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a House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360)
아포칼립스에 집을 숨김-366화(360/466)
366화 149. 장기 (2)
균열에 대한 대부분의 연구가 그러하듯 어웨이큰이 정확히 어떤 원리에 의해 몬스터와 유사한 파동을 일으킬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확실하게 규명된 게 없다. 가장 유력한 학설은 어웨이큰은 이른바 뮤테이션 인자라 불리는 균열의 영향에 의해 전두엽에 일반인과 다른 변이를 일으킨 사람이라고 이야기한다.
정확히 어떤 부분이 달라졌는지는 사람마다 다르다. 어떤 사람은 전두엽 피질이 일반인보다 팽창됐다고 말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돌기 같은 것이 있다고도 말한다. 또 어떤 사람은 색깔 자체가 일반인과 다르다는 주장을 펼치기도 하는데 실험용 동물과 달리 어웨이큰은 인간인지라 살아 있는 인간을 해부해서 표본을 얻을 수는 없는 일이다.
물론 워낙 중대한 일이기에 세계 각국에선 암암리에 어웨이큰에 대한 연구를 계속하긴 했지만 가시적인 성과는 없었다.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어웨이큰은 양산할 수 없다는 것이다.
마치 양식이 되지 않는 식자재처럼 어웨이큰은 인간이 파악할 수 없는 조건에서 스스로 나타나는 존재였다. 그런 찰나에 뜬금없이 허종철이 황당한 주장을 했다.
어쩌면 만들어진 어웨이큰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과학자도, 의사도 아닌 2류도 안 되는 헌터가 말이다. 병원 복도에서 허종철을 발견했을 때 그는 하얀 가운을 입은 의사에게 꾸지람을 듣고 있었다.
“아니, 종철씨. 앱더맨 쪽 통증 원인은 수천 가지가 넘을 수 있다고 전에 설명하지 않았나요? 환자도 자기가 정확히 어디가 아픈지 몰라요. 뭘 근거로 헤파티티스 소견을 냈는지 모르겠지만 눈으로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에요.”
누군가 했더니 김다람의 남편이다. 예전에 결혼식 때는 뭐랄까, 구김살 없는 미소가 어울리는 강남 도련님 같은 인상이었는데 지금은 상당히 거칠어졌고 날도 서 있는 느낌이다.
“아니, 보이는 걸요. 간이 부어 있다고요.”
“헤파토메갈리의 원인이 몇 가진 줄 아세요?”
“아니, 보이는 걸 어쩌라고요. 전에 간염 걸려 죽은 사람하고 똑같은 게 보이는데.”
“저기. 종철씨. 교과서 갖고 있죠? 자, 처음부터 말할게요. 간이 비대해지는 원인은······.”
잠자코 지켜보고 있자니 끝날 것 같지 않아 헛기침을 했다. 곧 두 명이 날 발견했다.
“오.”
허종철이 반가운 티를 낸다. 하긴 상사인지 상관인지 모르는 사람에게 잔소리를 듣고 있으니 내가 아닌 다른 누구라도 환영하겠지. 김다람의 남편도 한눈에 날 알아본 눈치지만 눈이 마주치는 순간 그는 눈동자를 다른 곳으로 굴렸다.
“······다음에 이야기해요.”
부창부수라고 했던가. 아니면 유유상종이라고 해야 하나. 우리 다람이의 남편도 다람이와 비슷한 성향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예전 도련님 시절에는 사람 황송할 정도로 과하게 반겨줬는데 말이다. 축의금으로 날린 백만 원분의 쓴맛이 입안에 감도는 걸 느끼며 허종철에게 다가갔다.
“오랜만입니다.”
여전히 인상적인 구레나룻에 더해 턱수염까지 멋들어지게 기른 허종철과 극적인 만남을 가지긴 했지만 사실 우리 사이엔 나름의 악연이 있다. 이 친구가 죽이려 들었고 내가 그를 간단하게 쫓아냈다는 시답잖은 이야기다.
아무튼 그런 에피소드가 있어서인지 날 보는 그의 시선엔 부담감이 묻어 나왔다. 딱히 과거를 탓할 생각도 없고 그의 주장에 강한 흥미를 느껴서 왔다.
“잠깐 이야기 좀 할까?”
“좋죠.”
밖으로 나왔다. 곧 그가 커피믹스가 담긴 종이 잔 두 개를 내왔다.
“오. 아직도 이런 게?”
