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a House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352)
아포칼립스에 집을 숨김-358화(352/466)
아포칼립스에 집을 숨김 358화
146. 잡동사니
기대했던 결말이 싱겁게 끝나는 건 꽤 흔한 일이다.
안승환과 그의 친구들은 전쟁 전의 어른처럼 행동했다.
“하루를 구해주신 것, 정말로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면전에서는 예의 바르게 고개를 숙이지만 정작 중요한 부분은 의뭉스럽게 언급을 미루고 회피한다는 점에서 말이다.
“······.”
굳이 다그치지 않았다.
집요하게 질문을 던질 수도 있겠지만 현명하지 못한 행동. 역효과만 불러일으킬 뿐이다.
“참 괘씸한 놈들이네요.”
디펜더 팀원이 반감을 드러냈지만 예상한 일이다.
안승환의 딱딱하게 굳은, 못마땅한 얼굴로 고개를 숙이는 걸 본 것만으로 만족해야겠지.
“그런데 걔들 없어도 우리끼리 어떻게 해나가면 안 될까요? 솔직히 대장님만 있으면 걔들 없어도 잘할 수 있을 거 같은데요?”
디펜더의 팀원 하나가 내게 묻는다.
중국의 전장을 경험한 적이 없는 헌터로 보인다.
발걸음을 멈추고 그와 나머지 헌터들을 돌아보며 똑똑히 말했다.
“아니. 정규 어웨이큰은 없어서는 안 된다.”
말 그대로다.
정규 어웨이큰 없이는 대 몬스터 전쟁에서 이길 수 없다.
이번에 상대한 중형종이 어웨이큰 특화형이라 망정이지, 원래 중형종 이상 체급은 우리 헌터의 상대가 아니다.
중형종은 대부분 전투형이다.
여기서 말하는 “전투”라는 건 우리가 흔히 수행하는 소규모 접전이나 사냥이 아니다.
가공할 화력과 파괴가 존재하는, 전장의 전투를 이야기한다.
일전에 상대한 애니힐레이터 타입처럼 놈들은 광범위에 무자비한 화력을 투사한다.
반사역장의 보호가 없는 한, 접근조차 하지 못하고 증발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그 무자비한 화망 안에서는 나도 평범한 희생자 중 하나다.
“서두를 필요는 없다. 겨우 한 번의 작전에 성공했을 뿐이다.”
중요한 건 가능성의 제시다.
정규 어웨이큰 없이도 몬스터를 처치할 수 있다는 것.
이 사실을 꾸준히 입증해 낸다면 메인이라는 간판 아래 숨어 사는 정규 어웨이큰은 어쩔 수 없이 스스로 빗장을 풀고 우리와 함께 전선에 설 것이다.
게다가 사건의 중심축은 우리 헌터가 아닌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탕! 타타타탕!
쾅! 콰쾅!
광신도의 주요 근거지인 쇼핑몰이 폭발과 함께 가라앉자, 군인들이 광신도의 영역을 침공했다.
전투라기보다는 소탕전에 가깝겠지만 꽤 길어지겠지.
그렇다고 해서 내가 덜 바쁜 건 아니다.
아직 짐 정리가 끝나지 않았다.
버려야 할 물건이 있다.
*
우민희가 내게 제공한 집은 낡은 빌라를 개조한 관사였다.
5층 건물 총 네 동으로 이루어진 작은 단지로 폐허로 변한 주변 일대에서 그나마 가장 멀쩡한 단지고 예전에 지어진 건물이다 보니 자체 방공호가 있어 관사로 제공됐다고 한다.
“여기가 꽤 명당입니다.”
관사 관리인이 너스레를 떨며 나를 안내했다.
왜 명당이냐면 동쪽에 반쯤 무너진 아파트 단지가 있기 때문이라고.
햇볕을 가려서 오히려 안 좋지 않냐고 묻자 관리인은 손사래를 치며 대답했다.
“포격이 날아오면 저 아파트 단지가 지켜줄 겁니다.”
내 관사는 5층 건물 중 5층에 있었는데 대충 청소하고 정리한 넓은 공간에 내가 가지고 온 갖가지 짐이 박스에 담겨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었다.
관사 상태를 점검해 보았다.
눈대중으로 25평 남짓.
방 3개, 화장실 2개의 전형적인 대한민국 국민 선호형 구조지만 좁은 평수에 무리하게 방을 3개나 내고 화장실까지 2개나 만들어서 그런지 모든 공간이 비좁아 보였다.
화장실 하나는 쓰지 않아 창고로 개조했는데 나머지 하나엔 놀랍게도 수도 시설이 작동하고 있었다.
