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a House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371)
아포칼립스에 집을 숨김-377화(371/466)
아포칼립스에 집을 숨김 377화
152. 기록 (2)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하지만 반만년 인간사를 돌이켜봤을 때 이름을 남긴 사람은 몇이나 될까.
사람이 남길 수 있는 건 후손과 몇 안 되는 기록이 전부일 것이다.
일기나 비망록은 널리 인용되는 예지만 21세기를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잘 와닿진 않을 것이다.
내 은사 장기영 정도가 꾸깃꾸깃한 수첩에 하루의 감상과 소회를 남기던 현실적인 마지막 세대일 것이다.
이것은 인간의 기록에 대한 욕구가 줄었다기보다는 주로 사용하는 도구가 펜과 종이에서 키보드와 마우스, LCD 액정으로 넘어간 게 더 큰 지분을 차지할 것이다.
은퇴 전 서울 모처의 초등학교에 봉사활동 성격으로 몬스터, 뮤테이션 관련 교육을 한 적이 있는데 교실에 가니 못 보던 기계가 있었다.
마치 대형 서버실에서 볼 법한 강철제 박스였다.
대체 어디에 쓰는 거냐고 묻자 안내를 맡았던 교사가 웃으며 답한 게 아직도 기억난다.
“태블릿 충전기에요. 요즘 애들은 다 태블릿으로 공부하거든요.”
“태블릿은 다 학부모 부담으로 하는 겁니까?”
“아니오. 나라에서 일괄적으로 구매해서 무상으로 지급해요. 누구는 비싼 거 쓰고 누구는 싼 거 쓰면 반드시 말이 나올 거 아닌가요?”
아이는 어른의 거울이다.
실제로 우리 어른들도 종이보다는 컴퓨터를 이용해서 흔적을 남기는 데 더 익숙하다.
특히 인터넷은 IT 시대에 한 인간이 어떤 삶의 궤적을 살았는지 충분한 정보를 제공한다.
경찰이 어떤 범죄자를 수사할 때 괜히 휴대폰 포렌식 검사를 하는 게 아니다.
검색어 목록만으로 그 사람이 당시에 어떤 관심사를 가지고, 어떤 생각을 할 수 있는지 유추할 수 있다.
우리 게시판 같은 커뮤니티 사이트는 한발 더 나아가 그 사람의 생각, 소신, 사상마저도 꿰뚫어 볼 수 있는 심층적인 정보를 제공한다.
물론 나처럼 인터넷과 현실을 철저히 구분하는 사람에겐 어림도 없는 이야기지만 그건 나 정도 되니까 가능한 것이다.
보통 사람은 인터넷에 자기도 모르게 현실을 투영한다.
그렇다면 강한민은 어떨까.
지금 나에겐 비록 과거의 기록이지만 대한민국 최대 포탈 사이트와 외국계 검색 포탈 서버에 저장된 과거의 기록이 있고 그 기록 해석을 도와 줄 전문가가 있다.
나의 친구, 발렌타인도 뛰어난 네트워크 전문가지만 우민희가 붙여 준 사람은 현직에서 대기업 서버 관리실을 운영한 경험이 있단다.
“한 번 뜯어보죠.”
그렇게 해서 4년 전에 시간이 멈춰버린 인터넷 세계가 되살아났다.
추억에 묻힌 과거는 실제로 경험했던 현재보다 아름답다는 말이 있다.
실로 그러했다.
[ 인기 급상승 팬시 가방♡ 최저가부터 몰아보기~ ]한때는 지긋지긋했던, 총천연색으로 반짝거리는 광고 배너를 보고 있자니 드는 생각이다.
물론 그 배너를 누른다고 해서 시간이 과거로 돌아오는 건 아니다.
그저 좋았던 한 시절의 생생한 조각에 불과하다.
중요한 건 강한민이라는 한 사내가 인터넷 세계에 남긴 기록이다.
“일단, 지목한 사람으로 추정되는 인터넷 기록을 정리해 봤습니다. 근거는 IP 주소와 휴대폰 고유 ID, 이를 통해 추적한 사이트의 계정 정도가 있겠네요.”
기술자가 따로 정리한, 강한민의 행적을 추정한 텍스트 파일을 전송하면서 내게 다가와 쓴웃음을 머금으며 말했다.
“동명이인이겠죠?”
그가 대뜸 동명이인이라는 말을 꺼낸 건 내가 지목한 강한민이라는 유저의 인터넷 행적이 저 이름 높은 구원자 강한민과는 도저히 매치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강한민의 인터넷 라이프는 빈말로도 바람직하지 않았다.