“그래도 병원 아닙니까?”
“일은 할만하냐?”
“그럭저럭요.”
할 이야기는 많지만 내가 그에게 충고하는 것도 오지랖이고 그에게 충고를 할 정도로 절친한 사이는 아닌지라 단도직입적으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세례자 요한한테 세례를 받은 친구가 있다고 하던데.”
“아. 네.”
의외로 큰 고민 없이 허종철은 문제의 환자를 공개했다. 환자는 창문이 열린 채 커튼이 나풀거리고 있는 병실에 덩그러니 혼자 앉아 있었다.
영상이라고 하나 냉장고처럼 차가운 바깥 공기를 그대로 들여보내는 건 문을 열면서부터 진하게 느껴지는 악취 때문이다. 분변의 악취가 강하게 풍겼다.
곳곳에 아무렇게나 널린 소변기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제대로 관리가 안 되는 환자다.
“회복 불가 판정을 받았습니다.”
허종철이 마스크를 끼며 말했다.
“······어디에 문제가 생긴 거지?”
“뇌가 전체적으로 맛이 갔어요. 알콜 중독 말기 환자 마냥 호두처럼 쪼그라들었죠.”
“그럴 나이는 아닌 거 같은데?”
젊다기보다는 어린 소년이었다. 귀 반쪽이 날아가고 눈썹 쪽에 진한 흉터가 새겨졌을뿐더러 무의식중에 포개고 있는 손가락 여러 개가 뭉툭하게 잘려 나간 부분에서 순탄치 않은 삶을 살았으리라고 짐작할 수 있었지만 남겨진 삶도 예정된 파멸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일주일 정도 지켜봤다가 퇴실시킬 예정입니다.”
“보호자는 있나?”
허종철이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빈손으로 왔다, 빈손으로 가겠죠.”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병실을 나서 텅 빈 복도를 함께 걸었다.
“진호라고 하더군요. 성은 모르겠어요. 이미 여기 올 때부터 뇌 쪽에 손상이 일어나고 있었죠.”
“처음에는 지금보다는 나았던 모양이지?”
“예.”
어느 날 갑자기 아무 연고도 없는 소년이 병원에 찾아왔다. 머리에 격렬한 고통을 호소하던 소년은 어웨이큰적인 특징을 어김없이 드러냈다.
“······간이 검사 테스트는 물론이고 널리 알려진 특징인 스스로 발광하는 안구 또한 갖고 있었죠. 파동을 일으키는 수준은 아니었지만 그 아래까지 왔던 것 같습니다. 이른바 두드림이라고 부르는 현상이죠. 5레벨 이상의 자질이 있는 어웨이큰이 막 파동의 문을 열려고 할 때 보이는 현상 말입니다.
” 허종철은 그 진호라는 소년이 의심할 여지 없는 어웨이큰이라고 확신했다. 이는 그와 사이가 좋지 않은 김다람의 남편도 인정한 사실이다.
물론 여기서 중요한 건 그 소년의 어웨이큰 여부가 아니다. 검은색 검사지를 받은 소년이 어웨이큰이 된 과정이다.
이야기 중에 김다람 남편이 신경질적인 걸음으로 다가왔지만 내가 물끄러미 응시하자 돌아서는 가벼운 해프닝이 있었다. 허종철의 보이지 않던 장점 하나가 보였다.
이 양반, 신경이 무지하게 굵다. 김다람 남편이 명백하게 쪼아대는데도 눈 하나 꿈쩍하지 않는다.
도로에서 누군가 악의적으로 경적을 울릴 때 디펜더 남매가 차에서 내려 야구 빳다를 꺼내 든다면 이 친구는 개무시하고 자기 할 일 끝까지 할 인간이다. 하긴 저런 굵은 신경을 갖고 있으니 말도 안 되는 정신세계를 고수할 수 있었던 것이겠지.
“······진호가 분명히 말했어요. 자기는 과거에 리트머스 시험을 통과한 적이 없었다고. 그런데 갑자기 통과가 된 거죠. 네.” 허종철이 눈동자에 어웨이큰과는 또 다른 안광을 발하며 회심의 미소를 머금었다.
“세례자 요한입니다. 그 인간이 일반인을 어웨이큰으로 만드는 기술을 갖고 있어요. 아직은 불안정하지만.”
“그 소년의 용태와 관련이 있나?”
