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a House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333)
아포칼립스에 집을 숨김-333화(333/466)
333화 134. 발견
우리가 자리를 비운 동안 디펜더 남매가 영역을 떠났다.
전하는 바로는 하태훈이 잠시 마중 나왔을 뿐, 아무도 그들이 떠나는 모습을 배웅하지 않았다고 한다.
심지어 동기인 천영재조차.
내가 파악한 이상으로 갈등의 골이 깊었다는 이야기다.
물론 디펜더는 떠나는 날 나에게 별 다른 연락을 취하진 않았다.
어쩌면 본인도 염치가 있어서 내게 불필요한 연락을 하지 않은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메모는커녕 메시지 하나 남기지 않고 간 부분에 대해서는 약간의 서운함을 느꼈다.
“드디어 갔네. 그 사람들. 진짜. 뭐 하는 사람들인지.”
떠난 사람의 흉을 보는 건 흔히 있는 일이다.
디펜더 남매의 눈치를 보며 아들 옆에만 있던 방재혁의 모친이 보란 듯이 나와 대낮부터 디펜더 남매의 악담을 한다.
“남매라던데 콕 붙어서. 뭐 하는 거지? 뭔가 수상하지 않아?”
디펜더 남매를 변호할 생각은 없지만 그렇다고 그들의 욕을 듣고 싶지도 않아 방재혁을 따로 불러냈다.
“알고 있어.”
다리를 절뚝이며 다가온 방재혁은 처음부터 내 용건을 알고 있는 눈치였다.
“주의를 줄게. 하지만 쌓인 것도 많았어. 사이 정말 안 좋았거든. 남의 호의를 그렇게 일방적으로 매몰차게 거절하면 아무리 부처님이라도 화를 낼 수밖에 없잖아?”
“그걸 감안해도 말이 지나치신 거 같다.”
“오늘 하루 정도는 마음껏 흉볼 수 있게 해주면 안 될까? 내 어머니긴 하지만 노친네들. 가슴에 쌓인 거 어떻게라도 풀어야 직성이 풀리잖아?”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지만 좋은 노인도 그다지 많아 보이지 않는 것도 엄연한 현실이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육체와 정신은 둘이 아닌 하나다.
아무리 고결한 정신을 가진 사람도 세월 앞에서는 변하기 마련이다.
한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삶의 무게라고 할까.
편차는 있지만 한 사람이 짊어질 수 있는 무게엔 한계가 있다.
십자가를 진 성현이 그토록 큰 존경을 받는 건 인간에게 허락되지 않은 과중한 무게를 떠맡으려 들었기 때문이리라.
“······.”
레베카를 생각했다.
가장 걱정되는 친구다.
방공호 밖에 잘 나오지도 않고 경계 근무를 스우에게 전담시키고 있다.
예전과 다른 점은 비바! 아포칼립스! 대신 네크로폴리스를 한다는 것.
그녀를 찾아갔다.
“스켈톤.”
살이 많이 빠졌다.
기력도 없고 눈도 퀭하다.
스우의 말에 의하면 종일 어두운 방공호에 누워 네크로폴리스만 해댄다고 한다.
스우가 레베카를 사랑하긴 하지만 모친의 지속적인 안 좋은 모습은 스우에게 회의감을 심어주고 있었다.
사춘기 특유의 반항심과 더불어 점점 커지는 실망감이 어디로 튈지는 모르겠지만 그 결말이 영 좋지 않은 형태로 끝맺음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순간 디펜더 남매의 모습이 눈앞을 스치고 지나갔다.
특히 날 향해 매일 같이 눈웃음을 짓던 다정이의 모습이 잔영이 남을 정도로 강하게 뇌리 한 구석에 새겨졌다.
“······잠깐. 밖에 나갈까?”
이대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에?”
“바람이라도 쐬는 게 좋을 거 같아서.”
“싫어.”
“싫어도 가는 게 좋을 걸?”
