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a House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337)
아포칼립스에 집을 숨김-337화(337/466)
337화 136. 양초 (1)
불길은 밤새 타올랐다.
새벽에 내린 비가 아니었으면 산 전체를 태우고도 남았을 정도로 불은 과격하게 번졌다.
식량과 총기, 탄약 일부를 챙겼다.
이튿날 아침 식사 시간에 동료들이 어떻게 됐냐고 물었다.
잠시 고민했다.
사실을 이야기할 것인지 아니면 거짓말을 할 것인지.
고민은 오래가지 않았다.
사실을 이야기했다.
“전부 죽었어. 운이 나빴지.”
별 대단하지 않은 이야기다.
전쟁 전으로 치면 중동 어딘가에 폭격이 있었고 중동인 몇 명이 폭탄에 맞아 죽은 것과 별반 차이가 없는 이야기다.
누구도 불타 죽은 노인들의 운명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내가 잠시 이 사실을 고하길 머뭇거린 건 앞으로도 비슷한 사태가 생길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들어서다.
이번 사례는 비교적 원인이 명확하지만 앞으로 길고 긴 인생에서 우리 앞에 다른, 우리의 선악을 건드리는 사건과 사람이 나타날지도 모른다.
그때 선택하게 되는 건, 이변이 없는 한 나일 것이다.
아마 날이 더 추워지고 한파가 오는 것이 확실시되면 더 많은, 더 껄끄러운 선택을 강요받게 되겠지.
우울한 마음에 잠긴 채 차를 음미하며 점점 푸르름을 잃어가는 산야를 멍하니 지켜보고 있을 때였다.
“스켈톤님.”
발렌타인이 날 찾아왔다.
*
서울에 다녀온 직후 발렌타인과 네크로폴리스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발렌타인은 여전히 네크로폴리스는 데드맨워킹이라는 자의 천재성 위에 선 기적이라고 믿는 눈치였지만 네크로폴리스가 사용하는 전파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전파와 다른, 균열의 목소리라는 나의 의견을 부정하지도 않았다.
“······하긴 균열은 과학으로 규명할 수 없는 것 투성이죠. 당장 그렇게 많은 몬스터가 나타나고 또 처치했는데도 놈들의 실체가 뭔지 제대로 규명된 건 하나도 없으니까요. 이 부분은 본인에게 물어보는 쪽이 빠를 것 같습니다. 답장을 기대하진 않지만 말입니다.”
그 답장이 어제 온 모양이다.
“의외로 빠른 답장이었습니다. 본인도 놀라는 눈치더군요.”
함께 데드맨 워킹이 보낸 메시지를 읽었다.
영어로 적힌 문장은 자동 번역키를 누르자 우리 눈과 뇌에 익은 한글 문장으로 자연스럽게 변환됐다.
Deadman_working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균열에서 나오는 주파수가 맞을 거야. 우연한 “발견”이었지.
데드맨워킹은 으레 지식을 독점한 사람이 보이는 신비주의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그는 시원시원하게 자신의 발견을 고백했다.
발렌타인이 데드맨워킹에게 메시지를 보낸 이유는 네크로폴리스의 전파를 비바! 아포칼립스!에 편입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이다.
비바! 아포칼립스!는 최첨단 수준의 개인 위성 안테나 장비를 이용한 고속 인터넷 환경을 제공한다.
전쟁 전 랜선 연결에 비하면야 절반 정도 느리지만 비바! 아포칼립스!의 견고한 연결망과 전쟁 이후에도 큰 문제 없이 운영되는 안정성은 멜론 마스크라는 인물이 왜 한때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사업가가 되었냐는 명명백백한 해답이다.
반면 네크로폴리스는 글자 그대로 무에서 유를 창조한 현재까지 알려진 법칙을 모조리 무시한 역사에 한 획을 그을만한 획기적인 발명품이나 무에서 탄생한 태생적 한계가 있는 만큼 비바! 아포칼립스!와 비교했을 때 대단히 낮은 트래픽만을 수용 가능하다.
정확한 비교를 위해서 발렌타인의 입을 빌리도록 하자.
“비바! 아포칼립스!가 한강이라면 네크로폴리스는 우수관에 흐르는 물이죠.”
그 이질적인 한계를 극복하고 둘을 접목하는 건 발렌타인에겐 대단히 어려운 일이었다.
