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a House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330)
아포칼립스에 집을 숨김-330화(330/466)
330화 133. 공정거래 (4)
한국과 중국.
불신이 팽배할 수밖에 없는 이질적인 집단 사이의 교역이고 서로가 총기로 무장하고 있다.
아무리 좋게 말해도 화기애애한 거래가 언제 총알이 빗발치는 아수라장으로 변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중국인들이 여기서 착안한 것이 그들이 좋아하고 잘 만들던 드론에 의한 거래다.
직접 만나는 거래라고 해도 물리적인 접근은 서로의 존재를 눈으로 확인할 정도.
직접적인 거래는 드론이라는 부지런한 친구를 이용한다.
“거래 번호를 요구한다.”
물론 드론이 오가기 전까지 신분 확인은 필수다.
드론 그 자체가 귀중한 재산이 되는 시대다.
드론만 챙기고 냅다 달아나는 인간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기에 중국인들은 제법 상세한 인증 절차를 마련하고 있었다.
사전에 거래 번호를 받았다.
“AXX-0300.”
휴대폰에 저장한 거래 번호를 중국인에게 전하자 중국인들은 그 거래 번호를 확인한 후 내게 다시 묻는다.
“거래자의 이름은?”
“스켈톤.”
“거래하려는 물건은?”
“게임기와 소프트. 그리고 노트북.”
“그 외 필요한 건 없나?”
“일단은 이것만 거래하려 한다. 추가로 필요한 게 있다면 그때 인터넷 등을 통해서 연락하겠다.”
“알겠다.”
어눌한 인터넷 상의 언어와 달리 실제로 무전기로 응대하는 여성의 한국어는 한국인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자연스러웠다.
망원경으로 장갑차 뒤편에 모습을 반쯤 가린 채 무전기를 들고 서 있는 여성을 보았다.
“헌터군요.”
옆을 지키고 서 있던 전상희에게 말했다.
“헌턴가요?”
“네.”
“어떻게 헌터라는 걸 알 수 있죠? 우리가 볼 땐 똑같은 군복을 입고 있는데.”
망원경을 그에게 넘기며 선글라스를 고쳐 썼다.
“왼팔에 완장 같은 거 차고 있죠?”
“완장요? 아, 저 천으로 감싼 거 같은?”
“네. 아마 완장을 가리려고 그런 걸 겁니다.”
전쟁 전, 중국은 세계 최대의 헌터 집단을 운용한 국가다.
전성기 때는 십만 명이 넘는 헌터를 운용했다.
물론 그들 전체가 제대로 된 헌터냐고 묻는다고 아니라고 할 것이지만 그럼에도 중국은 마지막까지 올드스쿨 헌터를 운용했고 올드스쿨 헌터와 함께 침몰했다.
중국에서 오랫동안 복무했기에 중국 헌터의 특징이나 복식 정도는 알고 있다.
저 여자가 입은 건 이른바 헌터 정복이다.
멀리서부터 알아볼 수 있는 화려한 완장이 헌터 정복의 특징이다.
천으로 완장을 가려놓은 건 규정에 없지만 실무상 중국인 지휘관이 권장하고 또 중국인 헌터가 즐겨 사용하는 패션이다.
완장이 지나치게 화려했다.
죽으러 가는 사람들을 위한 수의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중국 정부는 그들의 헌터에게 과할 정도의 표식을 선물했다.
그 화려한 징표는 안전한 도시 안에서는 존경과 관심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했지만 반란군으로 들끓는 전장에서는 죽음을 부르는 표식이었다.
특히 광신도들은 헌터를 최우선 제거 대상으로 삼았다.
어느 정도냐면 바로 옆에 1개 전구를 통괄하는 3성 장군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옆에 있던 헌터를 우선적으로 죽일 정도라고 한다.
이렇게 헌터 사냥이 기승을 부리자 중국 헌터들은 정복 대신 한국 헌터와 비슷한 사제 전투복을 구해 입거나 아니면 저렇게 완장 자체를 천으로 가려놓아 눈에 띄는 걸 자제하려 했다.
이 사실을 전상희에게 풀어서 설명했다.
“그런 사정이 있었군요. 처음 듣는 이야기입니다.”
전상희가 모르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중국이 우리에게 보낸 건 군인이지 헌터가 아니니까.
“그나저나. 저 여자. 소문대로 상당한 미인인데요? 배우라고 해도 믿겠습니다.”
확실히 여성의 외모는 퍽이나 뛰어나다.
