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a House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335)
아포칼립스에 집을 숨김-335화(335/466)
335화 135. 세대 (2)
상대방의 숫자는 50명 정도.
숫자는 많지만 오합지졸.
훈련을 받은 것도 아니고 기율도 없다.
그저 크게 고함지르고 흥분한 상태로 움직일 뿐이다.
일부는 약에 취한 것처럼 과할 정도의 흥분을 보이기도 했다.
장비는 더 처참했는데 대부분이 북한제 소총이고 한두 명이 국산 혹은 미제 총기를 들었다.
그 50명의 적을 상대로 헌터 4명이 외벽 위에 일정 간격을 두고 늘어섰다.
바람은 잔잔하고 시계도 양호하다.
오전 10시의 태양은 조건 없이 만물을 두루 비춘다.
철컥!
철컥!
저마다 총기를 장전하고 곧 모습을 드러낼 적을 기다렸다.
일방적인 학살이 예견됐다.
부아아아앙—-
다만 상대방도 사람인지라 컴퓨터처럼 멍청하게 당해주지만은 않으려 한다.
차 한 대가 우리를 향해 맹렬히 돌진했다.
차량을 이용한 IED로 추정된다.
총격을 의식해서 엔진부에 장갑판을 달긴 했지만.
“내가 왼쪽 앞바퀴를 맡지.”
“그럼 나는 뒤.”
우리는 헌터다.
우리는 전문적인 군인은 아니지만 순간적으로 가장 정밀한 사격을 전문적으로 훈련받은 사수다.
탕! 탕!
두 발의 총성이 울리자마자 돌진하는 차량의 왼쪽 바퀴 전체가 터져나갔다.
끼이이이익–
한 축이 무너진 차량은 경사와 요철에 걸려 휘청거리다 찢어지는 소리를 내며 180도 유턴하며 바위와 나무 쪽에 처박혔다.
부아아아아앙–
그 와중에도 액셀을 고정한 바퀴가 맹렬하게 회전하는 걸 보며 총격을 가했다.
콰아아아앙!
성대한 폭죽이 외벽 앞에서 터졌다.
순간, 땅이 울릴 정도로 강렬한 폭발이었다.
“스켈톤. 괜찮아?”
뒤쪽에서 예비대로 대기하던 레베카가 물어올 정도.
“아무 문제 없다.”
총기를 든 채 능선 아래쪽을 주시했다.
옹기종기 모인 잡다한 차량 뒤로 눈치를 보는 약탈자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K-워키토키의 주파수를 공용으로 설정해두고 놈들에게 말했다.
“왜 갑자기 우리를 공격하는 지 모르겠지만 이쯤에서 손 떼는 게 좋을 거다.”
유리한 전투건 불리한 전투건 모두 소모 값이 있다.
당장 저놈들을 죽인다고 해도 시체가 남는다.
시체를 치우는 건 상당히 고되고 귀찮고 정신 건강에도 좋지 않은 일이다.
포로를 시켜서 하는 방법도 있지만 포로를 다루는 것도 번거로운 일이다.
협상의 여지가 있다면 협상하는 쪽이 좋다.
상대편에서는 답이 없다.
곧 놈들이 전진을 시작했다.
숫자는 약 30명 정도.
요리조리 엄폐하고 질주하며 포복도 하며 나름 전술적으로 행동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높은 곳에 있는 사람 눈엔 느려터진 표적에 지나지 않는다.
“저 흰 페인트칠을 한 바위를 넘어오면 사격을 시작한다.”
늘 영역 방어에 관심을 쏟는 나는 당연히 이런 유형의 전투도 사전에 준비했다.
지형지물로 거리를 표시하는 건 중세 이전부터 쓰던 유서 깊은 전략이다.
능선에 위치한 자연지물, 특히 단단한 화강암질 바위에 각양각색의 페인트로 거리를 표시했다.
방금 이야기한 흰 페인트를 칠한 바위는 외벽으로부터 400m 지점이다.
상당히 먼 거리긴 하지만 우리는 조준 사격으로 유의미한 전과를 기록할 수 있지만, 잘 훈련되지 않은 약탈자의 총알은 좀처럼 닿지 않는 거리.
좀 더 앞으로 가면 파란 색으로 표시한 바위가 있고 100m 근방엔 아예 폐기물 더미를 쌓아두었다.
당연한 일이지만 진입로도 손을 봐서 엄폐할 만한 물건이나 지형은 전부 손봤다.
페인트를 칠한 바위도 높이 30cm를 넘지 않는 평상 같은 녀석이다.