방공호와 연결된 전선을 들어 보이고는 손가락을 가위처럼 움직여 전선을 자르는 시늉을 했다.
그제야 레베카는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머리도 감지 않고 후줄근한 군복 차림의 그녀는 멀리서도 얼굴을 찌푸릴만한 체취를 풍기고 있었다.
딱히 내색하지 않았다.
마침 경계를 서고 돌아오던 스우가 총을 멘 채 우리를 보더니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스우에게 가볍게 손짓을 한 후 영역의 정문을 열고 레베카와 함께 비탈길을 걸어 내려갔다.
우리가 말문을 연 건 완만한 경사를 내려와 평지로 진입할 즈음이었다.
“여기 온 게 마음에 안 들지?”
굳이 말을 비틀고 싶진 않다.
“응.”
레베카도 바로 본심을 드러냈다.
“어떻게 할 거야?”
걸음을 걸으면서 물었다.
“모르겠어.”
전부터 긴가민가했지만 최근의 행보를 보고 확신했다.
그녀는 여전히 바다 건너의 사람이다.
나와 약간의 접점이 있지만 그건 필요에 의한 관계다.
나에 대한 약간의 호감을 제외하고 그녀가 우리 동료들에게 가진 감정은 우리가 처음 내 방공호 앞에서 조우할 때와 큰 차이가 없다.
그녀는 타인으로 남고 싶어 한다.
지금까지는 지켜보기만 했지만 이제는 나도 개입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선택엔 디펜더 남매가 떠난 것이 큰 지분을 차지하고 있음을 부정하진 않겠다.
“원래 있는 곳으로 돌아간다면 도움을 줄게.”
“어디? 대구?”
“거긴 무리고.”
고개를 돌려 동쪽을 바라봤다.
과거 레베카 모녀가 살던 마을이다.
지금은 아무도 살지 않는 유령 마을이 되었지만 항상 총성이 들리던 그 마을은 나에게 있어서나 레베카에게 있어서나 수많은 추억의 장소다.
“거기?”
“필요한 거 싹 실어서 정리를 해주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해?”
휴지기를 가지는 것도 좋은 선택이다.
어차피 그녀의 영역과 내 영역은 엎어지면 코 닿는 곳에 있으니.
일단 거리를 둔 채 천천히 화합을 시도해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겠지.
레베카는 입을 다물고 눈동자를 굴렸다.
여러 생각을 하는 눈치.
아마 나름의 계산을 할 것이다.
곧 그녀가 우리와 다른 색을 가진 눈동자로 날 응시하며 말했다.
“갈래.”
1분 정도 고민했나.
레베카 다운 결단이다.
하지만 이래서는 안 되겠지.
그녀가 가고 안 가고의 문제가 아니다.
얕은 한숨을 내쉬며 물었다.
“스우하고는 상담 안 하냐?”
“스우?”
레베카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다 이내 환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스우는 내 말 잘 들어. 착한 딸이야.”
나는 세종에서 스우가 내게 한 말과 행동을 기억한다.
레베카에 대한 스우의 인내심은 슬슬 한계에 치닫고 있다.
딸이 성장한 만큼 모녀의 틈새는 커져 갔다.
“스우가 안 간다면 어떻게 할 거야?”
나의 물음에 레베카는 발걸음을 멈춘 채 날 입을 벌린 얼굴로 멍하니 응시했다.
뒤돌아 서서 그녀를 가만히 마주 보았다.
“뭐? 스우가?”
“어. 스우가 안 간다면 그때는 어떻게 할 거야?”
레베카가 영어로 중얼거렸다.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서 얻어맞은 모양.
그녀를 놔두고 천천히 앞으로 걸었다.
여전히 푸르름이 남은 벌판과 곳곳에 자리 잡은 작은 공장이 눈에 들어온다.
“스켈톤!”
레베카가 날 쫓아왔다.
“스우가 안 간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사춘기라는 말을 레베카가 알아듣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휴대폰을 꺼내 사춘기를 번역한 영어단어를 레베카에게 보여줬다.
