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a House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355)
아포칼립스에 집을 숨김-361화(355/466)
361화 148. 진통제 (1)
SKELTON : (스켈톤) 산군 (1)
망자13213 : (제레미아이언스) 국민배우 강훈영의 마지막 이야기 (1)
“······.”
원수는 외나무 다리에서 만난다고 했던가.
회심의 썰 시리즈를 집필하고 새로고침을 하며 결과를 기다리던 중 제레미아이언스가 새글 올리는 걸 발견했다.
이런 식의 방법이 치사하다는 건 알지만 승부의 세계는 비정하다.
아직 조회수 3도 안 되는 따끈한 글에 접속했다.
드르륵-
글은 하나도 안 읽고 스킵.
“······.”
타닥타닥
Dr.Emiless : ······하아. 거짓말도 적당히 해야지. 솔직히 말해. 이거 구라지?
이건 치졸한 공작이나 유치한 질투심의 발로가 아니다.
멸망기 인터넷 선배로서 전후 인터넷 세상 특유의 매운맛을 알려주는 일종의 예방 주사에 불과하다.
아니나 다를까, 아직 전후 인터넷 세계의 혹독함을 맛보지 못한 제레미아이언스가 발끈했다.
망자13213 : (제레미아이언스) 뭐냐. 넌? 뭔 근거로 구라라고 하는 거야? 내가 직접 경험한 사람한테 보고 들을 건데. 교차 검증도 끝났어.
말이 많은 거 보니 역시 경험이 부족하다.
풋내가 난다.
회심의 미소를 머금으며 댓글을 달았다.
Dr.Emiless : 네가 퍼오는 썰 전부가 소설이잖아······. 아무 인증도 없는 걸 어떻게 믿어······.
망자13213 : (제레미아이언스) 아니, 네크로폴리스에서 사진을 어떻게 올려? 페일넷도 아닌데.
Dr.Emiless : 푸하하
망자13213 : (제레미아이언스) ?
Dr.Emiless : ?은 병신아. 말머리는 그게 뭐냐?
Dr.Emiless : 비바! 아포칼립스! 네임드 유저 스켈톤의 흉내라도 내는 거냐?
망자13213 : (제레미아이언스) 스켈톤은 뭐 하는 듣보잡이냐?
“어?”
고개를 살짝 갸우뚱했다.
Dr.Emiless : 스켈톤도 모르냐······? 아무리 네크로폴리스 유입이라고 해도 그렇지······. 근본 유저를 모르네······.
망자13213 : (제레미아이언스) 어? 잠깐만.
망자13213 : (제레미아이언스) 갑자기 뭔 스켈톤 같은 듣보잡 이야기 꺼내나 싶었더니 닥터 에미리스 이 새끼가 스켈톤이었네.
Dr.Emiless : ?
망자13213 : (제레미아이언스) 맞잖아. 병신아. 보니까 스켈톤 새기가 올린 별 개노잼 썰마다 댓글 하나씩 달아놨네. 거기다 추천 두 개는 뭐냐······?
Dr.Emiless : ?
망자13213 : (제레미아이언스) 니가 한 거지?
Dr.Emiless : ?
즉시 다른 컴퓨터로 뛰어가서 녀석의 글을 삭제하려는 찰나였다.
화면에 메시지 하나가 경고문처럼 떠올라 있다.
VIVA_BOT014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하지 마세요······.
“······.”
비바봇.
어지간히 할 일이 없는 여자군.
액면 보니 20대 초중반 같던데 그 정도 연령의 여성이면 좀 꾸미고 나와서 바깥에서 활동해야 하는 거 아닌가?
왜 내가 하려는 일을 막는 거지?
[ 본 게시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 (Y/M) ]VIVA_BOT014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제발요······.
“······.”
한 번만 참기로 했다.
그래.
어른이니까 참는다.
그런데.
망자13213 : (제레미아이언스) 스켈톤 이 새끼 이거 ㄹㅇ 레전드네.
망자13213 : (제레미아이언스) 지 썰 아무도 안 봐주니 개추 주작에 가면질에 거기다 음해까지 하네······.
망자13213 : (제레미아이언스) 비바 계정 두 개나 있는데 유동질은 할 줄 모르는 거 보니 돈 많고 나이 많은 놈 같기도 하고······.
갑자기 댓글이 우르르 달리기 시작한다.
자세히 보니 추천 수가 15를 넘는다.
그세 인기글에 오른 모양.
인기글에 올라서인지 댓글이 빠르게 달린다.