한두 명도 아니고 학교 출신 헌터 4명이 지키고 있는 이 길을 아무 준비도 없이 올라오는 건 그다지 현명한 일이 아니다.
탕!
방재혁의 총이 먼저 불을 뿜었다.
“아아악!”
단말마와 함께 한 사내가 피를 뿜으며 쓰러졌다.
흰 바위 너머, 450m는 족히 넘는 지점이다.
방재혁이 날 보며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이 정도는 괜찮지?”
“관계없다.”
탕! 탕! 탕!
총들이 불을 뿜는다.
고지대에서 우월한 사수가 엄폐받지 못하는 적 상대로 가하는 총격은 치명적이다.
“아아악!”
“억!”
총성이 울릴 때마다 약탈자의 몸에 구멍이 나고 죽음이 찾아온다.
전투 시작 5분 만에 약탈자는 10구의 시체를 남기고 후퇴했다.
탕!
방금 한 구가 추가됐다.
사격 중지를 명하고 무전기를 들었다.
“계속할 거냐?”
짧은 물음.
“······뭐냐. 너희들은?”
이번에는 대답이 왔다.
얼굴을 보지 않아도 벌벌 떠는 듯한 감정이 목소리에 그대로 담겨 있었다.
차 여러 대로 벽을 쌓은 약탈자의 진영을 보았다.
키가 크고 정장 비슷한 걸 입은 녀석이 아마 저 무리의 우두머리인 모양.
염색약이 어디서 났는지 머리카락을 초록색으로 물들였는데 다른 친구처럼 20대 초반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외모다.
“대답은?”
담담하게 물었다.
모든 경우의 수를 염두에 뒀지만 내 전망은 긍정적이다.
전쟁이 지난 지 4년이 지났다.
어린 나이는 문제가 되진 않는다.
그 4년이 어떤 사람의 40년 이상의 혹독한 가르침을 줬을 테니까.
“······그만하겠다.”
“시체와 장비를 회수하는 걸 용인하겠다.”
“······.”
“싫다면 그냥 가도 좋다.”
“아니, 회수하겠다.”
휴전이 성립됐다.
전투가 시작된 지 10분도 채 되지 않았다.
그만큼 일방적인 전투다.
애당초 전투력의 단위 자체가 다르다.
약탈자들이 눈치를 보며 기어오기 시작했다.
철컥-
행여나 배신의 가능성이 있기에 방재혁과 하태훈이 엄폐물에 숨은 채 총구를 그들에게 겨누었다.
갖가지 문신을 하고 기묘한 복장을 입은 남자들이 시체를 끌고 여자들은 총기를 챙겼다.
작업을 하는 내내 섬뜩한 침묵이 능선 위아래에 깔렸다.
시체를 절반 정도 치울 무렵에 교신을 시도했다.
“그 요양 병원에 있던 노인 집단과 싸우던 게 너희였나?”
“그렇다.”
정장을 입은 초록 대가리가 이쪽을 보며 대답했다.
충격에서 회복했지만 어지간히 의기소침한 상태.
전투가 시작되자마자 총 병력 삼 분의 일이 갈려 나갔다.
저 정도 평정을 지키는 것 자체가 저 친구도 평범한 약탈자는 아니라는 거겠지.
“그 사람들에게 무슨 이야기를 듣고 여기에 온 거지?”
초록 대가리가 대답하려는 찰나였다.
노이즈와 함께 제3자의 교신이 끼어들었다.
“우리는 아무 말도 안 했어.”
그때 그 노인이다.
천영재의 눈동자가 돌아가는 게 보인다.
“우리는 아무 말도 안 했다고. 쟤들이 알아서 그쪽으로 간 거여.”
무시했다.
대신 초록 대가리 쪽을 노려보았다.
“우리는······.”
그가 말하려는 찰나.
“아아아아아아아아!!!!!!!!!”
유치하기 짝이 없는 방해가 들어온다.
천영재가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 가서 전부 쓸어버리자.”
그가 외벽으로 내려갔다.
“그것들은 인간 새끼가 아니야. 한 놈도 남기지 말고 씨를 말려야 해.”
노인들에 대한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건 동의한다.
하지만,
“아아아아! 아! 아! 아아아아아!!!!!!!”
사람이 이렇게까지 추해질 수 있는 건가.
초록 대가리는 그래도 용기는 있는 친구였다.
무전을 방해당하자 무전기를 내던지고 직접 어깨를 펴고 이쪽으로 다가왔다.
외벽 위에 선 채 그 친구가 다가오는 걸 내려보았다.
서로의 눈자위를 확인할 수 있는 거리에서 초록 대가리가 소리를 높였다.
“어이!”
