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a House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361)
아포칼립스에 집을 숨김-367화(361/466)
367화 149. 장기 (3)
무엇보다 총성이 울리지 않았다. 그 말은 터널 안을 기어다니는 하수인과 전투를 벌이지 않았다는 것을 뜻하는데 캔디박스의 터널 안에서 전투가 없다는 말은 몬스터를 발견하지 못하고 돌아왔다는 말과도 일맥상통한다.
“어떻게 된 거지?”
점점 짙어지는 의심 속에서 강한민을 향해 물었다. 강한민이 웃으며 답했다.
“곧 알게 될 거야.”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또 다른 터널 입구 안에서 날카로운 비명이 울려 퍼졌다. 아이들의 비명이다. 강한민을 노려보았다.
“설명해라.”
“아까 그 아이들을 보냈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노려보고 있자니 강한민이 사족을 붙였다.
“강요한 적은 없어. 몬스터의 정확한 위치를 찾는 친구를 상하이에 있는 학교에 보내주겠다고 말했을 뿐이야. 봤잖아? 걔들이 자진해서 바다가 보이는 학교에 가자고 떠드는 거.”
“······어째서지?”
“어째서냐니?”
“왜 민간인을 불필요한 전투에 끌어들였느냐고 묻고 있는 거다.”
내 물음에 강한민은 오히려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걔들도 싸워야지.”
“?”
“자기 부모와 삶의 기반을 망친 게 몬스터잖아? 삶이라는 걸 통째로 망가뜨린 게 몬스터잖아? 그러니 걔들한테도 싸울 기회를 주는 게 응당 맞는 일 아니겠어?”
그 태도엔 일 말의 죄책감과 죄의식도 없었다. 그는 너무나도 당연한 일을, 아니, 오히려 시혜를 베푼 것처럼 말하고 있었다.
“······.”
원래 이런 놈이었나. 아니면 나조차 졸음에 빠지게 만드는 이 미친 전장이 그를 변하게 한 건가. 사실 나도 그리 떳떳할 게 없는 인간이다.
우리의 피해를 덜기 위해 수많은 민간인과 군인을 사지로 보냈다. 오십보백보라는 이야기다. 하지만 나는 그 오십 보와 백 보 사이에도 엄연한 차이가 있다고 믿는다.
적어도 나는 희망을 낚싯대의 미끼로 드리우지 않았다.
“강한민.”
그에게 한마디를 하려고 할 때였다. 소름 끼치는 비명이 저편에서 우리의 대화를 가로 막았다.
“으으으으어! 아으으어!!”
아마도 엄마를 찾는 듯한, 흐느끼는 비명이 소름 끼치는 형태로 울려 퍼지는 가운데 강한민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반군으로 몰려 죽을 바에 몬스터를 죽이는데 약간이라도 보탬이 되는 게 이미 갈가리 찢겨버린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할 말이 있었지만 마음이 식었다.
“······방금 들은 이야기는 못 들은 걸로 하겠다.”
돌아섰다. 뒤에서 강한민이 한마디를 보탰다. “놈들을 이 세상에서 몰아낼 수 있다면······,” 그 목소리는 내가 알던 강한민의 목소리가 아니다. 돌아보았다. 그러자 강한민 또한 나를 가만히 응시했다.
“무엇이든 하겠어.” 증오 그 자체로 이루어진 듯한 질척거리는 음성을 듣는 순간, 나는 처음으로 느꼈다. 나보다 더 진한 증오를 가진 놈이 존재할 수 있다는 걸. 다만 그의 눈엔 불길은 보이지 않았다.
그런 게 있었다면 미리 보였겠지. 내가 그의 실없이 웃는 눈동자 안에서 발견한 건 끝없이 가라앉은 수렁이다. 모든 것을, 심지어 자신마저도 무저갱으로 밀어 넣으려는 듯한.
“선배. 좋은 소식 하나.” 퇴원 전, 휴대폰을 통해 우민희에게 연락이 왔다. “겨울이 가기 전에 선발대가 여기에 도착한대.”
“선발대?”
“선배가 그리워할 얼굴도 있어.”
“누구?”
“강선배. 강선배를 비롯한 1군이 여기로 올 거야.”
“강한민이 온다고?”
“응.” 통화를 끊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생각의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무기를 챙겼다. 세례자 요한을 죽여야 한다.