쏴아아아–
샤워기를 시험해 봤는데 수압이 무지막지하다.
아마 이 관사 자체에 새로운 펌프를 설치하는 등 대대적인 개편이 있었던 모양.
이 관사엔 우민희가 살진 않지만, 새로운 서울의 중요 인물들이 많이 산다고 한다.
지금 광신도 소탕전을 지휘하고 있는 김병철은 물론 이제는 나를 피해 다니는 정규 어웨이큰도 여기 입주민 중 하나라고.
다만 B동인 나와 달리 어웨이큰들은 약간 떨어진 D동에 모여 살고 있단다.
우리와 달리 옆 동네 유령 아파트 단지가 조망을 막진 않지만 동시에 포격도 막아주지 않는 구조지만 뭐, 어웨이큰이니 알아서 하겠지.
전쟁 전엔 꼭대기 층이 로얄 층이라는 인식이 있었지만 여기서는 좀 다르다.
1층이나 2층이 로얄 층 취급을 받는다.
엘리베이터가 없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짐이 상당히 많다.
총기와 탄약, 식량 같은 걸 많이 챙기지 않아 양이 적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텅 빈 집 안에 쌓인 걸 보니 이걸 다 언제 정리하냐는 걱정이 앞선다.
챙겨 온 짐은 크게 3가지다.
하나는 의복.
다가올 또 다른 한파에 대비해 다채로운 방한 용구를 준비했다.
방공호에 있을 때와 달리 적극적으로 외부 활동을 많이 하게 될 테니 굳이 필요하지 않아도 챙긴 모양.
어차피 짐 운반해 주는 게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라는 점도 과적의 큰 원인 중 하나겠지.
게다가 방한용품 특성상 다른 옷보다 부피가 커서 짐이 많아 보이는 효과도 무시할 순 없을 것이고.
방한용품을 챙긴 건 크게 후회하진 않는다.
추위는 우리 인류가 여명기에 싸웠던 가장 큰 적이라는 걸 명심하자.
두 번째 카테고리는 역시 인터넷이다.
위성장비.
정확히는 “멜론 마스크의 스타-게이징-오벨리스크” 2기를 포함, 노트북 2개와 트랜스, 축전지 등, 스마트한 인터넷 생활을 누리기 위한 준비물을 챙겨왔다.
인터넷은 이제 이 박규에게 필수 불가결한, 또 다른 생명과도 같은 것이기에 여기에 대한 논평은 생략하도록 하자.
하지만 이 첫 번째 두 번째 짐도 세 번째 짐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그 세 번째 용품은 잡동사니다.
정리 정돈의 달인이 하는 말에 의하면 어떤 사람이 1년 동안 한 번도 안 쓴 물건이 있다면 그건 버려도 되는 물건이라고 한다.
심지어 그 물건을 단 한 번도 생각한 적이 없고, 또 그 물건을 1년 만에 보고도 아무런 감흥이 없다면 반드시 버려야 되는 물건이라고 정리 정돈의 달인은 카메라를 보며 엄지를 세우며 강조했었다.
학교 시절엔 정리 정돈의 달인이었다.
짐이라고 할만 한 게 없었기 때문이다.
가족의 유품은 모두 소각했고 가진 재산도 없었다.
어차피 학교에 들어온 순간부터 죽음을 각오했기에 번거로운 짐이 많아지는 게 싫었다.
그러나 나이를 먹은 사람이 그러하듯 나도 재산이라는 게 생기고 재산을 보관할 공간이 늘어나자 불필요한 것들을 방공호에 쌓아두기 시작했다.
물자가 귀해지는 시절엔 모든 것이 간절하게 필요할 거라는 자기 합리화를 했지만, 한 번도 안 쓰는 물건은 멸망기에 와서도 그리 자주 애용하진 않았다.
그런 것들은 차고 구석에 처박아 놓았는데 그중 가장 대표적인 물건이 옥외 행사용 앰프와 스피커다.
시계를 과거로 돌려 과거의 나에게 대체 이딴 걸 왜 샀냐고 묻고 싶다.
뭐, 살 땐 나름의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개인 생존주의를 지향하는 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수의 사람을 거느리게 됐을 때 통제와 지시의 도구로 쓰려고 비싼 돈을 주고 12개월 할부로 샀던 게 기억난다.
가령 아침에 체조 행사를 할 때 쓴다던가.
내가 단상에 서서 구령을 붙이면서 숙련된 조교의 시범을 보이는 가운데 수십 명에 달하는 생존자가 따라 하는 광경을 상상했던 것 같다.
아마 이런 어처구니없는 충동구매의 뒷배경엔 내 스승 장기영의 영향이 적잖이 있었겠지.