고개를 끄덕였다.
무전을 할 수 없다면 육성으로 하면 그만.
여전히 산정 위의 노인은 이해가 가지 않는 짓을 하고 있다.
“아아아아아!!!! 아아아아아!!!!!!”
치매라도 걸린 건가.
상대방이 비무장으로 왔고 사선 상에 날 위협할 적도 보이지 않았을뿐더러 무엇보다 천영재가 자신의 권능으로 주변에 위협이 없다는 걸 확인했다.
총기를 내려두고 외벽 아래로 내려가 초록 대가리를 맞이했다.
바로 앞에서 서로를 대면했다.
“왜 우리를 공격한 거지?”
“여기에 물자가 많다고 들었다. 남자 몇 명이 있지만 숫자도 적다고 들었지.”
“우리는 그 노인들에 대해 아는 게 없다. 거기에 사는 것만 알뿐이지. 거래를 한 적도 교신을 주고받는 사이도 아니다.”
그때 외벽 위에서 누군가 불쑥 말했다.
“속은 거지.”
천영재다.
“노친네들한테 속은 거야.”
초록 대가리의 표정이 험악하게 굳어졌다.
천영재 쪽을 보았다.
경고의 의미였다.
천영재는 입을 다물었지만 눈동자엔 여전히 번들거리는 살의를 품고 있었다.
이 문제에 가서는 따로 논의하기로 하자.
초록 대가리 쪽을 노려보며 물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초록 대가리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후회와 회한이 깃든 어조로 자신에게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그 노인네들. 사실 생명의 은인이야.”
산정 위의 노인들과는 꽤 오래 전부터 인연이 있었다.
“나, 앵벌이 출신이거든.”
“앵벌이?”
“그래. 덕분에 목숨을 구원받았지. 답답한 노인네들이긴 했지만 아주 나쁜 사람은 아니었어. 하지만 뭐, 사람의 관계라는 게 자꾸 부딪히다 보면 결국은 삐걱거리잖아? 윤활유라도 넣어주지 않는 이상 말이야.”
노인들은 약을 갖고 있었고 초록 대가리는 노동력을 갖고 있었다.
가을이 되면 초록 대가리는 농사일과 나무를 해주고 노인들은 의약품을 보수로 제공했다.
호혜적인 거래였다.
그러나 갈수록 서로가 서로에게 가지는 불만이 많아졌고 결국 싸움으로 이어졌다.
지리한 싸움을 이어가던 중 노인 집단에서 솔깃한 정보를 제공했다.
가까운 곳에 식량과 술, 약품과 연료를 잔뜩 쌓아둔 놈들이 있다고.
“사진도 보여주더라고.”
그것이 우리가 전투에 이르게 된 배경이다.
“······.”
잠시 고민했다.
이 친구들을 전부 죽일 것인지 아니면 그냥 보내줄 것인지.
전부 죽이기엔 숫자가 너무 많다.
게다가 이 친구들.
가진 것도 없다.
쓰레기 같은 북한 계열 총기에 탄약도 공장제가 아닌 사제 탄환이다.
차량은 하나 같이 굴러가는 게 신기할 정도.
그나마 팔릴 만한 건 젊은 여자 몇 명 정도지만 성병의 위험이 있고 우리는 인신매매를 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기밀성을 유지하기에 내 영역은 지나치게 커졌다.
언제 또 이런 놈들이 와서 시비를 걸어댈 지 알 수 없다.
그건 당장 오늘 저녁일 수도 있고 내일모레일 수도 있다.
상대방이 전의를 상실하고 전력 차를 뼈저리게 느꼈다면 이대로 돌려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인다.
굳이 궁지에 몰린 쥐를 건드릴 필요는 없다.
시신과 무기를 수습한 후 약탈자 무리는 남쪽으로 떠났다.
이렇게 하나의 문제는 끝났지만 또 다른 하나가 남았다.
철컥-
“자, 이제 끝내러 가야지.”
천영재는 당장 혼자서라도 노인들을 죽이러 갈 낌새다.
그가 날 빤히 쳐다봤다.
“선배 생각은 어때?”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보복은 해야지.”
피를 동반한 보복이 있을 것이다.
이건 옳고 그르고의 문제가 아니다.
함수에 숫자를 넣으면 값이 나오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들은 죽음이라는 값을 넣었다.
우리 또한 죽음이라는 값을 산출할 것이다.
그들은 선을 넘었다.
*
전투 전에 하태훈에게 잠시 과거의 이야기를 들었다.
하태훈의 표정으로 보아 딱히 들켜도 상관없는 태도였다.