“네. 그가 주사한 물질이 뭔지는 알 수 없지만 전두엽쪽에 어웨이큰적인 변화를 촉진하는 효능은 확실히 있습니다. 하지만 그 반작용으로 대뇌피질에 급격한 손상이 오고 결국 진호처럼 사람을 폐인으로 만들게 되지요.”
“······독극물이군.” 사람의 생각이 전부 같을 순 없다. 허종철이 말했다.
“글쎄요.” 안경 너머 눈동자가 유독 번들거리는 건 어웨이큰의 안광 탓만은 아닐 것이다.
“어쩌면 암울하기 짝이 없는 현재를 타파할 수 있는 병기가 될지도 모를 일이지요.” 이런 인간을 본 적이 있다. 물론 허종철 같은 녀석은 아무 실권도 없이 망상을 할 뿐이겠지만 정책을 결정할 수 있는 인간이 이런 생각을 한다면 필경 위험해지겠지. 이를테면, 강한민처럼. 구원자와 영웅, 광대와 열등생 수많은 이미지가 그의 본질을 흐리고 있지만 내가 이해한 강한민의 본질은 극단주의다.
그는 나만큼이나 균열을 증오한다. * 죽고 싶은 놈이 얼마든지 있다는 건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인터넷에 올릴 짧은 영상을 찍기 위해, 아니면 어떤 집단에서 용기를 과시하기 위해, 일부 어리석은 사람들은 – 아마도 본인은 죽을 생각이 추호도 없었겠지만 – 죽음을 선택한다. 다윈상이란 게 그런 인간들을 위해 만들어진 상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그런 식으로 죽음을 선택하는 인간의 대부분은 자신에 대한 자신감이 있다. 또래 집단으로 보면 힘이 세고 활달하고 영향력이 있는 친구다.
개뿔도 없는 사람이 객기를 부리는 법은 없다. 그런데 강한민은 달랐다. 헌터가 되기 위한 티끌만큼의 재능을 가지지 못했지만 우리와 같은 줄에 서기 위해 안간힘을 다했다.
장기영이 그를 그토록 괴롭힌 건 강한민이라는 개인을 싫어하는 것도 있겠지만 언젠가 강한민이 자신뿐만 아니라 팀원들도 죽음에 밀어 넣으리라는 걸 예견했기 때문이다. 무능한 주제에 의욕이 앞서는 사람은 사고를 일으킬 확률이 현저히 높으니까. 강한민은 그러나, 다른 의미로 사고를 일으켰다.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아마 나와 강한민, 그리고 나혜인 셋만이 알 것이다.
흔하디 흔한 위험한 임무였다. 반군이 장악한 도심의 주요 시설에 몬스터가 거점을 구축하고 반군을 뚫고 거점을 공략하라는 명령을 중국 정부로부터 받았다.
처음 중국에 올 때만 하더라도 막강했던 중국군은 숫자가 크게 줄어들고 병력의 질과 장비 전체에 있어서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에 반비례하여 중국인은 드론에 광적인 집착을 드러냈지만 드론이란 게 편리한 도구긴 하나 만능의 마법 지팡이는 아니다.
세 차례에 걸친 드론 정찰이 실패로 끝나고 급하게 편성된 급조팀으로 서둘러 정찰대를 꾸렸다. 나와 강한민이 전위를 맡고 나혜인이 후방에서 우리를 조율하며 몬스터를 포함한 각종 위협 요소를 발견, 파악하는 스포터(spotter)를 맡았다.
초기에 강한민은 과할 정도로 의욕이 앞섰다.
“좋아. 좋아. 오늘은 느낌이 좋아! 럭키 찬스!” 나는 그것이 나혜인을 속으로 연모하고 그렇기에 나혜인 앞에서 좋은 모습을 어필하기 위한 객기라고 생각했다. 목숨을 걸어야 하는 곳에서 약간의 객기는 소금 같은 것이다.
과하지만 않다면 좋은 것이다. 몬스터의 거점 앞에서 우리는 반란군으로 추정되는 민간인을 발견했다.
어른은 없고 아이만 셋. 강한민에게 통역을 지시했다. 중국어를 몰랐고 배울 의사도 없었던 나와 달리 강한민은 김다람 수준으로 유창한 중국어를 구사했다.
뿐만 아니라 김다람만큼이나 중국인에게 살갑게 대하는 재주도 있었다. 김다람 같은 경우에는 가식이겠지만 강한민은 적어도 내 눈엔 타고난 본성이 그런 따뜻한 태도를 부여한 것으로 보였다.