다른 건 몰라도 장기영의 아침 체조 구령은 전설적인 국민체조의 구령과 비교해도 조금도 뒤지지 않았다.
아, 또 하나가 있긴 하다.
죽음이 임박했을 때 대형 스피커를 옥외에 설치, 최대 출력으로 설정한 후 유언을 외부에 퍼뜨리는 것이다.
“······.”
이건 물자로 바꾸는 게 좋겠지.
대형 스피커 이외에도 잡동사니는 얼마든지 있다.
그중 하나가 고래 – 상어 12종 인형 세트다.
말 그대로 12종의 고래와 상어를 봉제 인형화한 상품인데 다시 뜯어보니 퀄리티가 상당히 좋다.
양품이다.
메이드 인 코리아이기도 하고.
그런데 이걸 대체 왜 샀는지는 과거의 나에게 물어도 대답받기 어렵겠지.
애당초 돈을 주고 산 물건이긴 할까?
아무리 과거의 내가 충동구매 성향이 있고 또 카드 대금 리볼빙을 신청했을 때 인간으로서 선 하나가 끊어졌다고 하지만 이건 거듭 생각을 해봐도 이해하기가 어렵다.
백화점에서 거금 55만 원을 주고 산 임금님 항아리는 장식품 용도라도 있었지.
참고로 임금님 항아리도 여기에 들고 왔다.
잘 팔릴 것 같진 않겠지만 설탕이나 의약품 약간과 교환을 시도할 수도 있을 것이다.
처음부터 잡동사니를 가지고 오려고 생각했던 건 아니다.
최초 계획안은 어디까지나 몸만 가는 것이었다.
무기와 식량, 기타 편의 물건은 전부 우민희가 제공해 주기로 했으니까.
실제로 처음 준비한 것도 상기 첫 번째 물건과 두 번째 물건이 전부였고 잡동사니는 포장조차 하지 않았다.
하지만 헬기 조종사가 잠시 대기를 요청하면서 시간이 비게 되자 나도 모르게 차고 구석에 놔뒀던 잡동사니를 떠올리게 되었고 부랴부랴 정리해 헬기에 실었다.
새로운 서울엔 사람이 많을 것이고 이왕 버리는 물건, 쓸모 있는 물건과 교환해 두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대충 짐을 정리하고 가장 중요한 인터넷 설치를 구슬땀을 흘리며 신중하게 최고의 우주 전파를 잡기 위해 끊임없이 오벨리스크의 위치를 재조정하고 있을 때였다.
똑똑-
누군가 문을 두드린다.
관리인인가.
전쟁 전 컨테이너 하우스 안에서 배달 음식을 시켜 먹던 추억을 떠올리며 문을 열자 과연 따끈한 음식이 나타났다.
“오늘 야식입니다. 지원대에서 특별히 보내라고 하시더군요.”
아마 우민희겠지.
성격에 문제가 있긴 하지만 그래도 자기가 고마워한 건 확실하게 의사표시를 하는 여자다.
뭐, 그녀가 고마워하는 경우가 극도로 희박하긴 하지만 말이다.
그래도 우리의 우민희가 고마움을 느낄 정도면 이번 사안은 내 상상 이상으로 잘 풀어나가고 있는 건 확실해 보인다.
이러나저러나 정규 어웨이큰을 하나라도 더 살려가야 하는 건 세종도 아닌, 균열 바로 아래에 자리 잡은 새로운 서울의 숙명과 같으니.
배달 온 음식은 약간의 닭과 감자를 함께 튀긴 것이다.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맛이 밴 시즈닝 가루를 섞은 반죽 같은 건 기대할 수 없겠지만 오랫동안 먹지 않은 음식이라 그런지 맛있게 느껴진다.
그러고 보니 내 영역에 기름은 오래전에 떨어졌으니.
식용유를 비축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기름을 쓴 요리를 좋아하지도 않고 또 조리할 재료도 없어지는 걸 예상해 적은 양만 비축했다.
방재혁 모친이 약간의 기름을 가지고 오긴 했지만, 그 사람들 먹으려고 가지고 온 거다.
그것도 좋은 날에 한 번씩 쓰려고.
그러니 내 것도 따로 있는 게 좋겠지.
[ 식용유 ]휴대폰에 저장했다.
잡동사니를 팔고 얻을 물건으로 말이다.
화폐 자체가 유명무실해졌기에 대부분의 거래는 물물 교환 형태로 이루어진다.
전쟁 초중반엔 담배가 화폐 자리를 대신하던 때도 있었지만 담배라는 건 의외로 유통기한이 짧고 또 피우면 사라지는 물건이다.