구원자, 강한민이 오기 전에. * 모든 피난민이 조직화하고 정예화된 건 아니다. 어디에나 조직에 받아들여지지 못한 채 그저 이어 나갈 뿐인 삶을 사는 사람이 있다는 걸 우리는 알고 있다.
단지 못 본 척을 할 뿐이지. 과거에 마주쳤던 만석이 같은 인간이 우리가 굳이 보지 않으려 하던 멸망기의 악취 나는 풍경을 약간이나마 보여준 적이 있다. 그런 곳에 자진해서 찾아가는 건 적어도 비바! 아포칼립스! 서비스에 가입하던 시점엔 고려하지 않은 일이었다.
사람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살 순 없다고 하지만 그럼에도 보기 싫은 일부는 영원히 안 볼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독실한 종교인이라면 내 말을 쉽게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여기야.” 안내를 맡은 건, 새로운 서울에 온 이래 누구보다 큰 보탬이 되는 내 친구 디펜더다. 그는 도깨비 가면을 쓰고 있었다.
그 화려하면서도 섬뜩한 가면은 자신을 광신도로부터 가리려 하기보다는 자신을 죽이려는 자에게 경고의 의미를 주려는 것으로 보인다. 디펜더는 자신의 동료 세 명을 추가로 데려왔다.
대부분의 상황에서 숫자는 곧 무력이다. 무장한 남성이 다섯 명이나 있으면 어지간한 충돌을 피할 수 있다.
잡다한 피난민이 똬리를 튼 신도시 구석, 옛 지하철 대합실 아래엔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환영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 범죄자, 마약 중독자, 집단에서 버림받거나 뛰쳐나온 자, 그리고 스스로 자라야 하는 아이들. 웅웅- 발전소로부터 연결된 중계기가 불길한 울림을 내는 가운데 사람들은 공허한 빛 속에서 웅크리거나 누워 있었다.
아마 문지기로 보이는 험상궂은 사내 두 명이 입구 쪽에 모포를 휘감고 앉아 있다 우리를 보고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우리의 숫자와 무기를 보고 곧 다시 자리에 앉았다.
“깡패들이야.” 디펜더가 속삭였다. 어디에나 있는 무리다.
사람이 모이고 그 사람 중에 도태한 사람과 버려진 사람이 있다면 반드시 태어날 수밖에 없는 족속이다. 새로운 서울엔 크게 두 개의 깡패 무리가 있다고 하는데 도시 시정과 관련 없는 내가 신경 쓸 문제는 아니다. 다만 이쪽 구역을 관리하는 건 경남 쪽에서 올라온 “벌꾼”을 두목으로 삼는 깡패 무리로 알고 있다.
구석에 있던 여자들이 추파를 던지며 다가왔다. 거리의 여자다.
방독면을 쓴 사내가 싸늘하게 말했다.
“꺼져.” 디펜더가 주위를 둘러보더니 내게 속삭였다.
“기다려.” 한 사내가 다가왔다. 꽤 큰 키에 어깨가 넓은, 덥수룩한 수염을 기른 남자로 겉보기에도 말이 안 통할 것 같은 관상인데 심지어 눈 하나가 없었다. 보통은 안대를 끼긴 마련인데 그 사내는 휑한 눈구멍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아마 디펜더처럼 다른 사람에게 공포와 혐오감을 주기 위한 장치로 보인다.
“정호. 무슨 일이냐.” 그 사내가 디펜더를 반갑게 맞이했다.
“진호라는 애를 찾는데.” 디펜더가 잠시 다른 곳으로 가서 외눈 사내와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외눈 사내는 틈틈이 내 쪽을 힐끗힐끗 쳐다보았다. 잠시 후 디펜더가 돌아왔다.
“저쪽이야.” 우리는 계단을 내려가 철로가 있는 플랫폼으로 이동했다. 플랫폼을 따라 판자와 스티로폼, 각종 폐자재로 만든 움막 같은 주거지가 창백한 조명 아래 줄지어 서 있었다.
그 모습도 충분히 처참했지만 그보다 더 견디기 어려운 건 악취다. 악취와 비참함 속에서 우리는 또 다른 비참함을 목도한다.
병으로 죽어가는 여인과 울 기력조차 없이 방치된 아이들이 썩어가는 공간에 방치되어 있었다.
“이게 진호의 가족이라더군.” 누구에게나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것이 있다. 커뮤니케이션은 내가 잘 못하는 일이다.
디펜더의 팀원 중 때 아닌 정글모를 쓴 사내가 살갑게 웃으며 진호의 가족에게 다가갔다. 그에게 맡기기로 하고 악취로 가득 찬 공간을 떠났다.
