유난히 빛나는 눈동자를 주시하며 답을 기다린다.
우민희는 그녀답지 않은 호기심 많은 소녀의 얼굴로 한동안 주변을 돌아보고 또 돌아본 후에야 의미심장한 미소가 함께 내게 답을 줬다.
“목소리.”
그녀의 말은 중의적이다.
우리를 둘러 싼 기묘한 전파가 망자의 목소리인지, 아니면 균열의 목소리인지.
어느 쪽이건 한 가지는 증명됐다.
우리는 적어도 균열의 목소리를 찾아냈다.
이 세상에 균열이 출현한 지 20년이 훌쩍 지난 시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