예쁘고 귀엽다 수준이 아닌, 아름답다는 수준에 이를 정도의 기품이 느껴진다.
하지만 내가 주목하는 건 외모보다는 그녀가 팔목에 차고 있는 기묘한 형태의 병기다.
정확한 작동 원리는 모르겠지만 최소 3개의 소형 추진체를 발사할 수 있는 것 같은 사출구가 있다.
추코누라고 했던가.
골드 패거리를 죽였을 때 사용된 헌터 무기 말이다.
내가 상대했던 중국인 헌터는 근접전에 대단한 자신감이 있긴 했지만 헌터 무기를 그리 즐겨 쓰는 것 같진 않았다.
어쩌면 골드 무리를 혼자서 격멸했다는 건 저 여자일지도다.
그런데.
“······.”
기분 탓인가.
여성의 눈동자가 은은히 빛나는 느낌이다.
아니겠지.
중국은 어웨이큰을 마지막까지 용납하지 않았다.
과거의 중국 정부가 무너지고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고 하더라도 당시의 기조를 번복할 것 같진 않다.
“거기. 누가 스켈톤이죠?”
무전기로 떠드는 것도 저 여자다.
손을 들었다.
“당신이 스켈톤?”
“그러하다.”
“왜 선글라스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있죠?”
“갑자기 그것은 왜 묻는가?”
“궁금해서.”
“나는 적이 많다.”
“적?”
“그렇다. 나는 사방에 적이 있다. 그래서 얼굴을 함부로 드러내면 곤란하다.”
“아, 그렇다면 어쩔 수 없죠. 샤오샤오 보낼게요~.”
대화 내용을 떠나 이 여자가 한국어를 정말로 잘한다는 건 확실하다.
그런데 왜 인터넷에서는 그런 식으로 이야기를 했을까?
증폭되는 의문 속에서 드론 한 대가 윙윙거리는 소리를 내며 우리에게 다가왔다.
물론 킹의 부하들이 가만 있던 건 아니다.
철컥!
철컥!
각종 대공감시 장비 및 7.62mm 기관총을 4개를 묶은 간이 대공포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드론을 감시하고 또 사선에 두었다.
기우였다.
드론은 마치 커다란 플라스틱 박스에 비행용 팬을 달아놓은 듯한 우스꽝스러운 생김새를 가지고 있었다.
글자 그대로 거래용 드론이다.
내용물을 훤히 볼 수 있게 측면을 투명 아크릴판으로 만든 것도 특기할 대목.
한때 멜론 마스크가 구상하기도 했던 전세계 무인 드론 택배망에도 저런 드론을 쓴다는 걸 본 적이 있다.
은 600g만을 넣고 무전기에 말했다.
“오늘은 첫 거래인만큼 은 600g에 상당하는 물건만 거래하겠다.”
“그래?”
“다음 거래는 이번 거래를 성사 후에 생각하겠다.”
“알겠어.”
은 600g을 실은 드론이 하늘 위로 떠올라 중국군 진영으로 갔다가 다시 물건을 싣고 우리에게 돌아왔다.
물건을 확인해보았다.
아이엠지저스가 말했던 게임기와 소프트, 그리고 내가 사용할 노트북이다.
당연한 일이지만 나는 노트북부터 테스트를 해보았다.
키보드 감도 적당하고 배터리 상태도 괜찮다.
주기적으로 사용한 흔적이 있지만 혹사가 아닌, 일상적인 용도로 꾸준히 사용된 느낌.
오히려 이쪽이 사용되지 않은 채 방치된 것보다 낫다.
“물건은 어때?”
중국인이 물어왔다.
“양호하다. 나머지는 딴 곳에서 확인해봐야겠지만.”
“문제가 있으면 언제든 연락해라. 스켈톤.”
“알겠다.”
드론과 함께 중국인은 떠났고 우리도 자리를 떠났다.
깔끔한 거래였다.
전쟁 후 중국인과의 거래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깔끔하고 뒤끝 없는 거래였다.
“역시 괜히 소문이 나는 건 아닌 것 같네요.”
전상희도 이번 거래에 상당히 강한 인상을 받은 모양.
물론 현재 보이는 중국인의 모습이 100% 선의라고 볼 수만은 없다.
적절하게 좋은 모습을 보이다가 결정적일 때 본색을 드러내는 건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사자성어에서도 비슷한 예를 찾아볼 수 있다.
나름의 목적이 있으니까 이런 수고로운 일을 하는 것이겠지.
“언젠가 저 새끼들도 뒤통수를 치겠죠.”