잠시 후 디펜더의 팀원이 다가왔다. 고정두라는 친구로 전쟁 전엔 유명 유튜버의 스탭으로 일했다고 한다.
“인터넷으로 사람을 모집한 모양이야. 거기서 진호라는 애가 어떻게든 궁핍한 가족을 챙기려고 지원을 한 거지. 알다시피 어웨이큰이 되면 제주에는 못 간다고 하지만 적어도 저런 거지 같은 꼴은 면할 수 있으니까.” 일반 헌터만 해도 일반 병사보다 높은 대우를 받는다. 더 많은 배급, 더 좋은 숙소, 심지어 가족에 딸린 수당도 만만치 않다.
가족 수당을 노리고 무연고자를 일부로 가족에 포함하는 얌체도 생길 정도다. 정규 어웨이큰 정도면 더 높은 혜택을 받겠지. 궁지에 몰린 소년이 충분히 해봄 직한 대견한 발상이다.
“초반에는 괜찮았던 모양이야. 검사 시트지도 흰색으로 나오고. 아주 신이 났었지. 그런데 그게 이틀을 못 갔다고 하더라고.” 알고 싶은 정보는 알았다.
“······인터넷이 없었으면.” 이름을 모르는 한 사내가 중얼거렸다.
“그 소년이 죽지 않아도 됐을까?” 그 물음에 대답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딱히 나에게 한 질문도 아닐뿐더러 케케묵은 원인과 결과에 따른 논쟁이다.
* 망자33811 : 어웨이큰이 되고 싶은 사람? 망자812 : 어웨이큰이 되고 싶나? 망자7731 : 어웨이큰을 만들어 주는 약이 있다던데 (궁금하면 댓글 ㄱ) … … 게시판에서 세례자 요한의 자취를 찾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우리가 처참한 외곽에 다녀오는 동안에도 세례자 요한 측으로 추정되는 유저가 몇 개의 글을 올렸다.
아마도 조직적으로 글을 올려 잘 모르는 사람들을 꾀는 것으로 보인다. 비슷한 풍경을 전쟁 전에 봤었다.
각종 피싱과 사기꾼들. 주식 리딩방이니 오피스텔이니 초고액 알바니. 거기에서 종목만 바뀐 것이다. 물론 죄질은 더 흉악해졌고.
“······.” 타닥타닥. 놈과 접촉을 시도했다. 망자9435 : 어웨이큰이 되고 싶다. 이런 종류의 사기극이 그렇듯 오래 지나지 않아 회신을 받았다. 망자812 : 나이, 성별, 가족 망자812 : 대답 바람.
“······.” 타닥타닥 망자9435 : 32, 남성, 여우 같은 아내 둘 과 토끼 같은 자식 셋. 적당히 대답했다. 망자812 : 아내가 둘?! 망자9435 : 문제가 되나? 망자812 : 아니, 그보다 나이가 너무 많네. 망자9435 : 아직 애긴데? 망자812 : 그게 아니라 생물학적으로 만 스무 살 이상이면 잘 안될 수가 있어. 그런 게 있거든. 망자9435 : ?ㅅ? 망자812 : ? 망자9435 : 그릉가? 망자812 : ······위험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지. 망자812 : 그래도 하고 싶나? 망자9435 : ㅇㅇ 여우 같은 아내와 토끼 같은 자식들을 부양해야 한다.
망자812 : 좋다. 주소를 불러주겠다. 세례자 요한이 불러준 주소는 역시나 신 주거지 외곽의 버려진 영역이다.
과거 유명한 카페로 프렌차이즈 간판이 그대로 달린 곳을 세례자 요한은 약속 장소로 잡았다.
“어때?” 사전에 위치를 분석했다. 한 눈으로 봐도 수비적인 지형. 정확히는 기다리는 쪽에서 오는 사람을 확인하기 편한 지형이다. 완만한 경사의 고층부에 있으면서도 다른 곳과 달리 온전한 건물을 여럿 두고 있는 곳에 세례자 요한 패거리가 진을 치고 있다.
“여차하면 내가 엄호할게.” 다정이가 드론으로 지원을 하기로 했다. 물론 디펜더의 팀원도 함께다. 디펜더의 팀원엔 큰 관심이 없었지만 어째서인지 고정두라는 친구에겐 이상하게 흥미가 끌렸다.