전형적인 커뮤니티 폐인이라고 할까.
나야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 속에서 어쩔 수 없이 커뮤니티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던 정상 참작 사유가 있지만 강한민은 전쟁이 일어나기 전, 중국과 관계가 좋았던 호시절에도 커뮤니티 중독 현상을 보였다.
일전에 내가 우연히 클릭한 강한민의 기괴한 글도 그런 맥락 중 하나겠지.
공경민이나 지금은 죽은 다른 팀원들도 강한민이 인터넷에 이상한 글을 쓴다는 제보를 해왔다.
“걔. 말이야. 뭔 그런 글을 쓰냐. 명색이 헌터라는 놈이 방구석 폐인도 아니고.”
한마디로 축약하자면 뻘글이다.
우리가 밥을 먹고 똥을 싸는 것처럼 강한민도 인터넷이라는 세계에 뻘글을 싸질렀다.
똥과 큰 차이가 없는 뻘글은 그러나, 이제 변해버린 강한민이라는 인간을 이해하기 위한 몇 안 되는 기록이다.
강한민을 이해한다는 건, 장군 타입에 관한 자료를 찾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일이다.
우민희도, 나혜인도 강한민에 대해서 그다지 우호적이지 않은 반응을 보였다.
나혜인 같은 경우에는 직접적인 표현을 하지 않았지만 우민희는 일전의 술자리에서 적나라하게 강한민을 비판했다.
“그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무도 몰라. 아무에게도 말해주지 않는걸. 제주 위원회 애들이 장난질을 치든, 균열 안에서 몇 명이 사고로 쓸려나가든 그 사람은 그 어떤 의사 표현도 안 해. 그저 입 꾹 다물고 균열을 들락날락하는 게 전부지.”
생각을 알 수 없고 또 대화를 공유하지 않는다.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은 태도지만 무엇보다 헌터다운 모습은 절대 아니다.
태생적으로 팀이라는 공동 운명체의 부속으로 만들어진 우리 헌터가 소통을 안 한다는 건 스스로 헌터의 자격 자체를 부정하는 것과 별반 다를 바 없는 일이니까.
이제 그 강한민의 기록을 파헤치겠다.
기술자 말로는 전쟁 전 10년 전부터 전쟁 직전까지의 기록을 찾았다고 한다.
강한민이 주로 사용한 사이트는 세 개.
첫 번째는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용한다는 포탈 사이트다.
지금은 폐쇄되어 기록이 말소된 블로그를 운영한 전력이 있고 중고 물건을 거래하는 카페에서 활동한 짧은 이력 이외에는 국내에서 주문한 인터넷 상품 거래 정도가 전부다.
여기서 그나마 강한민의 변화를 찾아볼 수 있는 구석은 인터넷 쇼핑 거래 기록인데 10년 전엔 주로 운동화나 캐쥬얼한 옷, 게임 등을 거래한 반면, 그가 어웨이큰으로 자각한 이후부터는 캠핑과 낚시용품을 주로 구매했다.
가장 중요한 단서로 여겨진 검색어도 주로 쇼핑에 관한 것이 전부.
마지막에 검색한 건 전쟁이 일어나기 전 한 달 전에 쓴 것으로 그 내용은 아래와 같다.
[ 일인용 화로 성능 ]두 번째 사이트는 중국의 쇼핑 사이트다.
이쪽은 데이터가 남아 있지 않아 복원이 불가능하지만 큰 의미는 없을 것이다.
내가 가장 큰 기대를 가진 건 마지막 사이트다.
바로, 강한민이 주로 사용한 커뮤니티다.
일전에 숙소 컴퓨터에서 발견한 강한민의 뻘글도 이 커뮤니티 게시판에서 발견됐다.
다행스럽게도 엔지니어는 강한민이 그 커뮤니티에서 작성한 모든 글의 복원을 성공했다고 한다.
“이미지 파일이나 영상 파일 전부를 불러올 수 없지만 어느 정도는 대충이나마 복원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발생했다.
“······.”
작성 글이 대단히 많다.
[ 작성한 글 52,352 / 댓글 152,421 ]자료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고 하는데 이렇게까지 많아 버리면 오히려 짐이 된다.
막말로 이걸 다 언제 읽을까?
일단 보수적인 글댓비 이론에 의하면 강한민의 글댓비는 1:3으로 양호한 축에 속한다.
적절하게 이야기도 하고 남의 이야기도 들어주는 그런 타입이라는 이야기.