전상희의 생각은 내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에게 물었다.
“그럼 그쪽은 중국인과 영영 거래하지 않을 생각입니까?”
전상희가 정색하며 답했다.
“당연히 해야죠.”
물끄러미 보고 있자 전상희가 말을 잇는다.
“옛날 주식 중에 테마주라는 거 있지 않았습니까? 누가 봐도 돈 놓고 돈 먹기인 한탕판요. 그런데 사람들이 왜 들어갈까요?”
“글쎄요.”
전상희가 빙그레 웃었다.
“다른 놈은 좆망해도 나는 안 잃을 거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죠.”
덩달아 미소지었다.
하긴.
누구나 그런 심리는 있기 마련이지.
나도 킹을 거치지 않고 중국인과 두어 번 거래를 더 해 볼 생각이다.
내 정체가 발각되면 총알 한 두 발 주고 받는 걸로는 끝나지 않겠지만 이번 쇼핑이 다시는 오지 않을 몇 안 되는 좋은 기회라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
겨울이 오기 전에 필요한 걸 추려 다시 접촉을 해봐야겠지.
가까운 시일 안에 한 번 더 거래를 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물론 그건 곧 만나게 될 아이엠지저스의 마음에 달린 일이겠지만 말이다.
“그나저나 박헌터님이 만나러 간다는 사람 말입니다.”
전상희가 갑자기 머리를 긁적이며 입을 열었다.
“그 도시에 1년 넘게 혼자 있지 않았나요?”
“그렇겠죠?”
“하아. 좀 걱정되네요.”
전상희의 얼굴에 수심이 떠올랐다.
중국인을 앞두고도 실실 웃던 그가 처음으로 드러내는 근심이다.
좀비 공포증이라도 있는 걸까.
물끄러미 응시하고 있자니 전상희가 날 보며 불쑥 말했다.
“그 사람 멀쩡할까요?”
*
거래를 마치자마자 곧장 아이엠지저스의 도시로 향했다.
셀 수 없는 좀비들의 무덤인 그 도시는 멀리서부터 알아볼 수 있는 회백색을 띄고 있었는데 그 색채는 몬스터의 침식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도시에 자리 잡은 망자들의 그림자가 만든 것으로 보였다.
우우우우–
우우우우–
도시에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좀비들의 음산한 합창이 산자의 마음을 짓누르고 무겁게 한다.
“여기서 잠시 기다려주시죠.”
더 이상 전상희가 이끄는 경호팀 차량을 접근시켜서는 안 된다.
여기엔 그가 아이엠지저스를 의심하는 것도 있겠지만 나도 아이엠지저스를 잘 안다.
아이엠지저스는 폐쇄적인 성격이다.
마음을 잘 열지도 않지만 마음을 닫은 상대는 어떤 말을 하고 조건을 제시해도 들은 체도 하지 않는다.
힘을 가지기 전에도 그런 성격이었는데 이제는 막대한 힘까지 가지고 있다.
그는 마음만 먹으면 수만 마리의 좀비를 휘몰아칠 수 있고 걸리적거리는 모든 걸 파괴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그들을 도시에서 먼 곳에 대기시켰다.
대신 준비한 건 백승현의 모터사이클.
“그래. 스켈톤. 중국인과 거래는 잘 끝났나?”
가기 전에 킹과 교신을 주고받았다.
“당연하지.”
“그래. 아직 그 금괴는 쓰지 않았고?”
“일단, 아이엠지저스가 원하는 물건을 건네주면서 녀석이 뭐가 더 필요한 지 설득해 봐야지.”
아이엠지저스가 뭘 원하는지도 모르는데 무턱대고 그가 좋아할 만한 물건을 사서 가는 건 민폐다.
일단 대화를 해봐야 한다.
아이엠지저스가 뭘 원하고 뭘 하고 싶어 하는지.
“······.”
전상희의 말이 머릿속을 맴도는 것도 사실이다.
아이엠지저스는 과연 멀쩡할까?
괘씸한 질문이다.
하지만 동시에 매우 적절한 질문이다.
사람은 의외로 쉽게 망가지는 법이다.
별 거 없다.
의지가 꺾이는 순간 그 사람은 그 전과 다른 무언가로 변한다.
아이엠지저스의 의지가 그렇게 강할 것 같지 않다는 건 비단 나의 생각만은 아니겠지.
내 손에 두 번째 죽음을 맞이했던 아이엠지저스의 부친도 비슷한 생각을 했는지도 모른다.
“아이엠지저스. 나다. 스켈톤이다. 스켈톤.”
