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a House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325)
아포칼립스에 집을 숨김-325화(325/466)
325화 131. 포부
우민희가 떠나기 전 모임을 가지자는 요청을 했다.
“선배. 모처럼인데 우리 게시판 사람들 불러와 줘. 솔직히 4년 동안 알고 지냈는데 정모 한 번 해야 하지 않겠어?”
그렇게 해서 예정에도 없던 정모가 개최됐다.
내 기억하기로 비바! 아포칼립스! 한국어 게시판의 두 번째 정식 정모지만 첫 번째 정모와는 성격이 다르다.
첫 정모는 선비라는 악성 유저를 처벌하기 위해 별 활동이 없던 유저도 두루 모인 공개 정모의 성격을 가진 반면, 이번 정모의 참석자는 게시판에서 오랜 경력과 인정을 받은 “네임드”들이다.
참석자의 면면을 보면 사뭇 화려함이 느껴진다.
참석자만 해도 기자양반, 엠구, 디펜더 남매, 그리고 전설적인 트웰브스퀘어이자 호감 유저 스켈톤까지 있다.
김병철도 초대를 할까 생각했지만 그는 진정한 의미의 네임드라기보다는 자신의 권세로 어거지로 이름을 알렸을 뿐인 유저라 부르지 않았다.
뭐, 그 양반 성격상 부른다고 해서 오지도 않았겠지만 말이다.
대신 발렌타인이 그 자리에 참석했다.
우민희는 그가 격이 떨어지는, 이른바 듣보잡이라는 반응을 보였지만 그는 전설적인 존내논의 후계자이며 네크로폴리스 상륙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정모 장소는 뒤편으로 막대한 정부 마크가 찍힌 물자가 쌓인 창고 안이다.
창고로 향하던 중 아는 얼굴을 보았다.
김다람이다.
우민희의 호출을 받고 온 듯 은은하게 빛나는 눈동자를 지닌 사람들과 함께 온 그녀는 김병철 쪽 사람들과 만나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녀는 우리를 발견하지 못한 것처럼 행동했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김다람의 시야각은 팀 프로페서의 역대 팀원 중 가장 넓다.
이 박규를 포함해서 말이다.
그녀 성격상 아마 우리를 보고도 못 본 척 한 것이겠지.
아무튼, 어수선하게나마 간이 의자 등으로 자리가 마련됐는데 우민희의 시선은 처음부터 디펜더에 고정됐다.
우민희의 성격상 잘생긴 외모에 호감을 느낀 것도 있겠지만 우민희가 디펜더를 빤히 쳐다본 이유는 그가 누군지 알기 때문이겠지.
“아, 네가 디펜더였어? 멀쩡하게 생겼네. 그런데 오래는 못 살 관상이네. ”
우민희는 야릇한 미소를 머금은 채 두리번거리는 시늉을 했다.
“여기에도 광신도 하나둘을 섞여 있을 거 같은데 말이야. 그렇지 않겠어?”
피도 눈물도 없는 비정한 살인마지만 디펜더도 자신이 우민희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닌 무력한 존재라는 걸 아주 잘 이해하고 있었다.
“······때가 되면 죽어야지.”
디펜더가 쓸쓸히 웃으며 덧붙였다.
“딱히 죽어도 불만은 없을 것 같아.”
“그래?”
우민희의 시선은 다정이에게 옮겨갔다.
“너였구나?”
디펜더에 가려졌지만 만만찮은 살인귀인 다정이도 우민희 앞에서는 뱀 앞의 개구리에 불과했다.
“저 아세요?”
그래도 용기 있는 개구리다.
디펜더 같은 냉혹한 사이코패스도 본능적인 공포를 느끼는 우민희 앞에서 말대답을 하는 거 보면.
“예전에 스켈톤 계정으로 여자애 하나 나와서 춤추는 영상 하나 있었잖아?”
“아······.”
“난 또 우리 선배가 여자 하나 납치해서 총 들이대고 강요한 줄 알았는데.”
“네?”
“몰랐어? 박 선배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라는 거?”
우민희가 홍다정의 귀에 대고 뭐라고 속닥였다.
홍다정이 날 빤히 쳐다본다.
무슨 소리를 했는지 궁금하긴 하지만 잠시 후 디펜더 남매는 자리를 떠났다.
“미안. 잠깐 우리끼리 상의할 이야기가 있어서 말이야.”
표정을 보니 썩 나쁘지는 않은 것 같은데 나중에 물어보면 될 일이겠지.
아무튼, 우민희 여사께서 우리를 이곳에 불러 모은 이유는 그녀답지 않은 발랄한 동기에서 비롯됐다.
“이왕 이렇게 게시판 친구들이 한 자리에 모인 김에 앞으로의 장래희망이나 생존계획이 있으면 들어나 보려고.”
장래희망이라.