혼자 끙끙 앓던 그는 결국 데드맨워킹에게 도움을 요청했는데 놀랍게도 데드맨워킹은 최초의 고백만큼이나 시원시원하게 방안을 제시했다
“역시 보통 사람이 아니었어요. 그 균열의 목소리가 우연한 발견이라고 치더라고 그걸 그렇게 인간의 방식으로 해석하고 이용한다는 건 천재의 소임입니다. 저 같은 평범한 사람은 꿈도 못 꾸는 일이죠.”
전부터 느끼는 바지만 발렌타인은 존내논의 그늘에서 벗어나고 있었다.
여전히 그는 존내논을 위대한 창조자로 생각하고 있지만 그 시선은 존내논을 떠나 데드맨워킹이라는 미지의 인물에게 향한 지 오래였다.
데드맨워킹을 말하는 눈빛이나 발언만 봐도 알 수 있다.
발렌타인은 데드맨워킹은 제2의 롤모델, 혹은 우상으로 여기고 있었다.
아마 네트워크를 다루는 사람으로서의 경의겠지.
나로서는 영원히 이해 못 할.
아무튼 그 데드맨워킹은 발렌타인과 같은 견해를 피력했다.
Deadman_working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사실 나도 쭉 고민 중이었지. 어떻게 네크로폴리스의 대역폭을 높일 수 있을지. 네크로폴리스가 지배적인 SNS가 된 건 사실이지만 멜론 마스크의 서비스에 비하면 부족함이 많지.
Deadman_working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생각해 봐. 유튜브, 틱톡을 보던 사람들이 고작 텍스트 몇 줄을 보고 성에나 차겠냐고?
그리고 그는 방안을 제시한다.
Deadman_working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듣자하니 스켈톤과 같이 산다고 하던데.
Deadman_working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괜찮다면 내 부탁 하나를 들어줄 수 있겠나?
그 부탁이란.
“균열입니다.”
발렌타인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균열 주변의 전파를 계측해달라고 하더군요.”
왜 데드맨워킹이 이 부탁을 하기 전에 나를 들먹였는지 알 것 같다.
데드맨워킹답다고 해야 하나.
대단히 어려운, 위험을 동반한 임무다.
전쟁 전, 킬존이 존재하고 균열을 막는 군대가 있다면 모를까 몬스터에게 돌파당한 균열 일대는 몬스터의 천국이다.
그러한 지형은 오버런드(overruned)라고 불리는데 직접 가본 적은 없지만 인도에서 촬영한 영상에서는 내가 한 달 가까이 머물렀던 균열 안보다 오히려 더 많은 몬스터와 이계 생물종으로 득실거리고 있었다.
군대를 끌고 가도 승산이 없는 곳에 맨몸으로 가라니.
그 위험한 일을 데드맨워킹이 요구하고 있다.
“드론을 보내면 안 될까요?”
“7~8년 전이라면 모를까, 지금은 안 될 겁니다. 몬스터는 인간보다 드론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니까요.”
“하아. 이거야 원.”
발렌타인이 아쉬워하며 입맛을 다신다.
그의 모든 표정을 안다고 할 수 없겠지만 이렇게까지 노골적인 실망을 드러내는 건 이번이 처음.
실망을 넘어선 좌절의 그늘까지 보이는 느낌이다.
하지만 이건 매우 위험한 일이다.
오버런드에 갈 수 있는 건 강한민, 나혜인 같은 최상위권 어웨이큰 정도.
우리 같은 신의 선물을 받지 않은 자에겐 결코 넘봐서는 안 되는 금기의 영역이다.
“하, 일이 잘 풀리면 데드맨워킹님이 새롭게 업그레이드 된 네크로폴리스 대문에 닉네임을 박아준다고 했는데······.”
“방금 뭐라고 했습니까?”
“네?”
“방금 닉네임 뭐라고 운운하신 거 같은데.”
“아, 그거요?”
네크로폴리스에 입장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보는 문구가 있다.
[ F.소이어, M.오코너, 그리고 사랑스러웠던 붉은 것을 위하여. ]F.소이어, M.오코너, 사랑스러웠던 붉은 것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네크로폴리스를 하는 수십만 명의 유저들은 그것들을 알고 있다.
“그러니까 소이어니 뭐니 하는 놈 이름 옆에 우리 닉네임이 박힌다는 겁니까?”
“저는 괜찮아요.”
발렌타인이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
잠시 생각을 해보자.
*
“어. 선배.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었길래 선배가 먼저 연락을 다 해?”
우민희에게 연락해 용건을 이야기했다.