담배가 사라지자 담배와 함께 교환 용도로 쓰던 탄약이 담배의 빈자리를 채우긴 했지만 탄약도 담배와 그리 먼 형제는 아니다.
사람을 죽이고, 소모한다는 점만 놓고 보면 말이다.
“물물 교환요?”
이튿날 관사 관리인에게 물물 교환을 할 수 있는 장소에 관해 물어보았다.
그다지 놀라운 건 아니지만 이제는 진정한 의미의 랜드마크가 된 더 호프 아래에 장마당이 선단다.
제법 많은 물건이 있을 거라고.
관사로 돌아와 좁은 거실에 따로 쌓아둔 잡동사니를 보았다.
여전히 아무런 감흥도 없고 무의미한 물건들이다.
*
웅웅–
웅웅—
잠에서 깬 건 이른 새벽이었다.
익숙한, 악마가 하늘 위에서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이 표현은 전장에 있던 중국인들의 것을 빌렸다.
매일매일 포격을 받으며 극한의 삶을 살아가는 버림받은 사람들이 그런 표현을 썼었다.
정시에 눈을 떴다.
쾅! 콰콰쾅!!!
포탄이 떨어지고 있다.
왜애애애애앵—-
비상 사이렌은 포탄이 떨어진 뒤에야 울렸다.
웅웅웅–
웅웅—
포탄의 낙하 음을 볼 때 디에스이라에가 상대하던 하급 군벌이 아니다.
정규 포병대를 가지고 있는 강력한 군벌의 짓이다.
즉시 옷을 입고 상황을 살폈다.
쾅! 콰쾅!
포탄은 계속해서 떨어지고 있다.
쉽게 그칠 것 같지 않다.
대피가 우선이다.
가장 먼저 챙긴 건 당연하게도 인터넷 장비다.
그 이후로 방한복을 챙겼고 나머지는 포기했다.
어차피 잡동사니다.
우웅—-
포탄이 떨어진다.
가깝다.
쿵!
옆 동에서는 충격파의 파동이 들려온다.
*
밤새 포격을 가한 건 역시나 친광신도 성향의 군벌이라고 한다.
하남의 광신도가 소탕당하자, 보복을 위해 포격을 날린 거라고.
물론 정부도 좌시하진 않을 것이다.
어떤 식으로든 보복을 하겠지.
물론 그건 우리 헌터가 아닌, 군인들의 일이다.
“선배 괜찮아? 몸은 다친 곳 없고?”
우민희의 교신을 받으며 파편이 널린 관사의 계단을 올랐다.
혹시라도 건질 게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괜찮아. 그런데 웬일로 네가 내 걱정을 다 하냐?”
“그야 선배한테 거는 기대가 크니까.”
“그래?”
“그러니까 앞으로 좀 더 열심히 해. 엄창아.”
“엄창이가 누구지? 새로운 헌터······.”
뭐라 하기도 전에 교신이 끊겼다.
우민희 녀석, 날 완전히 엄창이로 만들 생각이군.
엄창이 맞지만.
쓴웃음을 머금으며 내 관사를 향했을 때 발걸음이 멈췄다.
사람이 있다.
모르는 사람이.
쓴웃음이 지워지는 걸 아쉽게 여기며 권총을 들고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아이들이 있었다.
초라하고 얼굴에 검은 때가 잔뜩 묻은.
고아, 혹은 피난민의 자식이겠지.
아무튼 형편이 좋은 것 같진 않은 아이들이 내 잡동사니를 만지고 있었다.
임금님 항아리와 대형 스피커는 박살이 났지만 12종 인형 세트가 남았다.
아이들은 그 인형을 가지고 놀고 있었다.
그것도 매우 기뻐하는 얼굴로.
“아, 아저씨네 집이에요?”
갑자기 나타난 날 공포가 섞인 눈으로 보며 아이들 중 하나가 묻는다.
그들의 얼굴에 서렸던, 이제는 다시는 보기 어려울 것 같던 미소가 사라지는 걸 보며 말했다.
“······가져가라.”
짧은 말과 함께 돌아섰다.
곧 아이들이 각자의 인형을 안고 내 눈치를 보며 관사를 떠났다.
시야에서 사라진 순간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 해맑은 합창 속에서 나는 나도 모르게 탄성을 터뜨렸다.
“아.”
이제야 기억났다.
사재기를 하려고 샀었지.
그 인형들, 유명한 작품의 시즌 한정품이었으니.
이른바 “되팔이” 짓을 하려고 샀던 것이었다.
“······.”
의도하진 않았지만 적절한 재판매라고 생각한다.
내 입가에 걸린 희미한 미소가 그 영수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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