요즘에도 그런 말을 쓰는 사람이 있었나.
조금은 신선한 어휘 선택이다.
보다 와닿는 건 생존 계획이다.
“우리야, 여기서 살아야지. 별 수 있겠어?”
먼저 포문을 연 건 역시 엠구다.
조금 격이 떨어지는 친구긴 하지만 그럼에도 누구 앞에서도 어디에서도 기죽지 않고 너스레를 뜨는 그의 성격은 나의 질투심을 불러일으킨다.
“아, 그러고보니 엠구는 더 호프에서 쭉 산다고 했었지?”
우민희가 짓궂은 미소를 머금으며 넌지시 덧붙인다.
“더 호프는 아직도 우상향?”
그 엠구가 히죽 웃었다.
“응?”
“어떤 의미에서?”
“나 요즘 섬씽이 있거든?”
순간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섬씽?
무슨 뜻이지?
섬에 씨앗이라도 뿌린 건가.
이해할 수 없기는 우민희도 마찬가지다.
소싯적 유난히 남자 얼굴과 비율을 따졌던 그녀의 까탈스러운 심미안에 의하면 우리의 엠구는 안타깝지만 후보에도 들지 못할 정도로 외모력이 떨어진다.
“무슨 소리야? 엠구.”
우민희가 갈고리 손톱을 꼼지락거리며 추궁하듯 물었다.
“몰랐어? 우리 집 옆에 새로운 입주민 온 거.”
“아, 진짜?”
보기 드문 놀란 얼굴로 우민희가 묻는다.
“뭐야. 기자양반. 옛날엔 게시판 열심히 하더니 요즘은 뜨문뜨문 하나 보지?”
“요즘 바쁘거든. 몬스터는 끝도 없이 나타나지, 제주하고는 완전히 틀어졌지. 개성 쪽엔 사람이 사는 거 같은데 잘 연결은 안 되고. 게다가 대 어웨이큰 몬스터도 점점 불어나는 추세고.”
우민희가 얕은 한숨을 내쉬며 길게 늘어뜨린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꼬았다 풀기를 반복했다.
“그래서, 엠구는 쭉 거기서 살 생각이라 이거네?”
엠구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다른 방법이 없잖아. 여전히 커뮤니티 보일러는 잘 돌아가기도 하고.”
“어쩐지. 예비전력이 샌다더니. 일 대충하는 사람이 그 아파트랑 전력 연결 안 끊었던 모양이네.”
우민희가 종이에 뭔가 끄적거리더니 곧 그 내용을 우리에게 보여줬다.
엠구 – 더 호프에 계속 삼
“뭐냐? 그건?”
무성의하게 적은 글씨를 보며 묻자 우민희가 종이를 갈고리 손으로 집어 팔랑팔랑 흔들어댔다.
“이런 것도 추억의 일부 아니겠어?”
우민희의 시선이 날 향한다.
“내 차롄가.”
할 말은 많다.
그런데 이미 하고 싶은 이야기는 아까 그녀와 단둘이 있을 때 충분히 했다.
그래도 자리를 만들어준다면야 마다하지 않는 것이 이 박규의 방식이겠지.
“난 말이야. 솔직히 말하자면 전쟁 전만 해도 그리 인터넷이니 뭐니 관심이 없었어.”
실제로 그랬다.
인터넷이라는 것이 이미 인류에게 떼려야 뗼 수 없는 소통이자 연결의 수단인 걸 알고 있었지만 나 같은 사람에겐 일상의 편리함을 보조하는, 전기처럼 자연스러운 흔한 도구에 지나지 않았다.
비바! 아포칼립스!에 가입한 건 인터넷을 좋아해서가 아니가 비바! 아포칼립스!가 가진 위성 인터넷 시스템이 장래의 생존에 있어 상당한 이점을 제공하리라는 계산이 섰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전쟁이 시작되고 우리가 아는 것들이 하나씩 없어지면서 인터넷의 중요성을 느꼈지. 당장 겨울에 작년보다 더 심한 한파가 온다는 정보가 있는데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군단파가 건재했다면 신나게 방송으로 떠들었겠지만 사실 군단파의 방송을 들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걔네들 하는 이야기중 절반은 거짓이잖아?”
엠구가 고개를 끄덕였다.
“물 반, 구라 반이었지.”
“사실 인터넷은 인류에 만들어 낸 가장 진보적인 소통 방식이라고 생각해. 우민희. 너도 페일넷의 순기능을 알잖아?”
우민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페일넷이 없었다면 정부가 사람들 갖고 놀기 훨씬 수월했겠지.”
바로 옆에서 침을 꿀꺽 삼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발렌타인이다.
그가 처음으로 이 대화에 어떤 식으로든 반응한 것이다.
나의 벗 발렌타인을 응시했다.
확실히 그는 흥분하고 있다.