“뭐? 균열 주변을 탐사하고 싶다고?”
순수한 학구적인 호기심과 열정 때문이라고 서두를 장식한 후, 네크로폴리스라는 구체적인 이유를 덧붙였다.
설득력을 높이기 위해 그동안 내가 들인 노력도 약간의 과장을 섞어서 술회했다.
“네크로폴리스와 몬스터가 이용하는 전파의 상관관계를 이해하기 위해 한 달 동안 밤잠을 설쳤구나······.”
“······.”
“하긴, 선배는 예전부터 그런 학구적인 정열이 있긴 했지.”
끼이이익–
듣기 싫은 소리를 내며 그녀는 짓궂은 웃음소리를 내며 덧붙였다.
“아니, 공명심 때문이었나.”
“······제갈공명?”
“끊을게~.”
이렇게 고까운 후배인 우민희에게 연락을 할 수밖에 없었던 건 이번 일을 도와줄 만한 경험과 지식, 힘을 가진 집단이 우민희 밖에 없기 때문이다.
우민희는 강한민, 나혜인과 함께 “알파 팀”으로 묶여 균열 내부 안에서 수많은 성과를 가지고 온 인물이기도 하다.
그녀가 돕는다면 균열 주변부 탐사도 꿈은 아니다.
아니, 훨씬 더 수월해지겠지.
오버런드에 가본 적은 없지만 그 비슷한 환경은 중국에서 얼마든지 본 적이 있으니까.
지루하고 끔찍한 대화 끝에 우민희의 협조를 얻어냈다.
“그런데 전부터 생각했는데. 선배는 왜 그렇게 패드립을 좋아할까? 요즘 초등학생도 그런 말 안 하는 거 알지? 정말이지 이해가 안 가. 누구보다 패드립 하면 안 되는 사람이 선배 아니었어?”
약간의 잔소리를 듣긴 했지만 그깟 잔소리에 마음이 흔들릴 정도로 나는 마음이 심약한 사람이 아니다.
비바! 아포칼립스!를 통해 나는 강해졌다.
아무튼 우민희의 허락을 얻은 이상 거리낄 게 없다.
안 그래도 겨울이 오기 전에 뭔가 굵직한 일을 해둬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약간의 위험이 따르겠지만 우리의 존내논이 감당했던 위험과 희생에 비할 수 있을까?
문제는 내부에서 발생했다.
“아니, 또 그놈의 인터넷이야?”
모두에게 내 생각을 이해받으려고 생각한 적은 없다.
과할 정도로 인터넷이라는 가상 세계에 대해 집착하는 내 삶의 방식에 반감을 가지는 것도 이해한다.
“아니, 말리려는 건 아니야. 그런데 좀 주객이 전도된 거 같아서.”
의외로 나를 제지한 건 하태훈이었다.
어지간하면 쓴소리하지 않고 적당히, 보신주의로 움직이는 그가 이런 이야기를 꺼낼 정도면 오래전부터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던 모양이다.
하루이틀사이에 쌓인 불만은 아니라는 이야기.
하태훈과 나는 다른 사람이다.
태어난 신분도, 지역도, 삶의 색채도 다르다.
그는 인터넷을 이용했지만 빠지진 않았다.
그는 여느 사람처럼 인터넷을 삶에 유용한 도구 정도로 인식했지 거기에 매몰되지 않았다.
전쟁 전 기준으로는 지극히 건전한 정상인의 범주에 속한다고 볼 수 있겠다.
“살아남기 위해 여기에 이렇게 번듯한 방공호 지은 거 아니었어?”
정확하다.
살아남기 위해, 남들보다 더 편안하게 멸망기를 지내기 위해서 3년이라는 시간을 들여 맨땅에서 이 방공호를 건설했다.
그러나 사람의 생각이라는 건 늘 바뀌는 법이다.
“그렇긴 하지. 하지만 말이야. 선배.”
딱히 설득을 하고 싶진 않다.
요즘 세상에 누가 설득을 당할까?
다만 조용히 내 생각을 밝힐 뿐이다.
“죽을 때 죽더라도 죽기 전에 미소 지을 에피소드 하나둘 정도 있으면 가는 길이 좀 더 편안하지 않겠어?”
뭐, 즉사할 확률이 대단히 높다는 건 인정하지만 고려하지 않겠다.
전쟁 전 심령학자의 말에 의하면 사람은 즉사라고 하더라도 찰나의 순간 속에서 지금까지 살아 온 인생 역정을 본다고도 하니까.
