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a House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353)
아포칼립스에 집을 숨김-359화(353/466)
아포칼립스에 집을 숨김 359화
147. 산군 (1)
정부 발표에 의하면 새로운 서울에 포격을 가한 군단파의 포병대는 아군의 응사로 괴멸적인 피해를 입었다고 한다.
“상대를 잘못 보고 덤빈 거지.”
담배를 손가락에 꼬나든 채 김병철은 테이블 위에 놓인 커다란 작전 지도를 핏발 선 눈으로 노려보고 있었다.
“그런 게 있지. 자기만의 작은 왕국에서 왕 노릇을 하다 보면 겁이 없어지는 게.”
그가 날 부른 건 임무 때문이다.
드론으로 촬영한 괴멸당한 군벌의 포진지에 정찰을 요청했다.
군인이 해도 되는 일이긴 한데 굳이 우리를 부른 건 그쪽도 가용할 만한 자원이 거의 없기 때문이라고.
몇 안 되는 김병철의 부하에 더해 식량과 나은 처우를 미끼로 하여 자원병을 받긴 했지만 늘 그렇듯 영토에 깃발을 꽂는 건 많은 수의 사람을 필요로 한다.
게다가 김병철의 부하 중엔 정예라고 할 만한 병력의 숫자가 적고 무엇보다 드론 항공 사진엔 심상치 않은 흔적이 있었다.
발자국이다.
얼핏 보기에도 거대하다.
“뮤테이션이네요.”
김다람이 말했다.
“고양이과처럼 보여요.”
김병철이 고개를 끄덕였다.
“실은 선행부대 하나를 보내긴 했어. 하지만 그 친구들이 거대한 짐승의 그림자를 보고 줄행랑을 쳤지. 그런데 말이야. 그 짐승의 생김새가······.”
그가 담배를 입에 물며 코와 귀에서 동시에 하얀 연기를 뿜어냈다.
“······호랑이 같다고 하더군.”
호랑이만큼 한국인의 정서에 밀접한 동물이 있을까.
자연 상태의 호랑이는 이미 예전에 멸종되었지만 우리는 여전히 호랑이라는 동물이 우리 옆에 살아 있는 것처럼 취급하고 여러 신화와 전설, 이야기와 매체에서 소재로 다룬다.
나 같은 경우엔 호랑이에 관해 특별한 감정이 없다.
대형 고양잇과 동물에 은신과 매복에 능하고 순간속도가 매우 빠른 기회주의형 포식자라는 정보 정도가 내가 호랑이라는 동물에 관해 기울인 관심의 전부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의 생각이라는 게 전부 나와 같진 않다.
여전히 호랑이를 영물로 여기는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다.
“예전에 삼신수라는 게 있었지. 특히 강력하고 골치 아픈 뮤테이션 말이야.”
김다람이 그런 유형이 아니라는 건 잘 안다.
단지 그녀는 다른 사람이 떠드는 미신적인 이야기를 취합해서 가지고 있었을 뿐이리라.
“정부 지정 현상수배 뮤테이션 중에서 특히 잡기 어려운 녀석들.”
“그중에 호랑이도 있었나?”
김병철이 묻자 김다람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 위에 하나가 더 있었어요.”
자기가 생각해도 어이가 없는 모양인지 그녀는 코웃음을 치고는 모니터에 떠오른 항공 사진을 지친 눈으로 응시했다.
“산군이라고 불리던.”
*
경험이 많고 원종 자체가 강력한 뮤테이션이 몬스터보다 위험하다는 건 우리 시절에도 널리 통용되는 상식이었다.
몬스터는 대체로 자신의 의지로 인간을 죽이진 않는다.
놈들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지구 자체를 병들게 하는 것이며 살인이라는 건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수입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뮤테이션은 다르다.
상당수의 뮤테이션이 여전히 인간을 피해 다니지만, 인간을 자신의 “먹이”로 포함한 뮤테이션은 적극적으로 인간을 사냥하고 살육한다.
펀자브의 악몽이라 불린 호랑이 뮤테이션은 인도 북부에서 3년간 활동하며 천 명에 달하는 인간을 죽이고 포식한 것으로 알려졌다.
산군이라는 녀석이 정말로 호랑이 뮤테이션이라면 경계를 기울이지 않을 수가 없다.
김다람이 정보를 가지고 있다.
“과대평가 된 뮤테이션이라 생각해.”
그녀와 나는 사고방식이 비슷하다.