“······사춘기.”
하나의 단어는 때로는 백 마디 말보다 더 큰 호소력을 지니는 법이다.
“스우, 사춘기······.”
그 순간 나는 레베카에게 손짓을 해 입을 다물게 했다.
철컥-
가까운 곳에 기척이 있다.
그동안 방구석에 틀어박혀 추한 모습을 보였지만 레베카도 멸망기의 어엿한 생존자다.
흐리멍덩한 얼굴은 이내 전사의 얼굴로 바뀌었고 들고 있던 총을 능숙한 손놀림으로 조작하며 내 측면을 엄호했다.
뒤로 물러났다.
우리가 만날 수 있는 경우의 수는 셋.
인간, 뮤테이션, 혹은 야생동물이다.
어느 쪽도 위험하지만 그나마 덜 위험한 걸 고르라면 야생동물일 것이다.
속단은 금물.
총기를 쥔 채 도끼의 무게감과 질감을 하반신의 촉감으로 재확인하며 레베카와 함께 천천히 뒤로 물러났다.
우리의 잠재적인 적이 인간이라면 여기서는 엎드리는 게 옳다.
하지만 뮤테이션 같은 흉포한 짐승을 상대로 엎드린다는 건 그다지 현명하지 못한 선택이다.
엎드리는 순간, 인간은 인간종만의 이점을 잃는다.
인간이 두 다리로 섰을 때 취할 수 있는 최대의 이점인 넓은 시야를 잃는다는 이야기다.
시야는 총기와 밀접한 연관을 지닌다.
특히 선제공격의 측면에서.
“······.”
쉬지 않고 사방을 경계하면서 레베카에게 엄폐물을 찾아 확보하라는 수신호를 보냈다.
최근 못난 모습을 보이지만 역시 레베카는 세계 최강이라 불렸던 무력 집단의 군인이다.
남자 못지않은 체격을 가진 그녀는 신속하고 기민하게 달려가 돌담을 확보, 개머리판으로 담을 가볍게 쳐서 나에 대한 엄호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렸다.
그대로 전력으로 돌아가 레베카 옆에 붙어 몸을 숙였다.
“뭐였어?”
레베카가 묻는다.
대답하는 대신 소리가 난 방향을 뚫어지게 노려보았다.
곧 수풀 너머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레베카도 숨을 죽이고 총기를 든 손에 힘을 더했다.
“사격 중지. 명령이 있을 때만 사격을 부탁할게.”
“응.”
부스럭-
소리가 난다.
방아쇠에 댄 손가락을 아주 살짝 움직이면서 호흡을 멈췄다.
곧 수풀 너머에서 시커먼 뭔가가 나타났다.
레베카가 웃었다.
고양이다.
뮤테이션이 아닌 평범한 고양이.
전쟁 전에 많이 보던 그 녀석이다.
“······.”
감이 죽은 건가.
고양이만의 기척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다른 뭔가가 있었다.
“스켈톤. 고양이야.”
레베카는 고양이를 좋아하는지 언제 우울했냐는 듯 헤벌레 웃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무표정한 얼굴로 고양이를 응시했다.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낸 건 새끼 고양이다.
한 마리가 아니라 둘 아니, 셋이다.
하얀 색 털과 회색 털이 반반 섞인, 코리안 숏헤어라 불리는 토종 고양이와는 엄연히 다른 외모를 가지고 있다.
아마 집에서 기르던 품종묘가 아닐까.
곧 어미로 보이는 녀석이 눈치를 보며 슬그머니 나타나더니 새끼 한 마리의 목을 물고 우리를 바라본다.
“······.”
모든 짐승이 뮤테이션으로 변하는 건 아니다.
모든 짐승이 뮤테이션으로 변했다면 인류는 지금쯤 진즉에 멸종하고도 남았겠지.