“영재는 우리 쪽에 오기 전에 개포 끝다리 쪽에 있는 피난소에 있었지. 뭐 당연히 예상하고 있겠지만 대한민국에서 방귀 좀 뀐다는 피난민들이 모인 곳이었어. 왜 거기에 있었냐고 물으니까 자기는 잘 사는 사람이 싫대. 전쟁 전에 잘 사는 놈들이 망해가는 꼴 보고 싶어서 거기에 갔다고 하더라고.”
하태훈은 부잣집 도련님 출신이다.
“······거기서 50명을 데리고 갔지. 충청도 어디론가 간다고 들었는데 혼자 왔어.”
“혼자?”
“혼자 살아온 거지. 차량도 장비도 팀원도 모두 잃고.”
하태훈이 피식 웃었다.
“그야말로 에이스 아니야?”
하태훈이 말한 에이스라는 말은 약간의 반어법이 들어간 것럼 보인다.
적도 아군도 싹 말아먹는 에이스라니.
폭발 엔딩에 어울리는 인재가 아닐까.
아무튼 그 사건으로 천영재는 개척단 눈밖에 나서 하태훈이 있는 곳으로 도망왔지만 그건 또 다른 이야기.
저벅- 저벅-
현재 시각 오후 10시 20분.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산길을 나무 사이로 간신히 보이는 달빛을 표지 삼아 소리 없이 오르고 있다.
전투원은 두 명.
나와 천영재다.
하태훈을 데리고 올 수도 있지만 약탈자가 다시 내 영역을 들이칠 수도 있기에 경계를 맡겼다.
완벽한 기습을 목표로 하기에 드론을 보내지도 않았고 이동 수단을 이용하지도 않았다.
왕복 20km에 달하는 거리지만 못 걸을 거리도 아니고 우리는 이쪽 지형에 익숙하다.
최대의 위협은 역시 뮤테이션인데 천영재의 감지 능력은 뮤테이션 상대로도 힘을 발휘하기에 변수를 줄일 수 있다.
적당하게 숨이 차오를 무렵, 어슴푸레 너머로 을씨년스러운 요양 병원의 그림자가 나타났다.
“순찰 세 마리.”
은은한 빛을 발하는 눈동자로 어둠을 노려보며 천영재가 나지막한 어조로 말했다.
“좀 기다려야겠는데?”
총은 최후의 최후까지 쓰지 않을 생각이다.
잠시 기회를 보면서 대기했다.
해가 지자 대지는 빠르게 식는다.
방한복이 필요할 추위는 아니지만 급격한 기온 차에 몸이 움츠러드는 게 느껴진다.
“사과할게.”
서늘한 날씨 때문인지 아니면 몸 안을 한바탕 휘젓던 아드레날린이 가라앉았는지 천영재가 갑자기 사과해왔다.
“요 며칠간 너무 흥분했지?”
“이유라도 있냐?”
이참에 묻고 지나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개척단이라는 과거는 빈말로도 좋은 경력은 아니니까.
“누구나 인생에 기회는 한두 번 정도 온다고 하잖아?”
은은하게 빛나는 눈으로 천영재는 어둠 너머로 뚫어지도록 응시했다.
“그나저나 저 새끼들. 단단하게 날이 서 있는데?”
경계가 삼엄한 것도 무리는 아니겠지.
어젯밤에 격전을 벌였고 또 우리의 원한까지 샀으니까.
나라도 밤새 보초를 세울 것이다.
기다림이 길어지는 가운데 천영재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개척단이 나한텐 그런 기회로 보였지.”
“개척단이?”
조금은 놀랐다.
자기 입으로 개척단에 있었던 걸 말하리라고는.
그런데 그 조심스러운 하태훈이 입 밖에 낼 정도면 그리 큰 비밀도 아닌 모양이다.
천영재의 눈은 어느새 허공 너머, 과거의 시간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피난소에 영감 하나가 있었어. 풍채도 좋고 목소리도 쩌렁쩌렁하고 꾀죄죄하게 입어도 부티가 나는 영감이었지.”
위에서 재채기 소리가 났다.
요란하기 짝이 없는 재채기다.
코 푸는 소리를 뒤로 하고 천영재는 또 다시 과거를 회상했다.
“준재벌급 부자라고 하더군. 뭐? 3조 미만 1조 이상 클럽?”
“부자네.”
“그 양반이 입버릇처럼 말하는 게, 숨겨 놓은 방공호가 있대. 전쟁이 이렇게 빨리 터질 지 몰라서 방공호에 들어가지 못한 채 여기 갇혔다는 거야.”
이야기는 혼란스러웠던 전쟁 초기로 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