수많은 생각 속에서 아이엠지저스에게 교신을 시도했다.
곧 치직 거리는 소리와 함께 무전기가 울렸다.
“스켈톤······?”
교신은 제대로 연결됐다.
“그래. 나야. 부탁한 물건 모두 챙겨 왔어. 이제 어디로 가면 되냐?”
“기다려. 기다려! 사람! 보낼 게!”
목소리가 변했다.
앳된 느낌이 남아 있던 아이엠지저스의 목소리에 물씬 굵은 남성 느낌이 난다.
동시에 말 속에서 전에는 느낄 수 없던 강한 힘도 느껴지고.
성장한 건가.
이 죽음의 도시에서.
망자들이 아이엠지저스에게 가르침을 줬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저 아이엠지저스의 명령대로 움직이는 꼭두각시에 지나지 않는다.
어쩌면 전상희의 걱정대로 불길한 영향을 줬을지도 모르겠지.
저벅- 저벅-
머리에 메마른 꽃을 꽂은 여자 좀비가 나에게 다가왔다.
그 좀비를 본 순간 의문을 느꼈다.
얼굴 전체를 가리는 면사포를 쓰고 있었다.
결혼식 신부가 쓸 법한.
다만, 아래에 입은 정장으로 미루어보아 생전에 쓰고 있었던 건 아닌 것으로 보인다.
도끼를 든 채 다가오는 좀비를 노려보았다.
좀비는 내 앞에 멈춰 서더니 이윽고 몸을 기이한 자세로 뒤돌아서면서 다시 앞으로 걸어갔다.
“······이 좀비냐? 면사포 쓴 거.”
교신기에 대고 말했다.
곧 답신이 도착했다.
“인사해! 스켈톤! 제인이야. 제인! 제인이 안내를 할 거야.”
“······.”
느낌이 좋지 않다.
멀쩡한 좀비에 면사포를 씌운 것도 그렇게 무전기 너머로 느껴지는 아이엠지저스의 기이하게 들뜬 목소리도 그렇고.
모터사이클을 끌며 제인의 뒤를 따랐다.
거리엔 한 마리의 좀비도 찾아볼 수 없었지만 거리 전체엔 사람을 미치고 병들게 하는 좀비의 합창이 가득했다.
곧 제인이 건물로 들어갔다.
여기저기 상하긴 했지만 여전히 과거의 화려함이 남은 어떤 회사의 사옥이었다.
층수만 놓고 보면 49층 정도일까.
깎아 지를 듯이 높은 빌딩의 그늘 아래엔 여전히 한 마리의 좀비도 찾을 수 없다.
모터사이클이 내 유일한 생명줄이니만큼 모터사이클을 손으로 끈 채 빌딩 안으로 진입했다.
빌딩에 들어선 순간 여러 개의 인영이 눈앞을 어지럽혔다.
사람, 아니 좀비다.
그런데 이 좀비들.
전부 여자다.
상세한 설명을 하자면 전쟁 전 기준으로 몸매가 좋은, 매력적인 여성이다.
복장도 다양하다.
어떤 좀비는 순백의 웨딩드레스를 입고 있었고 어떤 좀비는 몸매가 훤히 드러나는 레깅스를 입고 있었고 또 어떤 좀비는 야구장에서 볼 법한 치어리더의 복장을 하고 있었다.
엉성하게 입힌 복식으로 보아 제인이 쓴 면사포와 마찬가지로 생전에 입던 물건은 아닐 것이다.
아마 아이엠지저스 본인이 입힌 게 아닐까.
“스켈톤! 스켈톤!”
무전기를 통해 아이엠지저스가 나를 부른다.
“스켈톤! 다 와 가지? 발소리가 들려!”
들뜬 목소리 속에서 우리는 계단을 올라 탁 트인 복도에 도착했다.
그 복도는 갖가지 기묘한 복장을 한, 여성 좀비로 가득 차 있었다.
그 중심에 내가 잘 아는, 그러나 더 이상은 잘 안다고 할 수 없는 깡 마른 사내가 서 있었다.
“스켈톤!”
아이엠지저스다.
그는 가면을 쓰고 있었다.
아마, 사람의 얼굴 가죽으로 만든 것처럼 보이는.
그런데 그 가면, 묘하게 낯이 익다.
분명 어디서 본 적이 있다.
곧 전쟁 전 인터넷 기록에서 본 한 교회와 목사의 사진이 그린 듯이 눈앞을 스치고 지나갔다.
“······.”
부친의 것이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