저 우민희조차 페일넷을 고평가한다는데.
무엇보다 페일넷이 정부가 평범한 사람들을 어떻게 할 수 없는 중요한 억제책이 됐다는 말이 그의 심금을 울렸겠지.
“······.”
그래, 여기서는 그에게 영광을 돌리도록 하자.
적어도 이 영역에서는 나보다 그가 더 할 말이 많을 것이다.
“발렌타인님도 한마디 해주시죠.”
“저, 저요?!”
갑자기 판이 깔렸지만, 우민희가 있음에도 분위기는 그럭저럭 부드러웠다.
“아. 뭐, 저야 그저 살아남는데 급급한 평범한 사람입니다만.”
옆에서 용기를 주자 그는 어색함을 벗어던지고 모니터를 볼 때 작업을 하던 치열하면서도 조용한 열정을 내비치기 시작했다.
“······기회가 된다면 제2의 페일넷을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흐음. 제2의 페일넷?”
우민희가 약간의 흥미를 드러냈다.
“네. 네크로폴리스를 끌어온 것도 제2의 페일넷을 만들기 위한 일환이고요. 이걸 어떻게 응용할지는 좀 더 고민해봐야겠지만.”
발렌타인이 날 응시했다.
“스켈톤님이 절 도와주시니, 어떻게든 가능하지 않을까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옆에서 최선을 다해 돕겠습니다.”
이것이 나와 발렌타인의 “장래희망”이다.
이제 포부를 밝히지 않은 사람은 우민희 하나다.
우민희에게 고갯짓을 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고 모두를 둘러보더니,
끼이이이익—
그녀다운 악취미적인 소음을 내 모두의 고막을 긁으며 주의를 환기했다.
엠구가 인상을 찡그린 가운데 그녀가 은근한 어조로 우리에게 속삭이듯 말했다.
“다들 라그랑주 포인트 알지?”
“라그랑주 포인트?”
고개를 끄덕였다.
행성과 위성의 인력이 균형을 이루는 자리라고 했던가.
어떤 행성이나 위성에도 끌려가지 않아 인공위성 등을 배치하기 가장 적절하다는 곳 말이다.
“왜 모르는 눈치야? 멜론 마스크, 걔 우주 정거장도 거기에 있잖아?”
그랬었지.
멜론 마스크의 우주 방공호도 지구와 달 사이에 존재하는 라그랑주 포인트에 있다고 들었다.
그런데 왜 갑자기 라그랑주 포인트라는 말이 나왔을까?
뜬금없는 우주적인 용어에 약간의 혼란과 동시에 기대를 느끼며 우민희의 흉터가 새겨진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우민희는 나를 가만히 바라보다 자신의 날카로운 갈고리 손가락의 끝을 응시했다.
칼날처럼 날카로워 단지 가볍게 스치는 것만으로 날카로운 그 끝은 전투용이라기보다는 그녀가 의도한 개성의 표출이겠지.
“인도에 여전히 사람이 사는 거 알아?”
“인도에?”
인도는 그들의 이름을 딴 대양을 가진 드넓은 땅과 막대한 인구, 고대로부터 명성을 떨친 엘리트를 배출하는 명실상부한 주요국가지만 그 방대한 땅과 인구가 역으로 그들을 집어삼켰다.
인도는 가장 먼저 무너진 주요 국가다.
이미 10년 전부터 침식되어 이제는 아무도 살지 않는 죽음의 땅이 되었다.
그런 곳에 사람이 산다니.
이해가 가지 않는다.
아무리 그곳에 백승현급의 생존마스터가 있다고 하더라도 아무런 지원도 없이 침식된 대지에서 10년이나 살아남는 건 불가능해 보이는데.
그들이 자랑하는 오토바이 곡예만으로 살아남을 수 없다는 이야기다.
본인이 몬스터가 된다면 모를까.
그런데 우민희는 그 말도 안 되는 황당한 이야기를 그녀답지 않게 진지한 표정을 지은 채 우리에게 말해주었다.
“균열이란게 마치 벽지 무늬마냥 일정한 간격을 두고 배치됐잖아? 각 균열에서 침식이 퍼져 나와 지구 전체를 뒤덮는 모양새로 전세계적인 침식이 진행되고 있고.”
그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헌터적인 지식이 부족한 엠구조차 고개를 끄덕일 정도로.
“그런데 각 균열마다 침식이 뻗어 나갈 수 있는 영역은 한정된 모양이야.”
“그래?”
“응. 여기서 질문 하나. 각 균열마다 한계점이 존재한다면 어떨까?”
우민희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머금으며 특히, 내 반응을 살폈다.
각 균열의 한계점이라.
한계가 있다는 건 침식이 미치지 않는 영역이 있다는 이야기.
그 말은.
“라그랑주 포인트.”