방대한 강한민의 작성 글을 한 차례 훑어보았다.
강한남 : 4년 된 글카 당근에 올리면 얼마에 팔림?
강한남 : 몬스야 SN 패널 모니터는 어떠냐?
강한남 : 알파메일의 삶.gif
강한남 : 이게 가슴이야? 수박이야?
강한남 : 옷치긴아~ 청년월세지원 신청했냐?
강한남 : 스포) 옷치긴 학교에서 변싼채로 발견
강한남 : 백인 중3 직찍.jpg
강한남 : 나도 프랑스어 일본어 자격증 따고 싶군
강한남 : 오늘 저녁.jpg
강한남 : 우숨 신수 4마리 전부 해방했다!
…
…
“······.”
딸깍
백인 중3 사진글을 클릭했다.
서양인 스님 세 분이 산세 좋은 절 앞에서 기념 촬영을 한 사진이었다.
“······.”
만만치 않군. 강한민.
불의의 일격을 한 차례 얻어맞으면서 강한민의 방대한 글을 정리해 보았다.
강한민은 방대한 커뮤니티 안에 마련된 여러 게시판을 두루 돌아다니며 활동했는데 주로 사용한 곳은 변방에 자리 잡은 작은 게임 게시판이었다.
여기서는 인터넷 전문가 홍다정의 입을 빌리도록 하자.
“아? 그 게시판?”
과연 홍다정은 강한민이 활동한 게시판의 역사를 꿰고 있었다.
“한때는 융성했지만 관리 부실로 사람이 다 빠져나가 폐허가 된 곳? 그런 느낌이지.”
강한민은 그 게시판에서 10년을 넘게 활동했다.
어떤 의미로 하나의 시대를 같이 한 것이다.
그 사실을 안 순간 살짝 피가 끓어올랐다.
그동안 베일에 싸인, 한때는 애써 외면했던 인간 강한민의 민낯이 당장이라도 내 앞에 드러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5만 개가 넘는 작성 글과 15만 개에 달하는 댓글이라는 숫자는 장식이 아니다.
벌겋게 눈이 충혈될 정도로 스크롤을 했지만 영양가 있는 글은 단 하나도 찾지 못했다.
다만, 한 가지 특징은 찾을 수 있었다.
그건 강한민과 내가 비슷하다는 것이다.
수많은 뻘글에 묻혀서 잘 보이지 않았지만 강한민은 나처럼 인터넷과 현실을 철저하게 분리하는 타입으로 보였다.
그가 작성한 글은 분명 경박하고 유머러스하고 또 나름의 소통을 요구하고 있지만 그 수많은 글 안에 “강한민”이라는 개인은 철저하게 배제되어 있었다.
그는 오로지 “강한남”이라는 유저의 인격으로 글을 작성했고 그 안엔 강한민이라는 인간을 추측할 수 있는 단서는 거의 발견되지 않았다.
그나마 인간 강한민의 고충이 드러난 건 정말로 원초적인 푸념글 정도가 전부였다.
강한남 : 오늘도 회사 가야 하네······.
중국 IP로 작성된 그 글의 작성 일자는 그가 중국에서 활동하던 시기.
그것도 나와 같은 팀을 맺기 전, 장기영 파벌에게 갖가지 구박과 차별을 당하던 시기였다.
어떤 의미로 인생의 진정한 암흑기라 할 수 있는 그 시기 동안 강한민은 단 한 번, 자신의 심기를 아주 짧은 단문을 통해 표출했을 뿐이다.
강한남 : 하아······ 존나 힘들다 진짜······.
날짜를 보면 아마 그가 실수를 해서 중국군 중에 사망자가 생겼고 장기영이 직접 전화를 걸어 당장 한국에 귀국하지 않으면 중국 군법회의에 인계하겠다고 엄포를 놓던 시절에 작성된 글일 것이다.
이런 짧은 심경 표출을 이후로는 마치 한강처럼 변함없이 도도하게 흐르는 뻘글의 행렬이 이어진다.
무표정한 얼굴로 강한민의 뻘글을 스크롤하던 중에 느낀 거지만 강한민은 “낚시”를 좋아했던 모양이다.
인터넷에서나 현실에서나.
확실히 사람을 낚는 재주는 있다.
강한민의 인터넷 기록을 분석한 지 10시간이 지났다.
같이 있던 엔지니어는 모두 퇴근한 상태.
전기난로를 켜고 귀중한 캔 커피를 마시며 잠시 기력을 충전한 후 남은 게시글을 보았다.
여전히 3만 개가 남아 있다.