“구독자 3백만 유튜버 스탭으로 일했다고 들었는데······.” 해서 먼저 말을 걸었다.
“어. 그런 일을 했었지. 성깔 좆같은 놈이긴 해도 정산은 확실히 했어.”
“어떤 유튜버였지?”
“국뽕 렉카.”
“그렇군.”
“한심하다는 거 나도 알아. 그런데 어쩌겠어. 거기보다 편하고 돈 많이 주는 곳도 없는데.”
“혹시 배너 제작 같은 것도 했나?”
“그건 왜 묻지?”
“그냥, 개인적인 흥미로 해두지.” 개인적으로 자기 객관화가 잘 되는 편이라고 생각한다. 최근 네크로폴리스의 본격 유입으로 내가 유행에 뒤처지고 감이 떨어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제레미아이언스 같은 무근본 유입종자한테 휘둘린 건 그 반증이겠지. 사실 이러한 쇠퇴는 나에게만 일어난 일은 아니다. 엠구, 동탄맘, 기타 게시판 터줏대감도 본격적인 새로운 물결 속에서는 영 힘을 못 쓰고 있다.
과거와 달리 그들도 새로운 소재를 뽑지 못하는 건 명백한 사실이니. 그러니 네임드 품위유지를 위한 새로운 전략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다음에 이야기나 하지. 개인적으로 부탁할 게 있다.” 이런 식으로 현실과 인터넷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으며 차곡차곡 세례자 요한을 만날 준비 작업을 마쳤다.
야음을 틈타 디펜더 및 동료들이 저격 및 화력 지원 포인트에 매복하고 낮 시간에 내가 위험을 무릅쓰고 세례자 요한을 만난다. 시기상으로 겨울은 아니지만 차가운 기온은 유리한 환경을 조성했다.
외투 아래 방탄조끼를 입었다. NIJ 레벨 III급 방호력으로 5.56mm 탄환을 막는 수준의 방호력을 가졌다고 하지만 실제 사용한 동료의 말에 의하면 운이 좋을 경우에 막는 정도라고. 그래도 없는 것보다 낫겠지. 멀리 카페가 보인다.
“사람 하나~. 나머지는 안 보이네~.” 이미 고고도 드론을 보낸 다정이가 교신기를 통해 정보를 알려주었다. 무기가 없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두 손을 올린 채 국민 카페로 불렸던 옛 프랜차이즈 카페 건물을 향해 걸어갔다.
음침한 관상의, 깡마른 사내가 날 가만히 응시하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며 생각했다.
이 사람이 세례자 요한인가. 뭐랄까, 느낌이 없다. 용모의 미추를 떠나, 그 광적인 연구에 매달리고 수행하는 자 특유의 집념을 조금도 찾아볼 수 없다.
약물 중독자를 방불케 하는 흐리멍덩한 눈동자도 그렇고. 아니나 다를까.
“스켈톤! 주변 건물에서 소규모 분대급 인원이 건물 틈으로 빠져나가고 있어!” 그것만이 아니다. 음침한 사내도 달아나려 한다. 한달음에 쫓아가서 사내를 때려눕혔다. 퍽! 퍽! 퍽! 제압을 위한 몇 차례의 구타를 가한 후 사내를 포획했고 뒤이어 찾아온 디펜더의 동료에게 넘겼다.
“눈치를 깐 모양인데.” 디펜더가 사내를 보며 말했다. 그 싸늘한 표정은 그가 생각하기에도 저 친구가 우리가 찾는 놈은 아니라는 이야기겠지. 잠시 후, 우리는 피투성이가 된 사내와 재회했다. 피 묻은 펜치를 든 디펜더의 동료가 우리를 보자 고개를 까딱였다.
“애새끼만 받는다고 하더라고. 어른은 일단 지켜봤다가 뜯어 먹을 게 있으면 데려가고 아니면 단체로 튀고.” 방독면을 쓴 사내가 입 부분만을 살짝 열어 침을 뱉었다.
“이 새끼는 걍 더미야.” 확실히 쉬운 사냥감은 아니다. 쉽게 잡을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지만. 하지만 이대로 포기할 수도 없기에 잠자코 생각에 잠겨 있자니 디펜더가 말했다.
“애가 없으면 만들면 되는 거 아니야?”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디펜더를 보았다. 디펜더는 도깨비 가면을 벗으며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아무나 데려와도 되지?” 그 태연한 얼굴을 보는 순간, 본의 아니게 강한민의 얼굴을 떠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