환상보다는 현실적인 걸 좇고 과정보다는 결과를 우선한다는 점에서.
“다른 지정 현상수배 뮤테이션이 객관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피해 사실을 가진 반면, 산군은 딱히 피해를 줬다는 데이터가 없어.”
“그런데 왜 그 삼신순지 뭔지 하는 놈 위에 있는 거지?”
모든 유명 뮤테이션을 경험한 건 아니지만 나도 나름 지독한 녀석들을 두루 경험했다고 생각한다.
갑주를 걸친 원숭이라든지, 살인 수리부엉이라든지, 이제는 반쯤 전설로 남은 나의 친구 골드라든지.
솔직히 여간한 몬스터보다 훨씬 더 상대하기 버거운 놈이다.
그런 놈들을 제치고 가장 위험한 뮤테이션의 지위를 차지하려면 호랑이라는 정체성 이외에 특별한 구석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런 이야기가 있었어. 산군의 피해 상황이 보고되지 않는 건 산군에게서 살아남은 사람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라고.”
“그래?”
“고립된 마을이나 피난소가 산군의 사냥터라고 하는데 실제로 그렇게 사라진 마을과 피난소가 제법 있어.”
“사람의 짓은 아니겠지?”
“전쟁 초반기라면 중국군 특작부대 소행일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는데 그런 전멸된 마을에 호랑이 발자국 같은 게 발견이 됐나 봐.”
김다람이 한숨을 내쉬며 태블릿에 담긴 드론 촬영 사진을 응시했다.
“그런 것들이 모여 산군의 전설이 만들어진 거지.”
그 김다람을 노려보며 물었다.
“진짜 산군이 있다고 믿냐?”
“아니.”
김다람은 확답했다.
이른 새벽을 기해 정찰대가 출발했다.
정찰대의 숫자는 8명.
4명이 헌터고 3명이 군인, 나머지 한 명은 운전수다.
차량은 차륜형 장갑차가 배정됐다.
머리 위에서는 고고도 정찰 드론이 행동을 함께하며 우리에게 실시간으로 경로 상에 존재하는 위협을 알려주었다.
강력한 집단인지라 장비도 인원도 수준이 높다.
“굳이 선배가 가지 않아도 되는 일인데.”
김다람이 장비를 점검하며 입을 열었다.
여전히 우리 사이는 서먹서먹하다.
한때 최고의 팀메이트라고 하나 그동안 너무나 많은 일들이 우리 사이에 놓였다.
예전처럼 신뢰하는 동료 관계로는 돌아갈 수 없겠지.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이가 가져다준 지혜인지, 의심인지 모를 흐릿한 무언가가 말이다.
“달리 할 일도 없잖아? 보아하니 당분간은 소탕전에 전념할 것 같고. 게다가.”
코웃음을 치며 덧붙였다.
“산군이라는 놈이 있다면 직접 보고 싶어.”
김다람이 날 빤히 쳐다보더니 이윽고 뭔가 떠올린 듯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선배. 펀자브의 악몽 좋아했지?”
“펀자브의 악몽?”
알고 있지만 모른 척을 해봤다.
“그 인도에 나타났다는 뮤테이션 호랑이 말이야.”
“아, 그 녀석.”
“학교 다닐 때 선배가 말했잖아? 언젠가 인도에 갈 일이 있으면 한 번 잡아보고 싶다고.”
“그랬었나.”
“응. 여간해서는 사적인 이야기 하지 않던 선배가 했던 이야기라 똑똑히 기억하고 있어.”
“······그래?”
아마 김다람의 말이 맞겠지.
내 병적인 호기심은 학교 시절에도 명백한 싹수를 보이고 있었다.
인도의 멸망을 앞두고 주요 국가가 인도를 지원할 것인지 아니면 포기할 것인지 갑론을박하는 사이에 수많은 젊은이가 자진해서 인도에 건너갔다.
그 대부분은 인도와 함께 사라졌지만 일부 운 좋은 사람들이 귀중한 정보를 세상에 제공했고 나는 그러한 정보에 제법 탐닉했다.
펀자브의 악몽이라고 불리는 호랑이도 그중 하나였겠지.
워낙 유명한 놈이었으니.
“같은 호랑이고 하니, 선배가 그것 때문에 이번 임무에 자원했다는 생각이 무심코 들어서 말이야.”
“그건 아니야. 단지 산군이라는 이름 자체에 흥미를 느꼈을 뿐이지.”