익명3132 : 스켈톤? 뭔데? 이 새끼는? 왜 제레미 아이언스한테 시비질이야?
익명113 : 아, 기억났다. 뭔 ADSL 시절도 아니고 낳낫 어그로 끄는 새끼 아니야?
익명37311 : 자기 글 아무도 안 읽어주니 심술부리네.
익명458 : 스켈톤······.
익명7721 : 제레미아이언스님 저런 놈 무시하고 썰이나 계속 올려주세요 ㅎ
mmmmmmmmm™ : 왓더스멜?
gijayangban : ?
…
…
지금은 잠깐 피난해 있자.
판세가 좋지 않다.
“······.”
뭐, 잠깐 욕이나 먹고 말겠지.
인기가 있으니 욕을 먹는 거다.
하루 이틀 욕먹는 것도 아니고 이 또한 지나가는 바람이겠지.
떨리는 손으로 모니터의 전원을 끈 후 관사를 나섰다.
포격을 한 차례 얻어맞았지만, 관사는 여전히 같은 곳을 쓰고 있다.
정확하게 말하면 직격은 아니었다.
지근 거리에서 터진 것이 빌라를 뒤흔들었고 내 아까운 물건 몇 개를 파손한 것이다.
관리인 말마따나 명당이라면 명당이다.
현재 시각 새벽 2시 20분.
늦은 시간이지만 새로운 서울 주변은 과거처럼 불야성을 이루고 있다.
정부 창고에서 가동한 발전기가 도시 곳곳에 빛과 열기를 가져다 주고 그 아래서 사람들이 삽과 곡괭이를 가지고 폐허를 파헤치고 파편을 구석으로 밀어 넣고 있다.
하남으로 가는 길을 뚫고 있다.
길이 완성되면 더 호프 아래에 있는 피난민들은 그쪽으로 이사를 가게 되겠지.
도시 운영 관리자의 말에 의하면 한 달 안에 전부 이루어진다고 한단다.
물론 그 전에 해결해야 할 건이 하나 있다.
인근 지역난방공사를 청소해야 한다.
하남 일대를 새로운 주거지로 선정한 이유 중 하나가 비교적 최근에 완공된 난방공사 소속 열병합발전소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그런 중요 시설엔 높은 확률로 몬스터가 둥지를 튼다.
이미 전쟁 초반에 만들어진 둥지가 발전소를 회백색으로 감싸고 있다.
도시로서는 악운이겠지만 전쟁이 시작된 후 4년이 지난 지금 시점에서는 잘 숨겨둔 쌈짓돈이다.
적어도 몬스터의 영역 안에서는 그 극성스러운 스케빈저도 활동하지 않으니까.
스케빈저가 약탈자에 비해 온건한 이미지긴 하나, 국가 인프라적 관점에서 접근해 보면 그들은 사람을 적극적으로 죽이지 않았을 뿐이지, 나라의 기반 전체를 아작을 낸 주범이다.
어느 정도냐면 철로의 침목과 레일까지 떼어내서 팔 정도라고.
덕분에 남부 공업지대가 건재할 때 철로를 이용한 물자 수송 계획이 상당한 차질을 빚었다고 한다.
아무튼 그 스케빈저의 손길이 닿지 않은 발전소는 충분한 기름만 있다면 이번 겨울 동안 새로운 서울의 주민에게 희망을 줄 수 있겠지.
다만 그 둥지라는 게 난이도가 높다.
오래돼서 그런지, 아니면 몬스터 기준으로 명당인지는 모르겠지만 3개체 이상의 소형종이 함께 둥지를 틀었다.
좀비가 없어서 네크로맨서 타입은 없는 것으로 추정되지만 적어도 한 기 이상이 스파이더 타입이라는 건 그 임무가 결코 쉬운 게 아니라는 것이겠지.
김다람을 데려가도 쉽지 않으리라.
정규 어웨이큰이 있다면 모를까.
건물 앞에 서서 멍하니 입김을 흘려보내고 있자니 누군가 이쪽을 향해 걸어오는 게 느껴졌다.
고개를 돌리는 순간, 심상치 않은 일이 날 기다리고 있다는 걸 예감했다.
어둠 속에서 은은히 빛나는 눈.
어웨이큰이다.
그것도 지금 가장 골머리를 썩이고 있는.
“대장님.”
정규 어웨이큰의 우두머리 안승환이 내게 고개를 꾸벅 숙였다.
나는 누군가가 고개를 숙이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 과장적인 행동 뒤엔 반드시 원하는 게 있다는 걸 경험으로 알기 때문이다.
*
“와우. 노트북을 두 개나 쓰시네요.”