동물의 뮤테이션 비율은 지역마다 다르지만 우리 영역처럼 인근에 침식 지역이 없는 곳에서 발생 확률은 1% 미만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사방이 뮤테이션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건 하나하나의 존재감이 너무나 크기 때문이겠지.
한 마리의 뮤테이션이 자리 잡은 영역은 그 자체로 위험지대다.
조금도 위협적이지 않은 적이지만 총기를 겨누었다.
철컥-
1%의 확률이라는 건 고정된 게 아니다.
고혈압 같은 심혈관계 지병을 가진 사람이 매일매일 죽을 확률을 안고 살아가는 것처럼 동물 또한 매일매일 뮤테이션 인자에 반응해 변이를 일으킬 확률이 있고 또 그 확률은 주변에 몬스터가 나타나는 것으로 비약적으로 상승한다.
“스켈톤. 죽이려고?”
레베카가 묻는다.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죽이지 않으면 나중에 이것들이 우리를 죽이러 올지도 몰라.”
레베카가 영어로 뭐라고 중얼거린다.
그녀를 보며 덧붙였다.
“그런 세상이잖아?”
“알아. 아는데······.”
레베카는 못내 고양이를 죽이는 게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다.
아마 자신이 딸을 둔 어머니이기에 새끼를 키우는 고양이에 감정이입을 해버린 것이겠지.
그녀의 불안한 표정을 보니 마음이 바뀌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지금 고양이를 죽이는 건 보류해야 할 것 같다.
이미 버거운 짐을 지고 살아가는 그녀에게 또 다른 스트레스를 부가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늘 강조하지만 한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스트레스는 한계가 있다.
스트레스는 빠르게 회복되지 않고 때로는 마음에 잘 지워지지 않는 흉터를 남기곤 한다.
“······가자.”
레베카가 눈을 반짝이며 날 보았다.
“스켈톤? 안 죽이는 거야?”
“네 얼굴을 보고 있자니 죽여서는 안 될 거 같네. 거기다가.”
손을 내밀어 손끝에 와닿는 바람의 온도를 확인했다.
제법 차가워졌다.
현재 기온 23도.
지금이 한낮인 걸 감안하면 기온은 착실히 떨어지고 있다.
준비되지 않은 것들은 이 겨울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이런 계산 위에 선 선의는 그러나, 어이없는 형태로 종결됐다.
우리가 떠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고양이의 날카로운 비명이 울려 퍼졌다.
앙칼진 비명은 이윽고 단말마로 바뀌었고 수풀 안은 고요에 잠겨 들었다.
레베카와 눈빛을 교환하고 다시 총기를 들고 소리가 난 방향을 노려보았다.
부스럭-
길쭉한 무언가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눈을 부릅뜬 채 죽은 고양이의 시체를 입에 문 그 짐승은 담비다.
탕!
순식간에 뽑아 든 권총으로 녀석의 머리를 날려버렸다.
고양이의 복수 따위 하찮은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저 담비라는 동물종은 위험한 포식자다.
특히 뮤테이션이 진행되면 영역 전체를 골탕 먹인 검은 고양이보다 더 성가신 놈이 되겠지.
전에 처치한 수달도 그렇지만 족제비과는 덩치가 커졌을 때 무시무시한 전투력을 가진다.
겨울에도 생존 가능성이 높다는 측면에서도 놈들은 죽어 없어져야 한다.
“······죽었어.”
레베카가 짐승들의 시체를 보며 중얼거렸다.
권총을 빼든 채 주변을 경계했다.
혹시라도 담비의 친구가 있다면 전부 쓸어버려야 한다.
내가 담비를 찾는 동안 레베카는 새끼들의 시체를 찾았다.
한 마리가 살아 남았지만 창자가 흘러나온 모습으로 보아 얼마 남지 않았겠지.
수색을 끝내고 레베카에게 돌아오는 동안에도 레베카는 시체들을 보고 있었다.
“······스켈톤.”
주먹을 쥐며 레베카가 날 향해 고개를 돌렸다.