중국어를 잘 모르는 나도 의미를 아는 흔한 인사말을 건넨 후 강한민이 내게 돌아왔다.
“다른 곳으로 가라고 했어. 어차피 우리가 왔던 곳으로 가봐야 군인들이 가만 안 놔두잖아?” 반군 지대에 있는 사람은 남녀노소를 불문 즉결 처분이다. 전쟁 초만 해도 중국 공민이자 피난민 취급을 해주었지만 광신도가 반군 지대 민간인에 섞여 갖가지 테러를 일삼음에 따라 무관용 원칙이 유일한 대민간인 정책으로 자리 잡았다.
무기도 없는 사람이 억울하게 죽는 걸 보는 취미는 없는지라 고개를 끄덕이며 떠나가는 어린아이들을 보았다. 공경민이 즐겨하던, 모바일 게임 캐릭터 인형을 가진 소년 하나가 겁에 질린 눈으로 우리를 돌아보았다.
“일단 안쪽까지 들어가 보자. 마지막 드론 정찰 결과에 의하면 캔디박스 타입으로 보이니까.”
“오케이! 아니키!” 어느 정도 친해진 이후 – 정확히는 강한민 일방적으로 생각하기에 – 강한민은 나를 아니키(兄貴)라는 이상한 별칭으로 섞어 불렀다. 당시엔 익숙하지 않았던 인터넷에서 독수리타법으로 확인한 결과 형님을 뜻하는 일본어라고 하는데 생일은 강한민이 나보다 더 빠르다.
아마 그가 숙소에서 즐겨하던 일본 게임에서 나오는 용어를 거부감없이 수용한 결과로 보였다. 영악한 건지, 아니면 계산이 서서인지 모르겠지만 강한민은 그 별칭은 나와 단 둘이 있을 때, 그리고 크게 긴장감이 없는 자리에서만 사용했다.
아무튼, 강한민과는 오래 작전할 생각도 없었고 이미 본국에 성적이 높은 후배를 우선적으로 배정받는다는 약속을 받아놓은 상태기 때문에 특별한 제지를 하진 않았다. 중요한 건 전장에서의 태도다.
그에게 자신감을 심어 준 이후 강한민은 그럭저럭 자신의 몫을 해내는 모습은 보여주고 있었다.
“내가 들어가 볼게.”
“네가?”
“내가 달리기가 좀 느리고 전체적으로 피지컬도 떨어지지만 그래도 빨리 기는 재주 하나만은 장기영 교장님도 인정했잖아?” 지금은 잘 보이지 않는 초기형 침투형인 캔디박스 타입은 굴처럼 좁은 통로로 이루어진 거점을 구축했다. 전투력이 워낙 저열해서 접근전에 들어가면 누구나 큰 어려움 없이 처리할 수 있지만 거점의 방어력과 성가심은 이후에 나타날 스파이더 타입보다 더 짜증 나는 구석이 있었다.
정체불명의 물질로 이루어진 회백색 좁은 통로, 그것도 젤리 왕꿈틀이처럼 생긴 하수인이 득실거리는 그곳에 가고 싶어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 나도 내심 그의 자원을 기대하며 결과를 기다렸다.
“오케이! 아니키!” 그가 굼뜬 동작으로 벌집처럼 난 통로 중 하나를 통해 기어들어가는 동안 총기를 든 채 주변을 경계하며 나혜인과 교신을 주고받았다.
“반군은?”
“깨끗해. 그 주변엔 없어.”
“좋아.”
“둥지 확인은?”
“강한민이 들어갔다. 곧 나오겠지.”
“확인.” 강한민이 나오길 기다리는 동안 뭔가가 내 시야에 들어왔다. 인형이다.
공경민이 즐겨하는 중국 게임의 캐릭터 인형. 관심은 없지만 워낙 해보라고 권유를 해서 모를 수가 없다. 그런데 그 인형, 아까 그 민간인 소년이 가지고 있던 것과 같은 모델이다. 왼팔 겨드랑이 부분이 찢겨 솜이 삐져나온 것까지 정확할 정도로 일치했다.
“······.” 갖가지 의혹이 고개를 들고 일어섰지만 잠자코 지켜보기로 했다. 곧 강한민이 빠져나왔다.
“힘들다. 힘들어.” 정찰을 마쳤다기엔 이례적으로 빠른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