산군(山君)이라는 말은 산신령을 일컫는 말인데 조선 시대엔 호환을 일으키는 무시무시한 짐승인 호랑이를 가리키는 말로도 쓰였다는 모양이다.
호랑이가 진짜 한국에 있는지는 알 수 없다.
한국의 자연 상태에서 호랑이가 멸종한 건 맞지만 동물원에서 탈출한 개체가 뮤테이션화가 진행됐을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가장 가능성 높은 건 고양이의 뮤테이션화겠지.
고양이의 털 무늬가 우연히 호랑이의 그것과 비슷한 발색을 가지게 되었고 그 고양이가 사람들을 숱하게 해쳤다면 산군이라는 악명 높은 지명 뮤테이션의 신화가 탄생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그래?”
김다람이 불쑥 물었지만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수 없는 이유가 하나 있다.
“······.”
슬슬 소재를 찾아야 한다.
현실이 아닌 인터넷에서 쓰기 위한 소재를 말이다.
최근 나를 흉내 내는 놈이 생겼다.
*
네크로폴리스 유입으로 우리 게시판의 수명이 연장된 건 내가 의도한 바지만 사람 일이 그렇듯 어떤 일엔 항상 좋은 결과만 따르는 일이 드물다.
망자3713 : (제레미아이언스) 이른바 월드스타 “아인즈”의 최후 (3)
첫인상은 나쁘지 않았다.
게시판의 전설적인 네임드인 나에게 강한 인상을 받고 내 흉내를 내는 착한 친구라고 생각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저 익숙한 머리글.
존내논에서 스켈톤으로 이루어진 완벽한 나의 정체성 아니던가.
그런데 이 무명의 유저가 점점 눈에 거슬리기 시작한 건 놈의 글이 자주, 아니, 글만 올리면 인기글에 오르는 걸 발견하고 나서부터다.
망자118 : (제레미아이언스) 국민 사촌동생 “양자희”의 새드 엔딩 (3)
제레미아이언스.
이 악의적인 흉내쟁이는 이상할 정도로 과거 연예인이라 불리던 사람들의 최후를 잘 알고 있었다.
일부 비판자가 지적했듯이 나도 이 제레미아이언스의 “연예인의 비참한 말로” 시리즈는 현실에 기반한 것이 아닌, 제레미아이언스의 개인적인 상상력으로 쥐어짜 낸 소설이라고 믿고 있지만 현재 게시판을 채운 우매한 대중은 달랐다.
망자894 : 와······ 양자희가 약탈자가 됐다고······?
망자7313 : 부산은 고향도 아닌데 왜 갔대?
망자3121 : 이혼한 엄마 쪽이 부산 사람이라는 이야기가 있긴 했지. 그럴듯한 이야기네.
망자211 : 총살당하기 전에 군인들한테 험한 꼴 당했겠지······?
…
…
제레미아이언스가 꾸며낸 가공의 이야기에 이상할 정도로 열광하고 있다.
대한민국 사람이 가십을 좋아하고 연예인에 관심이 많다는 건 익히 아는 바지만 전쟁이 시작된 지 4년이 지난 이 시국에 관심을 보이는 게 맞는 걸까?
뭐, 평범한 근황도 아니고 최후니 말로니 하는 자극적인 키워드가 인기를 끈 비결일 수도 있겠지.
그런데 자랑은 아니지만 나도 “썰”에 관해서는 꽤나 일가견이 있다고 생각한다.
시류에 부합하는 건 나 같은 네임드가 할 일은 아니지만 이사를 온 기념으로 모처럼 잠시 중단됐던 스켈톤의 썰 시리즈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SKELTON : (원조 스켈톤) 스켈톤의 썰 시리즈 (1)
이야기는 핑거 프린세스 여사율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전쟁 전, 제레미아이언스가 푸는 이류 연예인과는 차원이 다른 초일류 배우로 전쟁 후 행방이 묘연했으나 우리 게시판에 모습을 드러내어 나와 약간의 인터넷 친분을 쌓은 일련의 이야기를 담백한 썰로 풀어냈다.
물론 재밌는 이야기는 아니고 극적인 요소도 없다.
하지만 이건 100% 진실에 기반한 이야기다.
제레미아이언스의 공상과학소설과는 급이 다른 무게를 가지고 있다는 소리다.
확실히 하기 위해 부계정을 이용해 추천과 댓글도 하나 달아주었다.
Dr.Emiless : 흠….. “국민 여배우” 여사율한테 그런 일이 있었군…..