전쟁 전처럼 카페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바깥에서 이야기를 나눌 정도로 따뜻한 날씨도 아닌지라 어쩔 수 없이 아직 정리 중인 내 관사에 그를 초대했다.
“아, 이게 그 오벨리스크?”
안승환은 내 물건에 관심이 많아 보였다.
“아니, 이건 또 왜 두 개나 있어······?”
“······무슨 일로 찾아온 거지?”
따뜻한 차를 내왔다.
우민희에게 받은 오렌지향 합성 감미료를 탄.
맛은 딱 상상하는 그 맛이지만 모든 것이 희귀한 현재 시점에서는 상당한 별미다.
나름의 손님 대접으로는 적당하다는 이야기다.
소파 따위 사치스러운 가구는 없는지라 이케아 풍의 간이 의자에 마주 앉은 채 이야기를 시작했다.
안승환은 재차 머리를 박았다.
“새삼스럽지만 고맙고 또 죄송합니다.”
“······매정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용건이 뭐지? 아직 잠을 못 자서 말이야.”
안승환은 한숨을 내쉬며 망설이는 듯한 표정을 짓더니 이윽고 결심한 표정으로 얼굴을 바꾸며 결연한 눈으로 날 보았다.
“사실 저도 대장님 쪽 지휘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생각하고 있다는 말은 내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표현이다.
차라리 안 하겠다, 못 하겠다는 표현이 더 낫다.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건 입 밖으로 내봐야 아무런 의미가 없으니까.
말없이 다음 말이 이어지길 기다렸다.
“솔직히 말할게요.”
안승환이 짙은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 있는 정규 어웨이큰들.”
나도 나이가 들고 경험이 쌓인 탓일까.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 지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제주에서 밀려난 애들입니다.”
역시.
나쁜 예감은 빗나가는 법이 없다.
“전투 부적격자?”
그에게 물었다.
“심리테스트로 거르는 부적격자는 아니었고요. 임무 수행 중 트라우마 등으로······. 아니면 심각한 실수를 여러 번 반복해서 사후 판정을 받은 애들이죠.”
“그래?”
“원래는 등대로 갈 애들이었는데 등대 쪽에서 소식이 끊기는 바람에······. 하아. 대기 상태로 머물고 있었죠.”
안승환이 내게 다시 고개를 숙였다.
어떤 사람은 젊고 어린 사람이 고개를 숙이지 않는 걸 버르장머리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아예 고개를 숙이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젊을수록 고개를 쉽게 숙여서는 안 된다.
빳빳해야 한다.
한 번 꺾인, 흐물거리는 목은 좀처럼 원래대로 돌아오지 않을 테니까.
“부탁드립니다. 다들 재활 혹은 두려워하는 아이들입니다. 안 그래도 겁이 많은 애들인데 대 어웨이큰 신형까지 출현해서 더욱 위축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혹 우리를 필요로 하더라도 가장 안전한 임무에 투입을 부탁드리겠습니다.”
물론 안승환의 고개가 습관적으로 숙이는 것인지 아니면 자신이 생각해서 숙이는지는 천천히 판단할 문제다.
우민희와 이야기해 봐야겠다.
*
나이를 먹는다고 모두가 어른이 되는 건 아니다.
경험과 경험에서 얻는 성찰이 있어야 사람은 비로소 성장한다.
물론 어른의 정의라는 게 사람마다 다르고 나 또한 어른의 정의를 그때그때 바꾼다는 것을 부정할 생각은 없다.
우민희는 남들과 다른 곳에서 살고 있다.
더 호프만큼은 아니지만 약간 기울어진 비지니스 호텔의 최상층이 그녀가 사는 공간이다.
보수되지 않아 철근과 콘크리트가 흉하게 드러나고 박살 난 유리창에서 외풍이 그대로 들어오는 흉흉한 공간에 유일하게 제대로 된 문짝이 달린 호실이 있다.
다른 호실은 물론 건물 전체가 멸망기적인 쇠퇴와 풍화를 받는 가운데 오로지 그녀의 공간만이 과거의 영화와 화려함을 갖춘 모습은 여러 가지 의미로 비현실적이었다.
“김다람이 그러더라고.”
방금 목욕을 마쳤는지 목욕 가운 차림으로 날 맞이한 그녀는 내 앞에서 머리를 말리며 평소보다 낮은 톤의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선배는 하나도 안 늙었다고.”
거울에 비친 갈고리 손이 움직이며 화장대의 대리석 상판을 긁으며 끔찍한 소리를 일으켰다.