나는 그녀가 말했던 우주적인 용어를 되풀이했다.
이보다 적절하게 표현한 단어는 없을 것이다.
지구에 난 무수한 균열을 행성이라고 생각한다면 그 행성에서 뻗어 나온 침식은 인력으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그 각각의 인력이 한계점을 이루는 영역. 그러니까 각 균열의 침식이 침범하지 못하는 영역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응당 라그랑주 포인트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최근에 인도에 라그랑주 포인트가 발견됐어.”
“진짠가? 그들이 균열을 닫았다는 소식은?”
“그건 확실치 않아. 인도 잔존정부도 그다지 확인을 해주고 싶지 않은 눈치니까. 하지만 균열 사이의 한계점에 초록색으로 남은 대지가 있고 그곳에서 10년 가까이 삶을 이어가는 인간이 있는 건 사실이야.”
우민희가 롤링페이퍼에 자신의 글자를 남겼다.
그녀가 남긴 메시지는.
미니 – 살아갈 곳 찾기
“미니?”
우민희가 힐끗 날 노려본다.
“왜에~?”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선배는 뭐, 적을 거 없어?”
“아까 발렌타인님과 함께 말하지 않았냐. 내가 원하는 거.”
“그건 저 사람 의견이고. 선배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 남을 건지 그건 아직 이야기 못 들었잖아?”
앞으로 어떻게 살아남냐니.
나도 모르게 미소를 머금었다.
수천 번, 아니 수만 번을 자문하고 자답한 주제다.
하나로 정리될 수 없는 수많은 생각이 머리를 맴돌지만 내가 늘 생각했던 나만의 생존 방법은 하나뿐이다.
우민희에게 펜을 받아 롤링 페이퍼의 여백에 나의 계획을 적어 넣었다.
스켈톤 – 숨기
“숨기?”
우민희가 옆에서 내 메시지를 보고 피식 웃었다.
“어떻게 숨으려고?”
“잘 숨어야지.”
“숨는다는 거, 상상 이상으로 힘들고 신경 많이 쓰이는 거 알지?”
“글쎄.”
롤링페이퍼에 적힌 내 메시지를 수정했다.
스켈톤 – 집을 숨김
우민희가 그 문자를 보더니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집을 숨김? 집 자체를 숨기겠다는 이야기?”
“비밀 기지 같은 느낌이지.”
“김다람이 그러는데 선배 방공호 별로 안 좋다고 하던데.”
“이 세상에 걔 마음에 드는 게 얼마나 있겠냐.”
“하긴.”
우민희가 웃으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튼, 내년 이맘때에 다시 부를 거야.”
“내년에?”
우민희가 갈고리 손으로 쥔 롤링페이퍼를 가만히 응시했다.
확실히 여백이 많다.
겨우 세 명의 메시지를 썼기에 여백이 많을 수밖에.
“내년엔 동탄맘도 불러볼까?”
“그 양반을?”
“나도 마음에 안 들긴 하지만 어쩌겠어. 적어도 우리 게시판에서 유명한 사람이고 또 살아 있잖아?”
그러고 보니 나의 선배 백승현은 최근 게시판의 자신의 근황을 밝혔다.
그는 일전에 우리에게 공개했던 버려진 배로 이루어진 섬에서 거대한 선박을 개조 중이며 곧 그들의 낙원을 찾아 출항하겠다고.
그 낙원이 어디인지 백승현은 밝히지 않았지만 우민희의 말대로 그 양반이 그리 쉽게 죽지 않으리라는 건 확실하다.
그나저나 동탄맘이라.
한 가지 시험을 해볼까.
떠날 채비를 하는 우민희를 보고 불쑥 말했다.
“저기, 유니콘도 불러 볼까?”
우민희의 얼굴에 선명한 경멸이 드러났다.
“뭐, 유니콘······? 그 오타쿠 말이지?”
모르는 건가.
하긴 이건 천하의 우민희도 모르겠지.
“걔를 왜 불러? 별 유명하지도 않은 앤데.”
여기서 발렌타인을 쳐다보는 부분에서 우리는 우민희의 인성을 알 수 있다.
“아니, 오면 재미있을 거 같아서.”
“선배가 알아서. 뭐, 내년에 살아 있을 때 가능한 이야기겠지만 말이야.”
우민희가 갈고리 손을 흔들었다.
“그럼, 모두 죽지 말고 오래오래 살아.”
툭 던진 듯이 내뱉은 한마디.
하지만 모든 것이 죽어가는 이 세상에 이보다 더 멋진 덕담이 있을까.
“······.”
널리 알려진 곳에서 쭉 버티고 살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터전을 찾을 것인지, 아니면 영역을 숨긴 채 모든 것이 지나가길 기다릴 것인지.
그러한 것들은 방법에 불과하다.
살아 남는 것.
중요한 것은 그것이다.
겨울이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