어느 쪽이든 간에 내 생각은 변함이 없다.
“······여기 대장은 너니까. 걱정돼서 하는 말이야.”
하태훈이 한숨을 내쉬며 혼자 중얼거렸다.
아마 내가 죽으면 여기가 어떻게 되겠냐는 자조 섞인 물음으로 보인다.
문제가 될 수도 있겠지.
하지만.
“선배.”
하태훈에게 다가갔다.
“돌아올게.”
실패하지 않겠다.
그렇게 해서 균열에 가는 일정이 정해졌다.
여정에 나서는 사람은 둘.
나와 발렌타인이다.
네크로폴리스 때와는 사정이 또 다르다.
전부를 데려갈 수도 없고 데려가서도 안 된다.
우리 영역이 주변에 여러 번 노출이 되었기에 전보다 더 강도 높은 수비를 해야 한다.
무엇보다 이번 임무는 우리를 위한 것이다.
다만 발렌타인의 동행은 사전에 기획한 건 아니다.
균열 주변부, 오버런드에 대한 탐사는 극도로 위험한 일이다.
뮤테이션, 몬스터만이 아니다.
균열 주변부엔 몬스터 이전에 모습을 드러냈던 이계 생물종이라는 고유의 괴물이 득실거리고 있다.
과거 학자들은 그 이계 생물종에 대해 이계의 토착 생물이라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의견을 냈지만 그 학설은 예전에 뒤집혀 졌다.
정작 균열 너머엔 그런 것이 살지 않았다.
균열 내부는 완벽한 죽음의 세계다.
세균 하나 살아갈 수 없을 정도로.
이 섬뜩한 증거에 대해 새로운 학설은 제기되지 않았다.
때마침 터진 전쟁이 모든 걸 무의미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다만 내가 보기엔 그 이계 생물종은 아마 프로토타입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균열 너머에서 지구라는 환경에 적합한, 놈들의 역겨운 회백색을 늘리기 위한 새로운 몬스터의 시제품으로 말이다.
처음엔 온순하고 공격성도 없던 놈들이 점점 흉포해져 오로지 인간을 멸하기 위해 진화해 가는 모습만 봐도 알 수 있다.
즉, 내가 모르는 놈들이 가득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다.
그러므로 여정을 시작하기 전에 발렌타인을 충분히 설득했다.
이계생물종의 위험성, 나조차도 장담할 수 없는 극한의 환경, 침식 지대에 흐르는 특유의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광기 등등.
발렌타인은 역시 멸망기의 사내였다.
“해봅시다.”
수많은 위험을 듣고도 낯빛 하나 변하지 않았다.
“까짓것, 죽기밖에 더 하겠습니까?”
그의 뜻이 확고하기에 그를 데려가지 않는 건 오히려 실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명백하게 위험한 임무이기에 나름의 준비는 했다.
“혹시 안 좋은 일이 생겼을 때 소식을 전하고 싶은 사람이 있습니까?”
현실적으로 내가 발렌타인보다 생존 확률이 높다고 생각한다.
나와 발렌타인이 같은 위험에 처했을 때 나를 더 우선할 수밖에 없는 것도 부끄러운 일이긴 하나 사실이다.
우민희의 조력이 있다고 하더라도 위험한 임무라는 건 변하지 않는다.
“······글쎄요.”
발렌타인이 눈동자를 굴렸다.
뭔가 생각하는 표정.
잠시 후, 그가 입을 열었다.
“전 와이프 정도가 있겠는데. 어쩌면 지금쯤 죽었을지도 모르겠네요.”
“결혼하셨어요?”
“예전에요. 전쟁 전에 이미 갈라졌어요.”
“아.”
“괜찮아요. 서로가 잘못해서 갈라진 거니. 그래도 박펭귄네 떠날 때까진 살아 있는 거 확인했으니 살아 있을 확률은 있겠죠. 지금은 딴 남자랑 같이 사는 거 같긴 한데.”
발렌타인이 모호한 미소를 머금었다.
“그래도 전 남편인데. 부고 보낼 수 있다면 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겠네요.”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사진을 찍었다.
발렌타인의 독사진이다.
우리의 영역을 배경으로 찍은 그는 브이 자를 그린 채 어색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멀리 스우가 지나가며 이쪽을 힐끗 쳐다보는 것이 가벼운 포인트였다.
“스켈톤님은 안 찍으세요?”
“저요?”
빙그레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