“······.”
이래서는 답이 없다.
모든 걸 다 읽어 볼 순 없다.
현명하게 해야 한다.
미련하게 전체 글을 읽을 게 아니라 강한민의 인생에 변화가 나타난 시기 별로 카테고리화 하며 그 부분을 중점적으로 확인하는 쪽이 내가 원하는 결론에 좀 더 쉽게 도달할 수 있지 않을까?
즉시 시기별로 강한민의 방대한 글을 재구성했다.
가장 중요한 시기라면 역시 강한민이 어웨이큰 자각, 이른바 알파 각성을 한 이후겠지.
강한민은 어웨이큰이 된 이후에도 자신의 고향과 같은 게임 게시판에 틈틈이 글을 올렸다.
삐– 삐– 삐–
모처럼 다시 야심에 차서 강한민의 글을 시기별로 분류하고 있을 때 휴대폰이 울렸다.
[ 01410 ]우민희의 번호.
새로운 서울 안에서는 휴대폰 전파가 통하기에 무거운 K-워키토키 대신 휴대폰을 들고 다닌다.
“선배. 잘 돼 가고 있어?”
한결 밝아진 목소리.
언제는 안 밝았냐만은 과거와는 미묘하게 다른 차이 같은 게 느껴진다.
아마 그날 이야기를 하면서 그녀도 마음의 짐 약간은 벗어던졌다는 이야기겠지.
“······그럭저럭.”
“그렇구나.”
“그런데 무슨 일이야? 갑자기?”
“아, 별 건 아니고. 선배랑 안다는 사람이 선배에게 도움을 요청해서.”
“누가?”
“하태훈씨? 어디서 들어본 이름이긴 한데. 아무튼.”
“하 선배가?”
“시급한 건 아니고, 군단파 잔당과 신경전을 펼치고 있다고 하네. 김병철 씨한테 필요하면 포병대로 지원하라고 말해놨어.”
대단히 안타까운 일이지만 인간 강한민에 대한 분석은 뒤로 미뤄놔야 할 것 같다.
뭐, 지금까지 패턴으로 미루어 보아 작성 글 전체를 읽는다고 해서 원하는 정보를 얻을 것 같지도 않겠지만 말이다.
그런데 꼭 이런 게 있다.
중도에 끝내려고 하면 항상 그냥은 지나치기 어려운 기회 같은 것이 어른거린다.
지금도 그렇다.
강한남 : 스포) 게시판 친구들에게 지금까지 숨긴 사실이 하나 있다······.
“······.”
낚시글일 가능성이 대단히 높지만 중요한 건 시기다.
전쟁이 일어나기 한 달 전에 작성한 글이다.
강한민 같은 요직에 있었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전쟁이 일어날 거라는 걸 알고 있었던 시기에 작성된 글이다.
이건 확실하다.
10년이라는 세월을 함께한 게시판 친구에게 처음으로 강한민이 강한남이라는 가면을 벗고 진솔하게 자신을 드러내는 글일 것이다.
“······.”
딸깍
– 스파크래프트 립버전 1.16.1다운 스파크래프트 립버전 1.16.1다운 있을 것 같았다. 그건 실로 벅찬 감격이었다.고마워요 본드. 덕분에 마음이 아주 편해졌어요.고마워할 필요는 없어.킴은 미소지으며 손을 내밀었다. 니콜라는 기쁜 얼굴로 악수를
…
…
“시발련이?”
그대로 포기하고 자리를 떠나려는 찰나였다.
글자 그대로 뻘글 그 자체인 게시글 제목 하나가 운명처럼 내 눈길을 사로잡았다.
강한남 : 아니키
얼핏 보면 다른 글처럼 아무런 의미가 없는 뻘글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기억하고 있다.
그 아니키라는 말이 강한민이 어웨이큰이 되기 전에 종종 나를 부르던 호칭이라는 걸.
항상 구박을 받고 눈치를 봐야 했던 위태로운 입장인지라 단둘이 있을 때, 그것도 내가 방심할 때만을 골라 기습적으로 사용했지만 말이다.
제 딴에는 친근함의 표현일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그가 뻗는 손길을 항상 외면했다.
“······.”
10년도 전에 내민, 차갑게 식은 손을 이제야 마주 잡는다.
게시글의 내용은 그가 올린 여느 글처럼 짧았다.
– 이제는 진짜 나밖에 없어.
이것은 강한민이 내게 직접 한 말이다.
그가 어웨이큰이 된 이후 처음으로 내게 표현하는 진실된 마음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느끼겠다.