그런데 그 댓글이 마지막 댓글이었을 줄이야.
네크로폴리스에서 기어 온 놈들만 해도 수천 명이 넘는데 그 버글거리는 놈들 중 내 글을 보고 댓글을 하나도 달지 않는 건 안 그래도 날 흉내 낸 “유사품”에 잔뜩 감정이 상한 나에게 큰 상처로 다가왔다.
어쩔 수 없이 재업을 했다.
SKELTON : (원조 스켈톤) 스켈톤의 썰 시리즈 “여사율의 근황” (1)
…
SKELTON : (원조 스켈톤) 스켈톤의 썰 시리즈 “여사율의 새드 엔딩” (1)
…
SKELTON : (원조 스켈톤) 스켈톤의 썰 시리즈 “여사율의 쇼킹한 최후” (1)
…
제목을 여러 번 바꿨는데도 어째 별무신통이다.
그러던 중.
익명458 : 스켈톤. 왜캐 재업을 해대냐? 추하게시리.
내가 잘 아는 게시판 친구가 충고를 해왔다.
내친 김에 그에게 직접 물었다.
SKELTON : 왜 내 글엔 댓글이 안 달리지?
이에 대해 익명458은 싸늘한 단답으로 답했다.
익명458 : 재미없으니까.
재미가 없다라.
재미가 없다는 건 어느 쪽일까?
정직하게 팩트에 기반한 내 이야기적 구성이 재미 없다는 이야기일까? 아니면 어중간하게 끝난 이야기의 엔딩이 재미를 주지 못한 것일까.
어쩌면 여사율이라는 이미 전쟁 전에 파헤칠 대로 파헤쳐 진 식상한 연예인에 대중들이 큰 흥미를 느끼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설상가상으로 내가 여러 번 재업을 한 직후 제레미아이언스는 보란 듯이 새 글을 올렸다.
익명5321 : (제레미아이언스) “원 히트 원더” 장혜나 근황 (1)
추천 수 1이 찍힌 내 글과 달리 그의 글은 빠르게 추천 수 스무 개를 돌파해 인기글에 올랐다.
딸깍
부글거리는 마음을 다스리며 놈의 글을 읽어보았다.
“······.”
재미가 있다.
하지만 소재의 문제다.
놈이 좀 더 좋은 소재를 잘 발굴했을 뿐이다.
내가 더 좋은 소재를 발굴한다면 한 차례 체면을 구긴 스켈톤의 썰 시리즈도 예전과 같은 인기를 누리겠지.
뭐, 그러한 마음이 나를 여기에 데리고 온 이유 중 하나일 수도 있다.
“여깁니다.”
장갑차가 멈췄다.
이윽고 드론 조종사의 방송이 교신기를 채웠다.
“작전 구역 내에 적대세력 없음. 반복한다. 작전 구역 내에 적대세력 없음. 다만, 매복이 있을 수도 있으니 신중하게 전진 바람.”
김다람과 시선을 교환했다.
철컥-
장갑차의 문이 열리고 강화 플라스틱 방패를 든 병사들이 앞장 섰다.
“클리어!”
성벽처럼 버티고 선 그들을 지나 설원 위에 섰다.
낮은 산지.
밤새 내린 눈에 덮였지만 군데군데 부서진 야포의 잔해가 보인다.
기세 좋게 새로운 서울을 포격했지만 대포병 레이더를 동반한 보복 포격에 휘말려 전멸한 것으로 보인다.
곳곳에 눈을 뚫고 나온 얼어붙은 손과 다리를 보아하니 시체조차 수습하지 못할 정도로 심각한 타격을 받았으리라.
“수색은 내가 할게. 선배는 경계를 서줘.”
그래도 후배랍시고 김다람이 궂은일을 했다.
아니, 어쩌면 조금이라도 전공을 세우고 싶은 욕심이 앞섰는지도 모르겠지.
이름 모를 병사와 함께 주변을 가볍게 거닐었다.
곧 눈에 띄는 것이 포착됐다.
짐승의 발자국이다.
“······이거 엄청 크네요.”
병사가 발자국을 보며 놀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크다.
성인 머리보다 더 큰 발자국이 찍혀 있다.
고양이는 아니다.
고양이가 뮤테이션으로 커질 수 있는 크기를 아득히 상회한다.
어쩌면 호랑이일지도 모르겠다.
단 한 번도 보고된 적이 없는 시베리아 호랑이 뮤테이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