끼이이이익–
“여전히 선배는 그 시절에 머물러 있구나. 우리는 이렇게 더러워졌는데. ”
탄식, 그리고.
“아니, 어른이 됐는데.”
코웃음.
“······.”
대리석 상판에 깊은 상처를 낸 철제 손가락을 오므리며 그녀가 돌아서서 날 응시했다.
그 얼굴은 전체적으로 무표정해 감정을 읽을 수 없었지만 적어도 적의는 드러내지 않았다.
“어쩔 수 없어. 어른의 일이야. 그 끝이 좋지 않으리라는 걸 알면서도 아이를, 젊은이를 전장으로, 노동으로 내모는 건.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은 평생 자신만 보고 자기 일만 하는 사람은 영원히 볼 수 없는 풍경을 봐.”
어른이라는 게 무엇인지 아직 내 나름의 정의를 내리진 않았지만 적어도 그녀가 말하는 어른과 내가 생각하는 어른 사이에 차이가 있다는 건 알겠다.
그녀를 노려보며 담담하게 말했다.
“그 풍경. 궁금하진 않네.”
“처음이 힘들어. 처음이. 다른 것처럼 계속하다 보면 무뎌지게 되어 있어. 알잖아? 우리도 악의가 있어서 하는 일이 아니라는 걸. 선배처럼 위험한 일을 매번 자신이 떠안는 건 분명 낭만적이야. 하지만 낭만은 낭만일 뿐이야.”
“······사정은 잘 알겠다. 안승환과 다시 이야기를 해보지.”
어른의 정의에 관해서는 다소 견해의 차이가 있다는 걸 확인했지만 전투 부적격 판정을 받은 친구들이라도 쓸 수밖에 없다는 사정은 잘 이해했다.
남은 건 누구를 데려가냐의 문제겠지.
이하루가 좋으려나.
전장까지 따라오는 걸 보면 약간의 강단은 있어 보인다.
신형 몬스터를 만났을 때 패닉에 빠지긴 했지만 그 정도 결점은 본인 의지에 따라 수정할 수 있는 것이다.
“아무튼 충고 고맙다. 바로 인선을 추려서 발전소를 확보할게.”
돌아서서 자리를 떠나려 할 때 우민희가 불쑥 말했다.
“제일 폐급인 애를 보내달라고 해.”
여기저기 놓인 거울에 그녀의 옆얼굴이 비쳤다.
그 얼굴은 미소 짓고 있었다.
“선배 잘하잖아? 폐급 애들 조련해서 사람 구실 하게 만드는 거?”
“······그랬었나.”
“왜. 그 강한민 선배도 일 인분 하게 해줬잖아?”
우민희의 얼굴을 보고 이해했다.
내 영악한 후배는 처음부터 모든 걸 알고 있었다.
모든 걸 알았기에 나를 부른 것이다.
뭐, 여기 온 건 나름 정답이었다는 이야기겠지.
적어도 내 소중한 영역에 포탄이 떨어지기 전에 왔으니까.
*
“······별명은 제통입니다. 왜 제통이냐고요? 제주 통합 병원의 줄임말이죠.”
안승환이 한숨을 내쉬며 “자원자”에 관한 정보를 이야기해줬다.
“틈만 나면 꾀병을 부려요. 아프지도 않은데 항상 꾀병을 부리죠. 네. 그 사람 좋아하는 사람 아무도 없어요. 누가 좋아해요? 그런 나잇값도 못 하는 이기적인 인간을.”
제통이라 불리는 정규 어웨이큰의 이름은 김한나.
나이는 28세, 여성으로 정규 어웨이큰 최연장자다.
“아, 안녕하세요?”
정규 어웨이큰 최연장자라는 신분에 은은히 빛나는 눈을 가졌으면서도 어눌하게 내 눈치를 보며 인사하는 모습에서 나는 왜 그녀가 다른 정규 어웨이큰에게 경원시 당하는지 알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저기 정말 죄송한데요, 제가 오늘 그날이라서요. 컨디션이 너무 안 좋아요. 그러니까 다음에 가면 안 될까요?”
눈치를 보면서 어쭙잖은 수작을 부린다.
뒤에서 지켜보던 이하루 – 머리에 붕대를 감고 깁스를 한 – 가 날 향해 윙크를 하더니 김한나 뒤에서 들으라는 듯이 큰 소리로 말했다.
“언니. 저번 주에 한 거 아니었어?”
자기보다 어린 동료들의 웃음소리 속에서 발갛게 달아오르는 김한나의 얼굴을 보며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이거, 쉽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