“남을래.”
그녀를 빤히 쳐다보았다.
우리와 다른 색을 가진 눈동자는 지금 이 순간만큼은 우리가 잘 아는 뜻을 품고 있었다.
“그래?”
짐승의 죽음이 가르침을 준 걸까.
그건 아니라고 본다.
그녀에겐 단지 하나의 선명한 계기만이 필요했을 뿐이다.
스걱-
레베카의 단검이 짐승들의 털가죽을 익숙한 손놀림으로 벗겨냈다.
담비만이 아니다.
레베카는 고양이의 가죽들도 일말의 망설임 없이 피부에서 분리했고 때로는 나에게 도움을 청하기도 했다.
“잡아. 응. 쭉 당겨.”
아둔한 이미지가 있긴 하지만 그녀도 우리와 같은 시대 속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다.
나의 도움을 받은 것도 사실이지만 대부분의 나날을 어린 딸이라는 족쇄를 달고 버텼다.
정직하게 그녀의 생존 난이도는 나보다 훨씬 무거웠을 것이다.
“······나, 좀 짜증 나지?”
여러 벌의 가죽을 포개면서 그녀가 날 향해 실없이 웃어 보였다.
고개를 끄덕였다.
“스우도 짜증을 내더라고.”
레베카는 쓴웃음을 머금은 채 고개를 가로저어 보였다.
그녀를 앞질러 영역으로 향해 걸어갔고 곧 그녀가 가죽을 든 채 내 뒤를 따랐다.
우리 사이엔 그리 많은 말이 필요하지 않다.
새삼스러운 발견이다.
*
“야. 저 여자. 손기술 장난 아닌데?”
적어도 건축 쪽에서 하태훈의 칭찬을 받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 하태훈이 레베카의 솜씨를 놀란 눈으로 보고 있다.
특히 목재와 목재를 못질 없이 이음새만으로 이어붙이는 기술은 하태훈이 잘 모르는 기술처럼 보였다.
레베카가 훌륭한 목수라는 건 일전에 그녀가 오두막을 지을 때 눈여겨보았다.
목수만이 아니다.
레베카는 사냥에도 일가견이 있었다.
탕!
매서운 사격 솜씨도 사격 솜씨지만 동물이 남긴 흔적을 가지고 동물을 추격하는 솜씨도 예사롭지 않다.
“개 한 마리 있으면 편하겠어.”
담비 일가족을 모조리 찾아내서 사냥했다.
시체를 해체하는 데도 능숙하고 특히 가죽을 기가 막히게 잘 벗겼다.
그 반대급부로,
윙- 윙-
가죽을 햇볕에 널어놓은 공터엔 악취와 더불어 파리 떼가 창궐했지만, 그녀를 나쁘게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저기. 미국 아가씨. 이거 좀 드셔보세요.”
방재혁의 모친이 음료를 내밀었다.
레베카는 낯선 이방인의 호의에 차가워 보이는 눈으로 물끄러미 쳐다보다 이내 잔을 받아들고 단숨에 들이켰다.
레베카가 엄지를 세웠다.
“맛있어요.”
성대한 환영식도 낯 간지러운 좌담회도 없었다.
평범하게 자연스럽게 어울리고 협동한다.
마치 가랑비에 옷이 젖는 것처럼.
그렇게 유대는 교류에서 시작된다.
그다지 큰 유대를 바랄 순 없겠지만 적어도 전처럼 철저히 벽을 쌓은 채 유리되어 살아가진 않겠지.
“······.”
디펜더 남매가 살던 빈 방공호를 바라보았다.
좀 더 빠르게 움직였으면 그들을 붙잡을 수 있었을까?
아니라는 확신이 팔 할을 이루지만 여기서는 내가 그들을 잡았다면 남았다는 가정을 밀어보겠다.
“박규씨. 이거 드세요. 어제 만든 홍시에이드예요.”
그쪽이 내 마음이 좀 더 편안할 테니까.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